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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1.01.19 (수)

계시말씀

선포일
2011.01.19 (수)
성경 본문
읽다가 14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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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강림 작성일: 2010년 11월 10일, 12일 새벽 작성자 : 전미정 (분당 기쁨교회, 순회사) [ 그동안 깊은 기도를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주 님께 섭리사와 선생님을 위한 기도를 하고, 이어서 기성이나 변질된 타 종교에서도 예수님에 대해 다 시 각성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해 달라는 눈물 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때 다른 때보다 주님의 임재가 더욱 강렬하게 느 껴졌는데, 비록 보이지 않아도 분명하게 주님의 영 적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오늘은 다른 때와 달 리 왜 주님이 더 확실하게 실체로 느껴지는지 여쭈 었을 때 주님은 갑자기 저에게 "이것이 나의 강림 이다" "이것이 나의 임재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저는 긴장된 마음으로 그동안 궁금했던 재림 의 여러 정황에 대해 여쭈었고 주님이 이날 말씀해 주신 것을 다시 확인 차 이틀 후 새벽기도 중 다시 여쭙고 이에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정리했습니 다. ] * 예수님 말씀 * (“주님의 재림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한 개인 개인에게 이렇게 사랑으로 임하는 것이 각자에게 나의 강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를 각자 사랑으로 맞이하면서 홀연히 변화되어 지는 것이다. 이미 영체는 홀연히 변화를 이루어 나의 신부가 되 어 신랑인 나를 맞고 있지 않느냐. (“그럼 이미 마지막 천사장의 나팔을 불었다는 의 미인가요?”) 그러한 이야기가 아니다. 천사장의 마지막 나팔을 부는 사건은 아직 남아 있 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선포의 나팔이다. 나는 나의 강림을 지금부터 너희가 맞이하면서 어떻게 너희가 홀연히 변화되고 있는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 그럼 주님의 재림 때 공개적인 어떤 두드 러진 현상은 없는 건가요? 이렇게 개인적인 차원으 로 주님을 맞는 것은 너무 눈에 띄지 않아 보이네 요.”) 그렇지 않다. 너희 섭리에서 열 명, 스무 명, 백 명, 만 명 나를 너와 같이 느끼고 맞이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세상 기성에서도 나와 이렇게 교감하고 증거하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면 그 위력은 엄청난 것이다. 각자 홀연히 지금 나의 강림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예수님, 사람들은 재림에 대한 더욱 확실 한 징조를 보고 싶어 하는데, 또 다른 두드러진 현 상은 없나요?”) 분명 지금 시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막바지에 다다르면 그러한 심판과 환란의 사건들이 더욱 대대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러한 사건들이 나의 재림에 대한 징조이다. (“주님,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기대하듯 사람을 통 한 재림 역사가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 나는 영적 신랑이고 너희는 분명 신부이니 너희 선생같이 신부의 표상은 있지만 신랑을 대신하는 누군가는 필요치 않다. 내가 영적 존재라 해도 너희의 영적 감각이 깨이고 사랑의 감각이 깨이니 이처럼 내가 영의 몸이지만 나를 실체로 느끼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영의 몸으로 임해도 너희는 나를 맞을 수 있다. (“영적으로 섭리인 모두 다 깨어나는 것이 중요하 네요. 그런데 영안이 열려야만 주님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다. 너 역시도 영적으로 나를 보지 않아도 이처럼 강렬한 나의 임재를 느끼지 않느냐. 각자 깊이 기도하고 나를 올바르게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누구나 똑같이 영적 감각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예수님, 재림을 깨우는 다른 영적 사명자들과 선 생님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세요.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명자들은 그 차원의 역사를 펼치는 것이다. 몸의 각 지체가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하며 사명을 하듯 이 시대도 여러 사명자가 필요하다. 신약 때 내가 시작한 역사는 이스라엘 지역을 먼저 깨우면서 시작한 역사였다. 그 이후 제자들을 통해 전 세계로 나의 역사는 커 져갔고 그러하기에 지금 이 시대는 너희 선생 혼자 재림의 때를 알리기에는 한계가 있 다. 각자 재림의 시대를 알리는 나팔을 불면서 동시에 빨리 깨우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선생은 단순히 재림의 때를 알리는 나팔의 역할만을 하는 그들과는 다르다. 너희 선생은 새로운 시대 말씀의 주인공이다. 이 말씀으로 앞으로 천 년 동안 사람들의 인식관을 전환시키면서 진리의 나팔, 복음의 나팔을 부는 사명자이다. (“저도 요한계시록을 읽다가 14장 6절에 '영원한 복음'에 대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시대 새 복음의 나팔을 불고 계신 선생님에 대 한 말씀으로 깨달아졌어요. 그런데 주님, 왜 복음의 나팔을 또 불어야 하나요? 예수님 때 말씀은 완성 된 것이 아닌가요?”) 나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의 나팔을 불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육적 사고가 어려서 그 차원에 맞는 영적 말씀의 나팔만을 급하게 불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이 시대인들의 육적 사고, 특히 과학적 사고가 발달한 만큼 그 차원의 말씀을 수준 있게 다시 해 주어야 한다. 또한 너희가 신랑으로 맞이할 나 예수에 대해서도 제대로 확실하게 다시 알려주어야 한다. (“선생님과 다른 사명자들도 이 시대 똑같이 예수 님의 재림을 맞이하는가요?”) 그렇단다. 그들에게도 동시대 나의 재림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과 섭리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요?”) 각자 그 수준의 재림을 맞이한다. 종이 주인을 맞이하듯, 자녀가 부모를 맞이하듯,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듯 다른 자들의 재림과 섭리의 재림의 차이는 각각 차원이 다르게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 재림을 맞이하는 자는 모두 신랑 앞 에 신부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나를 기다리는 자들은 모두 신부이다. 종도 주인을 사랑하니 충성하고 자녀도 그 부모를 사랑하니 순종하고 신랑 신부도 서로 사랑하니 단장하고 기다리는 것 이다. 단지 차원성을 말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이 지 그 근본에는 나를 사랑하여 기다리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 단지 세 단계로 나누어 말하는 것은 나와 너희의 사랑의 관계를 질적인 차이로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