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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1.11.03 (목)

계시말씀 30a68a70

선포일
2011.11.03 (목)
성경 본문
새벽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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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듣고 확실히 알고 온전히 행하여라 작성일: 2011. 6. 11. (토) 새벽 4:13 작성자: 장정임 [ 며칠 동안 한 사람과 어떤 문제에 대해 서로 다 른 견해를 가짐으로 갈등을 빚고 있던 중 예수님께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달리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 인지, 무엇이 진정 옳고 그른 것인지, 그리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으면 깨우쳐 고쳐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너에게는 네 생각이 맞고 그에게는 그 의 생각이 맞다.” 말씀하셨고, 무슨 뜻인지 다시 여쭈 어 보니 “사람은 누구나 자기 수준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옳다 그르다 말할 수가 없느니라. 비둘기밖에 가진 것이 없는 자는 비둘기 로 제단 앞에 나아오고, 염소를 가진 자는 염소로, 살찐 젖 소를 가진 자는 젖소로 예물을 드리라고 하였듯이 제각각 자 신의 수준에서 신앙과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젖소를 드리는 자가 비둘기를 드리는 자에게 왜 비둘기밖에 준비하지 않았느냐고 나무랄 수 없 는 법! 그것이 그가 가진 전부이기 때문이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니 부자는 가난한 자의 능력 을 고려하여 그가 최대한 많이 심고 성실히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밖에 더 할 것이 없다.”라고 덧붙여 말 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견해차로 인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아 마음의 고통이 심하여 이를 두고 계속 기도하였지 만 진전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다시 주님께 한참을 안타까이 기도한 후에 ‘기도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이루어질 때까지 하는 것이다.’라는 감동이 들 어서 시간을 두고 계속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기도를 마무리하려고 할 때 주님께서 “이제 정리하자.” 하셨습니다. 주님께 말씀해 달라고 간구하며 정리했 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하는 이에게. 기도하느라 수고 많았다. 기도는 조건이야. 너희가 구원을 받을 조건이며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역사를 일으키시도록 하는 조건이다. 어디 쉬운 것이 있었더냐? 애굽을 나올 때에도 10번의 조건을 세워야 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7번의 조건이 필요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도 7번, 엘리야가 갈멜산 제단에 불이 내리게 할 때에도 조건에 조건의 연속이었다. 조건은 성전(聖戰: 거룩한 싸움)이기도 하니 가나안을 차지할 때도 끝없는 성전을 치러야 했고 나 역시 내 일생을 무지한 세상과의 성전에 바쳤다. 시대가 악하고 강퍅할수록 세워야 할 조건이 많아 진다. 깊이 잠들어 있고 병들어 있을수록 잠을 깨우고 병을 낫게 하는데 더욱 시간이 걸리듯 기도의 조건 또한 그러하다. 기도는 누가 하는 것이냐? 아는 자, 깨달은 자, 보다 하늘 편에 속한 자가 무지자, 깨닫지 못하는 자, 보다 세상 편을 위해 하 는 것이다. 영적인 자가 육적인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고 아벨이 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보다 의인이 보다 악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희생이다. 심정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다. 기도로 상대의 죄를 대신 짊어질 때 그 조건으로 살아난다. 기도는 심정이다. 진실됨의 눈물이며 간절함이다. 고로 심정 없는 기도는 생명력이 없다. 진실된 기도만이 진실된 하나님의 마음에 통한다. 기도는 주 예수다. 기도로 나를 붙잡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네가 못할 일을 내가 하게 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기도는 믿음이다. 고로 “믿음대로 되리라.”는 것은 곧 “네 기도대로 된다.”함을 뜻한다. 기도는 사랑이다. 사랑 없는 기도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아서 사랑의 근본자 되시는 하나님의 귀에 들리지 않는 다. 기도는 말씀이다. 말씀에 벗어난 기도는 상달되지 않는다. 곧 자기 주관적 기도는 무용지물이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지체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지체를 갖추지 못한 신앙의 불구자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호흡이다. 나와 대화함으로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다. 숨이 멈춘 자는 죽은 자니라. 기도가 아니었다면 내 육이 전능한 나의 본체를 어찌 알았겠으며 기도가 아니었다면 네 선생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의 한을 깨달았겠느 냐? 기도가 없이 어찌 내가 십자가 구원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겠으 며 기도가 없이 어찌 선생이 성약 문을 열고 역사를 일으킬 수 있 었겠느냐?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기도이 다. 살아 있는 기도를 하여라. 상달되지 않는 기도는 죽은 기도이다. 말씀에서 벗어나고 자기 주관적으로 하는 기도는 죽은 기도이다. 아무리 오래한다 한들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한 궁사가 표적을 향해 화살을 쏘려 하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표적을 정확히 맞추는 기도를 하여라. 이것이 기도의 지혜이다. 기도해도 하늘 심정 모르는 자는 심정 일체되지 않은 자들이다. 내 심정이 와 닿지 않느냐? 선생의 고통이 실감나지 않느냐? 자기 주관적 믿음, 자기 주관적 기도, 자기 주관적 사랑, 자기 주관적 신앙을 하는 자들이 다. 자신을 세밀히 파악하여라. 그저 선생이 안됐다고만 생각하느냐? 선생이 너희 향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진정 모른단 말이냐? 선생을 향한 뜨거운 눈물, 자신을 비롯하여 생명을 향한 간절한 눈물이 없는 자!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함이니 회개할지어다. (“주님, 온전하게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 까?”) 인간은 각자 자기 수준대로 산다. 말씀도 각자 자기 수준대로 받는다. 말씀이 불완전하여 불완전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 니다. 완전한 말씀을 전해 주어도 각자 자신이 소화시킨 수준만큼 행실하기 때문이다. 고로 상대성의 역사라 하는 것이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배웠어도 시험의 결과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듯이 말씀도 동일하게 들었으나 이를 얼마나 제 것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각기 행위의 점수가 나오는 것이며 이에 따라 구원의 급과 천국의 위치가 좌우되는 것 이다. 모두가 100점을 원하지만 100점을 맞는 자가 드물 듯이 너희 역시 그러하다. 신부로 단장시키는 완전한 말씀이 선포되었으나 이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기에 몰라서 못하고 들었어도 온전히 행실하여 제 것 만들지 못하였기 에 못하고 행실은 했어도 시부적시부적하니 안 되는 것이다. 100점을 받는 자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더냐. 첫째, 선생의 말에 집중하여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둘째, 반복 강조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히 소화 한다. 셋째, 즉시 복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 넷째, 확실히 자기 것 되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 다. 다섯째, 모의시험에서 100점을 받는다. 즉 평소 나를 맞아야 그날에도 나를 맞는다는 말이 다. 지금은 1등에서 꼴찌까지 모두 함께 있지만 때가 되면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학생들이 각각 갈 수 있는 학교가 다르듯 신앙도 행한 대로 거두는 때가 온다. 누구나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싶고 누구나 천국에 가길 희망한다. 하지만 갈린다. 갈리기 전에 대부분은 자기가 어디쯤에 갈 것인지 양심으로 안다. 평소 자신의 성적이 좋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평소 말씀에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 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자기 주관에 빠져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마지막 시험 날까지 자기 주관적인 답을 쓰고는 100점을 받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자도 있다. 정답이 발표되면 그제야 0점인 것을 알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심판을 받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하는 것이다. 늘 근신하며 모르면 묻고 확인하며 행해야 하는데 그저 자기 교만에 빠져 자기 생각이 옳다 믿고 자기 식대로 행했기 때문이 다. 그러니 너도 항시 확인하고 점검하여라. 네 인생 구원의 답안지에 자기 주관적 답을 쓰고 있지나 않은지 확인하여라. 정확히 듣고 확실히 알고 온전히 행해야 한다. (문득 얼마 전 학교 수업 중에 생긴 일이 떠올랐습 니다. 한 학생이 ‘산’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를 ‘상’으로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하던 자들이 일부 있어 여러 번 다시 정확히 얘기를 해 주어야 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이 하루 동안에 연거푸 일어나서 ‘주님의 말씀도 이처럼 잘 알아들어야 오해가 생기 지 않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네 삶 속에서 내가 계시한 것이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말을 들어도 달리 들리는 것이다. 비워진 생각으로 집중하며 정확히 듣지 않으면 이 말이 저 말로 들리고 저 말이 이 말로 들려 결국은 틀린 답을 쓰게 된다. 말씀을 들을 때나 계시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주관적 사고를 꽉 채우고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에 따라 행동했어도 엉뚱한 결과를 얻는다. 실패로 끝난다. 특히 자기 주관이 강한 자,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자, 듣기보다 말하기를 즐겨하는 자가 조심해야 할 말 씀이다. 그러니 구원의 답을 알려주는 내 말씀을 진정 세밀히 집중하여 잘 듣고 온전히 알아들어야 한다. 듣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행위의 답을 온전히 쓸 때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나의 말로부터 한 치의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100점을 받을 수 있다. 너희가 100점을 받을 수 있도록 선생이 가르치고 있으니 너희는 받을 수 있다. 가르친 바를 정확히 듣고 확실히 알고 온전히 행동 하여라. 구원의 축복이 함께하리라. 네 삶 속에서 늘 계시하여 주는 나 예수이니 항상 삶 속에서 나를 만나자. 늘 깨어 있어서 세밀히 나를 느껴 보아라. 사랑한다. 안녕. 주 예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