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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1.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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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일
2012.01.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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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전도자와의 관계, 섭리인과 선생님과의 관계 작성일: 2011. 11. 14. 월 작성자: 이선진 [ 주님과 생명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전도해 온 생명들을 살리고 무럭무럭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너의 영과 심령이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말씀과 기도만 해 준다고 해서 생명들이 살아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 이에 대해 주님과 깊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시길 간구 드렸습니다. ] * 예수님 말씀 * 사랑아, 오늘은 생명과 전도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해 줄 터이니 잘 듣고 깨달아 잘 전해 주기를 바란다. 생명은 전도자의 자식과 같다. 영적 자식으로서 전도자의 태반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잉태되어 나중에는 성장되어 온전한 섭리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수료 전까지의 기간이 전도자의 탯줄로 영양분을 공급받아 성장하며 자라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온전히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자라나지 못한 생명은 나중에 수료를 하여서도 오히려 처음 온 신입생보다도 못하게 되거나 기형아로 태어나 섭리사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섭리사를 등지고 떠나 버리게 된다. (“주님, 전도자란 생명을 데려온 자, 강의하는 자, 관리하는 자를 다 통틀어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렇다. (“주님, 아까 대화중에 단지 말씀과 기도만 해 준다고 전도가 되는 것이 아 니라 전도하는 자가 마음을 비우고 주님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전도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흐름을 바꾼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한 생명이 섭리인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전도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전도자의 영적 태반 안에서 전도자가 주는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성장한다고 하 였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자가 말씀과 기도를 해 준다고 해도 영과 심령이 죽어 그 전달해 주는 통로가 막혀 있다 면 이는 마치 영양분을 다 뺀 음식을 전해 주며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영과 심령은 전도자와 생명이 연결되어 있는 탯줄과도 같다. 전도되어 온 생명은 영과 심령이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전도자의 영과 심령을 의지하여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도자의 영과 심령도 죽어 있다면 자라나고 있는 생명은 무얼 먹고 자라나겠느냐. 결국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죽는 것이다. 생명들은 전도자의 심령과 영을 통하여 말씀의 영양분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을 받는다. 그래서 선생을 통한 말씀이나 부흥강사를 통한 말씀을 들을 때 너희가 성령을 받고 나의 심정을 깨달아 눈물도 흘리고 감동도 받는 것이다. 너희가 성령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너희의 영과 심령이 죽어서이다. (“아, 주님. 마치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다가 잉태되어서 나오 면 자기 스스로 음식을 섭취하여 씹어 먹음으로 영양분을 공급해야 하는 것처럼 저희 섭리인들은 저희 각자의 영과 심령을 스스로 살려 말씀 양식을 온전히 섭취하여 성령을 받아야 하는군 요.”) 그래. 맞다. 너희는 이제 그 어느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각자의 영과 심령을 살려 나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주님, 그러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과 영과 심령이 살아 있는 것은 무슨 연관이 있나요?”) 첫 사랑이 죽어서 영과 심령이 죽었다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첫 사랑은 무엇이냐. 바로 첫 행위, 첫 마음, 첫 성령이다. 너희가 처음으로 나의 성령을 받아 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자 실천하였 던 너의 첫 행위를 되찾아야만 한다. 첫 행위가 살아나야 첫 사랑도 살아나고 첫 심정, 첫 성령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주님, 그렇다면 첫 행위를 회복하여 행하면 영적인 흐름이 어떻게 바뀌나요?”) 막혔던 성령의 통로가 뚫려 너도 성령 충만하게 될 수 있으며 덩달아 네가 전도하고 있는 생명들에게도 성령을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생명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 성령으로 생명들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고로 너희 각자 각자가 나의 성령을 온전히 전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온전히 행하여라. (“주님, 그렇다면 생명에게 말씀과 기도를 해 주는 것 외에 제 자신이 주님 말씀대로 생활 속에서 온전히 행하 는 것도 기르고 있는 생명에게 영향을 주나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어떤 생명 전도하라고 주신 감동, 청소하라는 감동, 운동하라는 감동, 말씀 읽으라는 감동 등 전도하고 있는 생명에게 기도나 말씀처럼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것들 도 주님 말씀대로 행하였을 때 전도하고 있는 생명에게 영향을 주는 것인가요?”) 작으나 크나 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다 너의 영과 심령을 살리는 행위이고 네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 더라도 너의 영과 심령을 통해 네가 전도하고 있는 생명들에게 나의 감동과 은혜가 부어지니 실제로 직접적인 영향을 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는 마치 네가 직접 너의 몸을 움직이거나 작동하지 않아도 너의 몸속에 있는 핏줄들을 통해 피가 순환하고 있는 이치와 같다. 아무리 네가 움직이고 있거나 활발하게 뛰고 달리고 있어도 너의 몸속의 핏줄들이 여러 가지 불순물들에 의하여 막혀 있다면 피가 제대로 통하고 있지 않은 이치와도 같다. 그처럼 네가 직접 전도하고 있는 생명을 만나 강의를 해 주거나 관리를 해 주고 있지 않을 때라도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네가 전도하고 있는 생명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주님. 그렇다면요, 가정국이나 장년부 부모들의 영과 심령이 살아 있는 가가 영적, 육적으로 자녀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아이들의 신앙 상태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겠네요? 어쩌면 2세 양육의 핵심은 ‘부모들의 영과 심령이 살아 있는가?’ 아닌가요?”) 맞다. 아무리 은하수 2세나 중고등부 2세들을 교육하여도 잘 성장하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의 부모의 영과 심령의 상태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알아보아야 한다. 부모들이 영과 심령이 죽어 있으면서 아이들에게 ‘너는 왜 성장하지 못하느냐?’하는 것은 마치 영양분을 다 뺀 음식을 주면서 ‘왜 너의 육은 성장하지 못하느냐?’하는 격과 같다. 이처럼 한 가정 혹은 두 가정 이상의 단위로 섭리사에 몸담고 있는 집안은 먼저는 그 집안 중 섭리사에 맨 먼저 전도된 자의 영과 심령의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 그 기준자의 손에 이끌리어 섭리사에 오게 된 생명들의 성장이 기준자의 영과 심령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적 혈통일지라도 한 가정의 부모와 자녀간의 신앙적 관계는 매우 중 요하다. 부모는 그의 자녀에게 거의 평생에 걸쳐 육적, 영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부모와 자녀 간에는 아무리 자녀가 수료를 하였을지 라도 계속해서 부모의 영과 심령을 통해 그의 자녀에게 말씀의 영양분이 끊이지 않고 간다. 부모는 자녀의 평생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과 심령이 살아난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해 주는 기도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러하니 전 세계 장년부와 가정국의 부모들아, 너희가 살아나야 너희의 자녀가 잘 된다. 육으로만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옷 입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느냐. 너희는 너희가 평생 동안 전도해야 할 육적, 영적 아이를 잉태하여 낳았으니 만약 너희의 자녀가 이 땅 위에서 평생토록 영 육간 축복을 받으며 영원토록 영생복락까지 누리기를 원한다면 먼저는 너희부터 살아나라. 그리고 말씀과 기도와 사랑으로 너희의 자녀를 관리해 주어라. (“주님, 너무나 중요한 것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 다. 이번에는 선생과 섭리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시겠어요?”) 선생과 섭리인의 관계를 보자. 이제 너희는 성숙한 성인들로서 선생이 주는 양식을 직접 입으로 꼭꼭 씹어 삼켜 소 화하여 너의 온몸에 말씀의 영양분을 공급해야만 한다. 너희는 선생과 1:1의 관계로서 선생의 영과 심령을 통하여 말씀을 받지만 너희는 성인이니 너희 스스로의 노력들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선생에게만 의지하여 너희가 꼭꼭 씹어 삼켜 노력하는 일마저 다 해 주기를 바라느냐. 너희 스스로가 영과 심령을 살려 말씀을 통한 성령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가 있는데 언제까지 그 그릇조차 선생이 직접 만들어 주기를 원하느냐. 장성한 자는 아이 때의 일을 기억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장성한 신부로서의 모습을 보여 다오. 그 모습에 선생이 위로받고 내가 위로받는다. 알겠지. 사랑한다. 오늘은 생명과 너희와의 관계, 너희와 선생과의 관계에 대하여 말해 준 주 예수로 다. (“주님, 정말 깨달았습니다. 저희가 생활 속에서 주님과 일체 되어 사느냐가 실제 전도하고 있는 생명에게 막대한 영향을 실시간으로 끼치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제가 죽어 있을 때는 전도하고 있는 생명들도 점점 죽어가고 살아 있을 때는 전도하고 있는 생명들도 점점 살아나는 현상들이 보인 것이군요. 전도자는 곧 중보자네요. 작으나 크나 주님 말씀과 감동대로 사는 삶이 진정한 전도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제야 알겠어요. 감사해요.”) 그래. 온전한 삶이 곧 전도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