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수요말씀2011.03.02 (수)

110302 수요말씀

선포일
2011.03.02 (수)
성경 본문
마태복음 11장 28-30

첨부 파일

<2011년 3월 2일 수요말씀> 내게 와서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고 알고 살면 쉽고 가벼우리라 본 문 마태복음 11장 28-3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으로 평강을 빕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습 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고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을 살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잘 들으세요. 그러면 해결됩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오기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무거운 짐을 벗고 쉼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먼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 고 알아라. 그렇게 살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하셨습니다. 인생들은 각종 무거운 짐을 지고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해결하지 못하고 무거운 죄 짐을 지고 살고 있고, 또 각자 삶을 살면서 당하고 겪는 일들로 인하여 걱정·근심·염려의 짐과 일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들에게는 저마다 고통들이 있습니다. 앞의 장애물과 옆에 걸리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서로 존재하기 위해 가다가 서로 걸리고, 부딪히고, 누군가의 말로 마음이 밟히고, 떠밀리고, 강자들에게 눌 리고, 두려움을 느끼고 삽니다. 저마다 걱정·근심·염려·고통·고생이 없는 자가 없고, 그 나름대로 짐을 지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그동안 겪어 왔고, 지금도 이러한 짐을 지고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모두 인생 고통의 멍에를 메고 살고 있습니다. 이는 무거운 멍에들입니다. 이미 주님께 와서 무거운 멍에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근본으로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무거운 멍에를 메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고로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고통의 짐을 진 자들아. 내게로 더 가까이 와라.” 말씀 하셨습니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하려면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가까이 가야 됩니다. 인생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가야 해결받는 단계로 갈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께 정확히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께 배워서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을 알 아야 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자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십니다. 그는 겸손하시고 온유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자신도 온유하고 겸손하 게 변화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지 못합니다. 정말 주님 앞에 온유 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십니다. 자기 자신에게 교만 기가 있는지 봐야 됩니다. ‘교만은 넘어짐의 선봉’이라고 하나님은 솔로몬 의 잠언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잠 18:12). ‘교만’은 마치 운전할 때 차선을 벗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차선을 벗어나면 금방 다른 차와 충 돌하게 됩니다. 거기서 더 가면 아예 도로를 벗어나 절벽으로 가서 굴러떨어지게 됩니다. 얼마나 무섭 습니까? 섭리역사를 오면서 선생이 일을 맡겼는데 교만하여 마치 차가 차선을 넘어서 다른 차들과 부딪히 듯 사람들과 부딪히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또 차가 아예 도로에서 이탈되어 절벽으로 뒹굴어 버리듯, 섭리역사에서 이탈되어 뒹굴어 버린 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섭리사를 나간 자들은 다 교만 병에 걸 렸던 자들입니다. 자기를 중심하고 선생보다는 자기가 낫다고 하면서 더 잘하겠다고 하며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온유함으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알게 됩니다. 주님께 배워서 알게 되면 주님의 방법으로 행하니 아주 쉽게 하게 되어 쉼을 얻게 됩니다. 또 주 님께서 쉬운 방법을 가르쳐 주시니 가볍게 할 수 있고, 안 할 것을 안 하게 하시니 염려하지 않고 그 일을 하게 됨으로 그 일의 멍에는 쉽고 가볍게 됩니다. 처음 섭리사에 와서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 온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들 앞에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지만 선생에게 배운 자는 선생 대신 큰일을 합니다. 초신자들은 놀지 말고, 다른 것을 중심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배워야 됩니다. 처음 신 앙을 시작할 때 제대로 배우지 않은 자는 신앙이 약하고 어립니다.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 같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제대로 배우 지 못한 것으로 인하여 제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배우지 않아도 별 차이 를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게 됩니 다. 제대로 배운 자는 주님께도 귀하게 사용되면서,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끼쳐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 게 됩니다. 예수님은 선생을 통해 잠언의 말씀에 “겸손한 자에게 배우면 겸손해지고, 교만한 자에게 배우면 교만해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세상 사람에게 배우지 않고, 겸손하시고 온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스승이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잠언을 통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잠 3:34)”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기 바랍니다. 그래야 겸손해지고 온유해집니다. 선생에 게 배운 자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합니다. 교만하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거슬려 은혜가 안 됩니다. ★ 주님의 멍에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님의 멍에란, ‘주님 생각, 주님 심정, 주 님 마음’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운다.’라는 말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생 각으로 주님께 배운다.’라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님의 생각을 가짐으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고 알아야 인생의 짐이 가벼워지고 쉼을 얻게 됩니다. 자기가 말한 것과 행한 것이 죄인 줄 모르고 행하며 살았다면, 배우고 알고 회개하여 사함을 받 아야 죄 짐을 온전히 벗게 됩니다. 주님이 메시아로서 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 죄를 사 해 주셨는지 온전히 배워야, 주님 앞에 죄를 고하고 온전히 사함 받아 죄 짐을 지지 않게 됩니다. 주 님이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를 구원해 주신 장본인, 곧 예수님께 배워 야 됩니다. 선생은 예수님께 배우고 와서 30년 동안 가르쳐 줬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한 자는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죄 짐을 벗게 됐습니다. 섭리사에 왔으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자들은 자기 말과 행실이 죄인지, 의인지, 일상생활인지 몰라서 회개하지 않음으로 아직도 그 죄 짐을 그냥 지고 다닙니다. 선생이 주님께 배우고 와서 가르쳐 준 말씀 중에 한 가지를 잠깐 말하며,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 하여 그것이 죄인지 모르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못하고 사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의 과일을 따 먹고 죄를 지었다. 혹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법에 불순종해서 죄를 지었다.’라고 가르칩니 다. -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는 교만하고 무식한 자들에게 성경을 배우고 ‘아담 하와가 그 같은 죄를 지었구나. 그래서 그 자손들도 그 죗값을 받는구나.’라고 어설프게 알고 믿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그런데 구약 4000년이 지나고 신약 2000년이 지났는데, 나까지도 그 죗값을 받나?’ 합니다. - 그리고 ‘지금은 에덴동산의 과일이 없으니까 아담과 하와같이 과일을 따 먹고 죄지을 걱정은 없다.’ 생각합니다. → 왜 이렇게 생각할까요? 그 과일을 과일나무에 매달린 과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와’를 과일로 비유한 것을 모르고, 먹는 과일로만 생각합니다. 하와의 몸이 과일 이요, 하와의 성적 지체, 곧 금단의 열매가 과일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문자대로 풀고 가르치고 있습 니다. ★ 성경을 풀고 보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의 아담 하와에게 따 먹지 말라고 하셨던 과일이 지구 세상에 60억 개도 넘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남자와 여자의 성적 지체를 두고 말한 것으로서, 현 재 이 지구 세상에 6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지구 세상에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하 신 동산 중앙의 과일이 60억 개도 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지금도 아담 하와같이 타락하고 죗값을 받아도 모르고 삽니다. 모르니 타락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하나님을 제대로 풀지 못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풀어야 하나님과 예 수님의 마음을 속 시원히 풀어 드릴 수 있습니다. 모르는 자는 소경이요, 불구자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하나님과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모르니까 자진해서 하 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자기는 하나님과 주님을 위해 많은 수 고를 하고 많은 일을 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의 일을 하되 제대로 알고 해야 많 이 하고, 쉽게 하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이나 중심자들이나 사명자들로 하신 말씀을 누구든지 제대로 풀어야 그 말씀에 해당되는 대로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를 통해 그 시대 뜻을 펴 나가십니다. 성경에 기록하여 인봉된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모르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갈 수 없는 것입 니다. 성경에 나온 ‘밭에 감추인 보화’가 ‘성경에 감추인 진리의 보화, 곧 그 시대에 캐내야 할 보 화’로 아는 자만 성경에 감추인 진리를 캐내어 주인이 됩니다. 모르는 자는 옆의 사람이 보화를 캐서 거부가 되었어도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주님은 선생에게 성경의 보화를 캐내게 하시고 가르쳐 주게 하시어 모두 신앙의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제대로 배우고 알아서 그 보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신앙의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선생은 10대 초반부터 걱정·근심·염려의 짐, 고통의 짐, 일의 짐, 인생의 짐을 지고 인생을 살 았습니다. 선생이 이같이 말하면 듣는 자들은 “10대 초반이면 초등학교 5~6학년 정도인데, 그 나이 에 무슨 인생의 짐과 일의 짐이 그렇게도 무겁고, 무슨 걱정·근심·염려의 짐이 그렇게도 많았습니 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나이만큼 각각의 짐을 지고 일합니다. 인생을 알수록 더욱 인생의 짐의 고통을 느 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배고픈 고통, 헐벗은 고통, 일의 고통, 앞날이 막막한 고통, 현실에 찌 든 마음의 고통, 현실에 희망 없는 고통들을 무섭게 겪고 삽니다. 인생을 겪은 사람이 말해 주지 않으면 모릅니다. 고로 지금부터 말해 주겠습니다. 선생이 얼마나 인생 고통의 짐을 무겁게 지고 살았는지 압니까? 들으면 섬뜩할 것입니다. 선생은 10대 초반부터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왜 태어났지? 왜 먹어야 되지? 왜 나는 여기 산 골짝을 못 벗어나고 살아야 되지?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좋은 도시에서 태어나 뱀과 엉겅퀴가 있는 무서운 잡초 숲의 환경에서 살지 않고 아예 풀도 없고 뱀도 없는 곳에서 먹을 것을 산같이 쌓아 놓고 시장에서 마음대로 사 먹으면서 사는데, 왜 나는 뒷산에 등 기대고 앞산에 발을 쭉 뻗으면 닿을 정도 로 좁고 답답한 곳에서 태어나 살아야 되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곳 내 고향을 떠나야 된다.’ 결심했습니다. 산골짝에 살면서 그나마 가정이 화목하면 좋은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주 싸우셔서 큰소리로 화 내는 소리가 떠나지 않으니 집이 편치 못했습니다. 이것도 무거운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산골짝은 좁지만 잠자는 집이라도 크고 방이라도 넓으면 좋은데, 그나마 방도 너무 작아서 8자 방에서 7명이나 자야 하니 방에서는 겨우 잠만 잘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비가 오면 집에 비라도 새지 말아야 되는데, 비가 올 때마다 방에 줄줄 비가 새고, 빗물을 그릇에 받아도 곧 방바닥을 적시니 늘 걷어 내야 했습니다. 방에 비만 새고 말면 그래도 참고 살겠는데,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초가집 지붕이 날아가 고, 흙벽이 무너지고, 세찬 바람에 집이 무너질까 봐 자다가 방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150년 이상 오 래된 초가집이라서 많이 썩어 있기에 부모님은 항상 비바람이 불 때마다 걱정되어 마루에 나와 계셨습 니다. 그리고 비상을 걸어 모두 방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잠은 오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면 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잘 수도 없었고, 먹장구름에 날은 깜깜한데 비는 하염없이 쏟아져 공포심이 더 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날들이 지금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공룡바위 밑에 가 있으면 비가 와도 새 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쓰러질 걱정이 없으니, 비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그곳으로 비를 피하러 다니 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찬송가 494장).’라는 찬송가가 생각납니 다. 날이 새면 먹을 것이라도 배부르게 먹어야 되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쑥을 캐다가 쌀을 아주 조 금 넣고 쑥을 많이 넣어 쑥죽을 끓여서 한 그릇씩 겨우 먹었습니다. 형제 중에 한 그릇을 더 먹으면 어머니가 못 드셨습니다. 더 먹고 싶어서 미쳐 껄떡대도 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7남매가 다 양보해 야 조금이라도 더 먹을 수 있으니, 더 먹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낮에는 각각 칡뿌리를 캐 먹으려고 괭이를 들고 산으로 갔습니다. 집에서 먹 는 것을 가지고서는 모자라서 배만 올챙이같이 나오고 허벅지와 가슴에는 살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래 서 허벅지는 젓가락이고, 가슴은 새가슴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에는 허벅지에 통통하게 살이 붙은 사람들을 보고 ‘꿀벅지’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 니다. (* 해외 참고 ‘꿀벅지’ : 허벅지에 꿀을 발라 놓은 듯 통통하게 살이 쪘다는 말로 신조어다.) 선 생이 크던 때는 그런 엄청난 단어가 없었습니다. 꿀벅지 시대가 아니라 ‘새벅지’ 시대였습니다. (해 외 참고 ‘새벅지’ : 새처럼 허벅지가 얇다고 선생님이 새롭게 표현하신 것이다.) 산에서 칡뿌리를 캐서 일부는 먹고 일부는 집에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드리면, 모두 둘러앉아 서 형제들이 캐 온 칡뿌리를 찢어서 말렸습니다. 말렸다가 후에 먹었습니다. 형제들을 쳐다보면 까만 칡뿌리를 캐 먹고 사니 이빨이 노랗고 새까매서 돼지를 방불케 하니 서로 돼지라고 하면서 웃어 댔습 니다. 어머니한테도 돼지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사니 10대 초반부터 ‘인생은 왜 사는가? 왜 태어났는가? 왜 먹어야 하나?’ 생 각하고 고민하며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10대 초반 때 무슨 고통이 그리 많았는지, 이제 는 선생의 말을 듣고 모두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시골에서 살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것이 죽는 것만큼이나 싫었습니다. 작은형은 말하기를 “북한에서도 이같이는 일하지 않을 거야. 정말 일이 지겹다.” 했습니다. 그 말에 다른 형제들도 모두 맞다고 하며 구시렁거렸습니다. 그렇게도 밭을 매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나르고, 각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일해도 배가 고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일을 했으면 추수하여 곡간에 쌓아 두고 많이 먹었을 것인데,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여기저기 잡초 밭을 가꾸어 조금씩 곡식을 심으니 거둘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이같이 살다가는 굶어 죽는다. 광산에 가서 일하다가 금을 파내게 되면 모두 굶 어 죽지 않고 산다.” 하시며 타향 땅에 황금만 파내러 다니셨습니다. 그러니 가정 형편이 더 어려웠 습니다. 아버지가 통솔하여 쓰러져 가는 초가집을 부수고 집이라도 다시 지으면 좋겠는데, 선생이 26세 가 될 때까지 집도 다시 안 지었습니다. 형들은 “여기에 다시 집을 지으면 여기서 또 살게 된다.” 하며 집을 다시 안 지으려 했습니다. “걸어서 못 나가면 기어서라도 이곳에서 나가 도시에서 살아야 된다.” 하며 집을 헐고 다시 지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집을 지으려면 어느 정도 몇 푼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집에는 땡전 한 푼 없었습니다. 또 배 고파서 허기가 져서 다니는데, 그 힘으로는 집을 다시 지을 수도 없었습니다. 선생은 이러한 생지옥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 입에서는 항상 지긋지긋하다는 말이 보통으로 수 시로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이곳을 뜨는 것만이 천국이다. 이상세계다.” 하고 늘 노래 를 부르면서, 고향을 떠나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이 같은 가혹한 고통을 계속 겪으니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더 좋은 길을 찾아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을 보면 한숨만 나왔습니다. 희망도 없었습니다. 이같이 무겁고 괴로운 인생의 짐, 가난의 짐, 걱정·근심·염려의 짐, 환경의 짐을 지고 온갖 고 통을 겪고 살 때 선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인생을 창조하셨나요? 그리고 왜 빈부의 격차가 있게 하셨나요? 공평하게 살게 하실 수는 없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가진 것도 많 으신데, 인생들이 이같이 불쌍하게 사는 것을 보시면서 마음도 안 아프신가요?” 했습니다. 인생을 생각하면 한탄이 나오고, 푸념이 나오고, 곤고함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10대 초 반에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과연 인생은 무엇일까?’ 늘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참된 길은 무엇일까? 삶의 길은 무엇일까? 신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무엇일까? 하나 님은 무엇을 바라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단 말인가? 인생에게 얻을 것이 무엇인가? 동물은 예뻐하거나 잡아먹으려고 기르는데, 하나님은 뭘 보시려고 인생들을 기르시나?’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안 계신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계시는데, 사람들 이 하나님께 잘해 드려야 도와주십니까?’ 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인생이 정말 힘들어 죽고 싶었 으나 죽을 수는 없으니 하나님께 매달리며 인생길을 찾았습니다. ‘이같이 인생철학의 쇳덩이 짐까지 지고 쓰러져 기어 다니면서 마음의 짐을 지고 살고 있는데, 하나님도 계시고 사랑의 예수님도 계시는데 왜 안 도와주시나?’ 하며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생각했 습니다. 그러나 신은 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예수님을 불러도 답이 없고,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답이 없었습니다. 결국 ‘공 부해서 살 길 찾자!’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성경을 뒷전에 두고 세상 책을 가지고 공부하러 다리골 기도굴로 갔습니다. 가정 형편이 안 되니 학교에 가서 배울 수가 없었기에 세 상 책을 가지고 조용한 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책을 보며 공부해도 깊은 뜻이 없었습니다. 세상 지식은 인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못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해결해 주는 길이 곧 인생이 해결되는 길이었기에 그 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뒤에 제쳐 놓았던 성경을 다시 꺼내어 읽었습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때 이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이 성경 구절을 읽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나 요?” 했습니다. 이때 ‘말씀대로 하면 된다.’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깊은 기도를 할 때 예수님이 흰옷을 입고 내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대로 해 주겠다고 하시며 “내게 인생을 배워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내게 배우고 행하면 해결된다.”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깊이 기도하면서 주님께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하나하나 배우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배우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우고, 각종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석 달씩 주님께 배우는 가운데 어느새 걱정·근심·염려의 짐, 먹고 입고 사는 생활의 짐, 인생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렇다고 밥이 생긴 것도 아니고, 새 집이 생긴 것도 아니고, 옷이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인생을 왜 사는지 걱정·근심·염려·번민이 사라지고, 마음의 무거운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죄’에 대해 배우고, 과거에 죄로 생각하지 않은 것들까지 모두 메시아이신 예 수님께 회개해야 됨을 깨닫고 죄들을 회개했습니다. 결국 죄의 짐도 벗어 버리게 됐습니다. 예수님께 성경을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마음과 그 심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 배운 것이 너무 많아서 그 엄청난 것을 오늘 다 말할 수도 없습 니다. 그 후 굴에서 나와 계절 따라 산에 여는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았습니다. 산머루, 산포도, 다래, 으 름 열매를 따 먹으며 살아도 주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따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내 인생이 불행하다 고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게 되었고 3년 후 귀국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나의 말씀으 로 옛 주관과 기성 주관권에서 벗어나듯, 옛집도 때려 부수고 새 집을 지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래서 150년 된 초가집을 부수고 함석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때부터 노방전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 로 와라.”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외치고 다녔습니다. 병든 자, 가난한 자, 거지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고 기도해 주며 주님과 같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더 깊이 성경을 배웠습니다. 먼저 배우고 알아야 하나씩 해결됐습니다. 20년 동 안 배웠습니다. 주님은 선생 한 명을 데리고 섭리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준 복음을 전하여라. 지금 이때다. 전하면 많은 생명이 돌아온다.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주님 이 하시니 시대 복음은 점점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같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여러분들도 주님 앞에 가까이 와서 배우고 꼭 근본의 문제를 해결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진 사람들은 예수 님께 바짝 와야 됩니다. 더 가까이 바짝 와서 주님의 멍에를 지고, 곧 주님의 생각을 가지고 주님께 배우고 알아야 됩니다. 제대로 배워서 온전한 진리를 알고, 성경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과 성 령님도 알아야 됩니다. 선생은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 앞에 가까이 가서 주님의 멍에를 지고 주님께 배웠습니다. 주님께 인생을 배우고 인생에 대해 알고 행하니 주님 말씀같이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웠습니다. 인생의 죄 짐을 완전히 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짐은 가볍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배우고 알고 행하면 가볍고 쉽다.” 하셨습니다. 인생의 죄 짐은 벗 어야 합니다. 그러나 삶의 멍에는 벗으면 죽는 날입니다. 삶의 멍에는 더 가벼워지고 쉬워질 뿐입니 다. 모두 선생같이 주님께 가까이 감으로 보다 사망권의 무거운 짐을 벗고, 회개함으로 죄의 짐을 완 전히 벗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고 알고 행하여 주 님의 뜻대로 쉽고 가볍게 인생 살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와서 이미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말씀을 배움으로 구시대 무거운 짐을 벗었 습니다. 주님께 성경을 배우고 아담 하와가 지은 ‘원죄’가 무엇인지 알고, 그 무서운 죄 짐을 회개 하고 벗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또 이 시대도 아담 하와 같은 죄를 범치 말라고 주님이 말씀하시어,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회개하게 하여 그 무거운 죄 짐을 벗어 버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아담 하와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계속해서 그 죄를 지음 으로 그 영혼이 육과 함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도 모르고 삽니다. 성경을 풀고, 하나님을 풀고, 성령님을 풀고, 예수님을 풀고 가야 시대의 온전한 구원을 받고 주 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모르는 자들은 못삽니다. 신앙 세계에서도 모르면 신앙 이 가난하고 못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8절을 보면, 예수님은 신앙의 병들을 고치고 치료하여 신앙도 부유하게 살라고 사도 요한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육신도 가난하고 영도 가난하면 정말 억울합니다. 신앙의 부자가 되면 심령의 부자가 됩니다. 심령의 부자가 되면 마치 육신이 부자가 된 것같이 영이 부귀영화와 낙을 누리게 됩니다. 모두 그동안 말씀을 배웠지만 섭리 교리만 배웠지, 배운 것을 하나하나 다 실천하지는 못했습니 다. 그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도에 대하여 배우고, 전도하면서 전도에 대하여 배우고, 관리하면서 관리에 대하여 배우고, 말씀에 따라 살면서 각각 그 말씀에 대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선생의 정신과 생각의 멍에를 메고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배우고 행하면 훨씬 가볍게 쉽게 잘됩니 다. 선생은 주님께 배웠기에 선생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다. 즉 주님께 배운 선생의 생각대로 하면 쉽고 가볍다는 것입니다. 늘 선생에게 묻고 행하는 자가 누구인지, 누가 신앙 인생 날면서 사는지 보 기 바랍니다. 그는 선생에게 늘 묻고 내 멍에를 메고 내게 겸손히 배우는 자입니다. 선생과 함께 하면 쉽습니다. 이는 선생이 주님께 매일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히 내게 배 우고 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자기 식으로 하여 옆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교인들을 힘들게 합니다. 주님과 선생에게 안 묻고 하는 자들은 발전이 없고 인성으로 하게 되어, 모두 쳐다보며 저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선생에게도 편지를 보냅니다. 조금 하더라도 주님의 방법으로 해야 많이 한 것이 됩 니다. 주님과 선생이 일을 맡기면 몇 달 동안 그 일만 하다가 안 되면 그제야 묻는 자들이 많습니다. 또 한두 번 묻고는 그냥 자기가 알아서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묻는 것 자체를 버거워하고 힘들어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인생들은 너무 쉽게만 답을 찾으려 합니다. 1년 동안 자기 나름대로 뛰다가 1년이 지나서야 묻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쉽고 가벼운 멍에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편지 한 장에 운명이 좌우되기도 했습니다. 보물은 캐는 자만 압니다. 주님과 선생에게 묻지 않고 배우지 않고 하면 자기도 손해, 따르는 자들도 손해입니다. 또한 크 게 될 자가 작은 일만 하다가 인생 끝나고 말게 됩니다. 선생에게 묻지 않는 자에게는 사명을 맡길 수 가 없습니다. 사명 맡겼다가 자기 마음대로 하여 생명들을 딴 길로 인도하면 큰일 나기 때문입니다. 늘 묻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자는 어떤 일을 하든지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습니다. 고로 큰일을 맡겨 도 안심입니다. 묻고 행하면 거목이 될 인생인데, 묻지 않고 행하여 잡목에서 베임을 받아 작은 목재 로만 쓰이고 끝납니다. 한국의 장년부 권사들 중에서 선생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며 뭉쳐 다니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 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십니다. 선생에게 묻지 않고 하니 사탄이 계시합니다. 주님이 “섭리의 중심과 의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계속하니 나의 계시는 끝이다.” 하십니다. 예수님이 선생을 통해 몇 번 이나 편지를 해 주었는데도 선생에게 편지 한 장 안 보내고 계속해서 자기들끼리 뭉쳐서 선생을 위해 기도한다고 합니다. 교회마다 이에 속한 자들 있을까 봐 걱정되니 교역자들은 확실히 가르쳐 주기 바랍니다. 그러다 가 계시파가 되겠습니다. 권사들도 집사들도 그런 행위를 즉시 끊기 바랍니다. 권사님들이 제대로 해 야지요. 섭리사는 나이로 가는 것 아닙니다. 오직 주님 뜻대로 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주는 계시를 선생에게 허락받지 않고 몇 명이 모여서 전하는 자들이 있기에 말하는 것입 니다. 그 계시의 내용을 들어 보니 “선생이 언제 나온다. 선생이 언제까지는 나와야 하니 너희는 따 로 모여 선생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 합니다. 모두 헛계시입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이 언제 나갈 것이라고 계시를 받았는데, 이미 그 날짜가 지난 것도 있습니다. 거짓과 주관적 계시 그만 받고 속지 말라고 해도 자꾸 하고 있습니다. 선생이 주님 계시 받으라고 했 지, 언제 사탄 계시 받아서 계시파가 되라고 했습니까? 선생에 대한 계시를 주님께 정상으로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고 선생이 확인해 준 그 계시만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사탄은 모르는 자들에게 헛계시를 주면서, 다른 자들이 받은 계시는 틀린 것이라고 합니다. 완전 사탄들입니다. 계시받는 자들은 성경을 중심해서 정확히 받습니다. 사탄 계시를 받은 자들은 선생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 기도해서는 주님의 계시를 못 받습니다. 순 종하지 않으면 주님도 선생도 계시를 안 줍니다. 선생은 밤마다 영계에 가서 무거운 죄의 짐을 진 자들과 인생의 짐을 진 자들을 보고 확인합니 다. 확인하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옆에 가셔도 못 보고 주님을 가장한 사탄의 계시를 받습니다. 다 끊어야 됩니다. 모두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을 따르지 말아요. 나이 먹었으면 중직자로서 교회 일에 도움이 되어야지요. 말씀을 듣고 모두 온전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선생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주님께 가서 주님의 멍에를 메고 20여 년간 겸손히 주님께 배워 무거운 짐을 벗고 인생을 쉽게 살아오면서 시대 섭리를 펴 온 간증을 했습니다. 선생이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멍에를 지고 인생을 쉽게 살면서 시대 섭리를 펴 왔기에 긴 말씀을 하며 선생 간증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그렇게 살라고 이 시대에 표상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축소해서라도 작게라도 선 생같이 해야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인생을 배워 쉽고 가볍게 살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영상4> 예수님 출현 <예수님 말씀> 너희가 보고 듣고 너희 선생같이 하라고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게 하였다. 그같이 하면 너희도 무 거운 짐을 벗고 쉬운 방법으로 인생을 살게 된다. 이제 나 예수의 말을 들어 보아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그리하면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가 쉼을 얻으리라.” 하였다. 이 말씀은 메시아로서 나 예수가 온 인생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씀이 너희 인생의 길이요, 인생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너희들을 구원하는 말씀이다. 오늘은 초신자들과 지금까지 나 예수를 믿고 좇으며 시대 말씀을 듣고 배우며 온 자들 모두에게 이 말씀을 해 주며 각자에게 계시하였으니 다시 듣기 바란다. 이 시대에 살면서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나 예수에게 와라. 아주 가까이 와라. 너희 생 각과 마음의 멍에, 고통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나 예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나 예수는 전능자 로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게 배워라. 배우고 알아라. 내게 배워 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선이 어떤 것인지 알고, 이 시대에 내가 보낸 사명자가 누구 인지 알고, 나 예수가 지금 이 시대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라. 배우고 알아 죄를 회개하고, 너희 인생의 걱정·근심·염려의 짐을 다 벗어 버리고 나의 멍에를 메라. 나의 멍에란,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너희는 나의 멍에를 메고 이 시대에 나를 맞기 위하여 나의 사랑하는 신부로서 예비하고 준비하 여라. 나 예수가 신랑으로 오면 신부로서 나를 맞도록 온전히 예비하여라. 또한 이 시대 나의 복음을 전하여 생명들을 구원해 주어라. 너희는 내가 보낸 자를 통해 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의 일을 하는 자들이 되었다. 아직도 나의 멍에를 제대로 메지 못하고 행하는 자들이 많고 많다. 다시 나의 멍에를 온전히 메고 시대 나의말씀을 듣고 배워라. 꼭 그리해야 변화가 일어나서 인생을 쉽게 살게 된다. 너희 선생같이 내게 더 묻고 하여라. 너희 선생은 하루에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매일 묻고 행 한다. 개인 일, 너희가 선생에게 묻는 말, 계시들, 결재할 것들, 말씀들, 앞날에 대한 것들, 현재에 일 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내게 묻는다. 또한 너희들에 대해 알고 기도해 주려고 그 많고도 많은 자들을 놓고 기도하며 내게 묻는다. 어떤 자는 왜 자기에게는 큰 교회 안 맡기고 항상 맡기는 자에게만 맡기느냐고 말한다. 그리 말 하지 말고 구하고, 배우고, 알아라. 그러면 큰 교회를 맡기지 않겠느냐. 내게도 구하고, 너희에게 일을 맡길 자에게도 구하여라. 너희 선생에게 진정 구하고 진정 배우려고 하는 자가 그 많은 자들 중에 몇 명이나 있었느냐. 지난날 자기가 행한 것을 돌아보면 결단코 속이지 못하지 않느냐. ‘상황 때문에 그 랬다. 물었는데 답이 없으니 못 했다.’ 핑계치 말아라. 얻지 못한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알아라. 알려면 첫 번째로 배워야 한다. 배워야 알게 된다. 나 예수의 방법대로 배우고 해야 쉽게 할 수 있다. 또 알게 되니 필요 없는 기도를 안 하게 되고, 필요 없는 일도 안 하게 되어 걱정하지 않게 된다. 또한 죄에 대해 배우면 죄를 아니 죄를 안 짓게 되고, 죄를 지었으면 회개하게 된다. 항상 어느 시대든지 몰라서 망했고, 알았어도 마음을 고치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여 망하게 되었 다. 모르고 행하니 그 시대 민족의 멍에가 무거웠고, 개인도 섭리사도 그러했다. 모르는 무지가 세상 을 뒤덮었다. 너희는 내게 배워 무지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려라. 인생들이 나 예수를 안다고 하나 이름이나 알고, 구세주라는 것만 알고 산다. 지구 세상에서 나 예수를 온전히 알고, 진정 믿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자들이 얼마나 되겠느냐. 나 예수를 믿되 제 대로 알고 믿는 것이 크고도 크다. 그러한 자만이 온전한 변화를 이룬다. 그러니 나 예수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 주는 자가 얼마나 크겠느냐. 그는 사명이 큰 자요, 귀한 자요, 내가 귀히 쓰는 자다. 너희 선생도 그 마음과 심정을 아는 만큼 사명을 주지 않느냐. 나도 그러 하다. 나에 대해 안다고 하나 실상 아는 자가 얼마나 되느냐. 기성인들이 이 시대를 아느냐. 나 예수를 어떻게 맞는지, 나의 재림을 어떻게 맞는지, 이 시대에 어떤 말씀을 듣고 어떻게 예비하고 나를 맞을 것인지 세상에 아는 자들이 얼마나 있느냐. 나 예수에게 배운 자가 가르쳐 주어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나의 멍에를 메고 겸손히 배워라. 배우겠다고 마음만 주고 시간만 준다고 금방 배워지느냐. ★ 이 시대의 뜻을 배우려면 그 같은 위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말씀대로 행하며 살면 그 말씀을 준다. 그래서 처음 성경의 인봉을 떼기가 어렵고, 말씀의 근본을 배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너희 선생은 그 고통을 당하면서도 수십 년 동안 내게 배웠다. 또 말씀대로 그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았다. 먼저 기도하게 하였고, 먼저 구하고 찾게 하였고, 먼저 문을 두드리게 하 였다. 그리고 그 단계의 삶을 살게 하였다. 그렇게 했을 때 그 단계의 말씀을 주었다. 너희도 내게 배 우되, 나의 말씀대로 그같이 살면서 배워야 한다. 나의 멍에를 메고 배워야 너희 인생의 짐이 쉽고 가벼운 것이다.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 계시들은 꼭 너희 선생에게 분별받아라. 나는 아무에게나 계시를 주지 않는다. 합당한 자들에게 계시를 준다. 그리고 그 계시를 너희 선생에게 보내게 하여 모두 점검하게 한다. 자기 주관적인 계시 와 사탄의 계시를 분별하고 쪼개 내기 위함이다. 너희끼리 모여서 계시를 받고, 확인받지 않은 것인데 서로 말하면 안 된다. 나 예수가 너희 선생을 통해 말했다. 사탄의 계시를 받지 말고 나의 말을 지켜 행하기 바란다. 그 누구도 나의 말을 지키지 않으면 사탄의 계시를 받는다. 사탄은 나 예수를 가장하고 99% 옳은 말 을 한다. 그리고 1%를 속인다. 나의 계시는 100% 온전하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내가 준 것이 아 니면 사탄이 준 것이요, 자기 주관적 생각이 들어간 것이다.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아서 사탄이 계시 를 주는 것이다.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고 천사의 꼬임으로 거짓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의 말을 들은 아합 왕이 어 떻게 됐는지 아느냐. 아합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한 천사가 선지자들에게 가서 그 들을 꼬여 좋게 계시를 해 주어 아합 왕이 전쟁에 나가면 이긴다고 했다. 미가야 선지자는 이 모든 것 을 알고 있었으나, 아합 왕은 끝내 그 말을 듣지 않고 천사의 꼬임으로 거짓 계시를 받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전쟁터에 나가서 결국 죽고 말았다(역대하 18장). 순종하지 않으면 천사도 꼬여 헛계시를 받게 한다. 사탄도 그러하다. 고로 너희 선생은 계시를 안 봐도 계시받는 자가 말씀에 순종하고 받는지, 나 예수가 말한 대로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보고 계시를 분별한다. 계시가 같은데 무엇으로 분별하겠느냐. 말씀에 순종하고 받은 계시인지를 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한다. 내가 순종하고 받은 계시를 인정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탄은 숨기고, 피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끼리 모이게 한다. 그들은 비밀이라고 하면서 자기들 끼리 모여 나 예수에게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전하나, 나 예수에게도 비밀이냐. 사탄의 비밀인 것이 다. 모두 다시는 하지 말아라. 너희 영혼이 사망으로 가면 나 보고 “주여. 주여.” 하며 나를 불러도 순종하지 않은 연고로 “나는 너를 모른다.” 한다. 나의 심정을 상하게 하면 자신만 손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라.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배우고 알고 외쳐 라. 그래야 듣는 자도, 전하는 자도 내 말을 듣고 알고 행하니 멍에가 가벼워진다. 모두 나의 말과 내 가 너희 선생에게 가르친 말을 온전히 배우고서 가르치고 외쳐라.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너희 마음이 무겁게 된다. * 단상에 서는 자들과 갖가지 집회를 다니는 자들은 내게 배운 것만 외쳐라. 계시자들은 계시받 고 너희 선생에게 허락받은 것만 외쳐라. 간증 집회나 기타 집회를 다니는 자들은 너희 선생이 어떤 것을 외쳐 주라고 허락한 것만 전하여라. 공적인 자리, 나 예수의 단상에 오르는 자들은 자기 사사로 운 말이나, 자기중심적인 말이나, 형제에 대하여 함부로 여기저기 빗대서 하는 말이나, 은혜롭지 않은 말들은 모두 금하여라. * 올해는 성령집회를 통해 부흥강사를 통해 더욱 말할 테니 모든 집회는 오직 성령집회에만 집 중하여라.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교회 자체 성령기도회에 참여하여 기도하여라. 너희가 스스로 자신 을 깎고 다듬으려면 너무 힘들다. 마치 용광로에 쇠를 녹여 동상을 뜨듯이, 성령의 불로 녹여서 너희 영혼을 새롭게 거듭난 영으로 떠 내야 된다. 육신도 성령의 불로 온전히 녹아져야 새롭게 된다. 아직 성령으로 녹아지지 못한 자는 다른 자를 녹이지 못한다. 그들의 소리는 지식의 소리, 한낱 경험의 소 리, 한낱 상식의 소리들에 불과하다. 근신하여라.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해 주면 그 사람에게 일시적으로는 좋은데 나 예수에게는 안 좋다. 오 직 온전한 말씀으로 나 예수를 증거하고, 섭리사를 증거하고, 너희 선생을 증거하여라. 자기 차원의 경험으로만 증거하고, 자기 수준으로 보고 들어 왔던 대로만 증거하면 되겠느냐. 자기부터 변화를 이 루고 성령의 눈으로 다시 보고, 성령의 귀로 다시 듣고 온전히 알고 증거해야 된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내 말대로 인생의 멍에가 쉽고 가볍게 되리라. 누구를 중심하여 어떻 게 땅에서 나의 역사를 펴 왔는지 알고 증거해야 된다. 너희가 너희 선생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 어떻 게 고생하며 역사를 펴 왔는지 몰라서 딴 길로 너희 식으로 펴 간다. 섭리역사는 새롭게 시작한 생명의 새 역사다. 하나의 기성 교회가 아니다. 제대로 증거하는 만큼 큰 역사가 일어나고, 제대로 증거하는 만큼 알고 배워 자신감이 솟아나고, 제대로 배우고 증거하는 자 는 나의 멍에를 진 자로서 인생 삶이 쉽고 가볍다. 인생을 쉽게 살라고 너희를 가르친 주 예수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