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1.03.16 (수)
계시말씀 46d007b9
- 선포일
- 2011.03.16 (수)
- 성경 본문
- 밤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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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6 계시말씀_46d007b9.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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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고백과 믿음
작성일: 2011. 2. 3 (목) 밤 12:20
작성자: 주은혜 (부산 주향기로운교회)
〔며칠 전 기도할 때 주님께서
주님의 눈을 자세히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눈동자를 자세히 보니 주님의 눈동자 안에
저도 비쳐 보였고, 지구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를 물 위로 데려가시며
한번 걸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빠질 것 같았으나 주님이 ‘내 눈만 보고 걸어오면
된다.’
하셔서 주님 눈만 보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이치도 이와 같다.’하시며
베드로가 어땠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고,
오늘 다시 말씀해 주셔서 정리하게 된 글입니다.〕
* 예수님 말씀 *
물 위를 걸은 베드로를 생각해 보아라.
내 사랑아.
그가 처음 물 위에 발을 내디딜 때 그는 굳센 믿음
으로,
나를 향한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물 위를 걸었다.
그의 눈엔 신령함이 빛났으며
영성으로 나를 보았기에,
나와 함께 물 위에 서 있었다.
베드로에게 그랬듯이
세상의 풍랑과 파도와 인생의 우여곡절은 늘 너와
함께한다.
사탄은 언제나 집어삼킬 듯 너를 따라다니고,
인생의 굽이진 산은 언제나 너를 넘어지게도 지치
게도 한다.
산세가 험한 산일수록
그 산이 깊고 웅장하고, 오묘하며 신비로움이 있듯,
작품이 될 인생은
깊은 괴로움과 고통이 수없이 교차한다.
그러한 인생일수록 주 예수의 눈을 바라보고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나를 바라보고 나를 시인하는 믿음과 확신으로
너를 삼킬 듯한 물 위를 걷는 것이다.
나의 수제자 베드로는 나와 같이 되어 모든 것을
주관하며
마음이 온유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자였다.
하지만 마음의 온유와 평화는 성삼위로부터 오는
것,
영의 눈을 뜬 신령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만물을 주관하고 그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나의 제자 베드로도 처음에는 미흡했다.
나와 함께 물 위를 걷고자 하였으나
세상의 풍랑에 빠질 뻔도 하였고,
무지한 자들의 질문에 흔들리기도 하였으며
나에 대한 확신이 무너져 내리기도 하였다.
마음이 흘러가는 물과 같이 기우는 대로 흐르고,
따르는 대로 그 모양이 되는 자였다.
베드로가 나를 끝까지 사랑하고 나와 함께하며
나를 믿고 확신하며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백 때문이었다.
처음 베드로를 만났을 때, 그는 나를 몰랐다.
나 ‘주 예수’를 몰랐다.
내가 선생임을 알았고, 내가 대단한 자임은 알았으
나
인생의 스승이며, 인생의 주인임을 몰랐다.
나는 그를 보며, 그의 눈을 보며 말하였다.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물고기들을 건져라.
그는 행하였고, 나의 말대로 만선이 되어서 돌아왔
다.
그 순간 베드로는 나에게 나아와
스스로를 죄인이라 시인했다.
그 고백의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베드로의 고백은 성령에 취하여
자신의 부족과 죄를 들고 신 앞에 나온
인류를 대표한 고백이요,
자신의 인성을 걷어내고 마음으로 나를 보기 위한
첫 걸음의 고백이었으며
스스로 나를 판단하고 바라보았던
양심의 고백이었다.
그 고백으로 인해 그는
나의 제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는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자신이 부족함을 알며,
자신이 나약함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나약한 자의 예수요, 죄인의 예수요,
부족한 자의 예수요, 가난한 자의 예수요,
멸시받고, 버림받은 자의 예수요,
고통 속에 거하는 자의 예수요,
슬픔 속에 몸부림치고 환란과 어려움 속에 울고 있
는 자의
예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그 고백이
‘나는 부족하니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세요.’라는 고백과 같은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인류는 시대의 죄 속에 거하면서도
자신은 결단코 죄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다.
인간을 그 어느 것보다 우위로 생각하는
그 우월주의는 지금도 여전하다.
너희 인간들의 나약함과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삼위는 그 인간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없다.
삼위가 인간에게 손 내밀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단코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듯,
물질과 환경의 지배를 이룰 수 없게 된다.
베드로는 처음에
나를 완전하게 앎으로 나를 따르고 믿고
사랑했던 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앎으로 나를 따랐고,
나에게 배우고자 나를 따랐으며,
스스로 인간이 되고 싶어서 나에게 가까이 나아 왔
다.
그로 인해 나를 배우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으며,
믿고 확신하고 전할 수 있는 사도가 되었다.
이 시대, 베드로의 그 고백과 믿음을 배워 보아라.
베드로처럼 스스로를 나약하다 생각하지 않는 자,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고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성삼위 앞에 설 수 없는 자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물 위를 걸어라.
내가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 보아라 했듯
너희는 나를 끊임없이 믿고 따름으로
나의 능력을 받아 물 위를 걸으라.
내 사랑으로 능력되어 역사함을 일으켜라.
그 누가 너희의 발목을 잡아도,
인생을 흔드는 풍랑이 와도, 악인이 죽이려 해도,
너희의 생각이 너희를 넘어뜨리려 해도
너희가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나를 찾고 부름으로
나에 대한 확신과 믿음으로 너희를 지키면
이길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부족함을 인정하여 나를 찾고 간구하는 곳에
내가 거하기 때문이다.
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자의 손에
신의 손은 이미 거하여 그를 붙잡고 있음을 알아라.
자신의 마음을 신 앞에 세운 자는
이미 그 마음 가운데 신이 함께하고 있음도 알아라.
물 위를 걸으라는 나의 말을 지금 이 시대도 지켜
라.
너희가 정녕코 물 위를 걷고자 한다면
나의 푸르른 눈을 보아라.
나를 향한 마음을 열어라.
그리고 나의 역사를 확신하고
내가 행하도록 너의 마음을 비워라.
그러면 너희는 결단코 물 위를 걸을 것이다.
내 사랑아, 모든 것은 스스로를 시인하고,
나를 향한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걷는 것이요, 믿음으로 기적을 행하는 것
이다.
신이 온전히 쓰는 육신은 결국 신의 육신이 된다.
신의 육신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며
신의 육신으로서 신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한 삶이 되어라.
섭리 신부들, 기적의 사람들이 되어라.
나를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기적을 이루며, 기적이 열매 맺게 하여
베드로와 같은 수제자가 되어라.
나는 정녕 베드로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는 자신의 부족을 나로 인해 채웠고
자신의 사랑의 갈급함을 나로 인해 채웠으며
나를 바라보기를 쉬지 않은 자였기 때문이다.
너희도, 나를 붙잡음을 놓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바라봄을 놓치지 않듯,
나의 시선이 늘 너를 따르듯,
너희도 너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
나를 놓치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아, 정녕 할 수 있기에 말했다.
물 위를 걷는 기적은
구시대, 신약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 호흡하는 모든 자들이
나로 인해 일으키는 기적이요,
나로 인해 역사가 되는 일들이다.
나를 잊지 말아라.
나의 눈에 네가 담겼듯
너의 눈에 내가 담기길 간절히 바란다.
사랑한다. 진정 뜨겁게 사랑한다.
사랑해.
사랑과 은혜의 주 예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