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1.07.28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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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음란함의 비밀과 원리
작성일: 2011. 4. 1 ~4. 3.
작성자: 이선진
[ 전날 철야기도 중
계속 회개하여도 마음으로 이성, 음란 죄를
계속 짓는 제 자신이 너무 싫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성, 음란함이라는 것들에 대해
자세하고 세밀하게 하나하나 다 가르쳐달라고,
더 깊이 깨달아야 그 죄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 같
다고
간절히 간구 드리자 하루 동안 이성, 음란죄를
멀리하는 노력의 조건을 세우고 오면
말씀해 주시겠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루 동안 최대한 모든 이성을 쳐다보지 않
고
말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방심
하여
학교에서 한 이성에게 눈길을 빼앗겨서
마음이 한 번 쏠리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다음날 철야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이성, 음란에 대해서 철저히 가르쳐 달라고 간구 드
리자
마음을 한 번 빼앗긴 죄를 상기시켜 주시며
다시 조건 쌓아서 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한 번 빼앗긴 걸로 말씀을 못 받게 되자 억울
하였지만
철저히 조건 쌓아서 오겠다고 결심하고
그 죄에 대해 간절히 눈물로 회개 드리고 있었습니
다.
회개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셔서 받게 되었습니다. ]
* 하나님 말씀 *
주 여호와니라.
이 시간은 약속한 대로 이성과 음란에 대하여
샅샅이 파헤쳐보는 시간을 가져보자꾸나.
이성은 한마디로 말해
‘나와는 다른 성을 가지고 있는 대상체’이다.
이는 육적 사랑의 대상체이며 육적 반려자이다.
네 인생을 함께 나눌 대상체이며
하나가 되어 나를 섬기기 위해
서로 돕고 돕는 조력자이다.
이는 단순히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대상체가 아니
며
오직 서로를 깨끗하고 성결케 되도록 도와주어
각자가 삼위 앞에 온전하고 정결한 신부로
나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조력자이다.
그런데 세상은
서로를 만나고 사귀는 이유가 오직
육적 쾌락, 혼적 쾌락을 누리기 위함이구나.
첫째는 무지요,
둘째는 무지함으로 인하여
사탄에게 조건 잡힘이로구나.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아니하며
알아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를 않는구나.
(“하나님, 오늘은 질문이 좀 많을 것 같습니다.
이성, 음란의 근성 때문에
그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요.
첫 번째 질문이에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끌리도록 그 마음을 창조하셨지요?
그 끌림의 감정을 왜 이렇게 크게 만드셨나요?
그 감정 때문에
하나님만 사랑하는데 너무 방해를 받습니다.
굳이 이렇게 크게 만들지 않으셨어도
인간들은 서로 결혼하고 에로스의 사랑을 이루어서
종족 번성을 이루었을 텐데요?”)
보아라.
‘끌림’의 감정을 만든 자는 나이다.
그러나 현 시대의 끌림의 감정의 정도가
이렇게 크게 되어버린 것은 인간과 사탄의 합작품
이다.
이에 대해 설명해주마. ‘자석’이 있다고 치자.
N극과 S극은 서로 붙는다.
이 N극과 S극의 각각의 ‘면적’이
마치 손가락 한 마디와 같다고 쳐보자.
이 N극과 S극의 면적의 크기를
각각 손바닥만 하게 증가시키면
N극과 S극 사이의 밀고 당기는 힘,
즉, ‘자기력’도 증가한다. 그렇지?
그렇다면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마음의 크기’를
N극의 ‘면적의 크기’라고 말한다면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마음의 크기’는
S극의 ‘면적의 크기’라 말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남자의 마음과 여자의 마음이
서로 이성적인 마음과 생각들을 교류하는 정도가
마치 N극과 S극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기력’이라 말할 수 있겠구나.
(“이것이 바로 이성 파장을 의미합니까?”)
그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기력’이 작동하여
N극과 S극이 서로 붙듯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이와 같은 ‘이성 파장’이 존
재하여
서로 끌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석을 구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원자들이
전자 운동을 일으켜 자기력을 발생시킴으로 서로
붙듯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혼과 영이
이성의 혼과 영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이성 파장을 만든다.
그러다가 그 이성 파장이 더 심해지면
서로에게 접근하게 되고
급기야 이성 타락까지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마음을 만들 때
이성에게 끌리는 마음의 크기를
‘제한’하여 놓았다.
대신에 나에게 끌리는 마음의 크기를
‘무한정’으로 두었노라.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부터
나를 향한 마음과 이성을 향한 마음의
‘경계선’ 자체가 소멸되어버린 것이니라.
한마디로 ‘사랑의 질서’가 파괴되어버린 것이다.
나와의 관계가 끊긴 후,
나에게 주었어야 할 사랑의 마음의 크기마저
이성에게 쏠리도록 해두었으니
그 마음의 크기가 얼마나 크겠느냐.
그러니 이성 때문에 싸움도 나고 자살도 하며
살인도 서슴지 않고 하지 않더냐.
다들 ‘질서가 파괴된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랑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의 심각한 마음의 타락과 유혹은
결국 인간들이 책임분담 못해
사랑의 질서를 파괴해버렸기 때문이군요.
하나님, 이성죄과 음란죄를
정말 미친 듯이 회개하였는데
아직까지도 가끔씩 길거리에서나 어디서든지
순간 호감이 가는 이성을 보게 되면
마음이 혹하고 쏠려버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이 느껴져서
마음 지옥의 고통을 겪은 적이
수십, 수백 번입니다.
도대체 이 마음이 혹하며 쏠려버리는 현상은 무엇
이며
어떻게 하면 아예 제 마음이 쏠리지 않을 수 있나
요?”)
이것도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마.
먼저 나의 마음을 ‘S극의 자석’이라고 치자.
그리고 이성을 ‘또 다른 S극의 자석’이라 표현해보
자.
그리하였을 때 너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N극’이
‘이성을 의미하는 S극’에 완전히 붙어있을 때는
‘나의 마음을 의미하는 S극’의 면적이 아무리 크다
한들
너와 나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이성에게 너의 마음이 100%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백퍼센트 일체되어 있다면
아무리 ‘이성을 의미하는 S극의 자석’들이
너의 주변에 즐비하게 널려 있을지라도
너의 마음은 요동조차 하지 아니할 것이다.
나의 마음은 온전히 너를 향하고 있으니
너만 너의 마음의 방향을 틀어
나에게 온전히 향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하나님의 마음에 온전히 일체되고 집중하고 있으
면
제 마음인 N극의 면적을
하나님께서 다 차지하신 것이 되니까
제 곁에 아무리 호감이 가는 이성들이
수백, 수천 명이 있어도
제 마음이 요동조차 않겠네요?”)
그렇지.
나에게 온전히 마음을 다 내어주지 못한 자들이
이성에게 유혹받고 시험 당한다.
마음에 일말의 여지조차 남겨두어서는 안 되는 것
이다.
알겠느냐.
(“하나님, 앞서 말씀하신
‘이성 파장’이라는 것이 궁금합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쌍방 간에 관심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인지,
아니면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관심을 주고 있어도
생기는 것인지요?”)
보아라.
네가 나에게만 마음을 주고 있다면
오직 너는 나하고만
사랑의 파장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마치 N극과 S극이 완전히 붙어있을 때
오직 그것들 사이에서만 자기력이 발생하듯
너와 내가 온전히 마음의 교류를 하고 있다면
이성과 너의 마음 간 교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말의 여지라도
이성을 향해 너의 마음이 개방되어 있다면
너는 그 어떤 이성과도
이성의 파장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N극이 S극과 만나지 못해 열려 있다면
계속해서 다른 자석들과
자기력이 발생되어지는 것처럼.
(“특정 이성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어도
하나님에게 마음을 온전히 부착시키지 않으면
‘이성을 향해 마음이 개방되어 있는’ 모든 이성들과
자동적으로 이성 파장이 교류되는 것이겠네요?”)
그렇지.
아무리 수많은 이성들이
너에게 관심을 주고 있을지라도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온전히 붙어 있다면
너는 이성을 향해 마음을 닫아놓은 것이 되어
더 이상 이성 파장을 교류하지 않으니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이성 파장이 느낄 때면
제 영급이 성장해서 그런 것도 느낄 수 있게 된 줄
알았는데
완전 착각이었네요. 결국 제 마음에
이성을 향해 열려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군요.
‘이성 파장’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일방적인 이성적 관심에서는 발생되지 않고
상호작용적으로 이성적 관심을 주고받을 때
생겨나는 것이군요?”)
그래.
네 마음을 온전히 닫아서
이성적인 파장을 느끼지 않도록 하자꾸나.
(“또 여쭈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저에게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성에게
저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성향이 있는데
도대체 왜 이럴까요?
‘이성에게 안 쏠리리라!’다짐을 하고 있어도
잘 해주면 마음이 끌려버립니다.”)
이는 너에게 잘 대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이성’ 그 자체만 보고
그 뒤에 나 혹은 사탄이 있는 것을
감지하지 못해서이다.
사탄은 ‘이성’을 통하여 너에게 접근하고 잘해주지
만
나는 ‘사람’을 통하여
너에게 축복도 주며 잘 대해주는 것이다.
이성이 너에게 잘 대해주었을 때,
너는 오직 나 여호와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그 이성을 통해서 들어올 사탄을
경계하고 조심하여라.
‘나’와 ‘사탄’이라는 존재 둘 다
양면적으로 신경 쓰고 생각하여라.
그 육을 육 자체로만 의식하고 신경 쓰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육 자체보다 그 뒤에 있는 존재를
더 신경 쓰고 의식하여라.
영적인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니라.
알겠느냐.
(“하나님, 위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저의 마음을 일체시켜야
이성에게 마음을 안 뺏긴다고 하셨는데,
이는 예전에 저에게 말씀해주신 것처럼
생활 속에서 ‘집중의 대상체’로서
하나님의 말씀, 뜻, 마음, 심정, 생각 등을
두고 살라는 의미이지요?
하나님의 영이 보이지 않으니까
혼인 ‘마음’에 집중하라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래.
‘집중’이라 함은
한 가지에 온통 정신을 몰두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처럼 너희가 ‘나’라는 존재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집중의 대상체로서 ‘나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 하
였다.
나의 영이 보이지 않기에
너희는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고 감동으로 깨달아
지는
나의 ‘마음’에 집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그 다음으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요즈음 초, 중,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이성 타락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차라리 이성 간의 끌림의 감정을
영과 혼이 완전히 성장되고 축복식을 할 때쯤
되어서야 발동되게 하시지
왜 그 어린 유치원 때부터 이성 간 ‘끌림’의 감정이
발동되게 하셨을까?’하며 항상 궁금해 했어요.
하나님,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서부터
끌림의 감정이 존재하게 만드셨나요?”)
보아라.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모하는 감정이 있
다.
이는 이성 간, 혹은 너희와 나 사이에도
존재하는 감정이다.
너희는 태어나 맨 먼저 보게 되는 대상인
‘부모’를 따르고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부모 다음에 보게 되는 대상이
내가 아니라 ‘이성’이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의 나이가 어리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여
그 어린 나이 때부터
‘누구 좋아해?’, ‘누구 좋아해?’하며
이성 사랑을 권유하며 부추긴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부모 혹은 환경에 의해
‘이성은 어릴 때부터 사랑해도 되는 존재’라고
교육받으니 그 습관과 성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되어
마치 진리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어릴 적 습관이 여든 살까지 간다.’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맨 먼저 호감의 대상으로 ‘부모’를 사랑하게 된 후,
그 육적인 부모를 통하여
영적인 부모인 ‘나 삼위의 하나님’을 소개받아
알고 배우며 사랑해야
나중에 이성이라는 존재를 만나도
이미 나 ‘여호와’라는 사랑의 대상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성에게 안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구상이었는데
지금의 모습은 나의 뜻과 너무나 다르구나.
(“하나님, 생각해보니까 어이가 없네요.
어릴 적엔 이성 친구 맘대로 사귀게 해놓고서는
나이 들어서 중, 고, 대학생이 되니까
이성 친구 사귀지 말라고 제재하는 현상들이요.
정말 모든 현상이 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군요.
하나님의 원 계획은
지구촌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서부터
하나님을 최고의 사랑 대상체로서 사랑하고,
축복식을 해서도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이성은 두 번째로 사랑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나는 지구촌의 인구가 수십억이든 수백억이든
모두를 다 품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를 지녔다.
그러나 나의 사랑 안에 품어진 자로는
고작 해봐야 섭리인들 뿐이다.
내 마음에 빈자리가 너무나 많구나.
참으로 슬프구나.
너희들만이라도 나의 사랑의 품 안에
온전히 거하여다오.
그래야 내가 내 안에 있는 너희 바라보며
힘을 낼 수 있을 테니까.
(“하나님, 슬퍼마세요.
저희들, 하나님 품 안에 온전히 거하도록
열심히 결심하고 노력할게요.
지금까지는 ‘끌림’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여쭈어 보
았는데
이제는 ‘육과 육의 접촉’에 대해서도 여쭈어볼게요.
하나님께서는 육적 사랑에서의 육과 육의 접촉 또
한
의도하시고 만드신 것이 맞지요?”)
맞다.
(“마음과 마음의 접촉으로 인한 흥분이나 쾌락의
정도는
저희 인간들이 잘못해서
너무나 커져버렸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육신 간의 성적 쾌락의 정도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창조하신 것 아닌가요?
왜 성적 쾌락의 정도를
인간들이 중독될 정도로 크게 해놓으셨나요?
성적 쾌락의 정도를 종족 번성을 위해서만 누릴 정
도로
약하게 만들어 놓으셨으면
수많은 성범죄들 성폭행, 성추행, 타락 등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요.”)
보아라.
창세기 3장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에서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한다는 말이 무엇이겠느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영적 죽음’을 맞이했다.
인간에게는 ‘감각’이라는 것이 있는데
영적 감각, 혼적 감각, 육적 감각
세 가지가 있는 것이다.
영적 감각이 죽어버린 자는
그와 반대로 육적 감각, 혼적 감각이 예민해지며
영적 감각이 우세한 자는
그와 반대로 육적 감각, 혼적 감각이 둔해진다.
한 마디로 아담과 하와와 같이
영의 기능이 상실되어 영적 감각이 죽어버린 자들
은
그만큼 육적, 혼적 감각을 많이 느끼는 것이다.
특히 그 시대의 아담과 하와 같은 경우
혼적 수준이 낮아 혼적 감각도 둔하였기 때문에
육적 감각이 그만큼 월등히 예민해진 것이다.
그러니 육이 느끼는 감각의 수준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하와에게는
임신하는 고통이 크게 더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그와 같이 이 시대에도
혼적 수준이 높아져
혼적 감각이 예민해졌다고는 하지만
영이 죽어버린 자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만큼 육적 감각이 예민한 자들이 많아
덩달아 성적 쾌락을 느끼는 수준도
높아져버린 것이다.
영적 감각이 발달된 사람과
육적 감각이 발달된 사람은
똑같은 자극에도 느끼는 감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육적 감각이 발달된 자에게는
똑같은 육적인 자극이 보다 크게 느껴지고
영적 감각이 발달된 자에게는
똑같은 영적인 자극이 보다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하나님, 신기하네요.
영, 혼, 육적 감각에 대해 더 자세히 깊이 설명해주
세요.”)
먼저 영적 감각이다.
영적 감각이 발달된 자에게는 육적인 즐거움,
예를 들어 게임, 텔레비전, 스포츠, 오락 등보다
말씀이 더 큰 낙과 즐거움을 주며
영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반면에 혼적 감각이 발달된 자에게는
세상의 이치와 이론, 논리와 학문, 법칙 등이
즐거움과 낙을 가져다주며
이를 통하여 만족을 얻게 된다.
마지막으로 육적 감각이 발달된 자에게는
눈에 보이는 영상과 이미지,
구체화되고 만질 수 있는 것 등이 즐거움과 낙을
주며
영적인 것을 통하여서는
즐거움과 낙을 누리기가 힘들다.
이들은 서로 반비례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니
라.
(“하나님, 그러니까 영적 감각이 예민한 반면에
육적, 혼적 감각이 둔하다는 말이
육적, 혼적 능력이나 기능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
니라
영적인 자극에 크게 반응하고
육적, 혼적 자극에는 그보다는 작게 반응한다는
말씀이시지요?
선생님은 영적 감각이 최고치이실 텐데
그렇다면 육적, 혼적 감각이 둔하시다는 의미와도
같잖아요.”)
선생이 축구할 때를 보면 된다.
선생은 육적인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축구를
영적으로 재해석해서 섭리의 원리와 체계를 도입시
켜
영적인 스포츠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육적인 모든 것을 재해석해서
영적인 원리와 이치로 풀어버릴 수 있는 자는
영적 감각이 뛰어난 자이다.
선생이 축구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에
육적인 기능이나 능력이 뒤떨어지느냐?
아니지 않느냐.
(“그러면 섭리에는
영적 감각이 뛰어난 자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많이 없다.
이는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해
육적 감각을 죽이지 못해서이다.
자기 육성은 회개만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버릴 것을 버려야
육적인 감각들이 점점 사그라지며
영적 감각이 깨어나는 것이다.
지금은 나의 아들 예수가
영으로 재림하고 영으로 맞고 휴거되는 시기이기에
무엇보다 영적 감각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
영적 감각이 있어야
점점 육적인 성향, 죄에서 멀어지며
점도 흠도 없는 영으로 온전히 거듭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영적 감각을 완전히 깨우고
육적 감각을 완전히 죽여 놓아야
이 세상의 이성, 음란의 성적 쾌락도
완전히 멀리하고 무시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지금은 완전히 깨우지 않으면
육으로 멸망해버리는 시대이다.
버릴 것을 모두 온전히 버려야
육성과 멀어지고 영성과 가까워지는 시대이다.
아무리 너희가 이성, 음란과 멀어지고 싶어도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면
결코 멀어질 수 없는 것이다.
(“몇 개만 더 여쭈어볼게요.
요즈음 현대의 세태에 대해서
하나님께 고발하고 싶은 것들이에요.
이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싶어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들어가서
인터넷 기사를 아무거나 클릭하면
좌, 우로 입에 담지도 못할 음란한 내용을 담은
배너들이 줄줄이 뜹니다.
초등학생, 유치원생들도 들어가서 볼 수 있는데
전 도대체 대한민국의 학부모님들이
왜 이런 현상을 가만히 내버려두고 항의하지 않는
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인터넷의 음란 요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아라.
‘인터넷’은 나의 복음이
온전히 전 세계로 만방에 전해지도록
만들어준 도구이다.
그러나 인간들과 사탄들은 그 도구를 가지고
음란물과 이성적 요소들을 전하는 데에
혈안들이 되어 있구나.
마치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만들어주며
생명 번성을 위한 신성한 도구로서 쓰라고 하였더
니
인간들이 그 지체를 이용하여
음란과 이성의 골짜기에 빠져버림과 같도다.
이처럼 이제 인터넷도
사탄, 마귀들의 이성과 음란의 것들을 전하는 데에
최고의 무기로 변질되었으니
부디 너희만이라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라.
(“그 다음 질문이에요.
제가 어릴 때 음란물을 본 것이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아무리 회개하여도 지워지지 않아
너무 고통스러워 화가 나고 후회가 될 때가 많았어
요.
이성적이고 음란한 이미지와 영상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저희 섭리인들을 깨우쳐주세요.”)
사랑아,
뇌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
뇌는 선별적으로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주의 집중하여 받아들인
자극과 지식들에 대해서는
긴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저장해놓고
별 흥미도 없이 주의 집중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지식과 자극들은
그리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게 해놓는다.
그러니 네가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 있게 보았던 음란물들이
너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느냐.
음란물들은 더구나
인간들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성욕’을 자극한
사탄, 마귀들의 최고의 무기이니
이에 조건 잡힌 자들은 사탄, 마귀들에게
힐문까지 당하게 되어 더더욱 힘들 것이다.
이 욕구 때문에 인간들은
이 음란물들을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왜인고 하니 종족 번성을 향한 욕구는
나 여호와가 이 땅 가운데에
지상 천국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제 1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사탄들은 이 욕구를 교묘히 이용하여
실상은 ‘번성을 목적한 쾌락’인 것을
‘쾌락을 목적한 번성’이 되도록
뒤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는 마치 창세기 1장 28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과 ‘번성’의 순서를 뒤바꾸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타락하게 만들어버린
사탄의 농간과도 같은 맥락이다.
음란물은 ‘순서가 뒤바뀌어져 있는’
타락의 원리이자 이치가 적용된 것이다.
이런 사탄의 농간에 속아서는 안 되느니라.
알겠느냐.
(“하나님, 이와 같이
사탄에 의해 순서가 뒤바뀌어져 있는 타락의 원리
가
이 세상에서 무엇 무엇에 적용되어 있습니까?
사탄들의 모든 음모를 밝히 드러내 주십시오.”)
첫째, 육을 영보다 더 사랑하게 해버렸다는 것이다.
둘째, 육적 쾌락을 영적인 즐거움보다
더 사랑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셋째, 이성을 나 여호와보다 먼저 사랑하도록 만든
것이다.
넷째, 물질과 명예를 나보다 더 사랑하도록 만든 것
이다.
다섯째, 만물을 지은 창조주보다
그 만물 자체를 더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교묘히 순서를 뒤바꾸어
타락에 이르도록 하는
사탄, 마귀들의 계략을 조심하라.
성적 타락만이 타락이 아니다.
육적 타락, 마음 타락 모두 타락에 속함이니라.
(“다음 질문이에요.
하나님, 요즈음 매스컴과 미디어를 통해서 볼 수 있
는
연예인이나 가수들의 ‘의상’이
예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출 그 자체입니다.
오래전부터 지속된 여성과 남성의 성 상품화 현상
이
극을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부 아이들과 얘기를 많이 해보았는데
이성의 노출이 심한 의상 때문에 힘들어하고
자꾸만 죄짓게 된다고 하소연하는 자들이 많았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매스컴,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노출이 심한 의상을
저희 섭리인들이 모방하고 따라 입는 것에 대해서
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노출이 심한 의상을 보며 죄짓는 아이들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것입니까?”)
이성 간의 타락은 ‘육신’을 통하여 일어난다.
사탄들이 인간들을 나와 떨어뜨려 놓기 위하여
최고로 많이 사용하는 술법이지.
이를 위하여 사탄들은
먼저 이성과 이성 간의 ‘육체’를 보게 한다.
그런 후에 직접 만나게 하여 ‘대화’도 나누게 하여
마음을 교류시킨 후, ‘이성적 감정’에 빠지게 만들
어
결국 ‘타락’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성 간에 서로 쳐다보는 것과
대화하는 것 자체도 정말 자제하고 조심해서
사탄의 술수를 아예 원천봉쇄 해버려야겠네요.
계속 말씀해주세요.”)
이처럼 노출이 심한 의상은
서로를 이성적으로 더 노출시켜
이성적인 감정이 더 빨리 쉽게 느껴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육을 통한 마음의 타락이
더 잘 일어나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있는 건
마치 이성에게 ‘노출된 나의 몸을 보고
이성적 마음의 타락을 일으켜라.’하는 격과 같다.
육적인 것은 이미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통하여
그 ‘주권’을 사탄들에게 빼앗겼다.
그러니 ‘육’을 통하여 너희를 타락시키고자 하는
사탄들의 술수에 빠지지 말고 나오너라.
노출이 심한 의상은
나의 것이 아니라 ‘사탄’의 것이다.
너희는 주권을 빼앗긴 육신을 가지고
남에게 보이려 노력하지 말고
오직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음에 중점을 두고 나에게 나아오너라.
육적인 것은 사탄의 것이요,
영적인 것은 나의 것이니라.
이는 너희의 ‘마음’을 통하여
영인 나에게 나아오고
사탄의 노예가 되어버린 육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말과도 같으니라.
사탄은 ‘육적인 것’으로 이 땅을 통솔하고 주관한
다.
따라서 나의 것이었던 육신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들에게 빼앗기
게 되자
더 이상 나의 전지전능함도
육신을 빼앗긴 만큼 온전히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
다.
영계에서 나로부터 나가는 ‘전지전능함의 힘’은 온
전하다.
그렇지만 이 땅 가운데
육신의 주권을 빼앗겨버린 인간들에게
나의 힘이 당도할 때에는
그 힘이 ‘반감’되어 나의 전지전능함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고로, 육적인 것에서 너희가 해방되어야
나의 전지전능함이 너희에게 온전히 임하여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마치 식물의 뿌리, 줄기, 잎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운행되어질 수 있는 것처
럼
저희 인간의 영, 혼, 육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어야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이 인간에게 온전히 당도하여
하늘의 뜻대로 운행되어질 수 있는 것인가요?”)
나의 전지전능함은 온전한 나의 것에만
온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국이 온전히 나의 뜻에 의해서만
운행되어질 수 있는 이유는
천국의 것들이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이 지구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죄악이 번성되기 전까지는
온전한 나의 것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육신이 빼앗긴바
되자
영, 혼, 육 중
‘살아있는 영’, ‘영적인 혼’,
‘살아있는 영과 영적인 혼을 지니고 있는 육’만이
나의 전지전능함이 당도하게 되는
대상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죄로 인하여 죽어버린 영’, ‘육적인 혼’,
‘영적 죽음을 맞이한 육’에 대해서는
더 이상 전지전능함이 당도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 시대에 ‘육적인 자’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알겠느냐?
‘사탄의 주관’을 받는다는 말과도 같으니라.
(“그동안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세상의 음란함, 이성타락,
성범죄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실까?’
의심하고 불평했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군요.
섭리인들조차 버릴 것을 버리고
영적으로 온전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쓰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군요.
아까 노출이 심한 의상에 대해서 여쭈어볼 때에
한 가지 더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조사해보니까
유전자, 뇌의 호르몬, 뇌 구조 등의 차이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성향 자체가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남자는 뇌 구조가 시각적인 자극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있고
여자는 언어적 자극, 청각적 자극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대요.
이러한 차이는 후천적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만들어져서 나온다고 합니다.
이러한 차이가 정말 맞나요?
그리고 찾아보니까
뇌 속에는 ‘전시상하부의 간질핵’이라는 부분이 있
는데
이 부분의 ‘신경세포’가 크면 클수록‘성욕’도 크데
요.
그런데 연구 결과 남자의 이 부분이 더 크다고 해
요.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이라는
성욕과 공격성에 관련된 호르몬 비율도 남자가 더
높대요.
이러한 남녀 간 뇌의 차이가 선천적이라면
시각적으로 음란함이 넘쳐나는 이 시대의 남자들은
성에 대해 너무 불리하잖아요.
선천적으로 뇌의 성욕이 보다 높고
후천적으로는 시각적으로 음란한 환경에 의해
성욕이 더 많이 자극받으니까요.
이러한 것은 인본주의적인 연구 결과인데
정말 이것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맞는다면
왜 이렇게 만들어 놓으셨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뇌’도
유전적으로 또는 환경적으로 영향을 받아 진화한다.
모든 생명들이 진화하듯
인간의 몸의 핵심적인 지체인 ‘뇌’ 또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창조적 변화’를 하고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들은
시공간적 환경 변화에 의한 ‘수동적인 변화’를 한다
고
내가 말하였지?
그와 같이 동식물들과 달리 ‘인간의 뇌’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이 부여된
‘자유의지의 원리’에 의하여
수많은 세월들 동안 ‘창조적인 변화’를 이루어 온
것이다.
창조적 변화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자신이 주체적으로 꾀하는 변화’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인간들도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인지라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잖아요.”)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성향’이 있다.
주변 환경에 따른 현재의 상황에
안주해버리고 극복하지 못하여
그대로 순응하며 사는 성향이 있는가 하면,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자신의 상황을
개선시키고 극복하고자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
나의 뜻에 의한 성향은 후자이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창조적인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지만,
인내와 끈기가 부족한 자는
‘수동적인 변화’밖에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창조적 변화란
마치 인간들이 시공간적 환경의 제약에 상관없이
비행기, 배, 자동차, 핸드폰 등을 만들어
오히려 환경의 제약을 극복해버린 것과 같나요?”)
그렇지.
이와 같이 인간의 뇌에도
수많은 세월들 동안 ‘수동적인 변화’와
‘창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인간들은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과학 등에 대해서
는
창조적인 변화의 능력을 써서 발전해왔지만
사탄들의 ‘이성과 음란, 타락을 위해 만들어놓은
환경’에 대해서는 순응적으로 굴복하여
수동적인 변화를 이루어 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이루어졌던 변화의 양상에 따
라
인간의 뇌도 진화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 왜 남자들은 특히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성욕이 강합니까?”)
남자들이 그렇게 뇌를 써왔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물론 이성 타락의 시초는 하와다.
그렇지만 그 후 하와를
나의 명에 따라 다스리게 되면서
그 자리를 이용하여 각종 각색으로 음행과 타락을
일삼았다.
그러다 보니 보이는 육신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음란과 이성을 향한 타락의 근성이
더욱더 강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성향이 뇌에 영향을 주어
변화를 일으킨 것이었다.
(“하나님, 그러면 여자는 왜 언어적이고 청각적 자
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까?”)
이 또한 뇌의 진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남자에 의해서 다스림 받게 되었던 여자는
남자의 명에 따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남자의 음성, 말에 항상 귀 기울여야 했다.
그렇게 청각적인 요소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으니
그에 따라 뇌도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된 것이다.
(“마치 시대 중심자이신 선생님의 운명에 따라
세계의 동향이 바뀌듯
그 시대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중심자였으니까
아담과 하와 간의 관계가 표상처럼 되어
전 인류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이와 같이 바뀌어가며 진화 되어 온 것이군요.”)
‘축소 확대’라 하였다.
시대 중심의 역사가
그 시대 전 세계의 운명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 시대 중심 역사였던 아담과 하와의 관계에 따라
전 세계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결정나버린 것이
다.
(“하나님, 시대 중심 역사에 따라
현재 하나님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적 심판을
전 세계에 하고 계시다는 것은 진정 알겠어요.
그런데 전 세계 모든 남자와 여자 간의 관계성을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관계성으로
어떻게 유도하고 이끌어내실 수가 있었습니까?
인터넷도 전화기도 없었던 시절이었는데요?”)
로마서 5장 13절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
느니라
이와 같은 원리로
에덴동산을 제외한 전 세계의 남자와 여자들은
자범죄가 없었기 때문에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하였기에
영, 혼, 육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러니 나의 전지전능함이 온전히 당도하여
모든 전 세계의 남자와 여자의 관계성을 정할 수
있었다.
나의 감동 감화에 의해 온전히 운행할 수가 있었으
니까.
(“하나님, 하지만 위의 성경구절에서 말씀하셨듯
율법이 없는 곳에서는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잖아
요.
그렇다면 에덴동산 이외의 여자들이
율법에서 죄라고 여기는 이성 타락을 하였어도
율법이 없었으니 원죄를 지은 것이 아니잖아요.
고로 죄에 따른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됐으니까
에덴동산 이외의 여자들은
에덴동산의 하와같이 그 형벌로
남자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요?”)
연대죄에 대하여 배우지 아니하였느냐.
연대죄가 무엇이냐?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님에도
한 민족, 나라, 세계 모두가
죄악의 짐을 나누어 지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체를 구원하시려는 의도가
들어있다고도 배웠고
역사와 상관이 있는 죄라고도 배웠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할 테니 너는 잘 들어라.
‘첫 중심자’로서의 하와의 원죄가 너무나 컸기 때문
에
하와 혼자서는 그 죄를 다 감당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전 세계의 여자들에게
그 죄의 형벌을 나눔으로써
‘여자’라는 종족의 구원을 끊지 않았던 것이었다.
만약 이 원죄의 죗값을
에덴동산의 하와에게만 짊어지게 하였다면
여자의 구원길은 아마 거기에서 끝이 났었을 것이
다.
전 세계의 여자들이 그 죗값을 짊어짐으로써
여자의 구원길이 끊기지 않았음을 알라.
(“연대죄로 율법이 없는 곳도 형벌을 받는다면,
어찌 노아 시대 때에는
전체심판을 안 하시고 부분심판을 하셨나요?”)
보아라.
아담과 하와 때에는
‘중심자의 타락’이 있었기 때문에
‘중심자의 운명은 전 세계의 운명을
표상한다는 원리’에 의하여
전 세계의 여자들이 ‘전체심판’을 받은 것이고
노아 때에는 그의 민족이 모두 타락하였어도
‘중심자의 타락’은 없었기 때문에
죄가 범람한 그 지역의 ‘부분심판’으로 그친 것이
다.
(“아까 말씀하신 구절의 바로 다음 구절인
로마서 5장 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
라
이 구절이 곧, 중심자의 타락은
곧 전체심판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구절입니까?”)
맞다.
아담의 범죄는 그에 따라
전 세계의 남자들에게 그 죗값이 나누어졌으며
하와의 범죄는 그에 따라
전 세계의 여자들에게 그 죗값이 나누어진 것이다.
그러니 중심자가 타락하였느냐
타락하지 아니하였느냐에 따라
심판의 종류가 나뉘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세계 수많은 민족들은 다 타락하였
어도
중심자이신 선생님께서 타락하지 않으셨기에
전체심판이 아닌 부분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군
요?)
보아라.
모든 민족이 타락하였어도
구원의 끈이자 나와 인간의 중보자적인 위치에 서
있는
‘선생’이 타락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너희의 재림 때의 '구원의 끈'이 유지되어 있는 것
이다.
만약 선생이 타락해버렸다면
더 이상 이 재림 성약역사의 구원의 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너희의 구원 길이 막혀버렸을 것이다. 알겠느냐.
시대의 중심자인 선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라.
(“이성과 음란의 죄에서 자유로우신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 주셔서 감사해요.
하나님, 죄송한데
이성과 음란에 대해서 질문이 또 있어요.
요즈음 섭리에는 예수님이나 영적인 상황들을 시각
화해서
영상이나 이미지로 표현하는 경향이 많이 생겼잖아
요.
혹시 사탄들이 현재 시각적 요소로
특히나 이성, 음란의 죄를 짓게 만드니까
그에 대항하여 저희들의 시각을
하늘 쪽으로 옮겨오기 위하여
영적인 것들을 자꾸만 시각화하시는 것입니까?
영상 설교도 그런 흐름인 것 같고요.”)
그래.
너희들이 자꾸만 너희의 눈을 세상에 빼앗기니까
그 눈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시키고자 한
나의 의도였다.
너희의 눈을 빼앗기면 마음도 빼앗긴다.
온전히 말씀으로, 이미지로, 영상으로
나에게 집중하여라.
(“혹시 그렇다면 이성 간에 육의 겉모습, 즉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중심하는
현 시대의 ‘외모지상주의’도 결국 사탄의 계략인가
요?”)
내가 너희의 몸을 깨끗이 씻고
예쁘게 단장하고 나오라고 말한 이유는
너희의 ‘육신’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나오기 전 준비하고 예비할 때의
너의 ‘마음과 정성’을 보기 위해서이다.
육신을 깨끗이 하고 예쁘게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과정 가운데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너희의 ‘마음’을 보지, 육을 보는 여호와가 아니니
라.
이같이 현 시대처럼 ‘육’을 중심케 만들며
‘외모’를 중심케 만든 자가 누구이겠느냐.
바로 육신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이니라.
어떻게 해서든 너희가 육신을 중심케 만들어
육만 보게 만들고 육의 타락을 갈망하게 만들었노
라.
그러니 이러한 비밀을 들어 알고 있는 너희라도
육적인 사상과 생각, 행동, 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방되라는 것이다.
사탄들의 육신을 통한 농간에 당하지 말지어다.
오로지 영적인 사상과 생각, 행동, 말을 하려
노력하고 도전하라는 것이다.
알겠느냐.
(“하나님, 궁금한 것이 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성적 타락 이후 생명나무와 선악과
를
‘옷’으로 가리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성적 타락 전에는 육신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다녔음에도
이성 간에 육신을 볼지라도 음욕이 발생되지 않았
습니까?”)
그때는 오직 ‘번성만을 위한 쾌락’이 있었을 뿐
‘쾌락을 위한 번성’은 없었노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 간의 타락이 시작되자
그때부터 루시퍼는 이 타락의 조건을 가지고
‘육신의 주권’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그러니 그 다음부터 서로의 육체를 보게 되면
사탄의 근성인 ‘음욕’이 발생되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부끄럽게 하여
옷을 입도록 한 것이었다.
타락의 도구가 되어버린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안 보이게 가려놓음으로 인해
타락이 속출되는 것을 막고자 한
나의 ‘임시방편’이었다.
그러나 이미 타락의 근성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어버린 인류는
서로의 ‘육’ 자체만 보아도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옷을 입혀놓아도
구약부터 신약까지 차마 셀 수도 없는
이성의 타락이 일어나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임시방편인 ‘옷’마저도
점점 다시금 태초의 모습을 띠려고 하니
육신의 주권을 빼앗겨버린 인간들이
서로를 본다면 얼마나 큰 음욕이 일어나겠느냐.
참으로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 계속해서
음란과 타락의 모양새를 취하려고 하는구나.
어떻게 해서든 더욱더 사탄들의 노예가 되기 위하
여
발버둥을 치는구나.
참으로 슬프다.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더 슬픔이 많으신 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하셨듯
타락으로 인해 사랑의 질서가 파괴되어
제한되어 있던 이성간의 끌림의 감정이
무제한으로 변질되었듯
음욕도 제한되어 있다가
그 제한이 없어져버린 것이군요?
그래서 노아 시대, 소돔과 고모라 등 계속해서
그 음욕의 크기가 점점 더 커져온 것이군요?”)
그래.
영이 죽어 육적 감각이 커지듯
음욕의 크기도 수준도 증가해버린 것이다.
이에 대한 ‘유일한 방책’은
버려야 할 육적인 모든 것들을 버려
‘더 이상 버리지 못해 사탄들에게 조건 잡히는 것’
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오직 영적인 것을 바라고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육은 있되 ‘천인’처럼 사는 것이다.
오직 천인처럼 살기 위해서는
천인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여라.
언젠가 나 주 여호와같이 온전해지지 아니하겠느냐.
선생처럼 온전해지지 아니하겠느냐.
지금이 버릴 것을 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때이니 어서 버리어라.
진정 이성과 음란함에 대하여 말해주었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준
주 여호와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