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1.12.26 (월)
계시말씀 01c090e7
- 선포일
- 2011.12.26 (월)
- 성경 본문
- 새벽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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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6 계시말씀_01c090e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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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을 증거하는 영적 차원 높이자
작성일: 2011년 11월 6~7일 새벽 1:30
작성자: 권세현
[ 말씀을 잘 듣고 사모하던 2명의 생명이 악평으로 넘어졌습니다. 2명 다 말씀을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지금
어디 계신지만 말하지 않고 나머지 말씀 내용은 거의 다 알려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십자가 길은 말씀을 다
들은 후 증거하려고 아껴 놓았던 내용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계속 불안해하시며 선생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길
바라셨습니다.
허나 저는 “이 말씀 하나만 더 전해 주고 얘기해 줄게요.”라고 하며 더 말씀으로 생명들을 녹여야겠다는 생각
을 하며 주님이 주신 감동을 제때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주님이 감동 주신 그 다음날 2명 다
악평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들을 보며 주님께 눈물로 몇 날 며칠을 생명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악평이 아닌 제
가 먼저 증거하지 않아 이렇게 된 것임을 깨우쳐 주셨고, 진정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했지만 이미 사탄에게 조
건이 잡힌 생명을 되찾아 오기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말씀을 잘 듣고 사모하고 있는 초급 신입생, 중
급 신입생 2명에게 선생님이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시다는 것을 성경과 시대 말씀을 통해 증
거했습니다. 증거할 때마다 주님께서 굉장히 좋아하셨고 너무 강하게 역사해 주셔서 신입생들 또한 아무 의심
없이 잘 이해하며 이 말씀의 가치성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며 주님께 진정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회개기도를 드렸고 주님께서는 모두에게 급히 전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받기 위해 기도할 때 이상으로 사탄들이 계속 2~3마리씩 제 눈앞에 다가왔고 굉장히 무서운 느낌
이 들어 30분 동안 사탄 무찌르는 기도를 하고 받은 말씀입니다. 사탄이 이 말씀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는 것을 알게 되었고 중요한 말씀이라 생각되었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었느냐?
(“네, 예수님!”)
네가 받으려 하지 않아
내 심정을 여태껏 말하지 못하지 않았느냐.
(“죄송해요 예수님. 저는 부족하니까
다른 자에게 말씀하시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행하고 깨달은 너에게만 줄 수 있는 말씀이다.
내 말을 어서 적어라.
섭리 세계 전체가 꼭 들어야 할 중요할 말씀이다.
내 심정을 받고 느낀 네가 적어야 한다.
네가 간구해야 말씀을 줄 수 있다.
난 항상 네 옆에 있으니
간구하여 말씀 받기를 사모하거라
섭리사야.
지금 이때 내가 누구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느냐?
섭리사 너희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
섭리사 너희를 통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선생 때문이다.
선생이 섭리역사의 시작이며 중심이기에
선생이 있기에 너희를 통해 역사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지금 선생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이 없으면 내가 너희에게 역사할 수 없다.
선생이 핵심이다.
그런데 그런 선생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왜 그곳에 있느냐
누구 때문에 그곳에 있는지 아느냐?
바로 너희 각자를 위해서이다.
그리고 지구촌 전 세계
70억 인구를 위해 그곳에 있다.
섭리사의 죄와 전 세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알고 있느냐?
먼저 내가 누구를 통해 역사하는지,
그런 선생이 왜 그곳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왜 과감히 외치지 못하는 것이냐.
왜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냐.
이것이 거짓이더냐, 사람이 지어낸 일이더냐.
성삼위가 역사하는 진실된 역사로다
허나 이 진실을 외치지 못하는 섭리 세계를 보고
나 예수가 심히 답답하여 말하노라
이 역사 삼위가 직접 주관하고 있는 역사이다.
사람의 눈으로 한낱 사람의 생각으로 저울질하며
판단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니라.
2000년 전 내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자
나 예수 또한 2000년 전 옥살이를 했다.
아주 짧은 옥살이를 하고 바로 사형에 처해졌다.
그 당시 나의 죄명은 수천 개가 넘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고소를 당한 것이다.
그 당시 내가 2000개가 넘는 죄명 때문에
죽은 것이라 생각하느냐?
구약 때 무너진 역사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십자가 길이었다.
그리하여 나 예수 또한
그 길을 정녕코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이 틀어져
그 길만이 유일한 구원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눈물의 십자가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십자가였으며
너희를 위해 내어준 내 몸이었다.
그 십자가 지금은 숭고하고 고귀한 보혈이라 말하지만
그 당시 그 십자가 어떠했겠느냐
난 정말로 죄를 지어 죽임을 당한 흉악 범죄자였다.
나의 많은 소문들은
내 죽음으로 인해 사실로 인정되었고
유대 제사장들은 나를 더욱 욕하며 헐뜯었으며
나를 믿지 않던 자들이나 나를 모르던 자들도
나의 죽음으로 인해 나를 더욱 불신했다.
나 예수를 믿는 것은
곧 사형에 처하는 일이 되었고
나 예수를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흉악 범죄자의 제자가 되었다.
허나 그런 상황 속에서
나를 담대히 증거한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외친 것은 오직
내가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내 십자가는
구원을 위한 보혈의 피라는 것을 증거했다.
육적으로 나를 다시 재심하여
억울함을 풀어 달라 하지 않았다.
영적으로 나의 역사를 증거했다.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육적으로 증거하지 않았다.
나의 죽음은 나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시대의 죄로 인함인 것을 증거했다.
이 시대 선생이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너희가 지금 겪는 일들의 수천 배보다 더 심한
극적인 상황이 펼쳐졌던
2000년과 비교해 본다면
너희가 지금 겪는 수모는 아무것도 아니다.
허나 너희는 지금 무엇을 외치고 있느냐.
2000년 전보다 더 많은 성령을 주고 있거늘
어찌 성령을 받고 외치는 자가 적은 것이냐.
제대로 외치는 자가 적다.
성령을 진정 받았느냐?
내 심정을 받았느냐?
내가 이 시대에
무엇을 외치고 싶어 하는지 느꼈느냐?
깨달았느냐?
내 마음을 알겠느냐?
바로 선생을 외치는 것이다.
선생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선생이 악평을 듣고 있다는
정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선생을 무엇으로 증거할 것이냐.
어떻게 증거할 것이냐.
어떤 방법으로 증거할 것이냐.
선생이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생명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
머리로 논리로 법으로 이해할 수 있겠느냐.
죽은 정의로 이해할 수 있겠느냐.
선생이 왜 그곳에 있게 되었느냐.
나의 재림의 때에
지구촌에 준비된 신부는 적고
신부 역사라 불리는 섭리사 너희마저도
재림에 온전히 깨어 있지 못하고
이성죄가 판을 치고 있으며
전 지구촌의 죄가 바다를 덮고 산과 강을 덮어
내 육신인 선생이 그 죄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이 십자가를 져야만
지구촌 재림의 역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지구촌의 죄악은
너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섭리사의 죄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죄로 인해
사탄들이 나의 재림을 막고 방해하며
너희가 나의 재림의 주관권으로
나아올 수 있는 발판을 막기에
조건 없이 재림역사를 펼 수가 없었다.
죄라는 조건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그 조건을 청산할 의의 조건이 필요했다
이 시대 온전한 의의 표상인
선생밖에는 감당할 자가 없었다.
선생처럼 온전한 자가 없었고
신부의 완성체가 없었기에
선생의 조건만이
지구촌의 죄의 조건을 담당할 수 있었다.
선생이 십자가를 져야만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2000년 전과 동일하게
지구촌의 죄악으로 인해
내가 보낸 선생을 무지로 핍박하고
그를 통한 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이단시하였다.
선생을 믿음으로
선생을 통한 말씀을 믿음으로
회개하여 죄를 사함 받지 못하기에
십자가의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중국에서의 선교는
선생의 목숨을 건 선교였다.
중국에서 선생을 인정하고 복음이 퍼졌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못했고
그와 동시에 한국 섭리사는 점점 더 타락해 갔다.
이런 모든 정황을 통해
선생의 운명은 점점 기울어져 갔다.
선생의 운명은 곧 시대의 운명이니
이 시대가 기울어진 것이다.
기울어진 운명을 가만히 내버려 두어
하늘 역사를 깨트릴 수 있겠느냐.
선생 나의 마음을 알고
나를 위로하며 묵묵히 하늘 역사를 위해
이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지금도 가고 있다.
선생의 십자가,
이 시대와 섭리사의 죄로 인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며 진실이다.
그리고 정녕코 전 지구촌 70억 인구가
감사하다며 절을 해도 모자랄 정도로
감사할 내용이다.
너희는 왜 이것을 증거하지 못하느냐.
선생의 십자가가 단순히 재판 때문에
죄명 때문에 생겨난 것 인줄로 아느냐.
선생의 십자가는 죄인을 위한
의인의 인내와 오래 참음의 결실이다.
이러한 선생의 십자가를 증거하라.
영적으로 증거하라.
육적인 발판과 증거로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증거해야 한다.
내 심정 받았느냐?
내 마음이 어떠하더냐?
(비장하며 속이 타고 애가 타고 한스럽고 담대하며 용맹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너도 그 마음 가지고 전하여라.
선생을 증거하는 것은
나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되어
너무 쉽게 되었구나.
나 예수의 십자가 노정이 똑같이 재현되고 있으니
나 예수를 증거하면 되지 않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나 예수를 기억하라.
나 예수의 노정을 기억하라.
내 십자가가 구원의 십자가더냐
실제 나의 죄값으로 인한 죄의 십자가였느냐?
너희들 내가 부끄러우냐?
2000년 전이지만
사형선고를 받고 죽은 네 신랑이 부끄럽더냐?
나의 십자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부끄럽고 창피해서 차마
나를 네 입에 담지 못하느냐?
어찌 증거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느냐?
내가 정말 죄를 지어 죽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느냐?
내가 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는지 의심되느냐?
(“아니요, 예수님.”)
내 십자가, 지금은 만인이 인정하는
구원의 십자가이지만
2000년 전에는 죄인의 죄수의 십자가였노라.
허나 2000년이 지난 지금 어떠하냐?
누가 감히 나의 십자가를 함부로 왈가왈부하더냐?
다들 그리 믿고 있고
그것에 의심도 오해도 없지 않느냐
왜냐면 내 십자가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너희는 왜 선생의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느냐?
왜 창피해하느냐?
왜 확실하게 증거하지 못하고
어찌 이야기해야 할지 망설이며
의심도 하고 낙심도 하고
왜 그 십자가 그 숭고한 희생을 그 사랑을
초라하게 만드느냐.
나 예수와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
어찌 그리 떳떳하게 담대하게 외치지 못하느냐.
왜 숨기는 것이냐.
도대체 숨길 것이 어디 있느냐.
숨길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내 답답하다.
너희 내 희생은 그리도 잘 외치면서
왜 선생의 십자가는 그리도 숨기느냐.
왜 육의 눈으로 선생을 바라보며
육의 생각으로 판단하여
선생을 육의 사람으로 만드느냐.
선생이 죄가 있느냐
너희가 죄가 있느냐.
선생이 온전하냐
너희가 온전하냐.
세상이 온전하냐
선생이 온전하냐.
세상이 이성죄를 짓고 있느냐
선생이 이성죄를 짓고 있느냐.
세상이 나를 모르느냐
선생이 나를 모르느냐.
세상이 악하더냐
선생이 악하더냐.
선생이 어디에 있는지 왜 그곳에 있는지
왜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는지
왜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가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그 인생을 희생하고 있는지
네 눈으로 마음으로 심정으로 깨달아 보거라.
네 양심이 움직이느냐.
네가 선생의 제자더냐.
그렇다면 왜 말하지 못하느냐.
선생은 너를 위해 죽어 주었는데
너는 선생을 위해 왜 죽어 주지 못하느냐.
선생은 너희를 살리려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었거늘
너희는 선생을 살리려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선생은 지금, 밀려오는 죄 더미들 속에서
줄어들지 않는 죄 더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구나.
선생을 살려 주어라.
너희가 선생을 저리 만들었으니
너희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
선생을 증거하는 핵심은
선생이 지금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으며
왜 그 길을 가고 있는지
근본을 쪼개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생이 시대 사명자인 이유가 무엇이냐.
선생이 내 육신인 이유가 무엇이냐.
내 육신이니 나 예수의 삶을 살며
나 예수가 갔던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이 십자가 졌기에
재림 말씀이 선포될 수 있었으며
성령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2000년 전 내가 십자가를 졌기에
이스라엘의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이 열렸고
회개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으며
복음의 대 역사 또한 일어났다.
내가 살아 있었을 때보다
십자가를 진 후 너희를 위해 대속물이 된 후
사도바울을 통해 더 깊은 신약 말씀을 완성하였고
사도 요한을 통해 성약역사를 예언하였다.
나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인해
복음의 문과 성령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시대 선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선생이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죄로 덮여 있던 모든 마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생겼다.
이 시대가 더 온전한 시대 복음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생겼다.
그리하여 더 온전한 성약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시대의 수준에 따라 죄의 정도에 따라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다.
시대 전체의 급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
시대가 말씀을 감당할 그릇이 되어야 한다.
선생의 십자가로
너희가 이 말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나 듣고자 하면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말씀이 선포된 것이다.
하늘의 책임분담을 다하였다.
하늘은 너희를 구원시키기 위해
시대 나의 육신인 선생을 희생하여
너희의 생명길을 열어 놓았다.
이것이 숨기고 부끄러워 할 일이더냐.
너희를 위해 내 육신을 희생시키며 구원하려는데
감사 감격이지 않느냐.
내가 얼마나 더 희생해야 그 사랑을 느끼며
그 구원의 값어치를 느낄 수 있단 말이냐.
이 시대 사명자이며
이 생명의 깊은 말씀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내 육신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다.
다 죽어가는 섭리와 전 세계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선생밖에는 이 십자가 감당할 자가 없었다.
2000년 전 하늘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렇게도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하시고 싶으셨지만
나밖에는 감당할 자가 없어
묵묵히 가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뜻도
헤아릴 수 있었다.
선생이 너희를 목숨 주고 살렸거늘
그를 증거해야 함이 마땅치 않느냐.
너를 어떻게 살렸는지 그 은혜를 전해야 하지 않겠냐.
그것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더냐.
감사 감격하며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냐.
섭리 너희 어찌 그리 내 맘 모르고
선생 마음 몰라
선생을 그리 대하느냐.
선생을 멋있게 자랑스럽게 담대하게 세련되게
훌륭하게 증거하는 자가 적구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것을 내 잘 안다.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역사를 펼 수 없다.
100번 마음먹은 것은 1번 행한 것 보다 못하다.
100번 마음먹은 것은 결국 마음만 먹었기에
행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고로 무로 끝나는 것이다.
진정 마음이 아닌 입술로 외쳐야 한다.
선생의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감사히 외쳐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인데 뭐 그리 부끄러우냐.
선생이 죄가 있는데
죄가 없다고 이야기하라는 것이더냐.
선생은 진실로 죄가 없으며
죄가 없기에 죄가 있는 너희들과
전 세계인들의 죄를 짊어지어
너희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아픈 자가 어찌 아픈 자를 살릴 수 있으며
가난한 자가 어찌 가난한 자를 먹일 수 있겠느냐.
다 죽어 가는 자가 다 죽어 가는 자를 살릴 수 있느냐.
자기 목숨 유지하는 것에 급급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 세계의 모든 죄를 담당하려면
그 얼마나 죄 없이 깨끗하고 청결해야 하겠느냐.
그 얼마나 사랑이 많겠느냐.
그 얼마나 내 마음을 느꼈겠느냐.
그러니 그리 행하지 않겠느냐.
실로 그것을 담당한다는 것은
그리 살고 희생해야 하니
보통의 사랑으로 보통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
어찌 이것을 모르느냐.
2000년 전 나는 십자가를 짊어질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너희를 너무 사랑하기에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싶었다.
성경에 고난의 주로 양면 예정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서 조금은 예측할 수 있었지만
실제 그리 될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이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었던
예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래서 더 목숨 걸고 복음을 전했다.
하늘의 뜻이 틀어지지 않도록 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허나 하면 할수록 깨달았구나,
지구 역사 복직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뜻이 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성자였지만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두렵지 않았겠느냐.
허나 나보다 더 가슴 아파하실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졌다.
현실을 겪어보니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생각이 깊어졌노라.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기도한 끝에 결심했다.
나보다 너희를
나보다 하늘 아버지를 택하기로
그 십자가 길 내가 가지 않음으로
구원의 길이 안 열릴 수도 있었다.
내가 너희보다 나를,
하늘 아버지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면
사탄에게 굴복하여 이 역사를 빼앗겼을 것이다.
허나 나보다 더 사랑하기에
그 길을 감사히 묵묵히 갔다.
그로 인해 사탄은 굴복했다.
네 선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선생 이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너희보다 선생을 더 사랑하고
성삼위보다 선생을 더 사랑했다면
선생 그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은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허나 선생은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함으로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다.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너희를 사랑할 때
진정으로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자기를 버려야 내 육으로 쓰여질 수 있지 않겠느냐.
선생은 자기 것이 없다.
오직 다 내 것이니 내 몸인 것이다.
깨달아라 섭리야.
선생이 왜 내 육신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 십자가 길을 가기 전에도 내 육신이었지만
지금은 더 온전하게 완전하게 내 육신이 되어 주었다.
진정 성삼위의 신의 모습을 한 신이 되었구나.
선생을 증거하여라.
그의 십자가를 증거하라.
자랑스럽게 증거할만한 아름다운 희생이다.
숭고한 사랑이다.
그 사랑 증거하여라.
그 사랑 증거하라.
한없는 나의 사랑,
내 목숨보다 더 너를 아꼈던 그 사랑,
한없는 선생의 사랑,
그보다 나를 더 사랑한 사랑.
선생의 십자가를 증거함으로
죽어 있던 영혼을 깨우고
시대의 대 역사를 이루자.
(“어떤 식으로 신입생들에게 증거해야 하나요?”)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 중에서
나 예수를 확실히 믿고
새 역사 말씀을 사모하며
순수하고 깨끗하여 순종하며
따라오고 있는 자들에게
선생을 증거하여라.
복음으로 성경으로 말씀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악평 때문에 답답해하지 말고
생명이 악평 듣기 전에 증거하지 못하는
네 자신을 답답하게 생각하여라
나를 느끼지 못하며
아직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라
나를 깨닫고 나를 사랑하며
나에게 나아오고 있는 자들 말이다.
나에게 기도하거라.
각 생명에게 맞는 때에 내가 감동을 줄 것이니
그때에 과감히 증거해야 한다.
지금 이때는 사탄들이 빠르게 역사하는 때이니
사탄에게 지면 안 된다.
사탄들은 선생을 악평으로 증거하니
너희가 사탄보다 먼저 선생을 영적으로 증거하여
사탄에게 조건을 잡히면 안 된다.
시대의 위대한 스승이자 멘토이며
십자가의 길을 대신 가고 있는
나의 육신이라는 것을 먼저 증거하자.
성경의 수많은 중심인물의 노정을 증거한 뒤
나 예수의 노정을 과감히 증거한 후
동시성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성경의 역사라는 것을 증거하여라.
특히 요셉의 이야기를 깊이 하며
성경의 역사인 것을 다시 한 번 되짚어 주어라.
복음으로 나 예수를 증거함으로
선생을 증거해야
표적이 일어나며
기적과 이적이 일어날 것이다.
말씀 다 들은 후에 증거하면 뺴앗긴다.
사탄들이 얼마나 틈을 노리고 있는지 아느냐.
기존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
너희도 느껴보지 않았느냐.
올해 대역사의 핵심 중 하나는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다.
선생을 증거하는 차원을 높여야 한다.
기존의 차원으로 증거해서는 아니 된다.
사탄은 차원 높이며 악평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제자리 그 위치에서 증거하면
상대가 되겠느냐.
너희가 차원을 높여 더 영적으로 무장하여
성경을 근거로 시대 말씀을 무기 삼아
성령의 불로 생명의 마음을 잡고
영혼을 녹여야 한다.
네가 먼저 확신하고 네가 먼저 시인하여
나의 심정을 받고 선생의 심정을 받았다면
그 심정 가운데 내가 역사하겠노라.
선생을 증거하는 영적 차원 높이자.
이 재림의 시대에 지금 이때
나 예수가 간곡히 급절히 바라는 바이다.
선생을 차원 높여 증거했을 때
대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성경 말씀 시대 말씀을 근거로 외치며
네가 겪고 느낀 선생을 심정으로 증거하여라.
섭리사 선생 증거의 대역사가 일어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는 주 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