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11.04 (금)
계시말씀
- 선포일
- 2011.11.04 (금)
- 성경 본문
-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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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도
작성일: 2011. 4. 27 (목) 오후 2:00
작성자: 주은혜
[ 문득 궁금해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가장 큰 고민과 번뇌가 있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깊은 계시를 받게 되는 걸까요?
주님은 고통 가운데 계시나요?”]
* 예수님 말씀 *
나는 어느 곳에도 있다.
기쁨 가운데도 행복 가운데도,
슬픔과 눈물, 고통 가운데도 너와 함께한다.
하지만 슬픔과 고통, 그리고 괴로움 가운데서
나를 만나기가, 나와 교통하기가 가장 쉽다.
그때는 인간이 인간 스스로 혼자임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끝에 대해 생각하며,
영원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신을 두드린다.
고민과 번뇌, 혼자서 생각하다
한계에 부딪힐 때의 간절함이
나와 만나는 문이 열리게 하고,
깊은 마음으로 나를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어찌 행복하게만 살 수 있겠느냐.
인간 세계의 행복이란
슬픔과 고통을 알 때, 부족을 알고 한계를 알 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슬픔을 알 때 기쁨을 알게 되고,
기쁨을 알 때 슬픔을 알게 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주님, 영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행복을 알고 느끼지 않잖아요.”)
영계는 근원의 행복을 누리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도 몸부림으로 존재함을 잊지 말아라.
영은 삼위의 한을 알 때 슬픔을 알게 하셨고,
삼위의 근원을 알 때 기쁨을 알게 하셨다.
육은 영과 달리 삼차원의 세계에 속한 피조물이니
삼위를 직접 경험하지 못하므로
삶을 통해 인생을 통해 풍부하게 경험하고
삼위를 겪게 하신 것이다.
삼위가 신앙적으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삼위는 너희의 삶 속에 존재하는 근원자이시다.
너희의 삶의 존재를 만드시는 근원의 근원이시다.
인간의 슬픔은 신과 가깝게 한다.
다리의 역할을 한다.
신을 찾는 눈물과 간절함은
삼위와 교통하는 능력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사탄도 쉬지 않고
슬픔을 분노로 바꾸고자 한다.
인간이 끊임없이 무릎으로 나를 찾을 때
나는 그 눈물의 진실함을 보고
그 앞에 서서 그와 대화한다.
육적인 언어로 나의 뜻을 전달한다 하여도
나의 말을 육적인 언어로 듣지 말아라.
내 깊은 심정의 말이다.
(“주님, 슬픔의 감정을 원래부터 가지고 계셨나요?
아니면 인간 타락 이후로 생기신 건가요?
천국은 슬픔이 없는 곳이잖아요.”)
내가 존재하면서부터 있었다.
슬픔과 눈물을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기쁨의 상대체로 영인과 사람의 존재를
가치롭게 하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고민과 번뇌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번뇌는
결국 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만나게 해 주는
스스로의 노력이다.
(“주님, 삼위의 한을 앎으로
영들이 슬픔의 감정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셨는데,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성삼위께서는 한이 없으셨을 텐데
슬픔을 알고 있었을까요?”)
기쁨의 상대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
슬픔은 기쁨의 그림자로 존재하며,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슬픔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 문제가 없는 자는 없다.
하지만 정확한 해답을 아는 자도 없다.
그렇기에 인생 모두는 신이 필요한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였느냐.
슬프면 나를 불러 간절함으로 더 깊이 나를 만나게
된다.
사랑한다.
주 예수의 말이니라.
(이후 슬픔에 대해 더 여쭈어 보았을 때
주님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 예수님 말씀 *
슬픔은 나에게 있다.
나는 모든 감정의 근원자요, 슬픔의 근원이 된 자
다.
(“주님, 왜 슬픔을 창조하셨나요?”)
슬픔은 기쁨과 짝이 되는 것이다.
성삼위는 모든 것을 짝으로 창조하셨다.
죽음과 탄생,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
영계와 육계로 나누어
성삼위는 세계를 창조하셨고
세계의 균형을 만들어 낸 것이다.
빛만 있으면 지구의 낮과 밤이 없는 고로
균형이 이루어질 수 없고,
삶만 있다면 죽지 않는 고로
이 세상 균형을 이룰 수 없으며,
기쁨만 있는 인생은 슬픔을 모르는 고로
그 인생이 기쁜지 슬픈지 모르는 인생이 된다.
짝으로 만든 세계,
짝으로 만든 것 중의 하나는
좀 더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하며
다른 하나를 드러나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어둠은 빛을 빛나게 하고
불행은 행복을 감사하게 하며
슬픔은 기쁨을 귀하게 만든다.
그처럼 성삼위는 모든 것을 짝의 세계로 만드셨고
마음 가운데 두신 것이다.
(“왜 짝으로 만드셨나요?”)
대상이 없으면 성장이 없기 때문이며
그 귀함과 가치와 제 기능을
온전히 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 필요하고,
신은 사랑의 대상체 인간이 필요하듯
대상체가 있고 서로의 짝이 있을 때
존재의 가치가 확고해지고,
서 있는 곳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성삼위의 근본의 이치는
짝으로 만들되 중점이 되는 쪽이 있으니,
나머지는 그림자가 되고
나머지 한쪽을 빛나게 하는 역할로 짝으로 만들었
으나
이 시대는 어둠이 빛을 삼키려 하고
인생 가운데 불행이 만연하며,
슬픔의 인생이 당연한 인생인 양 살고 있구나.
슬픔으로 나 예수를 만날 때 간절하게 만나게 되니
그 또한 나를 뚜렷이 만나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기쁘게 살라고 만들었다.
슬픔은 잠시요, 기쁨이 영원하고,
영원한 기쁨을 통해 나를 만나고
행복을 느끼기를 원했으나
인간들은 타락하여 슬픔을 선택한 고로
슬픔의 노를 젓는 인생 가운데
살고 있게 되었구나.
스스로 만든 인생이며,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너희가 노력하고자 하면,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기쁜 인생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인생들아,
늘 기쁜 인생을 사는 것만을 간구하지 말아라.
인생에 힘듦도 없고 슬픔도 없으면
안주하기에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성삼위는 각각 짝을 지어 주었고
그 짝을 통해서 발전하고 완성되어지기를 바란다.
슬픔을 피하기 위해,
기쁨을 취하기 위해
스스로 더 마음을 쓰고 행하게 되는 것처럼
너희의 인생에 슬픔을 꼭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삼위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고,
인생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귀한 뜻이다.
슬픔을 알 때 나를 만난다.
진정한 기쁨을 알 때 나를 만난다.
진실하며 간절한 마음을 만날 때
나는 너희들 앞에 서서 말씀하고 역사한다.
곤고한 날에 나를 찾아라.
그리고 기쁘고 행복한 날에도 나를 찾아라.
나 예수가 너희와 함께하고 동행할 것이다.
사랑한다.
진정 수고했다, 내 사랑아!
빛나는 인생은 그 어떤 연단에도 넘어지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인 것이다.
네가 목표한 것을
진정코 이루고 행하는 자가 되길 바란다.
사랑과 진리의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