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09.26 (월)
계시말씀 882be822
- 선포일
- 2011.09.26 (월)
첨부 파일
- PDF
20110926 계시말씀_882be822.pdf
126.8 KB
자포자기
작성일: 2011. 8. 8.
작성자: 배수빛
[ 저녁기도에 늦어서 씻고 준비하는 시간부터 주님
을 찾고
기도했습니다. 다 씻고 기도하는데 주님이 “30분
늦었다.”
하셨습니다. “주님, 죄송해요. 지금이라도 할게요.”
말씀드리자 주님께서는
“섭리인들 중에 늦으면 아예 안 해버리는 자들이
많다.
늦게라도 하라고 너희 선생 통해 내가 일렀건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자 많다.
자포자기를 철학으로 삼고 있구나. 태반이다.” 하셨
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며 그렇게나 많으냐고 여쭈니,
“어떤 위기의 상황에 처해 보아라.
자포자기의 무덤 속으로 스스로 걸어가며
나와는 영이별을 고하는 자 많구나. 나는 싫구나.
끝까지 하는 자 너희 선생 보아라. 표상 보아라.
네 번 무너졌어도 내 마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
않았느냐?
네 선생을 배워라.” 하시며 말씀을 주셨습니다.]
* 예수님 말씀 *
나의 사랑아,
오늘 내가 이를 말은 자포자기이다.
섭리에 자포자기를
자신의 인생철학으로 삼고 사는 자 많다.
(“인생철학이요?”)
그렇다.
이들은 수시로 자포자기를
자신의 서재에서 꺼내
자포자기로 먹고 마시며
자포자기와 동고동락하는구나.
(“주님, 자포자기는 쥐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러면 죽음 아닌가요?”)
그래, 맞다.
사망이다.
(“왜 주님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주님 안쓰럽게 자포자기하는지요?”)
자포자기를 마치 주식(主食) 삼아 사는 자가 있다.
이는 거의 중독자다.
세월아 네월아 흘러라 하며
‘모든 것은 운명이다, 숙명이다.’
‘나는 안 된다.’
혹은 ‘나는 못났다.’
혹은 ‘나는 때를 잘못 타고 났다.’
혹은 ‘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기도 하다.
(“왜 이런 철학을 가지지요?”)
이러한 철학으로 자기 포장을 하여
자기 합리화를 하면
좀 덜 아프기 때문이다.
이런 자는 모든 화살을 남에게 던지기 십상이다.
자신은 의인이요,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재수 없게 이렇게 되었다는 식으로
남이나 사회에 대해서 독선적이다.
뭔가 자기 성찰을 통해 건전한 방식으로 회개하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포자기하는 자는 이런 아이러니를 갖고 있다.
알고 보면 자존심이 너무 세서
일종의 자기 성벽을 치는 것이다.
(“주님이 이들의 언 마음을 녹여
봄이 오고 잎이 피고 꽃이 펴서 열매 맺게 하실 거
죠?”)
나의 사랑아.
이들의 철학을 갈아엎자.
아직도 땅에서 자포자기를 일삼는
다수의 섭리인들 때문에
너희 선생 더 극한 옥고를 치르게 할 수는 없다.
이들이 놀라서 자포자기의 무덤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나의 말씀의 기수를 높이자.
(“선생님을 통해 귀한 극한 말씀을 주시겠다는 거
지요?”)
그래, 말씀이 약이다.
말씀의 안약을 넣어 보게 하고
말씀의 명약 몰약을 써서
그 병든 자, 38년 된 혈우병에서 벗어나게 하자.
(“자포자기 철학에 발을 담근 자, 몸을 담근 자,
목까지 담근 자,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자포자기가 자신의 머리에서 가슴에서 손과 발에서
완전히 지워져 삭제되어 있는 섭리인은
과연 얼마 안 보였습니다.
주님, 왜 자포자기를 달고 살까요?”)
위기에 처해 보면 안다.
섭리인들이 나를 찾기 보다는
그 어려움의 위압에 눌리는구나.
핍박이라는 해일이 오면
겁부터 먹는구나.
나를 불러 파도타기 할 생각을 안 하고
지례 겁을 먹고
핍박의 해일을 피해 도망갈 생각을 하는구나.
피할 생각, 숨을 생각을 하는구나.
그런데 어디로 피하겠느냐?
모래사장으로 숨겠느냐?
해일의 속도가 너희를 따라 잡지 않겠느냐?
왜 무서워하느냐?
섭리인의 자존심이 없느냐?
나의 애인인데 신부인데
왜 나의 명함을 손에서 힘없이 떨어뜨리고
숨고 피할 생각부터 하느냐?
섭리의 자부심을 가진 자여,
너희 가슴에 머리에 몸에 문신처럼 무엇이 있느냐?
내가 그려져 있느냐?
자포자기가 그려져 있느냐?
‘무서워, 무서워. 두려워, 두려워.’ 하는 자
정녕 나의 신부라 행세하지 말아라.
내가 내 신부 아니라고 피하고 싶구나.
내가 두렵구나, 내 신부라 할까봐.
마음을 펴라.
자신감을 가져라.
너희 손에는 내가 있고
너희의 자존심,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역사의 상황을 다 뒤집어엎은
너희 선생이 나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다.
너희 선생은 나의 자랑 나의 신부.
내 떳떳이 그로 나의 신부라 자랑하고 싶구나.
어려운 상황에 있으니
부끄러운 신부라고 내가 피하겠느냐?
그는 시대의 그 무거운 십자가 죄 짐을 홀로 지고
그 어떤 역경도 가벼이 여기고
오직 내 시름, 내 걱정, 나의 고민,
나의 눈물 한 올이라도 있는지
늘 내 마음 살피기 바쁘다.
관심, 진심이다
나의 사랑둥이들아.
너희 선생이 섭리에 불어오는
각종 해일보다 더 크고
태풍보다 더 억센
핍박과 환난에 삼켜져 버렸다면
역사는 없고 오늘도 없다.
고맙게도 그가 다 이겨줬기에
너도 나도 역사도 있는 거다.
나의 사랑들아.
너희 선생 옥고가 힘들지 않도록
제발이나 자포자기라는 죄 보따리일랑 벗어버리고
제발이나 내게로 달려오라.
어서 그 자포자기라는 글자를
너희 마음에서 몸에서 머리에서
싹 지워 버려라.
삭제해서 휴지통에 넣어 버려라.
‘이제 포기합니다.’라는 말을 감히
너희 선생에게 날려 보내는 철부지 섭리인들이여,
너희 선생 가슴에 그만 칼질하고
그의 눈물이 핏방울 되어
나의 가슴까지 후비지 않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그놈의 자포자기가 나타나지 않게 하여라.
너희 선생 피눈물이다.
불쌍해서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구나.
나의 사랑아.
섭리인들에게 고하여라.
자포자기와 이별식 하라고,
자포자기를 영원한 사망의 무덤에 장사지내라고,
오직 섭리인의 머리와 마음과 몸에
그 놈의 자포자기라는 그림자를 없게 하라고,
그리하여 영원히 섭리길 뜨지 말고 영원히 같이다.
나와 먹고 마시고 나와 일하고
나와 사랑하며
나와 모든 것 함께다.
나의 일손이 되고
나의 두 심장이 되어 주며
나의 자랑이 되어다오
나의 신부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