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1.12.29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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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같이 끝없이 배워야 가치성이 높아진다
작성일: 2011. 10. 10. 월
작성자: 이선진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리면서
선생님에 대해서 깨닫고 싶다고 간절히 간구드렸을
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 예수님 말씀 *
사랑하는 자야,
오늘은 선생의 가치성에 대하여 말해 보자.
먼저 선생은 성약시대의 중심자이자
전 7000년 마지막 결산 역사의 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다.
섭리는 역사의 물줄기의 마지막 종점이다.
물이 시냇물로 흘러 강으로 흐르고
강물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유입되듯이
구약부터 시작한 하늘의 역사가
마지막 종점을 향해 흐르고 있구나.
하늘의 의인들이 어둠의 방벽들을 뚫고 뚫어
끝까지 지켜온 역사의 한 줄기가
이제는 선생을 통하여
전 세계를 덮는 빛이 되게 되었구나.
선생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자이다.
실상 역사의 때는 도래하였지만
가장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가 펼쳐지기가
어려웠던 때도 이때였다.
인간의 타락은 극에 달하고
무지의 주관권이 온 세상을 덮었을 때
‘선생’이라는 빛이 나타났다.
인간의 눈에는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가난해 보였을지라도
하늘의 눈에는 전 세계 온 누리를 비추어 줄 빛이었
다.
(“주님, 선생님이 가치 있는 이유들 중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에요?”)
선생의 가치는 ‘말씀’으로 판단된다.
말씀은 선생의 생존 이유이며 목숨 보존의 이유이다.
말씀이 곧 선생이다.
말씀의 주권자가 선생이다.
한평생 시대의 말씀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단 한 번도 빼앗기지 아니하였으니
그를 이 시대의 말씀의 주인이라 칭하여도 옳지 않
느냐.
그는 말씀으로 살며 말씀으로 주권을 부려
이 시대의 악들을 심판하고 멸한다.
말씀은 그의 자존심이며 자부심이다.
그는 말씀과 일심동체이며 말씀이 곧 그의 삶이다.
선생은 말씀을 연구할 때
‘나를 알고 적을 알고 하나님을 알리라.’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연구’란 연구하는 대상의 종적, 횡적 의미,
표면적, 입체적, 암시적 의미를
다 따져 보고 재어 보는 것이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 과정과 결과는 무엇인가,
그 사건이 주는 교훈과 의의는 무엇인가,
역사 속에 그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등
을
따져 보며 접해야 그 사건에 대해
연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이 말씀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
도
바로 이 ‘연구 정신’이다.
연구 정신이 없으면 어떠한 것에 대해
주인이 될 수 없다.
선생이 하는 것마다 일취월장하고 능숙하게 하는 이
유도
다 연구 정신 때문이다.
하는 것마다 주인이 되겠다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연구 정신을 지니고 파고드니
하는 것마다 다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있어야
이 섭리에 있어서도, 말씀에 있어서도
주인이 되는 것이다.
너희도 선생을 따라 말씀과 이 시대 섭리의 주인이
되어라.
(“주님, 주인이 된다 함은 무엇인가요?”)
어떠한 것에 있어서 주인이 된다 함은
그것에 대해 주권을 가지고
남들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함이다.
선생이 선생의 선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이유는
끝없이 배워 남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망이
아주 강하였기 때문이다.
선생처럼 배우고자 하는 자만이
섭리길에 합당하며 생명 구원의 길에 합당한 자이니
라.
선생처럼 끝없이 배우고
끝없이 가르치려는 자세를 취하여라.
(“주님, 선생님처럼 자꾸만 배우고 또 배우고
싶어 해야 하는데 제가 교만해서인지 또는 금세 지
쳐 버려서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해 버리는데,
선생님은 왜 배움의 열정이 그렇게나 크시나요?
지금 정도면 이미 완성의 정점을 찍으셨잖아요.”)
‘배움’이란 앎이자 축복이며 뇌의 창조목적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물과도 같은 것이다.
선생은 배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깨닫고
이 배움의 열정을 결코 놓지 않았다.
배움은 한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얼마나 배우고 깨달았느냐에 따라
하늘 같은 사명을, 땅 같은 사명을 받는 것이다.
배움으로 나 예수와의 관계성도 좌우된다.
배움으로 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목적
이
이루어지느냐 안 이루어지느냐도 좌우되는 것이다.
배움은 한 인생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배움으로 천국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살게 된 영혼의 삶도 좌우된다.
선생도 교만해지지 않고 항상 부족함을 시인하며
배우고 또 배웠기에 하늘 같은 사명을 얻은 것이다.
현재 섭리인들 중
섭리의 말씀을 다 알고 있다고 해서 교만해져서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자들이 있다.
이는 ‘나는 더 이상 축복을 받지 않겠소.’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20개론을 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주일말씀, 수요말씀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직접 연구해 보고 공부해 보아야 한다.
아는 만큼 지식이요, 힘이요, 주권이다.
(“맞아요. 주님. 저는 그동안
20개론 강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제 웬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요.
일전에 기성인을 한 사람 만나 말씀을 전해 보았는
데
그 기성인의 해박한 성경 지식 앞에
저의 무지와 부족함을 깊게 깨달았어요.
성경도, 섭리의 말씀도 그냥 한 번 접해 보는 수준이
아니라
주인이 될 정도로 연구해야 더 많은 생명들도 전도
하고
저의 인생도 잘 풀릴 거 같아요.”)
배움을 우습게 여기지 말아라.
세상 지식은 유한하고 허무하기에
그 순간에만 쓰이거나
혹은 몇 년, 몇십 년밖에는 쓰이지 않지만
영적 지식은 영원히 쓰인다.
결코 이 세상에서만 쓰이고 끝나는
지식, 학문과는 다르다.
이 영적 지식은 너희가 하늘나라에 올라갈 때
고스란히 올라가 하늘나라의 보화처럼 쓰이게 된다.
아는 만큼 누리고 즐기는 것이다.
(“주님, 참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래요.
그리고 특히 대한민국의 풍토가
대학교만 졸업하면, 성인만 되면
‘이제 배움은 끝났다.’라고 생각하기가 쉬워요.
교만해지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까 사람들끼리 싸울
때
‘니가 뭘 알아.’하며 싸우잖아요.
끝없이 배우시는 선생님은 오히려 겸손하신데 말이
에요.”)
한계가 있고 허무한 세상 지식의 늪에 빠져 살다 보
니
그러하다. 교만함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영적 세계의 무한함과 오묘함, 신비함에 대해
체휼해 보지 못한 자들이 교만해지는 것이다.
교만해지면 더 이상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교만은 곧 파멸이다.
자신이 현재 교만함의 늪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모두들 점검해 보아라.
선생같이 매일 배우고 매일 실천이다.
(“선생님은 주님에 의해 그 가치성을 부여 받았다기
보다
끝없이 스스로 노력하고 배우셔서
자신의 가치성을 계속 높이고 높이신 분이네요.”)
사랑아, 인간의 가치란
얼마나 그 인생에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창조의 목적대로 사느냐이다.
섭리인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도
각종 재물, 재산, 명예, 사회적 위치에 따라
그 인생의 가치가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매일매일을 사느냐로
그 인생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선생도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
매일매일 열심히 배우고 깨달아 실천하여
지구촌 최고로 가치 있는 자가 되었듯이
너희도 그렇게 매일매일 너희의 가치를 높여라.
사랑한다. 안녕.
선생같이 끝없이 배우라고 말해 준 주 예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