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말씀2011.08.06 (토)
캠퍼스, 청년부, 예술단, 기드온 수련회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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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6 캠퍼스, 청년부, 예술단, 기드온 수련회 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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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6일>
캠퍼스, 청년부, 예술단, 기드온 수련회 말씀
<정조은 목사님>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정확히 시작하는 역사 주님께서 이행하시는 역사입니다.
단상에서 전해지는 말씀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예수님의 몸, 심정이 되시는 선생님께서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의 영과 육을 끝까지 책임지는 이 시대의 합당한 자 한 사람을 통해서 전해주신 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를 가르치셨고, 맞아주셨는지 그 몸은 이곳 가운데 가장 먼저 달려오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이 뛰고 달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희망의 말씀 기쁨의 말씀 자부심의 말씀을 가지고 새 역사에 대해서 깨우쳐 주실 것이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먼저 모시고 귀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영상을 통해서 선생님의 말씀 듣겠습니다.
<선생님 영상>
나에게 누가 묻기를 무엇을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 전도해서 이말 한마디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 것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이렇게 와서 모여들어서 세계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세계가 되었다.
얼마든지 우리는 비전이 있고 이상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새로운 역사의 주인들이니까 긍지를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위해 늘 기도 하고 생명을 책임지겠습니다. 여러분들 구원의 문제를 가지고 매달리고
간구해서 여러분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말씀대로 뜻을 따라 오길
바랍니다.
<정조은 목사님>
예수님께서 항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내가 원하는 심정을 이 시대에 전해주어라.
선생님은 오늘도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는 단상에 서서 주께서 내게 전해주신 그 말씀만을 그리고
전해주고, 그 심정만을 나타내주길 원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서 이 시대, 바로 지금, 오늘, 앞으로 진행될 역사가운데 일어날 뜻을 깨닫길
원한다.
기쁨의 말씀 희망의 말씀 전해주겠습니다.
수련회가 시작되기 한달 전 부터 기도를 했습니다.
올해 수련회 방향을 어떻게 정할까?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구원역사인 섭리역사에 와서 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람이 있다.
원하고 바라는 그 마음을 알고 따른다면 이 시대에 자부심을 가지고 따를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2000년이 흘러왔다.
나는 항상 새로운 말씀을 주면서 새 역사를 펼쳐간다.
모두 섭리역사에 와서 기뻐하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2000년이나 기다렸던 새로운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없다.
새 역사에 대한 가치를 너무 모르니까 이번 수련회 때 말씀해주자.“
그래서 2011년 하계수련회 주제는 “위대한 새 역사 자부심”입니다.
새 역사가 진행됨에게 불구하고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아시고, 불타는 여름, 우리의 마음속을 새 역사의 자부심과 긍지로 가득 채워주시고 불
태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귀한 자연성전을 주님의 품이라 생각하고, 시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코치해 주신 대로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시겠습니다.
<선생님>
개인에 대한 새 역사 자부심
인생 일생 동안 가장 자부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젊음의 때입니다.
바로 10대, 20대, 30대 기간입니다.
10-30대는 인생의 새 역사의 기간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음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50, 60, 70대가 되면 나이로 인한 젊음의 자부심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청춘은 가고 구역사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0대, 20대, 30대에는 정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때가 바로 희망의 새 역사 자부심의 때 입니다.
나이가 들어 40-80대까지는 젊음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반드시 이를 깨닫고, 인생에 대한, 젊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
젊음이 재산입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젊음이 재산입니다.
주님께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고,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때가 바로 여러분의 때일 것입니다.
정말 마음 같으면 이만한 성전도 지어드리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게 없어서, 그러니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더 많이 벌어가지고 40대, 50대, 60대, 70대 되면 큰 거 하나 주님께 드려야겠다.
젊음을 부지런히 세상에 가서 쓴 다음에 40대, 50대 되면 큰 거 하나 가지고 오자.
주님은 여러분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큰 성전 원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젊음, 패기로 주님을 우해 살겠다고 결심하고, 주님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 이 땅을
쳐다보셨을 때 주님께서 한껏 웃으실 수 있는 우리의 정성과 마음과 우리의 뜻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십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청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새 역사의 때에 살 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두 가지 재산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는 새 역사의 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육적으로는 인생의 새 역사의 때인 청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지금 이 때는
누구보다 자부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부심 가지길 바랍니다.
젊음과 새 역사를 소유하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 시대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영육간의 최고의 부자입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깨닫지 못하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자가 사명자요, 깨닫는 자가 주인이요, 깨닫는 것이 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인생 새 역사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 역사의 때에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기쁘고 희망적인 것인지를 모르면 절대 자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인생 재미없습니다. 바람을 잡게 됩니다. 헛수고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청춘의 때가 졌을 때 40대, 50대가 되면 다시 시계를 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 없는 때가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때는 어제 후회한 것이 있으면 오늘 바로 잡을 수가 있습니다. 아직 청춘의 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재산 이 새 역사와 젊음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인생도 아무 때나 청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50대라면 청춘이라고 이야기 하겠습니까?
나이는 들었지만 마음은 청춘 맞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도 새 역사의 때를 보내고 있는 젊음의 때입니다. 이 때는 아무 때나 오지 않습니다. 저는 청춘의
마지막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30대.
지금 이 때를 정말 보람 있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이 시간을 최대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하며, 실패하나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는 마음은 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젊음의 때를 완전히 새워서 나의
후반기, 내 인생이 황혼으로 저물었을 때 이 때 행한 것을 가지고 빛을 발하겠다는 결심으로 살아갑니다.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젊음은 그냥 간다. 그런데 사명은 영원하다.
지금 이 때 주님을 모시고, 주님께 온전하게 행하면서 살아가므로 인해서 후반에 있을 모든 인생을 사명의
빛으로 영혼의 빛을 비취며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인생도 아무 때나 청춘이라고 하지 않듯이, 종교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때나 역사를 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구원역사를 해 오신 것을 쭉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구약 4000년 역사를 해오셨습니다.
구약 4000년이 끝나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미리 준비 시키시고 그 때가 정확하게 되었을 때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역사가 바로 신약 역사입니다.
이 때는 진리와 자유의 역사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면서 말씀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구시대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 역사는 진리와 자유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역사 때 속한 제도, 풍속, 모든 말씀들을 더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구시대 제도들을 파하셨습니다. 새로운 역사로 구원역사를 펼쳐오셨습니다.
예전에는 비둘기, 소 이런 것들을 하늘 앞에 나아갔다면, 신약 역사 때부터는 자기 몸이 산 제물이 되어서,
깨끗한 마음과 정결한 몸을 가지고 주님 앞에 하늘 앞에 직접 나가게 했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만큼 순수하고 뇌가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 받아
들였습니다. 나이든 사람 중에도 고정관념이 없고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주님의 새 역사를 젊은이들과 같이
받아 들였습니다.
이렇게 시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고 예수님을 따르니까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와 희망이 하늘까지
솟았습니다. 알고 따르니까 하늘까지 솟아난 것입니다.
새 역사로 온 자들은 구시대에서 벗어나고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구 시대의 구속된 것에서 벗어나듯이 자유와 평화를 누렸습니다. 새 역사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역사 4000년 이 주관권에 있던 자들은 전통의 자부심으로 새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전통이 자부심이기 때문입니다.
새 역사를 멸시하고, 이단시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나이가 30세였습니다.
50세 60세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얼마나 우습게 보겠습니까.
4000년의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며 악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안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더 시대 복음을 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굳건하고 꿋꿋하게 역사를 펼쳐나갔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지 3년 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구시대 4000년 전통을 가진 유대 종교인들은 더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3년 밖에 안됬는데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더 악평하고 비난했습니다. 들어보지도 않고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새 역사를 따르는 자들은 더
새 역사의 자부심을 가지고 꿋꿋하게 시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오늘 날에 신약역사는 구약역사보다 더
커졌습니다. 비교할 수 없이 지구촌 전체를 덮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 1600년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루터와 칼뱅 통해서 개신기독교 역사를 시작하면서 400년 동안 기독교 역사가 펼쳐나가게
됐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약 2000년 역사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신 다는 그 말씀을 실행하고 계십니다.
새 역사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 역사를 펴시기 위해서 새 말씀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그 시대에 맞게 새로운 말씀과 제도를 주시면서 행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도 2000년 전에 육신의 몸으로 오셨지만 그 몸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영체의 몸으로 부활하시여 성자 본체의 모습으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 동안
영으로서 사람을 통해 역사해 오셨습니다.
이제 성자 본현의 빛나는 영체의 몸으로 이 시대 합당한 자의 육신을 쓰시고 말씀하시며 역사하고 계십니다.
섭리 역사는 신부의 조건을 세운 선생님을 통해 30년 전부터 신부의 말씀이 선포되었고, 새로운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우리도 구시대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설마 했습니다.
당세에 교회 몇 개 생기고 끝나겠지?
한국에만 역사가 뻣어나가겠지?
처음 달릴 때는 고물차나 새 차나 비슷하게 달립니다.
고물차 시동걸 때 힘겨워하다 검은 연기를 내뿜습니다.
처음에는 새차와 고물차가 비슷하게 달리는데 점점점점 거리차이는 계속 나게 됩니다.
새 차를 타본 경험이 있습니까?
새 차를 타면서 자부심을 가질 때가 언제냐면, 오르막길을 오를 때입니다.
고물차는 속도를 못냅니다. 처음에는 부릉하면서 똑같이 출발하지만, 못 따라옵니다.
용달차 고물차 이겼다는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가다보면 차이가 납니다.
마라톤 선수를 보겠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보통선수들과 뛰고 달립니다.
처음에는 별로 표가 안납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이 이겨보겠다고 더 뜁니다.
그러다가 10분, 20분, 30분, 1시간, 1시간 반, 2시간 가까이 뛰고 나면 어떻습니까?
이 거리 차이는 엄청나게 나게 됩니다.
처음에 마라톤 선수는 거리 차이가 안나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자부심도 느끼지 못합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차이가 나기 때문에 마라톤 선수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됩니다.
새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고물차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쌩쌩 달리기 때문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달리면 달릴수록 고물차는 뒤로 쳐지기 때문에 새 차를 탄 보람을 느낍니다.
새 역사를 뛰고 달리는 사람이 자부심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세상의 새 차만 타도 자부심을 냅니다. 실험을 해보니, 새 차, 외제차, 좋은 차가 앞에 있으면 신호등이 켜지만
안갑니다.
출발 속도를 늦은 것입니다.
새 차가 서있으면 빵 하는 소리가 5초 뒤, 고물차가 앞에서 안가면 바로 빵 합니다.
조사를 해봤습니다.
새 차만 가지고 있어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새 역사를 뛰고 달리는 자들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누가 자부심을 느끼겠습니까?
새 차를 가지고 있어도 고물차를 앞서지 못하면 새 차를 가진 자부심을 가지지 못합니다.
쌩쌩 달려 고물차를 이긴다면,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구시대는 고물차와 같습니다. 구 역사를 타고서 아무리 밟지만 속력이 안납니다.
자존심은 커녕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리고 포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모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왜 새 차, 새 역사가 좋은지 깨닫게 됩니다.
그 차이를 알고 새 차를 너무 사고 싶어 합니다.
구약의 역사는 이미 구약이라는 차를 타고 목적지 까지 왔습니다.
너무 오래 달렸기 때문에 폐차를 시켜야 합니다.
신약 역사도 신약의 차를 타고 목적지 까지 왔습니다.
더 이상은 역사의 끝까지 달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갈 때마다 수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2000년을 사용했기 때문에 새 역사의 목적지 까지 갈려면 새 차, 새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 시대, 새 뜻, 그 목적지 까지 가려면, 새 시대 말씀, 새 역사, 새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새 것과 구시대 물건이 있습니다. 무엇을 갖고 싶습니까?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는 자전거가 빠르고, 마차가 빨랐습니다.
그러니까 마차를 가진 자들과 자전거를 가진 자들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대가 딱 가고 자동차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는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비교가 안됩니다.
자동차와 마차는 속도 적으로도 비교가 안됩니다.
다음 시대가 오니까 비행기가 나왔습니다.
자동차와 비행기는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지금 독일에서 온 친구들이 자동차를 타고 한국 땅에
왔다면 아직도 도착을 못했습니다.
내년 수련회 쯤 도착할까요? 쉬면서, 먹으면서 돈도 벌면서 와야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니까 10시간 남짓 쭉 달려왔습니다.
목적지까지 도착 하는데는 새 시대, 새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도 옛 역사와 새 역사를 감히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고로 하나님의 새 시대 새 말씀을 듣지 못하면, 절대 구시대 주관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옛날 폰 계속 쓰면 옛날 핸드폰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스마트폰 다루는 법을 모릅니다.
새 시대 왔는데도 새 시대 혜택 받지 못하고,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새 시대가 왜 좋은지 모르면 보람이
없습니다.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저는 스마트폰 3가지만 씁니다. 전화, 문자, 카카오톡.
저는 새 시대 스마트폰을 왜 쓰는지 진짜 모르겠는 겁니다. 불편한 겁니다. 계속 부팅을 해줘야 하니까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정말 새것을 가지고 저렇게 써먹지를 못할 까 아까우니 바꾸자.”
이와 같이 왜 좋은지 모르면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좋은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니까 “그냥 옛날 것 주세요. 옛날 것이 좋아요.”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도 새 역사가 시작되려면 새 시대, 새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정치적 전략이 나와야 합니다. 새로운 전략, 새로운 법을 선포해 줘야 합니다. 과거에
못한 것을 하게 해주면서 새로운 뜻을 이루면서 자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말씀, 새로운 역사입니다.
항상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여러 곳에 신약의 역사를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 한분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땅 그곳에서
처음으로 신약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보내시고, 예수님과 비슷한 사람 유럽 쪽에 보내셔서 똑같이 역사를 두 군데서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한군데서, 한 곳에서, 한 사람을 통해, 하나의 말씀을 가지고서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 역사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새 역사, 약속을 이루는 신부의 성약역사도 한 사람을 통해서 한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시니까 이 시대 육신 가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합당한 자의 육신을 쓰시고, 새 역사의
새 말씀을 그를 통해서 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절대 일치된 자여야 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원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 말씀을 전할 자! 바로 그런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절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 자기는 육의 복음의 사역자로 시인하는 자, 절대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확실하게 전달할 자라야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말씀을 전하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서 행하십니다. 사람이 행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 말씀을 선포하는 자도 주님이 역사하시고, 주님이 가르치시고, 주님이 보낸 시대에 합당한 자인줄로
믿습니다.
새 역사는 구시대에서 기다렸던 역사입니다.
고로 희망의 역사입니다.
어제 밤에 너무 원하던 것이 케익이 있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그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날 케익이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이룬 자 맞습니까? 그 케익을 먹어야 내 것이 됩니다.
과거에 너무 원하던 것을 오늘 주는 역사, 오늘 찾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새 역사는 차원이 높아요. 왜, 어제는 바라는 역사, 오늘은 이루는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옛날의 문화권의 혜택을 받는 것과 새 시대의 문화권의 혜택이 비교가 안되는 것처럼, 구 역사 새
역사는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오신 분 중에 오래전에 한번 월명동을 와보고 처음 와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바뀐 것이, 궁금했던 것이 무엇이였냐면, 화장실!
화장실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지금은 좁기는 하지만 편하지 않습니까? 앞으로는 더 좋아집니다.
여러분 어제와 오늘은 너무나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새 시대 문화권은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재래식 화장실이 세울 사람 손들어 보세요.
생각만 해도 냄새가 납니다.
새 시대, 새 말씀, 새 시대로 왔으면 새 시대 화장실을 지어야지요,
새 집을 지었으면 새시대식으로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믿었어도, 종으로 하나님을 대했습니다.
종의 입장으로 주인 대하듯 하나님을 대하듯 했습니다.
구약시대 4000년 안에서는 절대 종의 주관권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 신약 역사 때부터 하나님을 아들의 입장에서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녀입장에서
하나님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과 아들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전 구약 역사와 신약역사를 비교할 수 없듯이, 신약 역사와 성약역사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영으로 오시면서 시대 신부의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이 땅에 새 역사를 선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시는 때, 다시 오시는 이 때, 새 시대로 와서 역사를 따르는 자들은 역사의 문턱부터 주님을
신부로 모시고 살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 첫발을 했을 때부터, 여러분들은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여러분들은 문턱부터 신부된 입장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중간에 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사과나무를 열심히 키웁니다. 그리고 제발 복숭아가 열기를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사과나무야 성령을 받아라. 복숭아 열매를 좀 열어줘!
1년이 지났는데, 사과를 열었습니다.
내 기도가 부족한가? 하나님이 안계시나? 이게 뭐야. 안되겠다. 이 나무를 베어버려야겠다.
여러분, 사과나무 기르는데, 복숭아 먹고 싶으면, 복숭아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새롭게 신랑으로 맞이하려면, 자녀급 역사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새 역사로 와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났어요. 그런데 중간에 여자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로 태어난 자는 죽을 때까지 남자가 됩니다.
여자가 되려면 태어날 때부터 아예 여자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신부가 되려면 아예 역사부터 주님의 신부역사로 와야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약 역사 아들의 역사, 신부 역사 성약역사로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때가 되어 새 시대, 새 사람, 새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새 역사로 와야지만 신부로 취급 받을 수
있습니다.
역사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는 신부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예수님이 시대 말씀으로 불러오셨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두고 싶지 않아서
말씀으로 택해 왔습니다. 태초부터 택하셨습니다.
이 역사로 데리고 오려고, 은하수 출신들은 뱃속에서부터 기르셨습니다.
길러서 주님의 신부 삼으려고, 주님의 사랑하는 자로 택하려고 아예 역사의 문턱부터 주님 사랑하며 살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아예 뜻이 그것입니다.
새 역사로 오는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주님이 불러온 목적과 뜻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새 시대, 구시대 비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차원, 주님과의 관계, 주님이 대해주시는 것, 사명, 위치도
다릅니다. 어느 것 하나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인생은 똑같이 백년을 살고 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나, 주님 안 믿고 사나, 자녀로, 종으로, 신부로 사나 똑같이 수고하며, 똑같이 눈물 흘리며 똑같이
열심히 살아 갑니다. 그래야 그 급에서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역사와 새역사는 월명동 돌조경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경이 차이 나듯 차이가 납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분들 우리 집 주변에 이상한 돌조경들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그게 돌조경인지 모르겠는데 돌조경이라 합니다.
월명동 자연성전 야심작처럼 생겨야 돌조경이라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세상에 많은 돌조경을 보았을
때 사람은 앉을 수 없는 뾰족한 돌과 함께, 작은 나무를 심어놨더라고요.
비교가 됩니까?
비교가 안됩니다.
비교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아예 안 봐서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구역사와 새 역사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코끼리와 개미를 비교하겠습니까?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새 역사와 구 역사는 아예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모시면서 신부로서 신악의 복음을 펴는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곳에 아름다운 미인이 서있습니다. 멋진 미남이 서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여자는 남자 한명을 택하고, 남자는 여자 한명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너만 내 사랑하는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은 내 친구 같아! 우리 함께 잘 지내보자.”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우리가 조금 더 감이 있게 주님으로 비유를 들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지금 보니까 6000명은 넘고 7000명 가까이 왔는데, 많은 사람들 중에 딱 한명을 택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할까요?
“이 자리에서 너만 다른 사람은 다 형제같이 너만”
하면서 옆구리를 톡 찌르고 가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내 손만 잡고 “가자!”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 자부심!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대하시는데, 나만 애인으로 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황태자가 와서 한명만 택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를 모르고 “나는 됐거든요!”
그러면 그 황태자도 당장 “나도 됐거든요!” 다른 사람을 택할 것입니다.
주님은 가치 있게 사는 자에게 가치 있는 것을 주십니다.
주님은 가치 있는 것을 주시는데, 마치 돼지가 진주목걸이는 거는 것과 똑같습니다.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를 걸어줘도 모릅니다.
돼지에게 맛있는 음식을 스테이크, 디저트, 음료수, 에피타이저 해서 진수성찬을 차려줬습니다.
돼지는 “오늘 나를 위해 주인이 진수성찬을 차려줬구나!” 하면서 “오늘은 앉아서 먹어야지!” 하면서 포크와
나이프로 기품 있게 쓸어서 먹겠습니까?
역시 돼지는 돼지인지라 그냥 먹겠지요.
주님이 아무리 새 시대 말씀을 아주 멋있게 전해 도 돼지 앞에 진수성찬처럼 아무렇게나 여기고 똑같이
여기고 산다는 것입니다. 가치를 아는 자에게 가치 있는 사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새 역사를 따르면서 가치를 느끼는 자들에게 더욱더 그를 가치 있게 대해주시고 깊은 말씀으로
역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새 역사는 신형 새단차와 같습니다. 구 역사는 오래된 구형차와 같습니다.
그 차는 2000년 된 구형차입니다.
새 역사는 21세기에 지어진 별장과 같습니다.
그러나 구 역사는 오래된 옛집과 같습니다. 이 집은 2000년 된 옛집입니다.
아무리 전통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그 집에서 살다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 좋은 별장에 산다면, 옛날에 하던 습관과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면 새 집을 해준 부모도, 새집을
해준 애인도 심정 상해서 그냥 옛집에 가서 살라고 할 것입니다.
새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새것을 자랑하면서 쓰고 살아야 합니다.
구 역사는 20년 전, 30년 전, 50년 전, 2000년 전에 쓰던 공원과 가습니다.
새 역사는 하나님께서 구상하여 만드신 월명동 자연성전과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처음에 운동하실 때는 공원에서 운동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공원은 우리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가기만을 기다린답니다. 그 때서야 볼을 차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비해서 수 천배나 더 좋은 자연성전을 섭리사 우리를 위해서만 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주님도 심정상해 하시고 답답해하십니다. 선생님도
심정상해 하시고, 답답해하십니다.
그러나 자부심을 가진다면 얼마나 기쁘고, 감격하며 더 해주고 싶으시겠습니까?
앞으로 월명동은 더 많은 것이 지어질 것입니다.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기쁨과 감격함과 감사함으로 자부심을 느낄 때 주께서 더 역사하심으로
더 새로운 것을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자연성전 봤습니까?
시멘트, 콘크리트, 대리석으로 된 성전들을 보았습니다.
으리으리 합니다.
아무리 전체를 대리석으로 지었다고 할지라도, 웅장하고, 신비한 자연성전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이곳은 자연을 느끼면서 땀도 흐리고, 바람을 맞고, 산책도 하고 수영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끝과 저 끝으로 가기에 2시간, 3시간, 혹은 4시간.
아무리 좋은 대리석 성전도 3시간 걸리는 성전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 같이 높은데서 예배드리는 사람 봤어요.
말씀 듣기 위해서 높은 데로 걸어오는 사람 봤습니까?
넓은 대지의 자연성전은 세계 어디에 가도 단 한곳도 없습니다.
이곳은 해발 340m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신령입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는 이곳에서 신선처럼 앉아서 귀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더 높이 올라가면 해발 500m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몇 시간씩 와서 몇 시간씩 말씀 듣는 여러분들은 주님의 자부심, 선생님의 자부심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새 역사의 자부심 표 좀 내라고 이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세계 어디에도 없는 대 자연성전을 주셨습니다.
새 역사의 섭리역사는 하나님과 주님께서 약 50년 전부터 선생님을 통해 은밀하게 도적같이 나타나 역사하신
역사합니다.
계획적으로 역사의 문턱부터 신부의 역사가 되기 위해서 오직 예수님께서 선생님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20년 배우고, 30년 외치셨습니다.
지금은 더 깊이 있게 외치고 계십니다.
구시대 많은 사람들이 2000년 기독교역사를 내세우고 자랑하며, 400년 개신교 역사를 자랑하며 선생님을
보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단 한 번도 지금 이 순간까지 주님만이 내게 오직 가르쳐주신 새 말씀
새 진리에 대해서 자부심을 놓은 적이 없다.” 했습니다.
“나의 자부심이 무엇인줄 아느냐? 세상 어떤 이도 아니고 오직 주님만이 나를 가르치신 것! 그것이 내
자부심이다. 이것이 20년이다. 30년을 또 가르치시고 지금도 주님은 나를 가르치신다. 오직 주님이
시작하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다!”
저도 단상에서 자부심을 나타내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에게만 배워서 이 곳 단상 가운데 서있습니다.
어느 누가 강단에 많이 서고, 신학을 전공했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이곳 강단에 선다하지만, 저는 제가 가진
자부심을 세계에 드러낼 것 합니다.
왜 이 시대에 주님께서 오직 이 역사에게만 가르쳐주신 말씀과 성령을 가지고 외치는데 누가 부럽겠습니까?
주님이 역사하시는데요.
이 시대 주님이 역사하신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전능자 예수님께서 나를 20년 동안 가르쳐 주셨는데, 내가 이것을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내세우며 살아야지,
누가 뭐라 해도 예수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것이니 내가 외쳐야지.
내가 환경이 어느 곳에 있던지 입으로 외치고, 기도로 외치고, 손끝으로 외친다.
그것도 안되면 내가 만든 자들 보내서 외친다. 오직 주님이 주신 자부심을 나타낼 것이다.”
새 역사, 새 말씀, 새 사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부심을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자기에게만 있는 것을 자랑하는 마음입니다.
남에게 없는 것이 내게 있으면 그렇게 자부심이 가집니다.
나만이 특별하게 가진 것이 있습니까?
목소리, 심정, 애교, 입술, 너 누구니?
입술로 주님을 증거 하려고요. 어떤 사람은 굵은 다리, 튼튼한 다리, 산행을 아무리 해도 끄떡없어!
굵은 다리를 가지고 산행하면서 끝까지 고지에 도전하는 자부심!
열정! 시력! 지혜! 외모! 힘! 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을 때 어떻습니까?
없으면 오늘 말씀에 나왔잖아요. 젊음, 머리에 새치가 있어도 젊습니다. 괜찮아요.
주름이 있어도 괜찮아요. 젊습니다.
모두에게는 누구도 자랑할 수 없는 것,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것이 나에게 있습니다.
장년부 어르신들은 국자, 우리 집에는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국자가 있는데 구경하러 올래? 정말
어른들 구경하러 옵니다. 예쁜 그릇 구경하러 오고합니다.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여러분들은 개성적으로 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딱 보시고 뽑아 오셨습니다. 개성은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 전체를 개성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이 보실 때 1등이 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70억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것이 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하며 살라고, 엄청 생각합니다. 언제 자랑할까?
나 희귀종 나무, 자연석 있는데, 옷 샀는데 언제 자랑할까? 언제 할까?
예쁜 볼펜, 노트만 있어도 딱 꺼내면서 내 노트 정말 이쁘다!
너무 많은 것을 자랑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젠 시시해서 더는 못 보겠다. TV를 틀어도 얼마나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 물론 그것이 맞다마는
이제는 시시해서 못 보겠다. 2011년에는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해야겠다!”
선생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온 세상 아무도 가지지 못한 것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이 주신 것이 있다!
2000년 만에 시작된 새 역사 섭리역사다.”
우리 섭리역사는 지구촌에 딱 한 개입니다.
태양계 중에 사람이 사는 곳이 딱 한 개 지구밖에 없듯이, 영혼을 가진 생명체 인간 밖에 없듯이, 우주 안에,
세상 안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새 역사 주님이 다시 오시는 신부역사는 섭리역사 단 한 곳 밖에 없습니다.
새 시대, 새 역사, 새 말씀입니다.
지구촌에 두 개도 아닌, 딱 한 곳 이것만이 새 역사요, 이것만이 신부의 역사요,
이곳만이 오리지널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곳만이 신부의 천국의 문이 열리는 곳 인줄 믿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신부로 칭함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그냥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면 어떻습니까?”
그것도 괜찮은데요, 그런데 아까 이야기 했죠?
구원이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식을 벗어나, 자녀라면 열심과 마음과 목숨을 다해야 만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신부의 역사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살아야지 만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똑같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하는 것인데 어느 역사에 사실 것입니까?
똑같이 집을 짓는데 아름답게 지으시겠습니까? 그저 그렇게 지으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수고는 똑같습니다. 구원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부의 역사로 와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신부의 문을 열고 주님의 영혼까지 핵심적으로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위치까지 도달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내신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자부심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정상적으로 있으니까 자부심 가져라.
비정상적이 아닌, 정상적으로 있으니 자부심 가져라. 다른 종교 지도자들 종 같은, 자녀 같은 사역자들입니다.
신부의 조건을 세우고, 사랑의 인봉을 떼고, 시대 말씀의 인봉을 뗀 선생님이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는 어떤 곳에 있어도 이 밑으로 조건을 세우지 않기 위해서 계속 해서 앞을 향해 위를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너 힘들어? 괜찮아, 나만 따라와!”
선생님이 신인가? 무지한 자의 말이지요.
“내가 책임 질께, 내 손만 잡고와! 왜? 나는 주님의 손을 놓지 않거든!
내가 너희를 온전하게 구원의 길로, 주님의 신부의 길로 이끌어 줄 테니 너희들이 힘들면 나 따라와 나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으니까 나는 너희들이 걱정이다.
나는 20년 동안 산에서 연단 받고, 세상에 많은 연단을 받아서 어떤 악평과 죽음의 길이 있어도 절대 포기치
않는다. 그런데 넓은 세상에서 많은 유혹받으면서 많은 시험을 이기면서, 핍박가운데, 악평가운데 살아가는
너희들이 걱정이다.
지금도 이 좁은 곳에서 내가 찾을 분은 예수님 밖에 없으니까 나는 괜찮은데, 넓은 곳에서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들을 것도 많은 너희들이 걱정이다.
그럼 약속하자. 힘들면 따라와. 대신 내 손만 놓지마!
나만 따라와 주면 내가 너희들이 따라온 보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절대 오직 주님께로 온전히 이끌어줄 것이다. 조건이 부족하냐? 기준이 부족하냐? 내가 세워주었으니 이 길을
따라오자.”
말씀하십니다.
단 한번도, 단 하루도 “나 따라와, 나로 인해 구원 얻어, 내가 신이야.” 말씀하신 적 없습니다.
나 따라와라 시대의 젊은이 들이어. 너희들이 기갈하고 곤고하고 허덕임이 무엇이냐?
너희의 주인인 정신과 영혼을 잃었기 때문에 정신과 영혼의 주인공이신 주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따라와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직접 몸을 부딪히면서 뛰지는 못하지만,
이곳에서 진행되는 모든 행함들 주님께서 선생님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많으니까,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 곳에서 목회 못하시잖아요. 이제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전국 세계의
그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를 목회하는 자,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는 여러분 앞에 있는 저도 아니고, 교회 목회자도 아니고
우리 목회자는 선생님이십니다. 그가 말씀을 전해주시고, 그가 주님께 조건을 세워주시고, 그가 함께 주고
계십니다. 왜요? 오직 주님께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자부심, 2000년 만에 시작된 섭리역사 자부심!
그리고 이 시대 말씀! 이 시대 말씀을 받아 전해주시는 선생님이십니다.
또 하나 있다면 자연성전입니다.
어느 교파에도 이 같은 성전은 없습니다. 값으로 따져도 비교가 안됩니다.
이를 깨닫고 새 역사 자부심을 갖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자부심을 가지고 증거 하는 만큼 너희에게 은혜가 충만할 것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증거 하는 만큼 만사형통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새 역사 자부심을 가지고 증거 하면서 만사형통하면서 은혜가 충만하기를 충원합니다.
자부심이 생겨야 힘 있게 증거하고 싶은 마음이 나가요. 자부심이 충만해야 어떤 악평과 어려움을 굳건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 이어서 예수님께서 말씀 전해주시겠습니다.
깊이 들으시고 새 역사의 자부심을 느끼길 바랍니다.
<예수님>
새 역사는 상천하지를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나 예수와 성령, 삼위일체만이 행하는 일이다.
때가 되면 구시대 정한 때가 끝나고 새 시대 하늘이 택하고 기르고 가르친 중심자를 보내어 하나님과 나
예수가 그 시대에 전하는 말을 외치게 하면서 그 말씀을 따르는 자들로 새 역사를 이루게 한다. 앞으로
1000년 동안 새 역사는 없다.
구약 4000년, 신약 2000년, 마지막 1000년 성약역사다.
종교의 새 역사를 따라 민족도 세계도 새 역사를 행하게 된다.
사람이 마음에 따라 정신에 따라 육신이 움직이듯이 이 마음과 같은 종교 역사에 따라 육 같은 민족 세계의
역사가 움직이며 새 역사를 하게 된다.
종교의 새 역사를 따라 민족과 세계가 새 역사를 하는 이 때 바로 하늘이 시작하는 새 역사.
민족이나 시대 사람들이 막는다면 새 역사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 예수가 2000년 전에 육신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왔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나를 알지 못하여 구시대
종교인들과 정치인들까지 막았다.
그로인하여 새로운 구원역사가 일어나다가 온전한 단계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이 시대도 종교의 새로운 시대 역사를 펴나가는데 알지 못하고 악평한 자들로 인해서 그 시대 사람들까지 그
악평하는 자들의 말을 듣고 악평한 연고로 종교의 새 역사가 제대로 펴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민족과 세계의 역사도 펴나가다가 중단된 것 이였다.
한국만 보더라도 알지 않는냐. 남북이 평화의 역사로 되어가다가.
세계도 그런대로 평화의 역사로 되어가다가 이제 냉전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
이웃나라 일본과도 독도문제도 얽히고, 그로인해 다른 많은 문제로 얽히지 않았느냐.
나 예수의 새 역사의 일을 이 시대가 막고 악평하니 그 같이 된 것이다.
전능자 하나님과 나 예수가 진행하는 땅의 새 희망의 역사. 새 평화의 역사는 민족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좌우시킨다.
시대가 나 예수의 새 역사를 막지 않고 잘 되었다면 지금 이민족과 세계도 딴 세계로 되어 지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정녕코 알기를 바란다.
이 같이한 죄 이 시대를 모르고 악평한 죄가 너무나 크다.
그 고통 또한 너무나 크다.
전능자와 나 예수가 하는 이 땅의 새 역사를 막으니 제대로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앞으로 자기의 무지와 시대의 무지로 인하여 개인이 생각지 못한 고통을 받게 되고, 민족 또한 생각지 못한
고통을 받게 된다.
하나님과 나 예수는 정녕코 새 역사를 세우고 뜻을 행하고야 만다.
새 역사 이 안에 들어온 너희들은 나의 인을 맞은 자들로서 사탄이 해하지 못할 것이요.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
그러나 새 역사를 모르고 막고, 악평하며, 억울하게 한 자들은 본인이 역사의 주관권을 본인 스스로 나간
연고로, 그리고 자신이 몰라서 못한 연고로, 새 역사의 구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도리어 구시대에 속해서
시대의 형벌을 받게 된다.
시대가 몰라주므로 새 시대 역사에 와서 따르는 것이 힘들지라도 새 역사로 와서 새 말씀을 듣고 가는 자만이
새 진리로 인해서 자유함을 얻고, 새 시대 하늘이 대하는 사랑하는 신부로 대함을 받게 되고, 차원 높은
구원의 혜택을 받게 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자들로 시대의 핍박을 받지만, 시대 하나님의 심판은 받지 않는다.
새 시대 주관권으로 온 연고로다. 그러니 얼마나 자부심이 크냐.
새 역사와 구 역사는 같은 종교의 주인인 하나님이 행하시고 나 예수가 행한다.
똑같이 행하더라도 새 역사와 구 역사는 비교가 안된다.
구시대 구 역사는 그 시대 사람들로 하여 그 시대에 해당되는 일을 하게 하였고, 새 시대 새 역사는 새 시대
새로운 사람들로 인해서 이 시대 해당되는 일을 하게 한다.
똑같이 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어도 구역사와 새 역사는 하나님과 나 예수를 대하는 것도 다르고,
하나님과 나 예수가 역사하는 것도 다르다.
너희 선생을 보아라.
똑같이 나 예수를 믿던 구시대 사람들과 비교를 해 보아라.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누가 그리, 그렇게 많은 자들이 그들을 따르고 있는지 보아라.
너희 선생은 새 역사 새 말씀을 전하므로 세계의 많은 자들이 따르며 평생 나 예수가 맡긴 시대의 일을
지금도 하고 있지 않느냐.
사람들이 당세에 한국에만 몇 교회만 뻗어나갈 것이라 생각했던 역사가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천년동안 완전한 기틀을 잡아나가게 된다.
너희는 새 역사 자부심을 가지고, 가치관을 가져라 새 역사에 와서도 새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새 역사
자부심도 없고, 새 역사 가치관도 없는 것이다.
너희가 만일 금목걸이와 금팔찌와 금반지를 차고 있다면 그 가치를 발하며 살아라.
너희가 금팔찌, 금반지, 금목걸이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 가치를 모르면 은목걸이, 은팔찌, 은시계를 찬자들과
다를 바가 없고, 자부심도 없는 것이다.
새 역사가 다른 역사와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저들은 갖지 못했는데 너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자부심을 가지고 뛰고 달리게 된다.
너희가 이 역사의 자부심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더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저들에게 바보처럼 끌려가게 된다.
이 귀한 자연의 대 성전도 하나님과 나 예수가 100% 구상해서 만들었는데, 새로운 것을 모르고 그 가치를
알지 못하면 너희들이 사용하는 교회와 별 차이 없이 생각하고, 쓰게 된다.
보아도 깨달아야 되고, 들어도 깨달아야 된다.
항상 새것과 옛것은 그 가치와 좋은 것을 비교할 수가 없다.
너희는 옛날 것과 새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으냐.
새 것이 좋으냐. 옛것이 좋으냐.
전자제품? 새 것이 좋으냐. 옛것이 좋으냐.
도로? 새 길이 좋으냐. 옛길이 좋으냐.
옛날 것과 새것 중에 너희는 어떤 것이 더 좋으냐.
새 역사는 나 예수가 말씀으로 역사하여, 개인에게도 섭리에게도 날마다 새것을 준다.
고로 이같이 웅장한 환경을 주고 신앙의 차원을 높이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말씀을 주어 의문이
풀리게 하고 희망을 이루게 한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앞으로 천년동안 받을 것은 새것이다.
내일 받은 말씀도 새것이다. 너희가 받을 사랑도, 차원 높힌 새 사랑이다.
너희가 받을 축복도 차원 높인 새로운 축복이다.
앞으로 천년역사에서 너희가 받을 것은 새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가장 자랑해야 할 것은 세상 어떤 종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새 시대 새 역사다.
오직 지구 세상에 이 한 곳에서 나 예수가 시작하여 역사를 펴나간다.
구약 말씀과 신약 말씀이 비교가 안 되듯, 구시대 신약 말씀과 새 시대 성약 말씀은 비교가 안된다.
신약 역사 때 나 예수가 두 군데서 역사를 폈더냐.
그럼 신약역사가 2개이지 않느냐.
오직 하나로 시작하여 신약역사를 펴왔다. 한 곳에서 편 신약역사가 2000년 동안 전 세계로 뻗어 나간
것이다. 이제 그 신약 역사 2000년이 끝났으니 하나님과 나 예수가 천년의 역사를 향해 섭리사 한곳에서
새롭게 역사를 펴나간다.
이 한 곳에서 펴나간 역사가 천년동안 전 세계를 덮게 될 것이다.
새롭게 천년을 향해 이 한곳에서 성약역사를 펴나가는 역사, 바로 계시록에 기록된 천년동안 혼인잔치를 하는
역사 이 역사가 바로 지금 이 시대부터 펴나가는 것이다.
역사의 주인은 나 예수요, 말씀의 주인도 나 예수다.
다만 시대의 사명자는 시대의 합당한 자로서 육신 가진 땅의 사람이다. 내가 그를 통해 역사한다.
오직 새 역사의 자부심을 가질 자들은 섭리인들 밖에 없다. 너희들 밖에 없다.
다른 역사, 바로 그곳에서 새 역사를 시작한다는 자들은 구시대 그 자체 안에 신흥종교다.
그들의 모든 것은 나를 망령되 행하며, 자기를 주님이라 하며, 자기를 예수라 행하며, 자기를 재림주라고 한
자들로서, 결국 바벨탑까지 다 무너지고, 흩어짐을 받게 되리라.
너희는 새 역사의 자부심을 가지고 긍지를 가져라.
섭리사는 다른 어느 누구에도 없는 성약역사, 신부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너희에게만 준 시대의 축복이다.
너희는 내가 나의 땅의 사명자를 통해 전한 시대의 말씀을 악평하지 않고, 믿고 따른 원인으로 이 시대, 이
역사에 오게 되었다.
고로 곤고한 구시대에서 나를 섬기지 않고, 자유로운 자들이 되어서 시대에 전하는 나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되었다.
나는 너희들을 신부로 대한다.
그리고 신부에 해당되는 말씀을 준다. 너희도 나 예수를 늘 신랑으로 대하면서 구원역사를 펴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사는 것이다. 너희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너희 영도 그대로 그와 같은 영계에 가서 살게 된다.
땅에서 나 예수를 대한대로, 하늘 천국급, 핵심 신부의 차원에서 살게 된다.
시대 새 역사의 자부심, 나를 신랑으로 대하는 자부심, 이 자부심이 얼마나 크냐.
신부와 형제와 비교가 되겠느냐. 신부와 종과 비교가 되겠느냐.
이와 같이 구시대와 신시대는 비교가 안된다.
너희는 구원받는 것에만 목적하지 마라.
신랑이 신부를 맞아 혼인잔치를 하는 것이 무엇이냐.
같이 살고, 같이 대화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먹고, 마시고, 같이 기뻐하며, 같이 누리기 위함이다.
이 시대 나의 복음을 전하자.
세상에 내가 보낸 자 나의 육으로 쓰는 자를 막으니 나 예수가 직접 나타나 말씀한다. 그래도 막는다.
이것까지 막는다면 나를 모독하였기에 그 행위대로 즉시 형벌을 더할 것이다.
나는 나의 새 역사를 따르고, 새 말씀을 따르는 자들과 범사에 함께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형통할 것이니, 자부심을 가져라. 그리고 담대히 따르라.
민족도 종교도 개인도 자부심을 갖는 자들을 보면, 자기만이 가진 것을 가지고 자부심을 느끼면서 산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 확실히 알고, 확실히 새기고, 확실하게 알고 돌아가자.
새 역사의 자부심! 새 말씀의 자부심! 나를 신랑으로 대하는 신부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이 시대 사명자를 가진 자부심! 이 자부심을 가지고 담대하게 전하자.
개인도 자기 특기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밟히는 것이다.
짐승들도 자기의 특성대로 자부심을 부리는데, 하물며 새 역사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누가 새 역사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서 힐문한다면 너희는 이와 같이 말하여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 다시 오셔서 역사하시는 그 예수님 그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십니다.
정말 진실로 지금 이 순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님,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오직 정녕코 그 뜻을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 오직 그분이 이곳에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비웃는 자들, 그래도 믿지 않는 자들 그들은 불행한 구역사의 사람이 되어, 불행한 흑암의 영이 되고
말리라.
너희는 정녕코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고, 새 시대를 따라라.
천지를 지으시고, 너희를 창조하시고, 새 역사에 오게 하신 내 아버지 하나님이 너희를 영원히 잘되게
하리로다.
그러니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시대 말씀을 믿고 나 예수를 따라라.
이 새 역사가 영원하리니, 너희의 자부심도 영원하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이 역사를 통해 절대 온전한 섭리의 기둥들이 되어 살기를 바란다.
이번 수련회 때 나 예수가 너희에게 기적을 보일 것이다.
깨달아라.
그리고 전하여라.
어느 누가 사시사철 이 골짝에 수십만의 세계인들이 모여든다고 생각하겠느냐.
어느 누가 이렇게 많은 자들이 이 골짜기까지 몰려들 줄 알았단 말이냐.
이 시대 나 예수가 택한 자들이 새 역사에 오도록 부른 것이다.
성경에 선지자로 인해서 새 역사를 예언한 말씀을 이룬 것이다.
나 예수가 2000년 전에 다시 온다고 한 말을 이루려 함이다.
이제 천사장이 나팔 부는 나의 재림이 곧 다가온다.
먼저는 나 예수가 시대 중심 사명자를 통해서 전하는 말씀의 나팔소리를 듣고 준비하여라.
나는 다시 올 때 신랑으로 오니 새 시대 새 역사 말씀을 듣고 준비되어야만 나를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곳 이 역사 나 예수가 하는 일인줄 모르고, 한 사람이 하는 일인줄 알고 악평하고 누명을
씌우고 억울하게 하고 이 역사를 막았다.
이 악평이 곧 자기에게 죄가 되어 자기가 받게 된다.
나 예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고 말씀을 가지고 새 역사로 부른다. 악평하면 안된다.
나의 택함을 받고 새 역사로 와서 새 역사에 주는 축복을 받아야만 한다.
너희는 깨달아라.
그리고 자부심을 가져라.
앞으로 이 골짜기에 청중이 몰려든다면, 이 골짜기 땅을 밟기도 어렵게 모여든다.
사람의 생각을 떠나 내가 구상한 이 대자연의 성전을 지금 많이 밟아 놔라.
그리고 자부심을 얻어라.
나의 것은 모두다 너의 것이다. 그리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용하고 나타내기를 축원한다.
이곳은 하늘의 있는 것을 그대로 실현시킨 나의 자연성전이다.
나 예수가 육신가지고 세상에 있을 때 그 시대 종교인들이 나를 막고, 불신함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모든
성전은 하나님의 것인데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자연속의 감람산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자연을
성전으로 삼고 복음을 전했다.
이 시대 기성이 모든 성전도 나의 것이다.
그러나 기성인들이 섭리역사를 막으니 청중이 모이는 이 대 자연성전을 계획적으로 세운 것이다.
이곳은 나 예수가 태초부터 정한 때로서 이 곳에 온 자들에게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예수가 범사에
역사해주어 이곳을 찾아온 자들에게 기억이 일어나고 표적이 일어나게 한다.
매일 일어난다. 깨닫고 자부심을 가져라.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서 새 역사에만 주었다.
자연성전은 1000년 동안 간다. 관리 잘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어떻게 만들었다고 증거하며 살길 바란다.
하나님의 야심작의 뜻이 얼마나 크냐.
야심작은 특히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예수의 작품이다.
자존심이다.
그래서 4번이 넘어졌지만, 너희 선생이 기꺼이 쌓도록 역사했다.
너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내 이것을 못하겠습니까.
주님 역사하시는 대로 더 멋있게 더 멋있게 역사를 빛낼 수 있도록 쌓겠습니다.”
그래서 기어코 쌓고 말았다.
왜?
사람의 정신과 마음과 생각이 위대해야 위대한 하나님과 나 예수의 뜻을 성령 안에서 실현시키니까.
그래서 표상으로 야심작을 지어놓았다. 너희들도 이와 같이 살라고,
위대한 정신으로 위대한 마음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과 위대한 나 예수의 뜻을 실현시키며 사는 사람들이
되라고,
너희 마음과 몸이 이 자연성전과 같이 웅장하고, 신비하고, 아름답게 변화하도록 시대 말씀을 듣고 끝까지
따르기를 원한다.
자연성전뿐 아니라 내가 보낸 너희 선생을 귀하고 귀하게 대해주고, 자부심을 가지고 나 예수와 함께 증거
하여라. 그리고 시대 말씀을 외치자.
너희를 사랑하는 주 예수다.
<정조은 목사님>
위대한 정신과 마음,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가지시길 축원합니다.
가서 세상을 밟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으로 밟으십시오.
가서 시대의 악한 자들을 여러분의 선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밟으십시오.
<우주여행>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 만물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부심을 보여주며 말해주고 있다.
우주의 태양계,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하나님이 우주에서 가장 멋있게
창조하신 야심작이다.
하나님은 태양계의 행성들을 질서 정연하게 창조하셨다.
태양계 중에서 지구를 창조하셨는데, 사람을 살게 하시려고, 지구를 창조하신 것이다.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를 정확히 조정하시고,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게 하여 기후를 맞게 하시어 인간과
식물과 동물과 각종 생명들이 존재하도록 하셨다.
또한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따라 사람이 질서 있게 시간을 지키며 살게 하셨다.
특히 지구 전체의 기후를 조화롭게 창조하셨다.
지역에 따라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하고, 사계절이 있게 창조하셨다.
우주 전체 중에 지구가 가장 기온이 조화롭고 신비하게 창조 되었으니 지구가 태양과의 거리를 두고 공전과
자전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로 인하여 추위와 더위를 조정하시사 인간들이 생기를 받아 건강하게 살게
하셨다.
지구는 어떤 한 지역만을 위해 아름답게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구 전체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고로 지구의 어떤 곳에서든지 최대한 사람들과 생명체들이 살도록 기후와 공기를 조정하셨다.
사람의 지체를 창조하시듯, 지구 전체 몸체를 창조하셨다.
전능하신 삼위의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은 지구를 사람의 지체같이 창조하시고, 우주를 정원같이 창조하셨다.
우주에 지구가 없으면 지구에 사람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
지구의 구조는 인간의 지체와 같이 사람 같은 존재로 확대하여 창조하였다.
우주에서 오직 지구만 인간이 존재하도록 창조하셨다.
지구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다.
다른 모든 별들은 자체 물체로만 존재한다. 돌덩어리에 불과하다.
지구는 완전히 생명체 세계다.
생명체 중에서도 최고의 생명체인 인간이 살기에 완벽하게 창조해 놓으셨다.
우주는 정원, 지구는 집, 사람은 집주인으로 창조하셨다.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곳은 여자의 태다.
하나님은 지구를 여자의 태같이 창조하셨다.
여자의 태안에 생명의 씨가 떨어지면 온몸 전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어 생명이 살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이 지구는 인간이나 만물 등 생명체들이 생기기만 하면 여자의 태 같이 생명이 존재할 수 있게 창조해
놓으셨다.
지구가 병들면, 생명이 안치된 태가 병든 것과 같다.
엄마가 병든 것과 같다.
만물을 깨끗하게 쓰면서 너희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서, 지구를 건강하게 지켜라.
이것이 사람으로서 할 일이다.
하나님은 지구를 깨끗하고 청결하게 하신다. 비가 오게 하여 청소하시고, 가물게 하여 청소하시고, 춥게
하시어, 기후와 온도로 청소하신다.
그럼 자체가 해독작용을 하듯이, 지구 자체가 해독작용, 정화작용을 하도록 자연을 사역자로 쓰신다.
고로 지구가 운행하도록 창조하셨다.
인간의 육신이 100년만 살지 영원하지 않듯이, 지구 육체도 영원하지 않다.
지구는 인간의 육신 같은 유형물체로서 어느 한정된 때까지 존재하게 창조하셨다.
인간이 태어나서 100년 살고 죽듯이 지구도 어느 한정된 시간까지만 존재한다.
그 기간은 인간의 생명이 지구에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든지, 혹은 하나님이 지구에 종교의
역사를 시작하면서 정하신 때까지든지 어느 기간까지만 존재하게 하신다.
지구상에 인류역사는 수 만년이 되었으며 종교역사는 6000년이 되었다.
성경을 보면 7000년까지는 인간을 향한 지구의 프로그램이 나와 있다.
지구는 마치 사람처럼 늙어가고 있다.
지금은 사람으로 말하면, 66세 정도 되었을까.
지구가 건강하면 지구나이 80세, 90세까지는 괜찮다. 그러다 지구나이 100세쯤 되면 100세 먹은 인간같이
될 것이다.
인간은 육신이 죽으면 육신이 세상에 살았을 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산 자들은
하늘나라에 간다.
그러나 지구는 영이 없으니, 때가 되면 생명이 없는 다른 행성들처럼 하나의 물질로 끝난다.
지구는 지구 자체가 시체가 되고, 무덤이 되어 우주 안에 묻히게 되고, 태양계의 행성들도 그러하다.
우주와 태양계와 지구는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 인간의 영혼을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였다.
인간의 육신은 떠나가면 사라져서 흔적도 없지만, 살았을 때 그 영을 길러내어 천국에 가게 하고 영원히
존재하게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 것이다.
이것이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어머니께서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자부심이다.
<정조은 목사님>
다시 한 번 잘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주 이 우주 안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창조된 태양계, 이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별 지구입니다. 오직
지구 안에만 인간이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오직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영혼 하나 때문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우주, 태양계, 지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혼 하나를 잘 만든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는 신부의 말씀이 떨어져서 우리를 신부의 육신으로, 신부의 영혼으로 만들어주는 역사입니다.
사과나무에만 사과가 열리듯이, 신부 역사에만 신부 열매가 열립니다.
농부가 산을 삽니다. 왜냐면 과수원 만들기 위해서 삽니다.
과수원을 왜 만듭니까. 과일 나무 심으려고 만듭니다.
나무를 왜 심습니까. 열매 얻으려고 심습니다. 그리고 가꿉니다.
산은 우주와 같고, 과수원은 지구와 같고, 과일나무는 인간의 육신과 같고, 열매는 인간의 영혼과 같습니다.
그 열매 중에서도 가장 특급, 일등급의 열매, 바로 신부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령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가장 아름답게 창조하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의 자부심인 줄 믿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주님의 자부심입니다. 그 자부심을 가지고 영원히 새 역사에서 살아가는 캠퍼스, 청년부,
기드온, 예술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말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