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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1.07.31 (일)

장정임 부산주마음 4기 음성

선포일
2011.07.31 (일)
성경 본문
새벽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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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읽어라 작성일: 2011. 7. 31. (일) 새벽 4:00 작성자: 장정임 (현직교사회, 부산 주마음 가정국 4기) [ 새벽기도를 마친 후 계속 주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주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도 커서 “주님! 빚진 것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다 갚죠?”라고 물었습니다. 주님은 “네가 내 몸 되어 뛰는 것이 빚 갚는 거야.”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주님 몸이 되고자 하여 전도하고 강의를 해도 그 결실이 생각만큼 풍성하게 맺어지지 않았음이 생각나서 “네, 맞아요, 하지만 갚으려 해도 잘 갚아지지가 않아서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눈을 깜박or 반짝이시며“빚 잘 갚은 방법이 있지, 가르쳐 줄까?”하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네 나라 속담에 천 냥 빚도 말 한마디에 갚는다며? 그와 같이 빚을 내어 준 자의 마음을 알고 위로하며 그 마음에 맞게 살면 빚내어 준 자가 그 빚 모든 것을 없던 걸로 탕감해 주기도 하지 않겠느냐? 내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꼭 알아야 한다. 너희 인간도 어제 마음 오늘 마음이 다르고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마음이 변하는데 수천 년간 역사를 이끄는 나 예수가 어제의 예수이기만 하겠느냐? 내 사랑의 마음이 변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 사랑의 차원이 변한다는 말이다. 구약인들은 모세 때에만 역사하신 하나님이신 줄 알았다.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과거의 신으로 묶어 두고 섬겼다. 구약의 하나님, 신약의 하나님, 그리고 성약의 하나님은 모두 동일한 분이시나 차원을 높이시며 달리 역사하심을 배우지 않았느냐. 어미가 어린 자녀와 놀아 주려 웃으며 즐겁게 숨바꼭질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 어미가 어린 자녀와 같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없지 않느냐. 때를 따라 맞추어 주고 때를 따라 성장시켜 어미와 같은 어른이 되었을 때는 비로소 심정에 묻어 둔 이야기를 나누며 장래의 일을 함께 계획하기도 의논하기도 하는 것 아니겠 느냐. 하나님 역시 그러하며 나 역시 그러하나 인류는 자꾸만 성삼위의 역사를 과거에만 국한시켜 보려 하는구나. 시대를 따라 차원을 달리하고 수준을 높이는 삼위임을 알 고 이에 따라 역시 인류를 대하는 기대치와 마음이 달라짐을 알아야 한다. 섭리역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반기의 기대치와 후반기의 기대치가 엄연히 다르고 역사의 진행 방법과 방향도 다르다. 전반기가 육 중심의 역사라면 후반기는 영 중심 역사이기에 중심은 같으나 방향이 달라짐을 깨닫고 더욱 삼위의 뜻과 마음을 맞추어 따라와야 한다. 나와 선생이 부흥강사를 증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나와 선생의 방향을 정확히 알고 따라가고자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방향을 알고자 한다는 것은 하늘의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뜻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알고자 한다는 의미이며 그리 알고 행할 때 심정에 합한 자가 되고 삼위의 마음에 맞게 사는 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선포되면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말하는 자의 심정과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망의 말을 하여도 그 속에 깊은 사랑이 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오해와 불신이 쌓여 결국 어깃장을 놓는 역사가 일어난다. 책망의 근본 목적은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 아니냐. 돌이켜서 그를 통해 다시 원래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함이다. 구약의 끝에 나 예수가 와서 새로이 역사를 펼 때 먼저는 사랑의 말로 어르고 달래며 돌이킬 것을 애원하였 으나 끝내 듣지 않고 하늘 역사의 길을 방해하고 막아섰던 그들에게 나는 책망의 말을 전하였다.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해서였다. 만약 미워했다면 내 어찌 십자가 죽음 앞에서 그들 위해 아버지께 용서해 달라 말할 수 있었겠느냐? 심정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읽어야 한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하는 자 많지? 그래서 더욱 곤고하고 나아가 신앙이 시들어지고 결국 빼앗겨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안다. 왜 응답이 없겠느냐? 내 마음을 읽지 못하고 그저 자기 필요한 것, 자기 말하고 싶은 것만 내뱉으니 그 기도에 내 무어라 응답할 수 있겠느냐? 애인이라면 먼저 사랑하는 자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살펴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 선생이 그리 가르치지 않았더냐? 돈 문제가 있는 자는 먼저 돈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인생 문제가 있는 자는 먼저 인생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사랑 문제가 있는 자는 먼저 사랑 문제를 풀어야 한다. 매인 것 먼저 풀어야 그 다음 일이 진행되고 진척될진대 너희 가운데 많은 자는 나를 만나러 와서는 내가 무엇에 매여 있는지, 무엇을 기뻐하는지, 무엇을 슬퍼하는지 나의 안색을 살피기도 전에 너희 좋을 대로 말하고 자기 감정 쏟아내다가 훌쩍 떠나버리는구나. 나는 무엇이냐? (“예수님, 죄송해요. 예전에 선생님께서 수많은 면담을 하면서 ‘내가 뒷간이냐?’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주님 마음 먼저 헤아리고자 노력할게요. 맺힌 것 먼저 풀도록 노력할게요. 지혜를 주세요.”) 그래. 내 마음 가까이에 와 있는 자들은 이를 잘 알 것이다. 허나 그러지 못한 자 지금에라도 이를 알고 나를 대하여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먼저 인사하고 안부 묻고 상대의 사정 봐 가면서 대화하는데 너희 중에는 신인 나를 너무나도 무렴히 대하는 자가 있어서 하는 말이니라. 말 그대로 대화란 주고받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일방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더 깊은 단계의 대화를 할 수 있듯 나와의 대화와 사랑도 일방이 아닌 주고받으면서 그 차원이 높아지고 깊어지는 것임을 기억 하고 기도의 시간에 너희는 내 마음 알기를 더욱 구하며 깊이 묵상함으로 내게 다가오너라. 전능의 왕이지만 너희를 진정 사랑하기에 너희와 대화하며 사랑 나누길 원하는 것임을 알고 예의를 갖추고 날마다 내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를 잘 살펴서 심정 맞게 나오는 어여쁜 내 사랑 내 신부되길 원하노라. 사랑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