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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1.10.16 (일)

계시말씀 4489a15a

선포일
2011.10.16 (일)
성경 본문
새벽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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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버리는 이유 작성일: 2011. 7. 29 (금) 새벽 2:10 작성자: 주은혜 [ 주님과 대화하던 중 “주님, 사람들이 왜 신앙을 버리는 걸까요?”하고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신앙이 식는 이유, 신앙을 버리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첫째,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고 둘째, 사랑이 식었기 때문이며 셋째,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고 넷째, 나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이다. 다섯째, 성령을 유지하지 못함으로 사탄이 들어 왔기 때문이며 여섯째,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일곱째, 나를 체험하지 못함으로 곤고해졌기 때문이 며 여덟째, 스스로 신앙의 근본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아홉째,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며 열 번째, 지금 시대의 진리의 차원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고 열한 번째, 사랑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열두 번째 근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앙을 버리는 이유는 단 하나로 표현할 수가 없다. 너도 신앙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았느냐. (“있었어요. 많이요.”) 어떤 이유가 있었느냐. (“저는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한계를 넘는 것도 힘들고 환난을 넘기도 힘들고 해서요.”) 그래, 다양하다. 아무런 힘듦이 없어 보이고, 이유도 없어 보이는 자가 갑자기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왜인 줄 아느냐. 그 근본은 서서히 썩고 있었기 때문이지. 신앙은 너희의 생각으로 ‘유지’하려 하면 식는다. 신앙은 너희의 생각으로 더 수고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야만 발전할 수 있고 유지할 수도 있다. 시대도, 하나님의 역사도 점점 발전한다. 천국의 역사도, 육계의 역사도 서서히 발전하니 유지하려고 하면 뒤로 처질 수밖에 없다. 뒤로 처지면 상대적으로 나에게 받는 은혜가 작다. 나와의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나와 가까웠을 때 받았던 은혜와 차이가 생기니 사랑의 곤고가 생겨나게 되고 마음에 힘듦이 찾아오게 되며 그 때 사탄은 나타나 너희를 넘어지게 만든다. 지속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넘어진다. 사탄도 나와의 관계가 멀어져 타락하고 변질되었듯 나와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면 신앙도 버리게 되고 나에게 등 돌리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핵심은 나와의 관계성이다. 특히 신부의 시대, 신부의 역사 가운데에서는 나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와의 사랑을 유지하려고만 하고, 내가 부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자, 몸부림치지 않고 더 도전하지 않는 자는 뒤처지기만 할 뿐 나를 만나지 못한다. 나는 매일을 동일하게 역사하지 않는다. 아침의 역사가 다르고, 점심의 역사가 다르며 저녁의 역사가 다르다. 그 때와 그 시에 따라 너희를 대하는 모습이 다르 다. 그런데 너희는 늘 내가 동일한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대하는 자들이 많구나. 그리 대하면 나에 대해 오해한 고로 나와의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고 나에게 받을 것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깊이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때에 따라 차원을 높이는 나를 만나야 한다. 내가 원하는 수준과 차원에서 나를 두드려야 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너에게 대하는 것과 내일 내가 너를 대하는 것이 다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가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변하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 기대하는 것과,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은 기대 자체의 ‘차원’이 다르 다. 그와 마찬가지로 너희의 신앙의 성장함에 따라 나는 너희에게 거는 기대가 다르고 너희의 책임분담은 더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너희를 향한 기대와 너희의 책임분담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점점 신앙이 식게 된다. 삼위는 너희를 너무나 잘 안다. 갑자기 큰 기대를 하지도 않고, 너희가 이루지 못할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너희의 수준과 차원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데 도 너희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려는 속성, 안주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행하지 않고 고정관념 속에 너희가 좋을 대로 나를 생각하고 가 두니 차원도, 수준도 높아지지 않고 신앙의 뜨거움, 첫사랑도 서서히 식게 된다. 식으면 사탄이 온다. 식으면 변하게 되고 식으면 틈이 생긴다. 그러하니 너희는 절대적으로 나의 마음과 하나 되어 수준을 높이고 행함으로 따라오도록 하라.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심판 중 가장 큰 심판이 무엇인 줄 아느냐. 종교에 일어나는 심판, 즉 차원성의 심판이다. 종교가 가지고 있던 나와의 관계의 차원을 시대에 따라 서서히 높이면서 차원을 따르는 자는 나와 가깝게 됨과 동시에 따르지 못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톨릭도 심판을, 기독교도 서서히 심판을 받고 있지 않느냐. 각 종교들이 서서히 쇠퇴해 가며 내가 그 곳 가운데 존재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들은 계속 스스로의 자리에서 안주하려 한다. 더 발전하지 않으려 하고, 시대 진리의 말씀을 거부한 고로 차원을 높이려 하는 나를 놓치고 나 없는 빈자리만 지키고 있는 종교들이 되어 가고 있다. 무서운 심판이 아니냐. 내가 존재하는 곳, 차원을 서서히 높이는 나에게 맞춘 종교만이 이 시대 온전한 종교로서 살아갈 수 있다. 선생의 시대의 말씀을 들어 보아라. 그 말씀은 시대 차원을 서서히 높이는 말씀이요, 너희가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말씀이다. 계속 깊은 말씀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선생이 내가 서서히 높이는 차원을 끊임없이 좇고 있기 때문이며 너희도 좇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섭리사 많은 자들아. 너희도 스스로 차원을 따르지 못하면 넘어지고 쓰러지고 신앙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른 자의 탓, 나의 탓, 선생의 탓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시간 너희에게 정확하게 말해 주겠다. 나는 너희가 차원을 높여 너희와 내가 얼굴을 맞대듯 가깝게 되길 원한다. 그렇기에 너희의 위치를 계속 높이도록 말씀하고 역사한다. 너희의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말씀해 주는 것이 나의 책임분담이요, 따라오는 것이 너희의 책임분담이다. 따라오다 신앙을 잃게 되는 것은 너희가 온전히 너희의 수고와 노력을 하지 못한 것 이요, 그 책임분담을 하지 못한 것임을 알아라. (“주님, 하지만 섭리를 나가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잖아요. 꼭 차원성 때문만은 아니지요? 사람들 땜에 시험 들기도 하고 그래서 신앙을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모든 원인은 사랑에 있다. 사랑의 차원을 높이지 못해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섭리를 등지는 것이지. 이단 핍박을 받았다고 하자. 나를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만 식지 않는다면 6개월, 1년이 걸리더라도 그 핍박을 이기고 부활하여 나온다. 선생을 오해했다고 하자. 나와의 사랑이 온전하다면 먼저 나에게 기도하고 나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자들은 오해가 시작된 동시에 기도하지 않고 신앙을 버리려 한다. 그것은 나와의 사랑이 온전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겠느냐. 처음에 신앙을 할 때 나는 그 사람의 수준에 서서 모든 것을 주고, 함께해 주며 역사해 준다. 하지만 늘 그 차원에서 거할 수는 없다 아기가 처음에는 젖을 물고, 이후에 커서 걷듯 서서히 차원을 높이며 너희가 일어설 수 있게 돕고 한계를 넘을 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각각의 한계점이나 차원을 높이는 과정 가운데 스스로의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과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나를 떠나 버리려고 하는구나. 신앙은 쉬운 것이 아니다. 신앙길이 쉬운 것이 아니다. 월명동 돌조경이 무너지고 다시 쌓을 때 그 과정이 쉬웠겠느냐. 처음 돌을 세우는 것보다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가 무너뜨린 ‘신앙’을 새롭게 쌓기가 쉽겠느냐.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오르다 보면 나를 만나게 되고 영원한 세계를 보장받게 되는 것이니 기쁘고 감사하며 가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너에게 나만 바라보고 가다 보면 힘듦도 어려움도 쉬이 넘고 돌아보면 길이 되어 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신앙의 길은 그러하다. 정신없이 나를 좇아와야만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나를 놓치면 혼자라는 괴로움에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아. 너는 신앙을 놓치지 말아라. 내 마음을 가치 없이 버리지 말아라. 나는 참으로 많은 자들에게 마음을 주고 사랑을 주고 내 뜻을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내 뜻을 버리고 내 마음을 잃으며 내 사랑을 무시하며 자신의 길로 돌아섰다. 쉬이 등을 돌리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변질되어 나에게 칼을 꽂기도 했다. 그렇게 각각 신앙을 버리고 나를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뜻대로 행하고, 그 행한 대로 그 대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받을 무한한 행복과 부귀와 영원을 그들의 발로 차 버린 것이다. 너만은 나의 사랑을, 내가 너희에게 줄 축복을 버리지 말고 끊임없이 나의 성산에 올라라. 오를 때 과정 가운데 나를 만나고, 나의 축복을 받으며 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해. 나의 사랑의 차원을 따르는 너를 축복한다. 끊임없는 그 발걸음이 영원에 새기어져 너의 영혼의 길이 되고, 천국에 향하는 길이 되길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노니 이루어져라. 신앙이 너의 인생의 길임을, 신앙이 너희의 인생의 목적임을 잊지 않기를, 환란의 바람과 어려움의 바람이 불어도 너와 내가 잡은 손을 놓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너의 사랑 주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