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2.03.20 (화)
이선진 분당 주좋은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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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마음을 이기는 핵심 비결은
중심을 중심하는 것이다
작성일 : 2012. 3. 20. 화
작성자 : 이 선진 (분당 주좋은)
[오랫동안 마음속의 이따금씩 발생되는
이성에의 호기심, 음욕에 대하여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것은
중심이신 성삼위와 선생님, 부흥강사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심정이 사그라져 있을 때
이러한 마음이 발생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늘과 깊은 기도를 하고 난 후에는
이러한 육성의 마음이 잘 안 생겼으나
깊은 소통을 하지 못한 날에는
이런 마음들이 발생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님, 중심을 향한 사랑, 열정, 심정이 죽어 있을 때
이성적 마음이 동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러한 것입니까?)
사랑아, 이에 대하여 잘 말해 줄 것이니
너는 잘 받아 적도록 하여라.
주 예수의 말이니라.
‘사랑’이라는 것은 ‘집중성’이라는 속성이 있다.
이는 한 곳에만 집중이 가능하며
만약 이 ‘사랑’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기 시작한다면
이는 종전과 동일한 위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또 다른 사랑의 대상체와
기존의 사랑의 대상체에는
동일한 집중력이 발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예를 들어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100이라고 한다면
두 대상은 반비례적으로 이를 나누어 가진다.
쉽게 말해서, 한 대상에 집중하는 만큼
다른 대상에는 집중하지 못하며
다른 대상에 집중하는 만큼
기존의 대상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시소로 비유를 들 수가 있겠구나.
한쪽이 높이 올라오면 다른 한쪽은 낮아져야 하며
두 쪽 다 높이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랑도 이러하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할 수 없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이러한 이치로
오늘 너희에게 말씀을 전해 줄 것이다.
먼저 섭리의 중심으로는
가장 근본자이신 성삼위 하나님이시요
그 다음이 나이니라.
또한 땅으로는 선생이요 선생이 보낸 자이다.
이는 따로 떨어뜨려서 보아야 하기도 하나
서로 일체가 되어 있기에
축소 확대로 하나로 보기도 해야 한다.
알겠느냐. 우리는 하나이다.
고로 분별력 있게 중심을 증거해야 할 때는
떨어뜨려서도 증거를 해야 하되
일체의 원리로 하늘을 사랑할 때는
영 중심자와 육 중심자
두 존재들 모두 사랑해야만 한다.
사랑아, 섭리가 왜 섭리이냐.
이는 곧 ‘온전한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기성은 왜 기성이겠느냐.
중심인 내가 있을지라도
온전치 못하게 중심을 섬기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육 중심자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섭리사에서 중심을 향한 사랑은
영 중심자, 육 중심자
두 존재를 향한 사랑을 다 포함한다. 알겠느냐.
(주님. 진정 맞습니다.
영이신 하나님, 주님만 생각하며
사랑해 드려야지 했을 때는
이상하게도 분명히 제 마음에
‘사랑의 심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명들이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호기심이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대상 안에
육 중심자이신 선생님과 부흥강사님까지 넣어서
사랑해 드리고 기도해 드렸을 때
신기하게 이성에 대한 호기심, 음욕 발생률이
현저하게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
네 마음이 온전히 중심을 향한 사랑이 가능한 이유는
첫째는 사랑해 드려야 할 중심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며
둘째, 그 중심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주님, 영 중심자이신 하나님, 주님 말고
육 중심자이신 선생님, 부흥강사님을
사랑해 드리고 집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육을 가진 자들이니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실천으로 사랑해 주는 것이다.
둘째, 그들과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니라.
이는 육적으로 생각하여
그들의 스케줄과 완전히 똑같은 스케줄로
살라는 말이 아니라
삶 가운데에 온전히
나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니라.
셋째, 영 중심자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육 중심자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라.
그래야 육 중심자들도 사랑하는 것이 되어
온전한 사랑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육 중심자들을 향한 사랑과 심정도 생기므로
세상에도, 사탄이 주관하는 육적 이성 사랑에도
마음이 안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알겠느냐.
(아멘. 알겠습니다. 주님.
또한 깊은 기도, 소통을 하였을 때는
어째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 음욕이
잘 발생되지 않은 것인가요?)
깊은 기도가 무엇이냐.
(중심을 중심한 기도이며
중심과 똑같은 심정을 받아서 하는 기도이며
중심을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하는 기도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였을 때 정말 기도가 더욱 깊어지고
차원이 높아지는 경험을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닙니다.)
맞다.
섭리인들 중 ‘깊은 기도’라는 말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는 자들이 많은데
‘깊은 기도’라는 말은 곧
중심을 중심하여 중심과 똑같은 심정을 받아
그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깊은 기도이다.
영적 체험, 환상, 계시 등 이와 같은 것들이
‘깊은 기도를 했는지 안 했는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오직 중심을 중심한 삶을 살며
중심을 중심한 기도를 하려고 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깊은 기도’이다.
또한 한 주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주일, 수요, 잠언 말씀들을
나 예수와 선생 대하듯 귀히 여기고 상고하며
그 말씀들을 중심으로 해서 하는 기도를 말한다.
‘깊은 기도’란 이와 같이
중심을 중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니
그에 대한 응답으로
나는 너희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너희가 더욱 수월히 중심을 중심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워 주며 육성을 비워 준다.
그러니 자연스레 이성적인 마음과
호기심들도 같이 비워져
더더욱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겠느냐.
깊은 기도 또한 중심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 보고
그 중심을 중심하는 행위이니
결국은 이성과 음란한 마음에 대적하여 승리하는 비결은
‘중심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 보고
그 중심을 중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알겠느냐.
이와 같이 섭리인들 모두가
중심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보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며
중심을 중심하는 삶과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애원하노라.
안녕. 중심을 너희에게 보낸 주 예수 그리스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