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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4.05 (목)

계시말씀

선포일
2012.04.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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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보지 말고 답만 보아라. 답만 찍어라. - 영적 환란을 이기는 법 작성일 : 2012. 03. 03. (토) 작성자 : 주이랑 일본 순회 기간 중 영적 환란을 대비한 교육을 준비 하며 이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지금은 마지막 시험이다. 그런데 이미 내가 사랑하는 신부들에게 답을 주었다. 고로 문제 보지 말고 답만 찍고 나와서 나를 맞아라. 문제가 어렵든 쉽든 너희에게 상관없다. 사랑하는 신부들에겐 답을 주었으니 그 답만 기억하 고 시험이 문제가 오거든 절대 문제에 빠지지 말고 외운 답만 찍고 빠져 나와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본으로 계속해서 받은 말씀입니다. ※ 예수님 말씀 ※ 내 사랑아. 천국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 섭리의 근본을 보는 것이 쉬운 일이겠느냐. 선생의 진심을 보는 것 역시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 보화일수록 밭 깊숙이 숨기어 진정 보고자 하는 자, 찾고자 하는 자,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니라. 고로 공의의 주요, 공의의 역사다. 휴거된 자, 이는 곧 ‘영혼육이 나 예수와 일체 된 자’라 했지? 일체란, 나 예수와 네가 같은 공간에 같은 몸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고로 너는 육의 몸으로 지구라는 육계에 존재하나 ‘육’이 아닌 ‘영’으로 살아감으로 나와 같은 공간인 ‘영계’에 존재할 수 있다. 고로 차원을 높여 계속해서 나 예수 거하는 곳까지 나와야 한다. 내가 너를 데려가고자 기다리고 있는 그 차원급까지는 네 책임분담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체 중에서도 핵심은 사랑으로 일체되는 것일진대 그러한 자는, 나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고, 같은 것을 느낌으로 나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일체다. 고로 일체 중 핵은 ‘심정일체’다. 나와 같은 공간인 ‘영계’에 나아오려면 무조건 기도다. 나와 심정일체 이루려면 무조건 기도다. 고로 ‘기도’가 가장 중하니, 기도해야 너희가 영적 세계에 올라 나 예수의 입장에서 나의 말을 듣고 심정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잊지 말아라. 지금은 ‘영적 휴거’를 앞두고 성서와 선생, 그리고 많은 계시자를 통해 예언한 ‘영적 환란’이 진행되고 있다. 결승선을 향해 전력질주 하는 너희를 막아 붙잡고자 저 악한 세력이 뒤좇아 달려오는 때다. 영적인 쓰나미가 너의 뒤에서 밀려오는 때다. 그러나 나의 신부여, 너는 두려워 말지니 “문제 보지 말고 답만 보아라, 답만 찍어라.” 이것이 내 너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이다. 지금은 ‘문제’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때다. 고로 내가 주는 ‘답’만 기억하여 답만 생각하고, 답만 행함으로 너는 이 모든 환란을 이기어라. 나 예수가 오직 답이다. 지금 너희에게 문제가 무엇이냐? 환란이더냐? 그렇다면 너는 문제인 환란을 보지 말고 답인 ‘목적지’만 보자. 지금 네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영적 휴거’다. 고로 영적 휴거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희망으로 소망으로 네 가슴이 부풀어 올라야 한다. 마치 신부가 결혼식의 그날을 생각하면 싱글벙글 마음 천국이 되듯, 너희는 ‘영적 휴거’의 그날을 최고 소망 삼고 그것을 꿈꾸며 마지막 단장에 힘쓰자. 오직 너희가 달려 왔고, 앞으로 달려가야 할 목적지만 정확히 마음에 두고 집중하여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변 여건, 자기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환란으로 인해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달려갈 ‘방향’을 잃어버리면 다시 제 방향을 찾아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들다. 그만큼 시간이 없다. 고로 목적지에만 집중하고, 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향이 되는 ‘말씀’에만 집중하여 최고로 마지막 단장에 힘쓰자. 내 신부들에게는 ‘환란’은‘사랑의 재촉’이 된다. 고로 내가 휴거된 자, 내 사랑의 신부가 된 자에게는 환란이 환란이 아니며, 심판이 심판이 아니라 말하지 않았느냐. 고로 나의 신부들에게 지금은 환란의 때가 아니요, 나를 맞을 때다. 여호와는 심판을 앞두고 반드시 택한 자들에게 피할 길을 준다. 고로 그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한 자에게 환란과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 그런데 더 깊은 차원에서 말하면, 여호와는 ‘법’을 선포하여 양과 염소를 가르시나니, 법을 지키는 자는 ‘생명’을 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죽음’을 맞게 된다. 아담과 하와 때를 보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나무 중앙에 있는 과일은 보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까 함이다.’하셨다. 그러자 뱀 곧 사탄은 ‘저기에 무엇이 있기로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셨을까, 저걸 먹으면 하나님같이 되려나?’라는 호기심을 아담과 하와 마음에 불어 넣었다. ‘과일’이라는 ‘문제’자체에 호기심을 갖게 하여 ‘보지도 만지지도 먹지도 말라.’는 답을 잃어버리고 그 답을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과일’과 ‘과일을 먹지 못하게 한 하나님의 법’에 의심과 호기심을 품음으로 타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토록 궁금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과일’은 실상 별거 아니었다. ‘과일’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키워지고 쓰인다면 인간 최대의 축복이나, 그 뜻을 잃어버리면 그저 인간의 지체이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여러 쾌락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고로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그 과일 자체가, 타락 자체가 아담과 하와를 죽인 것이 아니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었기에 아담과 하와는 ‘영적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도 동일하다. 내가 선생 통해 “너희는 악한 세력이 말하는 모든 말과 행하는 모든 악행을 보지도, 듣지도, 접하지도 말아라. 궁금해 하지도 말아라. 네가 죽을까 함이다.”라는 법을 선포했다. 그러자 너희 중 더러는 “저들의 말에 무엇이 있기로 그토록 보지 못하게 하는가, 저들의 말이 합당하기에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며 내가 준 법과 답을 의심하고, 저들의 말이라는 문제에 호기심을 갖는구나. 내 정녕 말하노니, 저들의 말에 무엇이 있기로 너희가 그것을 들으면 믿음이 상할까 하여 내 ‘보지도 듣지도 접하지도 말라.’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악한 말이 너를 죽일까 염려함이 아니요, 너희가 여호와의 법을 어김으로 죽을까 염려함이다. 내 더 세밀히 말하련다. 너희 중 “저 악한 자들의 말도 들어봐야 선생과 역사에 대해 온전히 판단할 수 있다.” 생각하는 자들 있느냐. 내 너희의 신혼골수를 쪼개 말하노니 너는 판단하고자 함이 아니요, 저들의 말에 의지하여, 저들의 말을 핑계 삼아 나를 떠나고자 함이구나. 곧 섭리를 부인하고, 나 예수를 부인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찾아 마음 편히 나를 떠나고자 함이구나. 내 말을 들어 보아라.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이는 수천 년간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논의하던 인류 최고의 ‘문제’다. ‘신이 존재한다.’주장하는 자들이 내놓은 이유만으로도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주장하는 자들이 내놓은 이유만으로도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는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연구하고 고민해도 너희보다 훨씬 똑똑하다 하는 자들이 한평생을 논하여도 이는 여전히 ‘인류 최고의 문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수천 년, 수만 년이 흘러간다 해도 이 두 논점은 영원한 평행선일 것이다. 고로 이 문제의 답을 ‘신이 있다 하는 자의 논리’ ‘신이 없다 하는 자의 논리’를 다 들어 보고 판단하겠다 하는 자들은 모순이다. 네 한평생을 다 투자해 두 입장의 모든 말을 듣는다 해도 다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문제에 빠지지 말고, 답이 되는 나의 말을 듣고 행해 보아라. 신이 있느냐 물었느냐, 맞다,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신은 영으로 영계에 존재하니 네가 신을 만나고 싶거든 기도로 영계의 문을 열고 나에게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는 신의 존재를 확인할 것이다. 고로 답은 나 예수의 말에 있고, 그 답은 네 마음과 행실에 있지 저들의 말에 속한 것이 아님을 진정 깨달아라. 섭리가 맞다, 아니다 하는 자들, 선생이 맞다, 아니다 하는 자들 들어라. 이 문제의 답은 사람의 말에, 사람의 입장에 있지 않다. 이 답은 오직 ‘나 예수’에게 있다. 고로 문제에 빠지지 말고 오직 나 예수에게 물어라. 네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이 모든 것이 나 예수가 너에게 말한 것이니 네 마음에서 답을 찾아라. 네 마음에 의심이 오고, 네 귀에 악평 소리가 들린다면 너희는 절대 그 문제에 빠지지 말고 오직 내가 준 ‘답’만 기억하여 빠져나와야 한다. 네가 그 문제에 빠지면 마치 밀려오는 쓰나미에 빠진 것과 같아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결국 죽음이다. 법을 어긴 자는 그 악한 행실의 조건으로 인해 악한 세력이 몰려와 영적으로 죽음으로 끌고 간다. 곧 심판이다. 이 시대 악평은 두 가지다. 첫째, 없는 사실을 만들어 거짓 누명을 씌우는 것이요, 둘째, 신본적인‘사실’에 인본적인 ‘이미지’를 덮거나 사탄의 잘못된 ‘관점’을 덮어 너희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것이다. 내게 향유옥합을 깨뜨린 막달라 마리아 사건을 기억하여라. 그녀는 진정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자에게 가장 귀한 향유옥합을 깨뜨려 사랑을 고백했다. 그 사랑은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 아니요, 나 예수가 메시야 그리스도인 것을 영혼으로 깨달아 감사와 영광과 온전한 사랑으로 화답한 최고의 고백이었다. 이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며 나를 고백한 사건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엄청난 고백이었다. 그로 인해 신약역사의 차원이 수백, 수천 배 달라졌음을 너희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내 주변에 있던 자들은 마리아가 내게 향유옥합을 깨어 머리에 부은 ‘사실’을 두고 각자의 ‘관점’에서 말하였다. 누군가는 “예수와 저 여자가 어떤 사이이기에 저 같은 짓을 하느냐. 무슨 의도로 하는 짓이냐. 향유옥합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면 좋았으련만.”하였다. 그러나 나 예수가 말하길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억하리라.”했 다. (마태복음 26:6-13) 결국 누구의 말이 ‘답’이 되었느냐. 나 예수의 말이 답이 되지 않았느냐. 마리아가 나 예수에게 준 ‘사랑’이기에 오직 나 예수만이 그 진심을 알고 그 ‘사랑’을 받은 것이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그녀의 진심의 사랑을, 위대한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어찌 내가 일대일 사랑의 주인이 되겠느냐. 오직 일대일 사랑이다. 일대일 구원이요, 나는 개개인의 유일한 메시야요, 신랑이다. 이를 깨달아라. 사탄은 ‘사실’에 육적이고 차원 낮은 이미지와 관점을 씌워 너희에게 접근한다. 마치 “저 값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좋았으련만.”하는 말과 같이, 영적이고 성스러운 ‘행위’혹은 ‘사실’에 육적이고 수준 낮은 차원의 ‘관점’을 씌어 비웃고 조롱하고 악평하는 것이니라. 지금 섭리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진심으로 나 예수에게 준 사랑, 영광, 감사 그 모든 성스러운 고백에 저 사탄들이 함부로 ‘가치 판단’하며 섭리를 조롱하는구나. 너희의 진심과 너희의 사랑을 조롱하는구나. 그들의 말에, 생각에, 관점에, 가치 판단에 현혹되지 말아라. 이는 마치 가룟 유다가 뱉은 죽음의 말과 같다. 오직 답은 나 예수가 지니고 있으니, 너희는 나 예수의 답만을 들어라. 지금은 절대 문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너희의 육성, 너희의 좋지 않은 상황, 너희의 불의한 생각 그 모든 문제에 절대 빠지지 말아라. 오직 말씀의 답만 툭툭 치고 나가야 한다. 단순해져라. 심플해져라. 답만 찍고 지나가도 시간이 없는 때다. 사랑한다. - 너희를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