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2011.10.18 (화)
계시말씀 4a509df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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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신부의 권세
작성일 : 2011. 8. 16 (화) ~ 8. 24 (수)
작성자 : 윤신원
[ 8.15 행사 후 자연성전 야심작에서 선생님을 위
해 기도하며, 야심작 같이 선생님을 증거하고
야심작 같은 생명들 전도할 수 있게,
예수님의 야심작 같은 계시 말씀을 간구하였습니다.
이후 선생님을 위한 40일 조건기도의 마지막 날이
되어
기도할 때 이 말씀을 조금씩 주셨습니다.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말씀만 받도록 간구
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는 내 신부야,
새 시대 새 생명이 태동하며 살아 움직이는
나의 섭리사를 사랑한다.
오직 신부의 생명이 잉태되는 모태 역사이다.
모든 만물에
그 시초가 되는 모체가 존재하듯이
이 시대 성약 역사의 모체,
신부의 모체는 선생이라.
나 예수와 사랑으로 일체되어
나의 사랑의 씨, 곧 생명의 씨를 받아
그의 모태에서 말씀으로 잉태시켰으니
곧 나 예수의 생명의 말씀이요,
사랑의 말씀이요, 시대의 말씀이요,
나의 신부들을 잉태시키는 말씀이라.
참으로 복되고 복되도다.
이 지구가 태와 같은 곳으로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지만,
더욱 근본으로는 신부의 모체,
선생의 모태를 통해서만
이 시대에 생명의 역사가 태동할 수 있다.
나는 신랑이나 신랑이 어찌
혼자 생명을 잉태하겠느냐.
나는 선생의 모태 없이
생명의 역사를 이룰 수 없다.
모든 신부들의 모체가 되는
나의 신부 선생이 있어야만
사랑의 역사도 이루고 나의 뜻도 이루고
생명의 역사도 이룰 수 있다.
만물의 창조 법칙을 보아라.
짐승이 짐승을 낳고,
식물이 식물을 낳고,
인간이 인간을 낳듯이,
신부가 신부를 낳는 것이
그 이치에 합당하다.
이 시대 섭리사의 나의 신부들이
모두 나의 신부이나,
신부의 모체가 되는 자는
오직 선생 하나뿐이다.
신부의 시초요, 신부의 본체요,
신부의 근본 모태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보아라.
순서에 따라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그 인간이 곧 아담이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된 첫 아담이었다.
그 이전에는 인간이 없었겠느냐.
선생이 가르친 대로
태초의 인간 아담 이전에도
인간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존재하였으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과 모양을 따라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창조된 태초의 인간은
오직 첫 아담뿐이었다.
인간 중에서 진화된 자도 아니요,
스스로 하나님을 깨달아 된 자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첫 인간이니라.
인간을 지으시기 이전의 만물과 짐승들은
인간을 존재시키기 위해 먼저 창조되었듯이,
첫 아담 이전의 짐승 같은 수준의 인간들도
첫 아담을 창조하사 그를 존재시키시고자
먼저 창조하신 것이다.
첫 아담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의 시초요 시작이었다.
아담으로부터 하나님이 사랑의 씨를 심어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시고자 하였으나
타락으로 인하여 모태가 되는 아담이 죽었으니
아담 안에서 모든 자가 죽었노라,
성경에 기록되었느니라.
후 아담 나 예수는 살리는 영이 되었으니,
나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다시금 이 땅에 생명이 잉태되도록
생명의 태를 여셨느니라.
첫 아담 이전의 인간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첫 아담이 다르
듯이
후 아담 나 예수 이전의 인간과
나 예수가 아예 다르다.
나는 성자 본체의 영의 몸을 가진 자요,
지상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나의 육신을 창조하셨으니,
나는 곧 살리는 영, 구원자, 생명의 주인 그리스도
라.
그리스도 나 예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모든 자를 살리었노라.
이제 나 예수가 약속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신부의 역사를 시작하셨으니 곧 섭리역사라.
선생 통해 말씀한 대로
짐승이 사람이 될 수 없고,
남자가 여자가 될 수 없듯이
자녀가 신부가 될 수 없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다.
하나님이 새롭게 신부를 창조하셨으니
첫 아담 이전의 인간과
첫 아담이 구분되고 다르듯이,
후 아담 나 예수 이전의 인간과
육신 쓴 나 예수가 구분되고 다르듯이,
신부로 창조된 자 선생 이전의 인간과
아예 처음부터 신부로 창조된 자 선생이
구분되며 다르다.
나 예수는 살리기 위해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자 본체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된 육을 입고 왔으니
나는 살리는 자요, 구원자요, 메시아요, 신랑이라.
시대가 나를 받아들이는 만큼
자녀로서 회복되고 살았으니,
나로 신약의 역사를 낳았도다.
하나님은 처음 것을 창조하시는 창조주시라.
처음 것이 창조되고 나면
다음 것은 처음 것에 의해 낳게 하시며
존재시키면서 역사해 가신다.
만물도 짐승도 처음 것을 법칙에 따라 창조하시었
으니
이후에는 창조주의 법칙과 순리대로
각기 종류에 따라 시초의 만물이
그 종류에 따른 만물을,
각기 종류에 따라 시초의 짐승이
그 종류에 따른 짐승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하나님은 섭리역사도
더욱 근본으로 운행하신다.
구약역사의 첫 아담,
신약역사의 후 아담 육신 쓴 나 예수,
성약역사의 신부 선생은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요,
각각은 각 역사의 모체요, 시초이다.
아담은 사망을 낳았고 구약을 낳았고,
나 예수는 생명을 낳았고 신약을 낳았다.
이에 회복된 역사가 되고 산 역사가 되었다.
그러하니 산 자의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시고자
사랑의 씨를 뿌릴 자 신부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신부 된 선생이
나로 말미암아 신부들을 낳았으며,
성약 역사를 낳았느니라.
그런데 만물이나 천사는
하나님의 책임 분담만으로 창조되나,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책임 분담을 부여해 주셨기에
인간은 인간의 창조에 대한 책임 분담을
하나님과 같이 온전히 이뤄야만
온전한 창조가 이뤄진다.
이것이 만물과 짐승과 천사와 다른
인간의 차이점이다.
(“왜 인간에게는 천사와 만물과 달리
창조의 책임 분담을 부여해 주셨나요?”)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함이며,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신부를 창조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신부를 목적하고
이 역사를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 중에서
창조의 책임 분담을 나눠 준 존재는 인간뿐이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창조의 책임 분담이 무엇입니까?”)
우주와 지구 만물과 인간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인간입니다.”)
인간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인간의 영입니다.”)
그래. 맞다.
인간이 영이 있기에
나의 말귀도 알아듣고 나와 교감하며
나와 대화도 하고
나를 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인간에게
자기의 영을 완성시킬 수 있는
창조의 책임 분담을 부여해 주었다는 것이다.
나의 말씀을 통해 나와 사랑으로 교감하며
육신을 통해 영을 완성시켜 나가게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첫 아담이
그 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부가 될 수 있도록
창조의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아담 이전의 인간과 첫 아담이
구분되고 다른 것이다.
그 말씀이 없이는 아무리 인간이라 해도
스스로 인간 창조의 책임을 할 수는 없다.
오직 첫 아담에게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며
그 영을 완성시키도록 창조의 말씀을 주셨다.
그 첫 말씀이 창세기 2:17에 나온 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생명의 말씀이요, 사랑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아담이 그 생명의 창조의 말씀을
타락으로 깨뜨리니 그 영이 곧 죽어
사망권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담 이전의 인간들은
아직 짐승과 같은 수준이라서
남녀가 사랑하였어도
그것을 타락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담을 기준으로
사랑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은 것은
타락으로 곧 죽음이었다.
인간 창조 능력의 근본이 되는
그 말씀의 씨를 품고 아담이 죽었으니,
아담 안에서 모든 자가 죽었으며
아담 안에서 모두 구약 사망권에
갇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자신의 영을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신을 온전하게 완성시키지 못한
첫 아담의 책임이 그 얼마나 큰 것이었더냐.
사람도 자기가 사랑하며 평생 살 자를 택하는데
신부가 로보트처럼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놓고
사랑하며 사는 자가 있더냐.
자기가 사랑하며 살 자에게
사랑의 씨를 뿌려 주고
신부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으면
그 때 평생 사랑하며 살 것을 약속하며
혼인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나 예수를 보내시어
다시금 생명의 태를 여신 것은
구원만을 목적하심이 아니요,
오로지 나의 재림을 맞는
성약의 신부 역사를 위함이요,
죽은 영을 살리어
신부의 생명의 태를 여시고자 함이었다.
선생을 보아라.
선생에게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랑의 말씀이 떨어졌고,
선생은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의 책임을 다 하여
신부로서 온전히 창조된 자가 되었다.
어리석고 무지하고 교만한 인간들이
선생의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선생이 사명이 끝났
다,
선생 대신 자기가 새로운 사명자다, 하였으나
언제 나 예수가 그들에게
신부로 창조될 수 있는
첫 사랑의 말씀의 씨를 뿌렸더냐.
오직 선생에게만 주었으니
그 말씀의 씨가 선생 속에서 자라고 자라서
지금은 너희를 신부로 변화시켜 만들어 주는
말씀이 되어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의 첫 근본은 여호와 하나님이요, 나 예수
라.
그리고 그 말씀으로 창조된
첫 신부는 선생이요,
선생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그 말씀이 선포됨으로
인해서
너희가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말씀의 씨를 뿌려 주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책임 분담을 다하며
이 말씀으로 자신을
신부로서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여호와 하나님과 나 예수가
창조적 말씀을 주지 않으면
아무도 스스로 인간 창조의 책임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선생과 너희가 근본으로 다른 것은
선생에게는
나 예수와 여호와의 사랑의 창조의 말씀이
근본으로 떨어져 열매 맺은 것이요,
너희에게는
나 예수로 말미암아 신부의 첫 열매가 된
선생을 통해서
신부가 될 수 있는 창조적 사랑의 말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진실로 신과 같다.
선생을 통해서 주는 주일, 수요 말씀이
그 얼마나 귀하고 귀한지 정녕코 깨달아야 한다.
오직 창조는 신의 영역이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이요, 권세다.
그런데 선생에게 주신 말씀으로
선생에게 신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 권세는 곧 창조의 능력이요,
그 능력은 곧 인간 책임 분담이라.
선생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창조의 책임을 다하여
신부로서 온전히 창조된 자요,
권세 있는 자라.
그리고 선생을 통해
신부가 되는 말씀을 듣고 따르며
나를 신랑으로 영접하는 자에게도
나의 신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로 약속하셨으니,
이것이 첫 신부 된 선생의 권세요,
선생을 통해 쏟아 주는
위대한 창조적 말씀의 능력이다.
(“그러면 예수님, 요한계시록 22:14에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 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
다’
하셨는데 이 때 말씀하신 '권세’가
신부가 되는 권세를 말씀하신 것인가요?”)
맞다.
생명나무는 나 예수요,
문들은 선생과 나 예수요,
성은 신부를 위해 예비된 천국의 성이요,
오직 신부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으니,
그 성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는
신부가 되는 권세를 받아야만 할지니라.
그 권세를 받으려고 두루마기를 빠는 자는
복이 있다 하였으니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시대 말씀을 통해
온전히 근본 행실을 회개하며
신부로 단장하는 것을 말한다.
신부가 되는 권세를 받고자 하는 자의
첫 행실의 열매는
온전한 회개가 되어야 할지니,
반드시 신부가 되게 하는
선생을 통해 주는 말씀을 통해
근본의 사랑에 대한 회개와 고백으로써
나아와야 할지니라.
또한 신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온전한 신부가 되도록 창조적 책임분담을
100% 온전히 행해야 할지니라.
첫 아담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되고,
하나님께로부터 창조의 말씀을 받았어도
인간에게 부여된
창조의 책임 분담을 못하고 타락함으로
영이 죽었다.
즉, 처음부터 인간은 신부로서 목적하셨는데
신부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자가
책임 분담인 온전한 사랑의 조건을 세워 드리지 못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한 신부로 완성될 수 없는 것
이다.
이 지구라는 태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완성급, 천국급, 상대체급의 신부는
오직 선생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의 창조 책임과 신부의 대상으로 창조된
선생의 책임 분담이 완전히 100% 이루어졌기에
신부가 창조되었으니 참으로 귀하고 귀하도다.
모든 뜻을 회복시키는 자,
모든 근본의 온전한 사랑을 회복시키는 자로다.
선생의 모태를 통해 모든 생명의 역사,
신부의 역사가 태동하는 것이로다.
지금도 나와 선생의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으
니
섭리사에 나의 신부된 자들의 생명이 끊임없이
태동하고 있노라.
섭리사에 아무리 나의 신부된 자들이 있어도,
신부의 모체 된 선생이라는 모태가 없으면
역사는 일어날 수 없다.
섭리 역사 모든 신부들과
앞으로 섭리사에 올 모든 신부들은
선생이 나와의 사랑으로 낳은 자들이다.
선생 통해 주는
말씀의 양식을 먹고
말씀에 따라 순종으로
자신을 부지런히 만드는 책임을 다해야
온전한 신부로 완성된다.
이 섭리사에 있는 모든 자들은
선생이라는 태 속에 있다.
부지런히 신부로 성장되도록 말씀을 받아먹고
자신을 말씀에 따라 만들어라.
그것이 너희의 책임 분담이다.
나 예수와 선생의 사랑이 날마다 깊어지고,
사랑의 차원이 날마다 깊어지니
말씀의 차원이 날마다 깊어지고 있다.
또한 말씀의 차원이 깊어지고 사랑이 깊어지니,
차원 높은 생명의 역사도
끝없이 일어나고 있다.
나와 선생이 낳은 신부들을
지구라는 태가 품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도 없이 수많은 나의 신부가
잉태되어 지구 태에서 자라고 있노라.
모체가 선생이며
사랑의 씨와 근본이 나 예수니
선생과 나 예수를
시대 말씀으로 증거하고 전하여라.
따라오는 자,
그 말씀에 일체되며 선생과 일체되는 자를
찾아서 데려오면 된다.
선생과 일체되지 않고
선생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지 않는 자는
선생의 태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니,
즉 신부가 아니라.
전도가 어려우냐,
전도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네가 생명을 낳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 시대 새 생명을 낳는 근본자는
나 예수를 통해 선생만이 하는 것이다.
선생을 증거하여라.
근본된 나 예수와 더불어 증거하여라.
그러면 길 잃은 새끼가 제 어미를 찾아 반기듯이
선생을 반길 것이요,
배고파 우는 젖먹이가
제 어미의 젖을 물린 듯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며
착 달라붙을 것이다.
이것이 새 역사, 새 생명, 새 말씀이다.
나의 재림을 맞도록
신부를 준비시키고 단장시키는 역사요,
나의 재림을 맞는 역사다.
모두 근본으로 다시 배워 알고,
시대를 깨닫고 역사를 깨달아 알며,
온전하게 신부로 단장하여라.
그리고 지구라는 태가 품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신부들을
나와 선생의 사랑과 말씀의 젖과 꿀이 흐르는
섭리사로 속히 인도해 오기를 원하노라.
지구라는 태가 생명을 잠시 품고 있으나
근본으로 선생의 태 속에 들어와 일체되지 않으면,
태아에게 제때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아 죽듯이
결국은 죽고 만다.
이제 재림으로 인한
환란의 극심함이 더욱 시작되리니
속히 선생을 증거함으로써 권능을 행하여
나의 마지막 재림을 준비하라.
나를 근본으로 선생을 담대히 증거할 때
너를 통하여 그 권능이 네게 임하리라.
진실로 사랑한다.
정녕코 속히 오리라.
신랑 예수.
선생님께서 결재 해주시면서 덧붙여 주신 말씀입니
다.
“신약은 아들 권세, 성약은 신부 권세.
하나님 말씀을 받은 자 신이라 주님 말씀하신다.
태초에 바울은 창조했다. 예정했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