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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2.03 (금)

2012 0203 천국성령운동 말씀

선포일
2012.02.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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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3일 천국성령운동 말씀> 시작기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마음 가운데 살아역사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든 마음을 주님께 먼저 모으고, 주님이 행하시는 완전한 역사를 다 받아들이고 돌아갈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탄, 마귀들, 온전 치 못한 잡생각들 다 돌아가게 하여 주시고, 온전히 주님과 일체되는 시간될 수 있도록 역 사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저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고, 나의 심정을 태워주시사 사랑하는 주님과 보낸 자의 심정을 나타내게 하여 주시며, 듣는 모든 자들 오늘 성령의 역 사를 뜨겁게 받아 다시 한번 식어진 마음들이 불태워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 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성령을 뜨겁게 받는 천국성령운동의 밤입니다. 특히 우리 직장을 다니시는 여러분들은 많이 피곤하시죠? 정말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네요.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다시 무언가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다렸으니까 이 날을 기다렸기 때문에, 또 기쁜 마음으로 이 곳 가운데 온 줄로 믿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은 그 간절히 원함으로 인해서 희망을 얻고 힘을 얻어서 새 롭게 뛰고 달리게 되죠. 여러분, 이곳에 기다리고 온 사람과 그냥 온 사람은 오늘 역사하는 힘 자체가 다를 것입니다. 기다리고, 사모하고, 그리고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자는 주님께서 이 시간에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돌아갈 줄로 믿습니다. 올해 이 성령의 역사는 다른 때보다 정말 더 귀한 성령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육적휴거를 이루고 사는 우리들이죠. 육적휴거, 이 땅에서 구시대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벗어나 새 시대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만나서 살고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서 휴 거를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지막 때입니다. 이 때 우리의 영단장은 더욱 더 필요 합니다. 성령은 영이죠.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님의 영입니다. 그 영의 힘을 받아 우리의 영을 단장하지 않으면 우리의 힘과 능으로는 부족한 것들이 너 무나 많습니다. 이 마음 속에 열정과 사랑이 식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 다.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야 되고, 열정이 누구보다 커야 되고, 우리의 사랑도 더 커야 됩니 다. 그리하면 존재할 수 있죠.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도 성령을 갈구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령의 역사로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태우기를 진실로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생님을 통해서 너희의 육과 영이 나의 신부가 되어 서 휴거될 수 있도록 올해는 계속해서 더 뜨겁게 성령으로 역사한다.” 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잠깐 마지막 준비를 위해 떠나셨을 이 때, 우리는 더욱 더 기도가 필요하고 성령의 역사가 더욱 더 필요해서 주님과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더욱 더 친근하게 더 가깝게 완전하게 일체되는 단계로 만들어 놔야겠습니다. 2009년 5월에 천국성령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3년이 다 되갑니다. 이제 올해 5월이 되면 딱 3년을 채우는 거예요. 정말 오래한 거 같죠? 저는 처음 섭리사에 왔을 때부터 천국성령운동했던 것처럼 너무나 천국성령운동이 친 근하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없으면 못 살죠. 그런데 사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폐 단이 있어요.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진행이 되는데,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점이 하나 있습 니다. 뭔 줄 아십니까? 처음에는 너무 좋아해요. 다 좋습니다. 오래 되면 그만큼 감각을 잃 고 첫마음을 잃고 권태가 찾아온다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권태가 찾아오면 그 좋던 것도 나중에는 별로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여자와 최고로 아름다운 남자와 살아도 매일 보면 신비감이 떨어지고 신비한 게 사라지죠. 처음에는 입을 못 다물던 것이 나중에는 입을 다물고, 말도 안하는 단계에 가기도 하죠. 이 모든 것은 권태가 문제입니다. 오래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신비감이 사라지고, 가치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신비한 것을 보면 애지중지해서 그것 없이는 못살 거 같아요. 보고 또 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보는 것도 점점 줄어들고, 그것으로 인해 오는 행복과 기쁨 도 점점 줄어들게 되죠.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세상 것이야 권태가 나오고, 싫증이 나오면 버리면 되죠. 그런데 하늘 것은 버리게 되면 영원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 하늘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 식 은 만큼 그만큼 우리에게는 영원한 손해가 오게 됩니다. 절대 우리 가운데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을 향한 사랑, 역사를 향한 열정이 우리의 마음 속에 절대 식어서 는 안 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올해도 더욱 더 뜨겁게 역사해 주신다고 약속하 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그 열정과 사랑이 사라진다면, 아무리 역사가 뜨거워도 싫 증이 나고 권태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점점 등한시 하죠. 그러면 누구만 손해입니까? 이 세상에서는 밀고 당기는 게 통하겠지만, 하늘 앞에서는 안 통합니다. 밀고 당기는 것은 적당히 잘 해주면서 적당히 튕기는 거죠. 그래야 긴장이 되면서 사랑이 오래 지속된다고 하죠. 주님 앞에 이랬다가 잘못 튕기면 저 멀리 갑니다. 한번 튕기는 만큼 큰 일납니다. 정말 하늘 사랑은 세상 사랑과 다르니까 세상 사랑하듯 세상 사람 좋아하듯 주님을 좋아하면 안 되겠습니다. 늘 지고지순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 힘들어도 주님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랑, 그런 사랑을 주님은 원한다는 것입니다. 밀고 당기게 하면 안 됩니다.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얼굴들, 우리 섭리사에 그런 얼굴들도 많죠? 우리 또 새로 오신 분들도 자주 보게 되죠. 그러다보니 이제 지겹습니다. 합봉해서 처음에는 신선하고 좋았는 데, 계속 보니까 좀 그렇습니다. 그런데다가 개척교회는 늘 보는 5명의 인원들을 계속 봐야 됩니다. 많이 보면 많이 볼수록 마음도 합하고 눈만 쳐다봐도 “이제 움직이자.” 하면 너무 좋은데 이것이 안 되어서 문제입니다. 어제 보고 오늘 또 보는 얼굴들, 얼굴만 보지 말고 마음을 보면서 이제는 더 마음을 맞추 면서 눈만 딱 해도 움직이고 하나되어서 움직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주님과도 마찬가 지죠. 대하고 또 대한다고 해서 싫증을 느끼면 나만 손해입니다. 늘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어하고, 찾으면 찾을수록 더 찾고 싶어하고, 주면 줄수록 더 받고 싶어하는 우리들이 되 어야겠습니다. 말씀을 더 주면 “주님 더 주세요.”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기 원 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정말 이 말은 맞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집니다. 신기해요. 어떤 사람들은 신비감을 좀 유지한다고 하면서 눈에서 적당히 멀어진다고 하지만, 자꾸 눈 에서 벗어나다가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깁니다. 주님은 특히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왕입니다. 하늘의 왕, 이 땅에 왕입니다. 왕에게는 자꾸 얼굴을 들이내미는 것 입니다. 나 여기 있다고 아직 죽지 않았다고, 건재하게 살아있다고, 나 아직 괜찮다고, 자꾸 주님 앞에 얼굴을 보이면서 왕 앞에 큰 사랑을 받고 왕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잊혀지지 않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매일 접할수록 정이 깊어지고, 그리고 사랑도 깊어지고, 생각도 계속 맞추어 나가고, 뜻도 계속해서 하나로 합하여 나가고, 그러다가 이제는 안 보면 절대 안되는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그런 사이로 만드는 겁니다. 제가 처음 섭리사에 와서 지금까지 선생님께 칭찬받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입니다. 처음부터 저는 컨셉을 정했어요. ‘나는 늘 주님이 쳐다보시는 곳, 선생님이 쳐다보시는 곳에는 내가 있어야겠다. 절대 그 자 리를 벗어나지 않아야겠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해도 순간 쳐다봤을 때 “또 있네.” 순 간 쳐다볼 때, “또 있네.”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했습니다. 주님 앞에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이 되고 싶더라구요. 늘 주님 마음에서, 그 생각에서, 눈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너무나 바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보면 지겹다고 하지만, 그만큼 많이 보면 정이 붙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없으면 절대 아무 일도 못 하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15년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간증하고 싶은 것, 한가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식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주님이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시고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시는지 저는 너무나 느낍니다. 20살 때 젊어서 좋죠. 통통거리거든요. 되게 잘 챙겨 주거든요. 무조건 잘 해줍니다. 지금은 무조건 잘 해주 지 않아요. 절대 혼날 것은 혼나고, 외면당할 것은 외면당하고 삽니다. 그 때보다 이제 나이가 더 많이 먹었기 때문에. 그런데 주님의 깊은 마음, 그 마음은 더 커졌다는 것을 제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20살 때 주님께 받던 사랑과 지금 사랑은 안 바꿉니다. 그것은 얕은 사랑, 이제는 어디 가나 주님도 내가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랑, 정이 붙는 사랑, 정이 붙어서 영원히 헤어지면 안 되는 사랑, 없으면 허전한 그런 사람이 되겠다 고 더욱 더 마음을 먹습니다. 우리 그런 사람이 모두 되어야겠습니다. 섭리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 주님과 정이 들고, 더 창대하게 일어나는 역사가 일 어나리라 믿습니다. 오늘 천국성령운동 이 성령의 역사에 절대 권태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 라겠습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죠. 매일 부르는 찬양을 하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음 가사가 나옵니다. 박수도 치게 되구요. 너무나 친근한 찬양이 되었죠. 그런데 똑같은 찬양도 매일 부르면 지겨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고,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내 마음을 계속 새롭게 하면, 이 찬양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매일 매일 다르고 그 불은 매일매일 차고 넘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이 찬양의 간구가 내 고백이 아니고서는 도대체 살 수 없는 그 단계까지 가게 되 는 겁니다. 매일 듣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많이 듣죠? 똑같은 말씀 아니 죠? 매일 다른 말씀, 그러나 듣고 또 듣는 이 말씀, 이 말씀을 매일 들으니까 그 가치성을 잃을 수도 있고 한번쯤은 빼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말씀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쯤은, 오늘 하루 쯤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있지. 한번 쯤은, 주님의 보호하심 없이는 살 수 있지. 그런 사람과 똑같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명과 같고, 주님과 같고, 우리의 호흡과 같아서 단 하루도 거를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비법을 딱 하나 가르쳐 줄께요. 어떤 비법이냐면 말귀를 잘 알아듣는 비법을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주님의 말귀를 잘 알아듣는 방법, 그래도 선생님께서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고 인정한 사람이니까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 방법, 쉽게 들으시면 안 되요. 저의 보물이라구요. 제가 주님의 말귀를 잘 알아 듣고 선생님의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이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못하겠다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을 때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말씀이 하나 있으니, “너는 말귀를 알아듣잖아.” 였습니다. 말귀 하나는 잘 알아듣죠.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하시 면, 척하면 척이죠. 개떡 같이 말씀하셔도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어디 선생님이 말 씀을 개떡같이 주시나요? 찰떡같이 말씀해 주세요. 너무 잘 말씀해 주셔서 말씀 알아듣기는 짱입니다. 그런데 딱 소가 고삐를 채우시듯이,예수님께서 제 코에 고삐를 채우셨잖아요. “너는 어디 못 간다. 끌려와라. 말귀를 알아듣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했습니다. 오늘 오직 이 자신감 하나로 단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말귀를 잘 알아듣는 비법은 많이 듣는 것입니다. 최대한 들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듣습니다. 먼저는 듣는 귀가 뚫려야 되요. 듣는 귀는 어떻게 뚫리는지 아십니까? 모르는 내 용이 너무 많으면 들어도 몰라요. 그런데 계속해서 반복해서 듣는다면, 아는 것이 생기면서 듣는 귀가 뚫리게 됩니다. 그 말씀에 맥을 잘 알면 듣는 귀가 뚫리게 되요. 그 다음에는 무 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섭리역사에 오면 누구나 다 초신자예요. 다 모릅니다. 새로 배워야 합니다. 이제 섭리사에 온지 제가 16년 차를 향해 접어들고 있어요. 저도 20년을 향해 가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그런데 처음부터 말귀를 잘 알아듣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선생님 얼굴을 쳐다 봤어요. 왜냐하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 하겠어요. 무슨 말 인지 모르겠어요. 단어도 모르겠고, 너무 모르겠어요. 진짜 난감해서 선생님 얼굴만 정말 쳐 다봤습니다. 정말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그러니까 듣는 귀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최대한 많이 보고, 많이 들으려고 너무나 노력했습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자. 그래서 처음에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선생님 이 하시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너무나 감사한 것이 요즘에는 선생님이 하시는 것을 못 보잖아요. 그런데 요즘에 하시는 말씀을 보면요. 생활을 그림 그리듯이, 글로 다 써주시 는 것과 같습니다. 생활을 보는 것과 흡사합니다. 제가 최대한 들을 수 있는 많은 것을 들으면서 정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말한 것 이 내일로 이어지고, 내일 한 말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오늘 일어난 일을 많이 보고 많이 들으니까 어제 것과 오늘 것이 연관이 되면서 말귀를 알아듣더라구요. 많이 듣고 많이 보니까, 어제 것과 연관이 되면서 말귀를 알아듣더라구요. 예를 들어서 선 생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을 제가 봤어요. 선생님께서 “어제 그거 있잖아. 오아시스 샘에서 작업했을 때...” 하시면서 말씀하시면요. 그런데 ‘오아시스 샘’ 이라는 하나로도 말귀를 알아 듣는 거는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 보지 않았어도 돌조경에 쌓은 이야기를 통해서 말 귀 알아듣고 바로 가는 겁니다. 많이 듣고 본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때부터 말씀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원래 욕심이 없었는데, 말씀욕심 이 너무 생기는 거예요. 말씀을 통하다보니까 선생님과도 잘 통하고, 주님과도 너무 잘 통 하게 되는 겁니다. 이 때부터는 말씀의 욕심을 내고 최대한 내가 들을 수 있는 만큼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절대 말씀을 많이 듣는 사람을 못 따라갑니다. 많이 알고, 많이 듣는 사람에게 주님은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지, 빈곤한 자에게 없는 자에 게 주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것을 소유한 자, 바로 심정을 소유하고 말씀의 가치를 소유한 자, 그것이 많은 만큼 주님은 주고 싶다는 겁니다.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귀 를 기울이고 들어야 합니다. 똑같은 자리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아무리 말을 해도 못 알아 듣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척척 알아듣습니다. 그 전날 관심있게 들었거든요. 귀를 기울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한마디를 들었지만, 그 말씀이 마음팍에 새겨져서 주님의 말귀를 알 아듣고 주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겁니다. 앞으로 말씀을 들을 때는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귀를 기울여야 되요.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듣는데, 여러분의 생명이 왔다갔 다 좌우되는 말씀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하는 말씀이 그냥 훅 흘러 갈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 섭리사 모두 다 주님이 척하면 그냥 척 알아들을 수 있는 말귀를 잘 알아듣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이것만 일어나면, 주님의 역사가 그냥 일어나고 주님이 그냥 주십니다. 그래서 구한 자는 계속 구합니다. 빈곤한 자는 계속 빈곤해요. 한번 말귀를 알아들으면 그 것을 통해서 주님과 박자를 맞추면서 이 바쁜 때 주님은 툭툭치고 지나가시는 때잖아요. 이 때 말귀를 알아듣는 자에게 빨리 말씀을 주시고, 그가 빨리 전하게 하십니다. 말씀이 특히 귀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권태를 느끼지 마시고, 지금 특히 말씀이 쏟아지는데 지금 말씀은 몇천년 만에 쏟아지는 말씀이 너무 많습니다. 이전에 못 했던 것을 못 했다고 하지 마시고, 지금 제대로 배우고 지금 제대로 습득하느냐 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습니다. 매일 듣는 말씀, 매일 사는 삶, 날마다 우 리에게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 같으나 이 말씀은 매일 새롭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과 생각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항상 찬양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새롭게 하면 자극을 받아요. 그러면서 “오늘은 뭔가 새로워. 불이 일어났어.” 하면서 사람에 게 자꾸 권태를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요소를 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면 또 자극적인 것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하다가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엇을 새롭게 해야 되느냐? 바로 마음과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해야 됩니다. 이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방법이 있어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각오를 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전환을 시킨다는 겁니다. 각오 하게 되면 마음에 전환이 일어나요. 힘이 생깁 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새롭게 하는 방법은 1초만 해도 가능합니다. 이것을 훈 련시켜야 되요. 내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요. “내 마음은 새롭지 않아. 조은 목사님이 아무 리 말씀하시고 웃으면서 얘기해도 별로야. 내 마음은 새롭지 않아.” 그런데 순간 “내가 마음을 새롭게 하자. 알았어. 결심했어. 각오했어.” 하면 바로 마음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방법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찬양이 지독하게 안될 때가 있어요. 정말 지독하게 안됩니다. 저도 앉아서 찬양을 하면 제가 은혜를 못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 문제 가 아니예요. 제가 문제입니다. 그 때 각오를 하고 전환을 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시작 하면 불이 와요. 내 마음에 따라서, 앞에서 뭘 하든지 음이 틀리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전환입니다. 싹 전환하기 바랍니다. 계속 이렇게 하면서 싫증이 오거나, 짜증이 오거나, 뭔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마음을 가지고 전환을 시키는 겁 니다. 이번에 명절때요. 이 구정명절은 한국과 몇 아시아 나라에서는 굉장히 큰 명절입니다. 엄청난 명절이죠. 온 식구들이 다 모이는 그런 명절입니다. 선생님도 명절이 되면 보고 싶 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르단 말이예요. 일반 평일이랑은 사람의 마음이 달 라요. 특별한 어떤 날에는 사람의 마음이 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 보고 싶고, 고향과 부 모님이 그립고 그래요. 아플 때는 더 그렇죠. 그런데 명절 때 선생님의 마음이 참 그렇잖아요. 그래서 명절 때 선생님께서 계속 글만 썼대요. 너무 생각이 너무 날까봐. 그래서 예수님께 한마디 했죠. “예수님. 명절인데 저에게는 별다른 게 없네요.” 그 때 예수님 말씀이 뭔줄 아 십니까? 선생님의 분위기로 간다면 이 날 우리는 울어야 되요. 예수님 명절인데 별다른 게 없네요. 선생님은 굉장히 심각하게 슬픈 마음으로 말씀 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야야. 명절 이라고 다리가 배에 붙냐? 손이 머리에 붙냐? 명절이라고 엉덩이가 배에 붙냐? 똑같다. 이 와 같이 똑같다. 너 마음을 새롭게 하여라. 너 마음을 제대로 먹으면 혼자 있어도 기쁘다. 글을 쓰면서도 기쁘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딱 마음을 먹고 말씀을 써내려 갔는데, 이 날 쓰신 잠언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역시 주님과 함께 박자를 맞추면서 명절을 아주 배부르게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 에는 만족이 항상 넘쳐나야 됩니다. 사람이 만족이 없기 때문에,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말 씀을 들을 때도 충만한 만족을 느끼고 싶어요. 그 말을 탁탁 듣고 싶어 하구요. 내 문제가 바로바로 해결되면 너무 좋겠어요. 그런데 어떨 때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만 족이 없어요. 너무 차원만 높고,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삶의 만족은 없고, 섭리사에 왔는데도 곤고함이 오죠. 주님은 답을 주셨어요.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해서 선물로 드릴 거예요. 이 말씀이랑 또 하나 오늘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글을 싸인으로 쓰셨어요. 이 글은 섭리사 전체에게 싸인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특별히 이 두 말씀을 뽑아서 갖고 왔습니다. 만족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 넘쳐나려면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의 생각 과 같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우리도 만족하게 됩니다. 항상 어떨 때 불만족이 생기게 되냐면, 나는 이것을 원하는데 상대는 그것을 안 해주게 되 는 거예요. 그럴 때 항상 싸우게 됩니다. 나는 이것을 원하는데 상대가 저것을 원합니다. 그 러면 기대가 무너지면서 만족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만족이 없어요. 왜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같아야만 진실한 만족이 찾아옵니다. 만족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세상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과 똑같이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어디에 살아도 이 세상에서는 만족이라는 것 이 없습니다. 이미 답은 나와있어요. 만약에 이 세상에 만족이 있다면, 돈을 어느 정도 벌면 만족해야 되요. 너무 신기한 것은 돈은 많이 벌어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벌고 싶은 게 사람의 생각입니다. 세상 명 예를 많이 얻으면 더 많이 얻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절대 이 세상에서는 하 나님이 생각하신 만족이 오지 않습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사람의 만족이란 돈과 명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와요. 너무 신기해요. 인생이 얼마나 신기한지 알아야 해요. 아예 하나님이 인생 태생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어요.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기쁘면, 눈이 하트로 다 변해요. 굳이 누가 꽃가루를 안 날려줘도 마음에 꽃가루가 날리면 어디 가도 나는 꽃가루 나는 인생을 삽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이 마음에서 정말 평안함이 찾아와야 해요. 마음의 주인은 나인데, 마음의 근본적인 내 인생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과 하나님이세 요.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의 생각과 딱 같게 하면 어디 가나 만족이 와요. 주일날, 수요일날, 무슨 말씀을 들어도 “아멘 할렐루야. 주님,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저두 요.”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그냥 달라져요. 인생이요. “나는 저런 말씀 말고, 편안한 말씀 해주세요. 오늘.” 그런데 오늘은 책망을 하 시는 거예요. 책망투로 말하는 거야. 불만, 불만, 불만.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 을 주님이 만족하시면 저는 만족하죠. 주님이 내게 그것을 원하시면 나도 만족하죠.” 하는 이 인생이 될 때 비로소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그렇게 사시는 겁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만족이냐? 아니. 나는 지금 너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 지금 이 때 이미 시대의 판국이 기울었으니 십자가 지면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천년 역사 에 남길 말씀을 빨리 조정해라.” 하십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같게 하지 않 으면, 선생님의 나날은 매일매일 고통과 지옥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계속 원하시면 서 생각한다면 그 삶은 정말 만족입니다. 저는 정말 보여주고 말 거예요. “이 세상 사람들 기쁘고 행복하게 산다고 하지만,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너는 뭐가 만족인데?” “나는 하나님의 생각과 같이 하고 살거든.” “얘 미쳤나봐. 저런 애가 다 있어?” 이렇게 하는 이 세상을 나는 그것을 바꾸고 싶어요. 왜 이세상이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 어요. “너 미쳤니? 종교에 빠진 거야?” “빠진 게 아니라 정상이야.” 정상이라는 삶으로 만 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이성도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야지. 너무 무미건조한 거 아냐?” “너무 무미건조한 게 뭔지 아니? 사람이 좀 성장해서 제대로 배우자를 만나야지.” 하면서 좀 큰 소리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도태된다구요? 아니요. 그렇지 않 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한 룰이지요. 절대 주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로 잡는 역사가 일 어나야 됩니다. 저는 그것을 생각하면 항상 힘이 나요. 다른 말씀은 모르지만, 이 시대 말씀 으로는 가능하다. 바로 기준자된 선생님께서 그와 같은 것으로 힘을 얻고, 그와 같이 담대 하게 외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 세상 모두가 아니라고 해도 주님 한분 맞다고 하면 그게 맞습니다. 그렇게 인생 바꾸어야 합니다. 참 행복과 참 만족이 무엇인지 이 세상 사람들이 느끼게 해 줘야 합니다.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섭리사에 살면서 섭리사에서 주님 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것을 만족하면서 살아가지 못 한다면, 그 만족을 그 기쁨을 누구에 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별로인데. 그래서 사람은 자기 하나 만들기다. 나 하나 만들 어 놓으면 정말 주님은 편하십니다. 나 하나로 하실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도전해야 됩니다. 여러분, 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저를 세우는지 아세요? 나 를 세워놔야 여러분이 힘을 얻고 합니다. “조은 목사도 하는데 나도 못 하겠어?” 여러분, 마음 속에 그런 마음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믿습니까? 똑같은 사람인데. 그리고 모든 분들을 주님이 택하셨는데 못 하겠습니까? 그러나 긍정적인 사고, 주님의 말씀이면 모든 것 이 가능하다는 그 사고를 갖고 있으면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되요.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저는 이거 하나는 끝내 줍니다. 이거 하나만 누가 못 따라와요. “예수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주님의 가르침과 선생님의 가 르침이 얼마나 위대한지, 저는 이 가르침으로 정말 승리하고 말거예요. 정말 한눈 팔지 않 습니다.” 그와 같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과 발을 척척 맞추어 가며 우리 모두 행한다면 뭐가 문제입니까? 여러분, 우리 더욱 더 이 세상에서 돈과 명예만 잡고 살아가는 세상, 그것이 전부라고 하면서 살아가며 또한 만족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세상에 우리는 주 님으로 인해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이 주실 것은 다음 것이죠.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 그 정도로 가면 그 단계는 도인단계입니다. 그런데 절대 없서는 안될 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돈과 명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있으면 좋고.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없으면 절대 주님 난 존재 못합니다. 이것만은 내게서 뺏어 가시면 안 되요. 이것만은 내게 두셔야 됩니다.” 그렇게 간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셔야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예를 한번 들어볼께요.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께 하는 거죠. 그런데요. 길을 가다 가 아무리 누가 나한테 내 이름을 부르면서 “전능자여. 전능자여. 나는 당신이 해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내 이름을 해달라고 해도 관심이 없는 사람, 나와 연관이 없는 사람의 말은 사실 귀에 잘 안 들립니다. 여러분, 오늘 투시법 하나 가르쳐 줄 께요.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투시하느냐. 바로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을 갖고서 투시하면 됩니다. 저 사람 저럴 때 진짜 얄밉다. 그런데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은 거예요. 내가 느꼈던 그 마음을 갖고 상대를 투시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은 정말 나를 얄밉게 생각하겠다.’ 하면서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사람의 마음 자기의 마음을 살피면 됩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과 크기는 다 르겠죠. 나와 연관도 없는 자가 자꾸만 달라고만 하면 할 수 없이 해주지만, 그것으로 연이 되어서 계속 그 사람에게 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도의 방법, 주님을 찾는 방법이 있 습니다. 주님이 내게 오실 수 있게 만드는 겁니다. 이건 선생님의 삶이예요. 선생님은 주님께, “뭣 좀 해주세요.” 하면서 먼저 구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저는 그 기도법을 항상 배웁니다. 선생님은 주님이 오실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 놓고 조건 과 환경을 만들어 놔요. 날마다 조건과 환경을 어떻게 만드냐면 바로 주님의 사랑하는 자로 만드는 겁니다. 아예 그 사람이 없으면 안될 만큼으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자꾸만 달라고 소리질러도 내가 싫으면 귀막고 눈감으면 됩니다. 그런데요. 사랑하는 자면요.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그렇게 마음이 가요. 마음이 쓰이고, 눈을 감아도 보여요. 귀를 막어도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는 들립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위대함입니다. 왜 그렇게 사랑 하느냐. 사랑의 위대함은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물질적인 것으로 나를 막아도, 사랑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신부가 맞습니까? 주님의 신부가 되고 싶으십니까? 주님의 신부라고 자부하십니까? 여러분, 그렇다 면 사랑하는 조건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그렇게도 조건이 있어서 해달라고 하고 싶어요. 여러분, 어린 아이 보셨어요? 어린 아이도 엄마 아빠랑 사이가 안 좋으면 못 구합 니다. 엄마, 아빠에게 사랑을 못 받는 아이는 철없는 아이어도 엄마, 아빠에게 못 구합니다. 사탕이 그렇게 먹고 싶어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간구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구할 수가 없어요. 너무 얻고 싶고, 가지고 싶은데 구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왜 그럴까? 바로 사랑하지 않아서. 지난 주에 이 말씀을 잠깐 했죠. 주님은 말씀하셨죠? 왜 구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도 구하라고 했는데 왜 구하 지 않을까?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 라고 했는데, 왜 하라고 했는데 안 할까? 안 구할까? 그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 조건으로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거 갖고 싶어요. 어차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줘도 내 마음대로 행하지 않 잖아요. 내 마음대로 절대 하지 않겠사오니 주님 주십시오.” 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자가 되 는 것입니다. 이 말이 잘 이해되기가 어렵다면 역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 이야기를 하면 척척 입에 달라붙어서 너무 꿀같고 너무 좋습니다. 매일 사랑 이야기 만 하고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사랑이 귀하고도 귀합니다. 모든 것에 지름길이 있으니 바로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자가 되면 입에서 나가는 대로 검이 꽂히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자의 정의를 한번 들어 볼까요? 왜 잘 들어줄까? 사랑하는 자는요. 자기 것을 안 구해요. 신기하죠? 너무 사랑해. 그러니까 “저것도 해죠. 이것도 해죠.” 합니다. 그 말을 잘 들어보니까 사랑하는 자와 연관이 하나도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걸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가 구하면 주님은 다 해줍니다. 왜? 그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너무 사 랑해서 주님과 연관되지 않으면 구하지를 않아요. 선생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에 대한 간증을 하라면 이 간증을 합니다. 그 정도로 자신있습니다. 선생님은 주님께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구했을 때 주님은 주십니다. 만일 주님이 “내가 다 줄테니 너 마음대로 사용해라.” 하셔도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이 원하는 대로 단 한번도 사 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게 있어요. 주님은 주실 때 이미 알아요. “마음대로 해.” 하더라도 “니 마음대로 하지 않을 것을 안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 다. 이 정도의 단계에 오른다면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자신감이 있어요. 어디 가서 여러분이 자신감이 있게 살겠습니까? 저는 어디 가도 자신감이 있게 살아요. 이것 때문에 그래요. 내가 구한다고 해서 내 것을 구하겠습니까? 아닌 것을 아시고, 주님이 내게 주셔도 내 뜻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 이 아시거든요. 구해도 마음이 편하고, 받아도 마음이 편하고, 그렇게 기쁩니다. 이 자신감 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절대 그들의 사랑이 부럽지 않은 것은 이 사랑을 내가 맛보았고,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사람의 국한된 사랑이면 안 되구요. 섭리사에 온 모든 자들은 이 사랑의 단계까지 올라야 합니다. 이 사랑의 수준이 영휴거의 단계입니다. 여러분, 가능합니다. 왜? 허락하셨기 때문에. 모든 역사를 보십시오. 인간이 아무리 원하고 또 조건을 세워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곳은 단 하나도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허락하셨으나 내가 행하지 않으면 역사를 잡을 수가 없습니 다. 우리는 허락했죠. 허락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행하기만 하면 그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주인공들입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매일매일 너무 안타깝습니다. 허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계로 오르지 못 했을 때 주님의 애타는 심정은 너무 애가 타고 안절부절 못 하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나 내가 원하는 자, 내가 허 락한 자에게 전화번호를 줬는데 전화를 안 해. 허락하지 않은 자는 매일 전화하고, 문자하 고, 속이 타죠. “이렇게 마음이 안 맞나?” 그렇죠? 여러분, 주님 마음이 그러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다보니까 어느 새 오늘 말씀의 핵심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전초였어요. 사람은요. 힘이 있어야 살아갑니다. 힘. 힘이 쭉 빠져있으면, 의욕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기운을 내고 힘을 내야 되요. 자, 그렇 다면 어디서 힘을 받는지 이 말씀을 전할 건데 이 말씀이 너무 중요해서 주일말씀 수요말씀 으로도 나올 겁니다. 그런데 오늘 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먹을 때는 어디서 힘을 받죠? 먹는 데서. 잘 때는 자는 데서 힘을 받습니다. 사람이 때는 운동하는 데서 힘을 받고, 공부 할 때는 어디서 힘을 받나요? 공부할 때는 공부하는 데서 힘을 받아야 합니다. 2주 전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해드렸죠. 그날 아침에 선생님을 뵙고 드린 말씀입니다. 선생님께서 너무 힘들었대요. 기도하는데요.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더래요. 선생님은 새벽에 꼭 일어나야 힘을 받아요. 주 님과 만나서 대화하고 말씀을 받아야 힘을 받으시는 분이예요. 그런데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하루 종일 일하는 게 힘들어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대요. 그래서 주님께 기도했대요. 나는 새벽기도를 해야 힘을 받는다고, 너무 힘들어서 일어나기가 힘들다고. 그런데 주님께 서 주신 말씀이, “존재하는 데서 힘을 받지 못 하면 자기를 존재시키지 못 한다.” 하셨습니 다. 여러분, 벌써 이해가 다 되었죠? 새벽에 힘을 받으려면 새벽을 깨워서 새벽에 기도를 하면서 그것으로부터 해서 힘을 받아 야 새벽시간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신기해요. 여러분, 자기의 모순을 찾아 내보세요. 저는 그것 찾는 재미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모순찾기 대회. “매일 니 모순은 이거야.” 하면 대개 웃겨요. 주님께 탓할 필요도 없고, 남을 탓할 필요가 없더라구 요. 사람의 큰 모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은 정말 모순이 많아요. 그 모순 중에 하나 는 하면서 힘들어 해요. 너무나 신기한 게 있어요. 안 하면서도 힘들어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성격이 나빠요. 너무 성격이 나쁜 거예요. 성격 안 좋은 게 딱 있어요. 그걸 고치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안 고쳐요. 안 고치면서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서 힘들어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모순입니까? 여러분, 다 그렇죠? 저는 그래요. 고치기도 힘들고, 안 고쳐서 자꾸 부딪히니까 힘들고, 어 차피 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들어요. 그러나 이 둘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고치면서 하면서 힘든 것은 얻는 게 있어요. 정말 고쳐지고 닦여지거든요. 그러나 안 고치면서 안하며 힘든 것은 힘들기만 하고, 짜증만 하고, 남 탓만 하고, 얻는 것 은 없습니다. 똑같이 힘든데요. 너무나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약속했어요. 오늘 주님이 다 쳐다보신다구요. 이것 을 실천한다면 인생은 기뻐지겠죠.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남들보다 피곤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안 해도 힘든 건 사실입니다. 하루 종일 사탄이 쥐고 사는데요. 하루 종 일 영적으로 총명하지 못 합니다. 안하면 더 힘들어요. 해도 힘들어요. 졸립거든요. 그러니 까 빨리 저녁에 자야 되죠. 안하는 사람은 주님이 안 느껴져서 힘들구요. 말씀을 들어도 못 느껴서 힘듭니다. 기도는 해야 됩니다. 하는 거 힘들죠. 무릎꿇고 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똑같은 목소리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어요. 매일 기도하면서 오늘 주님이 화끈하게 역사해 주신 것을 느끼는 것도 참 힘듭니다. 매일매일 그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은 참 힘들어요. 그런데요. 안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안 해도 힘들거든요. 그래서 하면서 고치면서 행하면서 그러면서 힘든 것을 택하 라는 겁니다. 그러면 얻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이 어렵고 힘들어도, 행하면서 실천해 보면서 힘든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성령받기 너무 힘들어서 기도가 안 되어도 자꾸 노력하고 행하 면서 주님께 달라고 하면서 힘들어야 낫다는 겁니다. 여러분, 목회자들은 목회지에서 힘들죠. 목회하면서 힘을 받아야겠습니다. 각 사명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각 사명지에서 일하기가 힘들죠.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힘들죠. 그러나 거기서 힘을 받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기쁨과 힘을 존재하는 데서 얻어야 되는데, 무조건 힘들다고만 하면 힘을 얻을 수가 없어 요. 그런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 가도 불평불만을 할 뿐입니다. 자기는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얻는 것만 얻으려 하는 자들, 한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 람들, 이 시대 최고 청년들의 문제입니다 보다 더 편한 것, 보다 더 가만히 있으면서 얻을 것이 없는가. 여러분, 이런 사람들은 만족이 없습니다. 인생은 태생이 자기 변화를 시키면서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절대 어떤 것을 얻으면서 만족하지 않아요 내 마음에 충만한 변화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얻는 것과 같이 발을 맞추어 가야 거기서도 만족이 옵니다. 그냥 얻기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 인생 지루하죠 가치없이 살기만 합니다 무엇을 얻어도 한번에 날립니 다. 여러분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고 싶죠 그런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루하루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변화를 이루면서 값지게 나의 피땀 흘려서 얻은 돈은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아요 항상 꼼꼼하게 계산하고 꼭써야할 곳 에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참 신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습니 까?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신앙의 주관권에서 존재하고 있습니까? 성약역사 섭리역사 여러분들은 지금 섭리의 주관권에서 살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시 대말씀을 들음으로 재림시대 성약역사로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섭리인입니다 주님의 신부이죠 여러분들은 성약역사 섭리인인데 여러분들은 어디서 힘을 받습니까? 섭리사에서? (네.) 섭리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서 주님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받습니까? (네.) 섭리사에 문제가 없을 건데요. 예수님.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걱정을 내려 놓으시면 될 것 같은데요. 섭리사에서 사니까 정말 섭리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신부가 되어서 살아야 힘을 받습니다. 힘빠져. 힘빠져. 힘이 빠지면 안 되요. 여기서 힘이 빠지면 우리는 무슨 힘 으로 살아가란 말입니까? 섭리나라 섭리의 주관권에서 존재하고 계신 여러분, 한번 풀어서 한번 말해 볼께요. 이슬람국가인 한 나라에 갔습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법도를 따라야겠죠. 그 나라 말을 하고, 그 나라 행동을 해야 같이 살 수 있겠죠. 그 나라 풍속을 받아야 됩니다. 그 나 라의 주관을 받아들여야겠죠. 한국에 오면 한국의 주관을 받고, 한국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한국음식을 먹어야죠. 그렇죠. 매일 어디 가서 빵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한국에 왔으면 한 국의 영향을 받고 주관을 받으며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싫으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되요. 한국에 오면 한국의 민족의 풍속과 법을 따라야 합니다. 유치원에 가면 유치원의 법을 따 르구요. 초등학교에 가면 초등학교의 법의 주관을 받으며 따라야죠. 이와 같이 신앙세계도 똑같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유대 종교인들의 법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 교인이 아닙니다. 유대교의 법을 따르고, 그 제도를 따르고, 그 주관을 받습니다. 천주교에 사는 자들은 천주교의 법도를 따르고,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살아야 천주교입니 다. 개신기독교에 사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말을 하고, 법을 따르고, 그와 같은 주관을 받아 야지만 기독교인입니다. 그렇다면 섭리사에 왔으면 섭리사의 법을 따르고, 섭리사의 주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까? 고로 주관권에 딱 오게 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냐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 다. 신부의 말씀을 듣고서 주님이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섭리사의 주관을 받아서 우리는 섭리사 주님의 신부로 변화를 이루게 되죠. 그에 따라 우리 영도 변화를 이루게 되죠. 그런데 악한 자, 악평자의 주관권에 가게 되면 그 말을 듣고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 다. 그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주관을 벗어나지 않으면 그도 똑같이 악평자가 됩 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말씀하십니다. “벗어나지 마라. 구시대에서 나와라. 새 시대에 왔으 니 저들의 주관권에 빠지지 마라.” 이렇게 주관권이 무섭습니다. 그냥 주님이 눈과 귀를 가르려고 하신 게 아니예요. 주관권이라는 것은 너무나 신기하게 주 관권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어요. 발목을 잡히게 되면, 그와 같은 말을 하고 그와 같은 행 동을 하면서 본인도 그와 같이 변화가 됩니다. 섭리사에 온 우리들은 이 역사에 살면서 이 시대 말씀을 듣고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데서 힘을 얻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힘들어지면 우리는 정말 힘들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생각을 달리 해야 됩니다. 이 말씀 딱 나가고 계속해서 이 말씀으로 힘을 받기를 바라겠습니다. 아예 생각 자체를 바꾸어 야 해요. 섭리사에서 행하는 것이 힘들다. 이것이 힘들면 존재를 못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 서 주님을 최고로 사랑함으로 인해서 최고의 힘을 받아야 우리는 존재할 수 있어요. 6천년 만에 돌아온 복직역사입니다. 사랑의 복직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이루려던 복직역사, 그 뜻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6천년 만에 돌아 왔어요. 월, 화, 수, 목, 금, 토, 일로 따지면 토요일까지 와서 일요일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돌아온 복직역사입니다. 이 역사는 어떻게 복직이 되냐면 이 역사는 알아야 되요.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했는지 알아야 됩니다. 알아야 그 법을 범하지 않음으로 뜻을 이루 게 됩니다. 이 역사는 마지막 구원역사로 이 땅에서 육신휴거를 이루면서 이 땅에서 주님과 혼인잔치를 하고 이제는 다가올 영휴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영휴거도 이 때 일어난다 고 했습니다. 그것은 가봐야 알겠죠. 말씀을 받아들인 자는 주님과 함께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인 자는 벗어나겠죠. 너무 신기한 것은 구약의 예언된 모든 뜻은 구약에 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답을 이룰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가 끝나서 신약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그 답인 실체가 우리 가운 데 나타나 예언을 이루었을 때 구약에서 말한 문제와 답이 저것이라는 것을 확인을 하게 됩 니다. 그래서 답이라는 것은 새역사가 와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신약에 사는 사람들은 말을 하죠. 니가 무슨 답이냐? 선생님께. 답이라고 할 수 있냐? 답이라는 것은 직접 나타나서 주님의 말씀을 이루면서 보여줘야 됩니 다. 영휴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종적으로 영휴거가 일어나면 우리는 영휴거를 알 수 있겟 죠. 그러나 그 때 알면 우리는 늦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양심으로 우리의 영혼으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역사를 하세요. 이 마음이 선하고 이 마음이 다 비워진 자는 주님의 말 씀을 받습니다. 순수해야 되요. 정말 어린 아이 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역사를 받 아들일 수 없습니다. 영휴거는 최고의 단계입니다. 육휴거와 다르다고 했습니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영휴거는 우리 영을 아예 천 국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천국으로 데리고 가셨는데, 탈락이 없습니다. 영휴거는 탈락이 없 습니다. 주님은 이혼을 안 하세요. 주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니까요. 주님의 사랑은 한번 맺으면 영원하니까 주님은 절대 중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주님 과 이세상의 차이점이예요. 그래서 준비만 되어 있으면 주님께서 재림했을 때 영을 휴거시 키면 탈락을 안 시킵니다. 그 때는 완전한 단계여서 탈락이 없습니다. 이런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혹시나 육신이 탈락되어도 영은 탈락이 안 된다.” 이미 영휴거를 받았으니까. 그런데 그 런 일은 거의 없죠. 영의 협조를 받으면서 육이 땅에서 살지 않습니까? 육이기 때문에 어려 움도 있으나,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단계, 이 영휴거는 최고 마지막 단계예요. 여러분, 이 역사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이것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여러분,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섭리사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 큰 힘은 무 엇인가? 바로 사랑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섭리역사의 핵을 잊습니다. 사랑의 힘 중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의 힘이 있습니다. 친구를 사랑하고, 종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높은 단계의 힘이 있으니 바 로 사랑하는 자, 나의 애인을 사랑하는 그 힘이 사랑의 최고의 높은 단계입니다. 영원히 영 원히 함께 사는 사랑, 그 사랑은 형제의 사랑과 동료의 사랑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사랑의 힘 중에서도 최고의 힘이 있으니 바로 애인을 사랑하듯 사랑하는 힘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주는 말씀을 합니 다. 자식에게도 이야기를 안 해요.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랑하는 자를 맞을 수 있는 말씀을 줍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는 말씀을 줍니다. 다른 말을 안 해요. 영 원히 함께 사는 말을 합니다. 너무 신기하죠. 이게 바로 사랑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재림과 휴거말씀입니다. 재림말씀, 바로 주님을 맞을 수 있는 말씀, 휴거말 씀, 주님을 맞게 해주는 말씀, 바로 주님과 영원히 같이 살수 있도록 제시해 주는 말씀이 재림과 휴거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림, 영휴거, 육휴거, 이 약를 빼놓으면 재미가 없 어요. 사랑 이야기를 빼놓으면 재미가 없어요. 정붙일 곳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역사 6천년 동안 못했던 말입니다. 구원역사에서 최고로 힘있는 말입니다. 주님을 애인이라고 부를 수 있고, 신랑이라도 부를 수 있도록 6천년 동안 역사해 오시며 수만년 동안 인류를 키워 왔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생동안 가장 큰 힘이 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말이 뭘까요? 만약에 주님이 오셔서 “내가 지금 당장 너 의 문제를 해결해줄게.” 하는 말과 주님이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이니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 평생 너 내가 책임질게. 너의 영혼까지 영원히 책임질게.” 하는 말이 있다면 여러분 은 무슨 말을 들을 거예요? 비교가 됩니까? 당연히 2번째죠. 지금 해결을 안 해줘도 되요. 그냥 평생 나 책임 좀 져주세요. 이 말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가 되라는 겁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닥친 문 제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것이 있으니,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 안정권에 들어와야 됩니다. 너는 평생 따라와라. 네가 어느 곳에 있든지 너는 구원하리라. 내가 너 하나는 책임 진다. 내가 사랑하는 자니까. 이것이 바로 섭리역사의 특권 최고입니다. 누가 어디 가서 이 말을 해요? “하도 섭리사에서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한다네. 거기는 이상 해. 사랑이야기를 많이 한다네. 이상해.” 그렇다면 저는 이야기를 하죠. “니가 이상하다. 참 이상하네.” 제가 처음 섭리사에 왔을 때 성경책을 너무 많이 읽었어요. 섭리사에 오면 성경 책을 많이 읽잖아요. 성경책을 모태신앙인데 한번도 읽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섭리사에 오니까 성경책부터 읽게 되더라구요. 제가 밤새도록 성경을 읽었는데, 한 번은 엄마가 제 문을 팍 열고 들어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의심이 많잖아요. 제가 좀 이상하 니까 안하던 짓을 막 하니까요. 새벽에 소리내서 기도도 하구요. 딱 들어오더니, 엄마가 하는 말이 “너 이상하다.” 했어요. “뭐가 이상한데?” 했더니 엄마가 성경책을 그렇게 읽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기억이 나요. 엄마는 기억을 못 하시는데 저는 하고 있어요. 거기다 대고 “엄마, 이상 하다. 엄마 당연히 예수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성경 안 읽는게 이상하지. 왜 읽어도 뭐라고 하세요. 저한테?” 그렇지 않습니까? 사랑 이야기를 안하는 게 이상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사랑의 말, 사랑의 행위는 우리의 가장 큰 힘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오셔서 그윽하게 쳐다보면서, “그래. 알았다. 악수나 하자. 악수.” 하고, “네. 주님. 예.” 하고 끝내는 것이 낫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팔을 벌려서 “내게 오라.” 하신 다면 둘 중에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앞으로는 그와 같이 하라는 겁니다. 허락이 되었잖아요. 주님께서 조금이라도 사랑을 가득 품고 미소를 머금으면서 쳐다보면서 안아주시면 좋죠. 이게 뭐가 잘못 되었다는 거예요? 당연하죠. 주님을 믿고 사는데 여러분 생각이 다 바뀌어 야 되요. 결혼은 해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애는 해도 어려움이 있어요. 육휴거는 우리의 육신이 주님과 결혼한 것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있습니다. 사랑이 없어서 어려움이 아니라, 밖의 사람을 통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하는 자가 없으면 홀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야? 누가 그랬어?” 이렇게 해주면서 힘을 받게 되는 겁니다. 함 께 이기게 되죠. 여러분, 이것을 확대시킨 역사, 확대시켜서 결혼해도 어려움은 있는데 결혼 하지 못 하고 혼자 독수공방하는 자와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자와는 다르다는 겁니다. 그것 도 나만 좋아하는 최고의 배우자가 있으면 말이 달라집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든든하 죠. 이것이 바로 확대시킨 성약역사입니다. 기독교는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장 무서운 사람은 뒷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빽이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그 빽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 거면 불안해서 못 삽니다. 그런데 그 빽이 나만을 평생 영원히 변치않고 사랑해 줄 자가 뒷심이고, 나를 지켜주는데 그 분이 나를 평생 지켜주고 있다면 그것 만큼 최고의 힘은 없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자신감입니다. 사랑받는 자는 어디가나 티가 나요. 자신감이 있어요. 아무리 돈이 있고, 명예가 있어도 사 랑받지 못한 자는 자신이 없어요. 위축이 있어요. 돈이 없고 명예가 없으나, 사랑받은 자는 어디 가나 자신이 있어요. 사랑을 하도 많이 받아서요. 얼굴에 윤기가 나요. 우리는 이런 역 사를 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힘 중에서 최고 신랑으로 주는 사랑, 이 역사에 온 우리들에게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대의 말씀, 신부의 말씀, 사랑의 말씀이 있어야 주님이 그렇게 대해 주시죠. 우 리의 최고의 말씀, 우리의 최고의 힘, 사랑의 힘, 그리고 주님을 만나게 해주는 힘, 이 땅에 서도 주님을 만나게 해주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영휴거, 육휴거의 말씀을 날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최고의 힘으로 알고 느끼고 살아야겠습니다. 이것을 힘으로 딱 느끼고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육휴거, 영휴거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최고 의 조건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조건.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은 바로 육휴거, 영휴거의 말씀입니다. 오직 혼인잔치에서 신랑과 신부만 사랑 이야기를 합니다. 하객들은 음식에 대해서 말을 하고, 다른 말을 합니다. 티가 나요. 보면 압니다. 신랑이 어떻게 생겼다고 하고, 신부가 어떻게 생겼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객 입니다. 오직 신랑신부만 쳐다보면서 사랑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은 재림신앙을 넣어주고, 사랑신앙을 넣어주고, 신부신앙을 넣어줘야 됩 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뺏깁니다. “너희의 육과 영이 나의 신부가 되어 휴거되도록 계속 뜨겁게 성령의 역사를 진행할테니 너희도 완전히 사랑신앙, 신부신앙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주님은 선생님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예 오늘부터 신부신앙, 사랑신앙을 넣으 시기 바랍니다. 자신없다 하지 마시고, 힘들어도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믿습니까?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없으면 끝장이다.” 사랑없으면, 섭리역사는 진짜 끝장입니다. 최고 힘의 말씀, 최고 능력의 말씀, 신부만이 신 부의 이야기를 하며 아들만이 아들이야기를 합니다. 어디 가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 당부하셨습니다. “육신이 휴거되었어도 주님의 사랑을 받았어도 그것으로 인해 힘을 받지 못 하고, 감사감 격하며 깨닫지 못 하면 주님의 사랑을 받고도 모르는 자가 되어서 섭리사에 존재하지 못 한 다.” 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힘들어도 감사감격해야 되요. 신혼생활을 하듯이요. 믿습니 까? 주님. 사랑해 주셔서 너무 좋아요. 도전하게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사랑도 식으면 얼음같아요. 그래서 늘 감사감격해야 합니다. 육휴거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가 솟아나는 섭리역사 모든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힘이 없으면 이 곳에서 존재하지 못 합니다. 이것으로 힘을 받기를 바랍니다. 매듭을 지을께요. 우리가 꼭 해야 될 기도가 있습니다. 바 로 주님을 향한 우리의 순수한 이 사랑을 짓밟는 행위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몰라서 나쁜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 주권자 신혼골수를 꿰뚫는 자도 아닌 자가 주님 을 향한 그 사랑의 마음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 사랑의 마음을 건 드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선생님은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다. 너무 가슴이 아 플 정도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기도합니다. “예수님. 신혼골수를 꿰뚫어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쳐 모든 것을 판단할 이가 이 세상에 있습니까? 예수님. 이 세상에는 한명도 없는 걸로 배웠는데요. 누가 어떤 잣대로 모든 상황 들을 판단하며 선생님의 마음을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너 무나 온전치 못한 말입니다.” 어떤 남자가 있어요. 주님이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좋으니까 ‘주님 없이는 못 살아’ 하면서 찬양을 했어요. 그러니까 어떤 모르는 사람이 “남자 좋아하는 사람이야? 남자가 왜 저래? 남자가 아닌가봐.” 그럴 때 마음을 느껴보셨습 니까?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은 세상과 다릅니다. 너무 좋으면 아이가 되어버려요. 아기가 됩니다. 뭐든지 다 보여주고 싶어요. 아기처럼 하 고 싶어요. 어디 가서는 근엄하게 대답해도 주님 앞에서는 아이가 되어버려요. 이것이 우리 의 마음입니다. 잠언 하나 말씀해 드릴께요. “자기를 버리면 누구나 순수하다.” 자기 자신을 버리면 누구나 인간은 누구든지 순수해져 서 아기가 됩니다. 자기가 잡은 것이 많을수록, 누리는 것이 많을수록 이 마음은 순수하지 못 합니다. 주님이 오셔도 뒷짐지고 거드름을 피울 사람이예요. 마음에 자기 것을 다 버린 자는 아이가 되어 버립니다.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대하기 때문에 어른이든지, 남자든지, 여 자든지, 어린 아이든지, 재벌가든지, 다 다 주 앞에서는 순수한 아이같이 되는 것입니다. 순수하지 못 하고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특히 우리 섭리사에서 주님 앞에 행하는 것을 보면 유치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치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유치부들이 왜 유치한 줄 아십니까? 순수해서 그렇습니다. 그래놓고 자기들은 고귀한 척, 잘난 척을 하 죠. 주님 앞에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 앞에 보이지 않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주님 앞에 내가 드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순수한 웃음과 가장 순수한 사랑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아이같아지는 것입니다. 섭리사 사람들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사랑스럽지 않으면 징그러워서 안 되요. 저도 섭리사 안 왔으면 이렇게 못 해요. 정말 이러고 살 수 없어요. 기성에서는 가르쳐 주지도 않아요. 주님은 그냥 메시야일 뿐이예요. 그것이면 족합니다. 나 를 구원해 주신 분입니다. 내가 주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을 못 해요. 그냥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 뿐이지요. 이번 주 기회의 말씀 때 다 들으셨잖아요. 주님께서 테스트하셨잖아요. “사랑하는 자야. 나 예수가 왔다. 니 사랑이 왔다. 문을 따다 오. 내 손 좀 봐라. 사랑의 향기가 나지 않느냐. 음성을 들으니 니가 기다린 사랑하는 자가 아니냐.” 했더니 우리 섭리사 사람들 첫마디에 얼굴을 들었어요. 어떤 어른들은 일어나서 ‘아멘’ 으로 벌떡 일어나서 맞더라구요. 저는 이 세상에서 그 모습이 최고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 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 참으로 미련한 자들, 주님의 이 사랑을 가르 쳐준 자를 오해하는 것을 참으면 안 됩니다. 저는 다 참아요. 그런데 유일하게 한 가지를 안 참아요. 이걸 안 참습니다. 오직 중심을 보시는 자, 신혼 골 수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이시니까 내 중심, 내 사랑의 마음, 우리 선생님의 중심의 마음을 헐뜯는 자는 주님 용서하면 안 되는 겁니다. “주님. 아시죠...” 사랑하는 주권갖고 기도합니다. 주님 사랑하는데 그것도 안 들어주십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피해를 보고, 이 마음이 다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만은 안 되는 거예요. 예수님, 저는 기도합니다. 물론 그들도 사랑하죠. 그들도 기회를 줍니다. 그러나 기회를 줄 때까지겠죠. 누가 이 역사를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하겠습니까? 목적이 없으면 못 갑니다. 이 역사는 힘이 듭니다. 우리가 천국을 너무 사모합니다. 우리는 영휴거를 기다리고 육휴거를 받아 감사합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이 마음, 주님을 사모하는 이 마음을 누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판단할 수 있죠. “정말 이상하다.” 하면 “니가 이상하다.” 합니다. 얼마나 순수하게 살지 못 하고 얼마나 주 님을 사랑해 보지 못 했으면 모든 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습니까?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이 마음, 주님 한 분만 쳐다보면서 기뻐하는 이 마음, 이 곳 아니면 누가 하나님께 그렇게 하 겠습니까? 하나님 영광의 날도 있잖아요. 원래 세배를 받아야 될 나이에 어른들도 다 나와서 영광돌리잖아요. 오직 하늘 앞에 세배 를 드리면서 사랑을 드리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랑 안에 모든 꿈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꿈,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꿈, 나의 소망과 희망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꿈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역사에 올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귀한 모든 것을 다 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말씀이 있기에 주님 을 따릅니다. 선생님을 따릅니다. 선생님을 믿습니다. 왜? 주님의 사랑을 가르쳐 주기 때문 에. 이것이 우리가 섭리길을 가는 목적인데요. 이거 안 하고 어떻게 살라는 것입니까? 사랑 해서 따릅니다. 사랑으로 힘을 받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무엇하리요. 사랑이 없으면 신부가 무엇으로 살리요. 사랑의 불타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불탄단 말입니까? 사람이 모든 것을 다 내줄 수 있 는 정도의 사랑을 하지 못 한다면 무엇하리요. 이세상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최우선으로 사랑하지 못 하니까 세상 것에 눈이 갑니다. 자꾸만 다른 것을 품을 수 밖에 없 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못 가집니다. 이 세상 다 가져보십시오. 주님은 가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랑해야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로 최우선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적당히 사랑하며 사니까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다른 것에 주님을 뺏기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목숨을 건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 그런데 주님을 빼앗겼으니 이 세상에는 목숨을 건 사랑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어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으면 다 뺏깁니다. 사랑이 없으면 남편도, 아내도, 아이들도 다 뺏깁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의 식물도 제대로 키울 수 없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뺏깁니다. 사랑이 없으면 진리도 뺏깁니다. 사랑이 없으면 천국도 뺏깁니다. 그래서 이 런 말을 했죠.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 도 울리는 징과 같네. 하나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있나.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 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한 산을 옮길 만한 믿 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 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 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구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 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 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 가 장성한 후에는 어린 아이와 같은 것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희미하나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예언하나 그 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만이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이 땅에서는 소망을 가지고 그리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굳건한 진리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천국에서는 이미 있습니다.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오직 사랑과 기쁨으로 존재합니다. 사랑, 여러분 절대 빼앗기지 않도록 지금 이 시간 여러 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문제 단지 나의 생각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주 님이 나를 사랑하는 자로 삼으시고 내 인생 평생을 책임져 주기를 원하시는지 기도하는 여 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기도하는 방법 하나만 간단히 알려드리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어딘가에 계실 겁니다. 어떤 자에게는 조금 멀리, 어떤 자에게는 내 옆에, 어떤 자 에게는 이미 내 마음에 품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어디 계신지 기도할 때는 위치 를 파악하는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 예수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나를 알고 대하 게 된다. 그러니 꼭 어디 앉으라고 해주고, 꼭 어디 있으라고 말하여라.”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기도하기 전에 이렇게 부르는 겁니다. “예수님. 내 옆에. 예수님, 내 마음에 이미 들어오셔서 여기 자리해 주시면 내가 이곳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기도하겠습니다.” 정말 1분이 되었든, 10분이 되었든, 정말 주님만 바라보 면서 영원한 것을 위해 내 인생의 운명을 놓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우리 앞에 다가오게 하는 겁니다. 어디에 오게 하실 지는 여러분의 자유의지입니다. 찬양. 우리의 모든 주인 삼은 것들 다 내려놔야 되겠습니다. 내려놓고 정말 주님 사랑에 불타고, 주님 사랑에 힘을 받고, 주님 사랑에 오직 그 사랑으 로 이 섭리역사 모든 것들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죠. 정말 사랑의 불로 어 떤 어려움이 있어도 사도바울의 말처럼 무례히 행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면서,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끝까지 사랑의 승리를 하는 여 러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0년 전에 참으로 어려운 때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희들에게 문제가 있느냐? 지구만한 문제가 있으면 우주만한 해결책이 있다.” 여러분 앞 에 지구만한 문제점이 있습니까? 항상 주님을 부르면 우주만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 해결책인 주님을 부르면서 그 사랑을 간구하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이 시간 내려놓고, 오직 나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 앞에 나가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찬양 ‘내가 주인 삼은’ 마침기도) 사랑하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주님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게 하셔서 감사하고, 마음의 귀를 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 저들은 깨닫지 못 하 며, 나는 깨달으며 가는가. 주님, 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다 좌우가 됩니다. 어린 아이 같은 자, 순수한 자, 자기를 완전하게 비워낸 자, 이 마음에 화인을 맞지 못한 자라면 어찌 주님 의 역사를 발견치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 우리에게 그 역사를 발견케 하시며, 이 역사를 따르게 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있습니까? 인생에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 이 모든 것 주님 사랑 으로 잠잠케 하여 주시옵시며, 이 섭리역사 가운데 문제가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주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이 잠잠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누리며, 기쁨을 누리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옵나이다. 최고의 힘, 최고의 능력, 최고의 사랑, 이 섭리역사 가운데서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살지 않으면 우리가 어디서 힘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겠사옵나이까. 모두 생각의 전환을 하게 하 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생각과 같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삶 가운데 만족이 충만하게 일어 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 더욱 더 주님 충만하게 일으켜 주시사 우리의 생각대로 흐르지 않게 하여 주시며, 물과 같이 가치없이 흐르는 우리의 마음을 잡아주시옵시사 더욱 더 고귀하게 아름답게 온전하게 사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사랑해 보지 않은 자 구할 수가 없사오며, 사랑해 보지 않은 자 그 힘을 알 수가 없사옵나이다. 주님, 오늘부터 다시 도전합니다. 새로운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서 다시 그 사랑에 도전하며 허락된 그 사랑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역사하 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편, 우리의 것, 우리의 사랑이오니 우리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 사오며 어떤 것으로 우리가 낙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 우리의 사랑이 되어주셔서 영원한 소망이 되어 주시옵시며, 우리의 영원한 힘이 되 어 주시옵시며, 우리의 영원한 능력이 되어 주시며, 우리의 영원한 요새가 되어 주시옵소서. 모든 자들에게 능력, 은혜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오직 이것 하나만을 위해서 달려 오셨습니다. 모든 자들 주님의 사랑으로 신부로 만드는 것, 이 세상 누가 뭐라 하나 신부는 신부이야기를 해야죠. 주님의 신부가 되어서 신부 이야기를 하는데 어찌 주님 그것이 온전치 못 하다 누가 말할 수 있겠사옵나이까. 모르니까 그 신부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 주님 그 무지한 자들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이 시대 헝클어지고 흐트러져 주님을 뺏김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님을 깨닫고 행함으로 바로 잡는 역사 일어나게 함께 하 여 주시옵소서. 이 시대를 바로 잡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회를 주셨사오니 우리부터 만족하며 기뻐 뛰게 하여 주시옵소서. 행복해 하며 주님 웃음짓게 하여 주시옵시며, 어려워도 힘들어도 주님과 기뻐하며 힘을 받 은 우리들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귀한 말씀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 하는 이 말씀, 이 말씀으로 힘을 받지 못 하면 우리가 존재할 수 없사오니 우리의 생각 날 마다 새로워짐으로 더욱 더 성령의 역사가 불이 타며 사랑의 역사가 불이 타며 기도의 역사 가 불이 타며 진리의 역사가 불이 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역사가 출발할 때는 구원열차에 한 사람이 타고 있으나, 다음 정류장에 또 타고 또 타고 시대가 가면 갈수록 결국은 마지막 종착역에는 많은 사람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오신 역사, 너무나 초라하고 메시야 예수님이 육신을 쓰고 오셨는데도 너무나 초 라한 역사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겨자씨가 크듯이 나중에는 창대하게 크게 열매를 맺듯이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주님의 역사인 줄 믿사오 니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주님 낙심하는 자 힘을 더하여 주시옵시며, 진실로 존재하는 데서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역 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뜨거운 성령의 불, 섭리역사 모든 사람들에게 더하여 주시옵시며 주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마음, 목숨을 건 사랑의 마음, 그 사랑 충만하게 받아 이 마음과 이 모든 기쁨이 충만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며 무지한 자들을 다스릴 수 있도 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사랑하는 선생님에게 힘과 능력을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더욱 더 깊은 말씀으로 사랑을 쪼개는 말씀을 더하여 주시옵시며, 온전한 모든 뜻 그 뜻 그 바라시는 소원 다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강건함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사랑 주님께 드립니다. 사랑하니 끝까지 참으며, 사랑하니 끝까지 인내하며, 사랑하니 불의를 미 워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섭리역사 어떤 풍파가 있지만, 결국은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만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나, 주님과 함께 어려움을 해결하며 절대 섭리역사 안에서는 기쁨으로 잠잠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사 모든 자들 사랑하는 자니까 주님 이들의 영혼육을 영원토록 책임져 주시옵소서. 모든 것 주께 감사를 드리오며,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 립니다. 아멘 네.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기도의 불 계속 높여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저도 요즘에 이틀 동안 제 시간에 기도를 못 했는데요. 기도를 안 하면 주님께서 바로 보여주시구요. 기도하면 또 바로 보여주셔서 기도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바로 응답하시고, 기도를 안 하면 비행기가 추락하거 나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일어났는데요. 피곤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그러나 존재하는 데서 힘을 탁 받으면서 기쁨으로 더욱 더 힘있게 앞으로 전진하시기를 기 도하겠습니다. 모든 시간 마치고 돌아가는 시간 조심하시고, 2월 17일 금요일날 역시 천국 성령운동으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찬양으로 ‘사랑은 영원히’ 찬양하면서 모든 시간 마치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편히 돌아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찬양 ‘사랑은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