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1.01.26 (수)
110126 수요말씀
- 선포일
- 2011.01.26 (수)
- 성경 본문
- 누가복음 15장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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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6일 수요말씀>
주 품에 돌아와라
본 문 누가복음 15장 11-32절
야고보서 4장 8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말씀하신 ‘탕자’에 대한 말씀을
하며, 이 시대 탕자에 해당되는 자들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 둘째 아들은 자기 생각대로 잘 살아 보겠다고 하며 아버지가 물려
준 재산을 가지고 매몰차게 아버지 품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부터 계속 아들이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
만을 밤낮으로 기다렸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겠다고 집을 나간 자가 집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한마디로 ‘하대명년(何待明年)’입니다. ‘하대명년’이라는 말은 ‘언
제 내년이 올까?’ 할 정도로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하다는 뜻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매우 희박할 때 쓰는 말입니다. 기약 없는 날을 막연
히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나간 자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라는 것입니다.
집을 나간 자가 혹여 잘되고 흥하고 성공해도 더욱 자기 생각대로 살
려고 안 돌아옵니다. 또 실패해도 면목이 없으니 돌아오기 힘듭니다. 망
해서 죽을 지경에 처해 죽는 것보다 집에 돌아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
하고 돌아오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실패하면 동네 사람들 볼 때
창피하고 부모를 뵐 면목이 없으니 더 안 돌아옵니다.
이같이 한 번 집을 나간 자가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정
말 희박한 일입니다. 성경 본문의 탕자는 죽을 지경에 처하게 되었기에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돌아왔을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때를 보고 품을 떠난 자들을 기다리십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너무 사랑하니까 기약도 없는 날을 기다렸습
니다. 모두 누구를 기다려 보았습니까? 잠깐 외출한 엄마나 자녀나 애인
을 기다리는 것도 시간이 지났는데 안 들어오면 너무 초조하지 않습니
까? 모두 기다리는 것을 해 보았겠지만,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초조하고 애간장 타고 지루합니까?
섭리사 사람들은 2007년에 선생을 기다려 봤지요? 육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모두 희망을 가지고 선생을 기다렸지요? 탕
자의 아버지도 그 같은 심정으로 희망을 가지고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계
속 기다렸습니다. 아마 아버지가 기다리지 않았다면 탕자가 다시 돌아와
도 희망이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만 애태우고 희망에 차서 기다렸습니다.
탕자의 형은 그같이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탕자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자가 살아 온 듯
기뻐 맞아 주었고, 깨끗이 씻기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고,
잔치까지 열었습니다.
그러나 형은 동생이 돌아왔는데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돌아왔으니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위해 잔치까지 여는 아버지를
보고 “나는 그동안 집에서 그렇게 충성하며 일했는데, 왜 나를 위해서는
잔치를 안 해 주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서만 잔치를 열
어 줍니까?” 하며 서운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에 아버지가 말하기를 “너는 수년 동안 나와 함께 먹고 마시지 않
았느냐.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 것 같으니 얼마나 좋으냐? 그렇게도 기
다렸던 내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기뻐 잔치한다.” 했습니다. 큰아들
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마음이 참된 사람으로서 오직 사랑으로 끝까지 탕자
를 기다렸습니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같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애인의
사랑도 아니고 부모의 사랑인데, 참으로 위대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끝까지 기다리며 끝까지 사랑합니다.
탕자가 부모 품을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듯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품을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하
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믿고 그 품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알고, 이를 최고로
귀히 여기고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모두 눈으로 봐 왔지만 한
번 신앙을 상실하면 다시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죽음과 바꾸는 단계까
지 가야, 그나마 회심해야 다시 돌아옵니다. 고로 하나님은 그들이 행위
대로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 안 되게 틀어서라도 하나님 품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 섭리사 주님 품을 떠난 자들도 한 번 떠나가면 돌아오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러므로 돌아온 자가 별로 없습니다. 탕자처럼 자기가 좋아서
자기 생각대로 하겠다고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또 신앙을 탕진하였기에
마치 기름 떨어진 차와 같아서 돌아오기 힘듭니다.
★ 탕자는 재산을 다 탕진했지만 ‘신앙의 탕자’들은 생명 같은 에
너지인 신앙, 믿음, 말씀을 다 탕진했기에 돌아오기가 정말 힘듭니다. 고
로 타인이 기도해 주면서 이끌어 와야 됩니다. 세상은 바다와 같아서 한
번 나가면 넓은 세상에서 이것저것 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세월
이 획 가 버려 중년이 가고 인생이 다 가게 됩니다. 부모들 중에서도 신
앙생활 했다가 지금은 안 하는 자들이 있지요? 탕자가 되었습니다.
- 어떤 일을 해서 그 일이 잘되면 계속 그것을 접해서 하게 되니 더
안 돌아오게 됩니다.
- 또한 어떤 일을 하다가도 안 되면 기어이 성공하려고 더 하다 보
면 못 돌아오게 됩니다.
- 한 번 세상 사랑에 빠지면 그에게 묶여 살아야 됩니다. 그때는 홀
몸이 아니니 혼자만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더 돌아오기가 어렵게 됩니다.
- 또 세상 체질에 젖게 되고 세상에 묶이게 되어 돌아오기 힘듭니다.
- 더구나 사탄은 자기 주관권에 소속됐으니 영원히 그 주관권에서
안 내보내려고 굳힌 마음을 더 굳게 먹게 역사를 하니 돌아오기가 더욱
어렵게 됩니다.
선생이 섭리사를 나간 자들을 위해 수년 동안 기도해 주면서 눈 빠지
게 기다려도 안 돌아오기에 사람을 보내어 만나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만 돌아온다고 하지, 이성과 세상 명예와 세상 것에 빠져서 몸은 돌
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다가 애타고 속 타느니 다른 자들을 전도하자.’ 하
고 전도자를 보내어 다른 자를 전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된 자는
지금 시대 말씀을 깨닫고 성령을 받고 주를 위해 살겠다고 하며 잘하고
있습니다.
기약 없는 날짜를 기다린다는 것은 정신적 소모요, 시간적 소모요,
기도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주
님만이 그같이 기다리시지, 우리가 나간 자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
리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면 그토록 기
다리게 됩니다.
주님은 탕자 이야기를 하시면서 “내 아버지와 나 예수의 마음이 탕
자의 아버지의 마음과 입장과 같다.” 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과 예수
님은 그 품을 떠나간 자들이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
이 젊었을 때부터 늙어서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며 기다리
시니 돌아오면 꾸짖지 않으십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탕자가 성공하지 못하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왔지
만, 진실로 기뻐 환영하며 잔치까지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잔치까지
해 주니 탕자는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정말 내가 집에 오기를 원하셨구
나.’ 하고 더욱 가슴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정이 붙어 아버지
를 사랑하며 그 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좋은 때가 다 가서 육신을 가지고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부모로서 어쩔 수 없이 반기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집을 나간다
고 했을 때부터 나가지 않기를 원했고, 아들이 눈에서 사라졌을 때부터
아버지 품에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이같이 하십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도
신랑 된 입장에서 주님 품을 떠난 자들과 섭리사를 나간 자들을 다 그같
이 보시고 대하십니다. 아무리 자기 생각대로 살고 싶어서 주님 품을 떠
났어도 눈에 안 보이면 주님 품에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리십니다. 주
님은 그야말로 하대명년, 기약도 없는 날을 기다리십니다. 그를 구원하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선생도 그러합니다. 영을 보고 기다릴 뿐입니다.
여러분은 젊었을 때 주님 품에 돌아와서 주님의 손을 잡고 영원한 일
을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선생도 어렸을 때 주님 품에 돌아온 후부터
하루를 100년같이 귀하게 생각하면서 오직 주님만을 신랑으로 삼고 사랑
의 대상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기 때문에 어
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인생을 정말 보람차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진정 사랑하며 기다리고 계시니 주님 품을 떠난 자들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돌아와야 됩니다. 주님이 기다리시지 않
으면 돌아와도 정을 붙이고 살 자가 없으니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인이시고, 사랑의 주인이시고, 섭리사의 주인이시고 부모
되신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그 소식을 전해 주면서, 아예 주님 품을 떠
나 세상에 있는 자들과 주님 품에 있다가 떠난 자들을 데려와서 금년도
주와 같이 대역사를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주님 품을 떠나가서 탕자처럼 사는 자들이 그 얼마나 많은
지, 세상을 나가 보면 탕자들의 세상입니다. 섭리사의 탕자들도 정말 많
습니다. 섭리사의 탕자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자들도 있습니다. 이 말
씀을 들으면 정말 꿈만 같을 것입니다.
섭리사의 탕자들이나 하나님과 주님 품을 떠나 살던 자들이 돌아왔을
때, 탕자의 형처럼 “나는 집도 안 나가고 지금껏 충성하며 섭리사 하나
님과 주님 품 안에서 충성하며 살았는데, 다시 온 자들은 챙겨 주면서 나
는 왜 안 챙겨 줍니까?” 하지 말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진심으로 반
겨 주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섭리사에서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과 주님과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했던 것을 깨닫고, 다시 돌아온 자들을 기쁨으로 맞
아 줘야 됩니다. 기쁘게 맞아 주고 관리해 주고 사랑해 줘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신에 대해 모르면 누구나 시기 질투하고 서
운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날 하나님과 주님께 받은 것이 태산 같아도
자신에 대해 모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깨달아야 됩니다. 지난날
주님과 함께 즐기며 받았던 때를 꼭 깨닫고, 주님의 마음을 따라 같이 기
뻐해야 됩니다. 그래야 대부흥이 일어나 주와 대역사를 펼 수 있습니다.
선생도 주님과 한 몸 된 주님의 육신이니 섭리사 품을 떠난 자들을
그렇게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약도 없는 날을 기다리며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도 정붙이고 사랑받으면서 예전같이 주님 품에 살
수 있으니 어서 돌아오라고 전해 주기 바랍니다. (아멘.)
마지막으로 탕자에 대해 말해 주고 전초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리
고 이어서 주님이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탕자는 아버지 품을 떠나 집을 나갈 때 희망과 포부가 대단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면 아버지 품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될 것으로 생각
하고 평소부터 집을 나가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완
전히 생각을 굳히고 희망에 차서 자기 분깃을 가지고 날아갔습니다. 아버
지와 살던 집은 마치 옛 시대로 생각하고, 새 시대로 날아간다고 생각하
며 집을 나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집을 안 나갑니다. 더
좋은 생각과 구상이 있으니 기존의 것을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가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호기심과 야망과
꿈과 같지 않았습니다. 고로 현상유지도 못 하고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산
을 가지고 하루하루 먹고 쓰고 탕진하며 살았습니다. 또 세상을 보면서
그 환경에 따라 각종 향락과 쾌락을 누리며 방탕한 삶으로 인생을 즐겼습
니다. 그러니 얼마나 가진 재산을 빨리 탕진했겠습니까?
세상은 뜯어 가는 세상입니다. 도와주는 세상이 아닙니다. 그들도 다
아버지 품을 떠나가서 사는 탕자들입니다. 그들도 다 탕진하고 사는 자들
인데, 탕자가 가진 것을 쓰니 환경을 조성해 주고 사랑해 주면서 탕자가
가진 것을 뜯어먹고 같이 즐겼습니다. 세상은 가진 것을 탕진한 탕자들의
세상입니다. 신앙을 탕진하고 세상을 애인같이 사랑하며 사는 자들의 세
상입니다. 그러니까 그 세계에 가서 살면 더 빠지고 흡수되게 됩니다.
결국 탕자는 가진 것이 바닥나서 거리에 나앉았습니다. 그동안 잘 먹
고 건강했던 몸이 바싹 말라 피골상접이 됐습니다. 거기서도 더 존재할
수 없어 짐승들 수준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다가 돼지 치는 집에 가서 그
나마도 돼지 주인 몰래 돼지 밥을 건져 먹으며 살았습니다. 돼지같이 좋
은 위도 아니니 그 밥을 먹고 바로 병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돼지가 먹는
것을 먹고 사람이 영양을 유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죽자니 안 되겠고, 그
청춘에 살자니 지옥의 고통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으며 살던
자들도 세상 짐승 같은 자들이 먹고 사는 썩은 말을 듣고는 살 수가 없습
니다.
결국 탕자는 죽게 생겼으니 그제야 아버지 품을 생각했습니다. 죽음
의 단계까지 가고서야 아버지가 생각하고 있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버지 품에 돌아가야 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제
정신이 돌아와 바른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정신 나가서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죽음이 닥쳐 죽게 되었으니 본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정신을 차
리니 곧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과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패
했을지라도 다시 복직하게 되고 성공하게 됩니다. 자기 생각, 정신, 마음
은 자기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은 자기를 다른 길로 가게 합니
다. 고로 하나님과 생각이 같고 주님과 생각이 같아야 하늘 아버지 품,
주님 품으로 돌아와 살 수 있습니다.
★ 탕자는 가다가 실패했어도 아버지를 생각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갖
게 됐습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이요,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탕자는
그야말로 대역사를 시도하게 됐습니다. 탕자로서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먹는 것이 대역사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먹는
것이 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면 대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 탕자는 그 지경에서 포기하지 않고 더 세상으로 가지 않고, 또 인
생 실패했다고 투신자살도 할복자살도 하지 않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겠
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이 다시 인생을 성공하게 한 위대한 생각이었습
니다. 인생 실패했어도 재기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 마음은 오직
하나님 품, 주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 선생도 섭리사를 나간 자들이 돌아오기만을 사랑으로 기다립니다.
육신 세계에서 보이는 자로는 선생이 신앙의 부모로서 희망이기 때문입니
다. 돌아왔을 때 선생이 반기지 않으면 보이는 사람으로서 누구한테 다시
정을 붙이고 희망을 걸고 살겠습니까? 형제들은 두 번째입니다. 선생으
로부터 났으니 선생은 형제들과 다릅니다. 물론 주님이 근본이시지요. 주
님이 반가워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
다.
탕자는 집에 돌아올 때 아버지가 하나의 품꾼으로만 사용해 줘도 좋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 온 듯 기
쁨으로 대했고, 마치 대성공을 하고 금의환향하는 자식처럼 대했습니다.
잔치에 온 자들이 ‘아들이 성공하고 왔구나.’ 생각하며 대하도록 환경
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락지를 끼우고 좋은 옷을 입혀 ‘벼슬이라도 했
나?’ 하며 모두 우러러보게 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 품에 돌아와야 됩니다. 섭리사 주님 품에 돌아와야 됩
니다. 다시 돌아오면 예전과 다름없이 대해 주십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
오니 아버지에 대한 사고가 다시 살아나듯이, 주님 품에 다시 돌아오면
주님의 생각과 사고가 다시 살아납니다.
이 탕자 비유 말씀은 이 시대에 하나님과 주님 품을 떠난 자들에게도
그같이 대하시니 어서 돌아오라고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영상1>
①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나는 모습
-그때부터 계속해서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기약 없는 막연한 기다림...)
-오늘도 나가 보고, 내일도 나가 보고, 그다음 날도 또 나가 보고,
계속해서 사랑으로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설명> 둘째 아들은 자기 생각대로 잘 살아 보겠다고 하며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가지고 매몰차게 아버지 품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간 후부터 계속 아들이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밤낮으로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은 기약 없는
막연한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니 기다렸습니다.
② 아버지가 탕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피골상접한 탕자가 집에 돌아
와서 대문 앞에서 바로 만나는 모습 (아버지 집의 풍경도 같이 넣
을 것 : 초고 참고)/ 그리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잔
치를 여는 모습
<설명>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탕자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는 탕자를 끌어안고 기뻐하며 반겼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 돌
아온 듯 기뻐하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③ 큰아들이 이를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
큰아들 : “나는 그동안 집에서 그렇게 충성하며 일했는데, 왜 나를
위해서는 잔치를 안 해 주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
해서만 잔치를 열어 줍니까?”
아버지 “너는 수년 동안 나와 함께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 것 같으니 얼마나 좋으냐? 그렇게도 기다렸던
내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으니 기뻐 잔치한다.”
<설명> 참된 사랑은 끝까지 기다리며 끝까지 사랑합니다.
★ <자막> 주님의 마음과 입장도 이와 같다.
④ -섭리사를 나가 이성 사귀고, 세상 일에 빠지고, 명예에 빠지고,
각종 것에 빠져 사는 자들의 모습
-신앙의 탕자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
<자막과 설명> 사랑의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 품을 떠나간 자들이 돌
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이 젊었을 때부터 늙어서까
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며 기다리시니 돌아오면 꾸짖지
않으십니다.
⑤ 돌아온 신앙의 탕자
(주님이 너무 기뻐하시며 돌아온 탕자를 안아 주시고, 뽀뽀해 주
시고, 공중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비행기를 태워 주시는 모습)
⑥ 이 모습을 보고 그동안 열심히 한 자는 서운해 한다. : “주님, 저
는 그동안 전도도 하고 충성하며 열심히 했는데 왜 저에게는 그렇
게 안 해 주시나요? 저는 미운털이 박혔나요?”
예수님 : “너는 지난날 늘 나와 같이 먹고 즐기며 더 잘 대해 주
지 않았느냐. 생각해 보아라.”
→지난날 예수님과 같이 먹고 즐기고, 주님이 안고 다니시고, 목마 태
워 주고 다니셨던 모습
⑦ 선생님 기도하시는 모습
<설명> 선생도 섭리사를 나간 자들과, 시험에 들어 안 나오는 자들
과, 섭리사에 살면서도 세상과 이성에 빠져 사는 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삽화> 내용이 이해되게 어느 정도 보여 준 후에 설명
<자막과 설명> 자기 생각은 자기를 다른 길로 가게 합니다. 고로 자
기를 구원하지 못하게 합니다. 주님과 생각이 같아야 실패했을지라도
복직하여 성공하게 됩니다. 주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먹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대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마지막 중요한 전초 말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
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사는 자들 중에서도 ‘마음의 탕자’들이 많습니
다. 몸은 섭리사 안에 있으니 탕자가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과 주님이 보
실 때는 탕자와 같은 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마음도, 심정도, 생각도, 몸도 하나님과 주님 품 안에서 딱 붙어 살아
야 됩니다. 주님이 신랑이신데 주님과 떨어져 살면 방탕한 신부입니다.
진정 사랑하는 자는 눈 안에서 안 보이지 않고 몸도 마음도 멀어지지 않
습니다. 늘 손에 닿아야 합니다. 품속의 사랑입니다.
탕자가 평소 마음에 자기 생각을 못 버리고 살다가 결국 집을 나가게
됐습니다. 섭리사 안에 있으니 예수님께 딱 붙어서 살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마음의 탕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집안에 있는 탕자들’입니다. 주
님은 이 말씀을 전초 때 꼭 해야 된다고 하시며 말하게 하셨습니다. 전초
말씀도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말씀의 입맛이 안 맞습니다.
선생 앞에도 마음과 몸의 탕자들이 많습니다. 신앙이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그 신앙마저 탕진하니 마음과 몸이 섭리사에 붙어 살지 못합니
다. 그러니 곤고해하다가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됩니다. 선생도 주님을 모
시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왔기에 잘 압니다. 이들은 탕자가 재
산을 탕진하듯 신앙을 100% 채우지 못하고 점점 탕진합니다.
섭리사 안에 살면서도 방탕한 삶을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몸은 늘
교회에 다니지만 생활은 방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모두 돌이키고 주님
품에 온전히 돌아와야 됩니다.
신앙의 탕자들은 무엇을 보면 알겠습니까? 탕자는 옷을 보면 압니다.
거하는 곳을 보면 압니다.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압니다. 이와 같이 신
앙의 탕자들은 영의 상태와 육의 행실을 보면 압니다. 사는 위치를 보면
압니다. 주님이 보시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두 온전히 돌아와야 영과
육의 곤고와 고통을 벗어나 주님과 대역사를 하게 됩니다. 안 돌아오면
자기 영혼을 구출하지 못하고 종국에는 탕자같이 죽음의 막다른 곳에 부
딪히게 됩니다.
모두 더욱 차원 높여 도전하고 행하여 아버지 품에 근본적으로 돌아
온 탕자같이 완전히 주님 품에 들어와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깨끗케 해 주시고, 신앙의 좋은 옷을 입히시고 가락지를 끼워 주십니다.
고로 거듭나서 새 정이 들어 살게 됩니다. 그래야 남은 인생 가지고 영과
육을 구원하여 인생을 보람차게 살게 됩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전초 말씀 역시 주님께서 선생
을 통해 말씀해 줘야 할 것을 해야 되기에 길고, 또 주님이 해 주셨기에
내용이 깊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더욱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성령
의 뜨거운 역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영상2> 예수님 출현
<예수님 말씀>
나 예수의 품과 내 아버지의 품을 떠난 자들은 참으로 다시 돌아오기
가 어렵다. 자기 생각, 자기 행위, 비진리로 사는 삶은 신앙의 방탕한 삶
이다. 나 예수의 온전한 진리를 벗어난 자들도 하나의 탕자들로서 신앙을
탕진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 삶을 버리지 못하면 못 돌아온다.
그러니 나를 믿다가 나의 품을 떠나지 말아라. 나의 품을 떠나지 않
으려면 항상 나 예수가 말하듯 나를 온전하게 사랑하고 온전한 진리의 말
씀을 듣고 구원을 이루며, 나를 사랑하고 사는 삶을 낙으로 삼고 아예 딴
생각하지 말고 전심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에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세상과 나 예수를 겸해 섬길 수 없다. 이것을 더 마음에
두면 저것을 멀리하게 되고, 저것을 가까이하게 되면 이것을 멀리하게 된
다고 한 말이다. 오직 나 예수다.
전초 말씀에서 말한 대로 섭리사 안에서도 평소에 딴마음을 먹고 자
기 생각대로 살다가 결국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나가서 탕자같이 되
는 자들이 있다.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끝내 자기가 생각한 대로 행
하게 되는 것이다.
* 나 예수가 허락지 않은 것과, 나와 하나 되지 않은 생각을 모두 버
려라. 그렇지 않으면 내 눈에 안 보이고 내 사랑의 품에서 멀어진 자다.
지금 버려라. 버리면 마치 큰 죄 보따리를 버리는 것과 같다. 지금 자리
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다음 말씀을 하기도 전에 지금 버려라.
* 너희 스스로의 구상을 버려라. 너희 선생이 성지땅 자연성전의 구
상은 오직 누구라고 하였느냐. ‘구상은 오직 하나님’이라고 성전 야심
작의 돌에 깊이 새겨 놓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구상으로 해야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로운 작품이 된다.
* 하나님과 내가 성지땅을 구상하기 전에 너희 선생의 구상이 무엇이
었느냐. 앞산에 콘크리트로 일곱 계단을 만들어 스탠드로 쓰려고 하지 않
았느냐. 너희 생각대로 하는 것은 내 생각에 비해 이같이 보잘것없으며,
나와 내 아버지가 전혀 원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성지땅을 나와 내 아버
지의 구상대로 만들지 않았으면 나와 내 아버지의 구상대로 지은 작품이
아니기에 사람들이 가지도 않는다. 그러니 너희도 자기 생각과 구상을 즉
시 버려라. 내가 원하지 않는 습관과 행실을 모두 즉시 버려라. 계속 가
지고 있다가는 결국 후회할 일을 하게 된다.
너희 선생은 나 예수를 위해, 내 아버지를 위해, 너희를 위해 앞산에
콘크리트로 일곱 계단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와 내 아버지의
구상이 아니었다. 너희 선생이 나와 내 아버지의 뜻에반대하려고 콘크리
트로 계단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더 좋게 하려고 그같이 한 것이
다. 그것이 나와 내 아버지의 뜻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진행한 것이다.
그때 나와 내 아버지의 구상대로 하라고 보여 주니 그 구상대로 하겠
다고 하며 자기 생각을 버렸다. 처음에는 나와 내 아버지의 구상이 너무
엄청나니까 ‘그 많은 돌을 어디서 구해서 쌓지요?’ 하며 걱정하면서
했다. 그래도 끝까지 나와 내 아버지의 구상대로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너희는 하늘의 구상과 방법을 주면 너무 엄청나니까 걱정을 한다. 그
러나 걱정 말아라. 월명동도 걱정하면서 했지만 결국 나와 하나님의 구상
대로 하지 않았느냐. 너희도 자기 생각이 나와 내 아버지의 뜻인 줄 알고
더 좋게 하려고 하기에 자기 생각을 못 버리는 것이다.
내가 명하여 주지 않는 이상 내 생각이 아니다. 너희 스스로의 생각
이다. 혹은 사탄의 주관을 받는 생각이기도 하다. 모두 자기 생각 버려
라. 안 버리면 탕자가 된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내가 구상한 것을 받고
올해 개인과 교회가 나와 대역사를 하게 된다.
나와 내 아버지가 너희 선생에게 자연성전을 어떻게 만들라고 보여
준 것같이 지금도 나의 생각을 말씀으로 너희 선생을 통해 주고 있지 않
느냐. 나의 계시를 주었으니 걱정 말아라. 오늘 내가 주는 말씀이 너희를
구하고 잘되게 하는 말씀이니 믿고 받아들여라. 너희 선생이 나의 계시와
생각을 받아 자연성전을 개발하고 섭리역사를 이끌며 행했듯이, 너희도
하루하루 부지런히 말씀으로 나의 생각을 받아 행하여 올해 대역사를 이
루자!
<영상3>
① <자막과 말씀> 너희 생각을 죄 보따리같이 버려라.
<자막과 말씀>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다음 말씀을 하기도
전에 버려라.
② 자기 생각을 안 버린 자들 (자기 생각이 얼굴 반을 가리고 있다./
자기 생각이 뇌를 꽉 채우고 자기 생각의 방향대로 가고 있다./ 자
기 생각을 짐처럼 머리에 이고 있다./ 자기 생각을 짐처럼 무겁게
등에 짊어지고 가고 있다.)
<자막과 말씀> 자기 생각을 안 버리는 자는 죄 짐을 가지고 있는 자
들과 같다. 고로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보고, 나의 생
각을 받지 못하게 되니 인성으로 생각하고, 결국 사탄의 주관까지 받
게 된다.
③ <자막> 오직 하나님과 나 예수의 구상대로 하여라.
월명동 야심작에 새긴 글 ‘구상은 하나님’ 보여 주기.
그리고 점점 야심작 전체 보여 주며, 월명동 전체 모습 보여 주기.
④ 선생님이 하나님과 주님의 구상 받기 전에 월명동 앞산에 7층 콘
크리트 계단 쌓으려고 했던 모습 (정화정 화가가 그린 것)
<예수님 말씀> 이것이 너희 선생이 하나님과 나를 위한다고, 섭리사
를 위한다고 하며 최고로 생각한 구상이었다. 너희 선생은 더 좋게
하려고 내게 감사하며 이 구상을 실천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
는 이 구상을 원치 않았다.
⑤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전망대에서 뒷동산 쪽으로 내려오다가 앞산
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 (그때 앞산에 7층 계단 만들려고 판넬
짜고 있는 모습) “예수님, 7층 계단을 만들면 멋있겠지요?”/ 이때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현재 앞산 돌조경의 모습을 보여 주심.
→ 앞산 돌조경 쌓는 모습 → 현재의 모습
<자막과 설명> 너희 선생이 나와 내 아버지의 구상을 받아 자연성전
을 개발하고 섭리역사를 이끌며 행했듯이, 너희도 하루하루 부지런히
말씀으로 나의 생각을 받아 행하여 올해 대역사를 이루자!
나의 말을 듣고도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는 개인과 교회는 나 예수와
대역사를 할 수 없다. 자기 생각대로 하는 자는 섭리사 안에 살더라도 탕
자의 길을 가는 자로서 올해 나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 포도원에 일하러
간 자가 주인 생각대로 일해야 품꾼으로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신부라고
하면서 신랑의 말을 듣지 않고 신랑의 생각과 다르면, 그는 신부가 아니
다. 고로 같이 살지 못한다.
자기 생각대로 사는 자는 ‘자기’라는 재산을 탕진하는 자이며, 나
예수가 주는 신령한 양식을 먹지 못하고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돼지가 먹
는 음식을 먹듯이 세상 썩는 것을 먹고 살기에 결국 죽음에 이르는 단계
까지 가게 된다.
* 누구든지 나와 생각이 같아야 내 생각에서 나가는 말씀이 바로 마
음에 들어가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고, 그에 따라 행실도 변화되고, 그에
따라 영도 하늘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자기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자는
나의 말씀이 마음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 나 예수가 한 말씀을 이리저리 가려 먹는 자들이 있구나. 말씀에
독약이 섞이지 않았으니 ‘아멘!’ 하면서 싹싹 받아 먹어라. 먹고 행해
야 너희 영혼이 나의 뜻대로 더욱 살아나고 육도 영도 변화된다. 마음도,
생각도, 정신도, 행위도 모두 온전히 돌아와라. 너희 영들을 봐야 너희가
더욱 알게 된다.
허탄한 데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온전하여라. 나 예수에게 돌아와
라. 그러면 탕자의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을 진정 사랑으로 맞아 주듯,
내 아버지도 나 예수도 사랑으로 맞아 준다. 그래서 탕자 비유 말씀을 전
했다. 어찌 그 깊은 전능자 하나님의 마음과 나 예수의 깊은 사랑을 세상
글로나 말로 다 전할 수 있겠느냐.
몸이 섭리 안에 살면서도 방탕한 삶을 사는 마음의 탕자들과, 섭리를
떠나 방탕한 삶을 사는 탕자들을 어서 돌아오게 하자. 이들뿐만 아니라
나 예수와 내 아버지 하나님의 품을 떠난 모든 자들을 돌아오게 하자.
각 개인과 각 교회는 한 번 생각해 보자. 나와 내 아버지의 구원의
품을 떠난 자들을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돌아오게 했는지 보아라. 나의
생각대로 해야 하늘 품을 떠나 사는 탕자들을 많이 돌아오게 한다. 먼저
자기 마음부터 확신에 서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된다. 자기 먼저
굳건해야 신앙의 탕자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다.
섭리 안의 지도자들이 놀고 있다고 하고 사명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
이 나의 몸이 되어 행할 수 있는 황금기다. 실력이 있어서 부흥시킬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합봉된 큰 교회를 맡긴다. 늘 일꾼을 찾는데 유능한 자
들이 별로 없다.
실적이 없는 자에게는 나의 생명들을 많이 맡길 수가 없다. 그 재능
대로 맡긴다. 고로 나의 양들을 맡길 때는 지난해 얼마나 부흥시켰는지
본다. 새롭게 대역사를 하려면 지난해 얼마나 했는지 돌아보아라. 실력이
부족하면 준비하고 예비하여 더 능숙하게 된 후에 하자. 나의 양들을 맡
아 돌보는 일이니 정말 준비하여 능숙하게 된 후에 해야 한다.
1년에 수십 명씩 전도한 교회가 드물구나. 너희 선생이 할 때 얼마나
많은 자들을 전도했는지 아느냐. 내 생각대로 나의 영을 쓰고, 내 생각을
쓰고 해야 된다. 전도를 잘하는 자는 한 사람이 한 교회가 전도한 것만큼
전도하기도 한다. 목회자들이 교회를 안 맡고 1년 동안 전도만 하면
20~30명은 전도한다. 마음먹기 달렸다. 전도의 능력을 받고 전도하여
라. 올해는 대역사의 해다.
생명을 전도해 오면 교회에서 몇 배는 관리해야 된다. 어느 교파에서
왔는지 보고, 마치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형들의 근성이
남아 있는지 지혜롭게 확인했듯이 근성을 확인해 보고 대해야 된다. 잘못
된 종교에서 섭리사로 파견하여 내 양들을 끌어가려고 오는 자들도 있다.
교역자도 관리자도 모두 다 파악하여라. 새끼 때는 온순한 동물의 새끼인
지, 야수의 새끼인지 모른다. 한 명, 한 명 전도되는 대로 몇 달씩 확인
하고 양을 사냥하러 온 이리 같은 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쫓아내라.
섭리사에 들어와 다른 이론을 가르치고 다른 데 가 보자고 하는 자들
은 모두 양을 사냥하고 양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늑대다. 그들은 자기 생
각과 인본주의로 사는 자들이다. 나 예수의 이름을 쓰나, 그 속은 노략질
하는 이리다. 분별하여라. 내 말을 지켜야 한다.
나의 말을 듣고 모두 더 새롭게 변화하여 나의 품으로 가까이 들어와
라. 이같이 하면 마치 탕자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같이 전환이 될 것
이다. 나의 말을 듣고 명심하고 모두 자신들을 돌아보아라.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너희가 ‘이만하면 됐지.’ 하는 것도 나 예수가 보
면 그렇지 않다. 나의 말씀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더욱더 나의 품에 가까
이 오기를 기다린다.
평강을 빈다. 너희에게 말씀한 주 예수다.
<영상4>
<자막> 나 예수의 생각대로 하는 자가 나와 대역사를 이룬다.
① <삽화>
-왼쪽 삽화 나오며
<자막과 말씀> 자기 생각을 못 버리는 자는 나의 말씀이 제대로 들
어가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다 버려라.
-오른쪽 삽화 나오며
<자막과 말씀> 나와 생각이 같아야 내 생각에서 나가는 말씀이 바로
마음에 들어가 생각과 행실이 변화되고, 그에 따라 육도 세상에서 잘
되고 형통하고, 영도 천국의 영으로 변화되어 신부의 영이 된다. 그래
야 나와 대역사를 한다.
② <삽화>
“아멘!”
“아멘!”
“아멘!”
<자막과 말씀> 나 예수가 한 말씀을 이리저리 가려 먹는 자들이 있
구나. 말씀에 독약이 섞이지 않았으니 싹싹 받아 먹어라. 먹고 행해야
너희 영혼이 나의 뜻대로 더욱 살아나고 육도 영도 변화된다.
③ -각 교회의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 말씀> 100명, 150명 교회가 1년에 10명, 20명 전도해서 되
겠느냐.
-교회에 사람들이 불어나는 모습
<자막과 말씀> 나의 생각대로 나의 영을 쓰고 하면 된다. 전도의 능
력을 받고 전도하여라. 올해는 대역사의 해다.
④ -양떼들/ 목자가 몽둥이를 들고 지키는 모습
-목자의 눈을 피해 슬쩍 양을 데리고 가는 이리
-이때 목자가 목줄로 이리의 목을 걸고 내쫓는 모습
<예수님 말씀> 목자는 양 떼들을 지키며, 양들을 사냥하러 온 이리와
야수가 있는지 확인하고 찾아내어 쫓아내라. 내 말을 꼭 지켜라.
⑤ 예수님 인사
<예수님 말씀> 신앙의 탕자들을 내 품에 돌아오게 하자. 나의 생각대
로 해야 하늘 품을 떠나 사는 탕자들을 많이 돌아오게 한다. 먼저 자
기부터 굳건하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신앙의 탕자들을 내 품
에 돌아오게 하며 대역사를 이룬다. 사랑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