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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1.11.05 (토)

계시말씀 d481bc61

선포일
2011.11.05 (토)
성경 본문
때 5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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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로 증거하라 작성일: 2011. 9. 15 (목) 낮 2시 작성자: 주은혜 [ 전날 예수님과 선생님을 증거하는 것에 대해 생 각하다가 ‘주님은 수천수만 가지의 모습이 있고, 선생님을 보고 증거하는 자의 말도 각도에 따라 다른 부분이 있는데 나는 어떻게 증거하면 될까? 나도 내가 만난 예수님과 내가 경험한 선생님을 증거하면 될까?’하며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너는 오직 진리로 나와 선생을 증거 하라.” 하시며 요한 일서를 읽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일서를 읽을 때 5장 7절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님께 “주님, 요한 일서를 읽으라 하심이, 이 구절을 읽게 하기 위함입니까?”하고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핵심 구절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월명동 팔각정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어제 하던 이야기를 다시 하자.” 하셨습 니다. ] * 예수님 말씀 * 지금은 너희가 선생을 보았던 모습, 선생의 성격, 인격, 일화로만 선생을 증거하는 때가 아니다. 진리로 선생을 증거해야 한다. 성령으로 선생을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바른 증거 다. 이 증거는 부흥강사가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니냐. 나도, 아버지 하나님도 성서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 느냐. 나의 행함과 아버지의 행함이 진리로써 증거되었고, 그 진리의 증거들만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 냐. 이와 같이 오직 진리가 마음을 울리고 심정에 와 닿아 인생을 바꿀 수 있으니 너희는 오직 진리로 선생을 증거해야 한다. 교역자들, 지도자들,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들, 선생과의 추억들을 증거하 며 성도와 선생을 가깝게 하려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그런 증거는 너희의 입장에서 본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냐. 마치 선생을 너희라는 거울에 온전치 못하게 비추 어서 너희의 눈으로 본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니 이는 온전한 증거가 아니다. 그러한 증거는 선생을 오해케 만들 수도 있고, 너희의 생각을 드러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니 너희는 너희가 아니라 진리라는 거울에 선생을 비추어 증거하여 성도들을 선생과 진리로 하나 되게 만들어라. 선생이 나의 육신이 되어 너희를 사랑해 주고, 너희도 육신으로 육신 쓴 신인 선생을 만나고 깨닫는 때가 지금이 맞다. 하지만 선생을 육신으로만, 인간적으로만 알고 좋아 한다면 근본 정신, 성령, 진리를 알지 못하기에 섭리사를 떠나게 되니 너희는 성서에 근거한 선생을 증거하여 근본을 알 게 하라. 성서를 보아라. 나는 오직 말씀으로 나를 드러냈다. 선생도 오직 말씀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이런 때에 자기 입장에서 선생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며 너희가 보는 선생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자 있구 나. 선생은 너희가 보지 못한 사이에 더욱 빠르게 차원을 높여 가고 있다. 그런데 너희가 너희의 생각으로 가둔 선생만을 증 거한다면 그 말에 무슨 힘이 있겠느냐. 오직 오해만 남지 않겠느냐. 어떤 이는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을 증거하는 그 말에 시험이 들기도 하고, 잘못된 인식관이 심기기도 한다. 또 어떤 자는 그런 모습을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각각 다 다르게 그 마음에 와 닿게 된다. 하지만 진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마음에 스며들고 오차가 없으며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아라. 사랑하는 자들아. 인간적인 증거는 인간적인 생각만 남긴다. 신의 증거, 진리의 증거는 그 마음에 신념을 남긴 다. 신념은 그 인생을 움직이게 하고 인생 걸작을 만드는 것이다. 너희가 선생을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따라 선생은 ‘선생’이 되기도 하고, ‘이단의 괴수’가 되기도 하며, ‘인간’적 모습을 가진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시대의 중심자, ‘육신을 쓴 신’이 되기도 한다. 선생을 증거하기 위해 깊은 기도하는 자 있느냐. 너희가 만난 선생을 증거하기에는 너희의 그릇이 너무 작으니 공적으로 외칠 때에는 진리를 근거한 선생을 외치도록 하자. (“주님, 많은 자들이 선생님의 심정을 받고 싶기도 하고, 선생님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알고 싶기도 하여 선생님과 함께했던 추억을 듣고 싶어 하기도 합니 다.”) 그래, 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 대중이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그러한 증거보다 진리에 근거한 힘 있는 증거가 필요하다. 한 사람의 입장에서 증거하는 것은 잘못된 관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역자들, 지도자들, 집회나 단상에서는 개인적인 말들을 자제해야 한다. 선생과의 일을 추억하며 말할 수는 있지만 이는 진리 위에 선 말이 아닐 때가 많으니 신념을 낳을 수 없다. 은혜는 진리 위에 서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 속에 신념을 심으려면, 그 신념을 육신화시켜 움직이려면, 결국은 말씀이다. 선생의 인간적인 모습, 친근한 모습은 선생 스스로, 직접 증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지 않 느냐. 또, 그런 모습은 진리 위에서 증거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제대로, 완전하지 못하게 전한 말들은 흘러 흘러가며 왜곡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진리를 벗어난 말씀은 살이 될 수는 있으나 뼈가 될 수는 없다. 은혜는 되나 진리는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말씀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면 스스로 선생을 증거할 폭이 깊어질 게다. 마음속에 뜨거운 신념과 믿음이 생겨 죽어도 선생을 놓지 않는 강한 마음이 생긴다. 마음속 깊이 뿌리박힐 신념을 심어 주어라. 진리로써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말씀을 전하 여라. 성령이 그를 증거하리니, 너희는 성령을 간구하고 입을 열어 성령으로 선생을 증거하길 바란다. 사랑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온전한 성령을 깨닫고 실천하 자. 평강을 빈다. 사랑과 진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말씀이 끝난 후 주님께, “주님, 예전에는 선생님과 있었던 일화를 듣기 위해 선생님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듣기도 했는데 오직 진리로 증거하라 하시니 생각이 깊어 집니다. 진리로만 증거하면 선생님을 실체적으로 느낀 모습 들을 잘 알지 못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듣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요.” 하고 말씀드리니 주님께서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진리로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소집회, 소모임에서는 선생에게 직접 배운 자들이 진리의 근거한 추억의 말씀들을 준비하여 증거할 수도 있겠지. 새로운 성령, 새로운 진리, 새로운 말씀이다. 차원이 달라졌다. 시대 흐름이 달라졌으며, 삼위의 역사의 물살도 달라졌다. 느끼지 못하였느냐. 이제는 영적으로 선생을 증거해야 할 때다. 영으로, 진리로 세운 선생을 증거하고 외쳐야 할 때 다. 증거의 차원을 높여야 한다. 선생은 날아가고 있는데, 너희는 예전에 선생을 본 것만을 기억하여 증거해서 되겠느냐. 깊은 차원으로 증거해야 한다. 차원을 높여라. 섭리사 선생의 제자들, 섭리사 신부들이여, 선생 증거의 수준을 높여라. 하나님의 역사의 차원이 높아졌으니 높이고, 또 높이도록 하여라. 영적인 흐름의 역사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육을 중심해서 증거해서 되겠느냐. 너희도 영이 되어 영적으로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깨닫고 아는 자는 증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