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1.08.19 (금)
계시말씀 02ad3543
- 선포일
- 2011.08.19 (금)
- 성경 본문
- 새벽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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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계시말씀_02ad354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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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작성일 : 2010. 12. 04. (토) 새벽 1:20-5:00)
작성자 : 주이랑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구절을 보고
예수님께 “예수님, 진리가 어떻게 자유케 해주나
요?”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진정한 자유는 진정한 진리를 만날 때 이루어진다.
육신을 쓴 너에게 임할 자유는 진리가 육화된 순간
이다”
라고 간단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섭리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들을
놓고
기도를 하던 중에 예수님께서
“내 사랑아. 왜 많은 자들이 믿음이 흔들리고
섭리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줄 아느냐?
그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에 속한 진리가 무엇인지
온전히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
귀에 달콤한 교리가 진리인 줄 알고
좇아가는 자들이 있구나.
내 너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이를 것이니
깊은 기도로 준비하여라.
1000년 역사 가운데 길이 남을 말이니라.”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2주 정도 진리에 대해 여쭈면서 배웠지만
쉽게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겼는데
21일 기도와 전도조건을 세운 다음 날
한 섭리 회원의 인생 중에 힘들었던 이야기 중
‘가만히 있으면 정말 미칠 것 같아서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저것이 답이구나!’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고
저도 무조건 감사하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마음의 고통이 신기할 정도로 싹 사라지면서 제가
예수님께
“예수님, 진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게 하는 것
입니다.
너무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제가 직접 겪고 보니
정말 진리는 저를 구원해주고, 자유케 해주는 것입
니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준 선물이다. 진리는 머리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육신으로까지 깨달아야 한다.
진정 고통 가운데서 건짐 받아봐야 진리의 자유함
을
온몸으로 알게 되어 네 삶에 새겨지는 것이다.
이제 진리를 받을 준비가 되었으니 더욱 기도하여
라.”
말씀해주셨고, 철야기도를 하던 중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너는 밭에 감추인 보화를 아느냐.
모두가 성서를 통해 들었으나 쉬이 발견하지 못했
던
그 깊고도 깊은 보화 이야기를 너는 아느냐.
네 마음이 영계의 입구라 하였지?
그 문을 여는 순간, 찬란한 영계가 펼쳐지고
그 정상에는 여호와 하나님, 모성신 성령,
나 예수가 자리하고 있단다.
너는 그 깊고도 깊은 세계를
나와 함께 나를 따라 오를 수 있겠느냐?
(“예수님이 계시면 저 꼭 가보고 싶어요.
그 엄청난 영계의 세계 정상에 존재하시는 예수님
을
정말 만나보고 싶어요.”)
그래 이 시간 나와 함께 오르자.
‘진리’그 깊고도 깊은 성산을 올라보자.
1. 영계의 진리와 육계의 진리
네가 내게 진리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이냐?
(“진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열쇠였습니
다.
희망이 없던 저를 희망의 세계로 인도해준 것은
‘감사하라’는 진리였습니다.
세상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너무나 캄캄한 절망 가운데 처해보니까
그 말밖에는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관념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는 실제로 옮기게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맞다.
오직 진리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게 한다.
네가 진정 깊고도 깊은 것을 깨달았다.
너를 통해 기록된 나의 글을 읽는 자들은
너처럼 이 깊은 도를 체감하지 못할 게다.
그러니 진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지.
말로 깨닫는 것이 아니요, 귀로 깨닫는 것이 아니
요,
오직 네 영혼육이 진동함으로만 깨닫게 되는 게지.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게 하는 진리의 귀함을 알
기에
너희 선생은 그 차디찬 고통 가운데서도
펜 끝을 놓지 않는 게다.
명심 또 명심하여 너의 마음에 새기고
그 심정을 받아라.
내 이 시간 너에게 더 차원 높게
진리에 대해 말할 게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는 ‘길’이 곧 진리일지니
이를 더 깊이 있게 설명할 게다.
그러니 잘 따라오너라.
진리는 곧 ‘하나님’이시다.
다른 말로 여호와의 ‘심중’, ‘뜻’, ‘말씀’이라
말할 수 있을 게다.
여호와의 입술과 마음에서 선포되는 말씀 한마디가
온 영계와 육계에 울려 퍼져
각 차원의 세계와 결합하여
갖가지 꽃을 열고 열매를 열고 변화를 일으키며
영계와 육계를 주관하고 있다.
진리의 한마디가 영계와 육계가 나아갈
방향이 되고, 길이 되고, 목적지가 되는 게다.
이 모든 이치를 깨달아라.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영계와 육계의 진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나니
내 깊은 말을 들어보아라.
먼저 영계에서의 진리란 곧 ‘변화’다.
천국이 어떤 세계냐.
여호와의 ‘뜻’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직접 말로 선포하지 않아도 여호와의 심중대로
즉각 ‘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천국이며,
각 차원성의 세계로 존재하는 영계 역시 마찬가지
다.
여호와의 한마디 말씀 혹은 심중의 변화가
각 영계의 수준과 차원대로 변화의 결실을 맺기에
고로 영계에서의 ‘진리’란
변화요, 부활이요, 성장이요, 전환과 같다.
영계에서의 ‘진리’란
육계에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으로 존재한
다.
이 깊고도 깊은 세계는
다음에 더 자세히 배우도록 하자.
내 오늘은 육계에서의 ‘진리’에 대해
온전히 가르치련다.
깊이 깨닫고 나의 말을 받아 기록해라.
육계에서도 ‘진리’는 곧 변화다.
여호와의 한마디로 인해 축복과 심판이
각 나라, 민족, 가정, 개인에게 임하여 운명을 좌우
하고,
여호와께서 허락하사 영계의 갖가지 변화가 원인이
되어
육계의 변화까지도 결실한다.
그러니 ‘변화’도 맞는 게다.
그러나 내 오늘 너에게 더 깊이 전하고 싶은
진리란,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다.
내 성서를 통해 온 인류에게 전하지 않았느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 말을 나와 함께 깊이 들어가 보자.
‘천국이 존재한다’하였다. 이는 진리더냐?
(“네, 예수님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까?”)
이는 사실(fact)이지 진리가 아니다.
‘사실’은 진리 안에 내포된
무수히 많은 의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이냐?
곧 ‘나 예수를 믿음으로, 나 예수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품 곧 천국에 이른다는 말이다.
이것이 천국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진리는 길이다.
쉬이 말해,
‘어떻게’천국에 가는지를 알려주는 ‘길’이다.
나의 이 말을 깊이 있게 깨달아보아라.
그러할 때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할 수 있느니라.
지옥은 진리가 없다.
고로 지옥에서는 ‘변화’가 없다.
더 깊이 들어가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빠져나올 길이 없다는 말이다.
인류를 사랑하사 여호와는
‘진리’를 허락하셨다.
곧 ‘천국 가는 길’을 너희에게 알려준바 되었다.
그러나 밭에 깊숙이 숨겨놓았으니
그것을 수고로 노력으로 두드린 자만이 발견한다.
그러니 공의의 하나님이시지.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도 두려운 말인지
들을 귀 있는 자는 깨달을 게다.
천국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진리’가 아니요
천국을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진리다.
고로 진정 ‘진리’를 아는 자는 자유함을 얻는다.
여기서 자유함을 얻는다는 말은 곧 천국을 얻는다
는 말이다.
단순히 귀가 즐겁고 머리가 즐거운 것이 진리가 아
니요
진리를 얻은 자는,
천국을 바라보게 되고, 천국을 소망하게 되고,
천국을 사랑하게 되고,
천국을 자신의 마음과 육신과 인생 가운데 이루게
되고,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개인과 민족과 나라마다 천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것이 진리의 힘이요, 근본이요, 권능이요,
진리를 아는 자의 자유함이라.
2. 진리의 구조
보아라. 이것이 진리의 구조다.
(순간 이상으로 아주 커다란 나무가 머릿속에 그려
졌습니다.
뿌리가 굵고 기둥이 튼실하고 가지도 단단한
거목이었습니다. 그 나무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잎도 나고 꽃도 나고 열매도 맺었습니다.)
여기서 뿌리는 곧 여호와의 ‘뜻’과 ‘심정’을 뜻하며
기둥은 나 예수가 선포한 말씀(성서)을 뜻하며
가지는 각 종파의 교리를 뜻하며
열매는 진리를 들은 자들의 열매를 말한다.
또한 계절마다 바뀌는 잎과 꽃과 열매는
시대마다 맺어지는 말씀을 말한다.
2000년 전 나 예수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뜻’과 ‘심정’을 뿌리로
너희 인류 가운데 ‘기둥이 되는 진리’를 전하였다.
내가 네게 진리는 영에 속한 것이라 말하였지?
(“네, 예수님 기억합니다. 그래서 집회 때마다
진리와 지식이 어떻게 다른지
주님께 배운 대로 증거했어요.”)
그래, 잘했다. 나의 사랑아.
진리는 영에 속한 것이다.
고로 육계로 전환하니
‘비유’가 될 수밖에 없는 게다.
그러니 내 너희에게 여호와의 심정과 뜻,
그리고 영에 속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말한 게다.
곧 영계의 언어를 육계의 언어로 변환시켜
성서에 기록해 놓은 나의 말이다.
고로 영에 속한 풍부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눈과 귀가 아닌 영혼으로 영계에 올라
영혼육이 진동함으로 깨달아야
그 진리의 근본을 만날 수 있는 게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진리는 ‘근본’과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였다.
그런데 더 깊이 말하면, 진리는
수평적 차원성과 수직적 차원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수평적 차원성이란, 진리가 지닌 다양성을 말하며
또한 진리가 담보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말한
다.
먼저 진리가 지닌 다양성이란,
한 가지 빛이 아닌 다양한 빛을 지닌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다양한 관점에서 진리를 볼 수 있으며
진리가 다양한 세계와 동시에 결합할 수 있음을 말
한다.
아주 쉽게 말하면, 진리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세계와 동시 다발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말하며,
또한 2000년 역사 가운데 나의 말이
갖가지 역사적 상황마다
적용되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이 생동하며
진리는 갖가지 시대와 세계에 결합하게 되는 것이
다.
또한 진리가 담보하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이란,
쉽게 말해 진리는 순수하다, 혹은 영원불변하다,
사실이다 등과 같은 한 가지 가치로
정의될 수 없음을 말한다.
고로 진리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생동한다는 말이 가장 합당할 게다.
또한 수직적 차원성이란,
진리가 거대한 성산과 같다는 말로 이해하자.
이는 내 너에게 나의 본체와 분체에 대해
설명했던 것과 같은 이치로
절대적인 ‘근본’이 있고,
‘차원’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으로
각자의 수준과 차원에 따라
진리는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근본’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차원’을 경험하여 깨달을 때
그 풍부함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웅장한 산도 그 정상을 찍은 사진을 본다고 해서
그 산을 안다고 할 수 없지 않느냐.
그 산을 피땀 흘려 한걸음씩 오른 자만이
그 산을 알았다 할 수 있는 게다.
고로 같은 말을 들어도 각자의 수준과 차원대로
진리의 ‘차원성’ 안에서 깨닫는 이치와 같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성서에 기록된 나의 말을 보아라.
진리는 결코 육계에 속한
‘말’과 ‘글’이 될 수 없으나,
나는 인류 가운데 천국 가는 길을 이르기 위해
진리는‘말’이라는 옷을 입고,
더 체계화된 ‘글’이라는 옷을 입게 되었다.
4차원의 세계가 ‘말’이라는 3차원의 세계로 환원되
었고,
3차원의 세계가 ‘글’이라는 2차원의 세계로 환원되
어
지난 2천 년을 흘러온 것이다.
고로 이 말과 글을 뚫고 영계의 세계에 올라 깨우
쳐야
진정 진리를 알았다 할 수 있는 게다.
그렇다면 가지가 되는 ‘교리’는 무엇이겠느냐?
이는 영에 속한 진리로 향할 수 있는
육계의 ‘문’과 같다.
영계에 속한 진리는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직 영에 속한 진리의 성산에 오르지 못하
는 자들은
먼저 교리를 통해 ‘아는 것’으로부터 첫발을 내딛는
다.
마치 육계에서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지도로 나
타내듯,
진리를 육계의 언어로 전환하여 그려낸 것이
바로 ‘교리’다.
고로 생동감은 없지만 진리로 통하는 ‘문’이 되어
그것을 듣고 배울 때
각자의 수준대로 진리의 세계에 입성하게 된다.
너희 섭리사를 보자.
너희 선생은 직접 나 예수를 만나고, 또 영계에 올
라
‘진리’를 보았고 들었고 깨우치게 되었다.
이는 육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역사이기에
그는 천국을 그의 마음 가운데 이루고,
이는 그의 육의 삶과 가정, 민족, 세계,
1000년 역사로까지 확장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나는 내가 전한 말을 ‘조립’하라 하
였다.
이는 곧 30개론이라는 교리를 만들게 함이다.
왜 그러했겠느냐?
지식에 익숙한 너희에게 지식으로
먼저 나 예수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인류의 역사가 혼적으로 성장했으니,
그 혼적인 문을 두드려
나의 근본의 진리에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어
진리의 근본에 더 깊이 도달하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너희에게
‘영’의 문을 열어‘진리’의 세계에 침노하라 하였다.
곧 성령을 선물하여
지식의 세계와 교리의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굵고도 단단한 진리의 기둥을 보도록 이끄는 것이
다.
마치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이
먼저는 ‘지식’을 배우지만
대학교, 대학원에 가서는
‘학문’을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성장하니 성장한 만큼 이끄는 것이 아니겠느냐.
고로 지금은 교리의 시대가 아닌 진리의 시대다.
그 진리를 침노하는 자마다 변화를 이루고,
휴거를 이루고, 부활을 이룬다.
그리고 진정 그 진리를 만난 자, 아는 자는
선생을 통해 전하는 ‘글’로 된 나의 진리를
더 깊고도 풍성하게 온전히 깨닫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을 타지 못한 자들은
여전히 육의 눈과 귀로 선생의 말을 들으며,
시대에 따라 차원성있게 전하는 선생의 말을 듣고
‘말이 변하였다’, ‘진리가 변하였다’말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야, 생각해보아라.
진리의 그 풍부함을 어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
며
진리가 지닌 그 다양성과 차원성을
어찌 한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만에 다 전할 수
있겠느냐.
너희 선생의 일평생 전하는 말을 모두 종합하여도
다 전하지 못하는 진리의 풍성함을 알아라.
섭리역사는 나의 역사다.
고로 역사가 성장할수록 수직적 차원성에 맞춰
진리의 근본에 도달하고 있으며,
또 다양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진리가 지닌 다양성을 선보이고 있다.
마치 어제는 여호와의 뒷모습을 보았다면
오늘은 여호와의 앞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진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선생이 육신 쓰고 역사를 뛰는 동안
그가 낸 ‘길’만큼 1000년 역사의 영적 길이 세워진
다.
그가 발견한 진리만큼 1000년 역사가 볼 수 있는
진리가 정해진다.
이 깊고도 깊은 역사의 비밀을 깨달아
모두 합심하여 선생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면 네가 본 잎과 꽃과 열매가 무엇이겠느냐?
온전한 여호와의 뿌리에서 자란 나무라면
여호와의 뿌리를 낳을 것이니 바로 ‘천국’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너희 마음 가운데 천국이 임하고
너희 육의 삶 가운데 천국이 임하고
또 너희 가정, 민족, 세계 가운데 천국이 임하는 것
이다.
천국이 임한다는 말은 한마디로 ‘사랑’의 세계가
건설되는 것으로, 나 예수가 전한 한마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마가복음 12:28~31)
가 온전히 네 안에 새겨지는 것이라.
고로 진정 ‘진리’를 뿌리로 둔 자는‘사랑’을 말할지
니,
그 사랑의 최첨단이 바로‘신부의 사랑’인 것이며
그 사랑이 곧 ‘길’이 되어
너희를 천국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진리의 웅장한 나무를 보아라.
이 나무는 영원불변하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잎이 맺고, 꽃이 맺고, 열매가 맺어지듯
시대에 따라 다른 결실이 맺어지는 듯 보일지 모른
다.
그러나 한 나무에서 난 한 결실이니 모두 ‘진리’다.
고로 참 포도나무는
먼저 여호와의 깊은 심정의 물줄기가 흘러야 하며
천국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길 원하시는
여호와의 궁극적인 ‘뜻’을 뿌리에 두어야 하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나 예수가 전한
‘사랑의 길’이 굵고도 풍성한 기둥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가지들
곧 교리가 온전해야 하며,
그것에 따라 온전한 열매 맺은 자들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 맞습니다. 진리에 대해 깨닫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런데 예수님 요즘 이단들이 너무
많아
각종 교리를 앞세워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세요.”)
3. 방계역사와 이단역사
맞다. 지금 이 시대 재림을 앞두고
너무나 많은 자들이 갖가지 교리로 너희를 현혹한
다.
내 진정 이 시간 말하노니,
온전한 ‘진리’에 서지 못한 ‘교리’를 안다고 해서
결코 나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 시간 나와 더 깊이 있게
방계역사와 이단역사를 배워보자.
내 진정 말하노니, 이단의 역사는 결단코
나의 역사에 들어온 바 없나니
이단역사와 방계역사를 온전히 구분해야
너희가 현혹되지 않으리라.
나의 역사는 ‘중심역사’와 ‘방계역사’로
되어있다 하였다.
‘나의 역사’는 온전히 나 예수로부터 출발한 역사
다.
더 근본으로 들어가면 ‘여호와’로부터 출발한 역사
다.
고로 ‘심정의 물줄기’가 있어야 하며
‘사랑의 물줄기’가 있어야 하며
‘뜻의 물줄기’가 있어야 한다.
그 흐름 가운데 수직적 차원성을 달리한
‘진리’가 거하는 곳이 바로 나의 역사다.
이는 영계에서 여호와께서 뜻에 의해 선택하시니
너희가 육의 눈과 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 귀에 들리는 ‘말’을 들어보아라.
출발점도 도착점도 오직 ‘여호와’와
나 ‘예수’인 곳이 바로 나의 역사다.
고로 나의 역사에서는 오직
나 예수만 또렷이 보인다.
만약 내 앞에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가로막고 서서
나를 온전히 보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누군가의 역사’,‘무언가의 역사’다.
방계역사는 나의 주관권의 역사로
차원이 어리고 낮은 고로 나 예수가 보이긴 하나
온전한 ‘길’곧 천국에 이르는 길을
명확히 가르쳐주지 못하는 역사를 말한다.
쉬이 말해, 나의 성서의 말을 중심하여
나의 진리를 전하긴 하나 차원이 낮아
‘왜 그러한지’, ‘어떻게 그러한지’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모호함과 애매함을 지닌다.
마치 산의 정상을 사진으로 보아 알기는 하나
그 산을 오르지 못한 고로 산을 오르는 ‘길’을
말해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신약의 나의 자랑, 사도바울도 이르길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
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12)
라고 고백하지 않았느냐.
이러한 방계역사가 곧 천주교와 기독교의 역사다.
그들은 천국의 정상, 곧 나의 성서의 말은 아나
그것을 차원성있게 시대성 있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계의 차원이 달라져 새로운 길이 필요
하기에
신약의 발판 위에 내가 너희 선생을 통해
더 차원 높은 진리를 선포하며 진리의 길을 내건만
그들은 선생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그 길을 발견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단코 내가 말하노니,
이단의 역사는 결코 나의 주관권 안에 들어온 적이
없으며
그들은 자신의 주관과 이익에 따라
함부로 나의 말을 차용하여 교리화함으로
나의 말씀에 손을 댄 참담한 자다.
그들의 역사에는 나 예수가 없으니
주여 주여 나의 이름을 부른다 하여도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오직 나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결코 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느니라.
그들의 말에는 여호와의 심정과 뜻의 뿌리가 없고,
‘사랑’을 기둥으로 한 나의 말이 없으며,
오직 지식과 교리만 앞세운 가지만 무성하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열매가 없고
천국이라는 열매가 없어
나는 열매 맺지 못한 그들의 역사라는 나무를
찍어 불태울 수밖에 없는 게다.
선생을 통한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그의 말은 오직 나 예수를 향해 있고 여호와를 향
해 있다.
출발점이 분명하고 목적지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길은 어떠하냐.
‘사랑’이라는 온전한 길이다.
그리고 그 가지 역시 ‘사랑’곧
하늘 사랑 형제 사랑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심정의 강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은 시대의 계절마다
너희에게 합당한 풍성한 열매를 맺어 전해주고 있
다.
깊은 심정의 뿌리에서 끌어올린 열매기에
다양한 빛깔과 다양한 맛을 지녔다.
질리지도 지치지도 않는 진리의 생동함이다.
4. 진리의 육화
이제 진리를 배우는 것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자.
먼저 나의 성서를 보아라.
신약성서는 하늘의 말과 땅의 말로 되어 있다.
곧 나 예수라는 진리의 현현체가
하늘에서 땅으로 강림하여 선포한 말이 곧 하늘의
말이요,
그 말을 듣고 땅에서 하늘을 향해
직접 진리의 성산을 오르며 기록한 땅의 말이 있다.
곧 나의 제자들 그 중에서도
사도바울을 통해 기록한 나의 말이니라.
마치 하늘 편에서 선포한 나의 말을
그 시대의 수준에 따라
사도바울이 직접 배우면서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여
나의 말을 확인한 것과 같다.
하늘과 땅의 만남이니 온전한 진리다.
내 너의 친구 사도바울을 초대할 테니
그와 대화하여 더 깊은 진리의 세계를 경험해보아
라.
(주님의 말씀이 끝나자 사도바울의 음성이 들렸습
니다.)
주님의 신부여, 반갑습니다.
당신 곁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을 잡고
오늘도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 몇 번이고 사도바울이 맞는지 확인했고,
사도바울에게 어떻게 성서를 기록하게 되었는지 물
었습니다.
“사도바울님, 너무 반갑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기록한 서신이 성서가 될 줄 알았습
니까?
그리고 어떻게 서신들을 기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요.”)
주님의 신부여, 나는 결코 기록한 서신들이
성서가 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비밀에 감춰
나를 인도하셨지요.
그러나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지만
미래에 있을 찬란한 역사에 대한 희망은 언제나
마음 가득 뜨겁게 차올랐습니다.
내가 서신을 쓰던 그때마다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사 나의 온몸과 맘을 사로잡
았습니다.
성령에 휘어 잡힌바 되어 펜을 들었고
나는 영혼육을 진동하며
생동하는 진리를 기록하였습니다.
나의 기록을 자세히 보십시오.
내가 기록한 진리는 곧 나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주 예수가 말씀하신 그 모든 진리의 세계를
내가 직접 오르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을 온전히 증
거하고,
주 예수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의 말씀대로 ‘실천’할 때
나의 영은 셋째 하늘에 오를 수 있었고
영계를 접하면서 나는 구시대에서 깨닫지 못한
엄청난 진리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고
그러한 만남 가운데 내 마음 천국을 이루고
육신 천국까지 이루게 되었음을 기록한 나의 고백
입니다.
(“사도바울님, 저는 마음으로 당신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천국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뵌 적도 없습니
다.
당신은 어떻게 셋째 하늘까지 올랐습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큰 믿음과 확신이 되었을 것 같아
요.”)
주님의 신부여,
당신은 셋째 하늘에 올랐고, 지금도 오르고 있습니
다.
단지 당신에게 신령한 귀는 허락하셨지만
아직 신령한 눈을 허락하지 않으사
직접 보거나 체험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영은 이미 셋째 하늘을 오르며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으니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십시오.
주님의 신부여, 나의 기록을 보십시오.
나는 결코 내가 영계에 오른 것을 자랑한 것이 아
니라
내 마음 가운데 천국이 임하고
그것이 육화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린 것을 자랑하
였습니다.
물론 당신의 말대로
영계에 올라 직접 주님을 뵈니 큰 믿음이 되었습니
다.
그러나 나에게 진정한 믿음이 된 것은,
진리를 알고 진리로 인해 자유함을 입음으로
나의 영혼의 요동함이 사라졌고
그 말씀을 외침으로 나로부터 시작한 천국이
가정과 민족과 세계로 번지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
니다.
그리하여 나는 결코 내가 셋째 하늘에 오른 것을
자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주의 길을 걸음으로, 곧 주의 말씀을 실천함으
로
‘천국’이 임하고 구원을 이루었음을 고백하며
그것을 믿음 삼아 외친 것입니다.
육계의 진리는 단순히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인생으로
새겨져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깨닫고
그것을 인생 가운데 실천함으로
인류 역사 가운데 새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겨진 진리가 2000년 강을 내었고
지금 이 순간 당신과 나의 만남을 이룬 것입니다.
당신의 스승이 외치는 진리를 들어보십시오.
그 역시 영계에 오른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요
그 진리를 실천함으로
영혼육의 변화를 이루었음을 자랑합니다.
말씀이 육화되어 인생 가운데 새겨졌을 때
그것이 비로소 ‘진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 가운데 말씀이 새겨짐으로 진리가 된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조금 어려우니 쉽게 말씀해주세
요.”
라고 사도바울에게 묻자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습
니다.)
나의 사랑아.
나 예수는 진리의 현현체로 왔다.
나는 육신을 썼으나 신이요, 절대적인 존재였다.
메시아와 중심인물의 차이점을 너는 알지 않느냐.
그것을 먼저 인식하고 나의 말을 받아라.
너희 선생은 이 시대 나의 재림 역사 가운데
하와와 같은 존재로, 땅의 표상이요 기준이다.
이는 다른 말로
나의 중심인물들이 걸었던 삶 자체가
진리가 되는 것을 말함일진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나 예수를 사랑하는 삶 자체가
곧 천국을 향하는 길이기에 곧 진리이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삶에 강림하여 주관하사
환란 가운데 처하게도 하시고
복 가운데 처하게도 하시며
인류 가운데 여호와께서 정하신
인생의 가치와 비밀을 직접 보여주시며
‘이와 같이 살아라’말씀하시니
곧 진리가 됨이라.
더 깊이 나의 말을 들어보아라.
내가 너희 선생에게 마패를 맡겼던 시절
많은 자들은 선생에게 신과 같은 절대성을 요구하
였다.
그들은 그의 눈빛, 손짓 하나하나에까지
절대성을 부여하며 그의 육신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 맞다. 그는 곧 신이다.
그러나 내 진정 말하노니
나 예수가 그를 육신 삼고 역사하니 그는 신이요,
그의 삶 전체가 여호와의 뜻을 구현하니 그는 신이
다.
이를 제발 깊이 있게 깨닫길 내 진정 원하노라.
고로 너희가 보아야 할 것은
그의 옷, 그의 눈빛, 그의 손짓이 아니요,
그의 삶을 통해 여호와께서 또한 나 예수가
인류 가운데 말하고자 하는 ‘진리’다.
왜 내가 선생을 가까이서 모시고 섬긴 자들을
크게 여기는 줄 아느냐?
그들이 선생의 사랑을 받음이 아니요,
그들이 잘남이 아니요,
오직 나 예수를 모시고 섬기며 사랑하는 그의 삶의
자세와
또 그 삶을 들어 인류 가운데 보여주고자 하는
진정한 인생의 길과 가치, 인생의 근본을
그들은 가까이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비밀이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진정 그것을 보고 그의 삶이 구현하고 있는
여호와의 뜻을 보지 못하고
인류 가운데 전하는 교훈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많구나.
오직 선생의 육적 행동에만 관심이 있고,
선생의 사랑이 흐르는 곳만 관심이 있으니
선생을 보고 깨달아 증거하라는 사명을 다하지 못
함으로
그 자리에서 내 쫓긴바 된 자들이 너무 많구나.
사랑하는 자야, 사도바울의 삶 역시 동일하다.
그는 내가 선포한 진리
그리고 그에게 계시한 진리를 실천함으로
나의 육신이 되어 진리의 현현체가 되어
그의 삶을 통해 천국으로 가는 길을 구현한 것이다.
그리고 내 진정 말하노니,
육신 쓰고 있을 때 영적 성장을 이룬다 하였지?
진리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차지한 자는
바로 나의 말씀을 삶으로 깨달아 육신으로 새긴 자
다.
머리로 깨닫는 것은 1차원적이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은 2차원적이요,
육신으로 깨닫는 것은 3차원적이요,
인생으로 깨닫는 것은 4차원적이다.
온 인생을 다하여 너도 선생과 같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구현하여라.
내가 주는 최고의 축복이니라.
(이어서 사도바울이 말했습니다.)
주님의 신부여,
진정 진리가 육화될 때
진리를 알았다 할 수 있으며
진리가 내 것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고백처럼,
고통이 극심히 찾아왔을 때
입술에서 불평이 나온 자는 진리가 육화되지 못함
입니다.
진리가 육화된 자는 무의식적으로 ‘감사’하게 되지
요.
그것이 말씀의 육화입니다.
그런데 이는 결코 쉬이 되지 않습니다.
진정 고통 가운데 감사함으로 건진바 되어 본 자만
이
그것이 신혼골수에 새겨져
그 후 고통이 찾아왔을 때 감사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러니 진리는 육신으로 삶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스승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온 인생을 바쳐 진리를 육화시킨 자입니다.
그가 이룬 진리의 깊이와 넓이를 감히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신약의 터전 위에 새로운 길을 낸 자입니다.
그가 세운 조건과 그가 걸은 길은
직접 걸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에
후대 인류 역시 결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삶으로 배우는 진리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진정 사망에 처해봐야 생명을 알게 되며
진정 고통에 처해봐야 감사를 알게 되며
진정 절망에 처해봐야 희망을 알게 되며
진정 십자가를 지어봐야 십자가의 사랑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 감사, 감사뿐입니다.
그러한 삶이 허락된 자도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배우기엔 한평생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당신의 스승은 그것을 알기에
오늘도 그의 삶을 통해 깨달은 한 글자라도 기록하
고자
시를 쓰고 잠언을 쓰고 말씀을 기록합니다.
그의 기록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것을 알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그가 펜 끝으로 남긴 ‘글자’들을,
심정의 성산, 사랑의 성산, 삶의 성산을
오름으로 깨달으십시오.
진정 자신이 행한 만큼 차원성을 깨닫게 되어
진리의 근본에 다가가는 법입니다.
주님의 신부여,
스승의 삶을 통해 천국의 길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함으로 당신의 것을 삼으십시오.
당신에게 허락하신 그 모든 진리를
온 맘과 온몸으로 깨우치십시오.
그 모든 수고와 고통이 진정 축복과 기쁨이 되어
당신 인생 가운데 남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야, 내 깊은 말을 마저 전할 테니 들어
보아라.
천국의 꼭대기, 여호와가 거하시는 그 궁전은
그야말로 궁극적인 천국이다.
천국은 기쁨의 세계요, 행복의 세계요,
황홀한 세계요, 웃음의 세계다.
그런데 너는 기쁨이 지닌 다양성과 차원성을 아느
냐.
너희 인간이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만큼
그 세계를 형언할‘단어’를 만들었으나
기쁨의 세계만 해도 천층만층 구만층이다.
육계에서 가장 극적인 기쁨을 깨닫는 방법은
가장 극적인 슬픔을 체험했을 때다.
가장 극적인 희망을 깨닫는 방법은
가장 극적인 절망을 체험했을 때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구상하신 세계니라.
고로 중심인물들은 온갖 고통과 역경 속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기쁨의 꽃을 피운다.
이것이 진정 천국의 기쁨과 희망의 본질을 닮고 있
는 게다.
그러나 고통이 온다고, 절망이 온다고 낙심말아라.
네가 깨닫는 기쁨과 희망이 큼이니라.
(“예수님, 그런데 막 태어나서 죽은 아이들은
바로 천국에 간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가끔은 혹여 제가 구원의 길을 가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참 부럽기도 합니다.”)
천국은 단순히 ‘순수’함으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지 않더냐.
다이아몬드와 같이
온갖 ‘가치’(사랑, 기쁨, 행복, 희망 등)가
어우러져 있는 곳이 천국이다.
고로 아주 쉬이 너에게 말하면
어린 아이들이 오른 천국은 천국 중에서도
‘순수의 세계’와도 같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쁨도, 희망도, 사랑도 배우게 되
는 게다.
물론 그들의 영은 순수하기에
천국의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게 되고
덕분에 그들은 천국시민이 될 수 있겠지만
‘인생’가운데 허락하신 그 깊고도 깊은 세계를 배우
고자
그들 역시 몸부림치는 수고가 필요하단다.
인생 가운데 ‘고통’은 창조 때부터 함께했다.
그러나 다만 여호와는 그것을
‘고통’으로 칭하지 않고,
‘수고’혹은‘연단’이라 칭했지.
고통은 그 고통 가운데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함을 말하며,
연단은 그 고통 가운데 감추인 보화를 발견함을 말
한다.
그 모든 연단 가운데 너희는 천국에 새겨진
가치들을 배우며 영을 성장시키게 되는 게다.
인생 100년이 너무나 짧다. 찰나와 같다.
이 모든 진리를 배우기에 너무나 벅찬 시간이다.
그러니 내 사랑아.
너는 기둥이 되는 근본된 ‘사랑’을 타고 올라라.
사랑이 곧 진리니라.
사랑이 곧 여호와니라.
그러할 때 더 굵고 튼튼한 결실들이
너의 영혼 가운데 새겨지게 될 게다.
내 사랑아. 오늘도 나와 함께 이 깊은
진리의 성산을 오르느라 수고했다.
진정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에게 중심역사를 알게 할 것이요
중심자를 알게 할 것이요
또 나 예수 그리고 네 사랑 여호와를 알게 할지니
너는 진정한 ‘자유함’을 얻을 게다.
사랑한다. 나의 신부여,
우리 또 만나자.
- 너를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주 예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