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11.04 (금)
계시말씀 a4109c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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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
작성일: 2011. 9. 19. 월
작성자: 이선진
[ 몇 달 간 변질되어져 있었던 저의 마음을 발견하
였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만으로 기쁨과 행복을 얻었던
저의 마음이 어느새 저를 알아봐 주는 눈빛과 시선
들로
행복해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기, 명예가 저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님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와 같은 것들을 겪다 보니
어느새 변질되어져 버린 제 마음을 보며,
주님과 온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서
인간의 것으로 가상적인 행복을 누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고백드렸습니
다.
“주님, 진정한 행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니
세상과 인간들의 것으로, 행복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들로
저를 채우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주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세요.
인간의 돈, 물질, 인기, 명예, 성공 없어도 좋으니까
행복하고만 싶어요.” ]
* 예수님 말씀 *
인간들의 것으로는 순간적인 들뜸과
흥분 정도는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속성 있고 계속적인 행복’
이라는 것은 누리지 못한다.
영원히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라는
선생의 말을 생각해 보아라.
‘행복’이라는 감정은 신이 인간과
서로 사랑함으로써 만났을 때
그 뇌에서 발생되도록 만들어 놓은 감정이며
신과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관점에서
이 감정의 필수적인 조건은 연속성, 계속성이다.
천국의 사랑을 생각해 보면 된다.
천국의 사랑에 끊김이 있겠느냐.
천국의 사랑은 한 인간이 지구상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나 예수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
되어
만약 파괴만 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사랑이다.
그와 같이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또한
인간이 노력만 한다면 연속성 있게 영원히 누릴 수
있다.
나와의 사랑만 깨뜨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인간은 나와의 사랑을 이루어 놓은 후
가만히 놔두어도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될 줄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나무와 같아서
꾸준히 물과 퇴비를 주지 않는다면
점점 앙상하여지고 급기야 죽게 된다.
그러나 물과 퇴비를 끊임없이 주는 나무는
무럭무럭 성장하여 열매를 맺듯이
너와 나의 사랑도 그러하다.
사랑은 노력과 정성으로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에서 ‘행복’이라는 열매가 열려
너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자들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겨자씨 한 알과도 같다.
첫 시작은 미약하나 후에는 너뿐만 아니라
다른 자들도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
까?”)
이는 인간의 사랑과는 달리
너의 마음의 그릇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기보다
주고만 싶어진다.
나와 충만하게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남에게 사랑을 요구하거나
다른 것들로 마음을 채우고자 한다.
고로 네가 고백하였듯이
너의 행복은 오직 나와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주님, 그런데 주님과의 사랑의 행복을 누리기 위
해
감수해야 할 고통을 이겨 내고 견뎌 내는 것이
힘든 것 같아요. ‘주님과의 사랑을 이루었다’라고
생각하면서 조금만 방심하면
여지없이 사랑이 깨져 버리기 시작하니까요.
많은 섭리인들도 처음에 첫 사랑에 불타오르다가
그 고통을 견뎌 내지 못하고
식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날그날 나와의 사랑으로 힘 받아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
자꾸만 사랑이 깨지는 이유는
받아 놓은 사랑의 힘으로 만족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 의문점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속성은 영원성, 계속성이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마치 유통 기한이 있는 음식처럼
그 사랑의 힘이 가만히 놔두면 식고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신과 인간과의 사랑이어서 그러하다.
신의 책임분담은 인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무한히 계속하여서 주는 것이고
인간들의 책임분담은
그 사랑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신의 사랑은 영원성, 계속성을 띠고 있는 것이 맞
아.
그러나 인간에게는 유한성이 있기에
그 마음 또한 유한성이 있는 것이다.
고로 무한성을 지닌 신과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만나 이루는 사랑이기에
유한한 인간은 유한성을 지닌 자신의 마음을
무한성을 지닌 신의 마음으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 나와 지구촌
최첨단의 신랑 신부급 사랑을 이루어 놓고도
매일매일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알겠느냐.
(“아, 유한성을 지닌 인간이
무한성을 지닌 주님과 끝없이 사랑하려면
유한성을 무한성으로 바꾸어 줄
‘매일 매일 빠짐없이 실천’이라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군요.
유한한 인간으로서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만족해 버리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이 없네요.
만족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 같아요.”)
만족은 네가 오늘 나와의 사랑을 이루었을 때 누리
어라.
그리고 내일이 되면 처음부터 나와 함께 다시 시작
하자.
선생이 이 같은 정신으로
성약역사 신부급의 노정을 뛰고 달려온 것이다.
선생은 오늘 나와의 사랑으로 행복을 누리고서도
그 행복감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알고
그 다음 날이 되면 또 다시
나와의 사랑을 이루려 노력하고
그 사랑으로 행복을 누린다.
그러니 선생도 그곳 가운데에서
나 예수가 안 느껴지면 지옥과도 같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와, 정말이네요. 주님.
만약 인간의 마음이 무한성을 띠고 있었다면
선생님도 그 전에 이루어 놓은 주님과의
사랑과 행복감만으로 그곳에서 주님이 안 느껴지실
때에도
항상 행복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정말 선생님 정신처럼 매일매일 초심으로
주님과의 사랑을 누리고 행복감을 누리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역시 선생님 정신만이
이 성약 섭리의 노정을 갈 수 있게 해 주겠네요.”)
그렇지. 그래서 선생과 일체를 이루어
선생의 정신으로 살라고 말한 것이야.
(“주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 이겨 내야 하는 고통보다
그 사랑으로 인한 행복감이 더 크다면
매일매일 선생님처럼 노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도 고통보다 행복이 더 크니까
그렇게 이겨 내실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 사랑으로 인한 행복이
사랑을 위한 고통보다 훨씬 크니
선생처럼 육신의 고통, 마음의 고통들 다 이겨 내어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이 길을 가자꾸나.
안녕.
사랑과 행복의 나 예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