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08.30 (화)
계시말씀 52225462
- 선포일
- 2011.08.30 (화)
- 성경 본문
- 낮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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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근신
작성일: 2011. 7. 19 (화) 낮 2:00
작성자: 주은혜
[ 한 사람이 저에게 여자와 남자가 함께 일할 때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좋아할 만한 스타일도 아닌데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자꾸 생각난다면
그건 왜 그런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님께 여쭙게 되었고, 그에 대해
주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받아 정리한 글입니다. ]
* 예수님 말씀 *
이성은 서로 끌리게 되어 있다.
마치 자석과 같은 원리다.
상대가 아무리 못생기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계속 같이 있으면 서로의 파장이 오고 가서
결국 생각이 섞이고 몸이 섞이게 된다.
네가 직접 보지 않았느냐.
(“맞아요. 이성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요.”)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 사람에게 첫눈에 반
하여
이성 타락의 문제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드물다.
이성 문제는 이성과 자주 같이 있게 될 때 일어난
다.
본능적으로 상대 이성을 생각하고 신경 쓰게 되면
서
타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님, 그런데 스스로 조심도 하고,
그 사람이 좋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계속 생각이
난대요.
그럼 이 마음을 어떻게 이겨 내면 좋을까요?”)
본능적 생각은 이성적 생각으로 이긴다.
흘러가는 생각은 실천으로 이긴다.
인간적 사랑은 신을 향한 사랑으로 이긴다.
계속 이성이 떠오르고 생각이 난다면
그러한 마음을 이길 수 있는
더 강한 행실과 마음으로 이기는 것이다.
남녀가 서로 끌리게 되어 있는 본능을 이겨라.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마음으로 멀리 떨어지며,
더 나를 생각하려는 행실로 이겨라.
사랑하는 자야.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임시방편이다.
급한 불을 끄는 입장이다.
‘오직 나만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나만을 사랑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
는 것이다.
이는 최고의 사랑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것이다.
극도의 사랑은 사랑의 치우침이 없으니
사랑의 경지에 오른 사랑이 된다.
사랑의 도를 깨달은 사랑이 되어,
마음에 흔들림이 없게 된다.
‘인간적 사랑’과 ‘이성적 사랑’을 구분하여라.
‘인간적 사랑’은
나를 향한 최고의 사랑에 도달했을 때 가질 수 있
다.
‘인간적 사랑’은
나를 먼저 온전히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입장의 사랑이다.
이는 마치 선생이 인류를 사랑하듯,
부흥 목사가 섭리사 많은 자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은 쉽지가 않다.
‘완전한 나와의 사랑 관계’를 이루어야
가능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사랑을 하는 너희 모두는
형제에게 호감을 가질 때 ‘인간적 사랑’보다는
‘이성적 사랑’을 하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다.
그러니 근신, 또 근신해야 한다.
알겠느냐?
(“네, 주님 알겠어요.”)
마음은 언제나 흘러가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것처럼, 쉬이 걷잡을 수가 없지.
특히 너희의 생각으로
마음을 주관하기가 쉽지 않으니
너희는 기도하라.
누군가 너희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기를,
좋아하는 마음이든, 싫어하는 마음이든,
궁금한 마음이든, 계속 생각나는 마음이든,
어떤 마음이든 이성을 향한 마음이 너희의 마음에
담기지 않게 기도하라.
(“주님, 싫은데도 갑자기 생각나기도 한데요.
싫은데도 이성 문제가 일어날 수가 있을까요?”)
극적인 마음은 극적으로 통한다.
네가 말한‘싫어하는 마음’이
악으로 가득 찬 미움의 마음이 아니라
‘싫어해야 하고,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싫은 마음’
이며
너희와 상대가 맞지 않아 드는 마음이 아니냐.
(“주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두 가지의 싫은 마음은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사랑이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아예 사랑이 없이 악의 마음만으로 싫은 자는
그 마음을 사랑으로 돌이켜서
이성 관계가 일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거부의 마음, 너희와 맞지 않아 싫은 마음은
악의 마음만 가득 찬 마음이 아니고
그 근본에는 남녀의 근본적 끌리는 마음을 담고 있
기에
순간 인간적 본능의 마음,
‘육적 사랑의 마음’이 강하게 흐르게 되면
이성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지.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감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싫다, 좋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명쾌히 설명된다면 이성의 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기도 쉽겠지.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되어 있지 않다.
(“주님, 주님의 말씀은
저희가 주님을 완전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계속 생각나거나
좋아하게 될 수 있다는 말씀이죠?”)
그래, 이성 타락의 경로는 다양하다.
불꽃이 번쩍하여 순식간에
이성 타락적 마음이 타올라 타락하기도 하고,
서서히 불이 번져서 시간을 두고 타락하기도 한다.
타락의 속도나 과정은 다양하다.
하지만 너희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것은
이성에게 마음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그 시작점이
다.
한 번 마음이 기울어지면
사랑의 마음은 쉬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잘라도 잘라지지 않고
끊어도 쉬이 끊어지지 않는다.
왜인 줄 아느냐.
인간 타락의 근성과,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가장 큰 마음이요, 본능이기 때문이다.
본능과 타락의 근성의 마음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면 다시 붙잡기가 힘들어진다.
‘이성 문제로 어떻게 저리 쉽게 무너졌지?’하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과정 가운데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열리는 과정을 겪은 자다.
섭리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라면,
타락에 대해 배운 자들이라면
쉽게, 순식간에 자기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린 것이다.
마음 문은 타락의 대상이 되는 자가 여는 것이 아
니다.
너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타락의 근성적 마음
과
너희가 배운 말씀을
너희 스스로가 타협하게 하면서 열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문은 자신이 연다.
그 누구도 억지로 못 연다.
나 또한 너희의 마음의 문을 너희가 열도록
감동은 줄 수 있지만
너희의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너희 본인이다.
마음 문을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은
창조의 법칙이자, 사랑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억지로는 사랑이 안 된다.
사랑은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늘 조심해야 한다.
남자가, 여자가, 좋든, 싫든 마음이 기울어지면
그때부터 마음이 기울어진 대로 흐르게 되고
그 마음을 다시 나에게 돌이키고
균형을 잡지 않으면 다른 대상에게
마음이 결국 열리게 되니 근신하라.
너희의 마음이 기울어졌느냐.
섭섭함에, 서운함에, 명예에, 물질에,
잘못된 사상에, 이성에 기울여졌느냐?
다시 균형을 잡지 않으면
마음의 죄로 육신이 죄를 짓게 되리라.
사망이, 죄가 너희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다.
너희 마음 문이 조금이라도 열렸느냐.
타락의 길이 너희에게 열려,
사탄이 너희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그러하니 나를 향한 사랑에 온전하여져라.
무너지지도, 쏠리지도 않는 마음 그릇을 가지게 될
것이다.
(“주님, 마음이라는 것이 참 무서워요.”)
‘근신하라, 기도하라, 늘 자신을 돌아보아라.
자만하지 말며 교만하지 말아라.’하며
이 모든 말씀을 하는 이유가 있다.
너희의 사랑을 늘 반성하는 자가 되어라.
나 말고 다른 것이 함께 존재하는 사랑은
위험한 사랑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
자기 마음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악인지, 죄인지 자신의 양심을 통해
자신이 가장 먼저 알게 된다.
너희 마음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꺼림칙하면 죄다.
특히 이성은 더 그러하다.
너희 마음에 찜찜한 마음이 들고,
죄책감이 들고, 이상한 마음이 든다면
즉시 너희의 마음을 온전히 하기 위해
회개하고 나에게 매달리도록 하라.
너희가 근신하여 마음을 살필 때
너희의 마음에 주인이 되어
너희의 마음을 지켜 줄 것이다.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매일 매일 살피지 않아
죄를 지음으로 인해
사탄으로 하여 양심에 화인 맞지 않도록
늘 근신하도록 하라. 사랑한다.
사랑하여 말씀해 준 너희의 주 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