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1.07.31 (일)
장정임 부산주마음 4기 음성 b8bc197a
- 선포일
- 2011.07.31 (일)
- 성경 본문
- 새벽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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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임20110731-부산주마음_4기-음성_b8bc197a.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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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한 무덤
작성일: 2011. 7. 31. (일) 새벽 3:00
작성자: 장정임 (현직교사회, 부산 주마음 가정국 4기)
[ 개인, 가정, 교회, 섭리를 두고 기도할 때 저희가
아직도
많이 깨어나지 못하여 변화가 더딤이 느껴져서
회개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주님은 섭리인들 가운데에도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답답한 심정을 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받아쓰게 되었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고 사랑하는 섭리사 내 사랑들아.
이 시간 이 여인을 통해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과 나의 심정을 전하노니
진정 깨어 듣고 일어나
신랑으로 오는 나 예수를 온전히 맞이하길 바라노라.
회칠한 무덤!
너무나도 끔찍한 말이지.
너희는 느껴지느냐?
이 시대가 회칠한 무덤이 되어
내 사랑의 역사와 나의 심정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전혀 미동치 않으며 시체처럼 누워있음을 너희는 보느
냐?
새 시대 새 역사로 와서 새 말씀을 받고 살아나지 않으면
영영 무덤에 갇혀서 이생에서도 저생에서도
죽음의 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다.
매주 선생 통해 선포되는 나의 말씀은 살아 생명력이 있
어
너희의 모든 신혼골수를 쪼개는 능력이 있으나
이 또한 살아 있는 자와
듣는 귀가 열린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니
아무리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소경된 자와 귀먹은 자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기에
살아나지도 무덤을 열고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허나 이 시간 나 예수가
사랑하는 섭리사 너희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으니
곧 이러한 회칠한 무덤의 모양으로 존재하는
기성과 이방을 보는 나의 고통이 너무나도 크고 크지만
섭리사 가운데에도 이러한 모습으로 앉은뱅이가 되어
나의 귀한 시대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가 많아
내 마음의 애달픔이 깊어져만 간다는 것이다.
살았다 하나 죽은 자라는 말씀이
기성과 이방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분명 기성과 이방의 무덤에서
새 역사 새 말씀을 듣고 살아 나온 자가 아니었더냐.
허나 어느새 다시
살았다 하나 죽은 자가 되어 사는 자가 많구나.
영이 충격을 받고 쓰러질만한 말씀을 들어도
네 육은 아무런 감흥이 없고
네 죄악으로 인해
네 영이 지옥의 고통을 받고 울부짖어도
네 육은 죄를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사니
곧 죽은 자가 아니겠느냐.
파리한 시체가 무표정한 얼굴로
너를 따라 다닌다고 생각해 보아라.
진정 끔찍한 일이 아니겠느냐.
누가 너를 그리 만들었더냐.
누가 너를 다시 무덤 가운데 거하게 하며
시체로 만들었더냐.
바로 네 자신이 아니더냐.
너희 변화되지 못한 육성과 인성으로 인해
네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관에 눕기를 자처하지 않았는지
긴히 뒤돌아보아라.
버릴 것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회개할 것을 온전히 회개치 못하니
육성에 갇히고 타락된 근성에 매여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이다.
무덤이 오히려 편하다 여기며
육적 사고의 관 속에 누워 잠을 자면서
자신은 살아 있다 깨어 있다 주장하는 꼴이다.
진정 깨어 있으라.
말씀에 깨어나고 실천에 깨어나고
사랑에 깨어나고 회개에 깨어나고
나 예수의 심정에 깨어 있으라.
무의식 가운데 어제의 방식과 습관에 매여 살지 말고
항상 변화하며 차원을 높이는 나 예수에게 깨어 있어라.
차원을 높이면 어제 보이지 않던 흠이 오늘 보이게 된다.
그만큼 더욱 빛 가운데로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 나 예수에게 가까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제는 너 보기에 죄가 아니던 것이
오늘은 죄가 되어 회개하게 된다.
완전함을 향한 수순이다.
사랑하는 나의 섭리사야.
선생이 토해 내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진정 얼마나 귀하고 중한지 깨닫지 못하면
너희는 변화될 수 없고
살았다 하나 이내 죽은 자가 되어
너희를 스스로 무덤 가운데 가두고 만다.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차갑게 식은 심장으로 간절함 없는 기도를 하며
의례히 드리는 찬양을 통해서는 나를 만날 수 없다.
뜨거운 가슴과 끓는 피로
네 영과 혼과 육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내 앞에 나아오라.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라.
날마다 깨어나지 못하면
높아만 가는 내 사랑의 역사를 감당할 수 없다.
신부로 불림 받은 너희가 그저 구원에 만족하며
자녀로 종으로 전락하고 말면
진정, 진정 안 되는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지 않고
어제의 변화로 만족하는 자는
나의 역사를 따라올 수가 없다.
선생 보아라.
왜 저리 몸부림치겠느냐?
날마다 전진, 날마다 변화이다.
날마다 네 영이 새롭게 되길 기도하여라.
또한 날마다 변화되지 못한 자,
구습과 육성에 갇히고 회칠한 무덤에 갇혀 버린다.
살고자 섭리에 왔는데 다시금 죽어 가는 너희를 보는
내 심정은 타들어만 가는구나.
날마다 몸부림치는 자가 되어라.
그러한 자 나에게 희망과 기쁨과 웃음을 준다.
나 전능자가 너희의 그 몸부림에
위로를 얻고 희망을 얻는다.
나 사랑하지 않느냐?
쓴웃음이 아닌 내 환한 웃음이 보고 싶지 않느냐?
진정 너희와 기쁨의 잔치를 하고 싶구나.
네 사고에 갇히고 네 생각에 갇혀서 나를 보지 말아라.
무덤 속에서는 아무리 움직여도 자유함이 없다.
진정한 기쁨이 없다.
무덤 벗어나라.
자기 입장과 자기 생각의 무덤 속에 갇혀 있으면서
스스로를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라.
말씀은 너무나도 많이 들어
너희 머리 가운데 꽉 차 있어서
입으로는 줄줄 외듯 나오지만
나 예수가 그 말씀 통해 변화되길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실천치 못하고 사는 자 많다.
동일한 말씀을 듣고도 그 깨달음과 행함이 달라
변화된 수준도 천차만별이구나.
일어나라.
벗어나라.
무덤을 열고 나오라.
성령을 간구하여라.
성령의 은혜와 역사로
무덤을 열고 나오도록 구하고 또 구하여라.
진정 물과 성령이다.
진리 말씀에 의거하여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받아야만
굳어진 사고와 육적 생각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다.
다 비우고 기도하여라.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기도하여라.
무엇이 나의 원하는 것인지를 들으려 노력하여라.
숫자적 놀음으로 네 신앙을 계산치 말아라.
기도를 몇 시간 하고 찬양을 몇 곡 하는 것이
기준과 잣대가 되면 형식과 외식의 신앙이 되고 만다.
단 30분의 기도를 하고 단 1곡의 찬양을 하여도
내가 듣고 싶은 기도를 하고
내가 받고자 하는 찬양을 하도록 하여라.
그것이 나를 중심한 신부의 삶이다.
깨어나라.
무엇이 변화되었고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은혜가 차고 넘치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