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1.11.22 (화)
계시말씀 b329396c
- 선포일
- 2011.11.22 (화)
- 성경 본문
- 오전 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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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2 계시말씀_b329396c.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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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안에 있는 나 예수를 살려다오
작성일: 2011. 6. 28 (화) 오전 7:17~8:00
작성자: 정은조
[ 지도자 모임 가운데 하나의 안건을 놓고
형제들 사이에 목소리가 높아진 일이 있었습니다.
모임을 시작하며 대표기도를 할 때, 예수님과 선생
님의
영이 친히 모임에 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는
데
모임이 그렇게 되어 버려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 들
었습니다.
모임이 끝날 때, 예수님께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시고 가셔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다음날 새벽, 어제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치를 생각하니 죄송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
다.
예수님의 마음을 풀어 드리지 못해, 새벽예배 이후
에
혼자 남아 계속 기도했지만 좀처럼 예수님의 마음
을
풀어 드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알아 드려야 풀어지시겠다
는
감동이 들어, 즉시 삼위 의자 앞에 앉아 다시 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아픔 제가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 때 주신 말
씀입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는 자야, 내가 글을 줄 테니 급히 써 보아라.
내가 주는 글은 나 예수를 드러냄이요,
나 예수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니
온전히 귀하게 여기고 받아쓰고 전하여라.
사랑아, 너의 생명이 어디서 났느냐?
내게서 났느냐? 네게서 났느냐?
(“당연히 주님에게서 났습니다.”)
그럼 그 생명의 권한은 누구에게 있느냐?
(“당연히 주님께 있습니다.”)
그렇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참 모르고 산다.
모르고 산다.
그들 자신의 생명이
그들 자신의 것인 줄로 알고들 사는구나.
오늘 하루 그의 인생으로 알고
그의 인생을 영위하는데 급급해 하는구나.
이것은 나의 뜻을 안다고 하는 자들 또한 마찬가지
다.
이것을 기억하여라.
너희가 늘 잊고 사는 이것을 기억하여라.
너희 생명은 나에게 있다.
그리고 나의 생명은 너희에게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생명의 운명체인 것이다.
너희를 통해 내가 살아나고 싶은 그 마음을 알아
다오.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내가 살아나고 싶은 마음 알아 다오.
그것이 어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국한되
겠느냐.
나 예수를 알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나 예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나는 너희를 통해 살아나 말해 주고 싶고 안아 주
고 싶다.
그러나 내 육으로 살겠다 하는 너희들이
그런 나의 마음 잊은 채 서로에게 함부로 대할 때,
특히나 나의 일을 위해서 열심을 내느라
서로에게 함부로 대할 때
그 순간 나 예수의 생명은 빛을 잃는다.
너희 안에 있는 내가 죽는다.
단순히 그 자리에 있던 나 예수가
민망해 발길을 돌리는 차원이 아니다.
그 순간 너희 안에 있던 내가 죽어 너희도 죽는구
나.
사랑하는 자야, 이런 광경이 어제가 처음은 아닌데
왜 어제 그렇게 죄송했을까?
왜 어제 유난히 너의 마음에 내 마음이 보였을까?
네가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다.
네가 쥐고 있던 것을 비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받는 자, 즉 나의 심정을 받는 자는
자신의 것을 버려야 한다.
사랑아, 나의 말씀을 계속 받자.
나의 심정의 말을 해 줄 테니 잘 들어라.
생명, 그 고귀한 이름.
내 하나님 아버지가 태초에 너희를 계획함은
참으로 크고도 큰 영광을 기대한 일이었다.
너희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너희의 온 몸으로 온 맘으로
늘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
지상천국의 역사를 이루려 너희의 생명을 창조했다.
그러나 너희 안에 생명이 없으니 그 영광도 없었다.
즉 너희 안에 하나님 아버지가 없으니
너희는 죽은 인생으로 전락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타락이다.
너희 안에 하나님 아버지가 없어 육으로 돌아가는
순간
너희의 열심도 열정도 사랑도
다 부질없는 허상에 불구하며
오히려 사탄에게 쓰임받는다.
그래서 오히려 나를 더 찌르고 상처 내는구나.
(말씀 주시기 직전에 보여 주셨던 환상이 떠올랐습
니다.
예수님이 몸을 30도 정도 트시고 양팔로 무언가를
가리신
모습이었습니다. 무엇을 가리셨는지 궁금해하니 예
수님께서
팔을 활짝 펴서 보여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가린 것
이
없이 하얀 세마포밖에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
네?’
생각하는 순간, 그 세마포 속이 보였습니다.
하얀 세마포 속에는 무언가에 찔려 예수님의 몸에
서 난 피가
흥건히 묻은 세마포 옷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는데 그런 피 묻은 세마포 옷이 여러 겹 겹쳐
져
있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찔리신 건가 생각
하니
가슴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그래. 나는 너희의 창에 많이도 찔렸다.
너무도 많이 찔려서
내 새하얀 세마포가 붉은 피로 물들었구나.
너희가 나를 사랑해서 뜨거운 사랑 줄 때
나도 너희도 살지만
너희 안에 내가 죽는 순간
너희의 열심과 열정은 오히려 나에게 칼로 돌아온
다.
상대에게 날린 사랑 없는 말이 검이 되어
나 예수의 가슴에 찔린다.
상대에게 날린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생각이 비수
가 되어
나 예수의 가슴에 박힌다.
너희 안에 내가 죽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 순간 상대 안에 있던 나 예수가
그 검을 맞고, 그 비수를 맞고
나는 또 죽는다.
너희 안에서 한 번, 상대 안에서 한 번
두 번을 죽는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이들 안에서
나는 또 여러 번을 죽는다.
나는 이렇게 매일 죽는구나.
그래서 나의 세마포를 들쳐도, 들쳐도
피 묻은 옷이 겹겹이 나오는 것이다.
네가 한 번, 네가 한 번...
돌려가며 서로서로 상대를 찌를 때마다
그 안에 있던 내가 죽은 상징이다.
사랑아, 내 말이 무서우냐?
(“네. 저희는 참 더 살아서는 무익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러나 생명,
하나님이 기대하신 참 생명을 가진 너희가
또한 나를 살릴 수 있다.
그것을 알지 않느냐.
나를 살려 다오.
너희 안에 있는 나를 살려 다오.
그리하여 상대 안에 있는 나를 살려 다오.
(“예수님, 좀 더 쉽게 표현해 주세요.”)
너희 안에 있는 나 예수의 모습을 서로에게 표현해
다오.
살아 있는 나 예수를 너희의 모습에서 느껴지게 해
다오.
그 모습에
상대 안에 있던 나 예수의 모습이 또한
보일 것이요, 살아날 것이다.
너희 선생이 늘 나의 모습을 보여
그 삶이 늘 살아 있는 나의 삶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런 삶을 살아 다오.
선생의 삶.
진정 나를 살리는 삶이지 않느냐.
그 안에서 나는 제일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아 있다.
너희 한 사람 한 사람도
그런 내 몸이 내가 거할 성전이 되어 다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의 육의 성전이 되어 다오.
이 시대 가장 큰 자연성전 월명동이
나를 품어 내가 살아 숨 쉬게 하듯
이 시대 가장 좋은 육의 성전 선생이
나를 자유롭게 살게 하듯
너희도 그런 인생이 되어 다오.
선생은 그 좁은 곳에 갇혀 있어도
나는 선생 안에 있을 때
가장 넓고 자유롭게 살아날 수 있다.
그의 생각이 정신이 매인 곳이 없기 때문이며
나를 죽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내가 죽을 일이 없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부담 없이 그에게 간다.
그럼 그 안에서 나는 살아나 역사할 수 있지.
수많은 일들을 그 안에서 그 몸을 쓰고 하고
수많은 생명들을 그 육을 쓰고 살린다.
갇혀 있으나 갇힌 곳이 아닌 그 곳에서
나 예수도 살고, 선생도 살고,
너희 섭리사, 이 시대가 다 사는 것이다.
그런 인생이 되어라.
나 예수를 살리고, 선생도 살리고,
너희 자신도 살리고, 상대도 살리는 너희가 되어라.
우리 모두가 한 생명이다.
나 예수와 너희.
나 예수와 선생.
선생과 너희.
너희와 상대. 섭리사. 이 시대...
모두가 한 생명이다.
너희 안에 내가 죽음은 너희의 죽음이요
이로써 상대의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잘 기억하여라.
선생 한 몸의 살아남이
그 얼마나 많은 인생들을 살려 내고 있는지.
너희 안에 내가 그같이 살아날 때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난다.
섭리사 전도 열심히 하지?
그만큼 관리도 열심히 하지.
그러나 내가 죽은 전도와 관리는 다 허사다.
내가 살아 있는 전도와 관리를 해.
형제에게 함부로 대하며
새로 전도한 생명에게만 잘해 주는 것은
여기도 저기도 나는 없는 행위이며 나 예수는 죽고
만
죽은 전도와 관리다.
잘 기억해.
너희의 죽은 열심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 생명 한 생명 내 말 듣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나를 살리지만
그렇지 못할 때 나는 너희 안에서 죽는다.
단순히 복음 전하지 않음을 책망함이 아니다.
너희의 삶에서 내가 살아나느냐 못하느냐는
너희 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
너희 한 마디 말, 표정 하나, 생각 하나...
다 내가 살아 숨 쉬게 해 다오.
나를 사랑하여 열심히 하는 자들
특히나 더 부탁한다.
너희 안에서 나는 진정 살고 싶다.
나를 죽이지 말아 다오.
제발 나를 죽이지 말아 다오.
이렇게 살려 달라고 하는 나 예수를 죽이지 말아
다오.
너희의 가슴 안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던 나 예
수가
서로가 날린 검으로 서로의 가슴 속에서
두 번이나 피 흘리며 죽지 않게 해 다오.
제발이다.
이렇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나 예수의 심정을 잊지 말아 다오.
강도 앞에서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자의 심정을 아느냐?
나는 지금 사랑하는 너희 앞에
무릎 꿇고 살려 달라 애원한다.
제발이나 나를 살려 다오.
너희 가슴 안에, 상대 가슴 안에 있는
나 예수를 살려 다오.
이것이 너희 선생을 살리는 일이요,
너희 또한 영원히 사는 일인 것이다.
나 예수는 영원히 너희 안에 거하고 싶다.
한 순간도 떨어지기 싫다.
너희도 그러함을 늘 기도하지?
그러하면 이제는 너희 안에 있는, 상대 안에 있는
나 예수를 살려 주고, 나 예수의 생명을 지켜 다오.
섭리사, 나의 생명 된 사랑하는 너희들아,
사랑하는 내 피와 살 된 너희들아,
너희들의 몸 안에서 부디 영원히
나 예수가 온전하게 살게 해 다오.
사랑한다.
사랑해서 너희에게 떡과 포도주를 떼어 주었던
그날 밤을 기억하며 나 예수가 말하노라.
(“주님, 저희는 너무 죄인이에요. 어떡하죠?”)
계속 회개하여라.
계속 내 마음 푸는 자 있어야지.
너의 자리를 지키어라.
죄송해서 혼자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네 모습이 안쓰러워서 내가 준 글이니
섭리사 전체에 알리어서
그들도 모두 이런 나의 마음을 알게 해 다오.
(“네. 주님, 감사해요.
상대에게 함부로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제 안에 있는 주님을 죽여서 제가 먼저 죽고
상대 안에 있는 주님을 죽여서 상대도 죽인다고 생
각하니
이젠 끔찍한 살인마와 같은 삶을
진정으로 회개하고 청산하고 싶어요.
깊게 깨우쳐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해요.”)
오늘 본 환상을 절대 잊지 말아라, 절대!
섭리사 잘 될 수 있는데
하나 되지 못해 놓친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 되어야 대역사가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렇지 못해 각 교회, 개인이 찌그럭대니
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구나.
온전히 나 예수가 너희 안에 살아 움직여
대역사를 이루길 원하노라.
사랑한다.
너희의 사랑하는 신랑, 나 예수.
이 말씀 줬으니 이제 삶에서 볼 것이다.
이 말 또한 전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