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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1.08.11 (목)

장정임 부산주마음 4기 음성

선포일
2011.08.11 (목)
성경 본문
새벽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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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쓴 이성죄 누명은 너희의 이성죄로 인함이다 작성일: 2011. 8. 11. (목) 새벽 1:50 작성자: 장정임 (현직교사회, 부산 주마음 가정국) [ 전날 수요예배 준비찬양을 하던 중 갑자기 주님께서 10여 년 전에 현 교회에서 있었던 이성 타락 사건을 생각나게 하시며 회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조차 나지 않았었는데 주님께서는 삼위께 열납될 온전한 제단을 쌓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깨우쳐 주시며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 다. 새벽기도 시간에 기억을 더듬어 과거에 있었던 개인과 교회의 이성죄들을 돌아보며 통회자복하며 회개할 때 주님께서는 “선생이 뒤집어쓰고 있는 이성죄의 누명은 바로 회개되지 못한 너희의 이성죄로 인함이다.” 라고 하시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이성죄는 하늘 앞에 가장 크고도 큰 죄로 창조 목적을 깨트린 죄요, 하나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한을 안겨 준 죄이다. 또한 사탄이 무지한 너희를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잔인한 방법임을 알아라. 지금은 사탄의 계략으로 무너진 창조 목적을 다시 이루는 인류사 절체절명의 너무나도 귀하고 귀한 때이다. 고로 사탄은 이 마지막 때를 이기기 위해 더욱 기승을 부 리며 너희를 이성과 음란함으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으며 세상 가운데 가장 극심하게 이성의 타락이 일어나도록 부추기고 꼬이며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눈을 뜨면 보이는 모든 것이 이성 타락을 유도하는 글이요, 그림이요, 영상들이다. 허나 무지 가운데 놓여 있는 세상은 이를 너무나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구나. 진리가 없으니 사탄의 눈가림에 그대로 당하고 있는 불쌍한 인생들이로다. 이러한 사탄을 멸하러 선생이 나의 육신이 되어 진리를 선포하며 사탄의 계략을 전면에서 밝혀 대적하고 있으니 그들은 선생만 죽이면 된다고 작정하여 계획된 올무로 선생을 밀어 넣었느니라. 허나 생각해 보아라. 선생이 어디 올무에 걸릴 자이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산 그에게 어디 사탄이 올무를 놓는다고 걸리겠느냐. 죄의 올무는 죄의 소원이 그 속에 있는 자, 온전히 거듭나지 못한 불완전한 자가 걸리게 되는 법. 선생이 사랑하여 섭리사에 불러 모은 너희가 진리의 법, 사랑의 법을 듣고도 온전히 행치 못하여 죄의 근성과 타락의 근성을 품고 있었던 고로 사탄이 그 근성을 타고 들어와 걸어 놓은 이성죄와 음란죄, 간음죄의 올무에 너희가 걸려 넘어진 고로 그 모든 죄가 차고 넘쳐 이를 힐문하여 재판을 벌였으니 곧 이성죄에 대한 재판이요, 너희를 대신하여 재판장에 끌려 들어간 어린양이 바로 너희 선생이었노라. 선생은 이미 너희의 이성죄가 도를 넘어 십자가 희생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묵묵히 그 길을 선택하여 가게 된 것이다. 6000년의 한을 풀고 깨져 버린 창조 목적을 이루고자 이 시대 너희를 불러 모아 선포한 가장 핵심의 말씀이 무엇이더냐. ‘정결한 신부, 청결한 신부’가 되는 것이었다. 곧 이성죄를 짓고서는 이룰 수가 없는 말씀이라. 허나 이를 경홀히 여기고 온갖 이성죄와 음란함의 죄를 몸과 마음으로 연속하여 돌아가며 짓는 너희로 인해 섭리사의 죄가 차고 넘치게 되었으니 선생 홀로 아무리 몸부림친다 한들 어찌 신부의 역사가 제대로 평탄히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 보아라. 내 사랑으로 불러 모은 자들아. 너희 각인은 진정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자신을 돌아보아라. 이성과 음란함의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자가 있는지 돌아보아라. 너 보기가 아닌, 삼위께서 보시기에 진정 깨끗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를 통해 온전한 신부의 역사를 펼칠 수 있노라. 지금은 마지막으로 회개해야 할 때, 회개의 기회를 허락한 때이니 너희는 진정 이때를 놓치지 말아라. ‘회개하라’ 함은 곧 내가 ‘용서 하겠다’는 말이니 진정 깨닫고 감사 감격함으로 회개할지어다. 회복하라. 이 모든 죄, 이성의 음란함이 내 신부 가운데 호리라도 남아 있지 않도록 진정 깨끗하고 정결하게 회개하고 또 회개하여라. 이성죄, 음란죄 있는 자들의 제단은 내가 받을 수 없노 라. 회개하고 나아오라. 죄 짐을 안고 나아오면 그도 나도 고통이다. 사탄이 이성으로 회를 쳐 놓은 곳도 있다. 더러운 곳에 온갖 파리들이 꼬이듯 죄가 청산되지 않은 곳엔 그 영적인 조건을 이용하여 언제나 사탄이 틈타고 들어온다. 자신의 영역이라 생각하니 편히 드나든다. 언제고 들어와 약한 자, 어린 자, 말씀으로 무장되지 못한 자들에게 들어가 또 이성의 음란함으로 몸과 마음을 연속 타락시키고는 보란 듯이 낄낄거린다. 사탄의 밥이 되어 산다. 테러를 당한 영혼들은 어김없이 사망 지옥으로 끌려가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구나. 슬프고 아픈 내 심장이여. 그래도 그 육신은 그 영혼의 절규를 듣지 못하고 지은 죄를 가벼이 여기며 내게 그저 지나가는 말로 ‘잘못했다.’내뱉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의 몸 된 성전에 나아와 찬양을 하며 기도를 하며 말씀을 듣고 있구나. 그런 너희가 다 회개치 못하여 여전히 남아 있는 너희의 모든 이성죄를 선생이 이고 지며 가고 있구나. 섭리사 내 사랑들아. 제발이나 너희 죄를 돌아보고 깨닫고 처절히 회개하여라. 하늘이 감동하고 땅이 감동하여 용서의 비를 내릴 정도로 회개하여라. 완전히 청산되지 못한 죄를 끌어안고도 내 성전에 오는 자는 나를 능멸하는 자요, 사탄의 발판이 되어 내 사랑하는 섭리사 신부들을 또다시 이성죄의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는 자들이로다. 이를 안타까이 지켜보는 나 예수의 심정은 진정 아프고도 슬프구나. 회개하여라. 진정 회개하기를 부탁하노라. 회개치 않으면 죄는 전염병이 되어 번지고 번진다. 섭리사 진정 깨끗하고 정결해야 할 곳이다. 죄가 호리도 발붙이는 곳이 되어선 안 된다. 나와 선생이 눈물로 호소하노니 진정 너희 안에 있는 이성죄와 음란죄의 모든 소욕을 뽑아내어 버리라. 깨끗하고 깨끗한 신부를 원한다. 깨끗하고 깨끗한 섭리사를 원한다. 오래된 죄, 묵은 죄, 찌들어 있는 죄가 많다. 개인, 가정, 교회 모두 자복하여 회개하여라. 섭리사에 이성죄 없는 자 거의 없다. 죄를 경홀히 여기지 말아라. 만홀히 여기다가 죄에 빠진다. 행실뿐 아니라 마음의 조건까지 온전히 세운 자가 없다 함이다. 너희는 행실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하여 죄 없다 혹은 죄가 적다 생각하느냐. 나 예수는 신혼골수를 쪼개며 그 마음을 훤히 보는 자이니 내 앞에 이성과 음란함의 범죄를 행치 않았다고 자부할 자 누구랴. 또한 제 보기엔 죄가 아니어도 나 예수의 눈에는 죄인 것이 많음을 모르기에 스스로 죄 없다 하니 ‘무지가 교만을 낳는다.’ 이르지 않았더냐. 썩어 빠진 시궁창 물이 한 방울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해 서 그 물이 깨끗하다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죄의 많고 적음을 따져 의인이다 죄인이다 판단치 말고 한마음으로 너희 모두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너희 육이 완전한 천인의 몸이 되기까지, 선생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 한다. 왜 온전함을 말하겠느냐? 육성을 다스리고 죄의 소원을 온전히 다스려야만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고 완전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가 되어 온전히 휴거될 수 있고 나의 나라를 보장받을 수 있다. 만들다가 만 영과 육은 언제든 사탄의 침입을 받고 무너질 수 있다. 고로 완전함에 이르기까지, 완공식을 할 때까지 경주하고 또 경주해야 한다.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돌아보는 순간 롯의 아내와 같이 사탄에게 사로잡혀 사망길로 간다. 앞만 보고 달려라. 어서어서 다 만들어 놓고 완성된 육과 영을 사용하고 누리면서 살아라. 이것이 이 땅에서 창조목적을 이루고 뜻있고 가치 있게 사는 법이다. 이성의 모든 죄를 한 점도 남기지 말고 회개하여 육성을 벗고 온전한 천인의 몸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계속하여 회개기도를 하던 중 이성 범죄를 한 자들이 세상에 나가 결혼을 한 후 부부가 되어 다시 섭리에 돌아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두고 주님께서는 “그들은 나를 능멸하는 자들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께 “주님, 그래도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잖아요. 그들도 말씀을 듣고 회개했을 터인데 모두 용서해 주시지 않으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자비를 베풀 곳에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베풀 곳에 긍휼을 베푸는 주 예수니라. 너라면 너의 남편을 다른 여인이 빼앗아 가서 취하여 결혼을 한 후 자식을 낳고 다시 손잡고 네 앞에 나와서 미안하다고 하면 용서해 줄 수 있겠느냐. 나를 진정 무시하는 처사이지. 나를 진정 능멸하는 처사로다. (“하지만 원수도 용서하시고 품으시는 주님이시잖아 요.”) 그래, 나는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기 위한 구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구원의 길을 걸었던 목적은 바로 인간을 향한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함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주고서 단 하나 원했던 그 사랑의 뜻을 다시금 깨뜨린 자가 그들이다. 무엇을 회개했단 말이냐. 1차 타락 후 주어진 회개의 기회마저 모두 외면했던 자가 아니더냐. 회개의 때를 놓친 자들이다. 끝까지 내밀었던 내 사랑의 손길을 모질게 뿌리치고 제 원하는 대로 다 해 놓고, 내 하지 말라던 그 모든 것을 끝까지 다 해 놓고 내게 와서 뭘 용서해 달라는 거냐. 더 이상 돌이킬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자기 욕심 있는 대로 다 차려서 갈 데까지 다 가 놓고서는 나에게 무슨 자비와 긍휼을 바라느냐. 양심이 없는 게지. 지옥이 두려우니 살고자 나를 붙드는 것밖에 더 무엇이 있겠느냐. 착각 말아라. 너희 선생이 지는 십자가 중 그들의 몫은 없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를 위해 지는 십자가임을 알아라. 선생의 십자가 구원의 혜택을 받을 자는 진정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자’에 한한다는 것을 진정 알아라. 회개하려 해도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고통인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섭리사에 있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섭리사에 있다 하여 모두 신부로 구원받는 것 아니라 하였다. 부끄러운 구원이라도 받으라 하는 것이니 착각하지 말아라. 6000년의 한을 푸는 이 역사에 와서 다시금 동일한 못을 박고 역사를 지연시키는 그들에게 무슨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무슨 신부의 구원을 허락할 수 있겠느냐. 진정 깨달아 알아라. 그리고 확실히 가르쳐라. 이성 타락하고도 온전한 회개를 하지 않은 자들은 신부급 복직이 허용되지 않음을, 또한 이성 타락을 하고도 구원받겠다고 섭리에 다시 들어온 자들은 네 행위대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그날에는 입이 있어도 아무 말 못하리라. 그래도 살아 보겠다 하는 너희를 내치지 않음은 내 마지막 사랑 때문이니 열심을 다해 구원을 이루어 보아라. 그리고 다시는 사탄의 발판이 되어 나의 거룩한 성산을 더럽히지 않도록 근신하여라. (이후 주님께 그때 당시 주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지 못했음을 회개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신부들아. 너희에게 부탁하노니 너희는 범죄한 형제의 입장에 서서 내게 용서만을 구하지만 말고 나의 입장에 서서 내 마음을 위로해 다오. 그들이 나의 심장을 겨누고 칼을 던질 때 왜 아무도 나를 위해 울어 주지 않았더냐. 왜 아무도 내 곁을 지켜 주지 않았더냐. 나 진정 쓸쓸히 외롭고도 적막한 고통의 길을 홀로 걸었노라. 나 너의 신랑 아니냐. 누구보다 내 마음 위로해 줄 자들이 나의 온전한 신부들이 아니겠느냐. 나 오늘도 시린 마음 안고 내 사랑들에게 아픈 가슴 위로 받고자 너희 각자의 마음 문 앞에 서성이노라. 나를 따뜻하게 품어 줄 자가 누구냐. 너무나 춥고 떨리는구나. 나를 안아 다오. 나를 품어 다오. 내 눈물을 닦아 다오. (“예수님! 오직 예수님만 볼게요. 아무것에도 이 마음 내주지 않을게요. 다시는 주님 마음 아프게 혼자 두지 않을게요. 이 마음 다해 주님을 품을게요.”) 신랑은 오직 하나, 나 주 예수뿐이다. 그러니 나만 봐야 해. 나만. 다른 어떤 것에도 어디에도 눈 돌리면 절대 안 된다. 알았지? 오늘 이 시간 네 눈물의 위로를 받고 간다. 고맙다. 언제나 널 찾아올 수 있도록 오직 내게만 늘 네 마음 문 열어 주어라. 사랑한다. 오직 하나뿐인 너의 신랑 예수니라. (이 말씀을 받은 후 우연히 이러한 이성죄를 지었던 자들 가운데에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확인받은 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분명 주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제게 주신 말씀과는 다른 것 같아 이해할 수 없어 제가 잘못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이 깊어지게 되었고 이를 두고 주님께 깊이 여쭈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믿음과 행실의 조건을 모두 깨 버린 자들이었다. 나 예수가 이끈 신약 역사는 그들이 깨 버린 믿음의 조건을 온전히 세운 역사였고 선생이 이끄는 이 시대 성약 역사는 행실의 조건을 온전히 세우는 역사라 말할 수 있다. 고로 행실의 조건을 세우지 못한 자는 회개하여 섭리사 신부 역사 가운데 존재한다 하여도 그 뜻이 이미 깨져 버렸기에 원 뜻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며 그 위치도, 사명도 달리 주어지게 된다. (이 말씀을 듣고 갑자기 얼마 전 걸레를 빨 때 하셨던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열심히 걸레를 빠는 저를 보시고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걸레다.”라 하셨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지 않으셔서 계속 궁금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주님, 그 말씀이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라 고 여쭈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래, 맞다. 한번 걸레로 사용된 것은 아무리 빨아 깨끗케 하여도 얼굴을 닦는 수건으로 사용하지 않음과 같으니 첫째는 아예 걸레로 전락하지 말 것이며 둘째는 날마다 자신을 깨끗케 함으로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추어 놓아야 함을 말한 다. 허나 걸레도 주인이 필요한 때는 들어 쓰는 것이니 왜 주인에게 걸레를 들어 쓰느냐고 의아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란다. 또한 나의 계시는 섭리뿐 아니라 아들급인 기성에도 있고 선지자급의 사명자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아라.” 라고 풀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