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1.11.10 (목)
계시말씀 9ed2a67c
- 선포일
- 2011.11.10 (목)
- 성경 본문
- 새벽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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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완벽한 표상인
선생과 같은 사랑을 하라
작성일: 2011. 9. 24. (토) 새벽 2:00
작성자: 주사랑빛
[ 새벽 기도를 시작하며 삼위께 사랑한다고 진실로
고백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을
계속 부르니 마음이 너무 뜨거워졌습니다.
주님이 오셨고 한참 재미나게 대화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교회 밖 도로에서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큰 소리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도 음악을 틀고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지
만
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 옆에 앉아 계시다가,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저 봐라.
세상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는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예쁘게 감싼다.
나의 사랑아,
사랑은 저리도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부드러운 물과 같이, 뜨거운 불과 같이
은은하고 화끈하게 서로를 위해 주며 아껴 주며
내 몸같이 여기며 대하는 것이 사랑이다.
세상의 사랑은 큰 소리를 내며
상대보다 자신이 더 사랑을 받아야 하며
서로를 위하기보다는 서로를 질책하며
소유하려 한다.
저 남자는 여자를 소유하기 위해
강제적인 사랑을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소유되지 않으려
몸부림을 치는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나의 사랑들이다.
참으로 불쌍하고 불쌍해.
내가 저들 곁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내 사랑에 감격하며 고백하는 기도 소리 듣고 왔다.
선생은 순수하게 내 사랑만 먹고 커 온 자이다.
나와 사랑 다툼 한 번 하지 않은 선생이다.
그래서 선생은 사랑 다툼에 대해 모른다.
아, 한 번 있구나.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 결심하며 산에서 내려갔을
때.
그러나 그때도 서로를 너무 사랑해서 견디지 못하
고
나는 선생에게 갔고,
선생은 다시 나를 찾아 산으로 왔다.
사랑 다툼이라기보다는
서로를 너무 애틋이 사랑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떠한 사랑을 하고 싶으냐?
(“사랑하는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시대 베다니 마을과 같은
선생님께 가셔서
피곤을 푸시며 심정을 내려놓으시듯이,
그렇게 언제나 제게 오시기를 원해요.
신랑으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모시고,
한편으로는 만왕의 왕으로서
주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모시며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는 선생님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요.”)
그래, 나의 사랑아.
그런 사랑이 사랑의 정답이다.
와스디는 사랑을 쪼개어 보지 못하였다.
(“주님, 사랑도 쪼개어 보나요?”)
왕을 대할 때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할 때가 있고
신랑으로 대할 때가 있는 것인데,
두 경우를 쪼개어 보고 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대함으로 지혜롭지 못하여
결국엔 왕후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느냐.
반면, 에스더는 참으로 지혜롭게
왕을 언제, 어떻게 대해야 할지 쪼개어 보고
지극 정성으로 대하여 자신의 민족도 구해 내고
왕후로 그 자리를 지키며 살지 않느냐.
이와 같다.
선생은 참으로 지혜로운 나의 신부이다.
나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보며
두려움과 떨림, 감격함으로 내 앞에 나아오고
항상 단상에서는
신의 권위를 세우며 증거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평생을 이와 같이 함으로 섭리사 신부들은
나 예수의 강권적인 역사를 보아 왔고
신의 전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않느냐.
원수를 사랑함으로 신으로서
인간을 위해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랑의 희생을 그도 나와 같이 감당해 왔다.
직접 나 예수의 육신 되어 이 사랑의 희생을
삶으로 보여 주고 있다.
나의 희생의 권위를 세워 준 것이다.
또한, 신부로서
나 예수를 소홀히 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늘 사랑으로 대하며 나를 모시길 간구하여 왔고
나를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 감격해 왔다.
이는 장소불문, 시공을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사랑이
다.
다른 어떠한 사랑의 유혹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
았고
오직 신랑 눈치만 보며 살아온 지고지순한 사랑,
내조를 잘하며, 나의 심정을 딱딱 맞추고
말귀를 잘 알아듣고, 나의 아픔에는
함께 울어 주며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생명들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사랑해 주고 품어 준,
어미와 같은 사랑을 한 나의 신부이다.
부흥강사도 이와 같은 선생을 닮아
나와 선생의 권위를 세우고 나타내며
그 가치성을 잃지 않고, 늘 한결같이 대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실되고, 순수하며,
변치 않는 사랑으로 다가와
마음 실과를 다 준, 나의 신부이다.
섭리사 모든 신부들이 이와 같은 사랑으로
나에게 다가오길 원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신부가 되어 나를 대하길 원한다.
이는 신부의 자격이다.
이러한 신부를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대하는
나 예수가 너희의 신랑이니,
우리의 사랑이 참으로 귀하고 좋지 않으냐.
세상의 저 사랑과 비교가 되느냐.
마치,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과 같은 사랑과
으리으리한 궁궐과 같은 사랑이라고 표현해도
부족할 것 같구나.
선생과 같이 지혜로운 사랑으로 내게 다가오너라.
(“사랑하는 주님,
요즘 진실한 사랑에 대해 깨닫고 있어요.
주님과 섭리 신부들을 향한 선생님의 사랑이
참으로 진실되고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
요.
진실은 반드시 통하고 영원한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 진실되고, 변함이 없는 사랑을 하고 싶
어요.
그런데 주님만 바라보며 살던 자들이 주님을 배신
하고
세상으로 사라진 것을 많이 보면서
주님과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뭐하나 보여 줄까?
(“주님 손에 드신 거요?”)
그래,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것 말이다.
(“앨범이네요.”
주님께서는 짙은 푸른빛이 나고 반짝이는
실크 느낌의 표지로 만들어진,
아주 두꺼운 앨범 하나를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두꺼운 앨범보다 10배는
더 두꺼운 앨범인데요. 주님.”
그래, 여길 보아라.
(주님께서는 앨범을 열어 한 장씩 보여 주기 시작
했습니다.
한 여자 회원의 앨범이었는데, 주님과 선생님과 찍
은
많은 사진들이 보였습니다.
어릴 적 물놀이하며 찍은 사진, 졸업사진, 생일 때
찍은 사진, 섭리에 온 후에도 선생님과 찍은 사진,
사람들과 찍은 사진 등 많은 사진들이 있었고,
단 한 장에도 주님이 함께 계시지 않은 사진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진들이 있네요, 주님.
주님과의 추억을 찍은 사진들이네요.
이 사람은 누구예요?”
저의 질문에 주님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습니다.
저는 뭔가 질문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순간 스치며
당황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과 온 몸으로
슬픔이 스며 나오는 듯 느껴졌습니다.)
나를 등지고 세상 남자 품에 안긴 자이다.
내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이 앨범을 내 가슴에 넣어 두고 그리울 때마다 본
단다.
나와의 추억이 참으로 많은 자이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나를 참으로 사랑했던 자이다.
선생이 나의 육신 되어
나의 사랑을 많이도 전해 주었었지.
여기를 보아라.
(말씀을 듣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있지 않은 표정이었
습니다.
주님은 이 자 앞에서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진에 비해 어떻게 보면
사랑을 나누는 사랑은 아니네요.”)
그렇지 않다.
나 예수는 선생을 통해 말씀을 전해 줄 때,
가장 뜨겁게 사랑 표현을 한단다.
나의 깊은 심정과 사랑이 내가 지극히도 사랑하는
나의 신부에게 전해지는 것을 가장 중히 여긴다.
선생도 이를 알기에 말씀을 받아 외치는 것을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지.
너희가 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멘.’ 함으로 믿고, 순종할 때
너희의 사랑을 내게 보여 주는 것이 되고,
나의 심정을 받고 감격하며 행할 때
너희의 사랑이 내게 온 것과 같으니
비로소 나와 너희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나눈 것이 된다.
여호와께서는 역사를 펴 오시면서
항상 인생들의 중심을 보아 오셨다.
중심은 즉, 마음은 신과 인간이 교통하는 통로이니
내 마음에 네 사랑을 얼마나 가져다 놓았는가를
보고 또 본다.
나 예수는 말씀을 전함으로 가장 많이,
네 마음에 내 사랑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하기에 말씀은 참으로 중하다.
그런데 이 자는 나의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
그저 선생을 통한 나의 사랑만 받기 원했다.
선생을 통해 전해지는 나의 말씀이
바로 나의 진실한 사랑이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육적으로 보여지는 사랑만을
원했던 것이다.
나 예수가 주는 사랑에 대해 진정 무지하였다.
와스디는 왕이 자신에게 사랑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고, 진정 무지하였다.
나 예수가 어떻게 사랑을 주는지도 모르고 무지하
니
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사랑의 곤고함을 느끼고는
나를 등지고 가 버렸다.
모두 선생을 통해 말해 주었는데 말이다.
내가 참으로 이 자를 못 잊어 그리워하고 있다.
때가 되어 지옥문에 들어갈 그녀의 뒷모습을
참으로 볼 수가 없다.
너무나 끔찍하구나.
선생은 이런 나의 사랑을 늘 위로하며
오직 나를 위해 살아 왔다.
나 예수가 곧 재림하여 갖춰진 신부만을 데려가니
애가 타 외치고 외친다,
재림하여도 내 눈에 밟혀 어찌하랴.
그러나 아름다운 꽃도 꽃나무에 붙어 활짝 펴 있을
때에
‘아름답다.’ 하며 애지중지하지,
시들어 꽃나무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는
‘아름답다.’ 하겠느냐.
애지중지 여기겠느냐.
화단 더럽히니 다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지 않겠느냐.
곧 내가 다시 오니,
나 예수의 사랑 나무, 선생에게 꼭 붙어 떨어지지
말아라.
그 불타던 사랑이 식어 사랑 꽃 시들지 말아라.
그리하면 그리워하는 내 마음의 앨범에만 남아 있
지,
구원받지 못하고 영영 이별이다.
그리운 추억의 신부가 되지 말고
실체적으로 서로 살 맞대듯, 영 맞대어
사랑 나누는 신부 되어라.
말씀을 사모하여라.
나 예수가 말씀을 통해 너희의 마음에
나의 사랑을 심는다.
나 예수는 그녀를 잊지 못하나,
그녀는 나를 벌써 잊었구나.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더니,
나를 최고로 사랑한다더니,
나를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더니...
(“주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위로해 드리고 싶어요.”)
행함이 위로이다.
선생은 완벽한 사랑의 표상이다.
그의 사랑을 보고 배워 행하면 완벽해.
그와 같은 사랑을 하여라.
나를 불같이 사랑하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대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하여라.
말씀을 통해 나타나는
내 사랑의 귀함을 알고 심중에 새기며,
나의 사랑을 받고 화답하고 순종하며 행함으로
나의 마음에도 너희의 사랑을 새겨 다오.
우리 서로 사랑을 이리 주고받아 사랑을 키워 나가
고
그러다 나의 재림을 맞아, 나의 팔짱 끼고
신랑이 마련해 놓은 영원한 혼인집으로 가자.
알콩달콩 재밌게 살자꾸나.
나 예수는 진리로 단단히 다져진 사랑을 원한다.
섭리사는 선생을 통한 나의 말씀으로
내 사랑을 온전히 전하니
다른 방계 역사와 전혀 다르다.
그들을 통해서는 나의 사랑을 모두 전하지 못한다.
발판이 안 되어 있다.
그러니 선생이야말로 지구촌 유일한,
나 예수의 사랑의 통로이다.
너희를 지극히 사랑하니 오늘도 선생에게
나의 심정과 사랑을 내려놓는다.
이를 모두 받아 나와 더 사랑하자.
나의 마음의 앨범에 그리운 과거형의 신부가 되지
말고,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현재형의 신부가 되어
라.
선생과 같은 사랑을 하면 된다.
사랑한다.
섭리사 모두에게 나의 심정과 사랑을 내려놓으며
온전한 신부가 되길 원하는 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