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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1.08.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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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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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실천 작성일: 2011. 4. 22~28. 작성자: 이선진 (진주 주하나교회) [ 감람산 팔각정에서 철야기도 시간에 찬양을 하며 선생님의 심정을 느끼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갑자기 선생님의 사생애 시절 때의 심정이 느껴지 면서 가슴이 저며 왔습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하늘의 음성을 홀로 듣고 그 음성을 확신하며 연단 받으시며 주변의 무시, 핍박, 조롱과 싸워 이겨 내시며 살아오셨던 세월들... ‘지금의 우리는 계시를 받으면 분별해 주실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시니까 분별 받을 수 있지만 그때의 선생님께선 자신에게만 들려오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들려오지 않던 그 음성을 분별해 줄 자 하나 없이 어떻게 확신하고 나아가실 수 있으셨을까? 그것도 가난과 궁핍에 찌든 삶을 사시면서도 경제적으로도 힘이 드는 하늘 길만을 어떻게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실 수 있으셨을까? 나라면 도저히 못했을 것이다.’느껴지면서 더 간절 히 선생님의 심정이 담긴 ‘새노래’를 찬양하였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 선생님 말씀 * 사랑아, 오늘은 나 선생이 말하고자 한다. 나의 심정의 글을 적어 전해 주기를 바란다. 네가 느꼈듯 나는 홀로였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와 함께 역사를 펼 형제 한 명 없었구나. 내가 육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적에 다가와 눈물 한 방울 닦아낼 손수건 하나 건네주는 자 없었다. 춥다고 몸서리치고 있을 적엔 오로지 비바람만이 나의 친구였다. 눈보라 몰아칠 적엔 꽁꽁 언 내 두 손 위에 떨어지는 것은 오직 차가운 눈송이뿐이었다. 어느 누구 하나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라고 건네주는 자 없었구나. 어떻게든 따뜻하게 해 보겠다고 짧고 얇은 외투를 안쪽으로 세게 잡아당겨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그 외투를 입고 감람산이든 대둔산이든 오르고 또 올랐던 기억도 나는구나. 온몸은 차가워져만 가는데 내 마음속 불은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이 시대를 밝혀 줄 불, 진리의 불, 성령의 불, 심정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아느냐. 새로운 진리의 불을 발견하였을 적에는 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진귀한 보물을 본 것처럼 뛸 듯이 기뻤단다. 그 전까지는 고통이었어도 진리를 발견한 후부터는 행복 그 자체였다. 진리는 나의 인생 그 자체였다. 시대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자 애쓰고 애쓴 모든 수고와 노력들은 다 기억 저편으로 날아갔지. 고통은 그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이 영원해 보여도 막상 지나고 나면 ‘언제 지났지?’하며 잊히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그 순간의 고통만 참아내면 더 큰 축복이 오기에 그 모진 세월을 날마다 날마다 이러한 생각으로 살아갔다. 섭리사야, 나의 모진 시련과 눈물 속 고통들을 다 참고 이겨 내어 맛본 결실들아! 너희들이 나의 힘이다. 너희들이 힘을 잃으면 나도 힘을 잃고 너희들이 힘을 내면 나도 힘이 난다. 너희들이 나고 내가 너희들이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와 나는 ‘운명 공동체’라고. 너희들이 잘하면 그만큼 나도 이 역사 더 수월하게 펼쳐 나갈 수 있으며 너희들이 못하면 그만큼 내가 더 애쓰고 고통 받으며 이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섭리야,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겪은 고통과 시련, 눈물 등이 다 잊혔다고 말하는 것처럼 너희의 부족함으로 인해 내가 더 어려움 받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진짜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아무리 내가 여기에서 몸부림치며 그 모든 고통들을 감수하였어도 너희가 그만큼 행해 주지 않아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좀 더 받을 만한 어려움이 있고 흘릴 만한 눈물이 있다면 차라리 내가 더 끌어안고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감수하며 가고 있기에 더 이상 끌어안을 수 있는 고통의 빈자리조차 없구 나. 내가 좀 더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받을 것이다. 사랑하는 섭리사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이 조금씩만 더 고통들을 감수해 준다면 나의 눈물로써 일구어 놓은 섭리사가 진정 잘될 것이다. 버릴 것을 버렸을 때의 고통, 심정 맞추어 이 섭리역사 따라갈 때의 고통, 실천할 때의 고통, 나를 위해 기도해 줄 때의 고통 등 너희 각자 각자가 참고 견디며 이겨 나아가 줄 때 진정 섭리사가 빛을 발한다. (“선생님, 새노래로 찬양할 때 느낀 심정이에요. 현재 저희 섭리인들은 옆에 형제자매들도 있고 완성된 월명동, 교회, 섭리 시스템, 네트워크 등 기반이 잘 구축되어 있는 상태에서도 ‘힘들다, 힘들다’하며 쓰러지기도, 무너져 버리기도 하는데 도대체 그 어떤 기반도 없는 산골에서 그것도 너무나 가난한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늘의 연단을 확신하고 믿고 참아 내실 수 있으셨나요? 도대체 어느 정도의 확신감과 믿음이 있으셨기에 그러실 수 있었나요?”) 그 답은 ‘사랑’이었다. 내 인생은 포기할 수 있었어도 주 예수와의 사랑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암울하였던 인생 속 유일한 낙과 빛이 되어 주신 주님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물론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은 들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시키고자 나에게 와 주신 주님을 나는 뿌리칠 수 없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나의 육신을 써 주시겠다는 주님의 감동에 그저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었다.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나의 육신만을 원하시는 주님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끌려 버려 그만 주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선생님께 주님 사랑의 힘은 무엇인가요?”) 오직 ‘주님 사랑’만이 나에게 원동력이 되어 주었 다. 이 사랑이 없었으면 나는 섭리역사 일구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한 채 그저 시골총각으로 살아갔었을 것이다. 오로지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의미였으며 원동력이었 다. 주님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나의 모든 삶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힘들 때나 슬플 때나 주님 이름만 부르면 내 마음은 깨끗이 치유함 받았다. 사랑아, 너도 나의 차원까지 올라와 보아야 안다. 그 차원에서는 내가 말하는 ‘주님 사랑의 차원’을 못 느낄 것이다. 간이고 쓸개이고 다 빼줄 수 있어도 내 마음속 가득 차 있는 ‘사랑심’만큼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못 준다. 이건 내가 수십 년 동안 연단 받고 단련하여서 키 워 낸 사랑의 보물이니까. 내 인생 전부와 바꾸어 만든 사랑의 탑이니까. 수많은 진리의 보화들과 실천의 고통들을 용광로에 한데 부어 섞어 만든 최고의 보화, 바로 나의 ‘사랑심’이다. 이 ‘사랑심’이 내 인생 잘 되게 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니까 주 뜻대로 실천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영원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생명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도 이같이 주님 사랑해 드려야 돼. 오직 실천으로. 나의 주님 사랑의 차원은 오직 ‘실천’으로 이룩한 것이었다. 실천하니 생활 속에서 나의 곁에 항상 동행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오직 ‘실천’만이 형식 신앙을 벗어나게 해 준다. 말씀으로만 들었던 주님을 실제 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니까. 보이지 않는 영이신 주님을 마치 보이는 육신 쓴 자처럼 느낄 수 있게 해 주니 까. 그러니까 실천이 중요한 거야. 실천만큼 중요한 것이 없어. (“선생님, 생각해 보니 정말 신앙이 안 좋아질 때 나, 점점 섭리와 말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떨어질 때, 제 삶이 과연 맞는 것인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실천하니 다시 제 마음이 하늘 쪽으로 기울고 회복되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주님 사랑에서도 실천이 정말 중요하군요.”) 그래. 실천해야 사탄도 멸해지고 천군 천사들도 힘입어 열심히 사탄 마귀들과 싸워 이겨 낼 수 있는 거야. 실천이 생명이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 실천하여라. 너에게 힘을 줄 거야. 오직 실천이다. (그 다음 날 천덕굴로 옮겨서 이어서 선생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기도하는 중 예수님께서 인자하신 표정으로 오셨고 두 천사가 기도굴 통로에서 사탄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 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생님의 말씀을 계속 받으라고 하셔서 선생님 기도를 하며 간절히 부르니 주님 곁에 어느새 선생님도 와 주셨습니다.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주변의 형식 신앙자들의 행함 없는 신앙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실천하실 수 있었어요? 남들 따라 똑같이 실천신앙 안 하실 수도 있었잖아 요. 처음에는 주님 사랑의 마음이 없으셨을 텐데 어떻게 실천하셨어요? 첫 실천의 동기가 뭐였어 요?”) ‘부분적 진리’에 만족할 수 없었다. 부분적 진리로 인한 폐단이 ‘형식적 신앙’이라 생각하고 그 ‘비밀’을 파헤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부분적 진리가 왜 부분적 진리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지 너무도 궁금하여 성경 속 기독교인들이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샅샅이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인간들이 부분적 진리로만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실 텐데.’ 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던 도중, 가장 크게 기독교인들이 지키지 않고 있는 성경 속 진리의 말씀이 바로 ‘삶에서의 신앙의 실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완전한 진리로 향하는 배 한 척을 발견한 느 낌이었다. 이 배만 타면 완전한 진리를 맛볼 수 있을 것만 같 았다. 결국 이 배를 타고 끝도 없이 가자 점점 완전한 진리의 베일이 벗겨졌다. 매일매일 ‘완전한 진리에의 도달’만을 목표로 삼고 실천하고 또 실천하였다. 그렇게 실천하고 또 실천하자 그 실천 값에 해당되는 진리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 주고 가셨다. 그렇게 이십여 년, 눈보라가 치고 광풍이 몰아 닥쳐 도 끝까지 포기치 아니하며 감추어졌던 완전한 진리의 베일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 내며 지냈던 그 오랜 세월 후, 어느새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게 된 것이었다. 포기치 않고 끝까지 행하고 또 행하니 주 예수께서는 성경의 인봉을 푸는 자로서 나를 선 택하셨고 급기야 이 시대의 최고의 신부로 뽑아 주셨다. 한 마디로 시골 청년에서 메시아 주 예수의 대표 신부가 된 것이다. 오직 ‘실천’을 통하여서 말이지. 이렇게나 ‘실천’이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어 버린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은 자는 실천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천’을 통하여 사랑도 얻고 인생도 잘 풀리게 된 것이야. (“선생님, 천덕굴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홀로 천덕굴에서 무릎꿇고 찬양을 드리는데 그 이십여 년 수도생활이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찬양으로 그 심정 겨우겨우 달래셨을 거라 느껴지 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그 연단의 길이 얼마나 외로우셨 나요? 어제는 감람산에서의 외로우신 심정에 대해 여쭈었 는데 오늘은 특히 굴 기도에서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알고 싶어요.”) 굴 속 차가운 냉기가 내 속을 스며들 적엔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싶기도 하였어. 그러나 완전한 진리에의 나의 열정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완전한 진리’를 깨달아 나의 인생의 곤고함을 해결하고 싶었다. ‘완전한 진리’만이 내 인생의 허무함을 달래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궁핍과 가난에 허덕이는 나의 삶은 ‘완전한 진리에의 열정’을 더욱더 증폭시켜 주었다.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나의 인생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 다. 사랑아, 그 어떤 인생이든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면 허무함과 곤고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야. 기성인들도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자신이 완전한 인생의 기준에 대해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인생이 허무하고 때로는 고민스러운 것이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오직 ‘완전한 진리’뿐이다. 돈도, 명예도, 물질도 순간적인 문제 해결은 도와줄지 몰라도 영원한 영생의 문제 해결은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야. (“선생님, 그렇게 외로움 속의 눈물과 고통을 감수해 가시면서 완전한 시대의 진리를 발견하셨을 때의 기분은 어떠하셨는지 더 알고 싶어요.”) 그때 나의 기분은 동굴 속 천장까지 뚫고 올라가 하늘 저 위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주 예수님이 그리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으며 하늘을 향한 나의 심정에 불쏘시개 질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인생 허무함과 곤고함은 그 순간 싹 가셨으며 이제 이 말씀들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깊어졌다. 동시에 이 말씀을 전해야 할 생명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마음이 급해졌다. 물론 핑크빛 길만은 아닐 것이라고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수십 년간 연단과 실천을 통하여 얻은 백 퍼센트 진리의 말씀이었기에 절대적 확신은 있 었다. 실천을 통하여 얻은 말씀이기에 한 치의 의심조차 없었다. 절대적 확신과 믿음, 굳건한 의지와 담대함,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세상 바다로 나아갔다. 오랜 기간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없어 낙심하고 때로는 서운해 하기도 하였으나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실천을 통한 말씀이었기에 전하고 또 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한 생명, 한 생명 모여 들어 결국 섭리 대역사를 펼친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시대 중심자로서 뽑히신 것을 아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기쁨 반, 두려움 반이었다. 주 예수께 힘이 되어 드린다는 점에서는 좋았으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부족한 자가 말씀을 전하는데 과연 역사가 이루어질까’라고 걱정, 염려하기도 하였어. 그러나 나를 통하여 주 예수님께서, 주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주고 도와주시는 것을 보고 내 마음 속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시대의 중심자로서 모든 것을 맡기고 오직 순종과 감사 감격함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참으로 길면서도 순간인 세월들이었지. 고통과 눈물도 많았지만 기쁨도 감사감격할 일들도 참 많았다. 사랑아, 하늘 길은 고통과 수고가 뒤따르지만 그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축복과 기쁨이 함께 있는 길이다. 이 길이 진정 힘들고 어려워도 목숨 걸고 가야 할 길이다. 진정 하늘이 불러 주셨을 때 후회도 말고 미련도 없이 이 길을 열심히 가야 한 다. (“선생님, 선생님께 참 부끄러운 점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생명 구원을 하는데 있어서 저의 체면, 위신, 이미지 등을 하늘 복음 전파보다 더 신경 쓰고 중심하는 근성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생명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두려움이 그 생명을 향한 안타까우신 하나님의 심정보다 더 우선시 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 럽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점들 안 두려우셨어요? 악인들에게 해코지 당할까, 심한 욕설과 비난, 평판이 안 좋아질까 하는 두려움 이요. 또는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의 무시를 당한다든지, 이런 점들이요.”) 사랑아, 전도에도 비약은 없다. 다 하다 보면 능력도 생기고 힘도 생기며 자신감도 불타오르는 것이야. 인간이란 습관이 된 것은 하기 쉽고 습관이 되지 않은 것은 어려운 것이야. 그러니 전도가 ‘습관’이 될 때까지 실천 또 실천이다. (“항상 전도하면 느끼는 것은 막상 말씀을 전하는 순간에는 하늘께서 역사해 주셔서 하나도 안 떨리고 안 두려 운데 생명에게 말을 걸기까지의 과정, 말씀을 전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인 것 같아요.”) 내가 무어라 했느냐. 고통은 ‘순간’이라고. 그와 같이 과정도 ‘순간’이다. 평생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아도 ‘순간’이다. 그 순간만 이겨 내면 영원한 축복이며 기쁨이다. 생명 구원할 때는 오직 ‘너’라는 존재를 지워 버려 라. 그리고 주 예수나 하나님께서 임하셨을 때의 느낌 을 느끼며 그 감동 감화 역사하심대로 말씀만 전하면 되는 것 이다. 항상 잘 안 될 것 같아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네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일이 틀어지고 잘 된 적도 있지 않느냐. 그와 같다. 오직 ‘맡김’과 ‘실천’이다. 그리고 그 실천을 통하여 너에게 엄습할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예상조차 하지 말아라. 진정 생명이 그 순간의 ‘전부’다 생각하고 온통 집중하여 행동하라는 것이다. 알겠어? (“어제 성령집회 때 선생님의 명 강의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을 들었어요. 물 한 사발을 마실 때 밥 한 공기 먹는다는 생각으 로 드신다는 말씀을 듣고 육적 한계에 부딪히면 쓰러지기만 하였던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어요. 육신의 한계로부터 오는 고통, 피곤함, 부끄러움과 같은 감정들을 정신과 생각으로 어떻게 통제하고 다스리셨는지 더 자세히 깊이 깨닫고 알고 싶습니다.”) 사랑아, 나는 ‘정신’으로서 인정받은 시대의 중심자이다. 군인같이, 담대 무쌍한 정신으로 실천하고 또 실천하는 자가 되자 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에게 이 사명을 맡아 달라 부탁하신 것이었다. 목숨 걸고 실천하는 정신, 하늘의 말씀이 떨어지면 오직 그 말씀에만 몰두하 여 실천하고야 마는 나의 정신을 주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좋아하셨다. 이 시대 가운데에도 주 예수님을 사랑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살겠노라’ 고백 드린 자는 참으로 많았노라. 그러나 ‘실천자’는 없었다. 이 시대 가운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실천으로서 보여 주는 표상자가 필요하였는데 입술로는 표상자가 많았어도 실천으로는 표상자가 없었다. 어디를 가나 입술로는 최고의 신앙을 가진 자, 주 예수 그리스도와 흡사하게 말하는 자들은 많았 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여야 할 때가 되면 회피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든 실천으로 옮기고자 하는 정신을 지닌 내가 뽑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실천이 쉬워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그때 내 마음과 부딪히는 육계의 감정들과 싸워 이겨야만 했으며 아예 육신을 포기해야만 할 수 있었던 실천들도 있었으니까. 허나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닦아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눈물이 실천을 통해서만 닦인다는 것을 진정 깨달았기에. 실천을 통해서만 이 땅이 천국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매번 실천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을 나타낼 때, 나는 육신을 잊고 하였다. 육신은 나와는 별개의 존재라 생각하며 오직 하늘의 생각과 정신으로만 채운 나의 혼을 가지고 실천하였어. 실천하고 나면 그제서야 육신의 피로와 고통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또 다른 실천이 나를 필요로 하니까 또 다시 육신의 고통을 잊고 행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때는 나를 주 예수님이라 생각하며 천군천사라 생각하며 육신의 한계를 잊고 실천하였 어. 도저히 실천이 너무나 어려울 때에는 ‘이 실천 끝나면 나는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실천하였다. 이 같은 실천 정신으로 그동안 무수한 고통들과 아픔들을 뒤로 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길이었다. 내가 하였으니 너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비실비실하였고 못 먹고 못 입고 못 잔 나의 육신으로도 실천하였 는데 너희라고 못하겠느냐. 너희는 나보다 잘 먹고 잘 입으며 건강하게 살아 왔으니 못할 이유가 없다. 다 정신이 연약해서 그러한 것이다. 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마음먹고 실천해 봐야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마음먹기도 전에 ‘난 안 돼. 못 해.’해 버리니 자신이 할 수 있는지, 못 하는지조차 모르고 확신도 못 하는 것이다. 행하여 보아라. 그래야 너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할 수 있다. 너희도 나처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발 하여라. 해보고 나서 못 한다, 할 수 있다 를 판단해 보아 라. 너희가 진정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사랑해. 안녕. 선생이 실천에 대하여 한 마디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