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2011.09.15 (목)
윤신원 서울주기쁨 나와 선생님의 관계성 너는 선생을 누구라고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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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선생님의 관계성
너는 선생을 누구라고 하느냐?
작성일 : 2011. 9. 15 (목) AM 2시
작성자 : 윤신원 (서울 주기쁨 교회)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해외 회원들 중에서 선생님
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많고, 한국에서도 신입생들
중에 선생님을 말씀 받아주는 분, 예수님께 통하는 신부
의 문으로만 알고 있거나, 선생님을 못 본 자들 중에서
말씀을 듣고도 선생님을 실감 못하고 정말 살아계신 분인
가 하는 자까지도 있다는 얘기 들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를 주님께 회개하며, 세상에 선생님을 증거하기에 앞서
신부라는 우리는 선생님에 대해 제대로 근본을 깨닫고
있는 것인지 여쭈었고, 선생님과 나와의 관계성에 대한
근본을 깨달을 수 있길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선생을 실감 못하고 못 느끼는 것은
너희 각자가 선생과의 일대 일 관계성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예수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인류를 구원하고 십자가를 져 주었겠느냐?
그것은 나를 구원자로만 아는 자의 생각이다.
이와 같이 선생이 나 예수를 너무 사랑하니,
나 예수를 사랑하는 것 하나 때문에
모든 고통도 이기고 환란도 참고 견디며
십자가 져주고 말씀도 받아주고,
너희 위해 기도해주는 자로,
설교해주는 자로 생각하느냐?
그 역시 선생을 이 시대의 중심자,
시대의 구원자,
나 예수에게 나아오게 해주는 문이요
통로로만 아는 자이며,
이는 마치 나 예수를
구원자로만 알고
고백하는 자와 수준이 같다.
선생은 하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의 입장에서
성경을 보고 깨달으려고 기도하였다.
인간 중심에서는 영과 육을 쪼개어 보지 못한다.
인간 중심 생각은 육에서 시작해서 육으로 끝난다.
하나님과 나 예수를 온전히 중심해서 생각해야
영과 육을 쪼개어 볼 수 있다.
선생은 너희 앞에 보다 영적인 자다.
그러니 선생에 대해 배우려면 육신 된 너희 입장이 아니
라
선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깨닫고자 해야 제대로 배운다.
또 선생 앞에 근본 된 나 예수의 입장에서 봐야
온전히 영과 육을 쪼개어 안다.
선생을 온전히 알면 선생이 너희에게 나 예수에 대해
영과 육을 쪼개어 확실히 가르쳐 주니,
너희는 먼저 선생을 배우라는 것이다.
선생이 나의 몸이 되어
공생애 역사를 시작했을 때는
선생의 몸은 껍데기만 나의 몸이 아니었다.
선생 자체가
곧 정신과 마음과 생각과 심정과 영혼까지도
나 예수와 일체되어 있었다.
나 예수는
선생의 마음, 생각, 정신을 통해,
영혼을 통해, 그의 몸을 통해서 행하였다.
이는 마치 성자 본체인 나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 된 나 예수의 육신을 통해
육신을 성장시키고 변화시켜
육을 쓴 원리와 같다.
육도 조건없이 변화되지 않는다.
2천년 전 나 예수도
절대적인 육신의 책임분담을 하였듯이,
선생도 육으로
절대적인 책임분담을 다했기에
변화되어 쓰인 것이다.
많은 자들이 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을 때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다.
이에 베드로가 내게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는 먼저 자신과 나와의 관계성을 고백하였고,
그리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고백하였다.
이 시대에도 내가 사랑하는 너희에게 묻노라.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요, 성자 본체시요, 사랑이시며
나의 영원하신 신랑이십니다.
그러면 다시 묻겠다.
너는 나의 육신 된 선생을 누구라 하느냐?
(선생님은 영원한 신랑 되시는 예수님 앞에는 첫 신부요,
이 땅에 예수님이 보내신 예수님의 육으로 쓰시는 사명자
요,
이 시대 구원자요, 육신 쓴 주님이십니다.
오직 성자 본체 예수님만이 나의 신랑이시며,
이 땅에서는 선생님의 육신을 쓰고 오신 예수님이니,
선생님은 반드시 이 땅에서 신부로써 맞아야 할
육신 쓴 주님, 나의 신랑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예수님은 예수님이십니다.)
영으로 나 예수의 입장에서 말하면
선생은 내가 육신을 쓴 자요,
육으로 선생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선생은 나 예수의 영이 육화되어 나타난 자이다.
선생 통해 나 예수가 시대 말씀 나팔을 어찌 부는지 아느
냐.
시대 말씀 나팔이니 시대의 재림과 휴거 말씀만 생각하느
냐.
시대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냐.
영적으로 들어야 진정 변화다.
재림과 휴거의 교리 말씀이냐.
이 말씀을 교리로만 받아들이거나
육으로만 들으면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보아도 제대로 못 보니
소경과 같은 입장이 되고 만다.
시대 말씀 나팔은
곧 신랑이 신부에게 외치는
사랑의 말씀이다.
곧 신랑의 소리요,
나 예수가 신부에게 외치는 소리이다.
신랑이 신부에게 사랑한다 외치니
신부가 듣고 변화되어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이 외치는 소리가
곧 신랑의 소리요,
나 예수의 소리다.
너희 앞에 선생은
속도 신랑이요, 겉도 신랑이다.
너희는 나 예수를 신랑이라 하면서
육화되어 너희에게 나타난 나 예수를
어찌 대하고 모시고 살고 있느냐.
모르니 사랑의 불이 붙지 않고
제대로 신부로써 변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근본으로 나를 못 맞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육화되어 쓰이는 선생은
너희를 어떤 입장과 심정으로 대하겠느냐.
신랑 된 자의 사랑이 아니고는
시대 말씀의 나팔소리를 낼 수 없고,
이 시대에 합당한 구원을 이룰 수 없고,
사랑의 역사도 펼 수가 없느니라.
너희는
육이 영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나는 너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영이 육으로 변화되어 나타났다.
그러니 너희는
나의 육을 통해 나와 일체되고
너희 육을 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땅에서 너희가 육으로 신랑으로 맞을 자는
나의 육, 선생이다.
마지막 나의 재림 때
영으로 신랑으로 맞을 자는
오직 성자 본체인 나 예수다.
무지하고 육적인 자들이
선생이 육화된 나 예수라니
못 알아듣고 선생을 자칭 예수라 참람하다 하였고,
선생이 육으로 신랑으로 맞을 자라 하니
못 알아듣고 나를 자칭해서 육적 이성사랑 한다며
더럽고 추악한 자기 죄를 선생에게 다 갖다 씌우는구나
그렇다면 천년동안 올 나의 신부들은
그때는 선생의 육이 없는데
그와 같은 이성 사랑으로 나를 못 맞으니
앞으로 천년동안 이 땅에서 육으로는
나를 어찌 맞는다는 말이냐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이며,
뜻도 심정도 역사도 모르는 말이 아니냐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내 사랑하는 선생,
그는 나의 첫 신부라.
영원한 나의 첫 사랑이라.
그는 오늘도 나의 심정 가지고 나의 몸이 되어 뛰는구나.
너희는 선생 보기를 어찌 하고 있느냐,
선생이 내 앞에서 신부이니
너희와 같은 신부이더냐,
하늘과 땅의 입장이 다르듯이
나와 선생의 입장이 다르며,
나와 선생의 입장이 다르듯이
선생과 너희의 입장이 다른 것이다.
나의 몸된 자 선생이라 하였더니,
육적으로 생각하여 말귀를 못 알아듣고
선생이 나의 몸, 손과 발, 입이 되어
나의 말씀을 대언해주고
받아 써주는 자로만 생각하는구나.
나의 몸이 되었다 함이 무슨 뜻이겠느냐,
심정과 생각과 마음과 정신과 혼과 영이
모두 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그의 몸만 쓰느냐.
내가 그의 손과 발과 입만 쓰느냐.
내가 그의 몸을 쓴다는 말은,
내가 그의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고,
내가 그의 정신과 마음을 통해서 나타나고,
내가 그의 심정을 통해서 나타나고,
내가 그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고,
내가 그의 말과 그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선생이 곧 제 2의 나 예수라 함이다.
선생통해 내가 말씀만 써 보내주었느냐,
선생통해 내가 편지만 써 보내주었느냐,
선생통해
나의 육신통해,
내가 너를 사랑해주고,
내가 너를 지켜주고,
내가 너를 위로해주고,
내가 너를 죽음에서 구해주고,
내가 너를 용서해주고,
내가 너의 애인이 되어주고,
내가 너의 신랑이 되어주고,
내가 너와 함께 일해주며,
내가 너와 함께 놀아주고,
내가 너와 함께 살아주고,
내가 너의 소원과 희망 이뤄주며,
내가 너에게 잘해주지 않았느냐.
영의 눈을 떠서
선생을 통해 너를 사랑해주는
나 예수를 깨달아 보아라.
나 예수는 지금도
너희 각자 곁에서
사랑해줄 것 다 사랑해주고 가는데도,
너희가 제대로 알지 못하니,
내게 사랑을 받고 사는 줄도 모르고,
내가 어떻게 사랑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 오는 자들에게도
부족함 없이 나는 잘해주고 간다.
이미 섭리에 온지 오래 된 자들,
한 명도 빠짐없이
나는 사랑해주고 잘해주고 간다.
아는 자는 알고,
모르는 자는
아직까지도 내가 자기에게
왔다 갔는지도 모르고
나 만나기만 기다리며 살고 있다.
지난 날을 생각해보아라.
선생이 네게
어찌 대해주었는지 생각해보아라.
지금도 나와 함께
더 차원을 높여가며
끊임없이 사랑하는 자도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찾아가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런자는
자기가 나의 사랑받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연고로
사랑의 차원을 높여 변화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체질도 나 예수요,
성격도 나 예수요,
심정도 나 예수요,
말투도 행동도 나 예수요,
사랑도 나 예수요,
능력도 나 예수요,
삶도 나 예수라.
어찌 이리 나와 꼭 닮았는지
내가 봐도 신기하고 신비하구나
성령 어머니도 감탄하시었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도
보시고 놀라고 감탄하시었도다.
나 예수를 보고 싶거든,
나 예수를 만나고 싶거든,
나 예수와 사랑하고 싶거든,
나 예수의 말을 들어보고 싶거든,
나 예수와 똑같음을 삼위가 인정한 자,
제 2의 예수,
선생을 만나보라고 하여라.
나 예수와 정말 똑같은 자 있다고 하면,
너희는 어찌 하겠느냐,
가만히 있겠느냐,
동네 방네, 온 세계 다 돌며
만나려고 찾아다닐 것이요,
만난 자는
동네 방네, 온 세계 다 돌며
소문내고 싶지 않겠느냐,
와서 보아라 하지 않겠느냐.
얼굴만 똑같은 자라면
호기심에 조금 몰려들다 말 것이다.
그러나
진정 나 예수가 나타났다 할 정도로
똑같은 제 2의 예수가 나타났다면,
그저 호기심으로 만나보고
자기 갈길로 다시 돌아가 버리겠느냐.
그를 만남이 나 예수를 만남이며,
그를 사랑함이 나 예수를 사랑함이며,
그의 말씀을 들음이 나 예수의 말을 들음이며,
그의 삶을 본 것이 나 예수의 삶을 본 것이며,
그와 일체됨이 나 예수와 일체되는 것임이라.
나의 최고 대 걸작품 선생이다.
나의 최고 자부심이다.
작가가 자기를 나타내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최대의 자부심이요, 작품으로써도 최고 가치있는게 아니
냐
내가 이리도 자랑하는 선생을
너희는 왜 그리도 자랑하지 못하느냐.
선생을 나타내고 증거하라는 것은
곧 나 예수를 나타내고
세상에 증거하라는 말이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2천년 전 내게도,
나를 보여주었어도
하나님을 보여달라 하는 자들이 있었다.
선생을 보고도
나 예수가 진정 역사함을 못 보는 자는
정녕 육에 속한 자요,
사망에 속한자요,
신앙의 잠을 자는 자요,
나 예수를 제대로 모르는 자라.
너희는 나 예수를 보러 오라고 전하여라.
나 예수가 이 시대에 외치는
말씀을 들으러 오라 외쳐주어라
제 2의 예수가 나타났다고
담대히 외쳐주어라.
그래도 너희는 걱정 말아라.
세상에서 자신을 예수라 하던 자들은 모두
사망에 속한자들이었다.
그들은 교만하고 자기 중심적이었고,
자기 영광을 받으려는 자들이었고,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던 자들이었다.
이미 그들은 사망 지옥 선고를 받아 끝나지 않았느냐.
선생은 절대 나 예수 중심이다.
내 앞에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으며,
나 예수를 두려워 할 줄 알며,
오직 나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며,
나 예수가 근본임을 진실로 아는 자이며,
나를 경외할 줄 알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자신을 자랑하지도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으며,
그를 통해 나오는 모든 자를
나를 사랑하는 신부로 만들어
오직 신랑된 나 예수와
온전히 일체되게 하는 자로다.
(예수님, 이 말씀을 들으니 고린도전서 13장 4절~7절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사랑에 대한
이 말씀이 곧 예수님에 대한 증거의 말씀인가요?)
그래 맞다.
사랑이 곧 나 예수요,
사랑에 대한 증거가 곧 나 예수에 대한 증거이니라.
너희도 이 시대에 선생을 통해 나 예수가 보여준
이와같은 온전한 사랑을 증거하여라.
선생의 사랑은 곧 고린도전서 13:4~7의 사랑이라.
나 예수를 중심한 온전한 사랑이요,
오직 나 예수와 일체된 신부의 사랑이라.
그러한즉, 선생이 나 예수의 신부로서 나의 몸이 되어,
너희들을 나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주었노라.
선생의 사랑을 증거하여라.
이 시대에 보여준 온전한 나 예수의 사랑을
증거하라 함이다.
더 좋은 것이 있는데도 가만히 있으면
안 좋은 것이 제 자랑하니 더 좋은 것이 묻히게 된다.
선생의 사랑도 온전한 나 예수의 사랑을 근본으로
전해주지 못하면,
세상의 불완전하고 타락된 사랑이 소리높여
세상에 그러한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요,
세상에 그러한 사랑만 있다고 소리치리니,
너희들은
나 예수의 사랑을 근본으로 하여
선생의 사랑을 소리 높여 증거함으로,
선생을 통해 이 시대에 내가 보여준
사랑을 증거하여라.
세상으로 하여금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사망에 속한 타락된 사랑이
소리치지 못하게 하여라.
선생의 사랑 누가 증거하랴.
그 사랑 받은 너희가 증인이 아니더냐.
세상에 선생의 온전한 사랑,
나 예수의 사랑을
증거하고 외치지 못하니,
선생이
세상이 외치는 자신들의 타락된 사랑 때문에,
각종 오해와 멸시와 핍박과 환란과 고난으로
그들 대신 십자가 길 가고 있지 않느냐.
선생의 사랑이 참되고 온전하니
너희는 나와 선생의 몸이 되어
받은 사랑을 담대히 증거하고 외치어라.
사랑의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