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10.29 (토)
계시말씀
- 선포일
- 2011.10.29 (토)
- 성경 본문
- 로마서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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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나와 함께
육의 생각은 없애고 영의 생각으로 살아라
작성일: 2011. 9. 15. (목)
작성자: 이선진
[ 육을 중심하여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고
영을 중심한, 주님을 중심한 생각을 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간구드렸을 때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는 자야,
오늘은 육을 중심하고 영을 중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아보자꾸나.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의 생각 곧, 세상을 기반으로 둔 생각,
사탄에게 주권을 빼앗겨 버린 생각,
이 생각으로는
나의 생각을 가진 자들, 영의 생각을 가진 자들과
부딪히고 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너와 나 생각의 교류가 일어날 때를 생각해 보아라.
먼저 네가 나에게 너의 생각들을 말하면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답변해 주는 것으로
생각들을 교류하지 않느냐.
너와 나의 생각들이 다를 때가 많았느냐
같을 때가 많았느냐.
(“다를 때가 많았어요. 주님.
‘주님도 이렇게 생각하시겠지.’하고 여쭤 보면
전혀 다른 생각을 말씀해 주신 적이 많았던 것 같
아요.
저의 나쁜 특성 중에 이러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머릿속에 어떠한 생각들이 떠올랐을 때
여쭤 보지도 않고 맞는 생각들이라고
조급하게 인정해 버리고 싶은 경향이요.
그러다가 주님 생각도 아닌데
스스로 낙심, 좌절해 버리고 괴로워하고
포기해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인간이란 자기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려운 존재인 것 같아요.”)
그것이 바로 육의 생각의 틀이다.
어째서 인간들이 여기에서 벗어나기가
그리도 힘든 것인지 말해 줄 터이니
너는 집중하여서 받아라.
이 틀에 대해 비유를 들어 주자면
마치 물고기들이 들어 있는
어항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구나.
태어날 때부터 어항 안에서 태어난 물고기들에게는
그 어항이 세상의 전부다.
감히 이 어항 이상의 세계가 있다고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처럼 이미 사탄에게 주권을 빼앗겨 버린
세상 속에 태어난 인간들의 처지가
이와 같이 이러하다.
세상 속 인간들의 사고를 보아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영을 경시하고 육을 중심하고 있지 않느냐.
‘육 중심’ 어항 속에 ‘육 중심’ 물고기들이로다.
(“이 생각의 틀에 대해서
더 깊이 말씀해 실 수 있으세요?”)
놀이공원에 가면 롤러코스터 놀이 기구가 있지 않
느냐.
만약 한 사람이 이 놀이 기구를
계속해서 타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틀 안에서만 타고 있는 것이다.
그처럼 한 사람의 사고의 틀은
그 스스로가 깨뜨리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만 고쳐지고 변화될 수 있는 것이
다.
(“그 놀이 기구를 타는 사람은 틀을 바꿀 수 없지
만
그 놀이 기구를 만들고 수리하는 사람은
그 틀을 바꿀 수 있듯이 말이에요?”)
그래. 자신의 틀이 맞다 하며
고쳐짐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생 동안 고쳐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주관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맞든 맞지 않든
스스로는 맞다고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이다.
(“저는 요즈음 자기 주관이
자기 파멸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았어요.
자기 주관이 제 자신을 너무 해치고 낙심하게 만들
어요.”)
그래서 선생이 너희에게 그토록
자기 주관을 버려야 한다고
빈번하게 말씀을 통하여 얘기하지 아니하였느냐.
선생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면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아무리 맞는 생각이라 판단되는 것들조차
하나하나 다 나에게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물어보는 과정 가운데
나에 의하여 그 틀이 깨어지기 시작하였지.
(“주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육의 생각의 틀은 한 번 부셔지면
계속 영의 생각대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인가요?
선생님은 왜 자기 주관의 틀이 깨뜨려지셨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하루의 첫 시작부터 끝까지
주님께 하나하나 여쭤 보시는 것인가요?
주님께 굳이 안 여쭈어 보셔도
모든 생각이 다 영의 생각, 주님의 생각 아닌가
요?”)
사랑아,
육적 주관은 마치 마음 밭 속의 잡초와 같다.
아무리 잘라내고 잘라 내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나는 것이 육적 주관이다.
사탄의 영적, 육적 환경 속에 살고 있으면
그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잡초 같은 육적 주관이 금세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처럼 그날그날 자라나 있는
육적인 주관을 잘라 놓고 하루를 시작함이 중요하
다.
(“주님, 그러니까 ‘마음이 비워졌다.’라는 말은
딱 그날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그 다음 날에도 다시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선생님께서 항상 이와 같이 살고 계신 것이지요?”)
그래.
선생은 그 전날 아무리 마음을 비웠을지라도
그 다음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마음 밭에 자라나 있는 육적인 주관들을
싹둑싹둑 잘라 내어 버린다.
그렇게 선생은 매일매일의 인생을
육적 주관과의 싸움이요 전쟁으로 보고
싸워 이겨내 온 것이었다.
그렇게 나와 함께 매일매일 산 밑에서부터 출발해
산 정상에까지 오르내린 것이었다.
그처럼 너희도 하루 잘했다고
바로 긴장 풀고 방심하다가 사탄들에게 당하지 말
고
선생처럼 매일매일의 인생을
시작과 끝으로 보고 살아라.
새벽부터 일어나 나와 함께
너의 육적 주관을 없애고
하루 종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자.
그리하였을 때 날마다 나를 맞이하며
휴거되는 인생을 살게 되어
결국 그날에도 나를 맞이하여
저 천국으로 휴거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주님, 한 가지만 더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매일매일 초심으로 정말 잘하고 싶지만
저희는 아직 육적 근성이 남아 있고 약한 육신들이
잖아요.
때로 철야기도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실수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늦게 일어나
혼자 자책하고 낙심의 늪에 빠져 있을 때마다
항상 주님께서 늦더라도 행하라는 말씀으로
끌어올려 주셨잖아요.
그처럼 섭리의 생명들이 때로 실수하여서
혹은 너무 크게 상심할 만한 일이 있어
어떤 날에 주님과 정한 시간에 못 일어났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늦더라도 일어나
주님과 대화하기를 바라시죠?
선생님도 저희가 때로 실수했어도
낙심 말고 쓰러지지 말고 행하여
올라오기를 바라실 거 같아요.”)
사랑아, 우리는 신랑 신부 아니더냐.
때로는 너무 피곤하여 늦게 일어났을지라도
혹은 너도 모르게 나와의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
을지라도
사랑의 자신감을 잃지 말고 늦더라도 나아오너라.
힘든 것도 알고 지치는 것도 안다.
급박하게 다가오는 나의 재림에
어떤 섭리인은 초조해 하고 있으며 조급해 하고 있
구나.
다 안다.
고통스러운데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 것 같다는 마음,
그 어느 누구도 위로조차 되지 않는 마음.
그러나 신랑인 나 예수는, 그리고 선생은
너희를 포기하지 않았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연기한 그 시간마저 다 되어가
는,
신약역사 2000년 동안 기다려 온
대망의 나 예수의 재림이 곧 눈앞에 있기에
이리도 급박하게 너희를 이끌어 낼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나를 따라와 주겠느냐.
선생도 너희 하나하나 한 사람도 다 빼놓지 않고
나 예수의 재림 맞게 하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 되
어 있다.
이런 선생과 나 예수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낙심 말고 끝까지 따라와 주는
섭리의 신부들 되어 주었으면 좋겠구나.
사랑한다. 안녕.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사랑하는 나 예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