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1.09.24 (토)
계시말씀
- 선포일
- 2011.09.24 (토)
- 성경 본문
- 새벽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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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사 윈윈(win-win)의 정신으로
다시 대역사의 길에 오르자
작성일: 2011. 7. 7(목) 새벽 1:40~2:35
작성자: 정은조
[ 열심히 철야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전날
의 수요말씀 중 당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모두 나의 지체이니 서로 하나 되어라. 이 사람이
나의 뜻을 모르면 저 사람으로 전달하고, 저 사람이
나의 뜻을 모르면 이 사람으로 전달하니 지혜롭게
서로 위해 주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하나 되어 행하
여라.’
이 말씀이 생각나면서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라.
상대가 나 예수를 통해 감동받아 말하는 것은 아닌
지
늘 신경 써서 듣고 나에게 되묻고 의논하면서
그렇게 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너희들끼리 존중해 주어야 나의 뜻을 잘 찾아갈 수
있다.
절대 사탄이 틈타지 못하게 하여
온전한 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기도하거라.
서로 경쟁이 아니라 윈윈(win-win)이 될 수 있게
하여라.
모든 자 안에 나 예수의 뜻이 있다.
그것을 알고 상대를 인정해 주고 받아 주어라.
그가 내 뜻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함께해
주어라.
그가 그의 뜻을 이루는 것은 나의 뜻을 이룸이니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와 함께해 줌은 나 예수와 함께해 줌이
다.
섭리사에 이 윈윈의 정신이 참으로 부족해
많은 것들을 놓치고 가고 있고
시기질투의 영들이 끊이지 않는구나.”
하신 후 이어서 주신 말씀입니다. ]
* 예수님 말씀 *
나의 사랑하는 섭리사 신부들,
나 너희의 사랑하는 신랑 예수다.
너희들의 사랑의 기도에 숨 쉬는 예수다.
너희들의 사랑의 기도를 듣고 오늘 이 새벽도 숨
쉬며
나의 행복한 앞날을 내다보게 되는구나.
사랑한다 섭리사여.
너희의 사랑의 기도, 사랑의 행함이
진정 나의 섭리사를 존재시키고 유지시키고
나로 하여금 늘 희망을 품게 한다.
그리고 선생을 숨 쉬게 한다.
그런데 오늘은 더 멋진 섭리사,
더 큰 섭리사 이루기 위해
나 예수가 나의 신부들에게 더 큰 마음 가지라고
코치해 주고자 왔노라.
섭리사 크고도 큰 하나님 아버지의 역사이다.
그 크고도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 땅 가운데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만큼이나
인간의 완벽한 책임분담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그 책임분담이 온전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꽃피고 열매 맺고
그 차원에 해당되는 만큼 발전, 진보해 왔다.
지금은 이 섭리사의 꽃이요, 열매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막바지에 와 있다.
천년의 역사를 신부의 이름으로 장식할
성약역사의 시작이요,
나의 재림이 임박한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함이 요구되는 때인 것이다.
너희들의 온전함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온전한 사랑, 온전한 마음, 온전한 믿음, 온전한 실
천...
그 모든 것이 온전에 온전을 기대하는 때이다.
그래야 모든 것이 아버지의 계획대로
온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때에 너희들의 하나의 노력이 더 필요하
니
바로 하나 됨이다.
섭리사, 하나 되라는 말씀이 늘 말씀 가운데 나가지
만
왜 끊임없이 나갈까?
하나 되어야 할 상황이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이다.
각각의 파트에서 각각의 차원에서 하나 되어
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에
섭리사 끊임없이 하나 되라는 말이 나온다.
섭리사 하나 되지 못해
그동안 이루지 못한 것도 많았고
결국 2차 섭리로 차원을 달리해 이룬 것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낮은 차원으로가 아니라
보다 온전한 차원으로 나의 재림의 역사를 이루려
고 하니
이제는 온전히 하나 되자.
나 예수와 선생과 하나 됨은 물론이요
형제와도 온전히 하나 됨이 필요한 때다.
섭리사 형제와 하나 됨.
그 가장 큰 방해요소는 바로 시기 질투이다.
저 형제가 나보다 잘되면 어쩌나
늘 긴장 속에 살고 있구나.
상대가 잘되면 자신도 잘된다는 생각을 왜들 하지
못하는지
나 예수의 지체들이 늘 서로를 경계하고 있으니
나는 늘 온몸이 쑤시는구나.
온몸이 서로 눈치들을 보느라
좀 쑤시듯 여기 저기 늘 쑤신다.
서로 서로 긴장한 상태가 오래되어
터질 듯한 경직으로 내 몸이 자유롭지 못하구나.
나의 지체들이여, 서로 사랑하라.
나의 몸 된 자들아, 서로 사랑하라.
진정 사랑함으로 나의 사랑을 온전히 이뤄다오.
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여
서로 잘되기를 진정 간구하라.
네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진정 기도해 주고
서로를 위해 함께해 줄 수 있는 자들이 되길
나 예수 진정 원하노라.
각자 개성의 왕인데
내가 그 말을 아무리 일러도
섭리사 다들 같은 개성으로 왕이 되려고만 하니
같은 사명지에서도 각자의 파트가 있고
나 예수에게 필요한 부분들이 다른데
서로 같은 사명지에서조차
서로 경계하고 계산을 하고 있으니
섭리사 힘이 폭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섭리사 힘이 폭발하도록 하나 되어라.
상대가 잘되어야 나도 잘된다는 마음으로
서로 진정 잘되길 바라고 서로 도와주어라.
진정 이 마음을 품으라.
왜 상대가 잘되어야 나도 잘될까?
상대가 잘되어서 이룬 나의 뜻으로 결국
그 영향과 유익을 바로 자신이 받게 됨은
큰 눈을 가지고 크게 볼 수 있는 자만이 볼 수 있
다.
가령 어느 한 사람이
귀한 나의 말씀을 계시 받아 전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에게만 유익하겠느냐?
아니지 않느냐.
그 말씀을 듣는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 한 사람만 잘된 것으로 보니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다.
큰 눈으로 보아라.
상대의 잘됨이 결국은 자신의 잘됨이라는 것을 깨
달아라.
이 큰 이치를 깨달을 때
섭리사 나의 온전한 뜻을 온전하게 이룰 수 있다.
부디 섭리사 서로 윈윈하길 원하노라.
세상의 기업체들이 서로 득이 될 때 윈윈하지?
그러나 섭리사 서로 득이 될 때만 윈윈하려느냐?
짧은 눈으로 보아 또 소경이 되지 말거라.
당장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상대만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그 영향과 유익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온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섭리사 크고 장기적인 눈으로 보아라.
그러면 옆 사람이 잘되면 잘될수록
나에게도 유익인 것이다.
부흥강사를 보아라.
그 한 명의 잘됨으로 이 섭리가 얼마나 발전하였느
냐.
선생의 심정을 착착 맞추며
나 예수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
그 여린 몸으로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들을
다 해내고 있다.
처음에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나온 것 같아 보여
너도 나도 시기하고 질투하며
‘나는 왜 안 써주나, 내가 더 오래됐는데’했던 자들
지금 다 어디 있느냐.
섭리사를 작고 짧은 눈으로 보니
부흥강사의 출현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껴져
경계하고 도와주지 않고
하나 되지 않는 반대 행동들을 해
결국 선생의 뜻까지 저버리지 않더냐.
참으로 선생도 나 예수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선생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느라
나 예수도 선생도 부흥강사 자신도 정말 애썼는데
사람들이 몰라주고 하나 되어 주지 않으니
나도 선생도 부흥강사 자신도
결국은 섭리사 모든 자들도
마음 아프고 힘들어지지 않았더냐.
섭리사 부흥강사의 출현은
선생과 육으로 함께할 수 없는 이때
얼마나 귀한 가치이냐.
선생이 괜히 ‘조은’이라는 이름을 주었겠느냐.
진정 선생이 자신 있게 그를 만들어 내보냈는데
기존의 눈으로만 보니
기존의 관으로만 보니
섭리사 안에 있던 기성 같은 자들은
부흥강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더구나.
잘 깨달아라.
섭리사 안에 있어도 그 생각이 그 마음이
기성 같은 자는 기성인 것이다.
아직도 섭리사 안에 기성 같은 자들이 많구나.
그래서 섭리사 하나 됨을 방해하고 있구나.
그래서 오늘 이 말을 나 예수가 하는 것이다.
섭리사 안에서 기성 같은 사고로
나 예수의 역사를 막아서고 있지는 않은지
모두 자신을 되돌아보아라.
나 예수가 진정 행하려고 하는 새 역사에
본인이 섭리 연륜을 운운하며
선생과의 관계성을 으스대며
으름장을 놓으며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라.
그 누구도 나 예수의 섭리 연륜을 따를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나 예수와 선생의 관계성만큼 가까운 자
없다.
너희는 다 나 예수와 선생 앞에
신부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어라.
나 예수와 선생이 행하는 일을
누구를 통해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보아라.
자신을 통해 하지 않는다고 생각지 말거라.
다 자신의 자리가 있다.
자신의 자리에 있을 때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다.
그러나 자꾸 모두 같은 자리만을 원하고
눈에 보이는 드러나는 위치만을 바라니
섭리사 발전이 더딘 것이다.
사랑하는 자야, 오늘 이 말을 꼭 섭리사에 전해라.
기도하고 애쓰며 행하는
수많은 자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이니라.
부흥강사를 예를 들어 말했지만
어디 부흥강사의 예만 들어 이해가 되느냐?
기성이 선생을 대한 것은 어떠하냐.
선생이 새로운 나의 역사를 펴기 위해
이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왔을 때
기성이 하나 되었더라면
얼마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겠느냐.
그러나 그들도 마찬가지의 입장으로
선생을 인정하지 않았지 않느냐.
아직도 선생의 말씀을 위대하다고 하는 자들조차
선생을 도와 하나 되지 않고 있지 않느냐.
이 깊은 비밀을 깨달아라.
섭리사 진정 하나 될 때 온전한 나 예수의 역사를
더 크고 창대하게 이룰 수 있다.
대역사를 이룰 수 있다.
꼭 기억하거라.
부흥강사 한 명으로
이 섭리사가 얼마나 큰 영향과 유익을 누리는지.
선생 한 명으로
이 시대가 얼마나 큰 영향과 유익을 누리는지.
이것을 기억하면
지금 옆에 있는 네 형제가 잘되는 것이
너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해될 것이야.
선생이 세운 자가
때로는 온전치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를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진정 선생을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섭리사 그런 매너가 없더구나.
‘선생이 세웠는데 왜 저래?’ 하며
그를 불신하고 악평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를 세운 선생을 그리고 나 예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섭리사 나 예수가 세우고 선생이 세운 자
때로는 다 만들어지지 않아도 세울 때가 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않지만
그의 어느 면으로는 나 예수와 선생에게 합당하여
세울 때가 있다.
그러면 그것을 보지 못하는 소경 같은 자는
완벽하지 않은 면들을 지적하며
왜 저런 자를 세웠느냐며
나 예수와 선생에게 삿대질을 한다.
그러나 나 예수와 선생에게 절대 믿음이 있는 자는
나 예수와 선생이 그를 세운 이유를 알아차리고
나머지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도와주어
그가 진정 나 예수와 선생이 세운 파트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것이 하나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세워진 그만 쓰임을 받는 것이냐?
그에게만 유익이더냐?
그가 그 파트에서 세운 기준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가 그 유익을 받고 간다.
모델과 치어가 세운 기준은 무엇이냐?
사탄 앞에 나 예수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세상에서 아무리 유혹하고 데려가려고 해도
그들은 세상을 버리고 나 예수를 사랑함으로
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하늘 예술단이 되어
나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타락한 세상 문화에 흘러가지 않고
나 예수의 하늘 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사명자들이
되었다.
이런 모델, 치어 등의 예술단이 잘되는 것이
어디 그들만의 잘됨이겠느냐.
그들의 잘됨으로
섭리사 모두가 하늘의 문화를 누리게 되었고
사탄 앞에 기준을 세운 그 파트로 말미암아
섭리사 사탄으로부터 한쪽 면의 벽을 철저히 세웠
다.
각자의 길이 있고 뜻이 있고 사명이 있고 개성이
있다.
그러니 옆에 있는 한 형제 한 형제가 다 귀한 것이
다.
그 형제가 나 예수에게 어떤 면에서 필요한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도
너희는 나 예수를 믿고 선생을 믿고
기다려 주고 하나 되어 도와주어라.
그러다 그 형제가 자신보다 크게 되는 것 같아 보
일 때는
‘이로 말미암아 그 형제가 그 파트에서 세운 기준으
로
내가 영향과 유익을 누리는구나.’ 깨달아라.
참 지혜로운 깨달음이다.
그렇다고 형제들의 잘됨만 보고
가만있으란 말은 아님을 알지?
자신에게 해당된 나의 뜻을 찾아
자신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섭리사 너무 자신의 뜻만을 이루려 옆을 보
지 않기에
더 큰 역사 이루기 위해
나 예수가 오늘 이리도 길게 얘기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 지체된 사랑하는 신부들아,
서로 사랑해서
자신만을 보지 말고
옆의 형제도 봐 주고
서로 도와주며 도움 받으며
각자에게 주어진 뜻을 이루며
나 예수의 역사를 더 크고 창대하게 이루어 가자.
나 예수와 함께 ‘주와 대역사’이다.
그리고 옆의 형제와 함께 ‘주와 대역사’이다.
이것을 잊지 말거라.
섭리사 크고 큰 목표인 재림도
이렇게 서로 서로 하나 되어 도울 때 윈윈해서
혼자 할 때 보다 더 작은 힘으로
큰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상대의 잘됨이 나의 잘됨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분위기가
섭리사에 온전히 자리잡길 바라노라.
섭리사를 나 예수와 선생과 같은 눈으로
넓고 멀리 내다보며
크고 넓은 마음으로 크게 행동하며
나와 대역사를 이루자.
사랑하는 섭리 신부들 모두에게 바라는
나 예수의 마음을 전하노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