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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1.07.07 (목)

계시말씀

선포일
2011.07.07 (목)
성경 본문
새벽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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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의 가치성 회복이다 인간 우상 청산이다 작성일: 2011. 2. 13. 새벽 1:30~3:50 작성자: 주성화 (부산 대연주영광교회) 〔마음이 복잡한 가운데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 때 어린 사무엘이 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장 면과 석가모니 상이 보였고 ‘달란트’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아,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네가 왜 그리 곤고했는지, 왜 답답했는지... 바로 해야 될 일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네가 가진 것, 주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잘 깨닫지 못하자 순간, 제가 계시를 받고 외치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습니 다.) 네가 가진 것, 나 예수가 허락하여 준 것 귀히 여기지 않으니 너 자신이 멈춘 것 아니냐. 사람 힘든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 가치성을 깨닫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야. 그건 바로 가치성 상실, 바로 타락이다. 아담, 하와가 가치성 상실에서부터 하나님과 멀어지 고 자기 주관으로 흘러간 대표적인 인물이다. 너희 인생들아, 나의 인생들아, 답답하다고 느낀 자 있느냐? 한계를 느끼며 멈춘 자 있느냐? 그 모든 원인은 바로 자신의 가치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 어느 한 명도 뜻 없이 우연처럼 부른 자 없노라. 사람들이 최고의 가치와 기능을 발휘하는 때는 바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얼마나 귀하게 느끼느냐 할 때다. 이때가 바로 나 예수가 개입하는 때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 그 위에 너라는 달란트를 찾아내고 개성을 찾아내어 오직 나 예수 안에서 뜻을 펴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때부터 바로 나 예수가 안 보이고 바로 옆이 보이는 것이다. 옆이 보이니 자신의 것이 작아 보이고, 옆의 잘하는 모습을 자신과 비교하며 그 차원에서 멈춘 자들이 아주 많도다. 나 예수는 가치성을 상실하라고 온 것이 아니라 가치성을 회복하러 온 자이다. 가치성을 잃은 자들아, 나의 처음 사랑을 찾으라. 그러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말했다. 지금은 너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나 예수가 너희 각자 한 명 한 명을 보고 있노라. 지금 이때 무엇을 보고 있느냐? 누구를 보고 있느냐? 난 이미 너희 각자에게 달란트를 맡기었고 난 이미 너희 개성대로 마음껏 뜻을 두며 역사를 하였건만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자들이 어찌 이리도 많으냐. 나 예수는 공평하고 늘 선생 통해 공의의 법을 주 어 모두가 주님 뜻 안에서 이상세계를 마음껏 누리라고 말했노라. 그러하기에 이 섭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각 개성대로 뜻을 펼치기에 합당하게 뜻을 두고 이루고 있노라. 어디서부터 가치성을 잃었는지 보아라. 근본을 따져 보자. 너의 근본 원인을 풀어 보자. 항상 문제가 있기에 곤고한 법이니라. 그 모든 것은 너와 나 사이이다. 너와 나 사이의 관계를 보자. 너는 재림 주관권 안에서 나와 아들 입장이냐, 종의 입장이냐, 신부의 입장이냐? 아니면 신부의 입장에서 아들 입장으로 떨어졌느냐, 아니면 아들 입장에서 신부 입장으로 올라갔느냐?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곤고한 날에 기도하라 했듯이 나와 단둘이 뜨겁게 대화를 나눠보자. 그 모든 것의 문제가 무엇인지 보자. 너와 나 사이에 무엇이 들어 왔느냐? 너와 나 사이 무엇이, 어떤 사람이 끼어들어 왔는지 보아라. 나 예수 향한 처음 너의 그 마음이 어디로 갔느냐? 나를 향한 진실한 고백과 진실한 사랑, 그 애절했던 마음을 너는 누구에게 팔았느냐? 너는 누구에게 다 던졌느냐? 나 예수에게 하지 않고 나 예수가 받은 적이 없어서 나는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너희를 배신한 적 있었느냐? 내가 한번이라도 너를 놓은 적이 있었느냐? 나 예수가 한번이라도 널 모른 척 한 적 있었느냐?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던 너희들이 어느새 입으로만 입으로만 입으로만 너의 말을 하 며 그 자리에 멈춰 있느냐? 왜 이리 멈춰 있느냐? 나와의 처음 마음이 어디서부터 멈췄는지 점검이다. 확실하게 점검이다. 나 예수, 너희 마음 심방하며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지금 다 들여다보고 있다. 속 보이는 자 아주 많도다. 생각만 하고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자 있 구나. 옛것만 생각하고 뛰지 않는 자 아주 많구나. 말만 많고, 나의 뜻대로 내 말씀에 따라 마음과 뜻과 목숨 다 하며 행동하지 않는 자 많구나. 순수함은 어느새 뒤로한 체 편하게 받으려고만 하는 자 많구나. 옛 주관 속에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자 있구나. 지금의 영적인 흐름을 알지 못해 막막하게 답답하다고만 하는 자 있구나. 앞날에 대해 미리 걱정하며 나에게 묻고 구하지도 않으며 딴 길 생각하며 자포자기 하여 멈춘 자도 있구나. 나, 너의 속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다. 나, 너의 생각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다. 나 예수, 너희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나에게 묻고 너의 생각 다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내 품에 안겨 오직 나 예수에게 간절히 구할 때 내 어찌 너희들 버릴 수 있겠으며, 또 나 예수가 그렇게 한 적이 있더냐. 그 모든 것 너 혼자 이리 생각했다 저리 생각했다 혼자 생활 속에서 온갖 것 상상하며 너 혼자 모든 것 만들어 내고 있지 않느냐. 내 바보 같은 신부들아, 내 어찌 너희 향한 그 마음 버리겠느냐. 내 어찌 너희 인생 가만히 놔두겠느냐. 두려워 말고 나 예수 오해하지 말고 제발이나 나 예수의 처음 사랑 다시 뜨겁게 찾는다면 나, 더할 나위 없는 기쁨에 차 그 모든 것 너를 통해 시행하리라. 나 예수에게 속보이지 말아라. 나, 선생과 확실히 의논하였다. 그 모든 것 더 과감히 진행할 것이다. 확실하게 이 역사 운영할 것이다. 너희 생각 속에 선생을 담지 말아라. 선생이라는 그릇 속에 너의 인생을 담길 바란다. 선생이 성공한 것 중 하나가 나 예수라는 그릇 속에, 나 예수라는 생각 속에 오직 너희 선생의 그 모든 것을 다 담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 예수가 마음껏 그를 쓸 수밖에 없노 라. 너희 생각을 나 예수에게 담아라. 나와 함께 말이다. 너희 것으로 너희 힘으로 하려는 그 모든 생각과 너의 주관 다 비워 내라. 나 예수가 오늘도 시행하고 또 시행하는 섭리사 신부들에게 급히 당부했노라. 사랑하니 너의 곁에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 너에게 이렇게 사랑으로 말하노라. 사랑하니 채찍도 기쁘고 감사한 것이다. 사랑하니 하는 말이다. 알지? 사랑해. (주신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한편, 섭리 사람들이 눈에 정확히 보이는 사명에 대 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 또한 순간 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행복한 때가 어느 때인지 기도하였고, 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주님과 선생님과 함께 집회 다니며 오직 주님과 선생님 손 붙잡고 사랑하며 긴장하며 뛰고 달릴 때였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주님 제가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선생님 말 한마디 목숨 걸고 지켰기에 생각지도 않는 더 큰 역사, 생각지도 않는 꿈을 이루게 되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고백 드렸습니다.) 그래, 네가 말한 것이 맞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사명만 원한다. 지금 당장 정확한 사명만 찾고 구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가 섭리사 모든 사람 각각에게, 선생이 조건 세운 그 터 위에 이 시대‘신부’라는 사명을 이미 주었다. 시대를 증거하는 사명 또한 다 주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명이면 왜 이리 귀하게 여기지 않고 힘들어하고,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것만 좋아하고 만족해하는지 나 예수가 너무 답답하구나. 합봉 때문에 사명 때문에 힘들어하고, 앞으로의 진로 때문에 고민 고민하는 자 많이 보았 도다. 나 예수가, 그리고 선생이 너희 각자에게 지금껏 하라고 말해 준 것만 해도 엄청난데 너희는 그것을 맘과 뜻과 목숨 다해 해 보았느냐? 그 다음 차원, 그 다음 차원으로 높였느냐? 차원이 점점 또 다르게 올라가야 되지 않겠느냐. 늘 그 차원 그 모습, 자신 속에 갇혀 있으니 내가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구나. 왜 이리 배우고자 하는 자 적으냐. 왜 이리 하나라도 가르쳐 달라고 구하는 자 적으냐. 나 너희에게 수없이 감동으로 말씀으로 사람 통해 선생 통해 말해 주었건만 더 나에게 구하고 묻고, 더 차원 높이려는 자 많지 않아 안타깝고 안타깝다. 너희들, 나 예수에게 구하고 기도하고 묻고 또 물어라. 나 예수가 너희에게 각 개성별로 역사하리라. (“주님 저희가 너무 어린 것 같아요. 한 가지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 유대인들을 보아라. 똑같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나 예수, 독생자 나 예수를 보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더 차원을 높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자신의 주관 속에서 보니 이루어질 뜻이 깨어지지 않았느냐. 나 예수는 차원을 높이려 했다. 그 차원, 나 예수의 차원에서 생각하고 기도했다면 그렇게 뜻이 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육적 차원에서만 보니 더 이상 뜻을 향해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니더냐.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 예수와 선생의 말을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너의 차원에서 큰 것만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면 갑자기 차원을 높였을 때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 수밖에 없노라. 제발이나 너희들 깨어 기도하여라. 제발이나, 깊이깊이 나 예수와 만나자꾸나 . 깊이 기도하면 너희 모두 나 예수의 말씀에서 뜻을 찾아갈 수 있노라.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몸부림치지 않았어요. 주님은 주시려고 항상 제 곁에 계셨는데 제가 구하지 않았고 제가 몸부림치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님은 너무 인격적이고 사랑이 많으세요. 제가 주님이라면 답답해서 한 대 때려서라도 깨닫게 했을 텐데 저를 끝까지 끌어 주고 참아 주고 사랑해 주셨어 요.”) 내 사랑아, 나의 사랑은 머리로가 아니다. 실체 가운데 느껴 보아라. 이것이 짝사랑도 홀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이다. 나의 진정한 사랑을 섭리인들이 얼마나 깨달을까... 진정한 그 사랑 너희는 절대 주저 말고 깨닫고 행 할지어다. 네가 진실되게 고백하니 나 예수가 사랑을 말하노 라. 사랑은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도 볼 때까지 끝까지 그 옆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은 너와 나 손바닥이 마주치듯 너와 나의 마음을 마주치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의 아픔까지도 다 이해해 주고 그것에서 한 차원 높여 그 사랑을 인정하며 그 사랑의 뜻을 이루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다. 사랑은 너와 나 영원한 인연이다. 눈물 속에서 시련 속에서 오래 참음 속에서 한 송이 꽃이 피듯이 진정한 사랑의 꽃이 피게 된 다. 그러하기에 사랑은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다. 너에게 좋은 것이다. 내 사랑아, 이 같은 사랑 나와 하지 않으련? (이어서, 이전에 보인 환상이 보여서 무엇인지 계속 기도하니, ‘인간 우상’이라는 깨달음이 왔습니 다. 그래서 주님께, 혹시 주님 외에 사람을 더 의지하고 더 가까이 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지, 주님보다 다른 것이 더 가까이 있었다면 용서해 달라고 회개 기도 하였습니다. 섭리에 인간 우상을 더 섬기는 일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맞다. (이때 월명동 돌조경 중 부실하고 약하고 깨진 돌 은 다 빼내고 튼튼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장면이 보였고, 그 장면을 왜 보여 주시냐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지금 바로 섭리사 한 명 한 명 이렇게 조정 중이다. 완벽히 행할 것이다. 섭리사 모든 오래 묵은 것 다 뿌리 뽑는 기간이다. 완전하지 않은 것 다 드러내는 기간이다. 나 예수가 작정하고 선생과 함께 대역사를 이루려 니 과거의 잘못된 것들 중 정리가 안 된 것이 너무 많 고 대충대충 이뤄진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웬만해선 나 예수와 선생이 결재하며 행했 고 너희에게 기회를 주었건만, 이젠 아니다. 정확히 할 것이다. 하나하나 완전히 뿌리 뽑고 새롭게, 새롭게 할 것이 다. 오래 묵은 것 청산이다. 완전 청산이다. 특히 섭리사에 인간 우상 모시고 섬기고 절한 자 많도다. 왜 이렇게 됐느냐? 선생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선생이 그렇게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느냐? 선생이 언제 오직 선생만 중심하라고 한 적 있었느 냐? 오직 주 예수, 주 예수, 주 예수! 그 입술도 항상 주 예수이다. 선생보다 앞서 인간 우상 된 자 많다. 특히 지도자들아, 왜 이리 되었느냐? 왜 이리 되었느냐? 받기만 하고 대접 받으려고만 하고 세워 주길 원하고 모셔 주고 섬겨 주길 원하느냐? 나 예수는 제자들 발 씻기며 항상 가장 낮은 자가 되어 했노라. 어느새 그 권위가 선생보다 높이 올라간 자 있느 냐? 어느새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가 되어 있느냐? 왜 이리 사람의 사람되어 가느냐? 이것이야말로 인성이요, 우상을 섬기는 자와 섬기게 하는 자다. 선생 머리 위로 올라간 자 원하지 않노라. 자신도 모르게 이것이 몸에 배인 자 많다. 나 예수가 지켜보다가 정리 기간 들어갔다. 은밀히 한 명씩 보고 또 보고, 기회를 또 주고 주었건만 너 자신을 말하는 것을 모르고 어찌 다른 것만 보고 있느냐. 선생은 두 귀가 다 열려 있다. 나보다 더 보고 듣고 하고 있노라. 너희 오래 묵은 인간 우상 섬기게 하는 지도자 다 회개할지어다! 진정 회개할지어다! 너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아라. 너와 나 사이에 인간 우상이 더 깊게 들어가 있구 나. 나 예수와의 대화보다 비 안 와서 힘들면 절하듯 인간 우상에게 하소연하며 의논에 의논을 하는구나. 너희 선생의 육신이 그동안 한국에 없었다고 어느새 너희가 텃새 부리고 앉아 있느냐? 더는 못 본다. 썩은 것, 묵은 것, 깨진 것 다 빼내고 튼튼하고 확실한 것만 새롭게 새롭게 구상 속에 넣을 것이다. 한번 보아라. 나와 선생의 구상이 어떠한지 너희가 한 번 보고 나서야 깜짝 놀랄 것이다. 너희가 지금 무엇을 집중하여 보고 있느냐. 이전에 나와 선생이 속상해했던 것이 무엇이더냐? 선생이 축구하는 곳에서 하늘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데 너의 시선이 그곳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곳 보며 다른 것 중심하는 것이었다. 하늘 레이더망에 다 걸리는 행동이었다. 나 예수 하나 하나 시정할 때 이때가 기회니 반드시 개인, 지도자, 그리고 모두가 자신을 한번 깊이 되돌아보아라. 반드시 반드시 이때가 너를 변화시킬 때다. 나 예수가 손댈 때가 때이니, 이때 하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두려워 말고 올라가자. 나 예수는 변화된 자 쓰노라. 자기 것이 없는 자 쓰노라. 선생과 일체된 자, 오직 나에게 내어 맡긴 자 쓰노다. 나와 선생과 함께 능치 못함이 없음을 너희는 보여 주어라. 사랑하니 교육한다. 내 마음이 애가 타서 말했으니 반드시 행하길 바란다. 주 예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