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1.06.27 (월)
계시말씀 1f064e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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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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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즐거움을 기대하며
버릴 것을 모두 버리고 사랑으로 나아오라
작성일: 2011. 3. 27. (일) 1:47~5:36
작성자: 이선진 (진주 주하나교회)
[ “주님, 생활 속에서
세상 것으로 즐거움과 낙을 누리고 싶었던
마음과 욕구 꾹 참고 왔어요.
오직 주님과 가장 가깝게 통하며
대화할 수 있는 사랑의 철야 시간만이
나의 인생의 유일한 낙이 되게 하려고요.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만으로
즐겁고자 하는 욕구를 모두 채우려고요.
부디 이 시간 나를 즐겁게 해 주세요.
제가 주님 기쁘고 즐겁게 해 드릴게요.”
서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왼쪽으로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앞쪽을 멀리 손으로 가리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아, 오늘은 좀 더 깊게 통하여 보자.
내가 저 멀리 가있을 테니
너는 사랑함으로 나에게 다가오너라.”하시고는
눈 깜짝할 새에 저 멀리 서 계시며
저에게 오른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느낌상 50m쯤 되어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간절히
저를 그 곁에 어서 데려가 달라고,
어떻게 해야 그 곁에 갈 수 있냐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순서대로 감사와 회개를
더 깊이 해 보려 노력도 해 보고 발버둥을 쳤습니
다.
계속해서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을 고백 드리며 간절히 기도 드리자
어느새 주님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
다.
그리고 한 발자국 남았을 때에
정말 정말 사랑한다고 더욱 간절히 기도 드리자
마지막 한 발자국조차 좁혀져서
주님과 저는 일직선상에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저를 안아 주셨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을 주신다 하셔서 적은 글입니
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아, 오늘 네가 본 환상은
사랑으로 다가올 때
그만큼 나와 더 빨리 많이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
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 환상에 대하여 설명해 주마.
잘 받아 적고 후일에도 새기도록 하여라.
사랑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는 말이 무엇이겠느냐.
말로만 사랑한다며 다가오는 것이
과연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니면 행실과 말 둘 다를 통하여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행실과 말 둘 다를 통해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요.”)
그래. 오늘은 내 이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행실로서 나에게 다가오는 것 말이다.
‘행실’은 마음밭이 구체화되어 형상화된 것이라 말
하였다.
물론 모든 행실이 다 진실된 행실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이겠느냐.
마음 따로 몸 따로 진실 되지 않은
행위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면 어떠한 행위들이 진실 된 행위들이겠느냐.
마음 속 깊은 사상과 정신, 생각의 뿌리에서부터
진실함의 기운이 타고 올라와 바깥으로 표출될 때
에도
진실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나의 눈에는 진실한 행위이노라.
이 진실한 행위로 나에게 다가오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밭을 깨끗이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깨끗한 것에서 깨끗한 것이 나며
더러운 것에서는 더러운 것만이 나오는 것이니라.
(“단순히 회개만 하면 마음밭은 깨끗해지는 것인가
요?”)
마음밭이 깨끗해지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서
‘지저분하지만 지저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발견해야 한다.
(“실상 말씀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쯤이야.’하며 스스로 합리화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 말인가요?”)
그래, 이것을 찾아내는 노력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평생 회개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찾아내지 못하여
지옥불로 떨어진 영혼들이 많단다.
이 합리화되어진 것들은
저 심해 바다 속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류와 같
다.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서 합리화된 것들과
직면하기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잘못’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버려야 할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게 되면
‘버린 것이 채워주고 있던 마음의 욕구’를
채워줄 것을 찾지 못함으로 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상 섭리인들조차 아직까지도
말씀 속에 나온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곁에 무한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나 예수를 두고서 말이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누가 만들었겠느냐.
그 감정을 만든 자가
그 감정에 대해 가장 잘 알지 아니하겠느냐.
‘희, 노, 애, 락’이라는 감정들 중
‘락’에 해당하는 즐거움은
내가 인간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나를 사랑함에 있어서,
나의 진리의 보화인 말씀을 들으면서,
실천함으로 누리라고 만들어준
영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루시퍼에 의하여
아담과 하와의 이성 범죄에 의하여
죄가 이 땅 가운데로 들어온 이후로는
인간들은 하늘과의 관계가 끊기니
자꾸만 이 땅에 있는 것으로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누리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것이 이어지고 이어져
‘현대’라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보아라.
솔직히 말해 이 현대 시대의 전유물들로도
얼마든지 인간들의 즐거움을 향한 욕구는
채울 수 있다.
수 천 년 동안이나 오직
‘즐거움’을 향한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그 좋은 뇌를 써 왔으니
지금쯤에야 얼마나 즐겁고 재미난 것이 많겠느냐.
그러나 나와의 관계가 끊긴 채로
연구하고 개발하여 만든 것들이니
육적 즐거움이요,
쾌락만을 위한 전유물들이 되었도다.
육적 즐거움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사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열차이며 지름길이노라.
나는 분명 세세한 것까지 말하였노라.
분명 너희의 생활 가운데서
하지 말아야할 것들에 대하여 낱낱이 말하였노라.
선생을 통하여 말하였던 것들을
애써 부인하려 하지 말아라.
(“맞아요, 주님. 작년에 선생님을 통해서
게임, 음란물, 티비, 영화 등
완전 세세하고 세밀한 것까지 다 지적하시며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나는 다 말해 주었다.
나는 너희가 이와 같은 것들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동시에 ‘즐거움’이라는 감정도 빼앗아 가려는 게 아
니다.
너희는 하늘 사람들이니
‘하늘과 끊긴 채로 연구되어지고 만들어진 것’으로
즐거움을 누리지 말고
‘하늘과 소통하면서 연구되어지고 만들어진 것’으로
즐거움을 누리라는 것이다.
뇌에는 ‘사고의 습관’,
‘생각의 습관’ 이라는 것이 있기에
오직 하늘의 것으로만 즐거움을 누리려는
첫 도전의 길은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이 습관의 법칙에 의하여
어느새 하늘 것으로만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점차 점차 차원성도 높아질 것이다.
(“주님, 세상에 이렇게나 유혹물이 많은데
오직 하늘 것으로만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까?
하늘 것으로만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더 깊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하늘 것에는 무엇이 있는지부터 보자꾸나.
먼저 하늘과 인간의 소통물인 ‘말씀’이 있겠구나.
이 ‘말씀’은
창조주의 영원성과 무한성을 담고 있는 그릇이다.
이‘말씀’은 선생에게조차 아직까지도
새로운 깨달음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앞으로도 선생을 통한 나의 말씀에는
선생이 새롭게 깨달은 것을 통한
새로운 진리의 말씀들이 선포될 것이다.
30여 년 동안 계속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통한
새로운 말씀들이 선포되었지만,
보아라.
세상 즐거움의 것들 중
영원성과 무한성을 지닌 것이 단 하나라도 있느냐.
없지 않느냐.
아무리 세상 것들이 즐겁다 하여도
결국 영원성과 무한성을 지닌 하늘 것 앞에서는
일순간 흩날리는 먼지와 같다.
고로 하늘 것에서 세상적인 즐거움을 찾지 말고
영원성과 무한성을 지닌 진리를 통하여
끝없이 오는‘깨달음’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라.
말씀을 통하여 행하였을 때,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누리어라.
다음은 ‘찬양’을 통한 즐거움이다.
찬양은 너와 나의 심정 교감이기도 하다.
찬양할 때 심정 다해 집중해서 부르다 보면
너와 나의 심정이 만나 결정체를 이루면서
감동 충만, 은혜 충만하게 되어
너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가 있지 아니하였느냐.
그처럼 찬양 시간은
‘너와 나의 심정을 부딪치며 교감을 이루는 즐거움’
을
누리는 시간이다.
다음은 기도의 시간이다.
이 지구상 수십 억 인구들이 만들어 내는
요란스러움을 멀리 한 채,
오직 유일한 ‘너’라는 존재의 마음 방을
고요함의 방으로 만들어
오직 나 예수에게
1:1의 관계로 나아오는 사랑의 만남.
이 시간만큼 너와 나의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도 없다.
그동안 쌓아 놓은 너와 나의 사랑을 확인하며
앞으로의 더 큰 사랑으로의 발전을 기약하며
도전하는 시간.
참으로 역동적이며 활발해져야 할 시간이거늘
수많은 섭리인들은 아직까지도
기도를 통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구나.
참으로 안타깝다.
기도만큼 즐거운 것이 없어야 하는데
지루함의 도구로만 생각하고 있구나.
기도를 통한 즐거움이 참 즐거움이다.
영계의 것도 누리고 볼 수 있으며
또한 나와 심정을 비비며
더 큰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 모두가 도전해서 누려야 할
‘기도의 즐거움’이다.
다음은 ‘전도’를 통한 즐거움이다.
이는 마치 보물 시장에서
‘이게 보물이에요?’, ‘저게 보물이에요?’
나와 대화하며 보물들을 골라내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어느 때보다
흥분되고 짜릿해져야 할 시간이다.
이 시간만큼 스릴 넘치는 시간이 있더냐.
수많은 보물들 중 참 보물 골라내어
너와 내가 공유하며 가지는 시간인데
즐겁지 아니하더냐.
진정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다.
‘강의 시간’은 너와 내가 대화를 해 가며
‘이 말 하면 어떨까?’
‘저 말 하면 어떨까?’ 의논해 가며
원석 상태인 보석을 깎고 다듬어
예쁜 보석으로 만드는 신나는 시간이다.
너와 내가 평생토록 보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보석을
만드는 시간인데 즐겁지 아니하더냐.
진정 즐거워해야 할 시간이다.
다음은 ‘관리’의 시간이다.
관리란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의 귀한 보석이
세상에 때 묻지 않게 지켜 내고 보호해 주는 시간
이다.
이 시간에는 너와 내가 두 손을 합하여
그 보석을 세상으로부터 지켜 내야 한다.
보호해 냄으로 점점 완성되어지고 있는
보석의 상태를 감상하며
성장된 보석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그 다음은 ‘성전 봉사’의 즐거움이다.
이는 신랑, 신부가 서로 대화하며
‘우리 집 어떻게 꾸밀까?’하며
구상하고 계획하며 꾸미는 시간이다.
또한 신랑, 신부가 함께 손님맞이를 위하여
집을 깨끗이 청소하는 기쁨의 시간이다.
신랑 혼자서도 할 수 없고
신부 혼자서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둘이 함께 해야 즐겁다.
(“주님, 아까 말씀해 주셨던
인간의 습관의 법칙에 대하여
더 깊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사랑아,
인간들이 그렇게나 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한 나의 기대감을 무너뜨리지 않는 이유
를
너는 아느냐.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선한 행실로 자신을 연단시키고 단련시켜 나아가면
선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습관의 법칙’에 의해서 말이다.
이 법칙에 의하여
인간은 자신을 만들고자 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며
악한 자도 선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니라.
이 법칙 때문에
내가 인간들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나 선하고자 하면 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자마다 온전히 선해지기까지는
필요한 시간의 차이도 있으며 노력의 차이도 있다.
하지만 선해지기까지
각자가 겪게 되는 고통과 연단들만 넘기면
누구든지 온전히 선해질 수 있게 창조하였다.
요즈음 가면 갈수록 빨라지는 세상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인내심의 수준들이 점차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인내심이 없으면
선이 온전히 습관화되기까지 가지도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결코 그러지 말지어다.
포기치 않으며 끝까지 인내함으로 참는 자는
온전히 선해지리라.
선한 행실의 습관화가 곧 선한 자를 만드는 것이다.
(“주님, 선생님께서도 인내함으로 포기치 않으시고
선한 행실을 계속해서 습관화하심으로
그렇게 큰 의인이 되신 것이지요?”)
맞다.
항상 선생에 대하여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인내와 끈기, 오래 참음이다.
항상 참고 또 참아
결국은 승리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선생이 처음부터
저러한 의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겠느냐.
아니지.
내가 인간에게 준
인내와 끈기, 오래 참음의 근성으로
그 스스로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너희는 좀만 힘들면
‘도저히 못 하겠다.’하며 포기해 버린다.
그렇지만 선생은
왜 그것이 힘들며 안 되는가를
정확히 분석하여
자신을 고치고 또 고쳐서 만들어 나아간 것이었다.
그러다 한 습성을 완전히 고쳤을 때에는
‘야호!’하며 산 하나 정복하였을 때의
기쁨을 누리며 즐거워하였다.
이렇게 너희도 고쳐야 될 것들을
기쁨으로 인내와 끈기, 오래 참음으로 고치어라.
알겠느냐.
선생처럼 자신을 고친 자만이 나에게 합당하도다.
‘행실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온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니라.
자신이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을 찾고
이를 하나하나 버릴 때
나와 한 발자국, 두 발자국씩
사랑으로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사랑을 목적 삼고 하나씩 하나씩 버리어라.
어느새 너는 나의 곁에 서 있을 것이다.
사랑아,
신부인 너의 자리는 나의 곁이다.
너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라.
그렇게 나의 곁을 지키다 육의 생이 다하거든
나와 함께 천국문을 열고
우리의 보금자리로 들어가자꾸나.
영원한 사랑이며 영원한 행복이로다.
섭리인들아,
오늘 나의 말을 지켜 행하여
모두가 나의 곁으로 오라.
영원한 안식과 쉼을 얻으리니
이곳이 너의 자리로구나.
안녕,
너희 모두가 사랑으로 나아오기를 바라는
주 예수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