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1.11.10 (목)
계시말씀
- 선포일
- 2011.11.10 (목)
- 성경 본문
- 새벽 1:00-3
첨부 파일
- PDF
20111110 계시말씀.pdf
219.8 KB
사도바울과의 만남
- 새 하늘과 새 땅
작성일 : 2010. 11. 15. (월) 새벽 1:00-3:00
작성자 : 주이랑
[ 새벽에 깊은 기도로 계시의 성산을 올라야 하는
것이 너무 막막하기도 하고 힘들게 느껴져서 짧게
기도를 올리고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오신 것이
느껴졌고, 주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
1. 예수님과의 대화
예수님 : 내 사랑아, 왜 그토록 슬퍼하느냐.
( “주님, 제가 주님께 너무 부끄러워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주님의 육이 되어 살기
에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현실의
생활이 조금 고달프더라도 주님 사랑하는 것을 낙
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였고, 주님의
희망이 저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
니다. 저에게 역사하시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100%
믿지 못했고, 가끔 너무 힘들 때면 사망길인지도 모
른 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세상
길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그 누구,
그 무엇도 제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없음을 저는
너무 잘 알기에, 다시금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만,
그렇게 사랑해주셨음에도 주님 심정 헤아려 살지
못하는 제 모습에 주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워 깊은
슬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내 사랑아, 나는 한시도 떠나지 않고
내 눈을 피하는 너의 눈까지 사랑하며 너와 함께하
였다.
너도 알지 않느냐, 너의 깊은 슬픔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너의 깊은 한숨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네 마음이더냐? 아니다.
그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저 사단이로구나.
너의 마음을 속여 너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저 더러운 사단이로구나.
내 눈을 보아라.
나의 음성을 들어라.
내가 지금 너의 앞에 너의 눈을 마주치며 있지 않
느냐.
이것이 너의 환상이더냐.
이것이 너의 망상이더냐.
믿음의 반석을 단단히 하고
다시금 나의 음성을 들어보아라.
너의 넓고도 깊은 마음에 곧게 떨어지는
나의 음성을 느껴보아라.
지금 내가 어디 있느냐?
(“주님 제 안에 오셨습니까? 울림이 더 큰 걸 보니
주님이 제 안에 오신 거 같습니다.”)
그래, 맞다.
지금 너의 육신 안에, 너의 마음 안에
내가 거하였노라.
너의 마음에는
내 정신의 산맥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고,
에메랄드빛 신비한 내 사랑의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따스하고 온유한 너의 성품을 닮은
알곡을 맺어 고개를 숙인 황금빛 너른 벌판이
아름답게도 펼쳐져 있구나.
높고도 푸른 가을 하늘과 같이 잔잔하면서도 고요
하나,
저 푸른빛 바다 깊숙한 곳에는
거대한 용이 웅크리고 있으니
온 천하를 덮을 너의 기백이로구나.
높다란 나의 성산에 너와 내가 올라
네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면
참으로 웅장하고도 아름답고 신비한데,
너는 왜 그리도 땅에서 쉼 없이 모래만 파며
갈 곳 몰라 방황하느냐.
파고 또 파도 모래만 가득한 네 마음 바닥에서
왜 홀로 아파하고 슬퍼하느냐.
내 손을 잡고 다시 오르자.
갈 길이 멀구나.
다시금 정상에 올라 온 천하를 나와 함께 굽어보며
나의 말을 남기자.
이는 환상이 아니다. 이는 망상이 아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나 예수는,
네 마음 판에 이야기하는 나 예수는
실체의 신이요, 본체의 신이요,
온 천하 만민이 우러러 보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다.
(“주님, 정말 주님의 육신이 될 수 있을까요? 주님
은 좋은 점만 말씀하시나, 제가 제 마음을 바라보니
버리고 또 버려도 다시 자라는 잡초들이 무성하기
만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주님 품에 안겨
재림을 맞이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모두가 다 앞을 향해 나아갔는데, 저만 제자리걸음
인 거 같습니다.”)
너의 책임이 무엇이냐.
휴거되는 것이냐, 재림을 맞이하는 것이냐.
아니다.
택하는 것도, 기르는 것도, 나의 육신 삼는 것도,
휴거시키는 것도, 재림을 맞게 하는 것도
나 예수의 책임이다.
너의 책임은 끝까지 포기치 않는 것이요,
나의 말에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사랑아. 걱정 말아라.
내가 너를 어련히 알고, 어련히 이끌지 않겠느냐.
내 사랑아.
내 오늘 너에게 친구를 소개해 줄게.
사랑하는 너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네가 무척 좋아할 선물이 될 게다.
지금 너와 내가 있는 이곳에
네가 좋아하는 바울을 초대하자.
예전에 대화를 나눠봤으니 어색하지 않을게다.
그러니 깊은 대화를 나눠보아라.
그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 게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너무 신기해서 가만히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지난번에 만나보았던
사도바울의 음성이 들려왔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
니다.)
2. 사도바울과의 대화
주님의 신부여,
주님의 평강이 당신에게 충만하길 빕니다.
나를 기억해주시고,
역사의 한 자리에 나를 초대해주시니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나의 주님은 지금 당신 오른편에 앉아
지긋이 당신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는 그 옆에 있지요.
내가 느껴지십니까?
(“네, 느껴집니다. 분명 사도바울 당신인 줄 믿습니
다. 그리고 혹여 아니라 해도 믿고 싶어요!”)
사랑하는 주님의 신부여,
믿음은 100%입니다.
100%가 아닌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코 추측이 아닙니다.
믿음은 다리와도 같습니다.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육계와 영계를 연결해주는 다리입니다.
고로 100%가 아니면
결코 그 다리는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리하니 다시 말씀해보세요.
당신은 지금 나의 주님과 내가
당신 곁에 있음이 느껴지십니까?
(“네, 느껴집니다. 믿음의 눈으로 느끼고, 사랑의 눈
으로 느낍니다. 아니요, 이건 실체입니다. 영계에
오른 저는 지금 이 순간이 실체세계입니다.”)
맞습니다. 육계에서는 영계가 꿈일지 모르나
영계에서는 육계가 꿈과 같은 세계입니다.
영계에 오면 육계에서의 모든 인생은
아련한 추억과도 같이 마음 한켠에
따스함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마치 내용은 기억나지 않으나
행복했던 꿈과 같이 느껴지지요.
그러나 주님이 허락하시면
육계에서의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세밀히 떠오르게 됩니다.
특히 주님과 함께 육계로 내려와
육계의 역사를 이루는 지금과 같은 순간에는,
2000년 전 육을 지니고 있던 그때처럼
생생하게 육계의 기억이 떠오르지요.
주님의 신부여, 믿음을 지니세요.
그 믿음으로 인해 당신의 세계가 달라집니다.
당신과 나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나는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도 진솔하게 당신과 대화할 테니
당신도 진솔하게 나와 대화해주세요.
(“사도바울님. 당신이 지금 내 곁에 있음이 너무나
꿈만 같습니다. 당신이 아실지 모르지만, 저는 12살
때부터 19살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3
장 이상씩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받은 구절을 노트
에 적어놓았지요. 그때 제 노트를 가장 많이 채운
성서의 구절이 바로 당신을 통해 주님이 기록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10대 때 매일 기도할 때면,
저도 사도바울처럼 온 천하를 누비면서 예수님과
선생님을 증거하고 싶다고, 꼭 그렇게 살 테니까 나
중에 영계 가면 사도바울 꼭 소개해달라고 기도했
던 것이 생각납니다. 정말 팬이었어요, 사도바울
님!”)
왜 당신은 내가 기록한 서신들에
그토록 감동을 받았습니까?
(“당신을 통해 나타나는 주님은 너무나 따스했고,
너무나 확신에 차있으면서도 그 글들은 너무 아름
다웠어요. 결코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 있게 주
님을 증거하며 무엇보다 서신으로만이 아니라 온
땅을 누비며 실체로 주님을 증거하며 살았던 당신
의 삶도 감동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단단한 확신 속에
주님의 음성을 기록하였습니다.
폭포와 같이 내 골수에 내리꽂는 주님의 음성을
나는 단단한 믿음의 바위 위에 애절한 사랑으로
깊이깊이 새기었습니다.
나는 결코
‘-일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신으로 존재하시는 주님은
실체였습니다.
육으로 주님을 뵈었다 하나
영으로 거듭나지 못하여
영으로 주님을 뵙지 못한 자들은
나의 말에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영의 세계는
육계의 세계보다 더 실체적인 세계였고,
영으로 존재하시는 주님은
육을 쓴 주님보다 더 실체적인 주님이셨습니다.
그 광명한 빛이 내 눈을 멀게 하였고,
그 사랑의 숨결이 내 숨을 멎게 하였습니다.
영계의 세계를 거닐다 육계의 세계로 내려오면
오히려 육신이 거하는 이 세계가 더 꿈과 같았습니
다.
그분의 음성은 내 마음과 정신의 단단한 바위들을
산산조각 부서뜨렸습니다.
내가 추구하던 신념과 내가 사모하던 가치,
그리고 나의 믿음, 나의 신앙, 나의 종교까지도
산산조각 가루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육계의 삶의 터전을 버리는 것은 오히려 쉬웠습니
다.
내 마음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는 것이 더 무서웠습
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것을 무너뜨린 후
어떤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나의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었
습니다.
정말 큰 결심이었습니다.
정말 큰 용기였습니다.
주님은 내가 내 마음에 지은 모든 길을 허물어 버
렸고,
내가 지은 모든 바벨탑을 무너뜨렸습니다.
나의 꿈, 나의 가치, 나의 신념, 나의 지조,
나의 믿음, 나의 사랑,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마다
나는 두려워하였고, 또한 부끄러움에 통곡하였습니
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마음의 자리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주님의 신부여,
나는 너무 외로웠습니다.
너무나 추웠고, 너무나 고독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여호와’그분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리라 믿었습니
다.
사랑의 신이요, 화평의 신이요, 권능의 신
여호와가 나를 구원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나의 주님께서
찬란한 빛이 되어 나의 눈을 뜨게 하셨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내게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의 신부여,
당신에게 주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의 마음이 새 땅이요,
당신이 곧 입성할 제3천국이 새 하늘이라 말입니
다.
맞습니다.
모든 것을 비운 그 마음에
새로운 주님의 땅이 찾아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마음에 새 하늘이 찾아옵니
다.
그 하늘은 당신이 사랑하는 육계의 하늘이 아닙니
다.
저 찬란한 셋째하늘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신부여,
믿음으로 모든 것을 부수고 새 땅을 밟으십시오.
그리고 희망으로 새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이것이 나의 신앙고백입니다.
(“너무너무 눈물이 납니다. 맞습니다. 모든 것을 버
릴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찾아옵니다. 주님도 제게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님. 저도 가끔 외로
울 때가 있습니다. 제 곁에 주님이 계시고, 선생님
도 계시고 저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고마운 섭리
분들도 있는데 가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많
아 그런가 싶어 사람들을 만나 속이야기도 해보지
만 결코 풀리지 않아 요즘은 애가 타게 주님을 찾
고 성령을 부르짖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당신
은 역사를 뛰면서 느끼는 외로움을 어떻게 푸셨습
니까?”)
주님의 신부여,
당신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고독한 것입니다.
외로움은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순간 흔들리는 것이라면,
고독함은 내면에서
당신의 마음을 깊이 파기 위해 출렁이는
깊은 파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파도로 인해 아픈 것은
그 파도를 타고 당신을 힐문하고자 쫓아오는
더러운 사단의 무리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나도 두 손과 두 발을 다 묶인 채
홀로 감옥에 있을 때면,
가끔 마음 깊숙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파도가 내 마음을 뚫고 밀려오기 시작하면
나도 벽에 얼굴을 기댄 채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주님을 육으로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잘못된 신념으로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쫓아다니며 힐문하고
감옥에 투옥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죄인 중의 죄인을
주님은 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너는 나의 영의 사도니,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여라’말씀해주셨습니다.
나는 영으로 주님을 만나
영으로 존재하시는 주님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습
니다.
그러나 육계의 나의 동료들은
내가 혹여나 또다시 변질되어 그들을 고발할까 싶
어
나를 두려워했고, 나를 미워했으며,
끊임없이 의심하였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 가운데
‘너는 나의 사도다’ 말씀하셨지만
나의 동료들은 쉽게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길도
육은 누군가와 동행할지 몰라도
마음만은 늘 혼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내 진심을 받아주지 않는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신부여,
내 마음의 친구가 없다고 느낄 때
나의 주님이 나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고독해서 홀로 눈물을 흘릴 때,
영의 눈을 뜨지 않을지라도
믿음의 눈으로 주님이 곁에 계심을 느꼈고
나는 그것을 실체라 확신하며
더욱 앞으로 전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의 육신에 거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나는 그 가운데 평안과 평강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주님의 미소가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주님의 그 미소가
나에게도 찾아온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여,
육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마음도 절대적인 하나가 될 수 없습
니다.
이는 창조의 법칙입니다.
고로 인생은 외롭습니다.
단지 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으로 그 외로움을 감추고 덮을 뿐입니
다.
당신 역시 인간이기에 외롭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한
그것은 한낱 허무한 바람과 같은 외로움이 아니라
깊은 고독감이 되어 당신을 성장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오래도록 고독에 빠져있으면 안 됩니
다.
그 고독의 파도에 함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불로 당신을 휘감아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독의 파도가 당신의 마음을 깊이 파는
동안
그 모든 파도에 맞서 있지 말고
더 차원 높여 굽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과 마음은 하나 될 수 있고,
마음과 육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에 주님을 찾으십시오.
당신이 그러했듯 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절규하듯 주님을 부르며 성령의 불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주님과 함께 한 단계씩 올랐습니다.
당신 마음의 흔들림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흔들리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님을 찾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끄러움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리 자신 있게 주님의 말씀을 외
칠 수 있었습니까? 저는 선생님께서 확인해주신 계
시에 대한 100% 믿음이 있지만, 가끔은 제 마음의
음성이 제 생각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에 생활 가운
데 더 많은 주님과의 대화를 나누지 못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계시니 제 모든 계시를 확인해주시지만
당신은 당신에게 주시는 감동과 계시를 어떻게 그
렇게 100% 확신했습니까?”)
주님의 신부여,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의 감동과
나에게 주신 계시가 틀리면 어쩌나
움츠러들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을 온전히 주님 앞에 드렸기에
혹여 내가 실수한다 하여도
주님이 뜻대로 인도하사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감동은 제 개인의 욕심과
개인의 역사를 위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를 위해
주님이 제게 주시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혹여 내가 실수하여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실 것에 대한
사랑의 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펜 끝을 들 때부터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입술을 떼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
르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모든 말씀이
육계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확인이 제 믿음을 더해주었습니다.
주님을 찾음으로 제 마음은 선이 솟구쳤고,
의가 솟구쳤고, 진리와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길어 올린 주님의 말씀은
선이었고, 의였고, 진리였으며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의 신부여,
당신의 두려움을 압니다.
그러나 당신의 펜 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말고 당신의 스승에게 자주 묻고
더 많은 것을 배우십시오.
당신이 물을 때,
그의 입술과 그의 펜 끝을 통해
여호와가 응답하십니다.
그 말 한마디에 천지가 뒤바뀌고,
당신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스승 곁에 머물며
그에게 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또 배웁니다.
당신은 당신 스승이 이룩한 세계를 보았습니까.
그의 마음과 정신이 이룩한 세계를 보았습니까.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과 신비함이
여호와가 거하시는 셋째하늘의 궁전과도 같이
형언할 길 없습니다.
제가 거하던 시대나 당신이 거하는 시대나
여전히 사람들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난무하는 온갖 말과 사상이
천국과 지옥이라는 실체의 세계를 가리고
본질을 감춥니다.
그럼에도 천국과 지옥이라는
실체의 세계는 사라질 수 없고,
당신 스승의 육신을 쓰고 역사하시는
나의 주님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는 ‘사실’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는
‘구원’을 좌우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두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신부여,
결코 두 길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은 실체입니다.
당신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외쳐주십시오.
당신 마음에 이는 파도로
당신 마음을 더욱 깊이 파고 넓게 이룩하여
당신 스승을 증거하십시오.
(“당신은 나의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우십니까?”)
나는 그리스도를 배웁니다.
내가 육으로 보지 못한 나의 주님의 육신의 삶을
당신의 스승을 통해 보고 있고,
내가 차마 다 이해하지 못했던 육신 쓴 주님의 심
정을
당신의 스승의 마음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육의 환란, 정신의 환란이 더해질
때
나의 주님께 당신의 품으로 나를 이끌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참혹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동료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짖는 자는
극렬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성령이 나의 몸을 휘감지 않으면
너무 두려워 이가 덜덜 떨릴 때도 있었습니다.
홀로 있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추웠고,
너무나 아팠으며,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와
“진정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그리스도의 역사가 맞습니까?”물을 때였습니다.
동료를 잃고 돌아와 얼굴엔 눈물자국이 가득한 채
절규하듯 나에게 질문을 건네던 그의 눈을 나는 기
억합니다.
이에 나는 대답했지요.
“당신의 마음이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가 주저앉아 통곡하며,
“맞습니다. 내 마음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제발이나 이 길이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니라고
내게 말해주면 좋겠습니다.”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한참을 얼싸안고 울었지요.
그렇게 이룩한 역사입니다.
주님의 신부여, 우리도 두려웠습니다.
우리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아팠고, 우리도 외로웠습니다.
우리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스승은 육신을 쓰고
그 모진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면서도
나의 주님께
“오래도록 이 땅 가운데 건강히 거하며
주님의 일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드리셨습니다.
그의 무거운 십자가를 내 감히 알기에
스승의 고백에 절로 고개를 숙이며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사랑이지요, 그것이 그의 사랑이겠지요.
주님의 신부여,
당신의 스승 역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애틋한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 사랑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을 통해 이루려는 여호와의 뜻, 주님의 뜻,
그리고 당신 스승의 뜻을 멋있게 이루십시오.
계시는 결코 깨달은 만큼 밖에 받지 못합니다.
온몸으로 온 맘으로 주님의 인생을 살아보지 못하
면
결코 받을 수 없는 것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주님의 계시인 것을 당신이 알 것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당신에게 고통과 고독이 찾아온다
면
기뻐하세요.
당신을 통해 주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쓸쓸함이 가시지 않는 한,
당신의 쓸쓸함도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당신의 고통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니
그 고통과 슬픔에 함께 참예하길 바라시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신부여, 저는 이만 가야 합니다.
나의 주님이 당신께 전할 말이 있다고 하십니다.
당신의 질문에 한 가지만 더 대답하겠습니다.
(“사도바울님, 좀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당
신은 글은 잘 썼는데 언변이 좀 약했다는 말을 학
교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러했나요?”)
하하, 맞습니다.
저는 언변에 약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실은 주님의 말씀을 외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여 그랬습니다.
주님의 신부여,
나는 여호와의 축복으로
당대에 부유한 가정에서 엘리트로 성장했습니다.
나는 지도층이었으며, 지배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을 때
나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에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고달픈 하층민이었으나
그들의 얼굴은 평안이 가득하였고,
그들에게는 학문의 지식은 없으나
그들은 진리의 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청중 속에서 혁명을 보았고,
그것은 무력이 아닌 사랑의 혁명이었기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이 벅차올라 말문이 막힐 때가 많았
지요.
나는 말이 아닌 가슴으로 주님을 증거하였기에
나의 어눌한 언변이 아닌 심정과 사랑을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자랑이 되었지요.
주님의 신부여,
광명의 시대가 곧 밝아옵니다.
서둘러 주님을 맞이하여, 그의 말을 기록하십시오.
당신을 통해 전하시는 그 말이 역사를 증거할 것입
니다.
사랑합니다. 주님의 신부여,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겠습니다.
여호와께 영광을, 그리고 나의 주님께 사랑을 드립
니다.
- 당신의 좋은 친구, 사도바울
3. 예수님 말씀
내 사랑아.
나의 신부, 바울과의 만남이 어떠했느냐.
그의 말에는 결코 머뭇거림이 없다.
그의 육계에서의 인생 역시 그러했으며,
나를 증거하는 그의 입술 역시 그러했다.
나는 그를 얻음으로, 로마를 얻을 수 있었다.
왜 그러한 줄 아느냐,
그의 정신을 가로지르고 있던
유대주의와 헬라 철학의 큰 강을
나는 그를 얻음으로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신이 지구의 축소판이듯,
그의 정신은 당대 인류 정신사의 축소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정복함으로
육계의 땅도 정복하게 된 것이다.
이는 깊고도 깊은 말이란다.
인류는 이제 육계의 땅이 아닌
정신의 땅을 정복하는 싸움이 될 것이다.
이미 인간들은
신비로운 정신세계의 지형도를 그리며
정신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지 않느냐.
온전히 휴거에 참여하여 의의 편에 서지 않는 이상
인간의 정신 가운데 임할 새 땅
곧 천국의 땅을 밟을 수 없으며,
너희가 우러러볼 새 하늘
곧 셋째하늘을 맛볼 수 없다.
나는 초림 때와 같이 육신을 쓰고 강림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이 땅이 나의 육신이 아니다.
나는 새 땅인, 인간의 마음 가운데 강림할 것이요,
내가 너희 마음을 정복하여 새로운 천국을 건설하
나니
이는 그동안 인류가 맛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기쁨이요 행복이 될 게다.
이에 사단은 또다시 한끝 차이로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러운 것들로
너희 정신을 정복해 나갈 것이니,
그것이 쾌락이고 향락이다.
내 사랑아, 한끝 차이다.
그만큼 두려운 시대가 지금이다.
오직 나의 안에 거하여라.
더욱 절대적으로 내가 역사하련다.
그러니 네 마음을 나에게 맡겨라.
결코 네 마음을 속이지 말고,
네 사랑을 속이지 말아라.
이미 너의 마음은 내 것이 아니더냐.
사랑한다. 너에게 충만한 사랑을 더하고 간다.
내 사랑아, 내가 요즘 아주 바쁘다.
그러나 사랑하니 너의 곁에 머물다 간다.
안녕, 내 사랑아, 내가 너와 함께한다.
- 너의 영원한 신랑,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