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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1.07.01 (금)

주사랑빛 대구

선포일
2011.07.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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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곧 사랑이다 (표시된 2군데는 3분의 의견이 다 다르고, 샘이 지적하신 부분이라 굉장히 조심스럽네요. 정리 부탁드릴게요;;) 작성일: 2011. 7. 1. (금) 작성자: 주사랑빛 [ 일정을 마치고 주님과 대화하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주님의 사랑이 가슴에 뜨거워 저녁 식사를 하러 가자는 사람들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고 교회로 갔습니다. 이날은 특히 더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고 가슴 절절히 그 사랑이 더욱 느껴져 왔습니다. 금요기도회가 시작되려면 한 시간이 남았지만 찬양으로 영광 돌리고 선생님을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한 시간이 10분보다 더 짧게 느껴졌습니다. 금요기도회 찬양 시간이 되어 오직 주님의 사진만 보며 정성으로 찬양 드렸습니다. 한 곡의 찬양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길 원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찬양 드렸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계속 대화를 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 사랑하는 나의 주님.”) 얼마나 사랑하느냐? (갑작스런 주님의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주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너의 행함을 통해 알 수 있단다. (그때, 번개처럼 번뜩 깨달아졌습니다. 저의 하루의 삶을 돌아보니 처음에는 주님을 찾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님을 매 순간 찾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하루 중 주님을 얼마나 우선으로 대하며 사랑하는지를 보시면 나의 사랑의 정도를 알 수 있으시겠구나! 확대해서 보면 인생도 이와 같겠구나. 오늘의 삶이 내 평생의 삶의 모습이구나. 재림 전까지의 내 삶이겠구나.’) 반대로 나 예수의 행함을 보면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겠지? 나 예수는 오늘 하루 온종일 너와 함께 있었다. 네가 생명을 만나 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에도, 나의 일을 할 때에도, 교회까지 걸어오는 길에서도 지금 이 순간도 너와 함께하며 내 머릿속에는 널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널 가장 우선으로 사랑하며 너에게 가장 합당하고 이로운 길로 인도하고 있다. 자, 그러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것이냐? 2천 년 전, 십자가에 나의 육신을 내어 준 이유는 너를 살리기 위함이니 너에 대한 사랑이 적어도 2천 년은 넘지 않았겠느냐. 영원한 천국에 함께 가서 살아간다면 널 영원히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오래되어 왔고 영원까지이며 어느 정도인지 알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믿는 사랑이길 원한다. 사랑아, 너의 하루의 행동을 보아라. 나에 대한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살아왔는지 돌이켜 보라. 너의 깨달음이 맞다. 하루의 행동을 보면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며, 일생의 행함을 보면, 네 휴거의 여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니 말로만 아무리 ‘사랑해요.’ 고백해도 소용없다. 행함이 곧 사랑이다. 마치, 말로만 사랑을 고백하고 행하지 않음은 열매 맺지 못한 나무와 같으며 사랑의 행함은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것과 같다. 너라는 나무에 사랑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야 나를 진정 사랑하는 나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멋진 나무들은 많다. 그러나 사랑 열매 가득 열린 나무 적으니 오직 섭리 동산에만 있구나. 기성의 ‘사랑해요.’라는 말은 너무나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제대로 깨닫고 행하는 사랑은 없구나. 때가 급하니 여호와의 손이 내려져 더욱 선악을 쪼갤 것이다. 모세 때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의 뜻에 늘 부정적이고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하기에 계속하여 하늘에 대한 믿음을 세우지 못하고 매번 뜻을 저버렸다. 여호와께서는 광야 생활 중에서도 계속 기회를 주며 용서해 주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사랑하는 행함을 통해 심판의 매를 수없이 맞았다. 그럴 때마다 모세는 끊임없이 여호와께 간구하였고 여호와께서는 살려 주셨다. 때가 지나 결국 여호와께서 마지막 심판을 내리셨고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직 선평자들만이 들어가게 되었다. 선과 악을 확실히 쪼개셨다. 바로 하늘을 향한 인간들의 행동을 보고 역사하심이다. 사랑하는 섭리사야. 삼위께서는 지금 너희 사랑의 행함을 보고 계신다. 생활 속 매 순간이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다. 과거, 행하지 못함으로 인해 내려왔던 심판의 손이 선생의 중보기도로 인해 거두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어, 마지막 심판의 손이 내려오기 직전이다. 선생이 인류를 향한 마지막 중보기도를 하고있다. 너희 모두 선생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모두 진정 사랑의 행함으로 나아오라. 그리할 때 너희의 사랑을 모두 받으실 것이다. 구원받는 것이다. 심판에서 벗어날 것이다. 기준은 사랑의 행함이다. 또한, 너희 각자 모두 모세의 입장과 같다. 진정한 사랑의 행함으로 사랑을 인정받고 구원을 보장받아라. (“어떠한 것이 사랑의 행함입니까?”) 말씀을 통해 더욱 알려줄 것이다. 약속한 것을 이루어라. 결심하고 목숨 걸고 행해야 이루어진다. 행함으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 다오. 나 예수는 너희의 사랑을 매일 확인하고 싶구나. 사랑한다. [이어 잠언을 주셨습니다.] 1. 행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이는 말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듯 이와 같이 이러하다. 2. 사랑의 행함은 쉽지 않으나 행동을 하면 할수록 대가가 커진다. 이는 마치 일을 하면 할수록 받는 대가가 많아짐과 같다. 3. 사랑하고 사랑하여라. 고백하고 고백하여라. 행하고 행하여라. 4. 네 인생의 처음도 끝도 모두 사랑의 행위로 이루어지도록 하여라. 5. 주님 통해 선생의 특강은 사랑 강의요, 주님 통해 선생의 특기는 사랑이다. 6.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서 돈을 내야 음식이 나오듯이 너의 사랑을 삼위께 드려야 진수성찬 사랑 음식이 나온다. 7. 사랑 열매가 변질되면 가장 더럽고 냄새가 난다. 그러니 늘 신선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결국 삼위께서는 그러한 열매만을 취하신다. 8. 아무리 금은보화가 가득한 보물 창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해도 모두 열쇠를 끼워 열지 않으면 절대 금은보화를 자신의 것으로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이 행함으로 삼위의 보물 창고를 열어야 금은보화보다 더 값진 사랑을 모두 가질 수 있다. 9. 고인 물은 썩듯이, 사랑도 가만히 마음속에 담아 두기만 하면 썩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행함으로 언제나 삼위를 향해 흐르게 하라. 10. 선생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사랑의 행위를 함으로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았다. (주님께서 ‘손을 뻗어 내 가슴을 만져 보라.’하셔서 만져 보니 예전에 만져지던 재는 없고 따뜻한 온기만이 느껴졌습니다.) 이젠 네가 위로해 줌으로 가슴 속 타 버린 재가 없어졌단다. 너의 사랑의 행함만이 나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늘 고백해. (곧이어 찬양 후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과 선생님께서 부흥 강사님을 통해 전해 주시는 말씀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날마다 육적 변화를 이루어야 영적 휴거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이 끝나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주님께서 찬양 전에 ‘오늘 금요 기도회를 통해 더 깨닫 고 사랑의 행함을 약속하여라.’라고 하셨던 말씀처럼 ‘나의 행함이 필요한 이유는 육적 변화를 일으켜 결국엔 영적 변화를 하기 위함이구나.’ 깨달아졌습니 다.) 이제 알겠느냐? 너의 행함이 무엇을 위함인지 알겠느냐? (“아멘, 저의 영의 변화를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알았기에 선생은 처음부터 말로만 하지 않았다. 행함을 강조하였다. 행함으로 너의 육신이 변화되어 너의 영혼이 더욱 변화할 것이다. 말로만 한다면 단 하나의 물건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직접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써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물며 너희 영혼인데 어찌 말로만 만들 수 있겠느냐? 창조주께서는 행함으로 육신 변화를 일으켜 너희 영혼을 천국 세계까지 데려오게 창조해 놓으셨다. 그러니 행함이 사랑이다. 근본의 뜻을 알아야 그것을 목적 삼고 끝까지 한다. 이제 깊이 깨달았으니 선생과 함께 행하여라. 진실로 삼위께 너희의 사랑을 확증해 보여라. 행함으로 영혼을 온전히 변화시켜 날마다 영원한 세계로의 티켓을 거머쥐어라. 사탄이 주는 티켓은 결국 헛된 거짓 티켓이다. 사탄은 행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사랑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다. 선생이 무엇을 위해 저리도 목숨 걸고 행하는지 알겠지? 사랑 때문이다.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한 남자가 여자에게 요리를 배우게 하고 책을 읽게 하는 등 이것저것을 배우게 하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왜 자꾸 이것저것을 행하게 하느냐? (“사랑해서요?”) 그래, 맞다. 너무 사랑하기에. 신부로 갖추게 하여 결혼하고자 함이다. 삼위께서도 인간들을 행하게 함은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부지런히 행하라. 목숨 걸고 행하라. 최고의 행함으로 최고의 사랑을 하여라. 사랑한다. 진실로 사랑하기에 기대하는 주니라. (너무 감사해서 계속 기도드렸고 특히, 선생님을 위해 더욱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너는 이미 선생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선생을 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에 대해 기도드렸습니다.) 마음 열매 모두 주어라. 선생 보좌하며 선생이 만나고 싶어 하는 생명들을 만나 주어라. 선생이 옆에 함께 동행하니 재림을 함께 외쳐라. 선생이 그리하듯 형제를 너 자신과 같이 사랑으로 대해 주라. 선생이 기도하니 너도 곁에서 인류와 민족, 가정, 형제, 너 자신, 섭리사를 위해 기도하라. 내가 선생 통해 지시하니 부흥 강사와 더욱 하나 되며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라. 선생이 끝까지 관리하니, 너도 함께 힘들어하는 생명도 끝까지 관리해 주어라. 이 모든 것에 나 예수와 함께하라. 선생도 늘 일하던 자, 심정이 가까운 자와 더욱 일하지 않겠느냐. (“아멘. 어찌 부족한 저를 이토록 사랑해 주십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해 줄까? 너는 나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나와 결혼할 자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자를 애지중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사랑하는 남녀가 밤이 깊어 헤어질 때 어찌하더냐? 남자도 여자도 아쉬워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않더냐? 그때 서로의 마음은 서로가 너무 잘 알지. 애틋한 사랑이지 않더냐? 나 예수는 마치 사랑하는 여자를 배웅해 주는 남자처럼 매 순간 너를 보고 또 본다. 헤어지기 아쉬워 돌아보는 그 애틋함으로 너와 대화한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너를 또 쳐다본다. 헤어지려 해도 결국 몇 번이나 고개 돌려 다시 만나 껴안고 얘기하듯이, 나도 너와의 대화가 끝나면 또 고개를 돌려 달려가 대화하길 원한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를 사랑한다. 이토록 사랑하니 대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랑하기에 네가 물으면 대답해 주는 것이다. 사랑하니 내게 간구하면 응답해 주는 것이다. 사랑하니 영생의 삶을 허락하며 너의 영혼을 만들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사랑하니 선생을 보내어 나에게 인도하게 한 것이다. 사랑하니 선생이 네 십자가 다 짊어지고 가고 있음이다. 선생이 가는 길이 내가 가는 길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내 사랑이 너를 영원히 숨 쉬게 하리라. 그러니 너도 행함으로 네 사랑을 확증하고 오직 구원길로 오너라. (“예수님, 저의 마음 열매 다 드려요. 절대 변치 않겠어요.”) 변하면 정말 싫다. 변해 버린 금보다 차라리 변하지 않는 쇠가 낫다. (“아멘, 주님, 행함으로 변하지 않는 사랑 보여드릴게요.”) 그래야 믿음이 있지. 선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말로만 하늘 높이 쌓는 탑은 모두 바벨탑이다. 결국 무너진다. 행함으로 하늘 높이 쌓는 탑만이 천국에 다다른다. 너의 사랑의 탑을 행함으로 높이 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