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1.04.24 (일)
계시말씀 7d681f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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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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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차원을 높여야 얻을 것을 얻는다
작성일: 2011. 3. 13. (일)
작성자: 이선진 (진주 주하나)
[ 철야기도 중 하나님과 심정이 멀어져 있는 것을
느끼고
그 전날 마음으로 지었던
이성과 음란의 죄 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금방 용서해 주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금방 마음을 누그러뜨리시고
용서해 주셨을 정도의 사소한 마음의 음란죄였는데
이번에는 계속 회개하여도
쉽사리 마음을 푸시고 용서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회개 중 “나 너 모른다.”라고까지 하셔서
놀라서 더 간절히 회개하였습니다.
겨우 하나님의 심정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께 다시는 사소한 자의적인 이성, 음란죄조차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였고, 만약 또 짓게 되면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냐고 여쭈어보자
“그 때는 이성 죄만 다섯 시간 동안 회개하여라.”
라고 하셨습니다.
금식기도처럼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 하나님 말씀 *
사랑아,
이제 내가 너의 마음밭에 말씀을 적을 터이니
너는 잘 듣고 깊게 새기어 잘 전해 주어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는 점도 흠도 없이
섭리사 모든 신부들이 깨끗해지길 원하노라.
사랑아, 너는 오늘 경험을 통해
죄를 온전히 깨끗이 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이는 죄의 종류와 시대적 차원에 따라
회개에 들여야 하는 노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더 깊게 설명할 것이니 너는 잘 들어라.
먼저 성약급의 신부와
종급, 아들급 구원에 속해있는 자를 비교해 보자.
신부는 신랑의 사랑을 독차지할 정도로 많이 받는
다.
아들급, 종급에 속해 있는 자들도
나의 사랑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신부급에 비하면 그 사랑은 적고도 적다.
사랑의 차원이 높으면 높을수록
기대의 차원도 높은 것이다.
기대의 차원이 높다는 말이 무엇이겠느냐.
그만큼 네가 죄를 지었을 때
나의 실망감도 높다는 말이니라.
나는 네가 예전에 죄를 짓던 것과
지금 죄를 짓는 것을 다르게 본다.
이는 너의 죄를 회개하는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
며
동시에 나와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니라.
온전히 계속해서 차원을 높여야 하며
그 전의 차원을 보아선 안 된다.
차원은 한 번 떨어뜨리면 다시 올리기 힘들며
이를 위해선 피가 날 정도의 몸부림이 필요하다.
(“하나님, 차원을 높이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듭니까?
하나님께서 쉽게 올려 주시면 안 되는 것인가요?”)
차원은 많은 것을 담고 있지.
단순히 사랑의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 생각, 행동, 습관 등
많은 것의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도의 차원, 말씀의 차원, 찬양의 차원, 감사의 차
원 등
신앙세계 안에서도 많은 것들의 차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차원을 높인다’라는 말은
단순히 사랑과 기도의 차원만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며
인생 제반의 것들을
모두 차원 높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말이 이해가 되느냐?
(“네, 하나님.
그동안 착각하고 있었어요.
말씀을 통해 차원을 높이라고 말씀하셔서
단순히 저의 사명인 기도와
섭리인들의 필수인 사랑의 차원만을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정신, 사고, 생각, 습관, 행동,
생활 속의 모습, 성격, 말 등
모든 것의 차원을 다 같이 올려야
‘차원을 높인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차원 안에 포함된 항목들 중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다른 항목들은 모두 차원을 높였어도
그 하나 때문에 결국
차원을 높이지 못한 것이 되는군요?
결국 말씀에서 말한 것들을 백퍼센트 버릴 때
차원이 올라가는 것이군요?”)
그래.
‘점도 흠도 없이 깨끗하고 온전하여라.’라는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하나라도 깨끗지 못한 것이 있으면
그 하나가 다른 것들을 모두 오염시키는 것이니라.
하나라도 아직 온전히 버리지 못한 것이 있거든
어서 버려라.
그래야 네 영혼이 온전히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며 기쁨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알았지?
(“네, 하나님.
말씀에 걸리는 것들을 하나하나 계속 포기하고 버
릴 때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의 말씀, 찬양, 기도, 전도에서
얻는
영적 기쁨의 차원이 높아짐을 느꼈습니다.
버리지 못한 것들이 많았을 때에는
말씀을 읽어도 재미없고 지루하였고
‘내가 왜 읽어야 돼? 더 재미있는 게
사방에 널렸는데.’라고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버리고 나니
예전 세상 것에서 얻던 재미와 즐거움을
하늘 것에서 누릴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것이 바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인 것이
다.
진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섭리인들조차 진리 안에서만
자유함과 즐거움을 누리려 하지 않고
세상 것과 병행해 가며 산다.
오히려 버리면 자유로워지는데
버리는 그 순간이 힘들다고
못 버린다며 불평불만들을 늘어놓고 있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사탄의 마수에 사로잡혀 앞 못 보는 소경과 같구나.
계속해서 사탄들의 눈가림에 당하는 자들아,
너희가 진정 진리 안에서만
자유함을 누리고 싶다면 버려라.
완전히 버려야 가능하다.
진정 자유함을 주리니 내게로 오라.
내 품 안의 즐거움이 영원한 기쁨이며 즐거움이로
다.
내 품 안에 온전히 거하며
기쁨을 누리는 자들 되어라.
안녕, 나 여호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