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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2.03.16 (금)

계시말씀

선포일
2012.03.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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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에, 인생 걸작 작성일 : 2011. 12. 31.(토) 새벽 4시 10분 ~ 5시 35분 작성자 : 이주인 (2011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저뿐 아니라 섭리인 모두가 몸부림을 치며 산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보 다도 더 선생님께서 처절한 몸부림 을 친 것을 깨닫고서 기 도했을 때 받은 말씀입니 다.) * 예수님 말씀 * 누구나 모든 인생들에게 동일한 삶을 허락하였건만 주어진 삶 속에서 인생 걸작을 만드는 자가 있는가 하면 인생 졸작을 만드는 자도 있다. 이는 몸부림의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내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행한 대로 갚아 준다.’라는 절대 법칙에 의해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운행하고 계신다. 고로 너희의 행함이 인생 운명을 좌우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몸부림의 여하에 따라 인생 걸작이 되기도 하며 혹은 인생 졸작이 되기도 한다.’라는 의미이다. 더 깊은 의미로 말하면 너희 인생들의 책임 분담 여하에 따라 인생 최고의 걸작이 되기도 하며 혹은 인생 최저의 졸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성삼위는 모든 인생들에게 동일한 축복을 허락했다. 더 잘하면 더 잘 될 수 있도록 너희 인생 모두에게 축복을 허락했건만 이를 깨우쳐 주는 자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혹은 깨우쳐 주었건만 온전히 깨닫지를 못하였거나 또는 게을러서 행하지 못함으로 축복을 받지 못하여 인생 졸작으로 끝나는 자들이 허다하다. 그렇지만 섭리인인 너희는 진정으로 깨우쳐 주는 선생을 만났으니 이를 온전히 깨닫고서 완전히 행하게 되면 인생 걸작이 되는 것이다. 또한 너희는 신부로서 청함을 받은 자들이다. 신부로 청함을 받은 자는 신부로 택함을 받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신랑으로부터 택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너희 신부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은 신랑에 대한 일편단심의 정결한 사랑이지 않느냐! 이를 위해서는 회개의 몸부림과 사랑의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곧 정결하게 사랑으로 예비하기 위해서는 회개와 사랑의 책임 분담을 진정 깨닫고서 완전한 행함의 몸부림이 있어야 이것이 가능한 것이다. 고로 선생이 너희를 연속적으로 깨우쳐 주는 단상 말씀에 집중 또 집중해야 한다. 선생은 이를 뼛속 깊이 깨달았기에 극한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한 번의 빠짐도 없이 말씀을 연속적으로 펜 끝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선생 또한 몸부림을 더한 삶을 연속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미 인생 최상 최고의 걸작이 되었건만 너희 모두를 인생 걸작이 되게 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몸부림의 연속 연속이다. 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나 또한 이천 년 전 매달린 십자가에서 이제껏 못 내려오는 이유가 선생과 동일한 입장이기에 그러하다. 내 십자가는 이 지구촌 최상 최고의 몸부림이었다. 또한 이 시대에 내 십자가와 같은 심정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선생 또한 동일하다. 너희를 나의 신부로 데려가기 위함으로 인한 최상 최고의 몸부림인 것이다. 고로 너희도 이를 온전히 깨닫고서 신부로서 택함을 받기 위한 몸부림을 행해야 된다. 또한 신부로서 최상의 사랑을 가진 자는 최상의 몸부림을 가능케 한다. 이를 통해 최고의 인생 걸작이 된다. 최고의 인생 걸작이란 곧 나의 정결한 사랑하는 신부로 온전히 갖추어져 나의 재림의 날에 휴거되어 나와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이 얼마나 소망스러우냐! 이러하니 지금의 몸부림에 힘겨워하지 말며 인생 걸작이 되는 것을 소망하여 매 삶을 감사함으로 몸부림에 몸부림을 더한 삶을 살도록 하여라. (주님, 어제 저녁기도 시간에 저에게 말씀하시길 인 생 걸작 이 저희의 몸부림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고 말씀하셨습니 다.) 그래, 너희의 몸부림만으로는 절대 인생 걸작이 될 수 없다. 선생의 명화(名畵)인 ‘몸부림에, 걸작’이라는 작품에서 보듯이, 그 소나무가 소나무 혼자만의 의지로만 몸부림을 쳐서 굽이굽이 돌아간 형상이 된 것이 아니다. 이는 창조주이신 성삼위가 극적인 환경과 여건을 통 해 그 소나무를 굽이굽이 돌아가게 한 것이다. 또한 그 소나무도 극적인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크나큰 생명력으로 곧 책임분담을 다한 몸부림을 쳤 기에 오묘하고 신비하고 웅장하고 멋있는 형상의 소나무가 된 것이다. 그 소나무는 선생을 상징하며 또한 그 소나무처럼 성장하고 있는 너희를 상징한 것이 아니냐! 고로 성삼위의 위대한 손길이 너희에게 늘 임하도록 기도로서 간구 또 간구해야 한다. 또한 성삼위의 몸 된 선생의 손길이 실질적으로 너희를 기르도록 선생에게도 간구해야 한다. 이는 참으로 중한 것이다. 누구의 작품이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하늘과 땅만큼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 않느냐. 고로 성삼위와 선생의 손길이 너희에게 늘 임하도록 간구 또 간구하여라. 이 또한 너희의 몸부림인 것이다. 이 몸부림이 너희의 개인사의 몸부림보다 더 크고 귀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인생 걸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2012년에는 너희 개개인 먼저를 관리하라고 일렀다. 이는 너희 개개인을 먼저 인생 걸작이 되게끔 하라는 것이다. 인생 걸작이 된 자들은 스스로가 본이 되어 다른 인생들도 걸작이 되게끔 할 수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고로 몸부림에 몸부림을 더한 인생들이 되도록 하여라. 즉 ‘몸부림에, 걸작’과 같은 인생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주님, 죄송스럽지만 몸부림이 참 쉽지가 않은 것 같 아요.) 그래 참으로 쉽지가 않은 것이다. 고로 좁은 문, 좁은 길이라 하였다. 생명길이 좁은 문, 좁은 길인 이유가 너희의 책임 분담을 다한 곧 몸부림의 길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누구나 갈 수 없는 험난해 보이는 길이지만 너희가 사랑하는 나와 선생이 같이 가면 쉬운 길로 보이는 것이다. 아주 협착한 좁은 문, 좁은 길을 통과해야만 하는 생명길이지만 나와 선생이 늘 너희와 동행하며, 이끌고 있으니 너희가 힘을 내어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것이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극한의 힘겨움이 있더라도 그 순간을 비상하여 확 뛰어넘으면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성으로 올라가기에 어느새 그 순간의 힘겨웠던 생명길이 더 쉬워진다. 고로 마침내는 좁은 문, 좁은 길을 통과하여 성삼위의 품에 선생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이것이 성삼위의 소망이며 선생의 소망이며 너희의 소망이지 않느냐. 선생, 이 소망으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주 협착한 좁은 문, 좁은 길을 너희를 위해 몸부림에 몸부림을 더해 뚫어 가며 또한 조금이라도 더 넓혀 가며 인도하고 있다. 그러니 저 사망길인 넓은 문, 넓은 길 곧 누구나 몸부림 없이 가는 그 길에 고개를 돌리지 말며 또한 그 사망길을 가는 어떤 누구의 유혹에도 미혹되지 말도록 하여라. 저 길은 몸부림 없는 편안한 길 같아도 그 끝의 결국은 사망 지옥길이다. 곧 인생 졸작이 되어 육도 영도 사망권에 속하여 마침내 성문 밖에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때는 돌이킬 수 없기에 너무도 참혹한 슬픔이 있게 된다. [누가복음 13장 24절~28절]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 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 답 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 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를 알고서 어떤 누구의 말도 듣지 말며 선생 통한 나의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여라. 이는 생명길로 인도하는 참 목자인 나의 음성이다. 오늘 몸부림에 대한 말씀을 전하였다. 이 말씀을 전한 것은 이제까지 너희의 몸부림을 알기에 그러한 것이며 또한 더 큰 몸부림을 원하기에 그러하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재림의 때는 이제 곧이다. 이를 알고서 몸부림에 몸부림을 더한 삶을 살아 인생 걸작인 곧 진정한 내 신부가 되어 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랑하며 살도록 하자. 너희의 사랑의 몸부림을 알며 또한 더 큰 몸부림을 원하는 주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