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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2.17 (금)

천국성령운동 말씀

선포일
2012.02.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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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7일 천국성령운동 말씀> 온전함과 완전함 시작기도)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감사합니다. 항상 우리의 인생과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우리에 게 생명의 말씀을 주며,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 주께 다 모든 것을 맡깁니다.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사탄 마귀 절대 틈타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시며, 말씀을 전하는 저의 입술과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까지 성령의 뜨거움으로 온전하게 주관하여 주시옵 소서. 모든 시간 주께 맡깁니다. 모든 역사 주께 맡깁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전세계에 있는 여러분들 다 같이 성삼위 하나님께 인사드리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이 시간 저를 완전히 내려 놓습니다. 여러분 또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다 내려 놓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 든 역사를 주님께 다 맡기고, 오직 우리는 주님께 집중하면 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만 역사하시는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곳에 만명이 있는데 이곳에 10명이 성령만 받았어도 역사는 진행하고 끝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곳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성령의 역사는 지금 진행이 되고, 또 오늘 이 역사는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역사는 내일 진행되겠죠. 그러나 그 역사는 계속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때입니다. 하늘이 주시는 크나큰 축복과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모든 자들에게 성령을 다 부어 주신다는 것, 모든 자들이 다 성령을 받는 것은 다 허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간구한 사람 만이 이 엄청난 은혜, 성령의 역사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령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여러분 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준비하시고 이미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귀히 듣고 귀히 받아들이기 위해 간구하는 자, 이런 사람들은 모두 다 성령을 받을 줄 믿습니다. 오늘 모두 다 뜨겁게 주시는 성령을 받기를 진실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하루하루가 너무 귀합니다. 예전과는 너무 다릅니다. 너무나 귀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애가 타서 간절한 마음이 될 때입니다. 그래야 열차도 불을 지피고, 기름을 꽉 채우고, 빨리 달려야지 않겠습니까? 그와 같이 우 리의 마음도 불을 붙이고, 막 달려야 할 때입니다. 지금 시작할 때부터 여러분의 마음에 불을 붙이고 달 리시길 바랍니다. 지난 번에 말씀을 드렸죠?\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먹고 뛰느냐에 따라서 역사는 달라집니다. 오늘 다 시 한번 마음을 새롭게 먹고,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마음 주관을 바닥에 내려 놓으시고, 오직 주님께 완 전히 맡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완전함과 온전함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해 드릴 것입니다. 완전함과 온전함.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육신이 탄생했습니다. 한번 태어난 이상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정말 잘 살아야겠죠? 다시 태어 나고 또 모든 것을 반복할 수 있다면, 아니면 영원히 죽지 않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그 럭저럭 살더라도 또 내일이 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은 한번 태어나서 정해진 기 간이 되면 죽게 되어 있죠. 그래서 정말 인생을 누구보다도 사람답게 잘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장 잘 사는 것인가? 항상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되 겠죠.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가고, 많은 돈을 벌고 큰 명예를 얻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토끼같 은 자식을 낳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려있죠. 여러분의 생각과 기준에 따 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답게 정말 잘 살려면 자기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이 근본의 목적을 깨닫지 못 하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정말 보람있게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 다.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볼 때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사는 것인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진정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라 고 생각하십니까? 말은 하기는 어렵겠지만, 머릿 속에 생각은 하고 있겠죠.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보람 있게, 잘 사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것만 안다면 세상이 정하는 기준에 내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입 니다. 그래서 사람의 가치는 외모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가진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이 가치 관에 있고 중심에 있어요.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디에 비중을 두고 중심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지게 되어 있다 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오늘 100원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사람은 100원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지구를 다 가졌어도 내가 우주를 갖지 않고는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기준을 어디다 정해놓고 살아야 되나?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평생 기뻐하며 감사하 며 이기며 살면 되니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만 만나면 된다며 이것이 기준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기준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부모님께 물어봐도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즐겨야지. 젊었을 때 해볼 것 다 해봐. 인생 한번 이야.” 하는 큰 일날 부모들이 가끔 있습니다. “나 보이지? 결혼했어도 애인도 사귀고 신나게 사는 거 야.” 가끔 그런 부모가 있어서 생명들이 있어도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 가치관을 어떻게 할꼬. 그래서 교육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 장에 가서 좋은 사람을 만나. 그래서 자식을 낳아야 돼.” 그러면 이렇게 말을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엄마는요?” 하면, “그러니까 너는 잘 살아야 되는 거야.” 합니다. 도대체 어디에 기준을 둬야 되는 것일까? 여러분들에게 하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한 그림 작품만 봐도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의도를 들어 봐야 그 그림이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한 작품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작 품을 보고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기도하는 소나무? 우는 소나무? 많이 있죠.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작가가 그린 그림의 의도를 제대로 알려면 작가의 의도를 들어 봐야겠습니다. 그러면 작가 의 의도가 어떠한지 보겠습니다. 기도는 사랑. 이 소나무는 기도하는 소나무입니다. 여기서 소나무는 사 람을 상징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늘 예수님께 기도하며 사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표현을 했죠. 기도는 사랑이다.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것을 예수님과 하나님과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하 나님과 예수님과 사랑하며, 교통하며, 수수작용을 하며 일체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한 작품을 통해서 의도를 나타냈습니다. 기도는 사랑이니까 하나님과 예수님과 기도하며 수수작용을 하며 살라는 것입니 다. 기도하는 소나무였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봐도 모르겠는데 작가의 의도를 보니까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자의 말씀을 들어봐야 인생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가장 가치있습니다. 여기서 인생을 창조하신 분 있다고 하시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만약에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을 한번 들 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인생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봐야 인 생을 창조하신 의도와 계획과 목적을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그가 보내신 예수님을 제대로 깨달아야만 인생은 제대로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자기 인생 자기 것이라고 하며,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그냥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하나님의 창조 속에 태 어납니다. 아예 사람을 창조할 때 유전자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생명체가 탄생되도록 하나님은 창조를 해 놓으셨습니다. 아예 그 모태에서만 이 생명이 살듯이 아예 이 우주에서 지구만 생명체가 살도록 아 예 창조를 해 놓으셨습니다. 믿습니까? 창조목적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모른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 그대로를 알고, 그대로 살아야 만이 인생은 최고의 목적을 이루고 사는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제일 먼저 태어나서 부모를 알아보죠. 그런데 아이가 태어났는데 몇 살이 되어도 부모를 모른다면 안 되죠. 가장 기본적인 것,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모르고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아이는 본래 기가 막히게 본성적으로 엄마의 품을 압니다. 엄마의 냄새도 알구요. 엄마의 품을 떠나면 불안하기 때문에 울어요. 인생도 이러한데 창조자인 하나님을 가장 먼저 발견하지 못 한다면 인생의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제대로 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깨달아야 합니다. 가슴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깊이있게 “주님. 정말 그러합니다.” 그렇게 깨달으며 살아야 말씀을 전하면 불이 나가요. 마음 속으로 이야기를 하면, 애타는 소리를 들어보니 말이라도 들어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창조목적의 뜻, 여러분 알고 계시죠? 이 지구를 사람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을 영혼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고로 영 때문에 우리의 육신과 세상과 그리고 우주 전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인정하십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 “너는 여호와를 인 정하라. 제일 먼저 인생으로서 나의 뜻을 이루려고 하기 전에 너는 여호와를 인정하라. 여호와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너를 창조하시고, 너를 구원하시려 나를 보냈다는 것을 인정하라. 그리고 너를 구원 하기 위해 천국에 많은 것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을 인정하라. 너희 육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까지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람답게 사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먼저는 인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제대 로 믿고 최우선으로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 순종하고 살면서 하늘의 신부가 되어 삽니다. 전능자의 축복 을 받고 삽니다. 제일 먼저 발견할 것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돈을 손대기 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 이 먼저입니다. 물질의 축복을 받기 전에 영혼의 축복을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우리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을 사랑 하며 사는 것이 창조목적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위해서 너희가 창조되었고, 이것을 위해 서 섭리사에 왔다. 이것을 가장 먼저 인정하라.” 하셨습니다. 인정하십니까? 이번 주 수요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해서 거듭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이 땅 에 구원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로 차원높은 말씀이 선포되는 시대입니다. 구원역사 6천년 만에 애인으 로 삼고 신부로 삼고 살 자에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주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땅에 서 세계 전체의 대표로 세운 자가 하늘 앞에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최고로 높은 단계의 말씀을 준 것 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 땅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이 인간세계를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아예 인생을 통해서 영혼을 길러서 천국에 데리고 가려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를 키워 오셨어요. 그냥 어린 아이가 바로 태어났는데 ‘엄마’ 라고 할 수 없잖아요. 바로 태어나면 ‘응애’ 하는데 엄마라고 말하라고 할 수 없잖아요. 두돌 정도는 지나야 부를 수 있어요. 한돌 지나면 조금씩 걸으면서 그 때부터 ‘엄마’ 시작하죠. 그러면서 완벽한 언어를 구축할 때가 외국나이로 4살, 한국나이로 5살 정도 되면 엄마의 말을 알아듣고 엄청 말을 잘 해요. 이 정도가 되고 6살이 되면 유치원도 다니고 공부도 잘 하죠. 이와 같이 인생도 키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키워 오셨죠.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비로소 부모의 말을 알아들을 때가 되었구나.” 그 때부터 말을 가르치듯이, 그 때부터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 앙의 역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 때였습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6천년이 되었습니다. 맞습니까? 이렇게 아담과 하와 때 하나님의 최고의 구원의 역사 바로 사랑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못 했습니다. 이 어린 애들이 뜻을 깨닫고 성장해야 되는데, 10대 때 온전치 못한 것을 먼저 배웠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데, 다른 것에 눈을 뜬 겁니다. 그래서 구약의 4천년은 종의 역사가 되었죠. 떨어졌어 요. 아예 사랑의 역사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타락함으로 종의 입장이 되었어요. 그 후에 예수님이 육의 몸을 쓰시고 오셨어요. 그러나 타락한 종의 입장의 인생들을 한번에 신부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입장으로 구원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셨을 때 믿고 따랐다면, 서서히 이루면서 주님이 돌아가지 않으시고 그 다음에 신부의 역사로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시지 못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때가 되어서 이제 주님이 오시는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약속을 하셨잖아요. 2천년 동안 신약역사를 아들급으로 펴 오시면서 “이제 내가 다시 오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때로 봤을 때, 주님이 다시 오시는 때가 맞습니다. 2천년 동안 세우지 못한 조건을 세운 자를 통해서 시대 말씀을 주시면서 신부역 사를 펴 나가고 계십니다.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기성과 섭리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이 사람은 때를 모르는 겁니다. 사랑의 깊은 말씀을 떠나서 때를 구분하는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너는 날씨를 구분하면서 왜 하나님의 때를 구분하지 못 하느냐?” 여러분, 지금 때를 보아하니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추워요. 하지만 해가 길어졌어요. 5시 반이면 어두웠던 날이 지금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입춘도 지나갔고, 아무리 추워도 이미 봄이 접어 들었습니다. 다른 어떤 말씀으로 구분하기 전에 때라는 것으로 먼저 구 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때가 주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는 성약의 때입니다. 이 때는 이 시대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신부급으로 부활시키는 때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알았 느냐. 주님의 말씀을 듣고 알게 됩니다. 신부급의 단계로 회복시키는 단계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들어봐 야 압니다. 주님은 신랑으로 오셔서 재림역사를 펴나가고 가십니다. 이 역사는 천년 동안 기록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천년 동안 혼인잔치 하는 역사가 바로 이 때입니다. 중요한 말씀을 그러면서 주셨죠. 주님은 “주님 앞에 신부의 조건을 세운 자에게 신부의 말씀을 주었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해야만 신부로 변화되게 하였다.” 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종을 벗어날 수 없었어요. 만일 믿기만 하고 말씀을 아무 거나 듣는 게 괜찮다고 하면, 이렇게 예수님이 시대마다 차원을 높이며 말씀을 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고 구시대 사망권에서 벗어나 생명권으로 나와라. 이것이 부활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신약말씀, 이 말씀을 들어야만 구약의 종주관권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똑같습니다. 이 시대도 신약의 주관권을 벗어나려면 성약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신약말씀을 듣고 잘 한다고 해도 그 차원의 그 수준일 뿐입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성약말씀 곧 재림말씀, 신부로 살게 해주는 신부의 말씀을 들어야 주님의 신부가 됩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절대 신부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첫째 먼저 때를 만나야 하며, 둘째 시대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셋째 따라야 됩니다. 믿습니까? 그러면서 비유를 드시기를, “돌포도나무에 참포도나무를 접붙이지 아니하면 어떻게 참포도를 맺느냐.” 하셨습니다. 너무 이치에 합당한 비유입니다. 100날 돌포도나무에서는 돌포도만 열립니다. 반드시 잘라 내고, 거기에 참포도나무를 접붙여야 합니다. 자꾸만 돌포도나무에서 올라오는 가지를 잘라줘야 되요. 안 그러면 영양분이 돌포도나무로 가요 .돌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자꾸 잘라주고, 참포도나무랑 접붙 인 그쪽으로 영양분이 가게끔 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참포도나무가 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 주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주님을 맞이하는 방법을 듣지 않으면 주님을 맞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신부로 변화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신부를 찾으러 오셨으니까요. 여러분, 결혼 식장에 하객들도 똑같이 들어갑니다. 둘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랑은 하객들을 보러 온 것 이 아니라, 신부를 보러 왔다는 겁니다.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찾으시는 것, 이 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 그동안 역사를 이루시면서 행하신 이유는 신부를 찾으러 오셨다는 겁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을 믿고 행하는 그 차원의 구원은 이룰 수 있 겠지만, 주님의 최종목적은 신부를 찾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입니다. 신부들을 위해 천국의 최고의 것들을 준비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갖고 오셨을 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절대 구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 습니다. 절대 자녀급으로 변화도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 재림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주님을 감히 신랑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신랑처럼 모시고 사랑하며 살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을 신랑이라고 말할 수 있겟습니까? 여러분, 참담합니다. 그와 같이 인생을 살고, 그와 같은 방법을 배우고, 그와 같이 살아야 주님을 신랑이라 온전히 부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 또한 기성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절대 주님의 신부로 변화되지 않고, 그냥 주님은 메 시야, 예수님, 아버지 하나님, 형제되신 예수님이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정말 온전히 사랑하고, 그 조건을 세우고 주님께 비로소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을 허락받았을 때 애인처럼 신부처럼 사랑하라는 사랑을 허락받았을 때 애인급의 신앙을 그 때야 비로소 하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그 조건으로 재림의 말씀을 주시고, 시대의 역사를 펴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 말씀을 듣고, 재림역사를 맞이하고, 주님을 맞이하며 주님의 신부가 되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 또한 주님의 신부로서 변화를 이루고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시대 재림말씀을 들어야만 주님의 신부로서 변화를 이를 수 있고, 주님을 신랑으로 보 는 눈이 떠집니다. 그래서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우리가 이상해요. 여러분, 이런 말을 많이 듣지요? 저는 천국성령운동 때 천국에 가야된다고, “천국가야 돼.” 기도하면요. 처음 온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 각해요. “뭘 저렇게 천국을 가고 싶어서 저렇게까지 하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저렇게까지 하나.” 처음에 온 사람들은 다 그래요. 그러나 기성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요. ‘주님을 애인처럼 사랑하면 안 되나.’ 했던 사람들은 섭리사를 만나면 물만난 고기입니다. 이 사람은 그 거 하나로도 충분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계속 그 관을 깨뜨리지 않으면 계속 어색합니다. 찬양도 보 통 해야죠. 거의 표정과 몸짓이 너무 현란해서 볼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하나. 볼 수가 없어요. 기성은 청바지입고 단상에 많이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집중하지 않고, 주님을 집중하기 위해서 그런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멋있게 집중하기 위해서 멋있게 입고 올라가나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항상 차려입고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주님은 신랑이시니까요. 애인을 만날 때는 최고 멋있게 나오잖아요. 우리는 사람을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님 보라고 우리가 깨끗이 하고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배우지 않으면 생각 자체가 그렇게 돌아가요. 그래서 주일예배 때도 최고 깨끗한 옷을 입으려고 하잖아요. 생각이 그래요. 왜 주일날 멋있게 입으려고 하냐고 하는데, 우리는 절대 사람을 안 쳐다보고 신랑되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신부라면 주님을 의식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목욕하고 깨끗하게 옵니다. 흰옷입은 사람도 섭리사는 많구요. 이렇게 주님의 시대의 말씀 신부의 말씀을 들어야 눈이 떠져요. 안 그러면 눈이 안 떠져서 “왜 저래?” 합니다. 몰라서 그래요. “왜 이렇게 저렇게까지 찬양하고, 천국 에 가려고 애를 써야 하나?” 몰라서 그래요. 모르니까 돈이나 명예를 찾고 살죠. “섭리사는 돈, 명예를 너무 다 버리고 사는 거 아니야?” 합니다. 우리도 사람인데요. 우리라고 집 욕심, 돈 욕심 없습니까? 명예를 얻고 싶지 않습니까? 얻고 싶은 것은 당연하죠. 그러나 주님의 신부로서 살 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첫 번째라서 그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기에 그렇습니다. 주님 사랑받는 것, 거기에 기준을 둡니다. 안 하고 싶어서 안하는 게 아니라, 이것을 먼저 행해야 되기 때문에 육적인 것은 늦게 하는 겁니다. 먼 저 행해야 되기 때문에. 세상의 돈과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주님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되어야겠죠. 섭리사가 영육간에 잘 되어야겠죠. 그러나 영도 아주 많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 에 여기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생각의 차이예요. 생각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가치 관이 달라집니다. 모르고 하는 말에 주눅들지 마시구요. 합당하게 가서 이야기해 주세요. 그러면 위축이나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멋있게 살아야죠. 이렇게 우리는 시대에 보낸 사명자를 통해서 시대의 눈을 뜨고, 신부로서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면서 주님을 최고 우선으로 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예요. 우리가 오직 바라는 것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사랑받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자신감이 없어요. 섭리사는 정말 특이하고 신기해요. 사랑의 세계라서요. 사랑은 정말 민감 한 거예요. 세상에서는 집이 크고 해야 인정받아요. 기성에서는 돈이 없으면 장로와 권사가 될 수 없고, 교회에서 천대를 받을 수 밖에 없어요. 돈이 없어서 연륜이 되고 전도를 많이 했어도 얻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있어요. 부모 간에 싸움이 자식 때문에 일어나는데 어느 대학에 갔는지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기성교회 에서는 피가 튀깁니다. 교회에 가면 주님사랑만 신경쓰고 싶은데, 정말 눈이 많아요. 우리 섭리사는 정 말 그런 곳이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절대 외모를 서로 비교한다거나, 절대 사는 집이나 학교 직장을 비교한다면 저희는 지상천국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사랑에는 민감해야 되요.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은 왠지 떳떳하고, 얼굴에 빛이 나고, 말도 떳떳하게 잘 합니다. 사랑이 우리 재산이예요. 이것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사랑받는 자의 얼굴에는 빛이 납니다. 이렇게 육적휴거의 역사를 이루면서 살다가, 이제 주님이 천사장의 나팔불고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거예요. 이것이 목적인데 우리가 천국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 사랑이 최고의 목 적, 나는 이것 때문에 태어났고 이것 때문에 섭리에 사는데 이것을 간구하고 이것 때문에 목숨걸고 가 는데 이것을 간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정상입니다. 안 그러면 이곳에 사는 보람이 없다고 했습 니다. 우리는 천국 중에서도 최고의 아주 핵심지, 주님이 거하시는 곳 주님이 완전 신부로 사랑해 주시는 곳, 신부의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가장 주님 가까이 주님께서 나를 신부로 삼아주시는 그 곳에 가야 된 다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없는 자가 섭리사에 있습니까? 그 소망이 없으면 끝까지 못 가요. 그러니까 자꾸 그런 소리 나와요. “적당히 하자. 하나님 예수님 믿고 적당히 하자.” 하는데 저부터도 “이왕이면 다홍치마인데, 이왕이면 진짜 인생 사는데 진짜 멋있게 살자. 정말 잘 살아야지. 이왕 주님을 믿을 것 자녀급에서도 몸부림에 또 몸부림인데, 이왕 몸부림칠 것 신부급에서 몸부림치자. 완전하게. 그 리고 이왕 만들 것 완전하게 만들자. 그냥 대충하지 말자 완전하게 하자.” 합니다. 우리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다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꿈이 높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모든 것을 완전하게 몸부림쳐 사는 보람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그런데요. 사탄은 바로 이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 리가 이 땅에서 최고 예수님, 내가 최고의 중심은 주님사랑입니다. “나 이것 없으면 못 살아요. 내가 다른 것은 다 얻지 못해도 인생을 살면서 주님 사랑 얻지 못하면 나 못 살아요. 예수님.” 이러면서 사는데 이 생각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최고의 사랑이 주님이 아니어야 해요. 사탄은 그래야 뺏을 수 있습니다. 신부의 사랑, 애인의 사랑을 뺏어가야 합니다. “뭐 그렇게 온전하게 신부처럼 믿어야 해?” 시험이 오 고, 어려움이 옵니다. 사탄은 왜 사탄이 되었는가. 사탄이 루시퍼입니다. 사탄의 조상은 루시퍼입니다. 원래 루시엘이었죠. 루시엘은 사람을 경호하는 천사였어요. 천국에서도 경호 천사장이었죠. 하나님이 너무 사랑함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생을 창조하셨어요.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인간 시간의 130억 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서 인생을 창조하셨겠습니까?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천국에 우리 인생들이 거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놓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원역사를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데리고 가서 영원히 살 희망이 있으셨어요. 참으로 인생들을 사랑해 주셨어요. 오 직 하나님이 행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해주신 거예요. 그런데 사탄은 이걸 질투한 겁니다. “정말 사람같 이 생겨서 뭔데? 하나님이 저렇게 사랑해 주시는데?” 그래서 사랑을 건드립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창조 목적을 깨뜨려야 하나님께 미움을 받고 단절이 됩니다. 그래서 가장 아킬레스건을 건드렸죠. 바로 타락하게 했고, 더 나쁜 것은 그 사랑을 자기 영광으로 취했어요. 이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의 시작이예요. 고로 이 루시퍼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원히 흑암에 가두 어지게 되었죠. 하나님의 뜻을 막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키면서, 창조목적을 깨뜨리는 일만 해 왔습니다. 그래야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저주를 받고 끝냈는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배가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깨져야만,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창조목적을 깨는 일만 했어요. 사탄이 하는 일은 구원역사 시작되서 지금까지 바로 매 한가지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는 일입니다. 바로 꼬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며, 바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일입니다. 오직 그 것을 하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사랑의 대상체로 창 조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사는 것을 무조건 꼬투리를 잡고, 무조건 유혹하고, 계속해 서 막는 역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사탄은 육이 없는 영체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합니다. 더구나 이 성약역사는 6천년 만에 최고의 마지막 역사 영휴거가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그런데도 내 마 음이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사탄이 하는 짓이죠. 이제 마지막 역사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어 오시다, 성 자 예수님 그 본체가 이 땅에 내려 오시사 사명자를 통해 33년을 역사하시고,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을 변화시켜 데리고 가시려고 하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지금은 선생님부터 막고, 반대를 합니다. 아예 이루어지면 끝나는 겁니다. 지금까지 6천년도 이루어 왔는데, 지금 이루어지면 사탄은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더 극랄하고 악날하 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이니까. 고로 예수님은 선생님께 10대, 20대 때 말씀을 주시면서 “너는 사탄 과 싸워 이기기 위해 말씀으로 무장하라. 집의 형제들을 통해서 너를 괴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너를 막 는 것은 형제가 아니라 사탄이니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혈육과 보이는 자와 싸우지 말아라. 보이지 않 는 영 사탄과 싸워 이겨라 기도하라. 그리고 생각으로 행실로 싸워 이겨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요. 오직 주님의 생각으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행함으로 지금까지 이겨 왔습니다. 이길 길은 그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지금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일은 보이는 자와 싸우는 일이 아닙니다. 보이는 자와는 먹는 싸움을 좀 할 수 있구요. 우리의 모든 신앙적인 문제, 주님께 가까이 가지 못 하게 하는 오해와 의심의 모든 문제는 보이지 않는 사탄과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과 싸워 이기도록 날마다 기도와 말 씀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여러분, 전쟁터에 나가라고 하면 총과 칼을 주겠죠? 이곳은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총과 칼을 구비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굳세야 됩니다. 사탄은 매일 저도 막아요. 극랄하게 막아요. 오늘 또 막더라구요. 저는 사탄이 항상 말씀을 전하 기 전에는 항상 막는데요. 천국성령운동 말씀을 전할 때는 더 극랄합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새벽부터 아예 사투를 벌여야 되요. 이상해요. 그리고 그 날 하루 종일 너무 안 좋은 일, 이상한 일, 속상한 일이 생겨요. 그래서 마음이 자꾸만 ‘나도 안 좋은데 나부터 살아야지. 무슨 말씀 을 전하냐.’ 하는 이런 마음이 생겨요. 항상 막아요. 그런데 항상 승리는 제가 이깁니다. 이기지 않았으면 안 되죠. 그래서 오늘도 딱 말했어요. “오늘도 니가 막지만, 너는 졌어. 니가 아무리 새벽부터 그렇게 야단법석을 치지만, 너의 수고는 헛되 었다. 불쌍하다. 야. 너 사탄으로 태어나서 매일 나를 막는 것도 불쌍하다. 이제 그만 와라. 내가 누군지 알아? 올 사람에게 와야지. 나는 정조은이다.” 그렇게 하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더라구요. “올 사람이 따로 있지! 시간낭비 하지 마라.” 해요. 사탄이 오는 건 한가지예요. 쓰러 뜨리러 오죠. “오 늘 최고로 주님을 증거하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것이다.” 하지 않아요. 쓰러뜨리려고 하죠. “하지마! 속 상해. 하지마! 원망해! 그리고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해! 왜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데 왜 이렇게 어려움이 오냐고 해! 왜 기도를 그렇게 하는데 기도를 안 들어주냐고 해!” 하며 사탄은 말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다.” 저는 말하겠죠. “너는 딱 사탄이야. 그건 아니야. 선생님께 배웠어. 그건 아니야.” 사탄은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갖가지 모든 말을 통해서 쓰러뜨리려 합니다. 이제는 이것이 힘들다고 해서 지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영 휴거를 맞이해야 해서 보이는 게 없어요. 보이는 게 오직 주님만 보입니다. 나를 데려가 주실까? 여러분, 수시에 합격되었다고 편한 줄 아십니까? 편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법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몰 라서요. 혹시나 등록금이 안 되서 못 갈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 불안합니다. 아기를 다 만들어 놨어요. 마지막 엄마가 힘을 안 줘서 못 낳기도 하잖아요. 마지막 힘을 준비를 해놔야 되죠. 여러분이나 저나 똑같아요. 선생님께도 저는 “제가 지칠 때는 지나갔습니다. 저는 굳건합니다.” 합니다. 6수를 거쳐야 7 수로 가게 됩니다. ‘아. 정말 때가 왔구나.’ 생각이 듭니다. ‘6수를 거쳐서 7수로 가야 되는데 정말 끝이 날 때가 되었구나. 나는 지금 6수를 헤엄쳐서 7수로 갈 때가 왔구나.’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머릿 속에 극랄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여길 빨리 돌파해야 7수로 가는데 못 돌파하면 못 가거든요. “지금 거의 다 와서 이쯤 왔구나. 조금 더 가면 되겠구나.” 합니다. 사실은 지금 지치고 힘들 때가 아닙니다. 잠을 못 자서 지치죠. 그것 빼놓고는 지칠 일이 없습니다. 끝까지 가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말로는 모른다. 끝까지 간다는 정신으로 끝까지 가서 승전고를 울리기 전에는 지치지 않는다. 가서 승전 고 울려야 되니까. 그 힘은 남겨 둬야되지 않겠습니까? 다짐합니다. 절대 끝까지 가겠노라고. 끝까지 가서 최후승리를 하는 그 날까지 이기겠노라고. 그리고 끝까지 가서 마음껏 웃는 그날까지 참 겠다고. 내 웃음을 비축해 놓겠어. 내가 오늘은 어려운 일이 많아서 섭리사에 어려운 일이 많아서 또 자 신있게 힘있게 웃지 못 하지만, 내가 웃음을 비축해 놓으리라. 마음껏 배가 찢어지도록 웃을 날이 올 겁 니다. 그렇게 다짐을 다시 하고 이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을 통해서 주신 말씀, 에베소서 6장 10절에서 20절 말씀입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 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 후에 능히 서기 위함이라. 그런 즉 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발이 준비된 것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 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 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 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하리니 이를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바 된 것은 이로 인하여 내가 할 말 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이 지금 선생님과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시 한번 주신 귀한 메시지입니다. “자기 하나 만드는 것이 다.” 했습니다. 왜? 왜 “자기 하나 만드는 것이다.” 라며 이렇게 말을 할까요? 자기가 튼튼하면 걱정이 없습니다. “주님! 왜 사탄을 그냥 놔두나요? 나를 매일 괴롭혀요. 이 세상, 썩어빠진 세상, 유혹을 너무 많이 받고 학교에 가도 직장가도 힘들어요. 왜 나한테만 자꾸 하라고 하시나요? 이 세상과 악한 자를 멸해 주세요.” 이 기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 내가 바꾸겠습니다. 내가 행하고 온전하겠습니다.”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앞에 악을 치면, 또 하나의 악이 또 솟아나요. 자꾸 그렇게 문제가 오는 데, 평생 그렇게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지난 번에 말씀을 했죠. 주님께서 내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시나요? 아니면 내가 정말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주님께서 내 영육을 온전 히 다 책임져 주시기를 원하시나요? 여러분, 근본을 해결해 놓고 사셔야죠. 근본을 해결해 놓고 사는 두 번째 비법이 오늘 나오는 겁니다. 먼저는 주님의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 그것 먼저가 해결되어야 할 첫 번째 문제이며 두 번째 문제는 내가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사탄 없애달라고 할 필요 없구요. 악한 자들 없애달라고 할 필요 없구요. 세상 변하게 해달라고 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완전해지면 되니까요. 내가 바꾸면 되니까요. 세상은 이렇게 바뀌면 다음에는 또 다르게 바뀝니다.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여러분, 악한 그 들이 바뀌기를 기대하십니까? 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를 바꿀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합니다. “예수님. 제가 저들을 멸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저들을 멸해 달라고 하니까 매일 시험든다고, 안 멸해지니까. 이 세상에 악인들이 한 둘입니까? 하나님 의 말씀대로 안 사는 사람들이 한 둘입니까? 너무 많아서 그 사람들이 다 멸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조마조마해서 살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 없어질 때까지는 절대 움직이지 않겠어요.” 하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내가 변하는 게 빠를 정도예요. 세상이 변하고, 직장이 변하고, 학교가 변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하고 온전해지는 겁니다. 온전한 단계 외에는 다 변해요. 미완성 단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99%도 100%가 아니니 변질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깊은 뜻 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 사람이 바뀌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내가 먼저 바뀌기를 원하는 가. 내가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완전히 변화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내가 먼저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바뀌고 내가 바뀌는 자가 될 것인가. 여러분, 무슨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저는 이미 선택했습니다. “주여. 나를 먼저 바꾸어 주시옵소서. 나를 완전하게 주님 변화시켜 주시옵소 서. 주님. 저는 저들보다 조금 더 빠를 거예요. 주님. 제가 저들보다 조금 더 빠를 거예요. 그러나 제가 조금 더디더라도 저에게서 떠나지 말아주세요. 저를 변화시켜 주세요. 내가 저들보다는 빠를 것입니다.” 저는 매일 이것을 놓고 간구합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섭리사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항상 기도합니다. “예수님. 내가 바뀌어야 해요.”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악인들을 멸해 달라고 목소리에 힘이 빠지게 기도하다가, 나중에 결론은 이 단계에 도달하게 되더라구요. “주님. 제가 저들을 멸해달라고 바꾸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까? 내가 바뀌겠습니다. 내가 굳건하겠습니다. 내가 굳건하면 저들이 뭐라 한들 무슨 상관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세상이 아무리 타락되고 주님을 안 믿는다고 한들 내가 주님을 사랑하며 내가 굳건한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고 주님 내가 바뀌었으니 저들을 바꾸겠습니다.” 이런 기도가 나오죠. 여러분, 비온전함은 온전함 만으로 없앨 수 있어요. 사탄을 무엇으로 무너뜨리는가. 최고의 방법, 주님의 이름으로 검을 날리고 행실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탄을 완전하게 무너뜨리는 것은 아주 쉬운 말로 하면, 나의 온전함으로 무너뜨리는 것 입니다. 최고의 단계, 나의 완전함과 온전함으로 악을 멸하고 악을 없애는 겁니다. 주님 안에서 내가 온 전한 자가 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순리적이요, 자연적이요, 누구도 힐문할 수 없는 완 벽한 단계이잖아요. 이왕이면 다홍치마이잖아요. 이렇게 이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걱정이 없어요. 오직 내 인생은 나 만들기에 집중하면서, 나로 인해 주께 영광돌리며, 나로 인해 생명을 구원시키며, 나로 인해 악평자들을 모두 무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게 최고의 비법이지요, 최고의 방법이지요. 그 래서 “자기 하나 만들기이다. 인생은 자기 하나 만들기이다.” 하는 것입니다. 자기 하나 만들면 자기도 좋고, 세상도 좋고, 주님도 좋고, 다 좋습니다. 사탄만 나쁘게 되고, 통쾌하게 아주 없애는 방법이죠. 아주 통쾌하게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여 기에 도전해야 되겠습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바라보며 사는 인생입니다. 자기 관리, 생명관리 철저하게 관리하고 철저하게 다스리는 겁니다. 내가 온전하지 못 하면 한 생명관 리하러 갔다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총맞고 옵니다. 주님이 불안해서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한 사람 을 살리는 것보다,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님은 조마조마하실 겁니다. 애가 타실 겁니다. 내가 완전하면 어디 불속에라도, 물속에라도 나를 넣으실 겁니다. 여러분? 찬송가에도 있지 않습니까?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세상에 널리 전하라.” 물과 불 뿐만 아니라 여기에 데려다놔도 온전하지 못 하면 픽픽 쓰러집니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는데요. 어떻게 주님의 몸되어 살 수 있겠습니까? 사탄을 완전하게 멸하는 방법, 내가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하라. 온전하라.” 하며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생명의 말씀이 맞습니다. 주님의 생명 의 말씀은 그 하나 임기응변의 말씀이 아니라, 아예 근본의 문제를 쳐 버리는 말씀이예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고, 더 이상 사탄이 힐문할 수 없는 최고의 단계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을 7번씩 꼭꼭 읽으며, 성령 집회를 단 한번도 빠지지 않으며, 매회 주시는 성령을 받기 위해 너무나 노력하며, 주님이 섭리사에 주 시는 1200편의 계시를 모두 읽으며, 날마다 말씀을 하나하나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단 한번도 새 벽을 빠지지 않고 기도하며, 형제를 절대 미워하지 않고 늘 사랑하기 위해 애를 쓰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날마다 나의 생각을 비워내기 위해 노력하며, 주님 앞에 완전한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 중에서 넘어진 사람이 있을까요? 여러분 이렇게 사는 사람 중에서 넘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거 다는 고사하구요. 매일 매일 시대의 말씀을 중심해서 기도하는 자는 여태까지 넘어지는 것을 못 봤어요.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자는 넘어지지 않아요. 섭리사를 절대 나가지 않아요. 절대 안 나갑니다. 나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그 를 물속에서라도 불속에서라도 구해 주십니다. 그 조건이 있으니까요. 주님이 구해 주시려고 해도 “제가 할 수 있지요. 제 조건으로 나갈께요.” 하는 그런 사람들은 섭리역사 사는데, 알콩달콩 참깨가 쏟아지는 혼인잔치입니다. 매일 “주님 나 좀 꺼내주시고, 왜 나 좀 안 쳐다보십니까?” 하는 그런 인생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픕니 다. 그렇죠? 첫 번째처럼 이렇게 살아야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살기 위해서 날마다 도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온전하게 살 수 있는가. 온전한 자가 될 수 있는가. 아멘? 아멘. 믿습니까? ‘아멘’ 하는 모든 여러분들에게 온전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온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 왜? 여기서 부흥강사인 제가 “온전하세요.” 하면 못 합니다. 이 말은 주님이 하셨어요. “완전하라. 내 아버지가 온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은 주님말씀인데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온전할 수 있기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온전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온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것으로는 온전하고 완전할 수 없고, 그 수준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 수준에서 모든 생각을 갖고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단상에서 쏟아지는 말씀은 온전한 말씀이예요. 그래서 완 전하지 못한 자가 들으면 부담스러워요. 주님의 말씀은 항상 완전하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한 우리들이 들을 때는 조금 힘겨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온전함은 완전함으로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상에서 쏟아지는 완전한 말씀으로 여러분들을 끌어 올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으로 화답해야 됩니다. 내가 행하기 어려운 말씀일수록 ‘아멘’ 으 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아멘’ 할수록 그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행하기 어려운 말씀일수 록 어렵다고 하지 마시고, ‘아멘’ 하시고 “저 말씀의 위력으로 행하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되요. 우리 섭리사의 모든 안좋은 생각과 주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은 아예 땅에 다 버려야 되요. 주님의 기쁜 말씀에 화답하는 섭리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이런 생각과 이런 주관만 가진다면 무슨 말씀을 들어도 기쁩니다. “해야 된다. 안하면 죽는다.” “아멘.” “주님 말씀 맞죠? 너무 강해. 강하시지 왜?” 아멘. 생각을 바꾸시 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 완전하신 말씀이니까 안 하면 죽죠. 비완전하면 죽죠. 그 말씀 이 맞죠. 해야되는 말씀이죠. 그렇게 꼭 행해야 되는 말씀이죠. “주님. 합당하죠?” 인정하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마음을 먹어야 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도한 것이, 제가 100% 완전해질 때까지는 사람관리는 안 받게 좀 해달라고 기 도했어요. 19살때부터요. 기도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100% 완전해지기 전에는 사람의 관리 좀 안 받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이 관리해달라고, 정말 좋은 사람 붙여달라고, 나도 온전하지 못한데 온전 하지 못한 자의 관리받으면 안 되니까 온전한 관리받고 온전하게 거듭나게 해달라고, 온전해지기 전까 지 주님의 절대적인 온전한 말씀으로 나를 좀 보호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나 좀 보호해 달라고, 절대 사망권에 처하지 않고 사망에 처한 자 가운데 내가 있지 않게 해달라고, 아 예 만나지도 않고 이기게 해달라고. 주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지만, 사람은 자꾸 자기 기분에 따라 서 자꾸 왔다갔다 하니까요. 그러나 주님은 절대 생명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으시니까 주님의 관리를 받 고 주님의 영향만 받고 싶습니다. 나를 좀 책임져 달라고 매일 기도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온전해야 되겠습니다. 진짜 온전한 사랑을 해야 되겠죠. 그냥 어디에 뺏기고, 순간 어디에 눈과 마음을 돌리는 사랑이면 안 되요. 사랑세계잖아요. 사랑없으면 끝나고, 보람이 없고, 기쁨도 없지 않습니까? 오직 사랑이지 않습니 까? 그것 먼저 차지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야 뜻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이 사랑세계 가장 중요한 것, 사랑으로 참고 사랑으로 끝까지 가고 사랑으로 이해하고 사랑함으로 믿어주고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 단계가 온전한 단계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 마음과 행실이 온전한 단계까지 가기까지 포기하면 안 됩니다. 계속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으로 창조되었으니까 창조목적이 사랑의 단계 로 가야 됩니다. 완전한 효자가 된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부모를 공경할 것이요, 완전한 벗이 된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의리를 지킬 것이요, 완전한 신부가 된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자를 지킬 것 입니다. 그래서 완전해야 됩니다. 완전하지 않은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변하는 것은 무섭거든요. 이 세상에 사랑 없습니까? 사랑, 있습니다. 변해서 문제죠. 변하지 않고 끝까지 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해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지키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저는 완전하길 원합니다. 주님을 지키며, 섭리사를 지키며, 그 보낸 자를 지키고, 내 영혼을 지키 길 원합니다. 내 영혼이 완전한 상태에서 더 이상 변질되지 않기를 날마다 기도합니다. 이미 말씀을 전 했지만, 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들다고 했습니다. 하는 과정에서는 너무 힘듭니다. 완전해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진짜 힘듭니다. 성격하나 고치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안 좋은 일이 있는데 웃는 것도 힘들어요. 안 좋은 일 있을 때 화내는 것은 쉽죠. 그러나 웃는 것은 힘 듭니다. 그러나 참음으로 인해서 얻는 것이 있습니다. 화를 냄으로 화를 얻겠죠. 고쳐도 힘들고, 고치는 과정에서도 힘듭니다. 천국에 안 가도 힘들어요. 그러나 천국에 가는 과정도 너무 힘들다는 겁니다. 왜? 나를 깎고 닦고 만들어야 되니까 정말 뼈를 깎는 고통이고 너무나 힘듭니다. 완전해지는 단계이니 까. 완전해지는 과정 가운데 참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행해야 될 것도 너무 많아요. 거기다가 잘 안 되요. 자꾸 왔다갔다 해요. 그런데 자꾸 그 마음을 잡으려고 하니까 포기까지 되고, 낙심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아예 이 말씀을 안 들었으면 모르는데 말씀은 들었지, 감동은 되지, 포기는 못 하겠지. 그런데 안 되요. 포기는 하고 싶은데 포기는 아깝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안 해도 힘들어요. 그래서 여러분 무엇을 선택할 건지 물어보죠. 매일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너는 이왕이면 다홍치마인데 어떻게 할래? 해도 힘들고 안해도 힘든데?” 여러분 해도 힘들고 안 해도 힘들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주님 뜻대로 가면 하나도 안 힘들다고 생각하면, 여러분 가다가 낙심을 해요. 해도 힘들다고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그러나 결론은 “하면 얻는다. 안하면 못 얻는다.” 입니다. 확연히 달라집니다. 신앙을 완전히 하지 않으면, 일평생 살 동안 계속 힘듭니다. 유혹하는 것이 너무 많고, 과정 가운데 너무나 힘든 것이 많습니다. 고치는 과정 가운데 힘든 것이 너무나 많으나, 신앙을 완전하게 하 든지 안하든지 주님을 완전하게 사랑하든지 안하든지 똑같이 힘들어요. 사랑하면 사랑하니까 어려움이 오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니까 어려움이 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오늘 말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이 말을 먼저 전해 드릴께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면담을 했어요. 자기는 너무 힘들 대요. 자기 주변에는 항상 이상한 사람들만 있대요. 항상 최고로 안 좋은 사람들만 있어서 힘들대요. “너 참 이상하다. 어떻게 너는 너가 가는 곳마다 항상 이상한 사람만 있냐? 내 주변에는 항상 이상한 사람만 있지는 않더라. 너는 어디를 가도 거처지를 옮겨도 이상한 사람들만 있다고 하니까 너 문제다. 너 이상하다. 너 이상한 사람 아니냐? 혹시 니가 몰고 다니는 것 아니냐?” 진짜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 어요. 너무 답답해서요. 잘 해주다가요. 자기가 이상한 줄 모르고 주변에서만 유혹한다고 탓하길래요. 여러분, 술먹는 사람 옆에는 술먹는 사람만 있구요. 수영 좋아하는 사람 옆에는 수영 좋아하는 사람만 있구요. 주님 좋아하지도 않는데, 주님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겠습니까? 말이 안 통하는 데요. 왜 항상 그 사람 주변에는 그 사람만 있는가? 바로 그 주관권 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그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 하고, 거기서 허우적대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마음과 생각이 다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도 힘들다고 하면 서 왜 힘든 주관권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주님의 은혜의 주관권에 나오면 되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영휴거가 대세예요. 그래서 천국에서도 이세상에서도 영휴거가 대세예요. 여러분, 이 세상도 그렇습니다. 무결점 피부, 무보 정 몸매가 대세래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두요. 미인을 찾지만 완벽한 미인을 찾습니다. 그렇게 저는 못 살아요. 사람들은 완벽한 미인을 위해 날마다 몸매와 얼굴을 관리합니다. 무결점 피부 와 무보정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요. 여러분, 그런 것을 위해 사는 사람이 “너는 어떻게 천국을 위해서 사냐?” 하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요. 어디 무결점, 무보정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이 성결한 단계의 것을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주님의 뜻대로 살고, 주님의 사랑을 간구하는 이 단계를 누가 건드 린단 말입니까? 돈이 최고요, 명예가 최고라는 세상이 이 세상과 비교를 할 수 있습니까?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완전히 우리 생각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믿습니까? 여러분, 비교가 안 되 요. 어떻게 잠깐 살고 마는 이 세상과 영원히 사는 저 세상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비교가 안 됩니다. 완전해야 되요. 그래서 이 세상도 완전하길 그렇게 몸부림을 치는데요. 그게 더 힘들어요. 무결점 피부 와 무보정 몸매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그거 안할 거예요. 그냥 적당히 할래요. 적당히 깨끗한 정도만 되면 되요. 저는 예수님께 “나는 저 세상에 안 살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렇게 살았으면 매일 거울보며 신경쓰니 까 힘들었을 거예요.” 합니다. 매일 외모를 생각하며 살았을 거 아니예요? “돈이 만원만 지갑에 있는데 돈을 어떻게 두둑하게 만들 수 있을까? 돈을 한방에 버는 방법은 없을까?” 매일 이러면서 살았을 거 아 니예요? 저는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그것을 최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최고 로 보는 세상에 살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섭리사를 보고, 세상을 보면 도전정신이 없다고 하는데요. 저는요. 섭리사를 보고 세상을 보면 도전정신이 생겨요. 왜냐하면 “내가 무결점 피부를 만드느니, 내가 무결점 영혼을 만들겠다. 그게 빠르겠다.”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거저 주잖아요. 주님 사랑 주셨죠.\ 말씀 주셨죠. 보낸 자가 있죠. 함께 해 주시죠. 뭐가 걱정입니까? 걱정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거 도 전할래요. ‘최고로 얼굴에 빛이 나는 인생보다, 내 속이 빛이 나서 내 마음 가운데 영혼이 빛이 나서 주 님이 주시는 환한 천국의 미소를 짓는 자가 되겠다.’ 그렇게 마음을 먹습니다. 특히 우리 선생님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정말 저런 미소를 가져야지. 정말 저런 인생을 살아야지. 환경과 여건과 모든 것을 다 벗어던진 저 천 국의 미소를 지어야지. 저게 진짜 인생이다. 저게 바로 사람다운 인생이다. 저거다. 이거다.’ 합니다. 표상과 모델이 있으니까 너무 좋습니다. 볼 수 있으니까. 눈으로 볼 수 없으면 마음으로 볼 수 있고, 지금 함께 뛰고 있으니까, 그의 모든 인생이 글로 되어 나오니까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게 되죠. 고로 ‘완전하라’ 는 말은 이 말은 정말 희망의 말입니다. ‘완전하라’ 는 말은 ‘안전하라’ 는 말입니다. 완전하게 보호받고, 완전하게 안심하는 그 상태를 말합니다. 욥 이야기를 할께요. 욥은 그 시대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의인이었죠. 그런데다가 아주 부자였습니다. 하나 님이 보시기에 완전하고 부자였어요. 가축들이 엄청났습니다. 땅소유도 엄청나구요. 대단한 부자였습니 다. 그런데요. 이 욥은 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 시대 동방사람 중에 최고의 부자라고 하는 사람인 욥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욥을 보고 기뻐하 셨습니다. 그리고 사탄들이 하나님을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너는 나의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 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고 완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셨습니 다. 역시 사탄은 사탄다운 말을 했죠. “아니 욥이 어찌 까닭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 들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옵나이까? 모든 것을 다 두룰 정도로 부자가 아닙니까? 그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이 땅에 모두 널리 퍼져있습니다.” 이렇게 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을 했죠. 그러면서 부탁을 했죠. “이제 주의 손을 펴셔서 그 모든 소유물을 다 쳐버리소서. 그리하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겠나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힐문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의 모든 소유를 너의 손에 맡기노라. 그러나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지니.” 했습니다. 사탄 이 물러가서 그 소유물을 다 빼앗았습니다. 이 때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이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 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어다.” 했습니다. 절대 하나님을 향하여 범죄하는 말, 원망하는 말 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루는 사탄들이 또 하나님께 말을 했습니다. “너는 땅을 두루 돌아다녀 보았느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 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때 사탄은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주의 손으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오리이다. 그 몸을 쳐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유를 다 빼앗았고, 격동하여 까닭없이 모든 소유를 치게 하였어도 순전하게 그 믿음을 지킨 욥을 향해 또 말을 하였습니다. 이에 그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사탄이 힐문하지 않는 단계까지 가야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탄은 그의 건강을 빼앗았습니다. 발바닥 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다고 했습니다. 욥이 앉아서 기와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는 정도 까지였다고 했습니다. 이 때 아내가 말했죠. “당신이 그래도 당신의 순전을 그대로 지키겠느냐. 하나님 을 욕하고 죽으라.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 때 욥은 말했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 자의 한 말과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어찌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면서 이 모든 일을 욥은 입술로 범죄치 않았습니다. 욥의 친구들도 왔죠. 욥을 보고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자들이 욥을 다 떠났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아내도 떠나고, 친구들은 저주를 받았다고 계속 해서 이야기를 했죠. 욥기서 27장 5절에 “나는 너희를 결코 옳다고 하지 않겠고, 나는 죽기 전에는 나 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나는 니 말이 옳다고 하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욥은 온전했으나 사탄은 그것을 갖고 힐문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온전한 자로서 욥은 온전한 것을 보 였습니다. 그러므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온전한 믿음으로 끝까지 축복을 받고, 보란 듯이 사탄을 합당하게 멸해 버렸습니다. 믿습니까? 통쾌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시대 누가 그 시대 욥에게 가서 다시 사탄에게 힐문할 자가 있었겠습니까? 갈 자가 가야죠. 온전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온전함으로 사탄을 멸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섭 리사를 향해서도 사람들은 말을 하죠. 여러 가지 말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냐? 너는 도대체 무엇이 냐?” “내가 너희의 말을 끝까지 결코 옳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 다.” 여러분, 이와 같은 온전함을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믿음을 보여주실 것입니까? 이와 같이 하는 우리의 인생이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온전하고 완전한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 말씀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입니 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 사도바울의 말씀이죠. “너희는 이 세대로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왜 자꾸 기도하라고 하고 왜 자꾸 말씀대로 하라고 하고 왜 자꾸 온전하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들이 싸울 것은 혈과 육이 아니라 우 리들이 싸울 것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겨야 됩니다. 이긴 자라야만 주님을 만 날 수 있고 ,영원한 것을 상속받게 됩니다. 여러분, 인간의 근본은 흙이 아니라 영입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영원히 남아서 하늘나라로 가든지 아니면 악한 세계로 갑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영원히 존재해야 됩니다. 모든 방법이예요. 악한 자를 이기는 법, 이 세 상을 내가 옳다고 하면 내가 행복하게 희망을 가지고 기쁘게 사는 방법, 절대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 방 법,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의 사랑과 믿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이 땅에서도 구원받고 주님이 오실 때 나의 영을 휴거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온전하라. 온전하라. 온전한 것이 방법입니다. 여러분, 빨리 하루빨리 주님의 사랑의 총을 맞고 죽으세요. 지금 교회 들어오신 분들은 깜짝 놀랄 거예요. 주님의 진리의 총을 맞고 정확하게 머리에 맞아버려야 되요. 시덥지 않게 다른 데 맞아서 그렇게 살면 안되구요. 머리를 딱 맞고 딱 죽어야 되요. 믿습니까? 아예 죽어 버려야 되요. 나를 아예 없애야 됩니다. 정확하게 머리에 맞아야 합니다. 누가 쏘기 전에 정 확하게 주님의 진리의 총, 사랑에 총에 맞고 죽어야 합니다. 죽은 몸을 누가 쏘겠습니까? 사탄이 쏘려고 했더니 죽고 없는 거예요. 이미 주님의 총을 맞고 죽은 겁니다. 죽었으니 어떻게 쏘겠습 니까? 주님 안에서 죽은 자는 부활을 이룬 자요, 사탄 안에서 죽은 자는 죽음을 이룬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죽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의 고백처럼 날마다 내 생각을 죽여야 되겠습니다. 주님의 것으로 거듭나야 됩니다. 주님의 총을 맞고 진짜 죽어야 됩니다. 주님 안에서 죽지 않으면 어차 피 죽습니다. 주님 안에서 죽으면 부활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바뀌겠는가? 아니요. 내가 바 뀌겠습니다. 내가 변화되겠습니다. 주님 빨리 손대주십시오. 주님, 저들보다 내가 빠르니 빨리 나를 바꾸 어 주십시오. 저 악평자들과 악한 자들의 계교가 끝나겠습니까? 예수님. 그거 기대하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 섭리사 오래 오신 지도자들, 장년부들 그거 말고 주님 내가 바뀌는 것이 빠르겠네요. 이제는 진정 이와 같은 일을 하며, 이와 같이 거듭나겠습니다. 미련도 없이 후회도 없이 행할 때가 왔 으니 이 때 하겠습니다. 세상이 어찌되었든 무슨 상관이 있겟습니까? 나부터도 온전하게 되겠습니다. 저 는 걱정이 없어졌어요. 땅을 치며 걱정하던 모든 문제들이 다 사라졌어요. 선생님께도 편지를 드렸어요. “선생님. 내가 굳건한데 무슨 문제입니까. 제가 굳건한데 무슨 문제입니 까. 선생님, 힘내세요.” 제가 선생님의 계시를 풀어서 전해 드렸어요. “선생님. 저는요. 선생님께서 보내 신 치타가 물소를 잡는 계시를 이렇게 풀었습니다. 선생님. 맞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께 맞다고 연락이 왔어요. “너 잘 깨달았다. 그와 같이 하라.” 제가 꿈계시까지 받았거든요. 치타가 물소를 잡는 꿈을 보여 주셨 잖아요. 제가 선생님께 진짜 기도를 했거든요. 간구했거든요. 절대 선생님 기도해 달라고, 선생님이 기도 해 주시면 다 될 거라고. 선생님은 큰소리로 떵떵 거리셨어요. “내 사랑하는 자를 누가 건드리느냐. 주 님의 이름으로 내 기도한다. 너 기도는 이루어진다.” 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속상하시대요. 분명히 계시를 받아주었고 분명히 꿩도 잡고 분명히 다 잡았는데 자꾸 어려운 일이 일어나니까요. 그 런데 제가 풀었어요. “선생님. 그들은 사탄들은 어차피 그렇게 될 거구요. 그 날을 기다리느니 선생님 나 먼저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는 굳건합니다. 선생님. 제가 굳건하게 기도해 주세요.” 그래서 꿈을 꿨어요. 편지를 보내기 전에 같이 보냈거든요. 선생님이 꿈에 어떤 물건을 자꾸 가져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안 된다고 했어요. 자꾸 가져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가져와라.” 저를 시험해 보시는 거였어요. 그런데요 어떤 사람이요. 눈치를 보고 내가 안 갖다주니까 그 물건을 갖다 준 거예요. 제가 그런데 뺏어 버렸어요. 뭐하시는 거냐고.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거 가지고 계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면서 “옳다. 너는 앞으로 나를 이와 같이 모시도록 하여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물건이 뭔지 아십니까? 담배였어요. 담배는 뭘 상징하는 줄 아십니까? 걱정, 근심.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렸어요. “선생님. 걱정, 근심 버리세요.” 섭 리사를 너무 사랑하시니까, 이 생명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니까, 악행자들의 악행들이 많으니까 선생님 걱 정하십니다. 기도해서 받아서 변해야 되는데 더 그러니까 우리가 걱정되는 거예요. “선생님. 걱정, 근심 빼세요. 내가 굳건하고 우리가 굳건한데 무슨 걱정을 하고 계십니가?” 하고 말씀 을 드리니까 선생님께서 “옳다.”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주님 보여주시더라구요. 너무 재미있지 않습니까? 알콩달콩 정말 사랑하는 자를 위로하며, 왜 우리만 위로받고 삽니까? 주님도 위로하고, 선생님도 위로 하며 살아야죠. 이게 정말 재미있는 섭리역사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는 해야 천국가서 다 누리고 살죠.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이와 같은 정말 너무 큰 은혜를 받은 거예요. 70일 기도기간에 너무 감사한 거 예요. 걱정, 근심이 없어요. 내가 온전할 거니까, 내가 굳건할 거니까, 선생님 그 담배 뺏듯이 나 시험하 시는 거죠? 안 된다고 .이것만은 안 된다구. 걱정, 근심은 안 된다구. 희망차게 가야될 때라구. 포기치 말고 더 기도하고 간구하며 내가 온전해지는데 우리 섭리사가 온전해지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되겠습니 다. 이게 우리가 끝까지 갈 수 있는 좋은 비법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고삐로 채워 놓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고삐 채워 놓으세요. 아예 못 움직이게 아예 주인의 고삐를 채워야 됩니다. 고삐를 채워 놓지 않으면 누가 데리고 갈지 모르구요. 미쳐서 어디로 날뛸지 모릅니다. 어디 가서 고삐 빠진 망아지처럼 굴지 말고, 고삐를 딱 채워서 주님 움직일 수 있는 대로 따라가는 거죠. 주님이 끄시는 대로 가야죠. 고삐의 힘이 아닌 사랑의 고삐, 말씀의 고삐를 채워 놓는 거예요. 그래서 섭리사에 우리 새로운 신입생 들 말씀듣는 사람들은요. 말씀으로 툭툭 칠수록 옵니다. 오래 된 사람일수록 말씀의 고삐를 강하게 채워 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시를 하나 주셨어요. 시가 제목이 ‘주인’ 이라는 시에요 『주인(시) 크는 소 밭갈며 소리만 질러도 놀라서 가지만 다 큰 소 고삐를 당기며 치면서 소리를 질러야 주인 마음 맞추어 간단다. 암소는 이 골짝 논갈고 황소는 저 골짝 밭갈자.』 크는 소, 지금 크는 사람들은 이리저리 소리만 딱 하자고 해도 따라가지만, 다 큰 사람들은 고삐를 당기 면서 와야 주인의 마음을 맞추어 갈 수 있습니다. 오래된 사람들일수록 이 시대의 말씀으로 온전하게 무장하고, 기도로 더욱 더 완전하게 무장하지 않으면 어디로 끌려갈지 모릅니다. 말을 듣지 않아요. 완전하게 주님의 고삐로 단단하게 채워져야 합니다. 주님에게 길이 들여져야 해요. 주님의 사람이 되 고, 온전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골짝 논을 갈고 저 골짝 밭을 갈면서 섭리역사 멋있게 펼쳐져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 꼭 기억하시구요. 아직도 세상이 바뀌기를 기도하십니까? 사탄이 멸해지기를 기다리십니까? 아직도 저들이 먼저 바뀌어 지기를 기대하십니까? 기대하면 그걸 기대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이 변화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걸 기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빠릅니다. 지름길입니다. 여러분, 꼭 한단계 한단계 오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주님께서 취하시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오직 우리의 몸과 마음입니다. 오직 나만 취해 가십니다. 그 날에는 주님의 재림의 날에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의 영 하나를 취해 가십니다. 고로 자기 하나 온 전하게 만들기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 놓으시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기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꼭 이 말씀 가슴에 새기시고 선생님 예수님께 “걱정, 근심일랑 가지고 오십시오.” 해야 합니다. 왜 그걸 가지고 계시냐고, 걱정하지 말라구, 주님 걱정하실 이유는 뭐냐고 해야 합니다. 주님은 “너 때 문에.”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내 걱정이었나요? 아, 그러면 걱정하지 마세요.” 하면서 그 걱 정을 뺏어 오세요. 오늘 기도함을 통해서 더욱 더 굳건한 마음으로 주께 기도함으로, “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거 내 꺼라면 얼른 주세요. 아니면 얼른 버리세요. 내가 굳건하겠습 니다. 내가 온전하겠습니다. 내가 지키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괜찮습니다.” 해야 합니다. 그 정도의 마음은 지켜 주시겠습니까? 저는 할 거예요. 끝까지 할 거예요. 절대 쓰러지지 않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쓰러지지 않아도 다리가 떠서 올라다닐지도 모를 거 같아요. 재미있고 힘나고 희망찬 섭리역사 주님과 알콩달콩 사랑하며 살아 가기에도 부족한 이 때입니다. 굳건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찬양, 이 시간 이 찬양을 부르고 싶습니다. 영광의 주. 영광의 주님 우리 가운데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사랑을 받으시고, 우리의 거침없는 사랑 에 이 외침의 소리를 들으시고, 또 큰 위로를 받으시고 기쁨 받으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찬양을 부 르겠습니다. 오늘은 10분 정도 뜨거운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삶이 온전하여서 주님의 걱정을 다 가져올 수 있을만한 그 찬양, 그 기도 꼭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영광의 주’ 찬양 마침기도)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사랑을 허락하시고, 그 사랑의 놀라운 능력으로 살아가 게 하심을 진실로 감사합니다. 주님, 섭리역사에 왔으면 이 역사의 보람은 무엇인지 인생은 왜 태어났으 며 어떤 목적을 이루며 살아야는지 정확하게 깨달아, 이왕이면 사람답게 주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뜻 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한 세상, 저렇게 살아도 한 세상 그러나 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대 로 우리의 영혼의 운명은 결정되어 이 세계 아니면 저 세계로 가게 됩니다. 주님 제발이나 그 창조의 뜻을 마음으로 영으로 깊이있게 깨닫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생각이 먼저이며, 주님의 사랑이 문제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섭리역사의 모든 자들이 되 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로 인해 세상의 모든 문제 인생 의 모든 문제와 우리의 갖가지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받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옵나이 다. 주님 사탄 이 모든 악한 역사 오직 하나님 역사만을 막고 그 뜻을 깨뜨리기 위해 역사하는 이 모든 것들을 어찌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주님 성장한 자요, 장성한 자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위력을 받은 가장 큰 사 랑의 신부들이 아니겠습니까. 신부들이 가장 어려울 때 예전에는 못 했으니까 이제는 진정코 미련없이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전에 못했던 것 가슴에 한이 맺혀 살아가는 인생 가운데 주여 때를 주셨사 오니 주님의 기회의 때는 정말 저 종도 아니요, 자식도 아니요, 이제는 신부의 삶으로 주님께 모든 것들 을 드릴 수 있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주여 미련없이 행하게 하시옵소서. 후회없이 행하게 하여 주시옵 소서. 이 기회를 뺏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 때문에 섭리사 때문에 이 귀한 자들 생명 때문에 걱정하시옵나이까. 선생님 그도 그 때문에 걱정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주여 신부된 자로서의 기도를 주님께 드리겠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우리로 인한 걱정은 내려 놓으시고 주여 기쁨으로 우리와 함께 혼인잔치 이루어 주시 옵소서. 주여. 진실로 간구하고 원하오니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사탄을 멸 하며 온전하게 주님과 일체되며 주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살겠사오니 그 걱정일랑 내려 놓으시옵소서. 아버지여 내가 온전하고 우리가 온전하오니 무슨 걱정이 있겠사옵나이까. 저들이 바뀌며 저들이 멸해지 기를 기다리겠사옵나이까.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 주님의 주관권에 거하게 하시며, 그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우리들이 되겠사옵나이다. 그러니 주님 제발이나 주님 마음을 놓으시며, 주님 기뻐하심을 받아주시옵시며, 오늘 섭리역사 이곳에 참여한 모든 자들 가운데 불같은 성령을 더하여 주시옵시며,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시며,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시며,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시며, 굳건한 사랑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항상 우리의 해결 책이 되어 주시며 주님께서 우리의 해결책이 되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와 뛰고 계시오니 이제 신 부의 역사 완전하게 미련도 없이 후회도 없이 이루는 이 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주님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 더하나되며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곳, 정말 저 기성과 저 세상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 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원하옵나이다. 주여 주 님의 이름이, 그 신랑되신 주님의 이름이, 신랑되신 그 주님의 사랑의 힘이, 신랑되신 주님의 은혜가 그 사랑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주님 보여 주시옵시며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힘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 인생되기를 원하옵고 원하옵나이다. 더 굳건하게 하여 주시옵시며, 더 뭉치게 하여 주시옵시며, 더 굳건하게 주님을 모시며, 사랑하는 인생 되게 역사하심이 크시옵소서. 주님. 사랑하는 선생님 그가 걱정이 어디 있겠사옵나이까. 모든 세상의 걱 정 혹여나 주님의 마음이 아프실까 걱정 섭리사를 이끌어 오시면서 우리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무너질 까 우리의 신앙이 무너질까 지금도 마음을 졸이시며 걱정하시는 선생님, 주님 선생님을 붙들어 주시며 그의 걱정일랑 날려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굳건한 우리들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그 걱정을 내려 놓으시고 다만 인생과 이 세상을 구원하며, 영휴거를 이루며, 주님을 만나며, 주님의 신 부로 거듭날 수 있는 귀한 생명의 말씀 날마다 더욱 더 담대하게 외칠 수 있도록 철장같은 능력과 권세 더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간구하고 간구하여 원하오니 이 시간 그에게 불을 더하여 주시옵시사 다른 모든 걱정 다 태워지게 하시며, 주님 이 시간 주님의 사랑으로 키운 모든 섭리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의 면류관이 되게 하시며, 주님의 면류관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섭리사에 말씀의 역사 성령의 역사 그 터전 위에 사랑의 역사가 더욱 더 완전하게 타올라 주님을 깊 이 꼭 맞이할 수 있는 모든 자들이 되도록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옵나이다. 마지막으로 간구하오니 육신 이 아픈 자, 영혼이 아픈 자, 마음과 영혼과 영혼이 병든 자에게 주님 손을 대어 주시옵시사 깨끗하게 나음 받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 주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사랑을 드리며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감사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오늘도 많이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성령의 역사가 더 기대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해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신랑되신 주님의 힘이 얼마나 위대 한지 더 나타내고 세상에 증거하는 자로 더 거듭나야겠습니다. 여러분, 더 힘내시고 굳건하시고 주님과 계신 선생님을 위로할 수 있는 성장하고 장성한 우리 인생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모두 주님께 감사함으로 마치겠습니다. 주님께 큰 박수 한번 드리겠습니다. 그냥 가기 아쉬우니까요. 돌아가실 분들은 가시면 되겠구요. 저는 요즘에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찬 양이 너무 좋아요. '절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하는 인생, 그런 마음으로 찬양부르시며 조심히 돌아가시 구요. 내일 새벽 주님과 깊은 만남 가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돌아서지 않으리’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