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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1.12.08 (목)

계시말씀

선포일
2011.12.08 (목)
성경 본문
오후 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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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적함이 무엇인지 늘 점검하라 작성일: 2011. 10. 17 (월) 오후 8:25 작성자: 천란 목사 [ 영원불변하라는 말씀을 듣고 육적으로 흐르는 제 자신과 세상의 것들을 보며 가슴 답답함으로 기도하 였습니다. 쉽게 변하는 모습이 늘 낙심되게 하며 주 님 뵙기에도 민망하니 “주님. 주님의 생각을 알게 해 주시고 주님의 마음 알게 해 주세요. 주님의 생각을 닮아 그 삶마저도 온전히 닮고 싶어요.” 고백하며 기 도하였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하는 자야. 세상이 무엇을 목적 두며 목표 삼으며 전진하고 있 느냐. 참으로 보이는 육적인 발판의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결국 나이 들고 시간이 흘러 느끼는 것이 ‘나이 먹고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 돈도, 명예도, 학벌도, 가지고 있는 것이 차고도 넘친다 한들 그것이 나의 인생을 기쁘게 하는가?’ 하고 생각들 한다. 젊었을 때 인간들은 참으로 부와 명예, 사랑과 향락을 취하고 누리며 갈망한다. 부족할 거 없이 그런 인생을 산 자나 부족하게 그런 인생을 산 자나 결국엔 그 한 인생 만족하며 인생 마감하는 자 없다. 세상이 그 한 사람을 인정해 줘도 나 예수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기쁨도 희망도 없는 인생인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바로 그 영이 느끼고 슬픔에 잠기기 때문이다. 나와 교통되지 못하고 사는 영은 슬픔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 존재가 사는 방법이 나 예수와 호흡하며 사랑하며 내 나라에 오는 것이 희망이요, 소망인데 일평생 그에 속한 삶을 살지 못한 영이라면 그 삶이 궁핍하고 초라한 것이다. 인생들을 보아라. 왜 허망하고, 또 허망해서 이것저것에 시선을 돌리며 어느 곳에서 만족을 찾으려 하느냐. 나 예수에게 속한 삶이 만족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하나 너의 육이 느끼는 수준의 표현이 만족이요, 보람이요, 기쁨이요, 행복이라 말하는데 어느 곳에서 그와 같은 것을 찾고 소망하겠느냐. 육의 것은 썩어 없어진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너희의 인간의 육신도 결국엔 썩어 없어질 것인데 그 육의 존재만을 위해 그 육의 치장과 만족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정말이지 허무하고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이 의미 없이 초라하게 사라지고 육적인 모든 것이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 예수가 너희 선생을 통해 이미 가르쳐 주고 일러준 것이 너희 육만을 위해 살지 말고 영원한 생명 되는 너의 영혼을 위해 살아라 하지 않았느냐. 영원한 것을 위해 사는데 그 과정의 어려움으로 쉽게 포기하고 변하고 변질되겠느냐. 그리 쉽게 변하는 자는 나를 사랑함이 여전히 부족하고 서툰 자요 자신을 사랑하고 또 자기 자신의 무한한 가치에 대 해 모르고 무지한 자이다. 늘 너희의 목적을 생각해 보아라. 너도 생각해 보아라. 몸 하나 만들기 위해 일주일을 운동했다. 팔다리가 단단해지고 근력이 생기니 몸 만들기에 재미가 나고 맛이 들려 하지 않느냐. 그러나 금세 환경이 안 돼서, 시간이 안 되서, 몸이 지쳐서 하지 않고 네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지금 몸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네 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임을 스스로 알기에 스스로 기도하고 몸부림치지 않느냐. 육의 생각을 잡는 것은 바로 영의 생각이다. 어찌 영의 생각을 육이 잡을 수 있겠느냐. 한계가 있는 것은 영원한 것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늘 무엇을 목적 두고 생각하고 행하느냐가 중요하다. 나 예수는 늘 영원한 것을 목적 두고 행하며 역사한 다. 이 역사도 천 년 역사 영원한 생명길을 위한 터전과 발판으로 네 선생을 쓰며 역사하는 것이다. 선생의 고통과 희생을 몰라서 복음에 매인 바 되게 두는 것이 아님을 알아라. 나를 오해하는 것이 육의 생각으로 나를 묶어 두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무엇인지 내게 물어 보아라. 쉽사리 판단하는 오만을 버리고 나 예수에게 묻고, 왜 변치 않는 영생길이 될 수밖에 없는지 묻고 간구하여라. 실로 육적일수록 변하기 쉽고, 영적일수록 나 예수와 생각을 합하고 나를 닮아 변하지 않는다. 네 자신을 탓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제를 내게 묻고 간구하여라. 육적인 것은 육적인 것으로,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풀어야 되지 않겠느냐. 사람이 정신의 힘이 큰데 정신을 다스리는 것은 오직 영의 말씀이요, 내 마음을 알 때 잡히고 바로 세워지게 된다. 네가 속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시정할 것을 시정하여라. 나 예수는 늘 쳐다보고 확인하고 점검하지만 네가 간구하고 깨닫고자 기도하며 눈물 흘리고 내게 간구할 때 깨우쳐 준다. 나는 공의의 주 예수니라. 늘 내게서 배우기를 소망하는 너희 선생처럼 너희의 표상자의 길을 따라 행하여라. 표상자의 육적 환경만 보지 말고 그의 영적 차원과 세계를 가늠해 보아라. 느끼고 아는 자만이 그의 위치와 수준을 깨닫고 놀라 뒤로 넘어가는 지경까지 될 것이다. 네 고백의 입술의 차원마저 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섭리의 신부들아. 조금 더 박차를 가하자. 조금 더 내게 집중하자. 끝 날에는 섭리사가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하지 않겠느냐. 저 악한 세계, 나의 신부들을 꾀어내는 자들에게 외쳐 주어라.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온 것은 우리의 삶의 끝이 이제 보이는 것으로 다 채워지지 않음을 인정하라. 왜? 이 시대가 그 차원이 달라진 때요, 완전한 사랑 복직의 역사만이 온전한 삶임을 너희의 신앙과 시대 복음으로 증거하여라. 외쳐 줄 자가 필요한 이때이니라. 이 시대 궁핍함에 쌓여 영원한 생명을 간구하고 찾는 자가 많다. 그물을 던질 자가 필요하다. 선생 혼자 다 못한다. 애타는 선생과 나 예수의 심정 알고 끝까지 하는 자, 끝내 해내고야 마는 자가 그에 합당한 나의 축복 역사 받기에 합당하지 않겠 느냐. 과정이 결과이다. 과정까지 온전케 하는 섭리사 나의 신부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주 예수니라. 사랑한다. 안녕. (이어 주님께서는 시대 영원불변의 모습을 가지고 오 직 주님 사랑의 표상자로 그 사명을 다하시는 선생 님을 증거하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육적인 것은 육적인 한계에 도달하면 거기서 포기하거나 중단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본래 계획하고자 했던 것과 다르게 변하기 십상이다. 육적인 환경의 여건이든, 개인의 심리적 변화든 갖가지 요소로 인해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시간의 구애를 받아서, 다른 사람의 요청이나 부탁이 있어서, 본인 스스로가 시간이 지날수록 게으르고 태만해서 든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합리화를 시킨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그러한 환경에 제재를 받지 않 는다. 선생의 삶이 이를 증거하지 않느냐. 눈이 오는 대둔산 절벽 위에서 오직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내 사랑 알아 멈출 수 없어 손발이 저리고 얼어붙는대도 그것도 모르고 기도하며 돌이 무너져도 내 뜻과 계획함을 오직 믿음으로 실천하며 미친 자 소리 들어도 나 예수에게 미쳤다 소리 들은 것을 감격하며 울며 사랑 고백하고 복음에 매여 육적 한계에 부딪혀 제재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 누구보다 가장 빠르고 강하게 이 역사를 이끌며 뛰고 달리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영원한 공력이요, 영원불변의 신앙이 아니냐.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아니냐. 선생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고백이 이것이 아니더냐. 영원한 행복이요, 영원한 사랑 아니더냐. 내가 그를 사랑하며 그가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 그가 행복한 자 아니냐. 선생의 삶을 그려 보아라. 나를 보고 듣는 자라면야 나를 따라 행한다지만 그럴 수 없는 자가 많기로 표상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의 증인이요, 나의 육신이 아니더냐. 육의 몸을 가지고도 변치 않는 자 있으니 너희 선생이다. 이를 증거 삼아 희망 삼아 그와 같은 삶이 너희에게도 이어지길 축원하는 나는 사랑의 주 예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