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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1.03.28 (월)

주날개 강남제일 주께나아가는각자의길

선포일
2011.03.28 (월)
성경 본문
오후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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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날개20110328강남제일-주께나아가는각자의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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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나아가는 각자의 길 작성일: 2011. 3. 28 (월) 오후 5:25 작성자: 주날개(서울 강남제일 교회, 모델부) [ 일주일 동안 월명동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는 저의 고질병인 ‘경쟁의식’에 대해 깊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 확인받고 저같이 힘들어하는 자들에게 전해 주자고 하셔서 서울에 돌아와 기도할 때 정리해 주셨습니다.] * 예수님 말씀 * 월명동에서 약속한 말씀 정리해 줄 테니 잘 적어서 선생 보여주고, 섭리에 너와 같이 힘들어하는 자들에게 전해 주어 은혜 나누고 힘내서 포기하지 말라고 전해 주자. 구주 메시아 예수 전하노라. 이 글을 적고 있는 자의 마음 밭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 경쟁의식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에 이 내 가슴 아파 안타까워 완벽히 풀어주고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야, 섭리사에는 사명자인 선생이 있고 메시아인 나 예수가 존재하며 머리가 되어 이끌고 있노라. 그를 따르고 나를 따르고, 그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가 수천, 수만이라 1 대 수천, 1 대 수만이라 생각하여 경쟁하고 비교하며 시기하고 낙심하고 사탄 밥 되고 포기하고 자책하는구나. 자책은 영이 스스로 자살하는 격과 같이 (영과 마음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 그러다 지쳐 쓰러지고, 서운함 타서 나를 등지고 구원을 등지고 섭리사 떠난 자들 셀 수 없이 많고도 많기로 너를 통해 그 고질병을 뽑아 내고자 한다. 너와 나 사이에 길이 있다. 그 길을 걷지 않고 다른 자와 나 사이의 길을 따라 걸으려 하느냐. 나는 너의 길에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자의 길을 따라 걸음이 어찌함이냐. (“예수님, 무슨 길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람과 나 사이에는 길이 있다. 일대일의 길이다. 그 길의 이름은 각자 너희 이름과 같다. 너희 신앙 인생, 한 일생 그 길을 걷는 것이다. 끝까지 걸어온 자는 나 예수를 맞을 것이고, 뒤로 돌아가는 자는 사망으로 떨어질 것이다. 마치 달리기 경주처럼 재림 기간이라는 시간 안에 결승점인 나 예수까지 닿느냐 닿지 못 하느냐하는 입장과 같다. (“그럼 예수님, 제가 다른 자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슨 말씀인가요?”) 네가 더 잘 알 것이다. 다른 이를 보고 위축 들고 낙심하여 그가 내게 나아오는 것처럼 나에게 나아오려고 하지 않느냐. 그것은 그 사람의 길이다. 나는 각자의 길 끝자락에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네가 너의 길이 아닌 다른 자 따라 그 길을 걸으면 너의 길 끝에 서서 나는 하염없이 너만을 기다리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어떤 말씀인지 저뿐 아니라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게 조금만 더 설명해 주세요.”) 각자 나와 만나는 방법, 방식, 순서, 원하는 것 모두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이다. 그런데 너는 내가 너에게 원하는, 네가 나아와야 하는 길이 아닌 다른 자 뒤를 따라하고 있으니 마치 네가 주인이 되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뒤 따라가는 격이라는 말이다. 이해가 되느냐? (“네, 예수님. 이제 확실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일대일을 길로 표현하여 보다 더 깊이, 세밀히 말씀해 주신 것이지요?”) 너희는 각각 개성체로서 모두 나와 각각의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의 길이와 형태 등은 모두 각각 다르다. 즉 나아오는 방식도 만나는 방식도 모두 천차만별 다르다는 것이다. 길의 길이가 짧은 사람도 있고, 긴 사람도 있고, 직진의 길인 사람도 있고, 미로같은 사람도 있고, 완만한 사람도 있고, 험난한 사람도 있다. (“예수님, 주님께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은 동일하나 그 길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 길이 험난한 자도 있고 완만한 자도 있나요? 공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과 치타와 거북이, 개미, 코끼리가 같이 달리기 경주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공의롭더냐? 더 쉽게, 1살짜리 아기와 10살, 20살, 30살, 40살, 50살 사람이 달리기를 한다면 공정한 경기더냐? (“아니지요.”) 그와 같다. 그와 같이 너희 각각에 맞게 그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그러면 섭리사 오래된 사람과 나중 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성경을 보자. 포도밭에서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일꾼과 그 뒤에 반나절 일한 일꾼들이 같은 삯을 받은 이야기 알지? 육적인 차원에서는 오래된 자, 나중 된 자 각각 행한 대로 받는 것이다. 행한 대로 축복받는 것이다. 영적 차원으로 보면 섭리사 오래된 자, 나중 된 자 모두 회개하고 말씀 따라 행하며, 나 예수를 사랑하며 시대에 맞게 살았더라면 모두 재림을 맞는 삯을 똑같이 받는 격이다. (“예수님, 이제 속 시원히 풀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희와 나 사이에 있는 각각의 길은 책임분담이다. 할 수 없고 불가능한 길은 주어지지 않는다. 단 한 명도 없으니 섭리사 모두 사랑의 책임분담, 신앙의 책임분담, 믿음의 책임분담, 행함의 책임분담, 각종 책임분담 다하길 바란다. 남 것 볼 것 없다. 시간만 지체될 뿐이다. 재림이란 시간 안에 결승선을 통과하기 바란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결승선의 문이 닫혀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게 된다. 속 시원히 풀렸느냐? (“네, 주님. 선생님께서 고질병 고치라 하셔서 비교하고 서운해 하는 것 고치겠다고 약속드렸는데 이젠 완벽히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님 진정 감사드려요.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답답해도 끝까지 매달리며 몸부림쳐 받으니 말씀이 너무 귀하고 귀함을 더욱 깨닫게 되었어요. 선생님도 시대 흐름의 말씀을 받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실지 상상할 수도 없겠죠?”) 귀한 말씀 받았으니 귀하게 여기도록 하여라. 너희 각각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랑의 구주 예수니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