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11.03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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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1.03 (목)
- 성경 본문
- 오후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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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예수의 역사는 이미 승리의 길이다
작성일: 2011. 3. 1. (화) 오후 1:45~2:40
작성자: 주이랑
[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지역에 도착하여
주말에 섭리 회원들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주말이라 시내에는 사람들이 많았고,
시티홀 앞 광장의 많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앉아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역시 유럽 사람들은 여유를
즐길 줄 아는구나.’생각했는데 그 순간 예수님께서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아라.’하셔서 자세히 보니,
그들 안에는 마치 무덤 속에 누워있는
해골 같은 영들이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기독교 문명 아래 살고 있지만
신앙의 불은 거의 꺼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
고
있었습니다. 이에 너무 슬픈 마음으로 예수님께
“이토록 찬란한 기독교 문명을 이루었는데
왜 그들의 신앙의 불은 꺼져 버렸습니까?”라고
여쭤 보았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가 그 답을 찾아보아라.” 하셨고
며칠 동안 이것을 놓고 기도하며 고민해 보았습니
다.
그러다 3월 1일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에서
혼자 남아 기도를 하던 중에 주님께서 오셔서
대화한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하는 자야, 내가 네 곁에 있다.
나의 음성을 듣고 나 예수인 것을 분별하여라.
나의 음성은 온유하며
좌우에 날선 검처럼 예리하다.
(“예수님은 늘 저의 예수님, 섭리의 예수님이시다
보니
늘 가깝게 느껴지고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웅장한 성전에서 예수님을 뵈오니
2천 년 역사의 주인이시자 인류의 모든 역사의 주
인 되신
웅장한 예수님을 느끼게 되어 진정 영광을 돌립니
다.
신중의 신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저같이 낮
은 자에게
오셔서 함께해 주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자야, 나는 신중의 신이요,
온 육계와 영계를 통치하는 전능자다.
나는 지금의 ‘너’를 존재케 한 역사의 주인이요,
너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이끄는 만왕의 왕이다.
이를 온전히 깨닫고 나 예수를 예수답게 대하는 자
에게
나는 더 깊고도 깊은 심정의 말을 전한다.
머리로 깨닫는 것이 아니요, 가슴으로 깨닫는 것이
다.
네가 앉은 이곳 역시 셀 수도 없이 많은 자들이
나에게 찬양과 경배, 영광과 찬미를 올린 곳이다.
그들은 내 깊은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저 십자가에 매달린 나 예수를 바라보며
서글피 가슴을 쥐어짜고 통곡하기도 했다.
나의 귓가에 속삭이던 그들의 육은
이미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졌으나
그들과 내가 나누던 역사의 교감, 사랑의 교감은
이 성전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져 역사 가운데 남아
졌구나.
그들의 눈물은 역사의 강을 내었고,
그들의 기도는 역사의 열매를 이루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도 늘 쓸쓸했다.
수많은 자가 내게 경배와 영광을 돌릴지라도
내 마음은 늘 외로웠다.
왜인 줄 아느냐?
나는 단 한 번도 100% 온전한 영광을 받지 못했음
이라.
이곳에 만 명이 모인다 하여도
만 명의 온전한 영광은 없었으며,
이곳에 단 한 명이 온다 하여도
단 한 명의 온전한 영광 또한 없었다.
내 말 못할 깊은 이 심정을 네 알겠느냐?
‘목적’이 들어간 영광과 감사는 마치
화려한 금은보화 사이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칼날
같아서
그것이 내 심장을 찌르고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웅장한 노랫소리만큼 찬바람은 거셌고
신비로운 기도 소리만큼 나의 눈물은 짙었다.
(“주님, 맞습니다. 100%를 주시는 주님이신데
저희는 늘 100% 드리지 못하니 짝사랑의 아픔이라
하셨습니다. 주님, 오늘 정말 제 진심을 다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주님, 이렇게 찬란한 기독
교
유적을 지닌 유럽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신앙의 불길
을
잃어버린 것일까요? 주님을 잃어버린 이 땅을 직접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유럽은 나 예수라는 강줄기가 관통한 곳이다.
이는 다른 말로, 나의 강줄기가 지나는 곳마다
‘근본 사상’이 나 예수의 사상으로 뒤바뀌었음을 말
하며
이것이 각종 철학, 문학, 예술, 정치, 경제라는
갖가지 열매를 낳게 되었다.
뿌리가 바뀌니 열매도 따라서 바뀌게 되는 이치다.
그러나 유럽은 이제 마치 늙은 할머니처럼
우두커니 서서 내게 싱그러운 미소를 보이지 않는
다.
왜인 줄 아느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그 순간 눈앞에 늙은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그녀를 자세히 보니 온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그 눈빛만은 오만함에 가득 차서는, 제게
“나는 이미 온몸으로 네가 걸어야 할 삶의 길을 걸
어 왔어.
그런데 삶은 고통이야. 이것 봐. 결국 난 상처만 남
았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순간 깨달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채 자라지 못한 어린 꼬마가 인형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에 제가 “이것이 유럽인가요?” 물으
니
주님께서 “맞다.” 하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자들은
내 사랑이 거했던 유럽의 역사,
곧 나 예수의 역사를 보고 듣고 배우고 있다.
그러나 너는 유럽의 역사를 머리로 지식으로 배웠
지만
이들은 온몸과 온 맘으로 부딪히며 성장해 왔기에
그 환희, 그 고통이 더욱 절실했고,
그 모든 삶의 과정은 마치
네가 본 늙은 여인의 몸에 새겨진 상처처럼
그들의 역사 가운데 아로새겨져 있다.
이는 마치 어린 소녀가 ‘인생’을 말하는 것과
삶의 모든 과정을 마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노파가 ‘인생’을 말하는 것과 같은
차이라 말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인생’이 지닌 의미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아서
세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며,
영, 혼, 육의 온전함 속에 깨닫는 것이며,
나 예수라는 ‘길’을 걸음으로
깨달을 수 있음을 너는 알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가 주신 인생의 길을 모두 마치고
이제는 나의 품에 안길 그날을 기다리는
이 늙은 여인의 눈빛이 지닌 오만함은,
‘삶’이 지닌 여호와의 축복을
온전히 깨닫지 못한 채 성장했음을 말한다.
이는 마치 진실한 사랑을 해 보지 못하고
늙어 버린 여자가, 세월의 흐름 속에
자신만의 수준 낮은 사랑을 정의하고는
‘나는 사랑을 안다’말하는 오만함과 같구나.
그러니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가지가 앙상한 겨울나무와 같이 가엾기만 하다.
(“맞아요, 주님! 유럽의 모든 역사는 마치 종교사로
이야기될 만큼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유럽은 신약 2천 년의 역사를 펴오면서
뒤늦게 기독교 문명을 받아들인 나라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역사의 진통이 되어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
니다.
종교혁명을 이루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십자군 전
쟁도
겪었고 정치와 밀접히 결탁하면서는 종교 다툼은
곧 정치와 경제에 엄청난 여파를 일으키며
피바람을 낳으면서, 종교가 지닌 신비로움은 사라지
고
현실의 문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 특히 많은 사람들이 유럽 기독교 역사를 두
고,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였다 말하며
‘정치를 이용하여 종교를 전파했다’고 말하기도 하
고
‘정치와 종교의 결탁으로
정치도 종교도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라고도 말합니
다.
주님,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꼭 정치와 결탁해야만 했나요?
만약 그렇다면 교세를 확장하기 위함이었나요?”)
내 사랑아,
네가 깊이 고민하고 또 생각했음을 내가 안다.
이제 내 앞에 너의 고민을 내려놓았으니
나의 답을 들어보아라.
근본을 보아야 한다.
네가 들은 바처럼 많은 자들이 나의 역사를 두고
정치와 경제의 힘을 빌려 교세를 확장하였다 말한
다.
그러나 모든 근본은 영적 세계에 있다.
나 예수의 강림, 그리고 십자가는
인류 역사 가운데 ‘회복’을 위한 영적 조건이 되었
다.
즉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영적 죽음에 처해진 인류에게
실상 ‘머리’가 된 것은‘사탄’이었다.
의인의 머리는 여호와요,
악인의 머리는 사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 예수가 직접 강림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구원의 길을 내었나니,
이는 인류 가운데 다시없을 엄청난 영적 조건으로,
역사의 전환을 낳게 되었다.
즉 인류의 머리가 된 사탄을 내리치고
모든 역사의 머리를
나 예수가 다시금 차지하게 된 것이다.
쉬이 말해 역사의 패권을 나 예수가 쥐게 된 것이
다.
고로 나의 제자들이 밟는 땅마다
나의 복음의 땅이 될 것이라 하였다.
이는 예언이 아닌 사실이었다.
시대가 흘러갈수록 역사의 패권은 당연히
나 예수를 사랑하고 나 예수를 섬기는
이 기독교 역사 가운데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나의 역사가 뻗어 가는 곳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가 새롭게
꽃이 피고 열매 맺는 부활의 역사를 맞게 된 것이
다.
이를 더 깊이 말하면,
역사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역사의 길을 내는 머리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
다.
쉽게 말해 볼까.
이 시대 너희가 머리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경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 맞다.
지금은 사탄이 경제라는 가면을 쓰고
이 시대 가운데 머리가 되어 행하고 있고,
또 어떤 나라는 여전히 정치라는 가면을 쓰고
사탄이 머리가 되어 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경제를 머리로 두는 나라는
경제로부터 모든 문화, 정치 등이 좌우되며,
정치를 머리로 두는 나라는
정치로부터 모든 문화, 경제 등이 좌우된다.
그런데 나 예수가 머리가 되었다 함은
나 예수로부터 모든 정치, 경제, 문화가 좌우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역사의 ‘머리’를
하늘이 차지하느냐 땅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살아 있는 시대와 죽은 시대가 구분된다.
그리고 그것을 차지한 자가
역사의 주인이요, 역사의 패권인 것이다.
나의 역사를 다시 보아라.
나의 역사는 정치와 경제의 힘에 의지하여
역사의 길을 낸 것이 아니요,
오직 나 예수가 행한 방법대로
세속 가운데 구원의 길을 내며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십자가를 져주며
죽기까지 사랑함으로 나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법칙대로 오직 영적 구원 역사의 길을 낸
것이다.
고로 로마가 나의 역사를 공인함으로
기독교 역사가 전 세계로 뻗어간 것이 아니라,
나의 역사는 이미 정해진
축복의 길, 승리의 길을 가는데
그 승리의 물결 속에 정치가 뒤따라 동참함으로
수많은 열매 중 하나로 정치의 열매,
즉 ‘기독교 공인’이라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야,
모든 문제는 우선순위가 달라질 때 발생한다.
즉 나 예수가 최우선 순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 자신의 사상, 자신이라는 존재가
최우선에 놓일 때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타락의 역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나 예수라는 영적 물살에 동참하여
변화 발전을 이루던 각 분야가
점차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시작했으니
작게는 개인의 영광이요,
크게는 자신이 속한 영역의 영광이다.
이를 영적으로 깊이 보면,
마치 사랑과 진리로 온전하고 깨끗하게
역사의 길을 내고 있는 나의 역사 가운데,
정치, 경제, 문화라는 가면을 쓰고
사탄이 교묘하게 숨어들어온 것이라 할 수 있구나.
그들은 처음에는 나의 역사를 옹호하며
자신들은 다스림을 받는 존재인 듯 숨어 있었으나
내 사랑하는 자들에게 조그마한 틈만 생기면
언제라도 거세게 밀고 들어와
나의 정신, 나의 사상이 아닌
자신들의 방법, 자신들의 유익을
역사의 우선순위에 두고자 하였다.
어떻게든 역사의 머리를 차지하여
온 역사를 좌우하고자 한 것이다.
그로 인해 실상 종교 전쟁, 종교 다툼은
근본 된 진리로 가기 위한 의의 투쟁이 아니라,
교묘히 숨어든 사탄이
나의 역사를 붕괴하기 위해 벌인 악행이었다.
그들은 마치 의의 싸움을 벌이듯
나 예수의 얼굴, 나 예수의 십자가를 들고 전진하였
으나
실상 자신들이 패권을 쥐기 위해
나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그들은 나를 위해 싸운다 하나
실상 자신을 위해 싸웠으며,
그들은 나를 사랑한다 하였으나
실상 나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나의 역사는 처참하게 다치고 넘어졌다.
더구나 무릎으로 나에게 나아오는 지도자가 없으니
나는 나의 마음을 전할 길도 없었다.
그러니 각종 전쟁과 사상싸움으로 인해
고통 받고 신음하는 유럽, 나의 여인은
그녀를 구원해 줄 신랑 나 예수가 어디 있느냐며
눈물로 통곡한 것이다.
고로 내 사랑아,
너는 기록하여라.
역사의 길은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진리로 내는 것
이다.
그 어떤 전쟁과 다툼도
사랑의 역사, 진리의 역사에 옳지 못하다.
무릎으로 싸우고 영으로 싸우는 것이지,
무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 예수가 죽기까지 사랑함으로 인류를 차지하였듯
너희도 죽기까지 사랑함으로 역사의 길을 내어야
한다.
너희 선생, 그리하여 지금 저 고통당하며
사랑의 역사, 용서의 역사, 화해의 역사 내는 것이
아니냐.
무력이 아닌 기도로, 선으로, 사랑으로
이 시대 영적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고로 1000년 역사도 이와 같아야 한다.
악은 반드시 칼같이 잘라야 할 것이나
결코 무력으로 행하지 말고
네 선생이 행한 것처럼
기도로 내게 간구함으로 승리하여라.
결코 나 예수가 전한 사랑의 정신을 잊지 말아라.
육의 것이 아닌 영의 것에 눈을 뜨고,
과거와 같이 사탄의 교묘한 행악에 놀아나서는 아
니 된다.
더 깊고 단단한 역사의 강줄기를 내고자
나는 오늘도 네 선생과 함께 차디찬 방에 있노라.
선생의 손이 얼고 내 입이 얼도록
나는 고통 가운데 너희를 사랑하고 있노라.
이 깊은 심정의 역사를 잊지 말아라.
절대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라.
내 마지막 어여쁜 성약의 신부는
상처가 아닌 사랑만이 가득하길 비노라.
진정 역사의 눈물이 아닌
역사의 웃음만이 넘치길 비노라.
사랑한다, 내 신부여!
유럽의 화려한 나의 여인을 보아라.
그러나 진정 네가 나의 신부라면
그 속에서 홀로 외로이 눈물짓는
나 예수를 만날 수 있을 게다.
여기저기 나 예수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이더냐?
나는 오늘도 유럽 가운데
홀로 외롭게 십자가에 매달려 뚝뚝 핏방울을 흘리
노라.
그러나 희망이다.
내 십자가 핏방울이 짙어질수록
나의 역사 가운데 내가 건질 나의 신부들은
더욱 찬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한다.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