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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말씀2011.06.27 (월)

계시말씀 df4d6b4f

선포일
2011.06.27 (월)
성경 본문
오후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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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기쁨을 얻어야 허무치 않다 작성일: 2011. 4. 15 (금) 오후 4:30 작성자: 천란 강도사 (강남제일교회, 모델부) [ 한동안 사는 것이 허무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주님을 얻지 못하고 찾지 않고서는 주께서 주신 인생이 축복이라 해도 근본을 모르기에 허무함만 쌓이는 것을 깨달으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영적인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치며 지금 너무도 많은 자들이 그리 살지 못하고 아까운 시간을 아까운 줄 모르고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는 자야, 나 보기를 원하느냐. 나 만나길 바라느냐. 매사에 기도의 삶이 돼야 한다. 나는 영이요 너는 육이니 육을 통해 기도하여 영의 파장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영인 나와 감각으로 만날 수 있다. 한때 만나 좋고 끝나면 또 만나기 어렵다 생각하니 아예 삶에 나를 부르고 생각하고 살아라. 늘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 말하면 서 늘 부르고 찾지 않는다면 당연히 매일 보기 어려운 것 아니겠느냐. 나 만나기를 어려워 말고 언제나 그렇듯 사랑하는 자로 네가 부르면 가니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네 마음 가운데 새겨라. 사랑이 크고도 큰 것을 깨닫지 않았느냐. 시간에 대해 기도하였느냐. 그렇다. 네 기도처럼 참 많고도 많은 자들이 아까운 시간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있다. 내 마음 애가 타고 내 마음 모르고 나의 심정 모르 니 아까운지도 모르고 그렇게 많이도 흘려보내는구나. 기도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기도해야 내 마음 알고 나로 인해 네 마음잡고 가 니 아까운 시간 아까운지도 모르고 흘려보내는 무지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잠깐의 기쁨, 육적 수준의 행복과 기쁨, 소망이 잠시인 것을 깨달으면서도 그토록 육적인 것을 향해 빠르게도 전진하는구나. 육은 한계가 있다. 육신의 삶에 끝이 있듯 육적 기쁨도 한계가 있다. 그것이 허무이다. 그 한계가 허무를 낳는다. 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은 다르다. 영은 끝없는 기쁨의 존재체요, 희망의 연속이다. 찬양과 기도로 끊임없이 내게 가까이 온 자는 알 것이다. 내게 더 가까이 오기 위함이 그러한 것이 아니냐. 육의 한계적 기쁨은 더 이상의 소망이 없기에 그 자리에서 추락한다. 그러나 영적 기쁨은 끝없는 비상이다. 그러니 영적 기쁨을 얻고자 해야 허무치 않고 희망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아까운 시간을 흘러 보내지 않는 방법이다. 자신을 되돌아보아라. 너도 말하지 않았느냐. 네 개인의 시간이 많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 하루를 살아도 곤고하다고 말이다. 육적 차원인 것이다. 그러니 아예 나를 네 삶에 포함시켜라. 완전 일체시키라는 것이다. 무엇이 허무하고 허망하겠느냐. 영적 기쁨의 차원은 다양하다. 육신이 다양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 잠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계절이 오거나 그 시즌이 오면 반복적으로 되풀이하여 행하듯 영적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많고도 많다. 육으로 하기에 한계가 있다 생각 말아라. 그것 또한 육적인 생각이다. 내가 너의 몸을 쓰고 그 일체된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몇 가지뿐이겠느냐. 수없이 많고도 다양하다. 영적 기쁨의 차원은 육적 기쁨의 차원과는 다르다. 한계에 부딪히지 않는다. 그 맛을 보고 안 자가 그리도 부단히 몸부림쳐 나와 살고, 또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로 나와 대화하고 통하며 나의 나라 천국까지 오고 가는 자가 있는데 그 얼마나 큰 기쁨이겠느냐. 천국을 내가 특별히 택한 자만 오길 바라겠느냐. 나는 너희가 몸부림쳐 나를 사랑함으로 기도한다면 그 누구라도 나의 나라에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오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육적 한계, 자신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한계를 탓하며 포기하지 말아라. 그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 자다. 기도만으로 얻는 기쁨이 이같이 크고도 위대한데 너희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냐. 영적 기쁨을 맛보아라. 그토록 육적인 만족을 추구하면서도 왜 영적인 만족에는 그리도 소극적인 것이냐. 더 뛰어넘으라고 말하는 나다. 나와 함께하면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게 와라. 기도는 나의 문을 연다. 사랑아, 늘 나의 문 열어라. 열어야 네가 나에게 들어올 수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도 내가 있으니 혼자가 아니 다. 너는 이미 내 사랑 느끼고 네 사랑 주기 위해 그리도 내게 매달리는 것 아니냐. 나 예수는 전능자 메시아이나 너의 신랑이기도 하 다. 신랑 앞에 서툰 것은 지금까지였으면 됐다. 이제는 나를 신랑으로서 네 마음의 무겁고도 어려운 나에 대한 인식관을 버 리고 오직 주님 사랑함으로 나아오너라. 내가 너를 사랑함을 예사로 생각지 말고 네 사랑에 더 불을 지펴라. 이제는 생각이 아니라 실상이다. 실상이 무엇인지 아느냐? 때로는 쉬운 것이 때로는 어렵다. 때로는 기도가 쉽다가도 때로는 너의 그 무겁고도 어려운 나에 대한 인식관이 네 발목을 잡아 내게 오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랑에 익숙해지고 네 마음에 아예 나를 사랑으로 품어라. 사랑에 우둔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해야 할 아까운 시간을 버리는 자는 미련한 자 다. 나를 알아도 네 근성으로 외면하고 세상을 보는 것 과 같다. 그 죄가 더 큰 것을 모르느냐? 세상 보길 즐겨 말고 나 만나는 것에 더욱 힘써라. 기도에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나를 불러라. 한계를 느낄 때 뛰어넘자. 산은 많다. 그러나 선생 말했듯이 희망의 산, 사랑의 산, 말씀의 산, 심정의 산이다. 연단의 산, 인내의 산, 고통의 산, 핍박의 산, 여러 산이 있으나 모두 다 내가 네게 주는 산이다. 네가 넘기만을 바라는 나의 소망의 산인 것이다. 두려움보다 희망을 더 크게 삼아라. 희망이 네가 산을 넘어 내게 오게 하리라. 기도하면 내가 간다. 네게 간다. 늘 기도다. 기도로 나를 붙잡아야 한다. 네가 부르는데 내가 가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자의 소리는 계속 듣고 싶은 것이다. 사랑하자 우리. 오직 나 예수를 희망 삼아 모든 것 나와 함께하자. 내가 너와 절대 함께하리라. 믿느냐? ( “주님. 믿습니다!”) 나도 너의 그 말 믿는다. 나 실망시키면 안 돼. 알겠지?! 사랑한다. 내게 배워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찾아라. 내가 너를 쓸 것이다. 그러나 기도해야 안다. 내가 희망임을 잊지 말고 늘 기도하여 나를 불러라. 사랑한다. 영원한 너의 신랑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