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2.01.26 (목)
계시말씀 c8d9d8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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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1.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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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계시말씀_c8d9d8fc.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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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작성일 : 2011. 12. 08-09. 새벽 2시-5시
작성자 : 주사랑빛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막상 어려운 일이 눈앞에 닥치면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저의 모습들을 보면서
주님께서는 며칠 동안
‘믿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시고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절대 믿음을 가지고 모든 일을 기도로 주님과 함께
풀어 가야 함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날 수요예배 말씀을 들었는데
말씀이 어찌나 달고 오묘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모두 저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새벽 말씀까지 모두 주님께서 제게 깨달음을
주셨던 것들이었습니다.
말씀으로 확인하니 더욱 확신이 들고 결심을 하게
되고
마음이 너무나 기뻤습니다.
선생님을 위한 기도 조건을 세우니
주님께서는 너무 기뻐하시며 오셔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 ‘일체’에 대한 말씀을 전해 주신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예수님 말씀*
사랑하는 자야, 내 여인아.
나와 네가 일체 되어 가는 과정은
마치, 물건을 조립하여 완성시켜 나가듯이
재미있고 스릴 있다.
물건을 모두 완성시킨 후 보람이 있듯이
나와 일체 된 너희의 삶이 참으로 보람되며 기쁠 것
이다.
일체 되어 가는 과정 또한, 신이 준 선물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은 이 선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선물을 발견한 자만이
그것의 가치를 알고 감사해 하며 받을 것이다.
‘일체’가 무엇이냐?
나와 너의 생각, 정신, 마음이 모두 같아짐으로
나 예수가 원하는 대로, 나 예수가 만족할 만큼
행하는 너희의 모습이 아니겠느냐.
네가 깨달아 알고 그것을 말씀으로 확인하고 행했을
때,
심령이 기쁘고 후에 표적이 일어나
더욱 감격해 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모두 역시 일체 되어 가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선생은 평생을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왔기에
그의 인생이 기쁘고 즐거운 인생이 되었다.
일체 되어 가면서 더욱 나의 심정도 깨달아 아니
더욱 깊은 말씀을 받으며 인류의 표상이 되었다.
십자가 고난을 받았을 때,
나의 깊은 슬픔을 아는 자가 없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고
진정 품에 안아 주는 자가 없었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 극심한 마음의 고통이 밀려왔다.
오직 여호와,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을 아시고
위로해 주셨다.
나는 성자로서 인류 구원의 소명을 가지고
지상 가운데에 내려왔고,
변함없는 사랑으로‘예수’라는 육신을
십자가에 내어 놓았다.
나의 마음과 같은 자가 필요했다.
훗날, 선생은 십자가에 매달려
깊은 슬픔의 바다 속으로 빠졌던
나의 마음마저도 모두 위로해 주었다.
나를 ‘사랑한다’ 말하며
나를 매도하는 많은 무리들은
정작 나 예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선생만큼은 달랐다.
부부가 된 남자와 여자는 살다 보면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사랑으로 일체 되어
가장 소중한 ‘사랑의 마음’을
서로가 주고받았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육체적 사랑이라 영원하지 않다.
선생과 나는 영적인 사랑을 나누고
일체 된 사랑 관계이다.
이는 영원불변한 최고의 사랑이다.
그러하기에 선생은 나의 눈빛만 봐도 나의 마음을
안다.
나는 영이요, 그는 육이기에 우리는 하나이다.
고난 중에 영광의 보좌에 다시 오른 나 예수와 일체
된,
선생의 인생 또한 고난을 받고 있으나
결국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될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시대의 십자가이나,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형이다.
나와 같이 그 역시 그를 위로해 주는 자 없어
깊은 슬픔의 바다로 빠져만 간다.
너희 섭리사가 더욱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길 바란다.
섭리사는 나 예수의 역사이기에
과거에도 승리했듯이, 현재에도 승리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섭리사야,
너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고통스럽고 고난의 길을 가는 것 같아 보여
도
나와 선생과 일체 되면 될수록
이는 영광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니
결국 승리하는 너희의 삶이 될 것이다.
나 예수는 십자가의 죽음 이후,
3일 반 동안 영옥에 갇혀 있었다.
십자가의 길은 절대 예정이 아니었듯이,
영옥의 철창도 절대 예정이 아니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육신이 십자가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듯이,
나의 영 또한 영옥에 갇혀 인류를 위해 죽어 주었다.
십자가의 죽음이 인간의 죽음과 같지 않음은
성자의 사랑의 희생으로 인해
인류의 구원을 보장받았고
죽음은 바로 승리로 이어져,
사망의 주관권에 영원히 갇힐 수밖에 없던 자들을
생명의 주관권으로 이끌어 낸,
‘위대한 희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영옥에 갇힌 나 성자는
구약시대 무지하여 죽음을 당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사망의 주관권에서
생명의 주관권으로 이끌어 냈다.
십자가의 죽음을 각오하고 여호와의 뜻에
오직 순종하며 맞은 육신의 죽음은
결국 살리는 역사를 이루어 냈고,
영옥에서도 비록 나의 영은 갇힌 바 되었으나,
오직 순종과 충성으로 그곳에서조차
생명 구원을 이루어 냈으니,
이는 성경 예언을 이루려 함이요,
구약시대 불신하고 타락한 자들을
살리기 위한 시간이었다.
“왜 전지전능하신 성자이신데
그곳에 갇혀 계셨나요?”
이는 왜 전능자가 십자가를 지고 매달렸는가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구나.
본래 유대인들의 영, 육을
모두 회복시키는 것이 나의 소명이거늘,
불신과 무지함으로 나의 육신의 희생이 불가피하였
고
이로 인해 이들의 영이라도 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영옥에 갇혀 영, 육이
다 사망에 처한 자들의 영이라도 살리고자 하였다.
구약시대 하늘의 사명자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을 믿
고
따르지 않은 죄가 너무나 크기에
그들을 살리기 위해 성자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영옥에 갇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구약에서부터 이어져 온,
역사적 죄의 흐름을 종결하고
새로운 약속이 이루어지는,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여호와의 뜻이 있었다.
“영옥에서 주님께서는 왜 하필 홍수심판 때
죽은 자들에게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까?”
홍수심판 때 죽은 자들은
여호와께서 시대 중심인물을 통해 선포한 진리를
불신하고 타락함으로 심판을 받은 자들 중
첫 번째 자들이었다.
구약시대 심판을 받고 죽은 자들을
대표하여 일컬은 것이다.
극적인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을 해야 했듯이
극적으로 영옥에 갇힌 채,
나 예수가 희생하며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이루어 낸 것이다.
나와 일체 된 선생은 나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 죄악의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다.
이 시대는 영, 육 모두 회복되는 마지막 시대이다.
나의 육신이 십자가의 희생을 하였듯
나의 육신 된 선생이 시대의 십자가 희생을 하고 있
고,
나의 영이 영옥에 갇혀 희생하였듯이
선생의 영 된 나 또한
시대 심정의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나 예수는 선생과 함께 이 시대를 위해
희생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전하게 회복되는 승리의 역사가 이루어
진다.
선생은 나와 완벽히 일체 된 자이다.
그의 삶을 보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섭리사 너희 모두도 선생과 같이 나와 일체 되어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길 원한다.
나 예수 홀로, 선생 홀로
너희의 십자가 지게 하지 말아라.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함께 끝까지 하는 것이다.
이는 나를 깊은 슬픔에서 건져내는 길이다.
이 생명길을 홀로 외롭게 걷게 하지 말아라.
사랑하니 너희와 함께 걷고 싶다.
선생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나와 일체 된 유일한 자이다.
그를 오해하는 무리들에게 전하여라.
그의 희생이 결코 유죄의 이유가 아니라
나와 일체 된 결과이며,
사랑의 희생이라는 것을.......
나와 쓴 잔을 마시지 않는 자가
오해하며 왜 쓴 잔을 마시고 있느냐 한다.
영옥에 갇힌 나 예수가 죽도록 충성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승리했듯이,
시대의 옥에 갇혀도 죽도록 충성하며
펜 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생이 승리하고 있
듯이,
너희 역시, 세상의 옥에 갇혀 있다 해도
죽도록 충성하며 복음을 전하여라.
두려워 말고 담대히 나와 일체 되어 전할 때,
어느새 생명의 세계로 풀려나
자유로운 너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재림을 온전히 맞이하고
모두 구원받게 될 것이다.
나 예수는 오늘도 인류에게 복음을 전한다.
진정 사랑하기에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나와 일체 된 선생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도 그리하여라.
진정 사랑한다.
사랑의 성자, 주 예수.
[ 알고는 있었지만 주님께서 제게 더 확실히 깨우쳐
주신
또 다른 깨달음은
‘어떠한 일을 두고 기도할 때,
1차는 주님의 깨달음과 감동, 말씀을 받는 것이고,
2차는 주님께서 선생님을 통해 주시는 말씀으로
내가 받은 것이 주님께서 주신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구나.
이 두 가지가 짝이 되어 모두 맞을 때,
내가 받은 주님의 깨달음, 감동, 말씀이 확실하구나.’
‘이 역사가 참인 이유는
영과 육처럼 주님과 선생님께서는 짝으로 역사하시
고
한 분이라도 없으시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그러니 기도와 말씀이 너무나 중요하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주님께서 계속 말씀해 주셨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확증하며 행할
때,
위력이 있고 표적이 일어나며 기쁘다.
모든 만물은 짝이 있듯이 기도와 말씀은 짝이다.
기도를 함으로 여호와의 뜻을 깨닫고,
말씀을 통해 확인하여 분별한 후, 과감히 행하여라.
지구상 누구도 나 예수의 말을 온전히 받는 자가 없
었다.
그러나 선생이 온전히 받아 전해 주니
너희가 나의 생각과 일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뿌리는 삼위로부터이다.
선생의 말씀도 삼위로부터 오니,
너희가 받은 감동과 깨달음이
삼위로부터 온 것이라면 같을 것이다.
기성과 타종교들은
아무리 기도하고 감동을 받는다 해도
중심자를 통해 주는 시대 말씀이 없기에
확인할 길이 없고,
온전한 하늘의 뜻인지 분별할 수 없기에 행할 수 없
다.
이때, 행해지는 행함은
온전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겠구나.
중심자를 통해 삼위의 역사를 온전히 펼쳐간다.
고로, 중심자는 나와 완벽히 일체 된 자니
참으로 중요하며 그 위력이 큰 것이다.
가령, 땅속에서 금 덩어리를 캐내었다 해도
순금인지 아닌지 확인할 길이 없다면
금덩어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지 않겠느냐.
또한, 땅속에 금덩어리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도구가 없으면 캐낼 수가 없지 않겠느냐.
설사, 도구가 있다 해도 튼튼하지 않으면
캐낼 수 없지 않겠느냐.
튼튼하고 강력한 도구를 제공하는 섭리사에서
기도로 여호와의 뜻을 발견하였다면 캐내고,
최고의 분별가인 선생에게 확인받고
금덩어리를 가공하여 사용하여라.
[잠언을 주시며 계속 말씀해 주셨습니다.]
1. 기도와 말씀은 짝이다.
2. 기도는 전반전, 말씀은 후반전이다.
모두 뛰어야 한 경기를 뛴 것과 같다.
3. 기도함으로 삼위의 뜻을 깨닫고 알아라.
말씀을 들음으로 확인하고 행하여라.
4. 삼위의 뜻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생각을 동원하지 말아라.
오직 삼위께서 세우신 분별자,
선생을 통한 전해 주는 말씀을 보아라.
5. 온전한 기도를 하는 자는 온전한 말씀을 받는다.
온전한 말씀을 받는 자는 온전한 행함을 한다.
온전한 행함을 하는 자는 온전한 신부가 된다.
6. 기도하고 말씀을 들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도록 하
라.
이는 너희가 씻고 닦아
깨끗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일상생활이 되도록 반복하여라.
7. 기도로 삼위의 뜻을 알았다면
온전한 분별자를 통해 확인을 받아라.
다른 자의 분별은 모두 온전치 못하여
흑암이 틈타기 쉽다.
8. 기도와 말씀으로 새 역사의 문을 연 자가 선생이
다.
모두 삼위의 방법으로 하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9. 기도는 한쪽 신을 신는 것이요,
말씀을 들음은 나머지 한쪽 신을 신는 것이니
마침내 두 발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즉, 온전히 행할 수 있다.
10. 간절히 진실하게 기도하여라.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여호와시다.
11. 어려움이 닥치면 먼저 두 손을 모아라.
두 무릎을 꿇어라
두 마음 (삼위의 마음과 너희의 마음)을 합쳐라.
나 예수가 구약시대 죄지은 자들을 위해 희생함으로
진정 구원의 역사를 폈다
선생이 무엇이 다르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