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1.09.16 (금)
천국성령운동 말씀
- 선포일
- 2011.09.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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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천국성령운동 말씀>
시작기도)
사랑하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 귀한 신부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주께서 온전
히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주께서 오늘 크나큰 성령과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불지펴 주시옵
소서. 주님, 오직 주님만이 이 자리에 임하고 하나님께서만 이 자리에 임하시리라 믿습니다.
사탄마귀 모든 행함을 주님 다 제하여 주시옵시고, 오직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말
씀 전하는 자의 입술을 주관해 주실 줄을 믿사오며, 또 말씀을 듣는 모든 자들의 가슴 가운
데 주님의 사랑과 능력과 은혜와 사랑과 감동이 충만하기를 기도하고 원합니다. 모든 것 주
께 맡기며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오늘 또 천국성령운동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성령받는 날, 또 뜨거운 성령
으로 녹아지는 귀한 날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참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죠. 어떤 때는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만일 누군가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도움을 준다면 얼마나 기쁘
고 좋겠습니까? 맞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섭리역사에 살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되
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부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가정을 통해 오는 어려움
도 있을 것이고, 내 안에서부터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이 때 바로 주님은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
서 우리가 갈 방향을 제시해 주시고, 갈 길을 제시해 주시면서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서 우
리가 능히 할 수 없는 일들을 능히 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씀했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 다 같이 해볼까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주님 안에서 살
아갑니다. 오늘 성령도 주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신부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니 우리가 불가능이 없이 성령을 주시는 이도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눈으로 볼 수가 없고 음성을 직접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은 시대의 보낸 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고, 성령을 통해서 확실히 함
께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 주십니다. 여러분, 시대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그러면 심지가 꽂
힌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심지에 주님께서는 성령의 불로 확 태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그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의
뜻도 이루어 주시고 하늘의 소원까지 다 이루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찬양 한 곡을 더 하고 싶습니다. 내게 능력을 주신 이가 누구라구요? 하나님.
내게 하나님 같은 능력을 달라고 내게 예수님 같은 사랑을 달라고 그리고, 내게 성령님과
같은 마음을 달라고 뜨겁게 찬양하면서 먼저 이 시간 불태우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찬양 ‘내게 하나님 같은 능력’
여러분, 과일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일나무는 아직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무엇을 바래야 될까요? 열매를 바래야
됩니다. 바로 이 과일나무가 살아 존재하는 목적은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열매를 맺지
않으면 죽은 나무가 되겠죠. 그러나 이 과일나무는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열매가 보이지
않지만, 그 과일나무를 잘 키우고 가꾸고 정성들여서 물과 퇴비를 준다면 이것이 열매를 맺
게 됩니다. 그제서야 과일나무로 태어난 보람을 느끼게 되면서 ‘내가 과일나무로 태어난 목
적은 열매를 맺기 위한 목적이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 사람, 내 육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 영이 반드시 존재하는 걸 알지만,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주님의 말씀으로 정성을 들이고 가꾸고 행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의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와.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은 영이라는 열
매를 맺기 위함이구나.’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에 과일나무 열매가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그러나 가꾸면 열매를 여는 목적이 보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육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유는 바로 우리의 영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영이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곧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무장하
고, 주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그 행함대로 사는 저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똑같은 과일이라
도 누가 어떻게 퇴비를 주느냐에 따라서 열매맺는 것이 달라집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도 똑같은 육신이예요.
똑같이 육신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때 우리가 어떤 말씀을 듣고 우리가 어떤 말씀을 듣느냐
에 따라서 우리 영의 열매의 모습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물과 퇴비가 필요합니다. 온전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왕이면 과일나무로 태어났는데 이왕
이면 육신으로 태어났는데 최고의 열매를 맺어야 되지 않겟습니까? 수고와 노력은 똑같습니
다. 다만 그 내용물이 어떠느냐에 따라서 또 그 과일나무가 얼마나 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서 달라집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최고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실행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의 열
매는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너 왜 태어났니?”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도 육신으로 태어났는데 영혼
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 “너 왜 태어났니?” 하면서 사람이 태어난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과일나무는 우리의 육신과 같고 그 열매는 우리의 영혼과 같은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온전하게 거할 수 있는 곳 바로 이 섭리역사 이 곳에 말씀이 있습
니다. 오늘은 지지난주 성령집회 제 2탄입니다. 기억나시나요? 말씀 뭔지 기억나시나요? 기
억 안 나시면 나중에 또 가서 보시면 됩니다. 오늘 혹시 기억이 안 나실까봐 핵심적으로 말
씀을 짚어드릴 것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분들도 있으시구요. 말씀을 아직 배우지 못 했는데
참석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듣고 나면 말씀 배울 때 더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시대 말씀을 잘 듣고 쭉 연결되어온 여러분들을 위해서 전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 2탄을 오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지난주에 말씀한 것은 ‘쪼개야 불이 붙는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영과 육이 존재해서 하나이지만 쪼개봐야 불이 붙는다.’ 고 했습니다.
이것을 성경적인 근거로 이야기했죠. 사람에게는 영과 육이 있는데 성경에는 영적으로도
두고 이야기를 했고, 육적으로도 두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쪼개서 봐야만 제대로 구원을 받
을 수 있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기억이 나십니까? 1시간 40분 동안 말씀을 전했습니다.
기억이 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핵심 먼저 전해드리고, 그 2탄의 말씀을 전해 드리도록 하
겠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52절 말씀에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흙
에 속한 자는 흙에 속한 형상을 입었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흙에 속한 자는 혈과 육입니다. 이 흙에 속한 자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도바울이 말을 했냐면 바로 고린도전서 15장 50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느니라. 또한 썩
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자, 썩는 것은 뭡니까? 육. 썩지 않는 것은 영입니다. 하늘나라는 영의 세계입니까?
그래서 썩지 않는 그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 말씀, “보
라. 내가 너희에게 이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
에 홀연히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
리도 변화되리라.” 했습니다.
이 두가지 말씀을 풀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팔소리에 순식간에 홀연이 변화되리니 다 잠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나팔소리는 무엇
을 말한다고 했습니까? 바로 시대 말씀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자는 더 이상 잠을 자
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그 말씀을 듣고 행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고린도전서 15장 52절
말씀과 같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바로 죽어있던 이 영혼이
육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인해서 이 영혼이 변화를 이루어요. 죽은 영혼이 살
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대 말씀을 들은 자는 그 육신이 변화를 받고, 그 육
신의 변화를 통해서 영혼이 변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일나무를 잘 키웠더니 열매가 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17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하늘로부터 친히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리니 그리하여 우리
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나팔소리는 어떤 나팔소리입니까?
천사장의 나팔소리입니다.
이제 과일나무를 다 키웠고 열매를 만들었습니다.
이 열매는 무엇만을 기다립니까? 따가는 것을 기다립니다. 주인이 자기를 취해주기를 기다
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대말씀의 나팔소리를 듣고, 육이 변화를 이루고
영이 변화를 이루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
니다. 그 주님의 재림, 마지막 천사장이 나팔부는 그 소리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맞고 우리
의 영혼이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동행하게 되죠. 그래서 이렇게 구분을 합니다.
과일나무와 열매가 있습니다. 과일나무는 시대말씀의 나팔소리를 말합니다. 열매는 천사장
의 나팔소리를 말합니다. 이건 어떻게 되느냐. 과일나무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다. 시대말씀
의 나팔소리를 통해서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는 건 맞습니까? 시대말씀의 나팔소리를 들은
자 만이 영으로 그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과일나무 열매 다시, 먼저는 시대말씀의 나팔소리를 육이 듣습니다.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영이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습니다. 쉬운 말로 하면 과일나무를 통
해서 열매를 맺는다. 또 다른 말로 하면 먼저는 육이 그 다음은 영이다. 이 땅에서 우리 육
이 먼저 구원을 받고 살아야 우리 영이 변화를 이루어 주님을 맞게 된다. 이 말을 다른 말
로 하면 과일나무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육신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받는 다는 말
입니다. 이제 핵심적인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과일나무를 통해서 열매를 맺는다.
바로 육의 사람인 주님이 보낸 자를 통해서 주님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일나무를 통해
서 열매를 맺듯이, 이 시대 영으로 오시고 보이지 않는 주님은 이 시대 보이는 자 바로 그
말씀을 통해서 만이 바로 주님을 온전히 맞이할 수가 있고 그 영혼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일나무의 열매가 열리면 주인이 과일만 딱 따가지고 갑니다. 나무
를 뿌리째 뽑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장에서 나무를 뿌리째 뽑아가지고 파는 나무 봤어요?
“과일사세요. 여기 사과 많습니다.” 50개 항상 한 상자라고 해서 봤더니만, 나무를 뿌리째
50개 뽑아서 파는 거예요. 그렇게 누가 하겠습니까? 열매만 얻으면 족한 것입니다. 그것이
맞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육신도 과일나무 뿌리째 뽑았다고 열매라고 하지 않듯이 우리 열
매 영혼만 주님이 취하시면 됩니다. 먼저는 땅에서 펴는 역사를 맞아야 되고, 우리 육의 구
원을 이루어야 되고, 그래서 구원하는 시대 나팔소리를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육이 듣고 행해야지만 영이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육의 사람을 이 땅에 보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알아듣고 주님의 뜻대로 살라구요.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세 때도 그러했다. 하나님은 그 육신을 쓰고 나타나셔서 심판
도 하시고, 복도 주셨습니다.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는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모세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서 홍해 바다를 가르고 신광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모세의 육신을 삼고 그 육신을 통해서 역사하셨다
는 것입니다. 그 육신을 구원하지 않고서는 그 다음 단계 가나안 복지로 갈 수 없었기 때문
에.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보내셔서 이 땅에서 이루는 종된 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오
셨다는 겁니다. 주님은 합당한 자의 육신을 쓰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하나님
이 보낸 자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셨을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내는 사람을 바로 그 시대 구원자로 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우리를 이 종된 몸에서 해방시켜 달라구요. 하나님이 오기
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서 오셔도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를 보냈어요. 모세가 하나님이 보낸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는 자이면 하나님이 보낸 자입니다. 맞습니까? 하나
님은 그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느냐. 바로왕이 절대 안 보내주잖아요. 그래서 재앙을 내렸죠.
마지막 재앙이 무엇이었습니까?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어요. 더 이상 바로왕은 참지 못하
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냅니다. 그런데 바로왕은 또 마병대를 보냅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어요? 홍해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이고, 하나님이 보낸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
엘 백성들을 종된 몸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됐습니까? 그가 말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된 몸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이기 때문에 그
가 말한 대로 역사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종된 몸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
다.
여러분, 예수님 때 구약시대 4천년 동안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낸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 때 유대인들은 단 하나 밖에 없는 유일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셨어요. 그가 메시야인지 아닌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종된 몸의 입장에서 아들의 입장에서 해방시켜 준 자, 그가 바
로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시대 유대인들처럼
되지 말라. 회칠한 유대인처럼 되지 말라.” 그 시대 유대인들은 많은 이유를 대면서 예수님
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오신 것을 나타냈습니다.
기적과 이적도 보이셨지만, 시대를 살리는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자만이 주
님이 메시야인 것을 알았습니다. 행함으로 변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행함을 보
았기 때문에 말씀으로 증거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은 절대 믿지 않았어요. 어떻게 사람이 메시야냐? 영이지. 영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수님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올 수 없다. 사람이 메시야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시고 인간을 변화를 시키셔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
대인들은 절대 믿지 않았습니다. 종교인들은 믿지 않았어요. 아니야. 정말 아니야. 아예 사
람으로 안 오셔. 그러니까 사람으로 안 오셔. 어떻게 나타나시는 줄을 모르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셔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보여주셨어도 알 수 없었고, 믿지 못 했어
요. 양심에 화인맞은 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이
보내시고, 주님이 보낸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제 때가 되어서 주님을 온전히 맞게 해주고, 우리의 아들 입장에서 섬기던 입장을 해방
시켜 주는 자가 주님의 보낸 자가 맞을 것입니다. 주님은 영이시라 직접 눈에 보이게 나타
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으로 구분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
고, 우리의 영혼이 변화되고, 그를 통해 주님이 나타나심을 보는 우리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보내신 자인지 아닌지 증거하게 됩니다.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과 양심으로 증거하세요.
또 하나는 말씀과 성령으로 증거하십니다. 먼저는 말씀을 주시고, 그 양심 가운데 성령 가
운데 역사를 하십니다. 밭이 좋은 자, 옥토받과 같은 자는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씨앗을 받
아들여서 반드시 결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성령
으로 증거합니다. 이 시대도 성령으로 증거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다시 오는 세상에서도 죄를 사함받지 못 한다.” 했습니다.
지금 오늘도 주님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우리가 깨닫지 못한 것을 성령으로
더욱 더 크나크게 역사할 것입니다. 이 성령을 거역하는 자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주님
을 간구하고, 내 마음을 더 비워내고, 하나님의 온전한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는 마음을 더 잘 다지고 또 우리의 마음을 자꾸 비워내는 그런 행위를 해야겠습니다.
이 시대 마찬가지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시대에 대해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이 시대가 인자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그는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그제서야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의 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다시 올 때는 어떤 징조가 일어나리라. 그리고 주님은 천국비유를 드시면서 신랑으로
오실 것을 마태복음 25장에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는 차원을 높여서 올라가게 됩니다. 지지
난주에 이런 비유를 들었죠. 하물며 집에 사온 강아지도 하루 대할 때, 1달 대할 때, 1년
대할 때가 다른데 사람이면 오죽하랴. 우리 인생이 살면서 한단계 더 차원높게 발전하지 않
는다면, 우리 인생은 사는 보람이 없습니다. 발전해야 됩니다. 도약해야 됩니다. 변해야 됩
니다. 자꾸 더 높은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면 메시야, 그냥 보내신 자, 하나님 영, 우리를 구
원하시는 자, 유일신, 이것만 만족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더 높은 단계로 사랑의 뜻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성경,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한 생명의 말씀입
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행하심을 증거한 말씀이 바로 성경말씀입니다. 구약 시대 예언을
신약시대 이루면서 그 때 이루던 것을 신약말씀으로 썼습니다. 이 때도 신약으로 말씀한 예
언을 이루면서 지금 이 때 성약 때 이루어 나가는 말씀들을 성경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증거해야 됩니다.
이 시대를 증거하고, 보낸 자를 증거해야 됩니다. 주님이 보내신 자를 증거해야 되요. 증거
는 어떻게 하는가. 육과 영, 왜 육과 영에 대해서 계속 말하냐면 육과 영은 하나지만 쪼개
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계속 말하는 겁니다. 맞습니까? 육과 영은 하나인데 쪼개야 되
요. 육은 육의 일만 할 수 있어요. 영은 영의 일만 할 수 있어요. 열매는 절대 자기 혼자 못
맺어요. 과일나무를 통해서만 맺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영혼도 우리의 육신을 통
해서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지만 쪼개서 보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이 육과 영이 한 몸에 존재하면서 각각 존재하지만 어떻게 나가야 하냐면 오직 한 목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만약 과일나무가 열매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 멋지게 잎만 꽃만 피는
데 만족하면 과일나무로서 뜻을 이루지 못 하죠. 목적이 열매가 되어야 해요. 최종 목적은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이 열매는 계속 과일나무가 자기가 맺어주기를 원합니다. 목적이 같
아야 되요. 하나이기 때문에. 이와 같이 우리 육신도 우리 영혼과 목적이 같아야 해요. 우리
영혼을 구원해서 남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목적이 같아야 되요.
한 몸에 각각 존재하면서 살아가지만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뜻을 펴나가는 겁니다. 영과
육이 같이 있는 게 나입니다. 이 두 개가 각각 한 몸에서 존재하지만 따로 존재해요. 이 두
가지가 똑같은 목적을 향해 가야합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이 두가지를 증거하기 위해서 이
시대 말씀을 전하는 겁니다. 과일나무를 잘 키워야 과일나무를 통해서 열매가 열듯이, 우리
의 육신이 이 땅에서 인생 100년을 살면서 시대 말씀을 잘 듣고 행함으로 변화를 이루어야
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증거해야 되요. 이것이 육적 휴거역사입니
다. 육적 재림역사를 우리는 증거합니다. 그래서 증거해야 되요. 가르쳐줘야 되요.
성경을 쪼개서 이렇게 명확하게 본다는 것을 증거해주지 않으면 두루뭉실하게 살아요.
어떻게요? 육신구원받겠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육신 구원해셔서 우리 육신 데리고 가겠
지. 육을 통해 영혼이 구원받고, 영으로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고, 주님을 영으로 맞이하는
것이 핵심교리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육과 영을 정확히 쪼개,되 하나로 이어졌다는 것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육적 재림역사를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영으로 오신 주님, 영적 휴거역사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역사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낸 자를 증거합니다. 육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듯이,
보낸 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
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니까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심이 아니라, 보낸 자에게 말
씀하셔서 그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 말씀을 전하는 자, 보낸 자, 그는 문입니다. 그 문을
통과해야 만이 그 집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모스 3장 7절,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
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역사를 그렇게 해오셨습니다. 예수님
은 못 믿는 제자 빌립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랑 이렇게 오래 함께 하였거늘 너는 왜
아버지를 보지 못하느냐. 왜 나를 보면서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 하느
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보낸 자를 통해서 이 땅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했죠?
만약에 예수님의 영으로도 역사하셨다면 왜 굳이 예수님을 보내셨을까요? 직접 강림하시면
되죠. 그것도 굳이 예수님의 영혼이 아닌 육신으로 보내셨습니다. 바로 이 땅 가운데서 역
사를 펴기 위해서입니다. 먼저는 육의 사람이니까 육의 사람이 구원받아야 영의 사람이 구
원받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봐야 됩니다. 들어야 됩니다. 행해야 됩니다. 그래
서 그를 통해 보게 하셨고, 듣게 하셨고, 행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두가지를 증거해야 됩
니다. 성경의 육적인 역사와 영적인 역사를 동시에 증거해야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할 말씀,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 두 증인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하나는 영적인 것
으로 보고, 하나는 육적인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셨습니다. 육으로 예수님 전
에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구약시대 때 하나님은 모세를 육으로 보내셨습니다. 두 감람나무
와 두 증인으로 역사하셨어요. 영으로는 하나님, 육으로는 모세였습니다. 모세 당세 때는 보
다 육적인 증거자 모세를 세우시고, 보다 영적인 증거자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복지로 가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맞습니까?
보다 모세 당세 때를 보면 하나님은 아론과 훌을 세우셨습니다.
보다 육적인 증거자 아론과 보다 영적인 증거자 훌을 세우셨어요. 여호수아 때는 보다 영적
인 자 갈렙과 보다 육적인 자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두 개를 가지고 역사하셨습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통일왕국시대에는 다윗과 솔로몬을 세우셔서
보다 육적인 자 다윗, 보다 영적인 자 솔로몬을 세우셨습니다. 이 둘은 내적과 외적으로 하
나님을 증거하며 그 시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갔습니다. 구약시대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은 보다 육적으로 모세를 세우시고, 보다 영적인 자 엘리야를 세우셨습니다.
사사시대 때를 보면 보다 육적인 자 삼손, 보다 내적증거자 기드온을 세우셨습니다.
이제 신약시대로 왔을 때 하나님은 영이시죠. 육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영과
육이 하나되어 증거하며 역사를 펴나갔습니다. 여러분, 이 때 왜 시대를 몰랐을까요? 영과
육을 같이 보지 않고 쪼개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오실 줄은 알았
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임하셔서 그를 통해서 역사하셔서 오실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하나
로도 보지 않았고, 쪼개서 저렇게 역사한다는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구약시대 때 계속 하
나님이 역사하시는 데도 믿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 때 보다 육적증거자 세례요한을 세우시고, 내적인 제자들 베드로를 세웠습니
다. 세례요한이 사명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을 세우셨습니다. 보다 내적인 증
거자, 외적인 증거자를 세우셔서 신약시대 부활복음 역사를 펴나갔습니다.
신약 시대 전체를 보면 육적으로 세례요한을 세우시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죠. 육적
인 자가 영적인 자를 받쳐주면서 증거하는 역사를 하게 됩니다. 항상 육적인 증거와 영적인
증거가 하나되지 못하면 역사가 깨집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뭐냐.
영과 육이 쪼개지면 역사가 안 일어난다는 거예요. 성경은 모든 것이 영과 육으로 되어있
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세상에 살 때도 사람이 영과 육이 쪼개지면 반쪽 밖에 못 이루는
데, 반쪽 이뤘다고 해서 반쪽만 구원받고 끝납니까? 아니요. 그냥 깨지는 거예요. 육을 통해
서 영을 구원하지 못 하면, 영이 구원을 온전하게 받지 못 합니다. 육이 영을 구원하지 못
하면 그냥 영은 끝납니다. 반쪽만 잘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영은 무로 사라지고 육신도 죽
으면 무로 사라지고 끝납니다. 이 육과 영을 같이 봐야 해요.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입니다.
이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깨지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쪽만 이루어집니다. 반
드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하나되어야 합니다. 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에 대한 예언이 나와있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
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에 주 앞에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들을 삼켜버릴 것이
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
늘을 닫아 그 예언하는 날까지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로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권능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재앙을 땅에 내리리라.”
이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하나님을 증거하고 시대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를 삼킨다고 했습니다. 그
불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을 보내실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을 보내실 때는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 말씀으로 심판하게 하시고, 그 말씀으로 다스리게 하십니다. 마치 모
세가 얘기했을 때 물이 피가 되었어요. 엘리야가 말했을 때 하늘이 닫혀서 비가 안 왔습니
다. 하나님은 권세를 주셨습니다. 보낸 자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보낸 자임을 알게 하기 위
해서 말씀을 줍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세 때처럼 구시대에 머물거나, 아니면 이집트처럼 10가지 재앙을 당하거나, 엘리야 때처
럼 여러 거짓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반드시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면 그와 같은 일
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증인은 그와 같은 능력과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
시대도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은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역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증거해야 되요.
그러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까 조금 있다가 이야기
를 했는데요. 하나만 이야기를 해줄께요. 그물망이 어떻게 되어있어요? 횡적으로 되어있죠?
이 상태로 고기가 잡힐까요? 종적으로도 그래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고기가 다 잡힙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횡적인 육적인 역사, 종적인 내적인 역사 두가지를 해서 역사를 펴십니
다. 절대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해서 역사를 하세요.
절대 육과 영을 같이 보고, 쪼개서 볼 수 있는 그 곳에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인생은 영과 육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절대 쪼개서 볼 수 없습니다. 어때요? 이 땅에
서 이루어져야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지는 것 맞습니까? 이 땅에서 내 육신이 구원을 받아야
내 영혼이 구원을 받는 거 맞습니까? 그러니까 어때요? 같이 증거가 들어가야 되요. 그러면
서 섭리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그 동안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땅에서
이루는 육적 재림역사와 예수님께서 천사장 나팔불며 재림하시는 영적 재림역사를 구분하지
못 했다. 이것만 절대적으로 구분하고 역사를 증거한다면 불같은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하
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확실한 말씀이죠.
우리는 이제 영적인 역사 동시에 온전하게 증거해야 됩니다. 그래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가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이 신부시대에도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세우셨습니다. 크게
보면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섭리역사입니다. 보다 자녀역사와 신부역사가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입니다. 그런데 이 신약역사가 성약역사로 딱 와서 받쳐줘야 되는데 하나되지 못 하고
쪼개졌어요. 그러니 따로따로 가고 있습니다.
차원을 높인다는 것은, 차원을 높여서 같이 가야되는데 가다가 끊긴 거예요.
만일 예수님 시대 때도 구약역사가 신약역사를 받쳐 주었다면 그 당세 때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거에요. 보다 구약말씀이 신약말씀을
받쳐주었기 때문에. 그러나 예수님 때도 그렇게 하지 못 했고, 이 시대도 보다 자녀역사에
있는 사람은 이 역사를 받쳐주지 못 했습니다. 쪼개졌습니다. 크게 보면 기독교와 섭리역사
예요. 작게 보면 전역사입니다. 그리고 섭리역사입니다.
전역사는 보다 세례요한의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증거하면서 영적으로 오는 것을 증거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해주
지 못해서 역사가 일어나지 못 했어요. 예수님 때도 세례요한은 분명히 하나님이 보낸 자인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 했어요. 예수님을 받쳐주지 못 했어
요. 그래서 예수님은 자체 내에서 세례요한 역할을 하는 사도바울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보다 외적으로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역사를 크게 보면 기독교, 작게 보면 바로 시대의 전역사가 이 역사와 하나되었을 때 불
같은 역사가 일어나는데,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하나되지 못해서 역사를 제대로 펼 수가
없었습니다. 고로 이제는 우리 안에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이것은
바로 외적인 증거와 내적인 증거가 동시에 들어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더 쪼개서 더 깊이
본다면 육과 영을 증거한다.
다시 정리할께요.
첫 번째, 보다 영인 예수님을 증거하고 육인 시대의 보낸 자를 증거한다. 두 번째 시대 보
낸 자와 주님을 증거할 때는 영 하나 육 하나만 보고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30년 동안 어
떤 역사를 해왔는지 육적인 발판도 증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성령의 역사,
말씀의 역사, 영적인 역사를 동시에 증거해야 됩니다. 오늘 성령집회 말씀 불이 타서 믿기
도 하지만 오늘 말씀은 보다 지난 말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해드린 겁니다. 이 터전 위에
서야 만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어요.
또 다른 차원에 보면, 하나님은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말씀과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절대 생명의 대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
다. 이제 우리 안에서 그 동안 해왔던 일을 본 자가 증거할 것입니다. 본 자 누구예요? 신
앙적으로는 제가 봤습니다. 육적으로는 본 자가 또 있습니다. 그가 증거할 것입니다. 그 증
거를 계속 해서 들으면서 우리는 보낸 자를 증거할 것입니다.
그러면 보낸 자는 누구를 증거하느냐.
보낸 자를 보고 주님이 그를 통해서 나타났으니까 그는 주님을 증거합니다 마치 비유를 들
면 다리오왕때 학개선지자가 있었어요 이 때 하나님은 학개선지자를 그 육으로 삼으셨어요
그시대 말씀을 전하고 싶은데 말씀을 학개를 통해서 전하셨어요. 그리고 육적으로 유다총독
인 스룹베벨을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사장 여호수아를 영적으로 내적
으로 증거자를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학개, 두 증인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다리오 왕 때 하
나님의 전을 세웁니다.
이 당시에 하나님께서 학개를 몸으로 삼으시고 말씀을 주셨어요.
이 말씀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증거를 했습니다. 보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보다 외적으
로 보다 내적으로 증거를 했어요. 이 수많은 백성들이 이 말씀을 다 따랐습니다. 이 수많은
백성들이 이 말씀을 다 따름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이 말씀을 학개서
1장 12절을 보면,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남은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그러면서 역사가 일어났던 겁니다.
하나님의 육으로 쓸 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밑에 두 증인을 보내십니다. 보다 내적인 증거자, 보다 외적으로 증거할 자를
보내게 하셔서 그 말을 다 듣고 따르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하나되지 못했으니까 이제는 이
안에서 역사를 편다는 것입니다. 보다 육적 사명자, 영적 사명자가 하나되어서 역사를 펴야
해요. 여러분은 여기서 보다 육적 사명자가 될 수 있고, 영적 사명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 짝을 이루어서 두 가지로 증거가 일어나면서 100% 역사가 일어나
게 됩니다. 영과 육, 예수님과 보낸 자를 증거하는 것, 증거하되 영적으로 육적으로 두 가지
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역사해야 반드시 역사가 일어나
게 됩니다. 이것을 말씀으로 쪼개보면 보다 육적인 구약말씀, 보다 영적인 신약말씀이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되어서 역사가 일어났어야 합니다.
이 시대 재림시대도 보다 육적인 신약말씀과 보다 영적인 성약말씀이 하나되어 역사를 이
루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 했기 때문에 이제 이 안에서 주님은 역사를 이루어 가
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 앞에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육과 영입니다.
이 육과 영이 동시에 역사가 일어나야지만,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좀
더 알기 편하게 말씀할 거예요.
우리는 주님을 맞아야 됩니다. 우리의 목적은 주님을 맞는 겁니다
주님을 맞으라고 중심자를 보내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 육이 주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면
영도 못 맞죠. 이같이 땅에서 사명자 주님의 육으로 쓰고 온 자를 제대로 맞지 못 하면 주
님을 제대로 맞을 수 없습니다. 모든 역사가 그러합니다. 먼저는 우리 육신이 주님을 맞아
야 하기 때문에 육있는 자 주님의 육이 된 자를 맞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세 비유를 계속 들었죠.
주님은 이 시대 육신의 사명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행하십니다. 이 역사 가운데 단 한번
도 사명자가 아닌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주님의 말씀은 준 역사가 없다는 겁니다. 있습니
까? 그러면 그가 메시야이게요? 그럼 그가 주님이 보낸 자이게요?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주님의 육이 되고 변화를 이룬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보낸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변화를 이룬 자입니다.
시대에 따라 하나님이 보낸 자를 맞느냐, 못 맞느냐에 따라서 구시대에 머무느냐, 새시대
로 나오느냐가 다 좌우됐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육을 통해
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보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절대 구시대를 벗어
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절대 말씀하셨죠. “내 말을 듣고 나 보낸 자를 믿어라.”
절대 보낸 자를 통해서 주님을 믿는 겁니다. 주님은 보낸 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에 선생님이 너무 오고 싶으시겠죠?
선생님께서 며칠 전에도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내가 정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싶은데 내
말씀 누구한테 전할까? 그냥 아무한테나 다 전할까? 내 말귀를 가장 잘 알아듣고 내가 원하
는 대로 말할 사람이 필요한 거다.” 했습니다. 오직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말 그대로
전해주고, 그 심정 그대로 나타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에게나 얘기를 하면 몰라요.
아무에게나 심정을 나타낸다고 알 수가 없습니다 .
그 말귀를 가장 잘 알아듣는 사람에게 나타내야 말씀을 잘 전할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쩔 수 없어서 보낸다. 육신이 자유롭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으니 육신 보내지. 내 영이 날라갈까? 날라가도 모르니까.”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영이 여러분 앞에 서서, “믿어라. 내가 주님께 받은 말씀 맞으니 믿어라.” 하셨어
요. 그런데 말씀을 하니까 느끼잖아요. 그냥 있으면 못 느끼잖아요. 예수님도 육신이 필요한
겁니다. 보낸 자를 보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보냄을 받은 자는 절대 보낸 자를 증거합니다.
보냄을 받은 자가 아니면 이 세상을 증거합니다. 제가 만일 이 단상에서 문성천 목사님이
나를 보냈으면 문성천 목사님 말씀만 전할 겁니다. 내가 삼성 대그룹의 보냄을 받았으면 여
기서 그 얘기를 하겠죠. 저는 선생님의 보냄을 받아서 오직 그가 한 말을 여기서 증거합니
다.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업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보냄을 받았다면 주님
이 원하시는 것만 증거하는 겁니다.
그 말씀을 받느냐. 여러분의 양심과 성령으로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증거해 주리라 믿습니
다. 옥토밭이면 받아들이리라 믿습니다. 보냄을 받지 아니하면 그 보낸 자의 행함을 알 수
가 없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언제 가시나? 우리는 몰라요. 말씀을 보고 압니다. 보냄을 받
은 자만이 주님의 행하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중심증인은 두 사람입니다.
육적인 자, 보다 영적인 자. 육적으로 영적으로 증거하게 됩니다. “너희들도 이 증거를 받고
더욱 더 이 시대를 증거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보다 섭리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섭리사에 보다 육적인 성전은 어디입니까? 월명동. 보다 영적인 성전은 나, 내가 보다 영
적인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가지를 가지고 섭리역사 가운데 큰 역사를 펼쳐나가십니다.
월명동을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두가지를
통해 증거할 때 보다 크나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바를 선생님을 통
해서 하셨잖아요. 선생님 밑에 두 증인 보다 육적인 증거자 월명동을 선생님의 육적인 증거
자로 삼으시고, 그리고 보다 신앙적인 자를 영적인 증거자로 삼으셔서 이 시대 역사를 펴나
가고 계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 증거를 받고 우리도 그와 같이 뛰고 달릴 때 시대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증거를 잘못하면 보낸 자는 잘못됩니다. 증거를 약하게 하면 보낸 자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증거를 영적으로만 하면 영과 육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깨져버리고 말게 됩니다. 증거하
는 만큼 이 복음으로 시대를 잡아나갈 수 있게 됩니다. 증거하라. 증거하라. 증거만이 살 길
입니다. 증거해야 됩니다. 변화된 것을 증거해야죠. 영혼이 있다는 것을 행함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증거하는 건 나타내는 거에요. 증거만이 이 시대 복음을 잡을 길입니다.
증거자가 증거를 약하게 하면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의 책임은 증거입니다. 듣
는 것은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이 책임을 온전하게 할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여러분은 시대의 증거자입니다. 시대 보낸 자는 주님의 신부이면서 이 시대를 증거할 사명
을 가지고 있습니다. 증거가 사명입니다. 증거가 권세이며 위력 능력입니다. 그로 인해서 빛
이 나게 됩니다. 그것을 해야 만이 주님과 보낸 자가 빛이 나게 됩니다.
여러분, 역사를 받고 싶습니까? 그러면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행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이 행
하는 것이 영 앞에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시대 말씀으로 거듭나는
행위를 해야 “내 영혼이 이렇게 거듭나는구나. 하나님이 이렇게 계시는구나.” 증거를 받게
됩니다. 주님이 이곳 가운데 역사하시나 어떻게 알아봐요? 내 육신이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고 주님을 찾아봐야 그것이 증거가 되서 내 영혼을 발견하고 주님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이와 같이 시대의 보낸 자도 증거, 주님도 증거입니다.
영과 육으로 증거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절대 불이 붙지 않습니
다. 오늘도 말씀 몰랐죠? 잠언으로 계속 말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이 말씀이 끝나면
200개 잠언을 다음 주에 보내줄 거예요. 그 말씀을 쭉 보면서 말씀공부 스스로 하셔야 합
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왜 공부하냐? 왜 배웠냐?”
하셨습니다.
여러분 답이 무얼까요?
너희도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되어서 이와 같은 위력을 발하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행해서 변화를 이루려 함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배우기만 하면 유식한 사
람이다.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배우기만 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 되냐면 새벽부터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듯 달려가라.” 했
습니다. 우리는 달려가야 됩니다.
알기만 하는 자는 모르는 자와 똑같다고 했습니다.
알기만 하는 자는 변화가 안 일어나요. 이런 사람은 모르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음식을 보
고 쳐다보기만 하는 사람은 음식을 안 먹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음식을 먹어야 알 수 있습
니다. 알기만 하지 말고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증인의 증거가 불충분하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갇히게 된
다. 고로 증거하라. 증거해야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고 갇힌 데서 벗어나게 된다.” 말씀하셨
습니다.
우리의 육신을 통해 행해야지만 우리 영혼이 갇혀있는 데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증거해야 만이 구시대에 있는 자들이 새시대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증거해야
만이 시대의 보낸 자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증거해야 만이 주님의 영으로 묶인 몸,
육신이 없는 서러운 그 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육이 되어줘야 된다는 거에
요. 섭리역사 30년 동안 주님이 무엇을 어떻게 행해 오셨는지 아는 자들은 증거해야 되겠습
니다. 그래서 모르는 자가 증거하도록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5년 동안 너무 부족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도 부족했고 하나님이 보기에도 부족했어요. 그런데 딱 제가 5년 되었는데
요. 주님께 기도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제가 딱 어떤 결심을 했을 때, 선생님이 저를 보
내셨냐면 제가 이 마음으로 정말 성령의 불을 받고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내가 이같은 역
사를 보고도 증거하지 않으면 나는 사나 사는 것이 아니다.’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이 행하시는 것을 매일 보는데, 저는 선생님께서 육적으로 행하시는 것보다 영적으
로 행하시는 것을 많이 봤잖아요. 말씀을 어떻게 받으셨고, 어떻게 행하셨고, 어떻게 주님
앞에 모셔왔는지 그걸 보면서 저는 생각했어요. ‘정말 살아있는 주님을 저렇게 모셔야 되는
구나. 저렇게 모시며 살아왔구나. 이와 같이 역사를 펴며 살아왔구나.’ 그래서 이와 같은 삶
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 시절 23살 때 다짐을 했어요.
주님 나를 보내실만한 하거든 내가 본 것만이라도 증거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
데 선생님께서 기도를 해주시더라구요. 너는 무슨 기도를 받고 싶냐고 저에게 물으시더라구
요. 몸도 아팠고, 집안 사정도 안 좋았고, 여러 가지로 기도를 많이 받고 싶더라구요. 그런
데 딱 한가지를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선생님. 증거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가서 증거
하겠습니다. 내가 증거하고 열심히 살 때 우리 가정도 잘 되게 해주시고, 나도 잘 되고 형
통하게 해주세요.” 그 기도 좀 해달라고 말씀드리고, 그 기도를 똑같이 받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때 “그러면 니가 가서 증거하라. 본 것을 증거하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족하지만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선생님을 증거합니다 너무나 많이 몸부림
을 쳤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리 봐도 주님을 못 느끼겠고 주님을 못 찾겠는 거예요. 선생님
을 통해 배웠을 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주님이 어떤 존재자인지
알게 되었고, 주님이 신랑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 영을 구원시키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증거 못 하
잖아요. 내가 그렇게 못 살았으니까요. 그러려면 내가 선생님을 증거해야겠더라구요. 그러면
선생님이 그 터전 위에 예수님을 증거해 줍니다.
그러니까 너무 간절히 그 마음이 이루어지더라구요.
저는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내가 시대를 증거함으로 부족하지만, 증인이 되어 시대를 증거
함으로 나도 잘되고 우리 가정도 잘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잘될 것을 믿습니다. 구원받는
게 가장 잘 된 거죠. 그래서 신앙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기준이 되다보니까 조금 신
앙이 부족하고, 동생들이 잘 깨닫지 못하더라도 이 섭리의 분위기로 가정이 다 가요. 이 기
준에서 따라오는 거에요.
덜 깨닫고 덜 믿었어도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저도 1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7년 또 7년, 주님 말씀대로 하니까 정말 잘 되는 거예요. 그러나 내 증거가 너무나 부족한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몸부림을 치는 거에요. 증거했을 때 내가 더 잘되는 것
을 알기 때문에, 그 증거함으로 인해서 내가 변화를 이루고, 내가 온전하게 주님께 속한다
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증거가 살 길입니다. 증거가 나를 살리고 시대를 살리고
보낸 자를 살리며 주님을 살립니다. 주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합니다. 증거만이 살 길입
니다.
그 시대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주님을 증거하고 믿는 자에게 주님은 영광의 주
님이 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아직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십니다. 벗어나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시대 주님도 증거
하지 않으면 안 되요. 말씀 가져다가 증거해야 됩니다. 성령으로 증거합니다. 영육 간에 증
거합니다. 저도 영적인 증거자로 더 온전히 증거하겠습니다. 증거가 빛이 나기 위해서.
여러분, 생명의 대역사는 증거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먼저는 중심자와 접붙여야 되요. 먼저는 과일나무입니다. 과일나무 통하지 않고서는 열매
만 따로 맺을 수가 없어요. 어떤 사람이 열매를 맺었어요. 이 열매만 계속 키운 거예요. 열
매를 키운다고 해서 열매가 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과일나무를 통한 열매입니다. 육을 통한
영혼입니다. 보낸 자를 통한 주님이십니다. 보낸 자를 통한 하나님이세요. 먼저는 증거자 ,
우리가 증거자가 되어서 보낸 자와 접을 붙여줘야 합니다. 그러면 그 보낸 자는 주님과 접
붙이는 일을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하나라도 말하는 겁니다.
해버릇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애가 타고, 애가 끓고, 하나라
도 가서 확실하게 증거하는 겁니다. 내가 아는 것을. 말 좀 버벅이면 어떻습니까? 내 마음
이 불이 타고, 내 마음이 온전한데요. 불로 역사가 일어나지, 말의 능력으로 역사가 일어나
겠습니까? 좋은 말 갖다붙인다구요? 말의 능력이라구요? 저는 좋은 말 갖다가 붙이는 것을
안 배웠어요. 저는 심정으로 증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진심으로 증거하는 법을 배웠습니
다.
저는 아직까지 선생님의 영상을 보면 딱 눈 하나 쳐다봅니다.
저 눈에서 얼마나 불이 나가고 얼마나 진실이 쏟아지는가, 그거 하나를 봅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불을 막 주면 내 말이 너무 멋있지 않아도 내 몸이 주체를 못하는 거에요. 불로 증
거를 하게 됩니다. 감동으로 진실함으로 증거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무엇으로 녹입
니까? 유창한 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그러한 확실한 증거를 가질 때 불이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겪지 않은 것은 증거할 수 없습니다. 보지 않은 것은 증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행함으로 증거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두 증인 이들에게는 원수를 멸하는 능력이 나가서 입에서 불이 나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증인이 된다면 여러분의 입에서는 불이 나갈 것입니다. 불이 나가는 대로
원수를 사르게 되고, 여러분을 해하는 자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여러분, 그 능력을 받으시게
되는 귀한 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신입생 보다, 어린 자의 말씀보다는 시대 접을 붙이고 사는 자들이 정말 알아
야 될 말씀이예요. 누구나 다 이 관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증거가 불충분하면 사탄에게 진다. 증거하지 못 하면 의
인이 악인에게 억울하게 당한다. 증거하지 못 하면 사탄에게 지고, 증거하지 못 하면 우리
가 악인에게 당한다.”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생님은 나는 행복하다고 하시죠? 물론 억울해요. 그러나 선생님 본인은 행복하다 하세
요. 사탄에게 안 지거든요. 왜요? 선생님이 왜 이렇게 되셨을까요? 그 증거 주님이 원하시
는 증거를 30년 동안 해오셨기 때문에. 그거 아니었으면 거기 계실 필요가 없어요. 그냥 기
성에서 말하듯, 구시대에서 말하듯 지금까지 외쳤다면 선생님께서 거기 계실 필요가 없습니
다.
그러나 주님을 온전히 증거하고, 주님이 오시는 것을 증거했기 때문에 거기 계시는 것입니
다. 달리 생각하는 자들, 본인이 한번 이 역사 속에 와서 행해보시고 선생님의 행함을 하나
라도 보고 말하라는 겁니다. 증거가 불충분하면 사탄에게 집니다. 의인이 악인에게 억울하
게 당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억울한 게 하나 있어요. 우리 제자들이 선생님의 마음과 같이
충만하게 이 시대를 증거해주지 못하는 거. 그것이 억울합니다. 그래서 악인이 의인을 해하
는 격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일을 우리는 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증거하지 못 하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를 괴롭히고 악평, 핍박이 있었다구요. 왜
우리가 그 앞에 가서 증거하지 못하는 겁니까? 우리는 힘을 내고, 힘을 받고, 제대로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증거로 시대를 나타낼 수 있고,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
니다. 그래서 대역사는 무엇이냐? 그냥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완전히 깨닫고 뛰는 완전한 한 사람이 있는 것이 대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500명이
한 곳에 있어도 시대를 제대로 증거하는 자가 없으면 그 곳에서는 절대 역사가 일어나지 않
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있더라도 시대를 제대로 증거하는 자가 있다면 그 곳에서는 역사가 일어
납니다. 제대로 깨닫고 제대로 증거하는 자가 대역사를 이루는 자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사탄 악인 불신자 행악자 배반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걸 너무 싫
어해요. 증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증거하지 못 하게 우리 마음을 괴롭히고 의심을
줘요. 힘들게 만듭니다. 나가서 전하는 것을 두렵게 합니다. 나는 온전하게 해도 자꾸 주변
에 나쁜 사람들로 인해서 나를 오해하게 합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
서 더 기도해야 되요. 주님께서 입술에 불을 주시게끔 해야 되고, 그 악인들을 주님의 뜻으
로 다 멸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들의 마음이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되요.
우리는 힘이 없잖아요. 주님 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행하는 것입니다. 증거는 사탄과 행악자와 마귀들과 배반자
들, 핍박하는 자들을 이기는 대무기입니다. 증거는 우리의 무기에요. 우리를 막았던 것? 그
동안 악평이 문제가 아니라, 악평으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을 위축시킨 것이 문제라는 겁니
다. 그러므로 증거하지 못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보낸 자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
게 하고 우리를 육적으로 살게 해요.
그러면 말씀을 들어도 어때요? 육적으로 들리죠.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씀하셔도 이해가 안 되요.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 건
지 저 말을 왜 하시는지 모릅니다. 왜? 기도하지 못 하고 육적으로 사니까. 그러니까 주님
은 자꾸 기도하게 하시고, 자꾸 성령받게 합니다. 제대로 듣게 하려구요.
그 동안 10년의 공백을 지금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하지 못한 것을
선생님은 다시 한번 더 글로 말씀을 보내시면서 제대로 정립하게 하시고, 그리고 성령으로
증거해서 제대로 깨닫고 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 주님께서 하십니다. 다 주님께서 그 보낸 자를 통해서 하신다는 겁니다.
증거는 할수록 할 것이 생각나게 해준다. 여러분 감사두요. 할수록 감사할 것이 생각나게
됩니다. 회개도 할수록 회개할 것이 생각나게 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세례요
한 주님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 했습니다. 증거자가 주님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하니까 그는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되었죠. 증거자가 죽으니 증거를 받는 자도 죽게 되었습니다.
증거자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증거를 받는 자는 똑같은 운명이 되요.
그래서 선생님이 “내가 오늘은 주 앞에 혀가 닳도록 배우면 내일은 몸이 닳도록 행한다.”
고 했습니다. 제대로 증거하지 못 함으로 역사가 깨졌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증거하
는 사명하려구요. 주님 몸이 되고, 주님 육신이 되어 살려구요. 오직 그거 하나 이루려고 살
았습니다. 주님은 육신이 죽어 이 땅을 떠나시면서 이 말씀을 하나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
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주님은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가셨어요.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사도바울은 옥에 갇혔죠. 증
거 못 했죠. 그 때부터는 글로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을 남겼잖아요. 그 말씀이 다
이 시대 휴거의 비밀, 주님의 재림의 비밀까지 난절하게 밝혔습니다. 증거자는 담대해야 됩
니다. 담대하게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
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거를 받지 아니
하노라. 나는 증거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역사가 깨진 것은 증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증거했는 데도 못한 것은 증거를 받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 감추인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왜 너희는 본 것을 증거하지 못
하느냐.” 하시면서 그 당시에도 그렇게 소리를 지르셨어요.
하나님과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바로 증거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의 뜻을 알고 있어야 되요. 믿습니까? 복음이란 주님께서 보내신 자를 통해 행하시는
겁니다. 그걸 증거하는 겁니다. 복음? 30개론? 주일말씀? 이건 복음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역사가 안 일어나는 거에요. 말만 전한다고 해서 복음이 아니라, 정말 주님께서
이 시대 사명자를 통해서 행하신 것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서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복음
이라는 겁니다.
30개론은 선생님이 주님과 함께 행하셨던 역사입니다.
20개론은 주님이 선생님과 함께 행하신 역사예요. 주님께서 다 하나하나 선생님이 행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걸 증거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믿습니까? 고로 우리도 하나의 말씀
을 전하려면 행하면서 전해야 됩니다. 이 정도의 기질은 가지고 있어야죠. 가만히 있으면
무슨 보람으로 삽니까? 그냥 말씀만 듣고 배만 부르고, 또 다시 옛삶으로 가고 변화도 못
이루고 도대체 그게 무슨 섭리사람입니까?
말씀으로 변화를 이루고, 말씀으로 주님을 찾아내고, 말씀으로 행함을 이루는 것이 그것이
섭리 사람이죠. 그것이 주님의 신부죠. 그래야 보람이 있고, 기쁘죠. 기쁘다는 보람과 이 중
심의 관을 다시 깨부수길 바랍니다. 우리 입에서는 사실 그 말이 나오면 안 되요.
“말씀 실천하느라 너무 힘들어요. 왜 말씀을 도대체 실천해야하는 거에요?” 그 사람은 일
단 섭리사람은 아닙니다. 섭리에 온 이유는 말씀으로 왔습니다. 말씀으로 변화를 이루고, 말
씀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해야죠. 이게 보람이죠. 그걸로 증거해야
죠. 그래야 보람이죠. 안 그러면 여기서 사는 이유가 뭐예요? 기쁨도 없어요. 보람이 없어
요. 세상이랑 매일 왔다갔다 합니다. 사는 보람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 정말 제대로 섭리인으로서 사는 보람을 느껴봅시다.
우리 얼굴 가운데 미소가 나오고, 그냥 얼굴 가운데 빛이 나는 그런 인생 증거함으로 변화
를 이루는 우리들의 인생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자는 이
구원의 역사에 못 들어오는 거에요. 왜 보낸 자를 증거하는가. 옳은 증거를 하기 위해서.
옳은 증거는 옳은 증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 옳은 증인만이 주님을 제대로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증인을 증거해 줍니다. 주님, 좀 제발 제대로 증거해달라
고. 믿습니까?
하나님은 이 창조의 세계를 다 이렇게 창조해 주셨어요.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뇌도 대뇌와 소뇌가 있죠. 이 뇌중에서도 영적인 뇌가 육적인 뇌가 있어서 영적인 뇌는 영
적으로 생각하게 하고, 육적인 뇌는 육적으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만 없어도 인생이 존재
를 못 합니다 .오른쪽 눈, 왼쪽 눈이 있습니다. 한쪽 눈이 안 보이면 제대로 못 봅니다.
한쪽 눈은 사물을 전체를 보는 역할을 하구요. 다른 한쪽 눈은 초점을 맞추는 역할을 해줍
니다. 그래서 한쪽 눈이 안 보이면 사물을 제대로 보는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보는 데
있어서. 그래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예요. 이와 같이 귀도 듣는데 있어서 두감람나무
와 두 증인입니다. 한쪽 귀를 막으면 잘 안들려요. 귀도 안들려요. 두 감람나무와 두.증인이
예요.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말씀도 육적인 땅에 속한 말씀과 신앙적인 하늘에 속한 두 가지 말
씀을 증거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확실히 알라고.
이와 같이 땅으로 보낸 자와 이 땅 가운데 영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증거를 동시에 해야 된
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예요. 이 땅에서 이루는 재림의 역사를 증거해야 됩
니다. 더하기. 영적으로 하늘에서 일어나는 재림역사를 증거해야 됩니다. 먼저 육적으로 땅
에서 하는 역사, 그리고 예수님이 천사장이 나팔불고 오실 때하는 역사. 그러나 근본은 예
수님이십니다. 육은 쓰시는 것 뿐이예요.
성경은 항상 영적과 육적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두가지를 항상 말씀하셨어요. 이것을 쪼개는 자가 주인이요, 주님이 보내신 자입니다.
그래야 구원을 제대로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는 영적으로만 전해요. 육적인
자는 육적으로만 전합니다. 그래서 하나되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말할 때 어떤 사람은 여자
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사람은 여자만이 아니거든요. 사람은 여자라는 이론은 맞아요.
1차적 이론은 맞지만, 실제적인 이론은 맞지 않습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기 때
문입니다. 사람을 논할 때도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논해야 제대로 사람에 대해서 나타낼 수
가 있습니다.
한쪽만 논하면 헷갈리고 모순이 생겨요.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을 쪼개서 말하듯이, 성경에 육적인 일과 영적인 일에 대
해서 쪼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증거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명에 불이 붙고, 말씀에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왜 그동안 예수님의 이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지 못 했을까?
예수님은 영이시잖아요. 계속 육으로 온다잖아요. 영이신데 육으로 온다잖아요. 육적인 것
만 계속 증거하잖아요. 영적인 것을 증거를 못 하잖아요. 예수님 영이시라서 영적으로 역사
하시는데, 육만 증거하면 역사가 되겠어요? 안됩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속 나타나셔서 역사하시는 거에요.
영만 쳐다보고 있는 거에요. 일어나요? 안 일어나요? 안 일어납니다. 두 가지 증거가 일어
나야 해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육신쓰고 역사하시면서 동시에 영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기
때문에, 영으로 육신쓰고 이 땅에서 역사하시잖아요. 영으로 육신쓰고 역사하시는 것이 맞
습니까? 그러니 두 가지를 다 증거해야 모순이 없고 헷갈리지 않습니다.
섭리사에 사는 많은 사람들 생각해 보세요.
기성에 있는 사람들, 시대의 보낸 자를 증거하면 못 온다고 하죠. 시대의 보낸 자를 증거
하면 왜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고, 그를 증거하냐고 하죠? 여러분, 어떤 사람은 시대의 표상
이 없어서 주님을 제대로 믿지 못 하고 주님을 버리는 신앙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도대체 영인에 어떻게 나타나셔서 저에게 역사하시는 겁니까?” 모르겠다고. 절대
적으로 예수님은 영으로서 육을 쓰고 역사하십니다. 두 가지를 온전하게 증거해야 모순이
없고, 헷갈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쪽만 증거하면 역사는 깨지게 되요. 모순이 생기게 됩니
다.
이와 같이 우리 영과 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만을 위해 살면 이 삶에 모순이 생기게 되고, 영만을 위해 살면 이 삶에 모순이 생기
게 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나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야지만, 모순이 없이 가치를 발하
며 빛을 발하며 살게 됩니다. 육적인 것이란 행하는 것입니다. 행해야 변화를 이루게 됩니
다. 그래야 모순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증거하듯이 이 시대에 육적인 증거자, 영
적인 증거자, 서로 의논하면서 서로 하나되어서 보낸 자와 주님을 증거해 드려야겠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 증거를 받으시고, 이 시대에 주님을 온전하게 나타내주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행해야 만이 뿌리가 깊고, 견고한 자가 됩니다. 어디 가서도 흔들리지 않아
요. 예수님 안 보인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순이 없는 역사가 일어나요. 믿습니까?
사람들이 한 가지 이론만 듣고 사니까 모순이 되어서 약한 신앙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약한 신앙을 하지 않으려면 영과 육이 온전하게 존재를 이루어야 합니다. 영적인 말씀과 육
적인 말씀이 주와 일체된 온전한 말씀입니다. 양단의 말씀을 딱 듣고 살아야 사탄이 틈을
못 누려요.
우리는 이 말씀을 증거해야 됩니다. 얼마나 많은 말씀을 전했어요.
육적 재림역사, 영적 재림역사 계속 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보냈
다. 보낸 자를 통해서 증거를 받는다.” 하시면서 엄청나게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 증거를
계속해서 잘 듣고, 우리는 양단의 말씀을 잘 듣고 우리는 사탄의 틈이 없이 살아야겠습니
다. 육적으로 증거하라는 말씀, 주님이 보내신 보낸 자를 증거하라, 영적으로 증거하라, 바
로 예수님을 증거하라, 또 다른 말을 한다면 육적으로 증거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육신쓰
고 보낸 자 그 보낸 자와 역사한 것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증거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낸 자를 쓰고 말씀으로 나타내신 것을 증거하
라, 이 땅 가운데 보이신 일들을 증거하라는 말입니다. 육적인 것, 영적인 것, 말씀과 행하
심을 같이 증거하고 보낸 자와 예수님을 같이 증거하고, 보낸 자와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같이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만 증거할 때 모순이 일어납니다.
그동안 우리 섭리사가 어려움을 많이 당했던 이유는 하나만 증거했기 때문에 .육적인 것
만, 선생님만. 예수님 빼놓고 선생님만 증거하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선생님을 쓰시고 예수
님이 나타나신 것을 증거해야 문제가 안 일어납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구원을 시키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이 천사장이 나팔 불 때 예수님이 오십니다. 그러려면 이 땅에서 육적 재림을
맞아야 합니다. 보낸 자를 맞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증거하면 사탄
이 틈을 못 타요. 그래서 우리 택한 자를 이 시대 가운데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다해야 되요 200개 잠언의 분량을 2일에 다 하려니 쉽지 않네요.
여러분, 잘 이해하고 계세요? 이 말을 혀로 다르게 돌릴 수가 없어요. 혀로 돌리면 잘못
깨닫게 되니까 그대로 주님이 말씀하신 것 그대로 소화해서 전하게 됩니다.
오늘까지 그러니까 말씀 잘 듣고, 잠언 받았을 때 다시 한번 이 말씀으로 공부하고, 교회
에서는 집중적으로 게속해서 가르쳐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자기가 직접 못 본 것이 있습
니다. 이런 것은 말씀의 자료나 본 자들의 증거로 증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 자는 제대로 증거해야 됩니다. 본 것만을.
자기 생각과 의지와 주관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오직 본 것, 온전하게 증거하는 것, 그거
하나를 증거해야 사람들도 그것을 따라서 증거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증거자는 신령한 기도
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보낸 자의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심정으로 전하
면서 불을 토하듯이 뜨겁게 전해줘야 됩니다. 여러분, 내가 불을 토해두요. 불을 사르지 못
하는 것이 많아요. 나부터도 불이 안 나가면 절대 못 살라요.
그래서 나부터 불이 되어야 해요.
내 심정에 불이 붙,고 내 말에 불이 붙어야 그나마 불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마른
장작은 부치죠. 젖은 장작들은 못 부칩니다. 불이 아니면 사를 수 없습니다. 불이 아니면 절
대 못 살려요. 내가 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기도를 하고, 보낸 자의 심정을 받
아야 합니다. 우리 이 때 섭리사로 온 모든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섭리사 가운데 세운 두 증인의 증거를 듣고 본인들도 짝을 지어서 보다 육적으로 영적
으로 사명자가 되어 둘이 나가서 외쳐야 합니다.
이렇게 만약에 역사가 일어난다면, 마치 바위를 깨는 기구에 넣으면 다 자갈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아요. 그와 같이 어떤 것이 들어와도 생명들이 다 깨집니다. 이 두가지 증거가 온전
하게 이루어졌을 때, 그래서 우리는 온전하게 증거하는 것에 딱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들이 이 두가지 증거에 다 녹아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강의할 때도 내
적 강의와 외적 강의를 쪼개면 확실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우리 섭리역사 어
떻게 해왔는지, 선생님에 대해서 보다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 축지해요.” 신입생치고 이 말 안 들어본 사람 있나요? 없죠?
이 말만 딱 하면 쪼개진 증거가 됩니다. “뭐야? 뭐?” 그래서 보낸 자라고 말이 안 되죠.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셨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지 어떻게 행했는지를 증거하는 겁니다.
작년 수련회 때 이야기를 하나 했잖아요. 예를 들어서 ,선생님 복수 고기집 갔을 때 숟가락
휜 일을 얘기해줬죠. 기억나십니까? 선생님께서 나 숟가락 휘었다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월
명동 말고 수련원을 지을 땅을 소개해 주겠다고, 이야기해주겠다고.
그 이야기만 하면, 그 사람은 숟가락 휘는 것만 보고 시대를 깨닫고 땅도 소개시켜 줬다
고? 이렇게 증거를 하니까 말에 모순이 있는 거예요. 선생님의 증거가 정확했어요. 선생님
의 증거가 정확했어요. 선생님은 숟가락을 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차력사가
아니니까. 그런데 주님이 역사하시면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을 그 때 하고 계셨어요. 그러면
서 숟가락을 딱 드셨어요. 주님이 역사하시면 이런 숟가락도 확 휜다고 했는데, 휜 거에요.
주님이 역사하시면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난다고 했을 때. 놀란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조금 더 이런 초인을 찾은 거예요.
그 당시에 선생님의 생각은 숟가락을 휘어서 그 사람을 녹일 생각은 전혀 없으셨어요. 말씀
을 가지고 녹이실려고 했습니다. 시대를 증거하면서. 그런데 이 사람이 행함과 말을 보면서
동시에 감동을 받은 겁니다. 그와 같이 주님과 함께 증거해야 빛을 발합니다. 따로따로 증
거하면 이상한 단체가 됩니다.
선생님 축지했고, 숟가락을 휘었고, 비행기가 날아가는데 그 비행기를 떨어뜨렸고?
어떠한 사연들이 있는지를 알지 않겠습니까? 20개론을 통해서 말씀을 또 배우지 않습니
까? 또 시대의 주일말씀, 수요말씀을 통해서 그 증거를 받지 않습니까? 선생님께서 기도했
을 때 왜 이런 기도를 했는지,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미리 증거하고 미리 말씀하셔서
우리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주님의 재림도 그와 같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믿고 따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신령한 기도를 하고, 제대로 된 증거를 하고 그 심정을 받아서 내 마음으로 증거를 하는
겁니다. 확실함으로 증거를 해주면 됩니다. 짝을 이루어야 되요. 짝을 이루어서 내적으로 외
적으로 증거해서 생명들이 녹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주 앞에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은 항상 짝이 되어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 하나님과 예수님
과 성령님을 그 보낸 자로 말씀함을 확실하게 증거하라고 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
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보낸 자를 통해서 나타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증거는 온
전히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을 증거하는 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사탄과 악평자들은 이 두증인을 막습니다.
이 두증인을 악평해요. 그래서 역사가 이 안에서 깨지게 됩니다. 아까도 학개 이야기를 했
죠? 하나님은 학개를 세우셨어요. 학개 혼자 안 되니까 유다총독이었던 스룹바벨을 쓰셨고,
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를 썼었어야 했습니다. 둘이 동시에 증거해 줬어야 했었어요.
모세가 신광야에서 기도할 때도 계속해서 아말렉 족속 물리쳐야 됐었잖아요. 그 때도 어떻
게 했어요?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손을 받쳐주지 않았습니까? 그 손이 내려가면 싸움에서
지고, 그 손이 올려가면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그 몸을 통해서 역사하시니까.
증거가 확실하게 외적 증거자 내적증거자가 받쳐줘야 하는데 안 되니까 보낸 자는 치지 못
하는 거에요. 계속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을 우리 삶 가운데서 칩니다. 이 두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하나되지 않았을 때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죠?
한겹줄은 약하다. 횡만 있으면 그 그물망에 절대 고기가 안 잡힌다. 종적인 줄이 가야지만
그물망에 고기가 잡힌다고 했습니다. 횡적인 것은 육적인 사명, 종적인 것은 영적인 사명,
이렇게 하나되어야 생명의 대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섭리사는 이와 같은 조직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항상 보면 싸웠어요. “선생님이 너를 세웠냐? 나를 세웠냐?” 아니예요.
우리는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입니다. 교회에서는 보다 목회자가 교역자가 두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되어서 목회를 함께 해나가는 거예요. 우리 캠퍼스 안에서는 간사랑 CL이 되
고, 교역자랑 간사가 될 수 있고, 다 두감람나무와 두증인 입장에서 하나되어서 역사를 이
루어야 하는데 서로 싸우고 하나되지 않고, 서로 맞다고 하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대마다 확대시킨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이 하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어요.
구약과 신약 전쟁이 일어났죠. 영적전쟁이 일어났죠. 예수님 돌아가셨죠. 천주교와 개신 기
독교, 루터칼뱅을 통해서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역사를 하셨습니다. 갈릴레이와 코페
르니쿠스, 두 감람나무와 두 증인으로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개신교를 받아
들이지 못 했어요. 그래서 죽이지 않았습니까? 피를 부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데 하나되지 못해서 피를 부르는 전쟁이 일어났
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전자 사명자와 후자 사명자 섭리역사도 하나되지 못 했기 때문에 너를 세웠냐?
나를 세웠냐?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하나는 내적사명자, 하나는 외적사명자, 우리 하나되
자. 내가 부족한 것은 네가 갖고 있고, 네가 부족한 것 내가 갖고 있다. 나는 오른눈, 네가
왼눈이 되어서 함께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를 보완해주고, 서로 싸주고, 서로 증거를
해나갈 때 온전한 역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물들이 다 얽히여 나가려면 하나되어 역사가 일어나가야 되요.
이미 전역사와 새역사 하나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 역사에서 이 안에서 내적, 외적증거
자가 하나되고 우리 모두가 각각의 위치에서 하나되어서 역사를 이루어 나가면서 영과 육을
쪼개서 증거해 나간다면 이 시대 불같은 역사 일어난다고 주님은 확실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육적역사는 육적역사로만 가고 영적역사는 영적역사로만 갑니다. 이제 하나의 목
적을 두고서 우리는 역사를 이루어야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전만 짓자고 하면 성전만 짓고 끝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몸된 성전을 함께 짓자고 해야 함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교회에서 보다
조직과 체계다, 한쪽은 생명의 역사다, 이게 하나되어야 보다 대역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모두 다 이러합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내적 사명자, 외적 사명자 적절히 배치시
켜서 하나될 수 있게 하는 것도 목회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두가지가 제대로 일어
나야 됩니다. 한가지로만 힘이 없어요.
육의 일은 영이 못하고, 영의 일은 육이 못합니다. 통해서 해줘야 됩니다.
하나되어서 역사를 이루길 바라겠습니다. 육적 사명자와 영적 사명자가 하나되어서 하나님
과 주님의 뜻대로 성령의 감동대로 행할 때 불같은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오늘 확실
한 비유, 학개의 비유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을 보내서 그 육을 쓰고서 역사를 하
면 육적 사명자들과 영적 사명자들이 하나되고, 밑에 받쳐주는 사람들이 다 하나되어서 증
거를 해줄 때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가슴아프셨던 것이 우리 안에서 하나되지 못할 때, 역사를 이룰 수 있음
에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우리 안에서는 하나되되
쪼개어 증거를 같이 하는 겁니다. 마음은 하나입니다. 목적은 하나입니다. 이 뜻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우리들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말씀 마쳤어요. 정말 긴 말씀이예요.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계속해서 당분간은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대
로 깨닫고 알 때까지, 마음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그래서 이번 성령집회는 보다
뜨겁게 기도하는 것도 있지만 벌써 10시에요. 보다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계속해서 알 때까지 행할 수 있도록 거듭해서
배우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의 육과 영을 절대 쪼개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함께 가되 반드시 육을 통해 영으로 간다. 보낸 자를 통해서 주님께 간다는 사실을 기억하
시기 바라겠습니다. 찬양 ‘임하소서 성령이여’ 찬양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모든 것들, 우
리의 생각들, 귀한 말씀, 이 말씀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요.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말씀 가운데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서 다시 한번 거듭나고, 새롭게 살아가는 우리들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깨닫는 것은 힘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주시고, 역사해 주시고, 은혜를 베
풀어 주십니다. 이 말씀이 확실하게 우리 마음 가운데 일어날 때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이루고, 꿈을 이루고, 우리도 힘들지 않게 육신이 난 보람을 누리며 최고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터전 위에 육신의 소원 영혼의 소원까지 다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겠습
니다. 오늘은 나를 위한 것보다 이 섭리역사 속에서 속해있는 나, 내가 왜 존재하는지 이
역사가 존재해야 하나님의 역사가 완전해야 내 육과 영이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이 터전 위에 내가 온전히 서고, 이 터전 위에 내가 주님의 뜻까지 온전히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목소리로 섭리인으로서 찬양
하고 섭리인으로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섭리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길 바랍니다.
-찬양 ‘임하소서 성령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