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12.16 (금)
2011 1216 천성운 말씀
- 선포일
- 2011.12.16 (금)
첨부 파일
- PDF
2011 1216 천성운 말씀.pdf
296.1 KB
<2011년 12월 16일 천국성령운동 정조은 목사님 말씀>
할렐루야. 올해 마지막 천국성령운동입니다.
여러분 1년 동안 성령받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
주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또 선생님께서도 우리에게 진리로 무장하게 하기 위하여 진리의 말씀을
늘 받아주시면서 우리와 함께 변함없이 늘 동행해 주심에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섭리역사 여러
분, 정말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또 진정으로 진리로 무장해야 될 때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무장해야 될
때입니다. 여기서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할 때고 성령을 받아야 될 때이고, 또
진실로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할 때인데 너무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주와 일체? 너무 중요하죠. 회개? 너무 중요합니다. 또요? 구원? 너무 중요해요. 사랑? 너무 중요해요. 실
천해야 되겠죠? 네. 맞습니다. 또요? 휴거 되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또 진정한 변화? 맞죠. 말씀? 맞습니
다. 정말 다 맞네요. 맞는데도 우리는 왜 가다가 흔들릴까요?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주와 일체되고 사랑하며, 주님의 사랑을 알고 회개하고, 진짜 휴거되어야
하는 것을 다 압니다. 그러나 왜 가다가 흔들거리고 가다가 문제가 생기는가. 우리는 깨달을 때 진실로 깨
달았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도 알겠고, 진리로 무장해야 되는 것도 알겠고,
성령을 깊이 받아야 하는 것도 알겠는데,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진실로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뭔가 확 깨닫지 않으면 의식을 하지 못 합니다. 또 잊어버리게 되요.
그러다가 믿음을 져버리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기도 합니다. 정말 완전히 그
거 하면 죽는다고 하는 정도까지 깨닫잖아요. 그거 안하면 안 된다고 하는 그 최고의 단계까지 깨닫는다면
우리가 진실로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야될 것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으며 살지만 진정 깨달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주님의 사랑이 최고라는 것을 진정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죠. 차
를 운전할 때 제일 먼저 처음 배우는 것이 안전교육을 배웁니다. 면허증을 따게 되면 안전교육을 받으면
어떤 안전교육을 받느냐. 영상을 보여주면서 특히 신호위반 과속에 대한 안전교육을 심하게 받습니다.
안전교육 받아보신 분은 알게 될 거에요. 끔찍한 사고현장을 보여주죠. 그러면서 “왜 신호위반을 하지?”
헙합니다. 하는데 막상 운전대를 잡으면 신호위반 서서히 하기 시작하구요. 나는 자꾸 악셀레이터를 밟으
면서 과속을 하게 되죠.
저도 운전을 해봐서 압니다. 과속에 대한 욕구가 있죠. 속에서 잠자고 잇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보고, 옆에서 사고가 나도 보아도 내가 직접 당해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아예 그런 행위조차 하지 않습니다. 만일 자기가 직접 사고가 났다면 깨달
아도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생명을 잃었고, 이미 모든 것은 다 끝났습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진짜 그렇
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진짜 깨달아서 ‘나는 저건 진짜 안 할거야.’ 깨달은 사람들은 직접 사고를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안합니다. 여러분, 안 합니다.
정말 얼마나 과속이 무섭고, 신호위반이 무서운지 알면 안 합니다.
물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 깨달은 사람은 안 합니다. 아예 물에 안 들어갑니다. 물가 주변을 가지를 않
아요. 놀러가자면 화들짝 놀라요. 저는 한탄강을 한번도 간 적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름마다 놀러
가고 싶잖아요. 한탄강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거기는 해마다 사람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거예요. 저는 진정 깨달았죠. ‘거기 가면 죽는다. 아예 그 사고현장이 많이 난 곳은 가지도 말아야지.’
그러니까 제가 평생 한탄강에 빠져죽을 일은 없죠. 제가 어떤 일이 있어서 사고가 난다고 해도 제가 한탄
강에서 사고나는 일은 평생 없을 겁니다. 사람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 생각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사람
의 행동을 철저하게 통제를 해요. 이것이 정말 무서운 생각입니다.
깨닫는 게 문제입니다. 아는 게 문제죠.
정말 몸으로 겪지 않아도 깨달은 사람은 이미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안 하고, 해야될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성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배우고 왜 알았는데도 또 문제가 일어나는가. 알긴 압니
다. 깨닫기는 깨달았어요. 그런데 정말 진정 성장하기 전에 주님이 원하시기 전에 허락하기 전에 범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몰라서 그러합니다. 몰라서 합니다. 깨달았되 진정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
다. 진정 깨달은 자는 몸으로 직접 그것을 느껴보지 않았을지라도 철저하게 조심합니다. 그래서 본인을 성
장시키겠죠. 여러분 진정 그러합니다.
깨달았으나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문제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주님도 깨달아야 됩니다. 제대로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의 날마다의 기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십니까? 정말 진실로 살아야 합니다. 진실로 살아야 만이 진실로 사는 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살아야 만이 진실한 주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으로 주님께 간구해야 만이 주님이 얼마나
크게 역사하시는지 느끼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믿음을 파선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절대 어려워도
주님을 붙들게 됩니다. 주님의 능력이 그 힘이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여러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어요. 사람도 장기도 돈으로 사는데요. 돈주고 못 사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돈주고 못사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돈주고 못사는 게 있어요. 진실함 사랑, 기쁨, 보람, 행복, 은
혜는 이 지구덩어리를 다 준다고 해도 절대 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진실한 기쁨과 행복과 보람과 충만한 은혜는 하늘로부터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것을 느
끼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 한번 나가보십시오. 주님을 찾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님을 찾을만한 것이 있습니까? 저는 너무 서글프더라구요.
옛날에는 그래도 12월 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해서 캐롤도 틀고, 장식도 하고, 교회
도 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휴일에 불과합니다. 너무 안타깝죠. 저는 너무 안타까워서 너무 썰렁한 거
예요. ‘너무 썰렁한데 여기도 썰렁하면 안 되겠다.’ 해서 입구부터 쫙 꾸며놨어요. 주님이 너무 서운하실
것 같은 거에요. 뭔가를 화려하게 안 해놓았더라도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기 위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
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전히 잊어버리다 못 해서 아예 잊어버렸어요. 너무 안타깝더라구요.
여러분 이 섭리사에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깨닫지 못 하면 믿음을 파선할 수 밖에 없고, 흔들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절대 이 역사 속에 살 수
가 없어요. 주님을 믿는다고 하나 그 믿음이 명령에 의한 믿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담스럽고 힘이
듭니다. 불평불만이 생깁니다. 자기 모순이 고쳐지지 않아요. 자기의 주관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게 됩니다.
진정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에서는 또 생각하게 되요.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래서 섭리역
사 길을 가지만 힘이 듭니다. 자기가 좋아서 올라가는 단계 자기가 좋아서 행하는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주님이 시키지 않아도 “저는 알아요. 예수님. 압니다. 제가 할께요. 회개 합니다. 예수님. 회개가 얼마나
좋은지 제가 압니다. 주님 사랑 얼마나 좋은지 알기 때문에 흔들거려도 절대 주님을 찾습니다. 어려우면
주님을 찾습니다. 이 길을 절대 져버리지 않습니다. 제가 얼마나 아는데요. 알았다니까요. 깨달았다니까
요.”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료하면 무슨 노래 불렀죠? 알았네.
수료하면 ‘알았네’ 찬양을 불렀습니다. 고백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진정 깨달아야 됩니다. 진정 깨달으면
산삼같은 인생을 살게 되요. 이미 말씀이 다 나갔죠. 산삼과 인삼은 비교가 안 됩니다. 가격에서도 비교가
안 되구요. 효능면에서도 비교가 안 됩니다. 산삼은 누가 굳이 뿌리지 않아도 산에서 그 환경과 조건에 의
해서 알아서 납니다. 그 산삼을 먹으면 인삼을 먹은 것과 비교가 안 되요. 평생 이 속에서 불이 일어난다
고 할 정도로 효능이 좋습니다. 그것도 100년 묵은 산삼 한번 먹어보시면, 평생 춥지 않을 것입니다. 옆구
리가 시리지 않을 거예요. 산삼이 그렇게 효능이 좋습니다.
주님이 이미 말씀하셨죠.
“산삼같은 인생이란 자기가 좋아서 기뻐서 뛰는 인생을 말한다.” 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 깨달아야 됩니다. 자꾸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인생
과 “내가 알아서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하되 주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하면서 이렇게 하는 사람과는 삶
의 기쁨도 비교가 안 됩니다. 휴거의 기쁨도 비교가 안 됩니다. 그 삶의 수준과 영의 수준과 구원의 차이
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진정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아무리 큰 풍파
가 몰려와도 내 믿음이라는 배는 절대 파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정말 기도해야 될 때이고, 정말 성령을 받아야 될 때이고, 진정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
을 해야 될 때입니다. 깨달을 거에요. 깨닫지 못 하면 가슴 뜨끔하게 내 마음 뜨끔하게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신입생 때부터 지금까지 기도가 있었습니다. 단 한번도 빠지지 않는 기도입니다.
“깨달아야 돼. 사람은 깨쳐야 돼. 이 세상 사람들이 학문과 지식으로 깨친 자들은 많은데, 하나님에 대해
서 깨친 자들은 적어. 깨쳐야 돼.” 선생님께서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꼭 기도하
는 것이 제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말씀듣는 내내, 내 마음이 다른 데로 자꾸 돌아갈 때마다 머릿
속으로 기도했어요. ‘깨닫게 해주십시오. 내가 오늘 한가지만 마음 깊이 뜨끔하게 깨닫고 간다면 나는 오
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오늘도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이 시간이 보람있는 것입니다.
왜? 이 마음을 가지고서 뜨끔하게 깨달아야 이 마음을 가지고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이 무섭습니다. 행동을 좌지우지 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강하죠? 말이? 해야 됩니다. 해야 된다
는 것은 생명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은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냥 하면 좋고 안하면 나쁜 것
이 아니라, 하면 안 되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좌지우지되요. 생명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해야 된다
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한 뜻을 이해하고, 깨달으면 말씀이 쉽습니다. 정겹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에 기
쁨이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꼭 해야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될 것이 기도를 해야하는데
항상 중요한 것은 책임이 딸려옵니다.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기도를 받는 것은 주님의 책임입니다.
성령을 주시는 것은 주님의 책임이며, 성령을 받도록 주 앞에 매달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진리를
주시는 것은 주님의 책임이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늘 책임을 하십니다. 절대 책임을 하지 않아서 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항상 문제는 우리
에게 있습니다. 구원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신앙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자기가
좋아서 행해서 천국에 가고, 자기가 싫어서 행하지 않아서 지옥에 간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심정을 깨달아야 되요. 말씀을 전하고 나면 기진맥진해요.
엊그저께도 용서와 회개의 말씀을 하고 났는데, 배가 정말 고픈 거예요.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21일
기도를 시작했어요. 하다보니 깨달은 것이 지금 정말 기도할 때더라구요. ‘참 기도하기를 잘했다.’ 생각했
어요. 정말 말씀을 잘 전하려고 기도한 이유는 주님의 그 심정이 얼마나 애타는 것인지 제가 느끼기 때문
에, 선생님이 얼마나 애타는 심정으로 이 말씀 받아주셨을까 생각하니까 그냥은 말씀을 못 전하겠더라구
요. 전할 때는 제 얼굴이 애가 타잖아요. 이게 그냥 어떤 사람들은 설교할 때 제스처를 해야된다고 하는
데, 저의 제스처는 만들어진 제스처가 아니라 애가 타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 자가 그와 같이 전하고 받아들이는 자가 그와 같이 행한다면 역사
는 이미 끝났어요. 완전한 승리입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냥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 되겠죠.
“알지?” “네.” “알지?” “네.” 끝납니다.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은 또 반복해서 또 애가 타도록 이 종
이가 모자르도록 시간이 모자르도록 또 말씀하십니다. “알지?” 했을 때 “아멘. 알지요.” 하는 그 단계에
제발이나 도달하게 해달라고 또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러한 단계로 오를 줄 믿습니다. 이게 부담
스러우면 안 되요. 그래서 깨달아야 됩니다. 주님의 심정을 깨달으면, “내가 부족하지만 주님의 심정대로
그 단계에 오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내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주님, 나와 함께 해주세요.” 하면서 기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좋아서 행하고 자기가 싫어서 안 행해서 지옥에 간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이미 다 들었죠. 사람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시대에 또 그
말씀을 전하실 사명자를 보내셨습니다. 또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과 행함의 책임을 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행하는 것 또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고로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했습니다. 마음의 청결이 천국 가느
냐, 못 가느냐를 좌우합니다. 휴거되느냐, 못 되느냐가 중요해요.
사람은요. 육신이 악인과 선인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아예 육이 태어날 때부터 선인과 악인이 안 되요. 그런데 살다보면 선인 악인으로 구분됩니다. 왜요? 사람
의 마음이 악해져요. 악해지면 그 행실도 악해집니다. 그러면 그 영이 악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해요.
그러면 그 행실이 선합니다. 그러면 그 영혼이 선합니다. 주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영보고 싶지?” 그러면 다른 크나큰 말씀을 주실 줄 알았더니 이 말씀을 주십니다. “니 행실을 보아
라. 니 행실을 보면 니 영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이 영의 모습을 궁금해하지 마십시오. 내 행실 따
라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의 뱃살을 감추고 늘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먹는 대로입니다. 운동하지 않는 대로입니다. 행한대로 나의 뱃살은 늘어만 갑니다. 여러분, 왜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 진리를 깨닫지 못 하니까 주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주고 행한 대로 너
희 영이 변한다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마음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말슴하셨죠. “너의 마음밭이 어떠냐? 이 마음밭이 돌짝밭같고 길바닥같고 가시나무 밭
같으면 그 마음에 무엇이 떨어져도 내 생명의 씨가 뿌려져도 결코 결실하지 못 한다. 니 마음 밭이 옥토밭
어야 해. 옥토밭이어야 나의 말씀이 떨어졌을 때 싹이 나고 결실한다.” 고 했습니다.
마음에 의해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웠죠? 휴거도표 그냥 그려지죠? 말씀을 통해서 주시고, 내 행실을 통해서 영이 변화된다. 그래
서 그렇죠. 이 마음밭에 주님의 자녀의 말씀 신약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행실도 자녀와 같이 변화가 됩
니다. 그 영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가 되겠죠. 이 마음밭에 신부의 말씀, 성약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마음이 옥토밭이며 신부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그 마음에 따라 행실도 신부로 변할 것이요.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마음밭이 성약말씀에 따라 옥토밭이어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고로 구시대를 벗어나
서 사망권을 벗어나서 이 역사 가운데 왔습니다.
여러분의 영이 진정 이 역사 가운데 와서 그와 같이 행한다면 여러분의 영은 신부의 옷을 입었을 것입니
다. 마음에 따라서 육의 운명, 영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생명의 근원입니다. 고로 진정 깨달아야 되겠습니
다. 이번 주에 깊은 말씀을 들었죠? 이틀 전에. 여러분, 진짜 기쁘시지 않습니까? 받아들이는 자는 기쁠
것이요,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슬플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재림시대로서 육의 휴거와 영의 휴거가
동시에 일어나는 때라고 했습니다. 주여 내게 이 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휴거는 천년역사에 한번 뿐입
니다. 믿습니까? 그 때 휴거되지 못한 자는 육으로 살다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1000년을
기다려야 됩니다. 영으로서 기다려야 됩니다. 너무나 안타깝죠. 처음 섭리사에는 육휴거에 대한 말씀을 선
포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30년 동안 육휴거에 대해서 외쳐왔습니다. 왜? 그것이 1단계예요. 1단계를 거
치지 못하면 2단계를 갈 수 없습니다.
개인을 벗어나지 못하면 가정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죠.
1단계, 바로 육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행실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1단계예요. 그 단
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영의 단계로 갈 수가 없습니다. 육이 변화되어야 영이 변화됩니다. 그러니 육 휴거
에 대한 말씀을 먼저 선포하셨습니다. 지난 역사 가운데 우리 인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육이
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약말씀, 주님께서 주신 신부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때였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의 변화를 이루지 못하여 주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30년 동안 육휴거를 말씀하셨죠.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과 같이, “너희가 내가 보낸 자를 믿는 자는 영
생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육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로 영혼이 천국가는 단계가 아니라 육신의 행실을 통해서 변화되는 단계를 말합니다. 여러분 제가 도표
를 안 그려도 이해가 잘 되죠? 도표 안 그려도 되겠죠? 이 말씀을 그동안 듣고 받아들이면서 믿음을 파선
하지 않은 자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바로 이 사람들에게 영휴거에 대한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천사장이 나팔불 때 재림하셔서 예수님의 영이 오시면 어떻게 휴거되는지 말씀이 선포되었
습니다. 첫 번째 단계를 거치고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만 다음 말씀이 선포됩니다. 가다가 말씀을 받아들이
지 못하는 자는 이 말씀, 영휴거를 맞을 자격이 없습니다. 육휴거도 안 되었는데 영휴거가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다른 말씀 외치지 않으셨습니다.
늘 말씀하셨죠. “육신쓴 주님이시다. 나라는 육신을 쓰신 주님이시다.” 늘 한결같이 선포하셨습니다. 그리
고 말씀하셨죠. “나 사명하러 왔어. 그 사명하러 왔다. 이 땅에 주님말씀, 새말씀 선포하러 왔다. 그것으로
너희를 구원시키러 왔다.” 맞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똑같이 우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의 모습 속에서 주님을 보았고, 역사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알았습니다.
“정말 주님이 오셨구나. 육신쓰고 나타나셨구나.” 그렇게 믿었던 우리에게 영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한단계 차원을 높였죠. 그리고 이 말씀을 따라온 자들에게 다음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영휴거.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보낸 자가 살아있을 때 역사가 일어난다. 성약권 천년 안에서 영휴거는 한번
밖에 없다고 말씀을 이미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믿고 따라와서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이 말씀을 듣고 따라간다면 이 다음 단계의 말씀을 받을 자격이 있고, 그 역사 속에 초대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천년 동안 나간 말씀 이 시대에 선포된 말씀이,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사도들이 말씀을 기록했던 말씀들이 2천년 신약말씀이 되었듯이 이 시대 선포된 말씀이 천년 성약말씀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죠? 유대종교인들이 신약말씀을 인정했습니까? 아닙니다.
신약말씀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약말씀 또한 저 신약인들은 인정하지 못 합니다.
왜? 주님의 영이 다시 오시고, 그 사명자를 통해서 말씀하실 때부터 성약말씀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시대에 주님이 보내신 자 그리고 때에 맞는 사명자들을 통해서 또 계속해서 말씀을 주고 계십니
다. 그 말씀이 성약천년을 잡아나갈 것입니다.
믿지 않으면 저와 같은 일이 일어나죠. 역사는 동시성입니다.
여러분, 끝까지 믿고 따라오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여러분, 궁금하시죠? 그 다음은 어떻
게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 걱정하십시오. 이것은 제가 주님께 기도할 때
가장 많이 받는 답입니다. “예수님, 그 다음은 어떻게 되요?” “너 그 말 들은 지 일주일도 안 되었다. 너
나 걱정해라.” 선생님께 가장 많이 받은 답입니다. “선생님. 그런데요, 저사람은 어떻게 되죠?”
“너나 잘 해라. 나는 니가 걱정이다. 너나 잘 해라.” 정말 정답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떨어졌으면 누구를
제일 걱정해야 되는지 아십니까? 나. 제일 걱정되는 1호, 다 내가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더 안남았다는 것인데, 정말 큰일났다. 진짜 온전하게 해야지.
그래서 내년도에 2012년 말씀, “주와 관리전도” 이 말씀 진짜 한마디로 녹아집니다. 진짜 좋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우리가 가야될지가 1월 1일부터 정확하게 선포가 됩니다. 육적으로 살지 말라고 하는데 답이 있
습니다. 귀를 쫑끗 세우고 들어야 합니다. 이미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했으나, 그 때는 받아들이는 자에 한
해서 새로운 말씀이 또 선포될 것입니다. 우리 청년부들도 기뻐할 거에요. 청년부가 기뻐할 말씀이 들어있
어요. 육적으로 살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육적으로 살지 않는 걸까 거기 답이 있습니다.
귀를 쫑끗 세우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이미 선생님께서 다 말씀을 해주셨으나 단
상에서 말씀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단계까지 도달했을 때 받아들이는 자에 한해서 새로운 말
씀이 또 선포될 것입니다.
지금은 이제 그 역사가 이 기간 안에 이루어진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되는지 먼저 나를
완전히 전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내년 방향의 핵심입니다. “너를 완전히 관리하여 완전히 전도하여라. 너
부터 신경써라. 너부터 완전히 100의 위치로 끌어 올려라.” 이것이 완전히 핵심 중에 하나입니다. 너무나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제가 선생님을 도와드리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씀 중에 하나는
“나는 끝가지야.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내 특기 중에 하나가 나는 지구력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이 자랑을 제일 많이 하십니다. 나는 지구력이다. 끝까지 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을 그렇게
잘 하세요. 저도 놀랬습니다. 꾸준히 끝까지는 대단해요. 그 꾸준히 끝까지가 어디인가. 될 때까지, 그 말
을 좀 더 확대시킨다면 휴거될 때까지, 그러니까 끝이 없다는 거죠. 휴거되면 ‘휴’ 처럼 휴거 할 수 있죠.
그 때서야 ‘휴’ 하고 할 수 있게끔 끝까지 지구력입니다.
끝까지 오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저는 항상 그것을 연구했습니다. 선생님을 항상 보면서 ‘어떻게 자
신있게 끝까지라고 자랑스럽게 매일 이야기를 하실까. 오직 끝을 아는 자만 끝까지 라고 말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끝을 아는 자는 끝을 알기 때문에 끝까지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믿으시면 이 믿음 안에 절대 신앙을 져버리지 않고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섭리역사는
하늘의 비밀과 땅의 비밀이 밝혀지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중도에 이상하다고 믿지 못 하고,
흔들리는 자가 최고로 후회스러운 자입니다. 최고로 안타깝고 불행한 자입니다.
저는 처음에 육이 영으로 부활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육’ 자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영으로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다스렸어요. 그래서 제가 선
생님께 편지를 썼어요.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나, 육이라는 글자는 부활과 연결을 안시켰으면 좋겠다고 말
씀드렸는데 너무 마음이 힘들더라구요. 육이 영으로 변화되었다고 하니까. 그러나 끝까지 믿고 따라오니까
이같이 말씀을 다 풀어줄지 몰랐어요. 그 때 혹시나 져버리고 의심했다면 평생 후회하면서 휴거말씀이 나
올 때마다 죄스럽게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낱낱이 하나하나 비밀을 밝혀 오시면서 오직 사명을 해오셨습
니다. 섭리사 30년 역사를 그와 같이 이끌어 오셨듯이, 지금도 그와 같이 행하고 계십니다.
너무나 많은 환란이 있었지만, 그 환란 가운데서도 절대 이 말씀 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늘 가르치시며 주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선포하시는 그 사명은 절대 행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런 저런 말을 믿겠습니까? 들을 가치가 없죠. 역사는 한가지만 볼 수 없습니다. 역사는 이것 저것 조합해
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은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한 가지로만 보고 풀면 모순이 생깁니다. 성경에는 반드시 육과 영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육을 영으로 보고 있고 영적인 것을 육으로 보고 있으니 지금 저 기성들은 허덕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모순이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왜요? 고린도전서 15장 이하는 육에 대한 휴거를
말씀한 것이요,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영휴거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쪼개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예정 또한 너무나 애가 타서 얘기한 예정에 대한 뜻을 깨닫지 못 하고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불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불로 심판한 것과 말씀의 불로 심판한 것을 쪼개지 못 하니, 허
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떡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떡과 말씀의 떡을 구분하지 못 하니 허덕이고 있습니
다. 절대 역사는 하나의 조합입니다. 끝까지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의 행위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한 순간을 보고서는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떤 한 가지를 보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말이 나오고 오해가 나옵니다. 고로 부분적인 것만 보고 판단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20년을 따라왔다구요? 10년, 30년을 선생님을 따라왔다구요? 저는 그 말을 안 믿습니
다. 역사의 처음과 끝까지 본 사람은 오직 선생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0절, “나와 같이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같이 모으지 않는 자는 나를
해치는 자니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저는 무엇으로 판단하는지 아십니까? 지난 30년 역사
동안 꾸준히 선생님과 똑같이 행한 자가 있는가. 선생님과 똑같이 기도한 자가 있는가. 선생님과 똑같이
운 자가 있는가. 선생님이 웃을 때 같이 웃은 자가 있는가. 그것이 단 한번도 빠짐없이 그와 같이 지금까
지 한 자가 있다면 그 말을 조금 들어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없어서 못 믿습니다.
섭리사가 너무나 어려웠을 때 저도 신입생이었습니다.
99년도 처음으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누군가가 나와서 선생님이 전해주셨던 말씀을 하나하나 전해주면서
“믿음을 파선하지 마라. 굳건하라.” 말을 해준 그 사람이 뭐라도 말한다면 저는 듣겠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며, 우리를 위해 말씀을 받아주시고, 우리를 굳건하게 해주신 분은 선생님 밖
에 없는 것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말을 듣습니다. 지금도 그 말만 믿습니다.
왜? 단 한번도 변함이 없었던 사람은 이 땅에는 선생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제가 알기 때문입니
다. 물론 이 땅에는 저 하늘에는 주님이 계시구요.
교리에 대해서 누가 말합니까? 섭리사 말씀에 대해서 누가 운운합니까?
받아온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행하는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준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주신 자 예수
님만이 판단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21년 동안 산에서 주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본 자가
있습니까? 그 혹독한 추위에서 나무가 된 것처럼 무릎꿇어서 눈이 다 쌓이기까지 그렇게 행한 자가 있습
니까? 저는 못 봤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가면 비진리는 다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감히 신앙스타들에 대해서 운운합니까? 신앙스타 10명 세워 봤습니까? 100명 세워 봤습니까? 1000명을
세워 봤습니까? 세워보지 못 했으면 말을 하지 마십시오. 말을 하는 거 아닙니다. 세워 본 자 아니면 말하
면 안 됩니다. 행해보지 않은 자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 교회라도 세워 봤습니까? 한 나라라도
한 교회라도 작은 거 하나라도 세워보지 않았으면 섭리세계를 이끄는 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지혜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건 인격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격 위에 신앙이 들어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인격을 닦지 않고, 기본을 닦지 않은 자가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기
본인격이 안된 자가 주님의 몸이 되어서 살 수 있겠단 말입니까? 저는 그런 자를 주님의 몸으로 쓰신다면
주님을 못 믿을 것 같습니다. 절대 법칙은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법대로 하십니다.
공의로우십니다. 신혼골수를 쪼개십니다. 누가 나에게 재림론을 가지고 왔어요. 지금 선포되는 말씀을 똑
같이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합니다. “이 말씀 50년 전에 누가 받아가지고 왔어요.” 하면서 저
한테 누가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정말요? 좀 보여주세요. 정말 속았어. 어떻게 해?” 안
그럽니다. 저는 “자. 그 말씀을 받아온 자를 내 앞에 데려오시오. 그리고 나를 설득시켜 보시오.” 합니다.
아니 어디를 와서 나한테 무슨 말을 하냐고. 어디 지금 저한테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 선생님께서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말씀을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함을 보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말씀의 차원을 높여가는 것을 보면 정말 주인이 맞다는 것
을 알고 있습니다. 왜? 말씀이 다 있거든요. 실로 하나하나. 그 말씀에 이어서 부활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에 이어서 재림의 말씀을 받는 과정을 저는 하나하나 지켜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어느 누
구도 저에게는 거짓말을 못할 것입니다. 저는 그 말씀의 원고를 받아서 하나하나 정리한 사람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저에게 전하지 않을 거면 아예 거짓말을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예 끼워맞추는 그런 행
위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에게 누가 이야기하죠.
무조건 섭리역사를 따르는 사람을 보고 맹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목적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어
디 있습니까? 목적없이 단상에서 불같이 외치겠습니까? 정말 모르는 말입니다. 목적없이 따르는 것이 섭리
사가 제일 힘들어요. 제일 힘든 길이에요. 목적이 없으면 이 길이 제일 힘들어요. 왜 이 길을 택합니까?
하필이면 세상에 많고 많은 길 중에 제일 욕을 많이 먹는데요. 목적없이 뛰면 어디를 가냐고 저는 말하죠.
목적없이 인생을 다 버리는 자는 바보죠.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길이 가장 확실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따릅니다.
영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처음 받을 때, 이와 같이 환란과 고난과 핍박이 있는 줄 알았으면
나는 안 했어. 나는 안했어. 조은아.” 선생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와 같이 힘들었다면 갔었겠냐
고. “주님은 이같은 이야기 안 했어. 진짜 이렇게는 안 하셨어. 나만 따라와. 그러면 옷을 못 입고 밥이 없
어.” 그렇게만 이야기하셨다고. 이렇게까지는 민족적인 세계적인 이 고난을 받을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그 심정을 어떻게 깨달은 줄 아세요? 제가 당해보니까요.
저는 선생님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내 길을 다 포기하고 왔어요. 4번이나 포기했습니다. 제가요.
오늘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저는 저기서 열심히 믿고 따르면서 이 길 갑니다. “어이구. 선생님.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하면서요.
정말 그렇습니다. 그 동안 주님께서 중심을 보시고 역사하시사 나를 강건케 해주시고, 은혜주시고, 능력
주시면서 고난에 비해 정말 너무나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육적인 은혜가 아니요, 영적인 충만함이
었습니다. 내가 보았고 느끼지 않았으면, 증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있어요. 저는
천국에 목적이 있습니다. 이 천국의 목적이 정확하게 있지 않았다면 저는 이 길을 못 갑니다.
왜 하필이면 이 길을 가나요? 다른 곳에서도 천국길을 발견할 수 있다면, 저는 그 길을 가겠습니다. 그러
나 온전한 길이 이 곳 밖에 없는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이 길을 갑니다. 일확천금을 다 준다고 해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일확천금을 준다고 해서 이 길을 갑니까? 싫습니다. 일확천금을 다 받고 산다고 해도, 그
보다는 그냥 돈 조금 밖에 없어도 남한테 고통받지 않고 사는 게 낫거든요.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은 오해를 받는 고통이예요. 마음의 고통이예요.
어디 조금 다치면 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돈으로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일확천금
을 준다고 한들 이 길을 가겠습니까? 이 곳에는 정확한 목적 바로 천국이라는 길이 있고, 주님이라는 정확
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섭리역사에서 섭리역사를 가장
많이 본 자는 선생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모든 눈물, 모든 고뇌, 마치 섭리역사가 그가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걸어온 그 길, 그길 하나는 선생님 밖에 모릅니다. 그 애통함과 슬픔
과 말씀을 받는 모든 과정은 어느 누구도 보지 못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겪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말을 들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 스스로도 말씀하
십니다. “내 말 듣고 따라와. 내 말을 들어.” 저는 누가 와서 어떤 말을 해도 이야기하죠. 저도 들을 악평
다 들었습니다. “이미 이 자리에 서기 전에 21년 산기도 안 했으면 저를 설득시킬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
님의 신부로서 사명받고 오지 않았으면 나를 설득시킬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대 십자가는 지지 않았더라도
한 원수라도 진정 사랑해 보지 않았더라면 나를 설득시키지 마십시오. 세계역사 가운데는 아니어도 한 교
회라도 세우지 않았다면 저를 설득시키지 마십시오.”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설득시킬 사람은 단 한 사람 선생님 한 분 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 말씀을 들어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이유없이 여기서 이렇게 한다구요? 저는 그
렇게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못 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여자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참 마음이 약해요. 그런데 요즘은 좀 아닌 거 같아요. 남자도 참 마음이 약하더라구요. 눈물도 많구요.
특히 섭리역사는 여자들이 굉장히 힘이 있고 당당하죠. 제발 남자들 기상을 드높이시기 바랍니다.
저는 참 나약해서 선생님께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이 군인같은 기질이 없다고 그게 걱정이라고 했습
니다. “참 뚜렷한 정신이 있고 밝은 것도 있는데, 기치를 벌인 군인과 같은 담대함이 없어서 이 신앙의 전
선에서 걱정된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것이 걱정된다.” 고 했습니다. 기치를 벌인 군인과 같지 않아서요.
누가 왔을 때 크게 “야.” 라고 한번 해야되는데, 약하게 “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너무 약하니까. 그
런데 저는 어느새요. 군인이 되어버렸어요. 7년 군대생활을 했더니 군인이 되었어요. 여러분, 남자들은 군
대생활 한다고 하는데 저 그것 못지 않게 군대생활 했거든요. 정말 무서워요. 선생님 진짜 무서워요. 정신
교육부터 시작해서 육신이 약하니까 육신교육까지 다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당당하게 한 가지를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는 무서운 정신과 사상을 가졌어요.
정말 무섭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해도 제가 정말 무서워요. 왜 그러냐면 선생님께 배웠거든요. 제가 선생
님께 배우지 못 했다면 이 정신과 사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떤 악한 사탄, 정말 옛날에
는 사탄 얼굴 한번 보는 것 귀신 하나만 봐도 무서워서 덜덜 떨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무섭냐구요? 아니
요. “이리로 와. 이리로 와. 잠깐 이리로 와.” 이렇게 할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역사 동안 그렇게 해왔습
니다. 선생님 옆에 있었던 10년 동안 내가 정신과 사상이 무장이 되어 있을 때는 해왔습니다.
“이리 와 보세요. 자, 일단 신앙버리고 한번 와보십시오. 신앙으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뭐 하나 들고
서 진짜 이렇게 할 정도로 너무 무서워졌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되겠죠. 이런 것은 육의 무기가 아니라 영
의 무기를 말합니다.
정말 내 정신과 사상은 너무 무서운 이유는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선생님이 이와 같이 행하셨기 때문에 시대를 이긴 것입니다. 일반 사람은 이걸 못 이겨요. 선생님은 시대
민족적으로 엄청난 악평을 받았습니다. 그 말을 사람이 듣잖아요. 그러면 행한 것보다 더 무서워요. 사람
을 죽여 버립니다. 그 가운데서 정신과 사상이 무섭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선생님은 참 순진하세
요. 정말 순진하십니다. 너무 착하시고. 그런데 무섭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선생님이 제일 무서워요. 왜?
그 정신이 너무 무섭습니다. 너무 두려워요.
옛날에 제가 다윗에 대해서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다윗이 너무 귀여웠을 거 같애요. 선생님은 다윗은 매일 주님께 찬양드리면서 양치면서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하면서 지냈잖아요. 다윗은 너무 귀여웠을 것 같아요. 다윗은 어떻게 생겼나요?”
제가 어렸으니까 그 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다윗, 너 모른 소리 하지마. 다윗은 무섭다.
다윗은 사자입을 찢었어.” 여러분 다윗은 사자입을 찢었습니다. 그 정신으로 그 고통 사울왕이 주는 고통
을 다 이긴 겁니다. 오직 주님만 찾았다는 거에요.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래서 한 나라를 이룩하지 않았습
니까? 다윗의 이 모든 역사는 평화의 역사가 아니었어요. 평화의 역사는 솔로몬 때 이루었습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평화의 역사를 이루었어요. 다윗은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너무 신기한 건 다윗이 가장
하나님을 많이 찬양하고, 가장 많이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참 아이러니하죠? 선생님
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무서워요.
선생님이 언젠가 저한테, “너 참 무서운 여자야.” 하셨어요.
저는 선생님께 처음 들어봤어요. “제가 무섭나요?” “그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참 너 무섭다. 그렇게 혼나
고도 그 다음날 나와서 또 이러고 있냐. 참 무섭다.” 하셨습니다. 제가 또 생각했죠. 내가 무서운 거냐고.
여러분, 정신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의 사랑
을 받아온 자입니다. 그 사상과 정신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그 사상과 정신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않았다구요? 신부의 사명을 받아서 이 시대 주님의 몸된 사명을 받지 않았다구요?
아니라고 했은즉, 저는 기도합니다. “아니라고 한 그 죄값을 받아야겠구나. 아니라는 저 죄값을 회개하지
않으면 받아야겠구나.” 그러면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믿지 않는 저들을 보고 주님은 말씀하
시기를, “너희는 아벨의 피로부터 사갸랴의 피까지 다 받아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받았습니다.
그 죄값은 영원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 진실로 회개한 자고 돌아온 자만 가능합니다.
만일 선생님이 지금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밖에 계셨다면 절대 저들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이곳에 계셨다면 눈 한번 마주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저를 그렇게도 욕을 하면서도 하는 사람이 그렇게도
욕을 하던 사람이 내 눈을 못 마주치더라구요. 그 때 1대 2였거든요. 기싸움을 했죠. 신기한 것은 눈을 못
마주친 거예요. 제 앞에서도 그러는데요. 과연 선생님 앞에도 그러할까요? 못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못 합니다. 선생님께서 나온다면 못 합니다. 저 곳에 계시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나 분통
이 터집니다. 선생님은 늘 말씀하시고, 주님은 늘 말씀하셨죠. 증거를 받는 자가 증거를 받지 못 하면 죽
는다. 주님은 제대로 된 증거를 받지 못해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인간의 책임분담이죠.
사랑하는 선생님도 이 때 제대로 된 증거를 받지 못 하고, 제대로 벽이 되어주지 못 하고, 싸매주지 못한
다면 또 똑같은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심정의 십자가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중심을 봐야 되요. 절대 중심을 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
하셨죠. 정죄하지 말라. 절대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정죄하는 이는 주님뿐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죄에 대해
말씀하시며,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절대 중심을 모르면 그 상황에서 절대 보았어도 말하지 않
는 것입니다. 그 사람 중심이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아시죠.
오직 이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이는 이 전체에서 주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중심을 보고 역사하셔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다 들어가면, 모르고
한 자가 손해입니다.
선생님이 늘 저에게 말씀하셨어요.
“너 내기 걸자고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내기걸지 말아라. 너무 당당하게 내기걸자고 하는 사람과는 하지
말아라. 사람에게는 답을 알고 있다. 계란 100개를 한번에 몇 초 만에 먹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냐?
그래도 있다고 해도 내기 하지 말아라. 몇 초 만에 먹을 수 있다.” 고 말씀하셨어요. 상식적으로는 못 먹
잖아요. “내기하자. 내기 해. 백만원.” 하는데 거기서 내기하면 백만원을 뺏깁니다. 계란을 다 해서 엑기스
로 해서 먹는다는 겁니다. 방법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세하게 따져야 합니다. 그래서 모르면 말을 안
해야 되요. 아니면 다 알고 말해야 됩니다.
모르고 정죄한 자, 모르고 말한 자, 모르고 오해한 자는 손해입니다.
모르고 계속 주장하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말씀하시기를, “충
성자를 건드리지 말라. 하늘이 보낸 자를 건드리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어찌 보내신지 안
단 말입니까? 주님이 알고 계신데요. 저는 보낸 자가 아니예요. 그런데 본 게 너무 많아서, 들은 게 많아
서 내 입을 감싸고 있습니다. 제발 다 말하지 않게 해달라고. 다 말하면 살아나실 분은 선생님 한분 밖에
없어요. 그 행하심은 완전하시니까요. 내가 봤을 때. 하나님과 주님과 부딪혀 봤자 남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주님이 세운 자와 부딪혀 봤자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하나 주님께서 법전을 펴시고 낱낱이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절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주님이 보내신 자가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을 다 알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동안 따라왔기 때문에, 믿었기 때문에, 믿음을 굳건하게 한 보람이 있습니
다. 기쁨이 있습니다. 중간에 조금 흔들렸지만 괜찮습니다. 이미 선생님께서 1999년도에 힘든 일을 겪으시
고 2001년에 한국에 잠깐 들어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섭리사에 누가 나를 단 한번이라도 오해하지
않은 자가 있느냐. 단 한번이라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은 자가 있느냐. 다 용서한다. 너도 쟤도 쟤도 다 잘
못이다. 그러니 다 용서하자.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 그러면서 부활역사를 선포하시고 다시 외국으로 나
가셨습니다.
그리고 2007년도에 우리에게는 다시 한번 흔들림이 있었죠.
그런데 재림의 말씀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의 역사가 선포되면서 조금이라도 흔들렸던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용서에 대한 말씀이 나가지 않았습니까? 진정 회개한 자라면, 주님이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새로운 도약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고, 절대 굳건한 믿음을 드리는 겁니다. 연말은 그렇게 보내는 것이 최고로 멋잇는
마무리입니다. 최고의 매듭입니다. 최고의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결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중심을
바로 잡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연말이야 말로 주님께 간구하고, 진리로 무장하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연말이야 말로 성령충만하게 받아서 주님 품에서 보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한 인생을 사
시길 기도합니다. 사람은 겉모양은 볼 수 있으나, 절대 마음은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신혼골수를 쪼개서
보시는 예수님만이 하나님만이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함부로 정죄하지 않으며, 어떤 일이 있어도 함부로 오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함
부로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할 거예요.
오늘 마지막 천국성령운동을 주님께 무엇으로 여러분은 드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드리겠습니까? 여러분, 가장 무서운 죄는 주님 행세를 하는 겁니다. 주님 행세는 어떤 거
요?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정죄하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사람이 이렇다고 저렇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역사가 이렇다고 저렇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죄를 범하면 안 됩니다.
이제 주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축복의 때를 선포하셨으니, 이곳에 있는 우리들 축복받은 자들입니다. 연
말을 그렇게 보내시겠습니까? 진실로 확고한 믿음을 갖고 보내시겠습니까?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첫 번째 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분별력을 가져라.” 18살에 처음 주신 것은, “너는 분별력
을 가져라. 왜? 사람이 온전치 않아. 주님의 역사는 절대 온전하다. 사람이 온전치 않으니. 그러나 너희는
사람과 대화하며 사람과 살아가니 분별력을 가져라. 세상은 어디 가든 두 가지다. 선과 악, 옳은 것과 그
른 것, 절대 중간은 없다. 결국은 하나로 쪼개진다. 결국은 하나씩으로 선과 악으로 가는 것이다. 분별은
무엇이냐? 쪼개는 것이다.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쪼개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이시간도 말씀으로 쪼개십니다.
하나님의 대역사 중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님은 바로 선과 악을 쪼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역사 중
에 가장 크게 이루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선과 악을 쪼개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4천년 역사 그리고 그
이후 신약역사 2천년 지금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도 쪼개십니다. 바로 말씀으로요. 절대 말씀으로 쪼개십니다. 바로 그것이 아니면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선이요,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악입니다. 그러나 쭉정이와 알곡을
쪼갤 때 처음부터 쪼개지 않으십니다. 봄에, 여름에, 가을 초기에 쪼개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할 때 바로
기간을 주십니다. 이것은 바로 회개할 기간, 돌아올 때를 주십니다. 여러분, 추수 때가 다 왔습니다. 지금
은 추수 때입니다. 이미 2천년 동안 주님은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이제 이 재림시대는 거두는 시대입니다.
성약역사는 혼인잔치 역사입니다. 2천년 동안 행했던 모든 역사를 가지고, 거두는 역사를 하신다는 겁니
다. 그러나 2천년 동안 역사를 폈던 자들에게 청했으나, 오지 않았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또한 저처럼 기성에서 넘어온 자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추수 때 정확하게 선과 악을 쪼개는
때입니다. 이 때는 드러납니다.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우는 역사입니다. 지금 이와 같은
역사는 진행됩니다. 고로 우리의 마음 속에 해야 될 대역사는 선과 악을 쪼개내는 것입니다.
내 마음 가운데 온전치 못한 것이 있으면 역사가 온전히 보이지 않아요.
절대 그러합니다. 역사가 온전하지 않아서 온전하지 못 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악이 남아있
어요. 내 마음이 온전하지 않아요. 온전한 것을 보아도 악하게 보여요. 온전치 않게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
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마음에 선과 악을 쪼개내지 않으면 내가 쪼개내리라.” 주님이 칼을 대시면 그 때
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십니다. 내 마음에 선과 악을 쪼개지 않으면 절대 온전하게 섭리역
사를 갈 수 없으니, 절대 온전하게 섭리역사 축복받은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분별력을 가져야 되겠습니
다.
마지막 말씀을 전하고 마치겠습니다. 선생님은 며칠 전에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주셨죠.
꿩 잡는 거 보여주셨죠. 맨손으로 장꿩을 잡았어요. 장끼라고 하죠. 큰 수꿩을 잡았어요. 새총으로 못 잡
았어요. 손으로 잡았어요. 손으로 잡았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바로 주님께 기도해서 잡았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무기, 내가 가지고 있는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잡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앞에 문제
가 있습니까? 우리의 문제는 무슨 문제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내 개인 가정의 문제가 아니예요. 오늘도 내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가 있었다면 저는 단상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내 문제먼저 해결해야 되
니까요.
그런데 저는 섭리사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자 이 곳에 왔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 불안하면 안 되니까요. 섭리사가 살고 내가 사는 게 아니니까요. 섭리사가 살고 내
가 사니까요. 절대 섭리사가 살아야 내 삶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은 원하시는 게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하여 주님 앞에 모든 문제를 놓
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현재 섭리사 가운데 있는 문제는 주
님께 절대 기도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뭔 줄 아십니까?
오늘 선생님께 편지가 왔어요. 마음이 아팠어요.
왜냐하면 ‘과연 선생님이 갖고 있는 모든 생각, 이 섭리사를 사랑하는 마음 절대 섭리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오직 말씀주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이 시간, 오직 섭리사만 위해서
살아오신 그 인생, 그 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선생님 기도하실 때인데, 선생님 기도가 멈추면 안 되는데 나는 그만큼 기도하고 있는가. 선생님께
서 과연 섭리사 모든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걱정이 들더라구
요. 그래서 마음이 많이 슬프더라구요. 우리는 정말 지금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요. 더 하나되는 것은
하나되어서 참 좋습니다. 하나되고 이제는 섭리사가 옛날과는 다르니까요.
그런데 정말 지도자들부터 그 마음과 심정을 알고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오늘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더라구요. “기도하자.” 또 말씀하시더라구요. “기도하자. 지금은 기도다.”
씨티엔 보여줬잖아요. 큰 꿩이 하나 와서 머리 박고 와서 죽었잖아요. 계시거든요. 우리의 책임분담은 우
리가 다 해야 해요. 기도. 우리의 힘으로 기도를 다 해야 해요. 여러분, 기도는 뭐라고 했죠? 기도는 자기
를 행하게 해준다. 기도는 하나님과 주님의 손을 움직이게 한다고 했습니다. 고로 기도하면 내 책임분담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두 가지를 다 하게 해줘요. 나도 행하게 해주고, 하나님과 주님도 해준다
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저 산으로 명하라 하면 옮겨지리라.” 그런 믿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산도 움직이는데 주님 마음 움직이고, 저들 마음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지금 하나되어서 섭
리운명을 내 운명이라 생각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우리의 삶의 터전이거든요. 나의 삶이
들어 있거든요. 우리도 이것을 통해서 핍박을 당했고, 나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고로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내 삶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죠. 정말 섭리사의 운명이 내 운명이라면 기
도해야 됩니다. 저는 믿습니다. 사람을 못 믿어요. 주님을 믿습니다. 그 능력을 믿습니다.
고로 기도합니다. 제발 나 좀 행하게 해달라고.
내가 행해서 될 것이 있고, 주님이 행해서 해결해야 될 게 있으니까 기도합니다. 기도 좀 들어달라구요.
신앙적 승리는 기도입니다. 사탄과 마귀를 먼저 없애는 것입니다. 그래야 섭리사가 잘 되겠죠. 선생님께
위로를 드리고 정말 행하고 싶습니까? 지난 간증 때 듣지 않았습니까? 홍콩에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그
이후로 힘이 생겼어요. 나도 선생님께 도움이 되고, 나도 선생님 도울 수 있고, 섭리역사에 큰 힘이 될
수 있겠구나. 나는 너무나 부족했어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누가 우리 선생님 건드
렸어!!” 하는 그 말 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선생님이 힘을 얻으시는 모습, 그 속에서 그
들이 신발을 벗고 오는 모습, 물론 어려움은 막을 수 없겠지만 “그 믿음으로 내가 막아낼 수 있겠구나. 이
아끼는 마음 하나로 내가 지킬 수 있겠구나.” 하는 그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권력자들이 지켜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섭리사에서도 선생님이 어렸을 때부터 키운 사람들이 장성해서 집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되고, 목사가 되
어서 선생님 지켜주는 거죠. 뭐 지금 큰 자들이 되어서 지켜줍니까? 다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이 키워서 그
말씀을 듣고 성장했기 때문에 선생님을 지키고 아끼는 그러한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가 지킵니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 귀한 마음, 정말 부족하지만 멋지게 가르쳐 주셨으니까
부족하더라도 내 삶 하나 하나 내가 행할 것을 행하면서 더 기도해 드리고, 내 믿음 흔들리지 않으면 선생
님 걱정하실 것이 없어요. 선생님 이 시간 무엇을 걱정하실까요?
저들의 악함과 행위도 화가 나실 겁니다.
그러나 힘을 내실 것은 이것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저들이 돌아오면 좋겠죠. 그러나 그것은 기대하기 어려
워요. 기대하기 쉬운 것은 내가 굳건한 것입니다. 이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선생님. 왜 그러세요? 저는
괜찮은데요. 저는 굳건합니다. 굳건한 생명 전도해서 데려올테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행할 것을 다 행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러면 걱정없죠. 살맛나는 섭리사 아닙니까?
지금은 엘리야 기도를 해야될 때입니다. 다시 엘리야 기도를 해야될 때가 왔습니다. 선생님은 오늘 말씀
하셨습니다. “지금은 총을 들고 마치 적들과 싸우는 때다. 적들과 싸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총
이다. 총 안에는 총탄이 들어있어야 된다.이 총탄은 기도다. 그래서 기도해야 돼. 무슨 기도냐고? 엘리야
기도다. 너희 교회만 기도하지 말고 다 기도해야 돼.”
여러분 엘리야 기도가 무슨 기도입니까?
엘리야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활을 건 기도였습니다. 목숨을 건 기도였어요. 거기서 제단에 불이 떨어지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간구한 것입니다. 맞습니까? 결국 어느 제단에 불이 떨어졌습니까?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떨어져서 선지자 바알과 아세라 목상 선지자 850명을 쳐서 멸했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때입
니다. “내가 명하노니 주님의 이름을 사칭하는 자들이여. 주님의 모임이라고 하는 사탄의 회당이여. 내가
기도하겠노니 어느 주님이 맞는지 한번 봐야 되겠구나.”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지금 어디가 어디라고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입니까?
어디가 어디라고 목숨을 함부로 내놓습니까? 진실로 그 목숨 더 내놓기 전에 말려야 되겠습니다.
그런 엘리야의 기도를 해야될 때입니다. 선생님의 기도가 끊이면 안 됩니다. 선생님의 운명을 가르는 기
도가 꼭 필요한 때예요. 선생님의 시간이 뺏기면 안 되요. 그러면 기도를 못 하세요. 우리가 속상하게 하
면 안 되요. 기도하게 해드려야 해요. 우리가 기도하게 도와드려야 됩니다. 선생님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
도록 새벽마다 기도해 줘야 합니다. 그 기도가 쓰러지지 않도록 연말까지 기도해야 됩니다.
저는 연초까지 기도할 거예요. 19일부터 들어가면 1월 27일 즈음에 40일 기도가 끊나더라구요.
그래서 연말연초를 완전 기도로 잡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교회 상황에 맞게 저는 21일 기도가
끝나서 이제 40일 하려고 합니다. 또 안되면 70일 하려고 합니다. 내년에는 완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행하
면서 모든 일이 해결되도록 완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각 상황에 맞게 꼭 기도를 하는 그런 역사를 이루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이 기도하지
못하면 우리가 불리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첫 번째 기도입니다. 나
도 기도로 보탤 것이 있다면 꼭 보태고, 내가 행할 것이 있다면 꼭 행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꿈에서 보니까 어떤 제자가 돈을 꾸고 다니더래요. 200만원을.
사람들에게 그 돈을 꿔달라고 하는데 그런데 사람들이 나는 돈이 없다고 하면서 너무 안쓰러워 하더래요.
그렇게 돈을 꾸러 다니더래요. 그래서 선생님이 너무 안타까워서 불렀대요. “왜 너 나한테 이야기하지. 사
람들 돈도 없는데 돈 꾸러 다니냐.” 그래서 선생님이 지갑에 있는 것을 열어서 2백만원을 꺼내줬대요.
이게 뭔 꿈일까요? 돈은 의입니다. 이 말은 무엇이냐? “나와 함께 하자. 나랑 해야 이긴다. 사람에게 이
야기해서 안 된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부탁할 것이라는 것입니
다. 그래서 기도입니다. 제가 21일 조건 기도 중에 단 한번도 주님의 응답을 받지 않은 적이 없어요. 매
일매일 주님이 응답을 주시는 거예요. 21일 내내 주셨어요.
마지막 날에는 다른 거 주실 줄 알아는데, 똑같은 것을 주셨어요.
21일 동안 내게 변함없이 주님이 내게 주신 응답은, 바로 “기도하자. 기도하자.” 였습니다. 단 하루도 빠
짐없이 기도하고 가면 기도하자. 21일 기도 딱 끊났는데 기도하자고 하셨어요. 이 말은 무엇일까요?
다른 말로 한다면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너무 기쁩니다. 기도할 겁니다. 연말 마지막 나의
섭리사 내 것, 여기는 내 것, 내 것으로 만들어 주신 것, 주님은 내 것, 나의 주님, 나의 섭리사, 나의 선생
님, 섭리사의 어려움은 내 것, 그러니까 내가 힘들고 내가 아파요. 그래서 기도합니다.
내 삶이 나의 섭리의 삶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함부로 판단되지 않기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죠. 선생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주님 앞에 진정 그러한 삶을 살겠다고 전진하는
삶을 살겠다고 찬양하면서 오늘 뜨거운 기도로 오늘 마지막 성령집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전진’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