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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1.08.20 (토)

계시말씀

선포일
2011.08.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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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중심자의 중요성 작성일: 2011. 4. 21. ~ 4. 25. 작성자: 이선진 [ 약 한 달간 매일매일 하나님만 찾고 불렀습니다.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더 집중해 드리고 싶어서 하나님만 찾고 예수님, 성령님, 선생님은 일부러 찾지 않고 기도할 때만 찾았습니다. 하나님만 존재하신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갑자기 삼위와 선생님 중 오직 하나님만 존재하신다고 생각하고 찾고 부르는 것이 왠지 어색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추상적인 존재로만 느껴졌습니다. 멀어지는 느낌 도 나고 막연해지는 느낌도 들어서 철야 기도 시간에 이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천품을 지니셨으며, 어떻게 역사를 해 주시는지를 배워서 가능하게 된 것이지 하나님의 영 자체만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구나! 내가 예수님, 선생님을 통해 하나님의 혼, 천품 등 에 대해서 배우고 깨달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구나. 아무리 하나님의 영이 존재하고 있을지라도 내가 하나님과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매개체는 하나님의 영 자체가 아니라 혼, 정신 등이구나. 사람과 사람 간에도 서로의 성격과 마음이 맞아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그렇다면 예수님, 선생님이 안 계셨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을 테니 사랑할 수도 없었겠 구나!’ 육을 쓴 시대의 사명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 여쭈었습니 다.] * 하나님 말씀 * 정말 잘 깨달아 주었구나. 맞다. 시대의 중심자가 없었으면 너와 나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시대의 중심자가 나의 혼, 생각, 감정, 마음, 정신, 사상 등에 대하여 그때그때 외쳐 주니 너희는 그것을 듣고 나의 심정을 느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 아니냐. 그처럼 시대의 중심자가 나에 대하여 알려주지 아니하였더라면 너희는 나를 사랑함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정 시대의 중심자를 통하여 나의 심정과 사랑을 외치게 함이 참으로 크고도 크며 중요한 일이노라. 나의 심정에 대하여 아느냐 모르느냐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 다. (“맞아요. 제가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던 계 기는 요즘 섭리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미지, 겉모습 때문 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목자의 심정으로 생명들을 차별 없이 어린 양처럼 대하며 사랑해 주신 그 생명 사랑의 마음과 어떤 가난하고 불쌍한 자 앞에서도 최고 높은 위치 이시면서 자신을 스스로 겸손히 낮추어 무시하지 않고 동등 하게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었던 겸손함의 천품 때문이 었어요. 그 겸손한 모습이 너무 좋았죠.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그래. 이처럼 시대의 중심자가 너희 인간들에게 나의 심정에 대하여 알려주니 그 심정 알고 나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게 된 것 이었다. 한 명의 시대 중심자가 얼마나 중요하냐. 한 명의 시대 중심자가 전 인류가 나와의 사랑에 성공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니라. 시대의 중심자를 잃는다는 것은 곧 나를 잃는다 함과 같으니라. 시대의 중심자가 그 시대에 합당한 나의 심정을 외쳐 주어야 그 시대에 합당한 나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니라. 한 마디로 말하여, 그 시대의 중심자가 그 시대 인류의 구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랑급에 맞게 구원급이 결정되기 때문이니라. 나의 아들 예수가 그 시대에 맞게 아들급 구원을 선포하였고 아들급에 해당되는 나의 심정과 마음, 천품에 대하 여 알리니 그를 보고 따르며 실천 책임 분담한 자들은 신약 시대 기간 내내 구원을 얻은 것이니라. 만약 나의 아들 예수가 시대의 복음을 외쳐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인류의 나를 향한 아들급 사랑은 영영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이 시대 가운데 신랑 신부의 사랑이 가능하게 된 이유는 ‘선생’ 때문이 아니더냐. 시대의 중심자가 하늘과의 사랑을 이루었으니 그에 따라 성약 재림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니더냐. 그처럼 선생이 너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니라. 알겠느냐. (“하나님, 궁금한 것이 있어요. 그 시대에 맞는 하나님의 심정이 담긴 말씀이 있어 야 그 말씀을 통해 합당한 사랑을 이룬다고 하셨잖아 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시대의 말씀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하늘과 시대의 합당한 사랑을 이룰 수 있으 셨나요? 같은 신약권에 사는 다른 자들은 성경을 읽고도 시대에 합당한 사랑을 못 이루었잖 아요.”) 시대의 말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의 합당한 사랑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실천’이었다. 이 말에 대하여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실천이 무엇이더냐? (“그 때와 시기에 맞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지 않나요?”) 그래, 맞다. (“그렇다면 때와 시기에 맞는 말씀도 없었으니 때와 시기에 맞는 실천이라는 것도 불가능한 것 아니었나요?”) 보아라. 재림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부터 성약권에 접어든 것이니 실상 그 전에는 신약권이었다. 고로 선생은 처음부터 성약권의 실천을 한 것이 아 니라 신약권의 실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 신약권의 실천의 수준을 넘어 성약권의 실천의 수준까지 당도하였을 때, 비로소 나의 아들 예수를 그에게 보내어 성약권에 해당되는 인봉을 푸는 시대의 진리 말씀을 가르쳐 주도록 한 것이었다. 신약권의 실천이란 나의 아들 예수가 나를 아버지로 섬기며 이 땅에 있던 모든 생명들을 다 나의 아들처럼 보고 자신보다 더 귀하게 아껴주 며 사랑해 주고 섬겨 주었던 실천이었다. 이 실천을 통하여 선생은 나의 아들 예수가 생명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였는가를 깨달은 후 진정한 생명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 었으며 나 여호와가 이 땅 가운데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나님, 신약권의 실천의 예는 무엇이 있습니 까?”) 신약권의 실천의 대표적인 예는 ‘복음 전파’였다. 전도로써 구약권의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나 여호와의 존재를 밝히 드러내어 소개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성약권의 실천은 무엇입니까?”) 선생이 예수가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때, 재림 성약의 때에 대하여 예언된 성경 구절들을 보 니 온통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온다는 말들이 적혀 있 었다. 이미 신약권의 실천의 수준을 다 정복한 선생은 성약권의 신랑 신부급의 사랑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선생은 신랑 신부급으로 나 여호와와 주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기 위하여 성경을 파헤치며 기도에 몰입했다. 그러던 도중 『요한복음 16: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라는 구절을 보고는 ‘재림 성약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비유의 인봉을 푼 말씀을 선포하시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은 후 재림 성약 말씀이 무엇일지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신랑 신부급의 사랑의 비밀은 바로 이 말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재림 성약 말씀의 비유의 인봉을 푸는 말 씀들을 하나씩 깨달을 때마다 그에 따라 실천하였으며 그러다가 재림 성약 말씀의 비유의 인봉이 모두 풀 리자 하늘과의 신랑 신부급의 사랑도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신랑 신부급의 사랑까지 이루며 좋아하고 있을 적에 나의 시대의 중심자로서 뽑아 주었으며 하늘을 신랑 신부급으로 사랑하는 대표 신부로서 뽑아준 것이었다. 알겠느냐. 선생이 시대 중심자 운운하며 그 자리에 스스로 오른 것이 아니라 내가 뽑아준 것이었다. 선생이 교만하다고 말하며 악평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나 여호와가 직접 뽑아준 시대의 중심자를 자신의 잣대로 재어 가며 함부로 판단하고 그 혀를 금치 않는 자들은 모세를 통해 이끌고 나온 1세대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망권에 처해졌듯 똑같이 되리라. 시대의 중심자는 절대로 자의로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오직 나 여호와의 뜻에 의해서만 오를 수 있는 자 리이니라. (“하나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시대의 중심자 한 사람과 전 세계 모든 인류, 지구와 우주의 모든 만물의 가 치를 비교한다면 어느 쪽이 가치가 더 큽니까?”) 단연코 시대의 중심자이다. 두말할 것도 없다. 시대의 중심자는 구원줄 그 자체이다. 이 지구와 인류는 그 자체적으로는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다. ‘시대의 중심자가 있는’ 지구와 인류가 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제발 너희의 교만함을 낮추고 겸손함을 통해 나아 오너라. 이미 심판 받아 죽어 없어질 자였는데 선생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살려 두고 있는 자들도 섭리 가운데 있다. 시대의 중심자였던 모세가 자신을 악평하고 교만하게 대하는 자들을 과연 꼴좋게 보았겠느냐. 마음속 이글이글 분노심이 타올랐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오만함에 치를 떨었다. 그러나 나의 심판과 재앙인 불 뱀에 물려 고통 받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시대의 중심자로서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악평하고 교만하게 대한 죄들을 대신 회개 하여 용서받아 결국 장대 위에 놋 뱀을 달아 민족을 살리지 아니하였느냐. 그와 같이 선생의 심정도 똑같다. 자신을 향한 무지와 교만에서 우러나오는 악평과 비난, 핍박 등을 당하면서 그의 마음속엔 어떠한 감정들이 생겨났겠느냐. 진정 나에게 고하여 심판해 달라고 간구하고 싶은 심정이 어디 없었겠느냐. 이미 자신은 재림 맞을 준비를 다 끝마쳐 놓은 상 태로서 다 포기하고 홀로 구원길 가고 싶은 심정이 어디 없었겠느냐. 그렇지만 하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고 또 참아 너희를 포기하지 아니한 것이다. 아벨을 통하여 제물을 바칠 수 있었던 가인이 스스로 시기 질투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구원줄과도 같은 아벨을 죽여 더 이상의 구원줄이 없게 되어 내쫓김을 당한 것처 럼 시대 중심자가 없는 지구는 마치 가인의 입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시대의 중심자인 선생이 없이는 이 시대 인류는 마치 가인과도 같은 격이 되는 것 이다. (“가인 자체적으로는 제물을 바칠 수가 없으니 아벨을 통하여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것처럼 이 시대에는 선생님을 통하여서만 하늘에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선생님을 통한 시대 말씀을 받지 않고 회 개하는 저 기성인들의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이 십니까?”) 구약권에서는 구약급의 구원밖에는 못 이루며 신약권에서는 신약급의 구원밖에는 못 이루듯이 현 신약권에만 묶여 사는 저 기성인들은 신약급의 구원밖에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저들이 회개를 하여도 신약급 구원까지밖에는 못 이룬다는 말이니라. (“하나님, 예수님의 재림은 신부를 데리러 오는 것이라 하셨고, 이 섭리 역사를 통하지 않고서는 재림은 이루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기성인들은 재림을 못 맞는다는 말씀이신 데 어떻게 신약급 구원은 이룰 수가 있습니까? 재림 못 맞으면 구원도 못 이루는 것 아닌가요?”) 재림을 못 맞으면 구원도 못 이룬다 함은 아니니라. 재림을 맞음으로써 이룰 수 있는 구원은 ‘신부급 구원’이지, 이 구원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니라. 재림을 통하여 휴거 받은 영혼들은 신부급 구원을 이루어 천 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한 후 영원히 하늘나라의 신부로서 살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재림을 못 맞은 영혼들은 그 급에 맞게 구원을 이루거나 사망권에 빠져 지옥으로 가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 다. (“아, 섭리인들 중에서도 재림을 온전히 맞지 못한 영혼들이 천 년 교육을 받는다는 말씀이 그래서 있는 것이군 요? 재림 맞지 못하여 바로 지옥에 간다면 아예 ‘천 년 교육’이라는 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대개는 이 땅 가운데에서 이루어 놓은 구원급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혼에서의 ‘혼’이 이 지상 세계에서 살 동안의 마음, 사상, 정신, 생각 등을 의미하기 때문이지. 이 지상세계에서의 ‘혼’은 유동적이기에 얼마든지 고치고 회개할 수 있지만 영계로 올라와 버린 ‘혼’은 이미 고정되어 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 혼 값, 즉 정신 값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그 ‘혼’을 바꾸고 변화시킴 으로 구원에 합당한 실천까지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영계로 올라가 버린 ‘혼’은 고정되어 실천의 차원을 높이고 싶어도 높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실천의 급대로 구원도 얻는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고로, 혼이 고정됨으로 인하여 거의 얻기가 힘든 ‘영계에서의 천 년 교육을 통한 신부급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이 땅 가운데에서 부지런히 ‘시대의 중심자를 통한 시대의 말씀’으로 자신을 변 화시켜 나의 아들 예수의 재림을 맞이하여 가장 쉽게 신부급 구원을 이루라는 말이니라. 이 땅 가운데에서의 재림을 맞이하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하여도 영계에서 신부급 구원을 이루는 것보다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쉬우니 어서 재촉하여 자신을 무섭게 연단시켜서 변화하여 라. 시대의 중심자가 아직 이 땅에 있을 때가 가장 변화하기 쉬운 때이니라. 시대의 중심자가 육의 생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여라. (“하나님, 기성인들이 모든 죄를 다 회개한다면 신약급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실상 현 시대의 기성의 생각과 인식관 아래에서는 구원이 어렵지 않나요?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심으로 더 이상 자신들의 죄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야고보서 등 수많은 성경 구절을 통하여 ‘행하지 않으면 죽은 신앙이다, 죽은 자다.’라고 말씀하고 있음에도 문자 신앙의 인식관으로도 깨달을 수 있게 그대로 나와 있는 실천의 필요성조차 회피해 버리고 실천하고 있지 않은 자들이 많으니 까요. 또한 ‘책임 분담의 법칙’ 자체를 모르고 있기도 하 고요. 한 마디로 쉽게 말해, 신약급 구원을 위한 신약급 실천에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신약급 구원조차 힘들게 되어 버린 것 아닌가요?”) 보아라. 실천을 통하여 구원받는 것이지 믿음만으로는 구원을 얻기가 힘드니라. 그처럼 신약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급에 미치지 못하는 실천을 하고 있는 저 기성 인들은 신약급 구원조차도 힘든 상태가 되었노라. 그리고 구약급에조차 미치지 못하게 실천을 하고 있는 기성인들은 사망권 말고는 갈 데가 없노라. 그렇다면 섭리의 경우는 어떠하겠느냐. 섭리라고 해서 이 공의의 법을 피해갈 수는 없노라. 아무리 섭리인일지라도 구약급 실천을 하고 있는 자에게는 구약급 구원이, 신약급 실천을 하고 있는 자에게는 신약급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약급 말씀을 듣고 성약급 실천을 하여 성약급 변화를 이룬 자에게는 성약급 구원인 ‘재림 맞아 휴거되어 천 년 역사 혼인잔치 후 영원히 천상천국에 거하며 신부급 영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니라. 알겠느냐. (“하나님, 마지막으로 여쭈어 보고 싶은 것이 있어 요. 앞서 말씀하시길, 선생님은 신약권의 실천부터 시작 하여 성약권의 실천까지 당도하였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저희 섭리인들이 해야 하는 실천은 선생님처럼 성약권 실천뿐만 아니라 신약권 실천도 해야 함을 의미하나요? 상위의 급은 하위의 급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잖아 요. 쉽게 말해, 하늘을 신랑삼아 일대일로 신랑 신부급 사랑을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형제자매들을 생명처럼 보고 아끼고 섬기며 사랑해 주며 시기, 질투, 교만, 무시, 혈기로 대하지 않고 악평하고 험담하지 않는 실천도 해야 함을 의미하 나요? 그래야 신부급 구원을 얻고 재림을 맞을 수 있는 것인가요?”) 옳도다. 나만 사랑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 가지고 주변의 형제자매들도 사랑해 주고 아껴 주라는 말 이니라. 항상 말씀을 통하여 ‘하늘을 사랑함같이 형제자매들도 사랑해 주어라’하는 이유가 무엇이겠 느냐. 하늘만 사랑하며 형제자매들을 미워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신부급 사랑이 아니니라. 진정한 의미의 신부급 사랑은 신랑을 사랑함같이 신랑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함께 사랑해 주며 아껴 주는 것이니라. 사랑은 이러한 것이니라. 알겠느냐. (“네, 하나님. 선생님처럼 저희도 신부급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늘만 사랑하면 되는 게 아니라 하늘을 사랑함같이 주변의 생명들을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늘만 사랑해서는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주변 생명들을 사랑해 주고 전도도 열심히 해야겠 어요. 깨우쳐 주셔서 감사해요.”) 이 섭리는 재림을 맞기 위한 역사이다. 이 섭리에 와서도 재림을 맞이하지 못하여 신부급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대성통곡할 일이며 후회하고 통탄할 일 이다. 선생이 너희 모두를 재림 맞을 수 있게 하기 위하 여 그 목숨조차 잊으며 실천하고 있으니 너희는 다만 그를 따라 실천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너희에게 선생처럼(현재 선생님의 삶을 의미) 해보라고 하면 할 수 있겠느냐. 너희 각자의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선생이 짊어지며 가고 있는 그 십자가의 무게와는 비교조차도 안 되니 너희는 불평불만 하지 말고 너희 앞에서 목숨 걸며 너희를 이끌어 가고 있는 너희 선생을 생각하며 오직 감사 감격 만족과 기뻐함으로 이 길을 가거라. 끝까지 행하는 자에게 빛이 있으리라. 안녕. 주 여호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