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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1.05.22 (일)

계시말씀

선포일
2011.05.22 (일)
성경 본문
새벽 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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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핵심 작성일: 2011. 2. 15. (화) 새벽 3:45~5:05 작성자: 이주인 (기드온 가정국 4기) 〔주일 말씀을 들은 후, 선생님을 위로해 드리지 못 한 것에 대해 회개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갑 자기 “사랑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느냐?”라고 물으셨습니 다. 저는 골똘히 생각했지만 잘 알지 못하였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세요.”라고 답을 했습 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상호작용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후 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 다.〕 * 예수님 말씀 * 너희가 단상의 말씀을 통해 선생이 심정을 깊이 토로한 것을 들었을 것이다. 선생에게 관심 가지며 위로하지 못한 것을 이제야 너희가 회개를 하고 있구나. 나도 선생도 너희를 이리 가르치지 않았는데 너희가 ‘신의’없는 자처럼 행동하여 나도 선생도 서로 민망한 모습이 되었구나. 특히나 오래된 자들은 많은 세월을 말씀을 통해 교육을 받았건만 어찌 이리 행하여 ‘신의’ 없는 자가 되었느냐.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너희들은 누구보다도 더 영적인 깊은 말씀을 들었으나 말씀을 듣고서 행동치 않으므로 눈과 귀와 입술만 커진 괴물과 같은 자들이 되었구 나. 말씀을 듣는 이유는 행동키 위함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고 기억해야 한다. 내가 ‘신의’라는 표현을 쓴 것은 너희가 시정잡배들이 가진 ‘의리’조차 갖지 못해서 내 최고의, 사랑의 신부인 선생 마음을 아프게 한 연고이니라. 인간이 꼭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신의’인 것이 다. 어려울수록, 힘들수록 곁을 떠나지 말고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어야 하건만 지난 30년 동안 깊은 말씀을 전해 듣고도 너희는 어찌하여 세상의 시정잡배들보다 못한 자들처럼 행동하여 나도 선생도 서로 민망케 하였느냐. 나도 선생도 그리 가르치지 않았건만... 나를 사랑하는 것이 곧 선생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관심과 신경을 썼느냐? 그러면 너희는 선생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느냐? 선생은 곧 육신 쓴 나이다. 이 말을 머리로만 알고 진정 깨닫지 못한 자들이었기에 이리 한 것이다. 내가 2000년 전 나의 제자들에게 ‘나를 본 것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했었다. ❏ 요한복음 14장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는 하나님의 본체가 나와 일체되어 나와 늘 동행하시고 행하셨기에 그러한 것이다. 즉 나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영체는 따로 있고, 나와 늘 동행하셨던 하나님이시기에 그러한 것이다. 고로 선생도 이러하지 않느냐. ‘선생을 본 자는 곧 나를 본 자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본체가 선생과 일체되어 늘 동행하며 행하였기에 이러한 것이다. 이러하기에 선생이 곧 나인 것이다. 선생의 영, 혼, 육이 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본체가 그와 하나 되어 있기에 선생을 본 자는 곧 나를 본 자처럼 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선생에게 한 것은 곧 내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선생을 모시고, 섬기고, 위하고 신경을 쓰며 관심을 갖는 것은 곧 내게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이는 선생에게도 제대로 못하는 너희가 안 보이는 내게는 어찌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진실로, 진실로 회개해야 한다. 너희 중 많은 자가 2000년 전의 내 육신을 못 보았다고 한탄하며 그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내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며 모시고 섬김을 다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지 않았느 냐. 그렇다면 시대의 사명자인 내 몸 된 선생에게 그 아쉬움을 풀기 위해 내게 하듯 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진정 선생이 내 몸 된 자임을 깨닫지 못했기에 이리 한 것이라 내가 다시 일러주는 것이니, 앞으로는 이와 같은 우를 범하는 자가 다시는 없길 바라노라. (“주님, 진정 죄송합니다. 주님께도 선생님께도 너무도 죄송하고 죄송합니 다.”) 그래. 내가 이리 다시 말하는 이유는 너희가 다시는 이런 ‘신의 없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 다. 또한 내가 너에게 질문한 사랑의 핵심을 일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랑의 핵심은 ‘상호작용’이라 하였다. ‘사랑의 상호작용’은 곧 ‘사랑의 수수관계’이다.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온전한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사랑의 감정을 홀로 갖고서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사랑의 감정을 둘이 주고받아 상대방과 감정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즉 사랑하는 자들끼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일체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호작용’이 없이는 결코 온전한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의 핵심 중 핵심은 ‘사랑의 상호작용’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생이 너희에게 ‘사랑의 수수관계’에 대해 지난 30년 동안 누누이 일러주지 않았느냐. 휴거의 비밀 또한 사랑이라 말한 것은 ‘사랑의 상호작용’에 의해 휴거가 이루어지기에 그러한 것이다. 홀로 하는 짝사랑은 사랑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주는 일방적인 감정일 뿐이다. 고로 사랑은 ‘상호작용’에 의해 서로가 하나 되는, 곧 일체되는 것을 사랑이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랑의 에너지도 ‘상호작용’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이 사랑의 에너지인 끌고, 끌리는 힘인 ‘상호작용’에 의해 천상천국과 우주천국의 유무형의 창조의 역사와 인간 창조의 역사, 인류의 역사, 섭리의 역사가 진행되어졌고 앞으로도 진행되어질 것이다. 그러니 사랑의 핵심 중 핵심이 ‘상호작용’이 아니겠 느냐. 그런데 너희 인간들이 사랑의 타락을 함으로 인해 성삼위를 지난 6000년간 짝사랑하게 하더니만 선생을 통해 짝사랑의 사연을 지난 30년간을 외쳤 는데도 보이는 선생에게마저 섭리인인 너희가 짝사랑을 하게끔 하는 우를 범하였구나. 선생에게 위로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다는 것은 너희가 사랑을 실천치 못했다는 것이다. 너희가 사랑을 실천치 못한 것은 선생 혼자 너희를 짝사랑하게 한 것과 같은 이치이 다. 이는 곧 성삼위가 너희를 짝사랑하게끔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선생을 대함이, 성삼위를 대함이 되는 것은 선생이 곧 성삼위의 육신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이러하기에 또 짝사랑으로 인해 사랑의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못해 너희 중 많은 자들이 섭리역사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되었구나. 이는 개인사에 대한 뜻뿐만 아니라 섭리역사의 뜻 도 너희가 사랑의 책임분담을 못한 연고로 더 늦춰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 단상의 말씀을 통해 너희에게 호소하듯이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다. 선생이 어찌 본인의 위로만을 목적으로 단상 설교의 말씀을 전했겠느냐. 뜻이 깨어짐을 보고 너무도 안타까워 말씀을 전한 것이다. 평신도부터 지도자들까지 누구든지 선생을 모시고 섬기는 조건을 보고서 올해 대역사를 이루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자가 많지 않아 성삼위도 선생도 너희도 아쉬움을 가지게 되었구나. 그렇지만 긍휼의 왕인 성삼위와 선생은 너희에게 다시금 기대를 걸고서 기회를 줄 것이니 올해는 이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선생에게 더욱더 관심을 가지며 신경을 써 주도록 하여라. 이는 곧 성삼위가 받는 것이니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성삼위를 사랑하고 모시고 섬기듯이 선생에게도 이리 해 주길 바라노라. 이는 큰 계명 중 계명이요 의 중 가장 큰 의가 될 것이다. 사랑법이 첫째 계명임을 단상 설교를 통해 너희가 들었을 것이다. ❏ 마태복음 22장 36-40절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말씀을 온전히 깨닫고서 선생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며 섬기며 모 시는 자는 이 말씀에 응하는 자가 될 것이다. 이는 선생이 곧 성삼위의 육이요, 또한 너희와 같은 신부 입장의 형제이니 이 말씀을 깨닫고서 이루는 자는 이 말씀에 합당한 자가 되는 것이다. 고로 이 말씀을 꼭 지키는 자가 되어 가장 큰 의와 공적을 세우는 자가 되길 내 바라노 라. 사랑하는 애인들에게 사랑함으로 깊은 심정을 토로한 너희의 신랑 주 예수이다. (“주님, 죄송스럽지만 실은 저희가 어떤 것이 선생님을 위로하는 것인지를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위로라 함은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을 말한다. 선생의 심정을 알며, 선생의 입장과 처지를 알아 그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이 선생에게 하는 위로인 것이다. 너희가 선생의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또한 십자가의 노정을 온전히 깨닫는다면 선생의 심정이 전해질 것이다. 내가 육의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섭리역사의 뜻을 이루려 몸부림친 것처럼 선생 또한 이러하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선생은 섭리역사의 한 맺힌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을 붙들고, 마음을 붙들고서 처절히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선생을 외면하듯이 입술로만 떠들고 있으니 선생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마음이 무너지 며 사랑의 배신감 또한 느끼지 않겠느냐. 그리고 또 위로와 희망으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보다는 개인의 사사로운 문제만을 선생에게 적어 편지로 보낸 자가 많으니 내가 선생에게 민망스러울 때가 참으로 많구나. 너희는 먼저 선생의 입장, 처지, 환경을 생각하며 늘 선생을 위해 심정 깊은 기도를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선생에게 때마다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으니 선생을 위한 기도를 깊이 꼭 하도록 하여라. 기도를 깊이 하는 자는 내가 감동으로 이끌어 때마다 선생을 위한 합당한 위로를 깨닫게 할 것이 다. 다시금 부탁하노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인 선생을 꼭 신경 쓰며 관심을 가져 선생을 외로이 홀로 있지 않도록 해 주길 바라노라. 내 몸인 선생을 너희가 꼭 지켜 주길 원하는 주 예수가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