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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2.14 (화)

계시말씀

선포일
2012.02.14 (화)
성경 본문
요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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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사랑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작성일 : 2011. 12. 19. 월 작성자 : 이 선진 [오래 전부터 주님 사랑과 선생님 사랑을 따로 구분하여서 생각해 왔었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개념 자체를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한다.’라는 말은 해 왔으나 주님 사랑의 행위는 기껏 해 봐야 찬양, 기도, 말씀 읽기, 전도, 예배 참석하기 등 굉장히 기본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예전에 선생님의 편지 중 ‘주님 육이니까 육으로 선생이 세상 신랑이니까.’ 라는 말씀과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와 [고전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가 겹쳐져서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이 시대에 주님을 믿고 사랑한다는 것은 곧 육의 신랑의 입장에 계신 선생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님, 혹시 이 시대에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대리인적인 개념으로 육의 신랑의 입장에 계신 선생님 사랑이 곧 주님 사랑이 아닌가요? 저의 막연한 주님 사랑의 개념을 깨우쳐 주세요.) 사랑아, 네가 질문한 것이 맞다. 이는 섭리인들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니 잘 받아 적도록 하여라. 선생은 성약역사 전반에 걸쳐 나의 육신으로서 이는 역사적 동시성으로 마치 신약역사 때 ‘예수’라는 육신을 쓰고 성자 본체의 영이 임한 것과 같다. 선생은 땅에서 났다. 그러나 그 영이 성자 본체의 영과 일체 될 수 있는 신부급 영으로 변화가 되었기 때문에 나의 영과 일체가 되었고 그로 인해 성자인 나의 영이 그대로 임한 육체와 같이 된 것이 다. (우와, 주님. 바로 이 개념이 신약 시대 때 하나님이 ‘예수’라는 육신을 쓰고 오셨다는 말씀의 개념이군요? 예전부터 ‘성자 본체의 영이 그 육에 임하셨다는 말 씀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육에 임하셔서 그 육을 쓰신다면 대체 성자 본체의 영은 무엇을 하셨으며 어디에 계셨던 거지?’라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바로 성자 본체의 영이 ‘예수’라는 육신에 임하셨던 것이고 성자 본체의 영은 삼위일체의 개념 으로 하나님의 영과 완전히 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신약시대 때의 ‘예수’라는 육에는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으로도 볼 수가 있는 것이군 요. 그래서 신약시대 때 ‘예수’라는 육을 통하여 구약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 셨다,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오셨다’라고 말씀하셨군 요?) 맞다. 정확히 깨달았다. 나는 삼위 중 성자로서 하나님과 온전히 일체가 되어 있었다. 고로 일체의 개념으로 내가 간 것이 곧 하나님께서 가신 것이었다. (주님, 일체의 개념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일체의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설명 해 주세요. 육계의 것으로 비유해 주시면 더 좋고 요.) 생각해 보자. 한 나라에 임금이 있었다. 이 임금은 어명을 써서 한 신하를 통해 한 지역의 관리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 신하는 어명을 가지고 그 관리에게 가서 어명을 전하였다. 이때 그 관리의 입장에서 어명을 가지고 온 신하의 입장은 무엇과 같으냐. (음, 신하 자체가 임금은 아니지만 임금의 어명을 전달하는 그 사명 기간에만큼은 어명을 받는 관리의 입장에서는 그 신하는 임금과도 같지요.) 그래, 맞다. 그 다음 비유이다. 너희가 케이크를 먹을 때를 생각해 보아라. 그 케이크 안에는 우유와 각종 재료들이 일체 되어 있다. 고로 너희가 케이크를 먹을 때는 우유를 직접적으로 먹는 것은 아니어도 우유가 일체 되어 있기 때문에 케이크를 먹는다는 것은 우유를 먹는다는 것과 같다. (맞아요. 주님. 비유 한 가지만 더 들어 주세요. 섭리의 영혼들을 위해서요.) 종이와 나무의 비유를 들자. 종이는 나무와 여러 물질들과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다. 이때 종이는 나무와 여러 물질들과의 일체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고로 너희가 종이를 만질 때 이는 나무를 만지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다. 나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일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 에 내가 신약시대 때 ‘예수’라는 육을 통해 간 것은 곧 하나님께서 가셨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예수’라는 육은 나의 영과 일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세 때 ‘예수’라는 육을 믿고 따르며 사랑한 것은 곧 나를 믿고 따르며 사랑한 것이요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한 것과 같다. 일체란 곧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와 같다. a와 b가 아니요 a 하나이다. 1과 1이 모여 2가 아니라 1이 되는 원리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이 시대의 중심자 선생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겠느 냐. (아하, 선생님의 육과 영은 일체가 되어 있으며 선생님의 영은 성자 즉, 주님의 영과 일체가 되어 있 으니 ‘선생님’이라는 육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는 것 은 곧 주님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는 것이네요? 그리고 신하가 어명을 전달하는 사명 기간에만큼은 신하를 임금의 입장에 있다고 보아야 하듯이 선생님을 통한 성약 말씀이 선포되는 성약역사 기간에만큼은 선생님은 주님의 입장, 신랑의 입장에 있으신 것이네 요?) 그렇지. 이를 모르고 마치 ‘선생이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 본체다.’ 라고 얘기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지로 판단하여 선생을 악평하고 오해한 것이다. 부디 영과 육을 분별하여 보아 다오. 영과 육을 분별하지 못해 선생을 악평하고 무지로 판단한 기성과 같이 섭리인들 중에서도 이러한 분별력이 없어 선생을 오해하고 무지로 판단한 자들이 아주 많았다. 고로 선생의 입장을 제대로 분별하여라. (주님, 그렇다면 이 시대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며 선생님은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곧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네요? 9월 7일 수요 말씀 중에서도 ‘주님이 보내신 사명자는 주님의 육이라서 그를 통해야만 주님과 연결되어 결국 주와 같이 하게 됩니다. ‘영’은 ‘육’을 통해 성장합니다. 주님이 보내신 자와 함께하지 않으면 주님과 함께하지 않은 것으로 보시고 주님은 그와 함께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씀하셨고 ‘먼저 주님하고 일체 되려 하지 말고 주님의 중보자와 일체가 되어야 주님하고도 일체가 된다.’ 라고 말씀하셨듯 선생님 사랑이 곧 주님 사랑이네 요?) 그렇지. 선생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모순 덩어리이다. 먼저 내가 보낸 육을 사랑해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 다. 보이는 육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영인 나를 어떻게 사랑한다는 것이냐. 이치에 어긋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선생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겠느냐. 신약시대 때는 ‘예수’라는 육이 하는 말을 듣고 믿고 따르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 육을 위해 기도해 주고 말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 이 곧 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선생’이라는 육이 하는 말을 듣고 믿고 따라 주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해 주는 것 이다. 선생을 위해 기도해 주고 말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다. 알겠느냐. (네, 주님. 정말 깊이 깨달았어요. 먼저는 육인 것처럼 선생님 사랑이 곧 주님 사랑이 니 선생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 주고 선생님의 말씀대로 행하 여 선생님을 더욱 깊이 사랑해 드릴게요. 깨달았으니 행할 수 있어요.) 그래. 이 성약역사에서는 선생 사랑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 이를 잘 깨달아 선생을 사랑해 다오. 또한 선생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섭리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해 주는 것이 곧 선생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니 너의 형제자매를 사랑해 다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