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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1.09.02 (금)

계시말씀

선포일
2011.09.02 (금)
성경 본문
새벽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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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칠한 무덤 작성일: 2011. 7. 31. (일) 새벽 3:00 작성자: 장정임 [ 개인, 가정, 교회, 섭리를 두고 기도할 때 저희가 아직도 많이 깨어나지 못하여 변화가 더딤이 느껴져서 회 개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주님은 섭리인들 가운데에도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 셨습니다. 답답한 심정을 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 껴져서 받아쓰게 되었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고 사랑하는 섭리사 내 사랑들아. 이 시간 이 여인을 통해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과 나의 심정을 전하노니 진정 깨어 듣고 일어나 신랑으로 오는 나 예수를 온전히 맞이하길 바라노 라. 회칠한 무덤! 너무나도 끔찍한 말이지. 너희는 느껴지느냐? 이 시대가 회칠한 무덤이 되어 내 사랑의 역사와 나의 심정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전혀 미동치 않으며 시체처럼 누워있음을 너희는 보느냐? 새 시대 새 역사로 와서 새 말씀을 받고 살아나지 않으면 영영 무덤에 갇혀서 이생에서도 저생에서도 죽음의 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다. 매주 선생 통해 선포되는 나의 말씀은 살아 생명력 이 있어 너희의 모든 신혼골수를 쪼개는 능력이 있으나 이 또한 살아 있는 자와 듣는 귀가 열린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니 아무리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소경된 자와 귀먹은 자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기 에 살아나지도 무덤을 열고 나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허나 이 시간 나 예수가 사랑하는 섭리사 너희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으니 곧 이러한 회칠한 무덤의 모양으로 존재하는 기성과 이방을 보는 나의 고통이 너무나도 크고 크 지만 섭리사 가운데에도 이러한 모습으로 앉은뱅이가 되 어 나의 귀한 시대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자가 많아 내 마음의 애달픔이 깊어져만 간다는 것이다. 살았다 하나 죽은 자라는 말씀이 기성과 이방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분명 기성과 이방의 무덤에서 새 역사 새 말씀을 듣고 살아 나온 자가 아니었더 냐. 허나 어느새 다시 살았다 하나 죽은 자가 되어 사는 자가 많구나. 영이 충격을 받고 쓰러질만한 말씀을 들어도 네 육은 아무런 감흥이 없고 네 죄악으로 인해 네 영이 지옥의 고통을 받고 울부짖어도 네 육은 죄를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사니 곧 죽은 자가 아니겠느냐. 파리한 시체가 무표정한 얼굴로 너를 따라 다닌다고 생각해 보아라. 진정 끔찍한 일이 아니겠느냐. 누가 너를 그리 만들었더냐. 누가 너를 다시 무덤 가운데 거하게 하며 시체로 만들었더냐. 바로 네 자신이 아니더냐. 너희 변화되지 못한 육성과 인성으로 인해 네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관에 눕기를 자처하지 않 았는지 긴히 뒤돌아보아라. 버릴 것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회개할 것을 온전히 회개치 못하니 육성에 갇히고 타락된 근성에 매여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이다. 무덤이 오히려 편하다 여기며 육적 사고의 관 속에 누워 잠을 자면서 자신은 살아 있다 깨어 있다 주장하는 꼴이다. 진정 깨어 있으라. 말씀에 깨어나고 실천에 깨어나고 사랑에 깨어나고 회개에 깨어나고 나 예수의 심정에 깨어 있으라. 무의식 가운데 어제의 방식과 습관에 매여 살지 말 고 항상 변화하며 차원을 높이는 나 예수에게 깨어 있 어라. 차원을 높이면 어제 보이지 않던 흠이 오늘 보이게 된다. 그만큼 더욱 빛 가운데로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 나 예수에게 가까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제는 너 보기에 죄가 아니던 것이 오늘은 죄가 되어 회개하게 된다. 완전함을 향한 수순이다. 사랑하는 나의 섭리사야. 선생이 토해 내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진정 얼마나 귀하고 중한지 깨닫지 못하면 너희는 변화될 수 없고 살았다 하나 이내 죽은 자가 되어 너희를 스스로 무덤 가운데 가두고 만다.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차갑게 식은 심장으로 간절함 없는 기도를 하며 의례히 드리는 찬양을 통해서는 나를 만날 수 없다. 뜨거운 가슴과 끓는 피로 네 영과 혼과 육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내 앞에 나아오라.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라. 날마다 깨어나지 못하면 높아만 가는 내 사랑의 역사를 감당할 수 없다. 신부로 불림 받은 너희가 그저 구원에 만족하며 자녀로 종으로 전락하고 말면 진정, 진정 안 되는 것이다.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지 않고 어제의 변화로 만족하는 자는 나의 역사를 따라올 수가 없다. 선생 보아라. 왜 저리 몸부림치겠느냐? 날마다 전진, 날마다 변화이다. 날마다 네 영이 새롭게 되길 기도하여라. 또한 날마다 변화되지 못한 자, 구습과 육성에 갇히고 회칠한 무덤에 갇혀 버린다. 살고자 섭리에 왔는데 다시금 죽어 가는 너희를 보 는 내 심정은 타들어만 가는구나. 날마다 몸부림치는 자가 되어라. 그러한 자 나에게 희망과 기쁨과 웃음을 준다. 나 전능자가 너희의 그 몸부림에 위로를 얻고 희망을 얻는다. 나 사랑하지 않느냐? 쓴웃음이 아닌 내 환한 웃음이 보고 싶지 않느냐? 진정 너희와 기쁨의 잔치를 하고 싶구나. 네 사고에 갇히고 네 생각에 갇혀서 나를 보지 말 아라. 무덤 속에서는 아무리 움직여도 자유함이 없다. 진정한 기쁨이 없다. 무덤 벗어나라. 자기 입장과 자기 생각의 무덤 속에 갇혀 있으면서 스스로를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라. 말씀은 너무나도 많이 들어 너희 머리 가운데 꽉 차 있어서 입으로는 줄줄 외듯 나오지만 나 예수가 그 말씀 통해 변화되길 원하는 바가 무 엇인지 깨닫지 못해 실천치 못하고 사는 자 많다. 동일한 말씀을 듣고도 그 깨달음과 행함이 달라 변화된 수준도 천차만별이구나. 일어나라. 벗어나라. 무덤을 열고 나오라. 성령을 간구하여라. 성령의 은혜와 역사로 무덤을 열고 나오도록 구하고 또 구하여라. 진정 물과 성령이다. 진리 말씀에 의거하여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받아 야만 굳어진 사고와 육적 생각의 틀을 깨고 나올 수 있 다. 다 비우고 기도하여라.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기도하여라. 무엇이 나의 원하는 것인지를 들으려 노력하여라. 숫자적 놀음으로 네 신앙을 계산치 말아라. 기도를 몇 시간 하고 찬양을 몇 곡 하는 것이 기준과 잣대가 되면 형식과 외식의 신앙이 되고 만 다. 단 30분의 기도를 하고 단 1곡의 찬양을 하여도 내가 듣고 싶은 기도를 하고 내가 받고자 하는 찬양을 하도록 하여라. 그것이 나를 중심한 신부의 삶이다. 깨어나라. 무엇이 변화되었고 무엇이 변화되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알아야 한다. 성령의 은혜가 차고 넘치기를 원하노라. 주 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