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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말씀2012.03.20 (화)

김선명120324 마산주사랑 청년부 음성

선포일
2012.03.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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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구 작성일: 2012. 3. 21.(화) 작성자: 김선명(마산 주사랑교회, 청년부) [ 주님께서 이 시대 역사와 선생님에 대해 더 정확하고 명확 하게 알고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저에게 주신 계시와 지금 이 시대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새 말씀을 바탕으로 하나하나씩 계시를 조립하게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편지하시기를 ‘40시간 이상 기도하지 않 으면 깊은 계시가 아니다.’하셨는데, 이 계시는 주님께서 무 려 6개월을 준비시키며 하나씩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6개월간 준비시킨 계시를 2012년 3월 20일자정에 2시간 동안 순간 받게 하셨습니다.] * 성자 예수님 말씀 * 1. 하나님의 창조는 정확한 목적이 있다 전능하신 성삼위의 태초부터 시작된 모든 창조사역은 정확한 목적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성삼위께서 태초부터 계획하신 목적에 따라 일점 오차도 없이 순리적으로 점진적으로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 세계는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절대자에 의해 예정되고 계획되어 실행되어진 창조역사다. 창조는 한 점에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고로 창조 과정은 순서가 있다. 전능한 성삼위께서는 먼저 비조계를 만드시고, 그 다음 피조계를 만드셨다. 인생들은 영계에 수천억의 비조인이 있음에도 육계와 인생들을 왜 창조했냐고 반문하지만 비조계는 창조목적 이루기 위한, 즉 인생들을 위해 창조되어진 수단과 같은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목적이 아니다. 2. 창조목적은 무엇인가? 성삼위의 창조목적은 삼위의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체를 얻기 위함이다. 절대적인 사랑이라 함은 변하지 않는 사랑, 상하관계의 종속적인 사랑이 아닌 서로 대등하며 자신보다 상대를 더 사랑하는 조건 없는 사랑을 말한다. 사랑의 근본인 삼위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인생들도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반응하고 소통하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인생들은 하나님께 반문한다. 왜 인생들을 그렇게 사랑한다 하시면서 죄를 만드시고 지옥을 만들었냐고... 처음부터 사랑하게 성삼위를 사랑하도록 창조하시면 안 되냐고... 그러나 처음부터 사랑하게 만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인생들은 사랑의 개념을 잘 알아야 한다. 사랑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자유의지다. 사랑은 상대와 상대가 서로 자유에 의한 심정의 교통이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자유의지가 없는 죽어 있는 상대와는 진정한 사랑이 성립이 안 된다. 또한 자유의지에 의한 감동의 사랑이 아니고 한쪽의 일방적인 강압에 의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요, 폭력이요 상처다. 고로 삼위께서는 인생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삼위와 똑같은 형상으로 지으신 것은 그 외형만이 아니라 그 성정도 마찬가지다.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다. 그리고 또 하나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동등한 입장에서의 소통이다. 비유컨대, 사람이 나무를 사랑하고 사람이 동물을 사랑하고 성장한 자가 온전히 성장하지 못한 어린 자를 사랑하면 그 사랑은 진정한 완전한 사랑의 희열을 느낄 수 없다. 고로 삼위께서는 인생의 영을 완전히 휴거시켜 삼위와 동등한 형질을 이룰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바로 완전하고 진정한 사랑의 교통을 위함이다. 3.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왜 육계가 필요하고, 육신이 필요한가? 인생들은, 굳이 육계와 육신이 아니더라도 영계에서 영으로 창조목적을 이룰 수는 없냐고 반문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룰 수 없다! 영계라는 곳은 육계보다 수천만 배 예민한 곳이다. 영계와 영의 성질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생각실상의 세계다. 바로 생각이 실체가 되는 곳이다. 영계는 한 번 잘못된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실체가 되어 바로 자신의 영체에 영향을 준다. 비유로 말하면, 영계에서는 한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육계에서는 실제 그 여인을 탐하는 것과 같다. 고로 영계는 온전하지 못한 영체는 존재할 수 없다. (영계의 실상을 주님께서 보여 주셨습니다. 한 불온전한 영이 음란한 생각을 하자 그 생각이 바로실체가 되어 자신을 괴롭 히기 시작했고, 온전히 성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지 못하 고 그 음란한 주관권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다시 주님 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루시퍼를 보아라. 그는 잘못된 단 한 번의 생각으로 천사장에서 사탄이 되어 버렸다. 현재도, 루시퍼가 아닌 천인들도 육계의 섭리인들이 타락하는 것처럼 타락한다. 영계는 생각을 돌이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고로 영계는 완전한 자만 존재할 수 있다. 영계에서 완전히 존재하는 자는 오로지 성삼위뿐이다. 이런 완전한 존재의 사랑의 대상체, 즉 창조목적을 이룬 변하지 않는 사랑을 만들어내는 곳이 육계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이 오는 곳이 천상천국이다. 고로 영이 타락하지 않는 곳은 바로 천상천국뿐이다. 낙원급의 영도 타락한다. 낙원 갔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된다. 그곳에서도 수많은 영들이 타락하여 지옥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상천국 가는 것도 너무 힘들다. 고로 육신 가지고, 이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온전히 자신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육계는 영계만큼 예민하지 않다. 고로 생각부터 완전히 만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육계라는 곳을 만드시고 인생들의 육을 두고 그 육 안에 인생들의 영을 가두고 온전히 성장시켜 다시 영계로 데려오는 것이다. 육신이라는 기둥에 영을 묶어두고, 또 육계라는 한계가 있는 공간에 육을 가두어 두어 생각이 곧 실체가 되는 것을 막았다. 육신에 속한 생각이 영에게 영향을 주지만, 영계처럼 실체가 되어 버리지는 않는다. 또한 생각이 잘못되어 잘못된 행실을 하여 영에게 영향을 주기 전에 다시 바로잡을 수 있다. 고로 육신에 영을 가두고, 그 생각이 온전해지는 육적 휴거를 통해 그 영을 성장시킨다. 인생 100년, 즉 육신이 살아 있을 동안은 육을 통해 그 영이 보호를 받는 것이다. 마치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미의 태속에서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4. 천사와 사람의 차이 천사와 사람을 비유로 말하면, 천사는 마치 왕 앞에 존재하는 장수와 같다. 사람은 마치 왕의 나라에 사는 아리따운 여인과 같다. 아무리 왕이 자신의 장수를 사랑해도 서로 연분 맺고 애인 같은 절대적인 상대의 사랑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인은 아무리 미천한 곳에 살았어도 왕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그 심정과 일체된다면 왕에게 간택되어 왕의 애인과 신부로서 상대의 사랑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천사와 사람은 그 태생이 다른 것이다. 천사도 창조될 때 삼위와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 자유의지도 그 태생이 하나님을 섬기며 삼위께 받은 인생의 창조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한 사역, 즉 인생들을 지키며 섬기는 영으로 그 한계 내에서 주어진 것이다. 마치 장수가 자유의지가 있다 해서 자신의 의지로 왕의 신부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천인들과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삶의 과정이다. 사람은 천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 있다. 인생들의 육신을 통한 삶의 과정은 성삼위의 정말 귀하고 귀한 선물이다. 천인들의 영계의 삶은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기 위한 삶의 과정이 없다. 성경을 보아라. 천사들은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 그들은 삼위의 영적 혈통 그대로 창조되어진 삼위와 같은 혈통의 형질이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이 육계는 인생들이 삼위의 사랑을 깨우칠 수 있는 특별한 과정이 있다. 인생들의 영은 전능하신 성삼위에서 났지만, 그 육신은 또 다른 부모가 있도록 창조했다. 부모도 부모 이전에 자녀의 과정을 거치고, 또 이 과정을 거치고 서로 결합하여 일체가 되어 부모가 되고 또한 자녀도 낳는다. 또한 삶의 과정 중에서 사람과 사람끼리 어우러져 이 과정을 통해 희·노·애·락을 거치며, 이 과정 중에 하늘말씀을 접하고 삼위가 가지고 있는 근본의 성정과 심정을 배우고 깨달으며 바로 삼위와 같은 성정으로 점점 더 성장하며 사랑으로 일체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느냐?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 심정 안다고... 이와 같이 인생들은 육의 삶의 과정을 통해 전능하신 삼위의 그 사랑의 심정을 깨닫고 가는 것이다. 선생도 그 삶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예수의 심정을 깨닫고 바로 나 예수의 육신이 되어 인류를 사랑하며 이 섭리길 가는 것이다. 인생들의 이런 삶의 과정을 천인들은 절대 가져 볼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이다. 고로 천인들은 육계에서 살아보지 못한 이상 절대적으로 성삼위를 신부의 상대체로서 사랑의 감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이는 마치 왕궁에서 평생 살았던 자가, ‘빈민가에서 사는 자가 밥이 없어 굶어죽었다’하면 ‘밥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 왜 죽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 하겠다. 5.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한 핵심, 섭리역사 우주를 창조한 것은 지구를 위한 것이며, 지구를 창조한 것은 바로 인생들을 위한 것이다. 또한 유구한 인류의 문명의 역사는 바로 6천 년 전 창조목적의 핵심 즉 섭리역사를 위해 시작하였다. 종교역사,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전 먼저는 인류의 혼적 차원을 먼저 성장시켰다. 하나님께서 한 인생을 인도하시며 창조목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아라. 한 인생이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먼저는 육이 성장한다. 그리고 그 육이 성장함에 따라 혼적인 차원의 지, 정, 의가 발달하고 온전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영적인 복음이 전해져 영이 성장하고 결국은 성장된 영이 성삼위와 소통하며 자신의 혼과 육을 주관하며 삶 속에서 지상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부모의 태속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을 섬기고 믿으며 살아갈 수 없다. 육과 혼이 성장된 바탕 위에 영이 성장하여 결국은 영이 혼과 육을 주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 인류도 한 개인과 같은 방식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한 개인을 확대하면 온 인류가 되는 것이다. 온 인류도 먼저는 육적 세계와 혼적 세계를 성장시킨 바탕 위에 영적인 역사를 시작하여, 영적인 세계가 육과 혼의 세계를 주관하여 인류문명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인 것이다. 6. 섭리역사의 절대예정 섭리역사는 7000년으로 절대 예정되어 있다. 구약 4000년, 신약 2000년 그리고 성약 1000년이다. 성삼위의 창조사역의 첫 시작부터 이 역사는 절대적으로 예정되어 있었고 각 시대의 역할과 한계와 소명도 정확하게 예정되어 있었다. 섭리역사 7000년은 정확한 목적성에 의해 한치 오차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섭리역사 7000년이 온전히 이루어져야 비로소 삼위가 예정하고 계획한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코 구약 홀로 목적을 이룰 수 없고, 신약 홀로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또한 성약 홀로 목적을 이룰 수 없다. 단계별로 역사가 진행되며 전역사가 후역사를 지탱하며 온전히 나아갈 때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구약은 신약을 위해 존재하고, 신약은 성약을 위해 존재한다. 섭리역사를 농사에 비유할 수 있다. 농부가 한 겨울 동안 봄을 손꼽아 기다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또한 여름이면 그 무더운 날 물을 대고 밭을 관리하는 것은 바로 가을 한 철 결실을 맺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고, 물을 대고 밭을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 없다. 단지 목적을 위한 수고의 과정이다. 이와 같이 섭리역사도 그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농사가 결실을 맺기 위해 각 계절의 과정을 거치며 계절마다 해야 할 특별한 소명이 있는 것처럼, 섭리역사도 목적을 위해 각 시대마다 특별한 소명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지한 인생들이 이런 점진적인 차원성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자신들이 속한 역사가 온전한 목적을 이룬 역사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으니 새로운 역사가 와도 새 시대와 중심자를 핍박하여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7. 섭리역사 이전의 세계 섭리역사 시작되기 전의 인류의 역사는 마치 계절로 비유하면 겨울과도 같다. 영적인 겨울이었다. 이 영적인 겨울에는 모든 영적인 땅도 얼어 있었기에 그 어떤 복음의 씨도 뿌리지 못했다. 이때의 인생들은 성삼위의 말씀이 없이 오직 영적인 본능으로만 존재했던 세계였다. 영적인 본능으로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신성을 보고 만물을 섬기고 살았던 시대였다. 인류는 원시신앙에 머무르며 그들에게 주어진 영적인 본능을 따라 종교를 만들어 갔다. 인생들은 자연만물을 섬기고 모시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자신들의 상상으로 종교를 만들었다. 현재 존재하는 이방의 모든 종교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영적인 겨울은 인생들이 전능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영성을 깨우치며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해 왔던 시간이다. 8. 섭리역사의 시작 성삼위께서는 이 영적인 겨울을 서서히 끝내가며 봄을 준비했다. 바로 하늘종교의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인류를 성장시킨 것이다. 고로 종교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자 성삼위께서는 드디어 하늘 섭리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태초부터 7천 년 역사로 예정되어 있었다. 섭리역사 구약과 신약과 성약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이 역사는 그 때에 맞게 한 목적, 즉 결실을 위해 그 시대마다 해야 할 소명과 그리고 시대의 영적 수준이 있는 것이다. 마치 구약은 밭을 가는 시기요, 신약은 씨를 뿌리고 성장시키는 시기요, 성약은 결실을 맺어 추수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섭리역사는 항상 그 시대에 맞는 수준과 역할이 명확하고, 그 수준과 역할에 맞는 사명자의 소명도 명확한 것이다. 섭리역사도 최종의 목표를 위해 항상 점진적으로 준비하고 예비하는 것이다. 9. 구약의 역할과 아담의 사명 성경의 신앙의 시조인 아담도 하늘에서 홀로 떨어진 자가 아니다. 섭리역사 이전 섭리역사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준비하는 문명의 터전에서 태어난 자가 아담이었다. 바로, 섭리역사 이전 가장 영성이 강하고 문명 수준이 높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난 자다. 그곳은 인생들의 영적 본능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고, 또한 다신교가 성행했다. 그 중 가장 발판이 되는 혈통을 통해 아담을 낳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통해 섭리역사의 첫 시작이 이루어졌다. 바로 구약의 시작이다. 전능하신 성삼위께서는 이 아담을 통해서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영적인 봄이 찾아왔으니 녹은 영적인 땅을 뒤엎고 그 땅 위에 씨앗을 뿌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즉 씨 뿌리기 전 밭을 가는 역할이었다. 아담은 전능하신 성삼위의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의 역사를 담당할 민족을 이루어가는 신앙의 조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좀 더 핵심적으로 말하면, 아담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을 믿는 한 가정이 한 민족을 이루고, 바로 신약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 발판 위에 나 예수가 강림해서 신약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담이 타락하니 역사가 뜻이 아닌 길로 갔고, 하나님과 인생들의 영적인 소통이 끊어져 버리고 육계는 하늘의 뜻이 아닌 인생들의 인본주의가 팽배하기 시작했다. 섭리역사 큰 틀에서 보면 아담은 나 예수의 육적 강림을 준비하는 자였다. 아담은 섭리노정에 맞게 신앙의 시조로 세워져 유대민족에게 전능한 메시아의 강림을 준비시킬 구약의 가장 큰 중심자였다. 더 핵심적으로 말하면 구약 4000년의 기간은 전능한 성자 본체의 육적 강림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자신의 소명을 확실히 행하여 섭리 초석을 제대로 세웠다면 유대민족은 구약 4000년의 기간 동안 아담 이후 연속된 선지자들을 통해 온전히 영적으로 성장하여 성삼위의 원래 계획된 나의 육적 강림을 온전히 맞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십자가의 길을 갈 필요도 없었고 유대민족도 고통과 좌절 속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유대민족은 그 시대 주관권의 중심 국가가 되어 신약역사 촛대가 이방 나라 로마로 넘어가지 않고 로마가 누렸던 모든 권세와 영화를 누리며 그 육적 발판을 통해 나의 영적인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졌을 것이다. 역사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여 유대민족 모두가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니 그 틈으로 사탄이 들어왔고 또한 영적으로 무지하니 영, 육을 구분하지 못해 나 예수의 육적 강림을 맞지 못한 것이다. 10. 신약의 시작 신약은 성자 본체가 예수라는 육신을 통해 이 땅에 강림하는 시기다. 신약의 역할을 농사로 비유하면 바로 씨를 뿌리는 시기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유대 민족의 텃밭 위에 바로 성삼위의 인생들에 대한 사랑의 씨를 부리는 기간이 신약인 것이다. 신약도 인생 창조목적을 위한 과정의 역사다. 결코 신약이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기성들은 신약 이후 성약이 없이 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신약’이라는 과정을 거쳐 반드시 태초부터 예정된 성약 안에서 나의 재림이 이루어짐을 명심해야 한다. 11. 예수의 역할 예수는 신약 때 전능한 삼위 중 한 명인 성자 본체의 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자 본체가 이 땅에 삼위의 인생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 즉 수단이었다. 삼위는 영이고 또한 인생들은 육으로 존재하니 영을 육을 통해 나타내지 않으면 인생들은 알 수가 없다. 고로 예수라는 육신을 통해 삼위의 존재와 사랑을 인생들에게 보였다. 예수라는 육신은 나의 전능한 본체의 영을 담기 위해 구약 4천년간 그 시대의 절대적인 의로운 혈통을 통해 만들어졌다. 12. 성자본체와 예수의 관계 신약은 그 소명이 전능하신 삼위의 하늘사랑의 씨를 이 땅 가운데 뿌리는 것이라 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일체 된 성자 본체가 예수라는 육신에 직접 강림한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한 인생이 영과 혼과 육이 하나로 조화가 이루어져 한 존재가 되듯이 나 성자본체가 예수라는 육신에 속한 영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체 되어 이 땅에 하늘사랑의 씨를 뿌렸다. 고로 예수라는 육신은 바로 성자 본체의 직접적인 육신이 되어 메시아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서 공생애를 펼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 사역을 보고 믿고 따르는 자에게 그 시대에 해당되는 구원을 이루어 준 것이다. 하지만 그 구원은 최종의 구원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구원인 것이다. 13. 왜 성자 본체는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왔나? 인생 창조목적이 무엇이냐? 바로 삼위의 절대적인 사랑의 대상체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사랑이란 자유의지를 통해 무력이 아닌 스스로의 감동으로 서로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라 했다. 바로 하나님과 성령님이 성자본체와 일체 되어 예수라는 육신을 통해 이 땅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인생들은 아직도 신이라는 존재를 두려움의 존재, 막연한 권능과 전지전능의 존재로 모시고 섬기는 수준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삼위께서 예수의 육신을 통해 이 땅에 강림하여 인생들과 똑같은 한계와 조건 속에서 그 처절한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생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는 절대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부어 주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들이 신이라는 전지전능함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조건 없는 사랑에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감동하여 진정한 사랑으로 반응하게 하기 위함이다. 인생이 삼위를 신으로만 섬기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사랑의 대상체로 보게 하기 위함이다. 14. 신약의 역할과 한계 신약의 구원급은 너희가 배운 대로 아들급의 구원이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신약은 삼위가 이 땅에 뿌린 씨가 결실 맺은 것이 아니라, 그 결실을 맺기 위한 과정의 역사다. 신약 2000년은 삼위께서 예수라는 육신으로 이 땅에 뿌린 사랑의 씨를 키우며 관리하는 역할이다. 나 예수가 이 땅에서 성자로서 공생애를 폈고 인생들은 그 공생애를 보고 깨닫고 나를 메시아로 믿고 따랐다. 그리고 나의 제자들도 그 사랑의 씨를 뿌리는 것을 도왔다. 결코 나의 제자들이 온전한 목적을 이룬 결실이 아니다. 역사의 과정 중에 나를 믿고 나의 사역을 도왔던 동역자의 역할이었다. 고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급의 구원을 허락했다. 그리고 나의 제자들이 그 사역을 성경에 기록했고 2천 년간 신약인들은 그 성경을 보고, 내 공생애 때 육신으로서의 사역을 보며 나를 경외하며 따랐다. 고로 신약인들은 결코 내가 뿌린 사랑의 씨가 결실 맺은 것이 아니다. 신약인들은 나 예수를 죽음에서 부활한 전능자로만 인식하고 신약주관권 안에서 내가 뿌린 사랑의 씨를 관리하며, 아들급의 구원을 받고 성약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과정의 역사에 속한 자들이다. 15. 성약의 시작과 역할 2천 년 신약역사가 끝나고 드디어 절대적으로 예정된 성약역사가 시작되었다. 신약역사가 삼위의 사랑의 씨를 뿌리고 그 씨를 키우며 관리하는 기간이었다면 성약은 그 씨가 결실 맺는 기간이다. 신약 때 뿌린 내 사랑의 씨가 드디어 싹을 틔워 자라는 시기가 바로 성약이다. 신약 성경의 핵심은 바로 나의 재림이다. 4복음서의 핵심은 바로 내가 이 땅 가운데 다시 온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준비된 자들을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가듯이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는 약속이다. 성약은 계절로 따지면 바로 가을과 같다. 가을은 뿌린 씨가 열매 맺어 가을 햇볕에 건강하게 알곡으로 바뀌는 기간이다. 그리고 가을 안에 추수의 때가 있다. 바로 성약 안에 준비된 생명을 추수하듯 나의 재림 때 거두어가는 것이다. 성약은 바로 나의 재림을 마지막으로 준비시키는 육적 휴거를 담당하는 역사요, 그리고 나의 재림이 이루어지는 역사요, 나의 재림이 끝나면 재림을 맞은 자들이 다시 한 알의 밀알 되어 나의 신부들을 천 년간 만들어내는 역사다. 16. 2천 년 전 예수와 선생의 차이 신약 때 성자본체의 육신으로 쓰였던 예수와 지금이 시대 나의 육신으로 쓰이는 선생은 동일한 점이 있다. 말 그대로 전능한 삼위와 일체 되어 성자 본체의 육신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차이가 있다. 2천 년 전 성자 본체의 육신인 예수는 창조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한 과정의 역사 가운데 수단의 역할을 했다. 바로 섭리역사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한 삼위의 하늘사랑을 이 땅 가운데 뿌리는 역할이다. 고로 성자본체의 영이 그 육신에 임해서 하늘사랑을 뿌렸다. 고로 그 육신에 직접 성자 본체의 육신이 임하였고, 공생애 3년간의 육신의 모든 행위를 그 육신에 속한 영, 혼을 통해 성자 본체가 모두 가져갔다. 고로 인생들은 성자본체의 이름을‘예수’라고 알고 있다. 성자본체가 이 땅에 자체 육을 쓰고 강림한 것은 신약 딱 한 번뿐이다. 실상 2천 년 전 나의 육적 공생애에서의 핵심은 성자본체의 지상강림이다. 육을 통한 강림, 그 육도 죽으면 끝이기에 근본은 성자본체의 영이다. 하지만 기성은 그것을 모르고 육신이 다시 살아나 육신이 다시 온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진정한 창조목적의 구원은 신약 때 본체의 육신인 예수를 통해 그 근본의 성자 본체와 사랑으로 일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은 2000년 전 예수라는 육신과 어떻게 다른가? 바로 선생은 예수라는 나의 육신처럼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선생 자체가 섭리역사를 통해 이루어낸 목적이다. 창조목적을 이루기 위해 삼위가 신약 때 뿌린 사랑의 씨가 이 땅에서 결실 맺은 것이 바로 선생이다. 하늘사랑의 씨, 즉 하늘의 그 형질이 이 땅에서 뿌리내려 하늘과 같은 형질로 성장하여 인생 창조목적, 즉 하늘과 애인 관계가 된 존재다. 고로 선생은 2천 년 전 예수라는 육신에 속한 영, 혼을 통해 내 본체가 임한 것과 달리 선생 고유의 영, 육이 존재하며 바로 사랑으로 나와 성자본체와 일체 되어 부부처럼, 애인처럼 나의 육신으로 사용되어지는 자다. 고로 선생은 나의 육신이 되어 마치 계절의 가을과 같은 성약역사에서 마지막 추수를 준비하는 자, 즉 나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고로 선생을 이렇게 표현한다: 1) 이 시대 신부로서의 첫 열매 삼위가 구약 때 밭을 갈고 그 밭 위에 신약 때 뿌린 사랑의 씨가 성약 때 첫 결실을 맺은 자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은 삼위가 뿌린 사랑의 씨앗에서 처음으로 사랑의 신부로서 열매 맺어, 이제는 선생의 그 품종을 복음을 통해 세상에 뿌리며 선생과 같이 세상의 인생들을 삼위 앞에 사랑의 신부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신부의 씨를 세상에 뿌리는 자가 된 것이다. 신약인들은 성약인들과 그 태생이 다르다. 신약인은 내가 씨 뿌리는 사역에 동참하고 관리하는 일꾼과 같고, 성약인은 내가 직접 뿌린 하늘씨가 이 땅에서 뿌리내려 하늘 근본 성정으로 결실 맺은 자다. 선생은 기성인들처럼 나를 믿고 구원받는 차원을 떠나 내가 뿌린 사랑의 씨가 싹을 틔운 자다. 바로 삼위가 이 땅에 뿌린 하늘씨가 땅에서 뿌리내려 열매 맺은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 마치 한 선각자가 타국의 무지한 인생들을 위해 자국의 귀한 씨를 가져다가 타국의 땅에 심고 그것을 잘 관리하여 열매 맺게 하여 타국의 모든 인생들이 혜택받게 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선생이 이와 같다. 무지한 인생들을 위해 성삼위께서 이 땅에예수라는 육신을 통해 하늘씨, 사랑의 씨를 뿌리고 그것이 이 땅에서 열매 맺어 모든 인생들이 혜택 보게 하는 것이다. 고로 어찌 선생의 그 영의 형질이 땅에 속한다 할 수 있겠느냐? 고로 선생은 너희 인생들과 그 영의 형질이 틀리다. 단 너희와 같이 육의 형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영의 형질은 하늘씨에서 시작되었고, 그 하늘씨가 너희 땅의 인생들을 위해 이 땅에서 열매 맺었음을 알아라. 이것이 핵심이다. (주님께서‘왕별 10개’라고 하시며 정말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2) 주님의 육신 선생을 왜 나의 육신이라 하느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가을 안에 추수의 때가 있다. 바로 성약 안에 나의 재림이 있다. 선생은 성약역사 나와 사랑으로 일체 된 처음자로 나의 재림을 위해 인생들을 재림의 추수에 합당하게 준비시키는 자다. 바로 나 성자본체와 사랑으로 일체 되어 신부로서 첫 열매가 되어 내가 원하는 시대 말씀을 가르치고, 마지막 성경에 약속된 나의 재림을 준비시키는 사명을 하는 자다. 3) 사랑의 조상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처음으로 절대적인 믿음의 조건을 세움으로써 그 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도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권세를 주었다. 선생도 마찬가지다. 선생도 이 시대 사랑의 첫 열매로서 사랑의 신부의 시조가 된 것이다. 선생은 구약과 신약의 발판 위에 삼위의 하늘의 씨가 이 땅에서 잉태된 존재다. 바로 그 영적 혈통이 다르다. 신약인들의 영적 혈통이 땅이라면 선생의 영적 혈통은 하늘이다. 고로 선생부터 시작하여 기성인과는 전혀 다른 영적 혈통을 이 땅에 퍼트렸다. 고로‘사랑의 조상’이라 말하는 것이다. 참 감람나무에 돌 감람나무를 접붙이듯 선생에게 접붙인 기성인들도 새로운 사랑의 혈통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인생들은 선생을 표상으로 보고 따르며 선생과 같이 하면 신부로서 삼위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사랑의 조상이 되어 신부역사를 낳은 자가 선생인 것이다. 4) 온 인류의 중심인물 선생은 섭리사의 중심인물만이 아니다. 선생은 온 인류의 중심인물이다. 선생은 온 인류가 이루어 가야 할 창조목적을 이루고 인생들 앞에, 그리고 온 영인들 앞에 표상으로 세워질 자다. 고로 선생은 섭리사뿐만이 아니라 온 인류의 표상, 중심인물이 되는 것이다. 5) 성약의 문 한국 민족을 통해 보자.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다. 이 사계절 동안 농부가 농사를 지어 씨를 뿌릴 수 있는 기간은 한 번뿐이다. 또 거두어들이는 것도 한 번뿐이다. 씨 뿌린 것이 탐탁지 않다고 씨 뿌릴 때도 아닌데 여름, 가을, 겨울에 아무 때나 계속 씨를 뿌릴 수 없다. 그리고 그 뿌려서 열매 맺은 것도 가을에 한 번 거둘 수밖에 없다. 섭리역사도 이와 같다. 섭리역사도 마치 겨울, 봄, 여름, 가을과 같다 하지 않았느냐? 성자본체가 예수의 육신을 쓰고 사랑의 씨를 뿌릴 수 있는 것도 7천년 섭리역사 중 신약 한 번뿐인 것이다. 어떤 자들은 성자본체가 또 다른 육을 통해 오면 되지 않나 하지만 성약 7천년 기간 중 육신 통해 삼위의 사랑의 씨를 뿌릴 수 있는 기간은 한 번이다. 고로 내가 신약 때 뿌린 씨가 성약 때 선생으로 결실 맺고, 선생이 첫 열매 되어 수많은 신부의 열매를 맺었으니 이제 때가 되어 나의 재림, 즉 추수도 이루어진다. 고로 7천 년 섭리역사 가운데는 가을과 같은 성약 때 추수와 같은 나의 재림은 한 번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법칙이다. 고로 7천 년 섭리역사 가운데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재림이 지나간 후에 온 생명들은 이제 선생이라는 성약의 문을 통해 하늘 앞에 나아오면 된다. 마치 추수한 곡식의 밀알이 다시 땅에 떨어져 결실을 맺듯이, 선생이 나의 재림 후 완전한 기준가가 되어 온 영계와 육계의 표상이 되어 천 년간 성약의 문이 되어 인생들을 신부급의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다. 그 문을 통해서만 성약급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알아두어야 한다. 마지막 천사장 나팔 불 때 나를 맞아 휴거된 자들과 그 이후에 구원받은 자들은 같은 성약급이라도 그 구원의 급은 틀리다. 이 시대 나의 육신 된 선생과 함께하며 마지막 나의 영적 재림을 맞아 완전 휴거된 자들이 성약에서 가장 높은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이는 마치 2천년 전 나의 육적 공생애를 같이한 나의 제자들이 2천년 신약시대에서 가장 높은 급의 구원을 이룬 것과 같다. 실상 영계에 가 보면 신약 때 내 육적 공생애를 같이 한 자들이 신약구원의 최고점에 올라가 있다. 17. 사위기대(사위일체) 섭리역사 육적 휴거가 이루어진 자들은 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때만 주는 특별한 성령으로 그 영의 형질이 변하게 된다. 바로 땅에 속한 자들이 온전히 성삼위와 같은 형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하늘의 근본체 성부, 성령, 성자의 삼위와 이 근본의 상대체인 선생을 중심한 땅이 하나가 되어 사위기대, 즉 사위의 일체가 이루어진다. 나의 재림 이후 육으로 존재하는 인생들도 그 영이 하늘 영이 되어 이 땅에 하늘의 모든 문화와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지상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사위기대다. 사위기대란 바로‘온전한 천년왕국의 시대’라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다스리는 시대라는 것이다. 18.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어떤 자들은 반문한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신부역사가 진행되어 구약, 신약, 성약이라는 단계가 필요했을까?’라고.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계적인 섭리역사 7천 년의 역사는 절대예정이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구약과 신약과 성약의 역사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또한 나 예수의 육적 강림과 또 이 시대 선생도 태초부터 예정된 대로 시대의 사역을 감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여 변한 것이 있으니 바로 인생들과 하늘의 위치다. 원래 아담은 선생에게 배운 대로 하늘의 사랑의 대상체로 택함받았다. 그가 타락하자 그는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쫓겨났고, 인생들도 아담 안에서 종처럼 삼위를 섬겼다. 고로 시대마다 인생들의 위치를 복직시키며 역사를 폈다. 그러나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구약, 신약, 성약으로 단계별로 나눠지지만 그 시대가 종→아들→신부로 복직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부의 위치, 즉 애인관계에서의 구약, 신약, 성약의 역사를 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애인을 길러 키울 때 아기에서 소녀로 된 그 소녀가 숙녀가 되면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인생들도 애인대우 받으며 구약은 신부로 택함을 받고, 신약은 소녀가 숙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며, 성약은 숙녀가 되어 바로 결혼을 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바로 시대마다 애인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아담의 타락으로 하늘과 인생들의 관계성의 위치가 틀어져 버리니 이 관계를 복직시키며 창조목적의 역사를 펼 수밖에 없었다. 고로 예정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하늘과 시대사명자가 십자가를 지고 역사를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내가 십자가를 질 필요도 선생이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으며, 또한 복직 역사라는 개념도 없이 순리대로 역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너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아담의 타락이 인류문명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의 타락으로 하늘사상이 이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인본주의로 인해 인생들 스스로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삼위의 심정과 그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 시대사명자들이 얼마나 십자가를 지고 갔어야 했는지를... 19. 마무리 바다를 해변에서 보는 것과 다르고, 또한 높은 등대에서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구시대에 속한 자들은 자기들이 속한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본다. 그러니 온전히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는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그 주관권 안에서 바라보니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약은 어떠하냐? 성약의 입장에서 모든 역사를 바라보니 구약과 신약의 모든 모순이 다 보이고 온전히 하늘 뜻을 바라보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성약주관권에 속해 사는 것을 진실로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구약에 속한 자들은 나 예수 즉 나의 성자본체의 지상강림을 보지 못했고 신약에 속한 자들은 나 성자본체가 다시 영으로 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고로 완전한 역사 속에서만 완전한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다. 구원의 핵심은 사랑이다. 기성인들 중에 1년에 전도를 500명씩 하는 자가 있다. 하지만 그가 나의 재림을 맞는 것이 아니다. 나의 재림은 창조목적을 이룬 신부가 맞는 것이다. 아무리 공적을 쌓아도 자신이 신부로 만들어져 있지 않으면 나의 재림을 맞아 온전한 구원을 얻지 못하다. 자신의 공적은 자신이 만들어진 주관권에서만 통한다. 아들급에 머무른 자는 아무리 천 명, 만 명 전도해도 그 급에서 왕 살아먹지, 신부급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고로 온전히 자신을 나의 신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신부로서 처음 부활한 자, 즉 그 표상을 보고 그가 내 육신 되어 전해 주는 신부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귀한 진리를 알고 이 시대 자부심을 안고 나아가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