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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말씀2011.03.19 (토)

2011년 3월 19일 전국 가정국 LTC 말씀

선포일
2011.03.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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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가정국 지도자 LTC 일시 : 2011년 3월 19일 말씀 : 정조은 부흥강사 장소 : 월명동 문화관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 날씨도 아주 따뜻합니다. 가정국들이 모인다고 하니까 주님께서 모처럼 따뜻한 날씨를 오늘, 3월 19일, 주시네 요. 오늘은, 오면서 차창을 열어보니까 바람까지 따뜻하더라고요. 정말 봄바람이 불고 추위가 싹 가시고 움츠렸던 몸이 자 연스럽게 펴지게 되는 행복하고 따사로운 날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따사로운 주님의 은혜가 임해서 스스로 결심하고 더 불을 받고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기를 진실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은 선생님께서 말씀을 해주신다고 하니까 우리 5기뿐만 아니라 7기 가정국까지 같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의 미 있는 날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시동을 걸고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항상 모든 일에 제일 첫 번째로 시동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그것이 힘들다.” 말씀하셨습니다. 가정국 모임, 이곳에 제가 왜 왔느냐하면, 선생님께 서 오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왔습니다. 외롭게 여러분들만 진행했던 LTC가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같이 하자고 말씀하셨습 니다. ‘같이 하면 좋다.’ 같이 하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시고, 늘 함께 하시는 선생님이 십니다. 오늘은 더 특별히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LTC모임을 오늘 3월19일로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그 런데 역시 아무리 하늘이 허락하셔도, 하늘이 축복해 주셔도, 우리가 간구하고 구하면서 함께 시동을 걸고 함께 움직이시 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시고 선생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함께 움직이면 불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귀한 말 씀, 긴 말씀이 아니더라도 한 말씀만 가지고서도 여러분에게는 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 말 씀인지, 긴 말씀인지 이 말씀은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늘 중고등부한테 말씀을 전할 때는 시간을 알려줍니다. 왜냐면, 아이들은 못 견뎌요, 시간을 모르면 못 견딥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은 깊이 빠져드는 맛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주님의 말씀이 ‘긴 말씀일까? 짧은 말씀일까?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주실까?’ 기대하시면서 주님 사랑 그리고 선생님 사랑에 빠져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모임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선 배가정국, 그리고 5기가정국, 7기 가정국의 섭리를 열심히 뛰고 달리는 그런 귀한 지도자들이 모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곳가운데 주님 온전히 역사하여 주셔서 다시 부족한 것은 채워지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결심하지 못했던 것은 결심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힘들었던 모든 것이 다시 쌓아지고 이루어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 시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저의 입술을 주님 주관하여 주시어서 주님의 심정, 선생님의 심정을 나타내시리라 믿사오며, 듣 는 모든 자들의 마음에 성령의 뜨거운 마음 그리고 충만한 마음, 평안한 마음을 주셔서 이곳에서 힘든 것을 풀고 가고 또 사랑의 마음을 찾고 은혜를 찾아가는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사탄, 마귀 틈타지 않게 지켜주 시옵소서. 주께 맡깁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가정국이 모인다고 하기에 오랜만에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내가 직접 못 가니까 조은 목사를 보냈습니다. 오 늘은 나의 이야기도 한 번 들으면서 주님께서 조은 목사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도 들어보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부모가 되고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배우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이 삶은 또 다른 차원의 시작입니다. 그 전에 나 하나를 책임지고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면서 무엇인가 기반을 마련할 때와는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자기 한 사람 을 챙기면서 살았을 때보다 의식의 생각, 의식의 차원, 삶의 생각 자체가 차원이 달라져야 되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삶 입니다. 삶이 성장하는 만큼 생각도 그와 같이 차원에 따라서 성장하지 않으면 제대로 인생을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를 이룹니다. 수십 번의 변화를 이루고 수백 번, 수만 번의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이라는 것입니다. 성장! 사람은 성장의 변화를 이루면서 그에 따라 책임을 갖게 되고 또 책임을 맡음에 따라서 의무감이 생기게 됩니다. 성장하면서 책임과 의무가 따르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나 하나만 책임지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책임지지 못하면 부모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성장해서 부모가 되면 자식이 하지 못한 것까지 부모가 책임을 져줘야 하 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갖게 됩니다. 한마디로 어깨가 묵직해집니다. 이 어깨의 묵직함을 어떻게 해결할까? 선생님께서 이 런 말씀을 하셨죠. “인생의 짐을 벗어버리려고 하면 못 산다. 그건 안 된다.” 삶의 굴레는 벗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죗짐 은 벗어버리되 삶의 짐은 주님과 함께 하면서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짐을 벗는 순간 인생을 그냥 마감하게 되는 거 죠. 이렇게 어깨가 무거워지고 책임이 무거워지고 이 모든 것을 거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거스르려고 하면 할수록 삶은 힘 겹게 됩니다. 오히려 고통스럽고 어렵고 혹은 남의 탓을 하기도 합니다. ‘왜 내가 이 사람이랑 결혼했을까?’ ‘내가 자식을 낳았는데. 왜 내 자식은 이럴까?’ ‘나는 섭리에 와서 그렇게 열심히 뛰었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계속 탓! 탓! 탓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낙심을 할 수도 있죠. 계속 삶이 힘겨워지죠. 내가 성장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성장한 것에 따라 책임 이 생기고 의무가 생기고 그만큼 변화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능력이 오게 됩니다. 힘이라는 것이 오게 됩니다. ‘아, 이것은 내가 해야 될 것이 아닌데 내가 했구나.’ 생각하게 됐을 때 그 사람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내가 해야 될 일이다.’ 생각하면 사람은 힘에 겨운 것을 벗게 됩니다. 저를 한 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니 일도 많은데 사랑하는 선생님께서는 왜 가정국 모임까지 가라고 하셨을까. 정말 어려운 상황가운데 계속 일이 밀리는데 굳이.’ ‘우리 가정국은 LTC모임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하고 선생님께 말 씀을 드렸거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굳이 ‘말씀을 줄 테니 조정하자고 왜 말씀을 하셨을까? 왜, 내가 할 일이 아닌데 나 에게 시키실까?’ 생각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고통이 따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 그리고 준비하는 것, 차를 타고 오 는 시간 내내 계속 그 생각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겠죠. ‘나는 아직 나이 30대인데. 젊은이들을 맡게 하시면 너무 좋을 텐 데. 왜 이런 일을 맡게 하셨을까.’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성장함에 따라 그와 같은 교육을 주시고 기대를 하시고 연단을 시키셨으면 하는 겁니다. 선생님께 이것을 배웠습니다. “네가 불을 받았느냐. 그러면 하라.” “어떻게 요?” “불을 받은 만큼 간구하고 노력하고 매달려서 하라.” ‘선생님이 시켰으면 선생님이 해주셔야죠.’ 아닙니다. 구하게 하 시고, 찾게 하시고, 움직이게 하시고, 내 스스로 깨닫게 하십니다. “네가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서 움직이도록 하 라.” 저 또한 이 성장의 변화에 따르고, 주님께서 나를 교육하신 것에 따른 그 교육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모든 움직임이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받아들입니다. ‘내가 할 일이다. 그만큼 교육을 주셨고, 그만큼 나를 키워주셨고, 나와 함께 해주시 고, 내게 역사해주셨으면 해야 된다.’ 이것이 바로 선생님께 배운 삶입니다. 이 육이 성장함에 따라 주님은 지혜를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하고자 하는 힘을 주시고, 분별력을 주시고, 판단 력을 주십니다. 사람이 성장을 하게 되면 못하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처 음에는 젖도 먹여주어야 합니다. 물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트림도 시켜줘야 합니다. 두드려줘야 됩니다. 안 그러면 안 됩니 다. 기저귀도 갈아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성장을 하게 되면 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알아서 성장이 됩니다. 무 엇을 씹을 수 있게끔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만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나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내장기관도 튼튼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씹어서 넘겼을 때 이제는 엄마의 젖, 우유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 도 소화할 수 있 수 있는 기능이 생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인생은 성장함에 따라 그것을 소화하고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지혜가 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장의 축복입니다. 우리 인생도 중고등부, 캠퍼스, 청년부 그리고 가정국을 거쳐 오면서 여러분이 이 과정의 변화가운데 주님께서 변화하게만 놔두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할 수 있 는 분별력, 할 수 있는 지혜, 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자는 주신 것을 찾게 됩니 다. 주신 것도 찾아야 받게 된다고 이번 주에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살지? 이 많은 일을 어떻게 감당하지? 나는 섭리만 열심히 뛰었는데 이제 가정을 맡게 되고 어떻게 하지?’ 찾는 만큼, 행하는 만큼 이룰 수 있는 것이 가정국이라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변화요, 성장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번 주 주일 말씀에 ‘자기 인생 일생 잘 만들어 놔야 된다. 자기 하나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말씀 하셨죠. 자기 하나 만드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면, 자기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한 사람은 남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만들지 못 한 사람은 자녀도 만들 수 없습니다. 자기가 기쁘지 못하면 남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인생하나 책임지지 못하면 남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자녀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배우자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남을 행 복하게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감동도 못 받았는데 남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불도 못 받았는데 남에게 불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하나 만드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시대의 말씀으로 만들어 놓 으셨습니다. 환경도 여러분들을 만들어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바로 이 인간, 나의 몸이, 나의 정신이 환경을 만들어가고 여건을 다스리면서 주님께 간구하고, 구하고, 행하면서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섭리사도 그러합 니다. 섭리사 먼저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섭리 역사 터전을 딱 주시고 “이리로 들어와!” 그러신 게 아니라 먼저 선생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선생님도 그 말씀에 따라 이행하고, 실행하고, 행하시면서 본인 하나를 딱 만들 어 놓으니까 그 다음에 환경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와 같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 의 말씀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본인 하나 제대로 만드니까, 그 본인 하나로 인해서 환경과 여건을 만들게 되고, 그와 같 이 생명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국들은 끊임없이 여러분 자신을 인격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성장함 에 따라 만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 앞에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만들어진 자 없습니다. 그렇게 내가 날마다 인격의 성장, 신앙의 성장을 해가면서 자녀들을 그와 동시에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산모가 건강하지 않으 면 생명을 제대로 잉태하고 낳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가정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으면 자녀가 그 태안에서 성장할 수 가 없습니다. 저도 그러합니다. 제가 먼저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만들어놔야 어떠한 환경에도 가서 그 환경을 다스리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행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 말씀을 전해 버릇 하면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말씀을 못 전합니다. 그런데 나를 잘 만들어 놓습니다. 눈이 와도, 비가 오는데 보슬비가 아니 라 폭우가 쏟아져도, 말씀을 전할 수 있게끔 나를 강하게 만들어 놓고 어떤 환경에도 주님을 찾을 수 있도록 강하게 만들 어 놔야 어떤 환경에도 말씀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또 말씀을 안 듣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졸고 딴 짓하고. 저는 어떤 사람도 발견을 했냐면, 제가 말씀 전하는데 앞에서 일반 책 읽는 사람도 봤습니다. 굉장히 당황스럽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되나.’ 뭐하시는 분이냐고 했더니 말을 안 해주겠다는 겁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이름은 어떻게 되시죠?” 말을 안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너도 연단되어라, 단련되어라. 나와 같이 단련되지 않으면 나가서 힘겨워서 쓰러 진다. 네 말 다 들어줄 것 같지. 안 그래. 예수님이 나를 키우셨을 때, ‘네 말 다 들어줄 것 같지. 너는 나가서 해보아라.’ 해서 했는데 정말 안 들어주더라.” 연단시켜놓고, 단련시켜놓고, 핍박과 환란가운데서도 단련이 되었기 때문에 어떤 환경 에서도 굴하지 않고 선생님은 이 시대 복음을 외칩니다. 그래서 저도 단련이 되니까 말씀을 전하게 되겠더라고요. 나 하나 를 만들어 놔야 환경을 다스리고 여건을 조성하면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여러분 자신하나 만들어 놓 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때로는 자녀가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고, 배우자와 심하게 다툴 때도 있고, 마음이 맞지 않 을 때가 있고 힘겨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쓰러질 수 없고, 그때마다 무엇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내가 해나가야 됩니다. 그 환경을 다스릴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또한 그러합니다. 자기 하나 잘 만들어서 자녀 를 키우고 가정을 키우고 헌신하게 되고 세상에,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게 됩니다. 인생은 항상 진보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입니다. 사람의 정신 수준도 문화의 수준도 이 인류의 진보의 역 사에 따라서 진보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을 하게 됩니다. 수준은 계속 높아지게 됩니다. 사람이 진보하기 위해 서는 항상 연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한 사람의 기업가와 똑같습니다. 가정을 다스리고 가정을 키워나가는 기업가입 니다. 여러분은 다 사업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내 가정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우린 항상 이것을 생각 하죠. 돈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돈을 어떻게 벌 수 있을까.’ 날마다 연구를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이익을 남 기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세금을 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저 사람보다 내가 이익을 더 가져갈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서는 빠삭하죠. 왜냐하면 인생에 있어서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잊고 삽니다. 가정이라는 터전, 우리의 영혼 또한 이 돈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교육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 될 수 있을까.’ 어떤 소스라도 하나 나오면 그것을 가지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가정을 살피기 위해, 내 배우자를 살피기 위해 그리고 내 자녀를 살피기 위해 우리는 항상 연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보세요. 날마다 연구합니다. 학교에서 교장선생님만 쳐다보지 않아요. 학부모들 다 아시죠? 요즘 극성 이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어떻게 해요? 교장선생님이 하는 것만 쳐다봅니까? 담임선생님 하는 것만 쳐다봅니까? 엄청 쫓아다닙니다. 특히 요즘 5기들은 좀 더 많이 느낄 것입니다. 선배가정국들은 ‘아이 놓으면 그냥 키워지지~.’ 그렇게 살았 다면 5기 때부터는 그게 어디 있습니까. 부모가 쫓아다녀야 됩니다. 요즘은 자녀 봉사활동까지 부모가 쫓아다녀야 하는 그 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노력하고, 학교에서 학부모회를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가 조금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연구하고 노력하고 계속해서 학교에 건의하고 이야기하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학부모가 교장위에 서면 안 되겠죠. 도와주며 선생님위에 서면 안 되겠죠. 그런 틀 안에서, 학교가 그리고 선생님이 훨씬 더 잘 할 수 있게끔, 조금 더 수준 높은 차원에서 잘 될 수 있게끔,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늘 자기의 자녀들을 위해서 연구하게 됩니 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다 줍니다. 섭리사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중심에 맞추고 하 나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말씀하시고, 선생님께서 그 말씀을 대언해 주신대로 우리는 중심을 맞춥니다. 그 위에 서면 절 대 안 됩니다. 기반이 흩어지고, 질서가 흐트러지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안에서 가정국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뭉 치고, 어떻게 하면 역사를 이룰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이 터전 안에서 세상과는 다른 자녀의 교육을 시킬 수 있을지 학부 모 입장에서 연구하고, 부모입장에서 생각하고, 뜻을 이루는 자의 입장에서 연구하고, 또 선배 된 입장에서 생각해야 되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입장입니다. 항상 연구입니다. 항상 연구입니다. 우리 가정국들은 목회자들이랑 좀 많이 부딪치는 분들이 있죠. 왜 그럽니까? 마음에 안 들어서요. 마음에 안 들면 부 딪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이러는 겁니다. “선생님이 계시니 선생님이 다 해줍니다. 이것은 교단이 처리할 일입니 다.”하고 문제를 해결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보는 가정국들 어떻게 합니까. ‘아이고~’ 하며 가슴을 치 게 되죠. 교역자 교체를 원합니다. 목회자가 주님을 중심하고 하늘을 중심하고 절대 함께 하나 되어서 하는 것은 중요합니 다. 물론 선생님이 임명하셨기 때문에 그 뜻에 따라 하는 것은 맞지만, 뜻에 따라 하는 것과 책임을 전가하고 알아서 해주 시겠지 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은 다릅니다. 교역자의 입장은, 하늘의 교육을 딱 받았으면 그 교육을 얼마나 잘 이행할 수 있을지, 우리 교회의 특징과 우리 지역의 특징은 무엇인지, 우리 가정국들의 특징은 무엇인지 연구해서 그 교육을 최대한 온전하게 전해주는 것이 교역자의 할 일입니다. 맞습니까? 그와 같이 여러분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늘의 말씀 이 떨어지면 부연설명하지 말라는 이유는 여기서 나옵니다. 어제 말씀 들으셨죠. 기도하여서 사업할 자는 사업으로 깨닫 고, 공부할 자는 공부로 깨닫고, 가정을 돌볼 자는 가정을 돌보는 단계로 깨닫게 됩니다. 이 귀한 말씀이 떨어지면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얼마나 축복을 이루며 뜻을 이루며 살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것, 이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 가 할 일입니다. 저 또한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으면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전할지를 연구하는 것은 저의 책임입니 다. 고로 항상 연구입니다. 연구하고 우리의 몸을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은 고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보입니다. 발전입 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고 중지하고, 누가 해줄 것이라 고 생각하고 중지하고 있다면 이 섭리사의 발전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을 더 붙들고 기도하고 말씀을 중심하고 항상 모여서 의논하고 함께하는 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선생님을 한 번 보겠습니다. 우리 선생님은 이 엄청나게 큰 섭리사, 이 큰 덩치를 이끌고 가셔야 됩니다. 항상 생명들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좋을 때도 있지만 누군가가 사고가 날 때가 있고, 섭리사의 악평의 문제가 끊임없이 터지 고 있고, 어떤 생명은 여러 가지 문제로 지치기도 하고, 말씀도 써서 보내야 되고, 각 부서를 살펴야 되고, 각 교단의 운영 을 살펴야 되고, 전 세계를 살펴야 되고 너무나 큰 덩치를 살핍니다. 이러면서도 섭리사 천년역사를 남기기 위해서 월명동 개발, 경제까지 다 신경 쓰십니다. ‘어떻게 하면 남길 수 있을까,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역사를 위 해서 뛸 수 있을까.’ 날마다 연구하십니다. 우리 또한 그런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책임을 맡은 자들로서, 의무를 맡 은 자들로서 그렇게 뛰어야 됩니다. 이것을 선생님도 고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명입니다. 여러분들은 기업가입니다. 사 명을 가지고서 이 일을 완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지도자들이 모였잖아요? 지도자들이 모였으니까 조금 더 이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맡기실 때는 중심을 보십니다. 축복을 주실 때도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은 곧 마음이요, 정신을 말합니다. 하나님 께서 사무엘선지자에게 말씀하셨죠. 다윗 왕을 뽑을 때, 그 마음과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정이 축복받을 가정인지, 축복받지 못할 가정인지 그 중심과 마음을 보십니다. 우리는 가정국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분들에게 사명을 맡기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사명만 주시고 일만 주시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데 따라 도 우시고,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여건을 틀어주시고, 환경을 만들어주십니다. 그렇게 함께 하십니다. 선생 님은 섭리사 전체를 돌보시고, 우리는 우리의 맡은 바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라는 기업을 잘 운영하고, 가정이라는 기업을 잘 운영하고, 교회라는 기업을 잘 운영하고, 각 부서라는 기업을 잘 운영할 때 이것이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선생님도 예수님만 쳐다보면 지금까지 굴에 있다고 했습니다. 기도굴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 각자의 자기의 가정과 자기라는 기업을 잘 운영하되 항상 주님과 선생님과 소통하면서 중심을 맞추고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다 빨리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올해부터는 더 대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 열 가지, 스무 가지가 아니라 선생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모든 분야를 가지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뛰고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힘들다 생각하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다!’ 생각하면 오늘처럼 올 수 있는 기적을 만 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축소시켜서 보겠습니다. 성령집회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씀전하는 사람들이 다 해주겠지.’ 생각하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온다면 그 성령집회는 온전하게 뜻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준비할 자는 말씀을 준비하고, 찬양을 준비할 자는 찬양을 준비하고, 성령을 받으러 올 사람들은 성령을 받겠다는 각오를 하고 주님께 부탁드 리고 오고, 각 스텝들은 그것에 따라 준비를 해준다면 그 모임은 이상세계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누가 하나 가중된 책 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짐이 가볍게 됩니다. 우리 집안에서도 그렇죠. 남자가 할 일 남자가 하고, 여자가 할 일 여 자가 하고, 자녀가 할 일 자녀가 하면 가중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항상 어떨 때 문제가 생깁니까. 책임 전가할 때. 자녀가 속 썩였는데 “당신 닮아서 그래요.” 섭리 가정도 이러나요? 저희 부모님은 가끔 그러셨는데 요즘은 부활하셔서 “그래요, 나 닮아서 그렇습니다.”고 하십니다. 서로의 책임을 전가할 때, 그 가중된 책임으로 인해서 상대는 힘들게 됩니 다. 자녀가 할 일을 자녀가 하면서 남편이 할 일을 남편이 하면서 아내가 할 일을 아내가 해준다면 이것이 이상세계입니 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힘들게 됩니다. 보다 한 쪽의 책임이 가중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이 이 섭리역사에 바라시는 가장 이상적인 구도는 무엇이냐. 주님의 말씀에 중심해서 시대 보낸자 선생님을 중심 해서 선생님이 하실 일을 전체적으로 해주시면, 그에 따라 교단이 할 일을 교단이 하고, 교회가 할 일을 교회가 하고, 가 정국이 할 일을 가정국이 하고, 부서가 할 일을 부서가 하면서 하게 된다면 선생님의 책임이, 가중된 책임이 벗어지게 됩 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보다 중심을 온전히 더 잡으시고, 보다 영적인 충만한 능력과 은혜의 말씀을 주실 수가 있게 됩니 다. 모두 다 같이 책임을 다하면서 화평하고 화목하게 한다면 대역사는 금방 이루어집니다. 개인역사, 가정역사, 섭리역사, 하나님의 역사, 내가 ‘나’라는 기업을 온전히 이끌고 나갈 때는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해주기만을 바라거 나 내 것이 맞다고만 주장할 때는, 이때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의 축복, 경제의 축복, 사랑의 축복 이 모든 축복은 정말로 하나 될 때, 화평할 때, 서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고 말씀하셨습 니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생각할 때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을 중심해서 각자 할 일을 행한다면 그야말로 이상세계인데 문제는 주님을 중심하지 않거나 혹은 자기가 할 일 을 하지 않거나 이 두 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이 항상 생기고 사탄이 개입하게 되면, 자기의 생각을 더 주장하게 되고 하나 되는 모든 분위기를 깨뜨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뜻이 깨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온 인류에 택 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보다 더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보다 더 모든 사람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택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주님이 택하신 방법. ‘서로 책임도 전가하고, 내가 할 일인데 내가 안하고, 쟤가 할 일 인데 쟤가 안하고, 좀 화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러면 싸우는 것이 방법일까? 이해하는 것이 방법일까? 무엇이 방법일까?’ 여러분 무엇이 방법입니까? 주님이 온 인류를 향해 택하신 방법입니다. 여러분들 나름대로 다 생각하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택하신 방법이기도 하고 선생님이 택하신 방법이기도 합니다. 바로 희생입니다. 예수님은 희생을 택하 셨습니다. 시대가 믿지 못하는 그 불신, 의심, 따르지 못하는 것, 행하지 못하는 모든 것, 주님은 희생으로 인류의 생명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 섭리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30년 동안 키워놓은 섭리사는 끊임없는 핍박과 환란이 있 었고 선생님 또한 그 어려움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것을 택하셨습니다. 바로 희생입니다. 대신 회개하 고, 보다 더 가중된 일을 행하시면서 지금까지 오셨습니다. 저 또한 그런 선생님을 보면서 멈출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래. 한 사람이라도 더 희생하는 섭리사가 된다면 이 역사는 되겠구나. 선생님의 정신 받고, 예수님의 정신 받아서 한다면 되겠구나.’ 우리 가정국도 선배 5기 7기 합하면 엄청나죠. 지금 인원이 몇 명됩니까. 만 명 가까이 되죠. 이 모든 사람들이 다 하지 못하는 것, 서로 책임을 전가하 고, 서로 ‘네가 하네, 내가 하네, 아니면 내 주장이 맞네.’ 하는 모든 것을 다 평지로 만들어놓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희생입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희생을 하고, 그들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들이 못하는 자들을 위해 서 뛰어준다면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도 각오를 했습니다. 못하는 것 보고 한탄하지 말고 ‘주여, 내게 능력 주시 면 할 수 있으니 주님이 나와 함께 해주셔서 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선생님의 가중된 책임을 제가 조금, 조금이라도 벗 어드릴 수만 있다면 하겠습니다. 실력이 없으니 실력 주시고, 부족하니 은혜를 주시고. 그러나 주님께 끊임없이 매달리며 주님을 찾는 그 간구는 내가 끊임없이 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실천하겠습니다. 그러니 사용해주시면 희생하는 자가 되어서 한 번 살아보겠습니다.’ 인생 100년입니다. 똑같이 살다 갑니다. 희생하는 자도 인생 100년입니다. 희생하지 못하는 자도 똑같이 인생은 100년입니다. 인생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가치는 좌우가 됩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이 인생길은 생명길이다 했습니다. ‘이 인생은 정해져 있다. 두 가지 중의 하나 생명길이냐, 사망길이냐.’ 생명길로 가는 자는 그 수고와 몸부림이 다 이루어 진다고 했습니다. 인생자체에 운명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바로 길 자체가 결정되어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4월에 생 방송으로 전해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어서 지금도 계속해서 모임마다 강조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자 체 정해진 생명길을 가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정말 믿으십니까? 자체 정해진 생명길. 남들은 저 길이 맞다고 하지만, 필 경 그 길은 사망길입니다. 이것이 아크릴입니다.(단상) 이것은 아크릴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나무입니다. 나무는 돌이 될 수 없어요. 이와 같이 생명길은 사망길이 될 수 없고, 사망길은 생명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로 사망길로 가면서 간구하면서 잘되게 해달라고 하지 말고, 아예 길 자체가 생명길인지 사망길인지를 보고, 생명길로 가면서 수고하고 몸부림치고 간구하여라. 이 길은 무슨 길인가. 이 생명길 안에서 주와 같이 희생하며 주와 같이 행하며 주와 같이 내가 할 일을 감당하며 간다면 주님도 잘되고 나도 잘되고 내 영혼도 잘되고 내 가정도 잘 되리라 믿습니다. 가정에서도, 섭리사에서도 책임을 너무도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지 않았고 그것은 나와 상관 없다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심리가 아닙니다. 어른일수록, 장성한 사람일수록, 책임을 맡은 사람일수록 참 책임회피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하게 되죠. 저도 똑같습니다. 나도 이거 해 야지, 저거 해야지 바쁜데,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딱 하신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이거 못해놨냐. 조은이 어디 있냐.”하고 찾으시거든요. 그러면 저는 ‘아유, 바빠. 바빠.’ 괜히 바쁜 척하며 “선생님, 부르셨어요? 제가 선생님이 맡기신 일 이거, 이 거, 이거, 이거 하고 있잖아요. 그거 못 들었는데 무슨 일이세요?” 그러면서 오히려 이렇게 얘기하죠. “저기 놀고 있는 사 람 저기 있던데~어, 뭐하지?” 책임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을 돌보고, 신앙도 돌보고, 직장도 다니 고, 섭리 경제도 책임지고, 여러 가지를 하다보면 특히 책망의 말씀이 나올 때마다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도 해야 되고, 저것도 해야 되고, 그러느라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장성한 자다. 성장한 자다.’ 어린아이에게, 자녀에게, 보다 선생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회피하겠습니까. ‘이것은 내가 할 일 이다. 우리가 해야 된다. 우리가 하나하나 주님을 중심해서 더 선생님과 소통하고 더 대화하고 더 하나 되어서 이것은 우 리가 해야 될 일이다.’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사랑하는 가정국 여러분들이 월명동개발도 우리가 해야 된다는 일념을 가지고서, 우리가 해야 된다는 집 념을 가지고서 해내지 않았습니까.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래, 내가 먼저 시작하자.’는 마음 으로 여러분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 를 세우는 일, 월명동을 개발하는 일, 선교하는 일, 교회를 안정적으로 찾는 일, 가정의 모든 교육들, 우리가 할 수 있습니 다. 주님은 축복을 주셨고, 선생님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혼자 하는 거요, 또 그냥 두고 안보십니다. 싫어하세요,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함께 하자고 같이 모이자 했습니다. ‘나도 좀 끼워줘라. 너희만 하지 말고 나도 같이 하자.’ 그 런데 우리는 선생님 바쁘시니까 눈치 본 거잖아요. ‘선생님 못 오실 거니까. 우리는 가정국이니까. 성장한 자들까지 이러면 되겠나. 캠퍼스야 10번이고, 100번이고 간구하면 그 맛에 들어주시겠지만 이러면 안 되겠지.’ 아닙니다. 장성했을수록, 성 장했을수록, 책임이 더 많아질수록 주와 함께 하고 더 불을 받고, 더 선생님의 사랑도 많이 받고, 더 대화도 많이 하면서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 책임진 자로서 힘 받을 데가 어디 있습니까. 가정에서도 성장했지요, 책임져야죠. 가장이 죠, 어머니죠. 교회 가서도 가정국이죠. 어떻게 합니까. 이럴수록 붙들어야 됩니다. 붙들 데가 어디 있습니까. 세상의 기업 가들 보십시오. 승승장구해서 그 책임 다 지면서 잘 하다가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졌을 때, 붙들 곳이 없어서 죽음을 택합 니다. 낙심을 하고 포기를 하게 됩니다. 인간이란 다 장성한 사람이지만 인간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하늘 아버지와 하 늘 어머니를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을 받아야 합니다. 능력을 얻어야 됩니다. 장성했을수록, 성장했을수록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그러합니다. 하루하루 성장하면서 제가 더 성장했다고 선생님과 대화하지 않고, 더 많이 기도하지 않고, 선 생님께서 저를 더 많이 코치해주시지 않으면 저는 그냥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쓰러지고 말아요, 낙심하고 맙니다. 그냥 포 기해버립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보다 더 많이 간구합니다. 더 많이 소통합니다. 한 마디도 너무 민감하고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을 손에 쥐어주면서 역사합니다. ‘자, 이것은 뚜껑이야. 이렇게 닫아야 돼.’하고 아 기한테 가르쳐줍니다. ‘네 손 이리 줘 봐.’ 혼자 못하게 합니다. 엄마가 손을 잡아주고 하게 합니다. 손에 쥐어주게 되어있 습니다. 그러나 성장을 하게 되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줍니다. 부모들도 자녀를 키울 때 그렇게 해야 되겠습니 다. 어렸을 때는 하나하나 할 수 있게 손에 쥐어 주지만,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본인이 행할 수 있는 지혜의 말을 해주고, 대화를 하게 해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십니다. 어릴 때는 하나하나 손에 쥐어주셨지만 지금은 유도하십니다. 그 길로 올 수 있게끔, 본인이 직접 찾을 수 있게끔 계속 인도하시면서 이끌어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초 관심, 초 집중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손에 쥐어주면 딴 데 쳐다보고 있더라도 ‘어?’ 그 러면서 손을 잡게 되잖아요. 지금은 항상 눈여겨보면서 눈치를 보낸단 말입니다. ‘따라와!’ 눈치를 보내요. 그럴 때 늘 관 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길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의 손을 직접 잡아서 ‘가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눈치를 주십니다. 그리고 지시를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주님께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께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중심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희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내가 주님께 관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누가 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선생님과 함께 내가 하자.’ 이것이 바로 희 생입니다. 선생님은 이 말씀을 오늘 꼭 해주라고 하시더라고요.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니까 해줄 것은 해줘야 된다.” 선생님은 항상 저를 어렸을 때부터 아주 강하게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말씀교육뿐만 아니라 경제교육까지, 하나하 나 다 시키셨습니다. 말씀교육은 이렇게 하시죠. ‘말씀을 전할 때는 이렇게, 저렇게.’ 지금 제가 단상에서 말씀을 전한지 한 5년이 되었죠. 5년 동안 단 하루도 코치를 받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오늘 가정국에 올 때도 당연히 코치를 하셨습니 다. 어떻게 해야 될 것을. 저는 그 말씀을 가지고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내 책임을 완수하게 됩니다. ‘선생님 알아서 말씀 주셨어. 알아서 다 해주실 거야. 그냥 읽기만 하면 돼.’라고 생각을 한다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어떤 부 분에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는 선생님이 코치를 해주십니다. 그러면 그 부분은 제가 연구하고 말씀이 빛나게 해야 되겠 죠. 잘 이해를 하게 해야 되겠죠. 말씀교육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삶의 교육 그리고 악평을 이기는 교육, 이미 말씀으로 다 시켜주셨습니다. 또한 경제 교육도 시키십니다. 선생님은 제게 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쓸 것을 네가 마련해 놓아라. 네가 아껴서 쌈짓돈이라 도 마련해 두어라. 젊은 날 부지런히 모으고 뛰어라.” 보통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모을 돈이 있을까?’ 생 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끝까지 잘 들어보세요. “그래야 네가 늙었을 때 네 스스로 책임진다. 주님께 맡기되 네가 할 것은 네가 해야 된다고 생각해야 돼. 그래놓고서 섭리 젊은 날 열심히 뛰었는데 왜 나는 집 하나 없고, 왜 나는 옷 살 돈 하나 없고, 왜 먹을 돈 하나 없는지 원망 말아라. 왜 나는 건강하지 않은지 원망하지 말아라. 꾸준히 하는 것이 그렇게 도 무섭다. 늙었을 때 나는 섭리를 뛰었으니 섭리사에서 알아서 다 해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너만 시험 들고 너만 힘들 다.” 제가 이런 여러 가지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학교를 가지 않고 섭리사를 오기 위해서 직 장을 택했습니다. 성적이 좋기 때문에 직장을 금방 들어가게 됐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선생님은 ‘너는 세상에 눈을 떴으니까 내가 경제교육 시켜줄게.’ 하셨어요. 그때부터 교육하신 게 “꾸준히 모아라.” “꾸준히 모아라.” 였어 요. “선생님 제가 돈이 어디 있어요?” “아니 꾸준히 모아. 천 원씩이라도, 만 원씩이라도 꾸준히 모아라. 헌금할 건 다 하 고, 뗄 건 다 떼고.” 할 건 해야 됩니다. 섭리사 풀로 뛴다, 뭐 한다 해서 헌금 안하면 안 됩니다. 이건 당연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뗄 것 다 떼고 부지런히 젊은 날 모아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 년 내내 부지런히 모아봤자 이게 얼마 됩니 까. 제가 돈은 많이 벌기는 했습니다. 그 당시 한 달에 200만원을 벌었으니까요. 지금부터 15년 전이죠? 돈을 좀 벌었죠. 그런데 저희가 유니폼을 안 입으니까 옷도 사야죠, 내 개발도 해야 되고, 월명동도 와야 되고, 그러니까 돈이 좀 많이 들 어가더라고요, 그래도 선생님 말씀을 잘 생각하면서 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았는데 그때는 잘 안 모아지더라고요. 일 년이 딱 지났을 때, 퇴사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왜요? 선생님 따라다니고 싶은 것입니다. 이 젊은 날. 제 인생 제가 결정하는 것 은 아니지만 주님이 허락하시면 다 그만두고 이거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께 넌지시 여쭤봤을 때 선생님이 “네가 기도하고 결정하여라. 나중에 나 원망하지 말고.” 하셨습니다. “그 직장 그만뒀다고, 나 먹을 거 없이 이렇게 됐다고 나 원 망하지 말고, 네가 뜻한 바에 따라서 내가 허락할게.” 그래서 기도하고 저는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 우리사 주를 받았습니다. 제가 500주를 받았어요. 그때 그 회사가 대기업이긴 한데 비상장회사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3년 후에 상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식 값이 뛴 것입니다. 세 배가 뛰었습니다. 그래서 한 2천만 원이 조금 덜 되는 돈을 그 21 살의 나이에 얻게 된 것입니다. 저는 기성에서 왔기 때문에 헌금 교육이 굉장히 잘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엄마가, 아빠가 싫어하실 정도로 헌금을 하셨거든요. 교회가 너무 헌금을 강조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목사님이 한 20분 설교를 하 시면 10분이 헌금 설교였거든요? 30분 설교하시면 15분이구요, 그런데 엄마가 헌금을 너무 심하게 하시는 거예요. 제가 200만원을 받으면 반드시 20만원을 십일조로 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왜 거기에 헌금해야 돼?’ 여기에 헌금해야죠. 내 직장에서 받는 돈은 엄마가 있어서 내 마음대로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사주는 “엄마, 이거 내거야.”라고 엄마한테 말 했습니다. ‘내 거니까, 나중에 엄마한테 나 책임져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그 돈 나에게 주면 내가 알아서 살겠다.’고 했습 니다. 알아서 살기로 한 것이 선생님께로 가게 되었습니다. 유학준비를 해서 원래 유학을 가야하는데 유학길을 포기하고 경로를 돌렸습니다. 원래는 영국으로 가야하는데 영국에 점을 찍고서 독일로 갔습니다. 그때 그 돈을 선생님께 드렸습니 다. “저는 선생님이 먹여주고 재워주실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돈 선생님께 드리고 싶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 “너 전 재산 얼마냐?” “선생님, 전 재산 이건데요?” “네 전 재산이 이거면 지금 이거 나 주지 마. 네가 써라. 네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다. 너 매주 헌금도 해야지. 맛있는 것도 사먹어야지. 아이스크림도 사먹어야지. 가끔씩 나도 사탕도 사다 줘야지. 필요한 것 사야 되니까. 네가 나 따라다니며 아마 두고두고 쓸 수 있을 것이다.”해서 안 받으셨습니 다. 그래서 해외에 나갔을 때 두고두고 그 돈을 쓰면서 필요한 것을 조금씩, 조금씩 사 쓰고,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스크림 도 사먹고, 선생님 말씀대로 사탕도 사다드렸습니다. 이제 섭리사를 본격적으로 뛰고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돈이 없어서 헌금을 못 하겠더라고요. 왜냐하면 기름 값만 해도 엄청나니까요. 안 그래도 오해를 받는데 어떻게 해요. 3년을 열심히 뛰었더니요, 3천만 원을 벌었습니다. 어떻게 했냐면 선생님께 “선생님, 수고한다고 기름 값 하라고 다 보태준 거, 이 거 남은 거 어떻게 할까요?” “다 모아 놔 라. 주님의 이름으로 꼼꼼히 다 기록해서 다 모아 놔라.” 해서 모아놨고, 또 어떤 분이 감동을 받으시고 크게 한 번 도와 주셨습니다. 이 돈을 다 모았습니다. 3년 내내. 그랬더니 3천만 원을 모은 겁니다. 그래서 2006년도에 선생님께 가자마자 “선생님, 저 그동안 10년 내내 선생님 따라다니면서 하늘 앞에 헌금 한 번 못 드렸습니다. 이거 드리고 싶습니다.”하고 3 천만 원을 딱 내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또 선생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너, 전 재산 얼마냐?” “아니, 선생님. 지금이야 저 안 굶잖아요. 다니면 사람들이 차비주고요. 많이는 못 줘도 기름 값도 주고, 가끔씩 옷 사 입으라고 돈도 주고요. 선생님, 전 괜찮습니다.” 전 재산은 없어도 여태까지 5년 정도 뛰어오니까 이제 어디가면 굶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어디가면 모르 니까 안 먹여주었지만. 2천만 원 남짓한 돈을 가지고 있어서 안 굶었거든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딱 따져보시더니 “그러면 500만원 너 가지고 있어. 아무리 너를 먹여줘도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500만원 딱 떼시고 나머지 2500만원은 하늘국고에 보내셨습니다. 저는 섭리사를 풀로 뛰면서 ‘주님의 일을 하니까 주님께서 먹여주시겠지?’ 이런 교육을 안 받았 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오해를 받아도 다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다 쳐다보고 계시니까. 줄 것 다 해주시고, 채워주실 것 다 해주시고, 내가 모을 것은 주님이 다 봐주실 것이니까. 그냥 빚져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동도 하게 해주시고 차 도 구해주시고 주님께서 해주시는데, 먹을 것도 주시고 기름 값도 주시는데 나도 벌어야죠, 나도 섭리국고를 채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한 2년 정도 더하면 큰 거 하나를 해서 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또 말씀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전세금이라도 있지 않느냐. 너 지금 몇 살이니? 올해.” 제가 만나이로 서른하나입니다. 본래 한국나이로 서른 셋 됐습니다. “서른셋인데요.” ‘서른셋의 나이에 내가 무엇을 해야 될까?’ 선생님이 저에게 이러시더라고요, “전세금이라도 마련해놔야 된다.” 서울 전세금은 아니더라도 대전 전세금은 마련해놔야 하기에 아 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1년 됐습니다. 선생님만 아십니다. 그런데 이 아르바이트는 전혀 지장이 가지 않습니다. 이 환경 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엊그제도 이것은 해야 하니까 잠을 못자고 하고 왔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에서 세 시간정 도를 투자하면 한 달에 어느 정도 돈을 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돈을 일 년 동안 꾸준히 모았습니다. 이것은 100% 섭리 개발헌금이 아니라 교회나 다른 헌금으로 들어가게 되겠죠. 이렇게 3~5년 정도 하면 목표한 돈이 만들어집니다. 조금 힘들어도, 내가 벌어서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젊었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절대 하늘 앞에 기대지 않고. 왜냐하면 주님이 내게 축복해주셨으니까. 말씀축복 주셨죠, 성령의 축복 주셨죠. 그래놓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찾아서 주님께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신부니까 함께 해야지.’ 그런 의식을 가지고서 계속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 또한 내가 섭리사를 위해서 생명들을 위해서 희생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주님 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생각한다면 나 힘들어서 못 산다.” 지금도 섭리사 경제를 위해서, 말씀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끊 임없이 움직이십니다. 건강도 ‘예수님이 해주시겠지.’ 안하십니다. 그만큼 움직이십니다. 선생님 저한테도 매일 그러십니다. “너 건강? 예수님이 계시니까 예수님이 해주시겠지? 너 그거 생각하는 순간 건강 안 좋아져서 예수님 원망할 날 온다.” 얼마나 교육도 확실하게 시키시는지요. 그래서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니까 운동을 못합 니다. 그래서 일을 조금 줄이고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운동을 좀 해서 건강까지 그리고 경제적인 것까지, 영적인 것까지 충만하게 해서 정말 주님보시기에 시대 신부로서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여러분들처럼, 열심히 뛰고 달리시는 가정국들처 럼, 부끄럽지 않게 해드리는 삶을 살고자 저도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냐면 “어려우냐? 방법이 있어.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면 바로 네가 더 책임을 하는 것이다. 어려울수록 네가 더 책임을 한다면 그 어려움은 보다 더 없어진다.”하셨습니다. 그 러면서 선생님 말씀하시기를 이번 주에도 말씀을 한 번 하셨는데 “어려움이 있을수록 난 내가 더 한다. 나는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 사막에다 씨를 뿌려도 기어코 황금벌판으로 만들고 마는 정신을 가지고 있어. 나는 정신가다. 나는 사상가다. 주님의 정신을 받은 자라 무섭다. 그것이 무섭다. 너희들도 이 정신을 가지고 기어코 사막 같은 곳에 황금벌판 만들자.” 하셨습니다. 여러분, 섭리의 성지땅 황금벌판 만든 것 보십시오. 엄청난 일을 해내셨습니다. 여러분도 그곳에 함 께 동참하신 것입니다. 또 선생님이 계셨을 때 함께 하지 못했던 여러분들, 이제야 더 함께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습니 까? 지금은 기회입니다. 때입니다. 해야 될 때입니다. 여러분, 사막 같은 배우자의 마음, 사막 같은 자녀의 마음, 사막 같 은 가정환경, 사막 같은 경제 환경, 사막 같은 신앙, 왜 못합니까? 사막 같은 환경을 황금벌판으로 만들어놓은 자의 정신 을 받아서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이 왜 못합니까? 사막 같은 자녀의 마음이라 할지라도, 사막 같은 배우자의 마음이 라 할지라도, 사막 같은 나의 현재의 신앙, 배우자의 신앙이라 할지라도, 가정환경이라 할지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의 책임입니다. 책임을 하는 만큼 주님은 축복하시고 역사하시고 함께하시고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희생입니다. 바로 내가 하는 것. ‘내가 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정말 주님과 함께 내가 하겠느냐?’ 자꾸 연구하는 것 자꾸 행하는 것, 누가 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움직이는 것. 내가 혼자 못하면 가정국이 모이고 교회가 모이 고, 교회에서 못해주면 교회 가정국이 뭉치고 하나 되고 계속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워요. 교역자들이 동참을 안 해줘요. 진실로 내가 교역자를 약간 고깝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이렇게 뛰는데 ‘우리 교역자가 몰라.’ 그러면 선생님께 말을 해야지요. 저도 이제 대역사의 해에 목회를 시작합니다. 저도 직접적으로 가정국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 다. 아무래도 나이를 핑계대면서 안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1년 전까지 나이 핑계대면서 엄청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제가 서른 살인데요. 제가 이 일을 왜 해야 됩니까?” 이렇게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지하고 무지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의 노력과 피눈물 나는 몸부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도 목회를 시작하면 보다 더 가정국들이 어떻게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지, 교회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보다 더 의논하고 함께하 는 교역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함께 해주세요. 여러분이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하면 월명동 성 전개발 뿐만 아니라 교회성전개발까지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하면 “너희들, 돈을 못 대면 몸이 라도 대라.” 주변에 돈 못 대는 사람은 몸을 대게 해주십시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정말 주님이 이 섭리사를 축복하신 것을 보면 다릅니다. 기성처럼 “돈 내라! 돈 내라!” 선생님은 제일 싫어하십니다. 월명동개발 후원금을 모을 때도 선생님께서 가장 걱정하신 부분이 그것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았는데, 원하지 않는데 하는 자들이 있지 않을 까?’ 항상 그것을 걱정하십니다. 돈을 못 대면 마음이라도 댈 수 있게끔. 마음의 뜻을 합쳐서 ‘그래, 우리 가정국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마음을 모아주자. 뜻을 모아주자.’ 하는 그 단계까지만 가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 다. 성전개발뿐만 아니라 섭리사의 선교의 발전, 부흥까지 생명의 역사까지 더불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해야지요? 그렇지요? 지금까지 주님이 키워 오시고, 고이고이 만들어 오시고, 환난핍박 다 이겨오고, 앞으로도 이겨갈 것인데, 아까워 서 해야 됩니다. 지금 하늘나라에는 보물창고의 그 벽이 금이 가고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늘창고 벽이 금이 가고 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그 부분을 찢었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정리해서 붙여놨습니다. 왜냐하면 "요거 내꺼다. 금이 간다? 금이 가지 않게 우리 집에 갖다놓아야지." 다 갖다놓고 어떻게 합니까? 주님을 위해서 다 써야지요. 기특한 생각을 해야 되겠지요. “주님 위해 쓸 테니까, 다 주세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부, 가정국, 직장에서도 영적인 축복뿐만이 아 니라 육적인 축복이 충만히 일어날 수 있게끔. 그러나 주님을 중심해서 절대 최우선에 두면서, 절대 물질로 빠지지 않게끔 기도하고 있습니다. 금이 가는 모든 것들 다 얻을 수 있도록,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많이 버는 자가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하나하나 꾸준히 주님께 간구하며 감사하며 하는 자는 하늘나라 창고까지 풍성하게 할 줄로 믿습니다. 희생! 주님은 희생하면 희생하도록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안두십니다. 주님은 희생 가운 데 동참합니다. 왜요? 희생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희생하는 자, 사랑하는 자, 화목 하는 자, 봉사하는 자를 보고 두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냥 보지 않습니다. 왜요? 그는 사랑의 예수님이요, 긍휼의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동참하신다는 것입니 다. 그러나 악평하는 자, 미워하는 자, 동참하지 않는 자와는 함께 하시지 않으십니다. 긍휼의 하나님이요, 주님은 미움의 예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또한 화평하고, 희생하고, 하나 되고, 하려고 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에게 함께 하 십니다. 왜? 책임을 다하는 선생님이시고, 화평하고자 하는 희생하시는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여러분, 희생한 만큼 주님은 역사하시고 그 희생의 대가로 엄청난 생명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희생하면 잃을 것 같지요? 아닙니다. 심정의 희생, 보다 내가 더 용서하는 것으로 내 마음이 강퍅해질 것 같지요? 그것은 세상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는 하도 속고 또 속고, 또 속으니 희생하면 마음의 상처를 얻어서 마음을 딱 닫게 됩니다. 그러나 저도 겪어보니까 섭리사에서의 희생, 내가 좀 오해를 받아도, 힘들어도, 내가 좀 더 뛰고 달려도, 내가 조금 더 잠을 못자도, 내가 조금 더 행해도 주님은 보고 있지만은 않으셨습니다. 내 마음을 넓게 해주시고, 보다 더 깊은 도를 깨닫게 해주시고, 마음을 더 깊이 있게 해주시 고, 더 용서의 마음을 주시고, 화해의 마음을 주시고, 화목의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마음을 심어주셨습니다. 희생하는 만 큼, 내가 행하는 만큼 얻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곳은 생명길, 주님이 역사하시는 길,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 니다. 주님은 그래서 그냥 보고만 있지 않으십니다. 환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을 다스리고, 큰 정신과 큰마음과 주님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끝날까요? 얼마나 말씀을 주셨을까요? 여기까지 희생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냥 희생하면 힘들어서 죽습니다. 희생은 사랑의 마음이 동반됩니다. 희생하는 것만 생각하면 사람은 힘들어서 못삽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대상 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면, 내 마음이 움직이고 내 몸이 움직이게 됩니다. 여러분,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그 단계는 세상 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가정이라 할지라도 옆의 배우자는 사람입니다. 축복가정이어도 자 녀는 자녀입니다. 속은 썩입니다. 덜 만들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으면 힘듭니다. 근본적인 사랑 의 대상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 가정국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모든 자가 근본적인 사랑의 대상을 찾을 때, 이 세상은 이상세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랑에 금이 가고, 희생의 고통이 따르고,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들이 그 희생의 대상을 예수님으로 삼았을 때, 그 고통과 그 희생과 그 어려움과 그 행함은 반드시 생명 으로 대가를 얻게 됩니다. 구원으로 얻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시기를 바 랍니다. 인간으로만 대하고 사랑하면 도저히 사랑이 안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사람들과 더불어서 살지 않습니까? 선생님도 항상 그러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축복받아 결혼했지만, 사람으로만 생각하 면 그 사랑은 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그 뜻을 잊지 말아야 되고, 그 가운데 주님이 항상 동참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배우자가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가정국 중에 가장 슬픈 현실은 배우자가 낙담하고 섭리를 악평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사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도 한 사 람의 구원받을 자로서, 주님의 신부가 될 자로서 대해야 됩니다. 그러나 부부로서도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뜻으로만 사 랑하면 사랑이 불이 타지 않습니다. 인간으로서도 사랑할 수 있도록, 배우자로서도 사랑할 수 있도록, 평생 나와 동고동락 하며 나의 사랑을 받아주고, 나의 투정을 받아주고, 나와 함께 힘든 것도 극복하고, 행복도 함께 할 수 있는 주님이 짝지 어주신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니 오히려 감싸주고 보호해주고 인도해주고 기도해줘야 합니다. 그러 면서 힘들 때마다 낙심하지 않도록 주님을 붙들어야 됩니다. 그럴 때 다시 한 번 뜻을 찾아서 마음의 불을 지피는 것입니 다. 희생, 섭리사를 위한 희생, 가정을 위한 희생, 자녀를 위한 희생! 우리는 인간적인 것을 벗어나 이 시대 생명길로 가는 이 시대에 주님의 사랑, 그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짊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고통이 조금 더 가벼워질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기도하고 행하고 몸부림친 모든 것이 알알이 포도 알처럼, 꽉 찬 포도송이처 럼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큰 축복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 “본인이 못하더라도, 예수님처럼 일류가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마 음을 가졌듯이, 자녀가 못하더라도 배우자가 부족하더라도 그를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자, 그 마음을 잊지 않는 자 는 진실로 큰 축복을 받은 자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 축복을 정말 받으셨습니까? 축복을 받아 결혼한 축복가정 여러분, 여러분 진 실로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축복의 마음을 가지셨습니까? 그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여러분에게 축복은 시간문제입니다. 가정경제, 자녀, 배우자 신앙, 교회경제, 섭리사의 모든 일까지. 그러나 그 행한 만큼 그 축복은 여러분의 것으로 쌓일 줄로 믿습니다. “경제문제도 부지런히 찾아서 살아야 해.” 하셨습니다. “부지런히 찾아라. 부지런히 찾아서 살아라. 나는 매일 잘되게 기도해준다.” 특히 우리 가정국들, 누가 못 먹고 못 입는다는 소리 들으면 선생님이 가 슴아파하십니다. 매일 기도해주십니다. “젊었을 때 전도만 하다가 결혼해서 경제 너무 힘들다고? 너희가 뛰어라. 뛰어야 사냥한다. 뛰어야 사냥한다.” 여러분, 아무리 빠른 치타라도 뛰지 않으면 사냥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아 무리 앞에 맛있는 ‘영양’이 있더라도 뛰지 않으면 사냥 못합니다. 치타가 잘 먹는 ‘영양’이 있습니다. 동물 중에서 가장 맛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영양을 먹는 동물은 치타밖에 없습니다. 사자는 거의 못 잡습니다. 배가 나와서 너무 느립니다. 순간 힘은 잘 발휘하는데 빠르게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을 못합니다. 치타는 항상 맛있는 영양을 사냥합니다. 그리고 치타는 입이 짧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신선한 것만 먹어야 한답니다. 신선한 부위만 조금 먹습니다. 그 나머지를 하이에나나 사자들이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에나들이 치타 주변에 많습니다. 그런데 치타가 순진해서 잘 싸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먹이를 잘 빼앗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치타와 같습니다. 그리고 치타는 내장기관이 약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신선한 것만 먹어야 한답니다. 오래 두고 먹으면 이상이 생긴다고 합니다. 신기하지요? 그런데 이 치타의 가장 큰 능력은 시속 130km로 달리는 것입니다. 시속 120-130km로 달립니다. 이 정도로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고, 지구 력도 있기 때문에 그 빠른 영양을 잡는 것입니다. “치타처럼 사냥하라.” 축복은 다 빌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도, 예수님이 저에게도 축복을 빌어주셨듯이 제가 치타처럼 빠르게 사냥하는 만큼 모든 것을 다 잡게 해주셨습니다. 저도 행 하기 때문에 느낍니다. 늘 이렇게 그림을 그려주십니다. 제일 잘 그려진 치타입니다. 멋있지요? 늘 선생님이 치타같이 사 냥하라고 하십니다. 이 그림에다 ‘치타같이 뛰어라.’ 라고 쓰셨습니다. 엄청 빠릅니다. 치타같이 뛰어야만 사냥할 수 있습 니다. 주님이 축복해주셨으니까 경제 문제나, 영적인 문제나 다 뛰는 자는 사냥을 하게 됩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 랍니다. 될 줄로 믿습니다. 마음에서 지치고 마음에서 안 된다고 하는 자는 돈 덩어리가 앞에 와도 안 됩니다. 축복덩어리 가 앞에 와 있어도 "어디 있지?"하고 찾습니다. 빠른 자가 낚아채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말씀하십니다. “나는 빠 른 구름을 탄다.” 주님도 빠른 구름을 타시고, 이 세상의 모든 자들도 빨리 빨리 행하는 자가 반드시 거머쥐게 되어 있습 니다. 여러분, 반드시 주님의 축복을 모든 자들이 다 받기를 바라고, 부족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부족한 자들을 위 해서 나누어줄 수 있는 충만하게 축복받는 가정국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생님이 또 말씀하시기를, "난 정말 지독하게 뛴다. 누가 날 보면 지독하다고 해. 야, 조은아! 누가 너보고 지독하 다고 많이 얘기하느냐?" "예 선생님, 저보고 지독하대요. 무섭대요." "왜?" "계란 맞아도 열심히 한다고 저보고 지독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계란 맞았는데, 벌떡 일어나서 말씀 전한다고 하니까, 누가 그걸 보더니 지독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 또 뭐라고 하면서 지독하대?" "그렇게 욕을 하는데도 그렇게 열심히 웃으면서 하는 것을 보면 지독하대요. 어제 분명히 안 좋은 일 있었던 거 아는데, 단상에서 웃으면서 설교하는 거 보니까 ‘잰 참, 지독하구나.’ 그래요. 너무 지독하게 뛰니까 지 독하다고 하더라고요." "네가 내 제자가 맞구나." 선생님 또한 엄청난 어려움이 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시작하셨고요. 따르는 자 한명 없이 시작하셨습니다. 거기다 악평하는 자들이 붙었습니다. 참으로 최악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안에 계십니다. 편안한 안에? 아니요. 지상지옥 같은 곳 에! 선생님이 그곳에 계신 것을 알면서도 웃으면서 말씀을 전하는 저도 참 지독합니다. 웃으면서 “희망을 가지고 뛰어라.” 하시며 어깨 항상 당당히 펴시면서 가시는 선생님 참으로 지독하십니다. 그러나 그 지독함이 아름답습니다. 절대 우리의 등을, 우리 제자들의 허리를 구부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지금도 뛰고 계십니 다. “난 참 지독하게 뛴다.” 말씀뿐만 아니라. 섭리사 이 월명동 건축까지. “돈 없으면 하겠느냐. 주님이 축복 안하시면 하겠느냐? 누가 돈을 떼어 먹었는데 결코 다 받고 말았다.” 지금도 받기 위해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하시 는지 압니까? 돈 떼어 먹은 사람에게 "내가 너를 용서한다."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그럼 나 그 돈 다 탕감해주겠지,' 그 러나 바로 1초 후에 말씀하십니다. "너는 용서하되, 돈은 채워 넣어라.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야. 그러니 채워 놓도록 해라." 하십니다. “나는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지독하게 했기 때문에 이번에 너희가 모아준 것까지 같이 합쳐서 이 제 성전개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성전도 짓고 건물도 지을 것이다. 너희들도 믿고 행하도록 하라. 자꾸 해 야 희망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동상도 보셨지요? 저 동상도 4개월 동안 보시고, 또 보시고 하시면서 드디 어 갖다 놓으셨습니다. 설계도도 4-5개월, 거의 1년 가까이 계속해서 보시면서 어떻게 해야 주님 좋아하실지, 우리가 편할 수 있을지, 더 은혜를 받는 공간에서 말씀을 듣고 함께 편하게 밥도 먹을 수 있을지 구상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수고,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도 여러분 못지않게 계속해서 뛰고 달리십니다. 성전개발도 여러 분께만 맡겨두지 않습니다. 함께 하십니다. 저보고도 매일 말씀하십니다. "너도 있을 때 해" “선생님, 저는 없는 거 아시잖 아요. 몇 년 뒤에는 꼭 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있을 때 틈틈이 교회 감사헌금이라도 하면서 할 수 있게끔 하고 있습니 다.” “지금 해야 된다.”고 하시며 옆구리 툭툭 찌르십니다. 선생님도 영적으로 육적으로 계속해서 지독하게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은 진실한 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주님께 ‘중심을 두고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주님의 축복을 믿는가, 내가 행하고자 하는 실천력이 있는가, 정신이 있는가,’ 그것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를 말씀하시기를, “자녀교육, 반드시 너희들이 책임져라.” 말씀하셨습니다. “생명농사, 섭리사의 희망이다. 자녀농사 너희들의 희망이다. 섭리사 누가 말씀을 대신 받아주기를 내가 기대하겠느냐? 내가 해야지. 그래서 생명들 길러 야지. 내가 교육을 멈추겠느냐? 희생을 멈추겠느냐?” ‘너희끼리 해라. 나 바빠서 못한다.’ 하면서도 다음날 보내주시는 선 생님이십니다. 멈출 수 없습니다. 누구 탓하지 아니하시고 계속해서 섭리사의 큰 덩치를 책임지십니다. 그와 같이 “자식교 육, 너희들의 희망이다.” 하셨습니다. “너희의 꿈의 실현이다. 섭리의 꿈과 희망이다. 아예 잘 가르쳐야 된다.” 말씀하셨습 니다. “늦으면 못쓴다. 만들어야 한다. 선생님 10대 때부터 만들었듯이 만들어야 된다.” “어떻게요, 주님? 어떻게요? 어떻 게요?” 그 주제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이미 서두에 말씀했습니다. 저도 선생님이 “해라. 가서 교육해 줘라.”하시면 가정국의 상황을 알아보고, 캠퍼스의 상황을 알아보고, 청년부로 보내시면 청년부와 소통하고, 일본으로 보내 면 일본과 소통하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세 달이고 일 년이고 계속 소통하면서 상황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주님이 주신 말씀, 선생님이 주신 말씀이 최대한 잘 나가도록 연구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교회가 책임져 주겠지. 섭리 사가 책임져 주겠지.’ 이것이 아니라 가정국이 책임집니다. 믿습니까? 저도 동참합니다. 함께 할 겁니다. 전체적으로 못하 니까 빨리 교회에 들어가야겠습니다. 교회 들어가서 직접적으로 함께 움직이면 더 우리 가정국과 함께 움직일 줄로 믿고, 또 우리 선생님도 더욱더 교회의 중심에 모셔서 우리와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자녀교육을 부모가 못하면 부모가 축복을 못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권자가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면 주권자가 당하게 된다.” 하셨습니다. 고로 주권자는 백성들의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날마다 힘 을 씁니다. 찬양인도자가 무대에서 청중을 압도하지 못하면 청중에게 압도당해서 주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말 씀을 전하는 자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청중을 압도하지 못하면 주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녀에게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철저히 다스리고 신경 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냥 두지 마시고요. 이 안에서 계속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생각해야겠습니다. 열매 결실입니다. 또 한 가지, 이것은 지적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특히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칭찬, 칭찬, 칭찬’을 강조하셨 습니다. 가정국들 너무 많이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특히 많이 해줘야 한다고 원고 중간 중간에 ‘칭찬, 칭찬’ 써놓으 셨더라고요. 맨 끝에도 “칭찬 또 칭찬이다. 알았지?” 그런데 말씀할 때는 칭찬이 잘 안 나가더라고요. 여러분, 오늘은 칭찬 을 기본으로 전제합니다. 우리는 아무래도 선생님을 쳐다보게 됩니다. 그런데 일하다 보면 정말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 이 아무리 해주셔도 내가 가서 죽을 쓰면 그 집회는 죽을 씁니다. 특히 해외순회를 가면 이런 상황들이 더 심각합니다. 날 마다 그 나라를 위해서 힘을 써주고 노력을 해줘야 됩니다.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들의 어려운 점을 먼저 밟아줘야 합니 다. 그다음에 선생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대화를 할 수 있게끔 내가 해주지 않으면 그냥 단절됩니다. 그것은 내 책임입니 다. 선생님 주신 말씀이 요러한데, 이 말씀의 표현을 잘못 표현해버리면 그날 죽을 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게 축복을 주 셨어도 교역자 사명을 주셨어도 내가 행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날마다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몸 될 자를 찾는구나.’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녀들을 키워줄 몸 될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른데 서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밖에 없지 않습니까? 가정국 자녀들 중에는 선생님께 편지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느냐? 컴퓨터에 다 기록이 됩니다. 선생님 조카들은 편지가 많이 온답니다. 정범석 목사님 자녀들은 선 생님께 정기적으로 편지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배가정국 같은 경우는 벌써 대학생들이 된 사람도 있고, 웬만 하면 중고등학생입니다. 그런데 편지 오는 SS를 보면 거의 기성에서 온 사람들, 이방에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더욱더 계획적으로 그들을 기르신답니다. ‘이방에서 온 자들이 낫구나. 기성에서 온 자들이 나를 더 위로하는구 나. 악평도 이기는구나. 어려움도 이기는구나.’ 오히려 그들이 선생님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계획적으로 이들에게 편지도 주고 교육도 시키신답니다. “너희들이 부지런히 성장해서 열심히 커나가서 나를 도와주어라.” 이 모든 것 은 교육 부족입니다. 그리고 신앙스타들, 옛날 상록수를 말하지요. 신앙스타들도 거의 99%가 일반 사람들입니다. 가정국 자녀 중에서 스타 된 사람은 아마 몇 명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 역사는 기준을 세운 자가 끌고 가고 바통을 쥐게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라고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만듦으로 인해서 우리 자녀들이 온전하게 성장하고, 섭리사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를 바랍니 다. 예수님도 기독교에서 못하니까 선생님을 세우셨습니다. 기준을 세웠거든요.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그에게 돌아갈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섭리사 또한 “누구 태에서 났느냐? 누구 형제냐? 누구 자매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선생님께서 누누 이 말씀하셨습니다. “인맥, 연륜 다 필요 없다. 기준세운 자, 조건세운 자, 하나님은 그를 쓰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 더욱더 기도해주겠습니다. 또 올해 더욱더 앞으로, 본격적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구체적으 로 대화하고 연구하는 가정국 되기를 진실로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교육이 거의 끝나갑니다. 주님은 진실한 것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을 받는 조건이 되어 있으면 축복 은 오게 됩니다. 조건 중에 가장 큰 조건은 바로 진실함입니다. 진실함으로 행하고 진실함으로 사는 자, 주님의 능력을 믿 고 그에 따라 내가 행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두고 실천하고 연구하는 자는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을 주어도 물 질로 빠지지 않게끔 진실한 자, 세상 것을 먼저 쳐다보지 아니하며 주님을 쳐다보면서도 축복을 이룰 수 있다 자부하는 자, 주님을 최우선에 두고 살며 주님께 맡기면 내 자녀가 잘된다고 믿고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서 진 실한 사람으로서 주님은 축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을 아십니까? 모든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압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기 억합니다. 왜요? 그는 진실한 자였습니다. 주님이 주신 축복, 하나님이 주신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이 자녀축복이었습니 다. 수태가 끊긴 사래에게 자녀를 잉태하게 하는 축복을 주심으로 귀한 아들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삭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축복 주셔놓고 왜 빼앗아갑니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 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했습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실 이도 하나님이시지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그 제사대 위에 제물로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를 믿음을 조상으로 세우시고 자손 대대로 그 자손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결국 야곱의 열두지파가 되고 그 지파가 뻗어나가 역사를 이루게 되었지요. 우리는 영원한 것을 보고 갑니다. 그러니 신중히 생각하고, 온전히 생각하고, 순간 얻을 것만 보 고가지 않으면서 진실 되게 주님 앞에 내 마음을 온전하게 내비추면서 구할 것을 구하고, 행할 것을 행하면서 가야 되겠습 니다. 믿습니까? 진실한 가정국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서서히 매듭짓습니다. 희생, 가장 좋은 것은 서로 희생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서로 이해입니다. 서로 사랑 입니다. 혹여나 부부가 같이 오셨다면 서로 사랑, 서로 희생, 서로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서 가정천국 이루시길 바라겠고, 혹여나 서로가 되지 못하는 분들은 낙심하지 말고 내가 희생, 내가 이해, 내가 사랑하면 주님이 하셨듯이, 역사가 이루어 지는 것을 믿고 포기치 말고 낙심치 말고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희생 나 희생, 주님 이해 나 이 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선생님 희생 나 희생, 선생님 이해 나 이해, 역사가 일어납니다. 서운함이 없습니다. 축복은 따 놓 은 당상입니다. 원리가 있습니다. 비오는 원리가 있어야 비가 오듯이, 눈 오는 원리가 있어야 눈이 오듯이, 축복받은 조건 을 갖추어 놓으면 축복은 자동적으로 오게 되어 있고요, 사탄 오는 조건 만들어 놓으면 사탄은 자동적으로 오고요, 귀신 오는 조건을 만들어 놓으면 귀신 옵니다. 음산하게 “흐흐 나 어떻게 살아?” 밥도 안 먹고 눈 횅해가지고 있으면 귀신 옵 니다. “내 팔자야, 내 팔자야.” 하면 "내 팔자야." 하고 죽은 귀신 옵니다. 조건 따라 옵니다. 몇 년 전에 퇴마사 한명을 만 났습니다.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들은 전도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뜻이 있으면 오겠지요. 퇴마사에게 들을 얘기 하나도 없 는데 한가지 들을 것이 있었습니다. 퇴마사에게 "귀신은 왜 옵니까?" 하고 물으니 퇴마사가 "아이고, 귀신이 올 짓을 하고 사니 귀신이 온다." 하더라고요. "아, 고거 하나 맞는 말이다."라고 했거든요. 밥 잘 먹고 불평불만 안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도 귀신이 안 온답니다. 그런데 주님 믿지 않음으로 귀신이 온다는 것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안 됩니 다. 조건 세우는 대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 오실 조건 세워놓으면 반드시 주님 오시고, 축복받을 조건 만들어놓으면 반드시 축복을 주시는 줄을 믿습니다. 사탄이 오지 않도록 마귀가 오지 않도록 내가 희생, 서로 희생하여서 하나 되는 가 장 윗 단계에서 사시는 가정국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충만히 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안 해주신다더 니. 말씀으로는 마지막 말씀입니다. 선생님이 "나는 쓴 잔을 너무 많이 마셔서 달아."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말씀 을 듣고 굉장히 슬펐습니다. 그래서 새벽 내내, 기도할 때 마다 엄청 울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우니까요. ‘오죽해야 쓴 잔이 달까. 선생님이 그냥 달게 생각하시는 것이 아닐까?’ 선생님께 다시 여쭈어 보았습니다. 너무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니까 너무 괴롭고 고통스럽더라고요. 선생님 그 안에 계시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그래서 선생님께 다시 여쭈었습니다. " 선생님, 쓴 잔이 달면 안 되죠. 저랑 나눠먹어요. 쓴 잔이 달면 안 돼요." "네가 한 번 겪어보아라. 너 겪어봤을 텐데. '쓴 잔이 왜 달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이 "너도 쓴 잔을 많이 마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 나도 쓴 잔을 많이 마실 운명인가 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써도 마시고 살아야지. 쓰면 몸에 좋다는데.’ 그런데 해보니 까, 쓴 잔을 자꾸 마시게 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요? 주님이 그냥 두시지 않는다고. 주님이 깊은 마음을 주십니다. 옛날에는 조그만 것 하나 가지고도 서운해가지고 투정했거든요. 그런데 큰 어려움 한 번 지 나가니까 웬만하면 그냥 합니다. 뒤에서 누가 뭐라고 브레이크를 걸면 웃으면서 "에이, 왜 이래요?"하며 툭 치면서 가게 되 더라고요.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정말 없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을 크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쓴 잔이 단 이유는 내가 괜찮은 것입니다. 쓴 잔을 마셔도 내가 괜찮은 거예요. 그냥 ‘맛있다. 좋다.’ 단 것 같습니다. 이것도 마시니까 ‘좋다.’ 라는 생각이 드니까, 쓴 잔이 달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래서 이 말씀을 하셨구나.’ 장성할수록, 성장할수록 어렸을 때 모르던 쓴 잔을 많이 마시게 됩니다. 어렸을 때 마냥 좋아 ‘역사는 이루어질 거야. 가자! 힘내자!’ 그런데 막상 생활 가 운데 부딪히고, 환경 가운데 부딪히다 보면 너무나 쓴 잔을 마시게 되고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앞에서 이 야기 합니다. "하자. 이루자.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쓴 잔을 마셨을 때, 주님은 반드시 운명 을 함께 하며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앞에 서서 후배들에게 "하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쓴 잔? 달려라. 쓴 잔 마시면 그거 독주인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약이더라." 하고 말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는 내 마음, 내 의지, 내 생각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 만들어졌는가, 나는 끊임없는가, 꾸준한 가, 변함없는가.’ 평생 웃으면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편하게 살아도 마음이 지옥이면 지옥이요, 아무리 몸이 불 편해도 마음이 천국이면 천국입니다. 작게 산다고 해서 작은 어려움만 겪는 것이 아니고, 크게 산다고 해서 큰 어려움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작게 사는 자, 작은 마음먹고 살면 큰 어려움입니다. 크게 사는 자, 태풍같이 쓰나미같이 큰 어려움이 밀려와도 큰마음 먹고 살면 그냥 바람에 불과합니다. 큰마음, 큰 생각, 큰 꿈을 가지고 도약하는 우리 가정국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하며, 마음의 결심하 고 주님의 능력을 믿는 자는 이미 축복을 받은 자인 줄 믿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할 때 주님께서 큰 능력 주실 줄로 믿습니 다. 아멘 ("아멘") 선생님께서 편안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정국들, 늦게 퇴근하고 늦게 잡니다. 교회에서는 이것도 모르고 “왜 새벽기도 안 나오느냐?”고 자꾸 얘기하면서 "가정국이 말이야 왜 저러나." 그렇게는 말은 안하지만 '가정국이 왜 저러나. 신앙이 별로인거 같아.' 이런 눈치를 주면서 약간은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과 연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진짜 궁금한 것 중에 하나입니다. ‘새벽예배 못 나가는데, 선생님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실 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생활 속에서라도 꼭 하자!” 안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상황을 주셨기 때문에 “새벽에 못나온다고 오해 좀 받지 않게 생활 속에서라도 하라. 생활 속에서도 안하니까 그러는 거다.”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너희가 교역자를 교육시켜라. 어떻게? 새벽예배 안 나오지만 정말로 집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너희가 교육을 하 라. 그리고 고려해달라고 부탁해라. 그리고 안 되면 가정국 지도자들이 말해주어라.” 여러분, 정말 새벽예배 못나오는 사람 들은 생활 속에서라도 꼭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도 못하면 안 됩니다. 사실 새벽기도하면 은혜가 옵니 다. 못 나가는 분들은 교회까지 나가기 힘들면, 벌떡 일어나서 주님께 기도하고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 하루 못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오늘 나는 죄를 지었구나. 오늘 나는 잠을 자버렸구나.’ 하지 말고, 내일 또 일어나서 또 하시고, 또 도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새벽기도는 끊임없는 숙제입니다. ‘내일은 잠을 자지 않으리.’ 그러나 축복의 통로인 줄로 믿습니다. 새벽기도 못하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늦은 자로서의 성공 은 무엇이냐? 여러분, 말씀 들으셨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늦은 자로서의 성공은 늦더라도 하는 것이다.’ 꼭 그렇게 행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부부가 화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화목해야 경제 신앙 가정의 모든 축복이 이루어진다.” 하셨습니다. 여러 분, “절대적으로 부부일체 되어서 변화되기를 바란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늘 화평으로 우리 자녀들 정기적으로 교육 하기를 바란다.”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 툭툭 치고 지나갑니다. “오래된 자들 많으니까 감각이 무디다. 감각이 무딘 것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죽어야 되나요? 감각이 무디면 조용히 있어야 되나요?” “이런 바보들, 기도해야지, 자꾸 모여 야지, 자꾸 새롭게 해야지.”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선생님이십니다. 그러면서 또 한마디 하신 것이 “나는 고립이 되어 있으 니까 너희들보다 감각이 더 무디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냐고? 늘 뛴다. 어떻게? 예수님께 더 묻고 대화하고, 사람들에 게 편지하여 묻고 또 묻고. 내가 여기 있다고 환경 탓하고, 무슨 탓하고 가만히 있으면 나만 손해야. 내가 물어보고 내가 움직이고, 내가 자꾸 찾아야 찾아진다. 너희들도 오래 되었다고 감각 무디다고만 하지 말고 더 기도하고, 더 뭉치고, 더 주 님께 간구하고, 자꾸 서로 이야기해주면 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했지만, 건축할 때 몸이라도 내놓고, 한 사람도 빠지지 않게 우리 가정국부터 시작해서 중고등부, 은하수들까지 기도로 함께 할 수 있게끔 여러분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반말로 "바빠서 더 못쓰겠 다." 하셨습니다. 바쁜데 여기까지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 편지가 가야될 시간이다. 주님이 조은 목사 통해서 말씀 하신다고 했으니 또 말씀 들어보기를 바란다.” 그래서 저도 제 간증 몇 가지 섞어서 선생님이 말씀하라고 하신대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혹여나 의논을 못하는 것이 있으면 나대신 조은이와 의논해라. 내 대신 뛰는 자이니까.” 제가 더 잘해야 되 겠지요? 제가 더 관심 많이 가지고 기도해드리고, 저도 더 연단 받고 단련된 장성한 자로서 여러분보다 더 후배이긴 하지 만, 더 열심히 뛰어서 함께 하기로 하겠습니다. 물론 저랑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과 예수님과 해나가야 합니다. 저는 중 간에서 도울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허벅지가 너무 쑤신다. 저녁 9시 30분 전인데 저녁기도 해야 돼. 불가능한 것 지금 해주는 것이다. 정신이 빠져서 글을 쓰고 나면 다리가 굳어져. 그래서 일어나면 퍽 쓰러진다.” 그러면서 퍽 쓰러지는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이건 주님만 아시지.” “깨닫는 것이 교육이다. 섭리인들 중에 몰라서 못하는 사람 거의 없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냐? 깨닫는 것이 문제이 다. 왜? 깨닫는 만큼 행하니까. 알아도 안하니까. 선생은 실천자라서 다 안다. 지금도 민족 세계 섭리사 위해서 기도해야 돼. 기도 안하면 실제로 문제가 터지고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저마다 목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자기를 위해, 가정을 위해 밤이 새도록 기도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교육시대가 아니라 교육해주었으면 너희들이 깨닫고 행하는 시대이다. 교 육해 주었으니 저마다 하기를 바란다. 안하면 사망이 덮치는 때이다. 본인의 수고가 80% 이상 필요하다. 자녀교육,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주님이 자녀로 인해서 축복해주실 것도 안 해주신다. 어떤 자는 여자 가정국 자녀인데, 술 담배를 해. 이 방에서 온 자들 만도 못하다. 내게는 중고등부에서 보고가 오니까 내가 너희를 교육해 주었으면 꼭 너희가 교육해주기를 바란다. 일 저지르면 결국 부모책임.” 이렇게 쓰셨습니다. 여러분, 함께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가정축복 해주셨으니, 가 정국은 축복을 받을 수 있게끔 조건을 세우고 대가가 따라오도록 하길 바란다. 매일 기도해주고 있다.” 말씀했습니다. 그 리고 “월명동 건물, 뭉쳐서 계속해서 행하기를 바라고, 사업하는 자들 조심성 있게 하고, 가정국들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 서 하고, 힘든 자들 꼭 선생님과 의논하고 대화하고 편지도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